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2주 되었다. 지난달 22일 인천공항의 입국장을 통해서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사람들이었다. 입국 심사를 위해서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필자가 받은 인상은 표정이 모두 굳어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음력 설 연휴와 겨울 방학 등을 이용해서 해외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23일은 필자가 재직 중인 대학에 교수 연수회가 있었다. 1년 만에 학교 동료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많이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1년만의 교수 연수회에서 만난 동료들의 얼굴은 입국장의 얼굴들처럼 어두웠다. 보직 교수들은 학교 운영과 관련된 발표를 하면서 “대학 구조조정” 혹은 “연구업적 관리” 등과 같은 심각한 이야기들을 쏟아내었다. 여기에 학교의 재정상황이 어려우니 모두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이어졌다.
1년 만에 만난 친한 동료의 얼굴도 어두웠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약속하면서, 필자가 기대한 것은 오랜 만에 만난 사람들끼리의 즐거운 수다였다. 하지만 이 친구의 주된 이야기는 학내의 정치에 대해서였다. 재작년 한 학기 동안 필자와 이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 점심 식사를 했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이 필자와 이 친구가 친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친구의 요지는 당당하게 친하다고 말했다는 것이지만, 우리 둘이 같은 라인으로 보이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도 곁들였다.
1년 만에 만난 대학 동창생의 얼굴도 어두웠다. 매일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방학이라 매끼 아이들 밥 챙기고 밥 먹으라고 실랑이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친구는 필자에게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한다. 무엇보다 친구는 서울의 전세비가 작년 한 해 너무 올라서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한다고 걱정했다. 서울의 학군 좋은 지역이어서인지 45평 아파트의 전세비가 8억이라고 했다. 웃음기 없는 친구의 얼굴을 보면서 대한민국 중산층의 삶도 고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 수요일부터는 봄 학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요일 첫 시간 첫 수업을 들어갈 때 필자가 기대한 것은 대학 신입생들의 발랄하고 상기된 얼굴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얼굴도 어두웠다. 도무지 신입생다운 표정은 아니었다. 뭔가 활기가 없는 무표정한 얼굴들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선생님은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고 즐거운데 여러분은 안 반가운가 봐요?”라고 말하며 억지로 학생들을 웃겼다. 다른 교수들에게 “학생들이 저를 환영하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걱정하는 말을 하자,`다른 교수들에게도 그래요. 요새 애들은 삶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라고 대답했다.
한국에 온 뒤 필자를 보고 반가워하며 좋아한 것은 필자의 두 고양이들과 가족들뿐이다.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어두운 표정으로 필자를 맞았다. 각자의 근심걱정으로 한 번 어두워진 얼굴들이 습관화되어, 별일 없어도 어두운 표정인 것이다. 우울한 얼굴에 대고 마구 웃을 수는 없으니까, 필자의 얼굴도 우울해진다. 거울을 보니, 필자의 얼굴도 왠지 지치고 피곤해 보인다. 며칠 사이에 폭삭 늙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필자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이 한국에서도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상당한 노력이 아니고는 이런 당부를 실천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위의 심각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필자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만 같다. 이런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필자는 친구나 동료에게 “우리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우리끼리라도 만나면 서로 웃으면서 지내자.”라고 당부한다.
다들 지금의 한국 상황이 1998년 IMF 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지금 우리 사회의 표정은 너무 어둡다. 우리 사회가 웃음기 있는 표정을 갖도록 해줄 사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