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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국사 연구와 민족주의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미국에 있다가 보면 한국계가 아닌 한국학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 특히 역사 연구자들의 경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를 굉장히 `민족주의`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좀 더 균형잡힌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주된 이유중 하나는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일본 제국의 식민지정책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으로만 묘사하고 `식민지적 유산`을 너무 폄하한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적 유산`에 대해서 강조하는 학자 중에는 카터 에컬트(Carter Eckert) 교수도 있다. 이 분은 하버드대 `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서 한국역사를 강의하고 있는 분으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조선인 기업인 `경성방직` 연구의 권위자이다. 이 분은 한 논문에서 총력전 기간( 1938~1945년) 동안 전쟁을 위해 조선의 공업화가 가속되었고 조선인들이 공장에서 일한 경험들이 해방후 공업화에 기여했으며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은 조선 장교들과 그 훈련 경험 등도 식민지적 유산으로서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대표적인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는다. 이 논문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고 하는 한국책에 수록돼 있어서 한국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소위 `뉴라이트`의 관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서로서 세간에 알려져 있다. 뉴라이트는 일제 식민지 정책을 긍정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적 유산`이 해방이후 한국 사회의 산업적, 정치적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면 뉴라이트적 관점으로 치부된다.뉴라이트 비판자들은 해방 이후의 한국 역사를 일제에 의해서 단절되거나 왜곡된 근대화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묘사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서술은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적 전개과정-경제발전, 정치적 전개-을 지나치게 `특수화`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 통치를 경험한 나라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편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갖고 있다.`상상의 공동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베네딕트 앤더슨은 박 대통령의 취임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존재하는 정치권력의 승계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이것은 `황해문화` 2015년 여름호에 수록된 `아시아 혹은 아시아라는 정체`라는 대담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아시아에서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 중에 일본이 양성한 청년 장교들이 권력화 양상을 보였으며” 그들이 “암살이나 처형된 뒤 그들의 아내나 딸이 권력을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는 아버지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고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는 대통령 후보였고 마르코스 일당에 의해서 암살된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미망인이었다.앤더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적어도 많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이 나라를 구한 첫 번째 가장 용감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으며 그런 맥락-나라를 구한 사람들이라고 인식되는 정치가와 그 가족들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이 아시아 전체에 존재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여기서 아시아 민족주의의 형성의 공통된 특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불행히 죽은 지도자들의 부인이나 딸들이 지도자가 된 후 그 지도자에 버금가는 능력과 지도력을 발휘하였느냐는 평가와는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한국의 정치가 `특수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무서울 정도의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직시가 있을 때 좀 더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연구 결과물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카터 에컬트 교수가 자신은 한국의 뉴라이트와는 아무런 관점도 공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무조건 뉴라이트라고 비판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6-01-12

