▲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필자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로 뉴스를 많이 읽는 편이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였던 것 같다. 대통령이 국민들을 `서민`이라고 부르면서, 신문 기사들에서 `서민`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 시민, 직장인, 노동자, 농민, 혹은 학생 등과 같은 단어들은 많이 보았지만, 서민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공공연하게 사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러면서 우리 사회에 소위 `갑질 논란`도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서민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회적 특권이나 경제적인 부를 많이 누리지 못하는 일반 사람” 혹은 “이전에, 아무 벼슬이 없는 일반 평민을 이르던 말”이라는 뜻을 찾을 수 있다.서민이란 한마디로 평민이라는 뜻이다. 대놓고 `평민`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니까, 조금 돌려서 `서민`이라고 부른다.`서민`이 스스로를 서민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테니, `서민`이라고 부르는 주체가 있을 것이다. 타인을 `서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자기를 `귀족`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럼 우리 사회에서 누가 `귀족`인가? 얼마 전 뉴스를 보니까, 반포의 한 아파트의 주민자치회장이 아파트 관리 사무소장에게 `하인 주제에 감히` 라고 언어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곳의 30평대 아파트 값이 10억이 넘는다고 하던데, 그럼 그 정도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면 귀족일까? 사회적으로 합의된 `귀족`의 자격은 아직 없지만, 그 용어를 사용하신 분은 자신이 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비슷하게 요즘 언론 매체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가 `흙수저`, `금수저`이다. 이런 단어의 유행에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집에 돈이 많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같은 학교 안에도 금수저, 흙수저가 있고, 같은 직장 안에도 금수저, 흙수저가 있다는 식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확립된 신분이 있고, 좋은 교육이나 좋은 직업만으로는 그러한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이런 용어에 반영되어 있다. 얼마 정도의 경제 수준이어야지 `흙수저``금수저`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그냥 막연히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런 용어들은 마음대로 사용된다.그런데, 언론에서 자꾸 이런 용어를 사용하면서, 독자들에게 이상한 학습효과가 발생한다. `서민``흙수저`라는 용어 사용들은 대체로 부정적 정보들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 이런 사례들은 필자의 수업 시간에도 발견된다. 토론 중에 한 학생이 “빈민층과 소외계층은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라는 발언을 하였다. 상대측이 말의 의미를 다시 따져 묻자 학생은 다시 한 번 “빈민층과 소외계층은 책임을 질 권리가 없기 때문에…”라고 다시 말했다. 이 말을 하는 학생의 머릿속에는 `빈민층과 소외계층`은 무책임하고 사회에 기생하는 사람들이라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우리에게는 매우 명확히 의미가 규정된 사회학적 용어들이 있다. 국민, 시민, 노동자, 농민, 혹은 학생 등. 경제적으로는 고소득층, 중간소득층, 저소득층 등이 있고, 그것을 구분하는 소득 기준이 확립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자꾸 `서민` 혹은 `흙수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이미 계층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신분제 사회이니, 네가 `서민` 혹은 `흙수저` 신분이라는 것에 순종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대한민국은 만 20세 이상의 성인은 투표권과 피투표권을 갖는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갖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대등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실을 감추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너는 `평민`이다, 너는 `흙수저`라는 생각을 주입시키고 싶어 한다. 대등한 권리를 가진 타인을 향해 `평민` 운운하는 언론 현상은 빨리 근절되었으면 한다.
201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