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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을 보면서

등록일 2016-06-14 02:01 게재일 2016-06-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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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br /><br />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지난 5월 22일 새벽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에서 학부모 등 주민 3명이 초등학교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던 여교사를 성폭행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큰 파장이 일었고, 현재 흑산도는 관광객이 30% 정도 줄 정도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성폭행 사건의 심각성만큼이나 사건의 파장이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있었던 `묻지마 살인`과는 달리, 이 사건은 처음에는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이 처음으로 보도된 것은 5월 25일쯤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두 세 개의 언론사가 이 사건을 기사화했으며,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도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사들에 댓글들이 수천 개 이상 달리기 시작하자, 다른 신문사들에서도 기사를 냈다. 기사 수가 많아지고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 오르면서, 이 사건의 사회적인 파장이 대중들에게 점점 더 크게 인지되었다.

이 사건이 처음에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전라남도 교육청의 한 간부가 말했듯이“피해 교사가 성폭행 후 살해당한 것도 아니고, 일과 후에 (술을 먹은 후)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생각은 달랐다. “학부모가 포함된 세 명의 남성이 여교사를 집단으로 성폭행”했다는 점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견고한 도덕윤리의 한 축이 붕괴”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사회의 오랫동안 내려오는 견고한 윤리적 사유 중의 하나가 `군사부일체`이다. 자신의 자식을 교육하고 있는 스승이기에 그 사람이 나보다 신분이 낮든, 나이가 어리든간에 부모는 그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존경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아직까지는 남아있기 때문에, 학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을 `성폭행`했다는 것은 `근친상간`만큼이나 비윤리적으로 대중들은 받아들였다. 더구나 미리 공모했을 가능성이 높은 `윤간`이라는 점이 사건을 더욱 심각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 사건이 신안군에서 벌어지면서,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이 지역에 대한 왕따 현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즉, 과거 TV의 사회 폭로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려진 `염전 노예`사건의 배경이 신안군이었던 점과 연결되어서 이 지역에 대한 사회적 왕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한 TV 뉴스 기사에서 이 지역 주민이“그 사건에 대해서 될 수 있으면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관광객이 줄까 걱정이다”는 발언을 편집해서 보도한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은 모두 파렴치하고 몰 도덕한 사람들로 매도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일부 네티즌들은 전직 대통령 중 한 분의 고향이 신안군 출신이라는 것을 들먹이며,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신안군 사람들은 모두 파렴치하고 몰 도덕하니, 그곳 출신 전직 대통령도 이처럼 파렴치하고 몰도덕 하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들의 반응 역시 이런 `지역 왕따`현상에 대해서 방조하는 분위기이다. 많은 언론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여성 혐오” 사건이 아니라, “묻지마 살인”이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 TV 토론과 전문가 발언을 보도하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2012년 수원에서 조선족 남성이 한 여대생을 납치해서 토막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조선족은 식인습관을 가진 야만인으로 매도하는 글들이 SNS를 통해서 유포되었다. 당시`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이런 사건을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논거로 삼았다. 이번 성폭행 사건도 지역감정을 합리화하는 논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신안군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통해서 논의되어야 할 것은 외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 여교사들의 안전을 보장할 만한 시설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과 성폭행을 심각한 범죄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남성우월적인 시각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건설적 논의가 아니라 해당 지역에 대한 왕따로 비약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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