韓·日 위안부 합의가 간과한 것은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필자는 오늘 연구소에 나갔다가 연구소 동료로부터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 필자는 이번 합의가 큰 논란거리임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고, 이번 합의의 문제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합의문 발표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 합의에 반대하는 시위와 항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공감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의 외교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과거 일본 정부가 한국 여성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범죄` 행위로 보지 않고,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원만한 동맹 관계를 방해하는 외교적 장애물로 취급하였다.물론, 일본 정부의 합의는 과거 일본 정부의 입장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것이다. 지금까지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모집에 직접 관여했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또한 과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피해 배상 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상징적인 보상금으로 100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지금까지 일본은 조선을 식민 통치한 것으로 인한 법률적인 문제는 1965년 한일협상에서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에, 개인에 대한 배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비하면 우선 10억 엔의 배상비가 일본 정부가 직접 지출하는 것이라는 점이나, 일본 외무상 키시다가 “위안부 문제는, 그 당시의 군 당국이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심각한 상처를 준 문제”였으며, “일본 정부는 그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현한 것 등은 일본 입장에서는 큰 진전이다.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번 배상이 `법률적인 배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위안부 모집이 일본 정부의 정책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위안부로 동원된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가 법률상의 책임을 시인하고, 이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공식적인 배상을 하라는 요구와는 상반된 것이다. 더구나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제공하는 대가로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할 것을 요구한 것은, 이들이 이 문제를 일본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외교적 골칫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최근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반복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국과 일본에 촉구한 것이 이 합의의 배경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동맹국의 단합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원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본에 대한 강경한 태도로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었고 아베 총리는 과거 부정 발언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와 배치되는 양국 정부의 갑작스러운 합의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서 국가 정상의 외교적 기본 노선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현재 한국에는 총 238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중에서 46명만 생존해 있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의 당사자는 이 할머니들과 한국 정부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당사자와 어떤 의논도 없이 일본 정부와 합의를 하였다. 이는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인권 문제, 정의의 문제가 아닌 외교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정의는 거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결정을 내렸다.개인은 국가보다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는 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비극은 언제 어디에서든 반복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양심 있는 사람들이 이번 합의에 대해 비통해 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2016-01-05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2015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한 해가 갈 때마다 `소중한 시간`이 자꾸 줄어들어가는 것 같아 뭔가 아쉽게 안타까울 때가 많다. 하늘이 정해주신 한정된 삶의 시간이 헛되이 흘러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필자는 어느 때보다도 시간에 민감해진다. 그래서인지 웹서핑을 하다가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KBS`생생과학` 2015년 2월 27일자)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억에 남을 만한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뇌의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량이 10년마다 최대 10%씩 줄어드는 것도 이유라고 한다.도파민이 줄어들면 새로운 자극에 대한 흥분, 이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한다.필자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필자의 생활은 한 주 단위로 `되돌이표`를 그린다. 집과 학교, 그리고 가끔 대형마트 이렇게 세 군데를 일주일 단위로 무한궤도로 순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십 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그러다보니 필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 하는 하버드의 지인들에게 “지난 십 년을 하루 같이 살았어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게 된다. 이렇게 재미없는 시간들을 스스로 잘 참고 견뎌왔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놀라울 지경이다.그런 면에서 보스턴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일 년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생존하기 위해서 영어에 적응해야 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의 생활에도 적응해야 하고,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동료들과 학자들을 만나서 이들에게 적응해야 하는 과정들이 모두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매일 기록할 새로운 일들이 그리고 기억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들이 모두 소중하고 신기하게 생각되었다.필자가 하버드에서 만난 한 `뇌 과학자`는 필자에게 한 곳에만 있지 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라고 말한다.환경에 변화가 없으면, 뇌에 자극이 줄어들어 뇌가 빨리 늙기 때문에,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것도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더라도 연구실에서 만나지 않고 보스턴 시내에 있는 보스턴 도서관이나 유명한 커피숍에서 만난다든지 하는 식으로 생활 패턴을 조금 바꿨다. 덕분에 사람도 만나면서 새로운 장소와 분위기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또한 이곳의 생활이 일 년으로 한정되어 있다 보니,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는 것이 너무 아깝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좀 더 집중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항상 미래의 희망사항을 기준으로 현재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인데, 오늘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내일 즐거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덕분에 올 한 해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한 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마치 기억상실이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 그런 지난 시간들의 보상을 받은 느낌이다. 이것이 올 한 해가 필자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지금처럼 한국에 돌아간 뒤에도 매일 매일을 일 년처럼 길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남은 시간 동안, 필자는 `지금 여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매일 매일 변화가 있는 삶을 사는 연습을 해야겠다.

2015-12-29

세월호 청문회에 대한 단상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지난 14~15일까지 서울 YMCA 강당에서 `세월호 청문회`가 열렸다. 필자는 보스턴에 있기 때문에 시차도 있고 무엇보다 필자의 관심이 세월호 문제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청문회를 보지도 않았고 관련 기사도 읽지 않았다. 이미 필자는 이 문제를 책임자도 원인도 규명할 수 없는 미제사건으로 치부하고 어쩔 수 없는 일에 힘쓰지 않기로 마음을 정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세월호`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린 일이 요즘에는 없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이 단어가 소환돼 어쩔 수 없이 생각하고 뭔가 말해야 할 때가 있다. 한 번은 필자가 방문하고 있는 연구소의 일본 학자와 점심을 먹을 때였다. 이 학자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일본의 아베 총리도 문제가 많지만 한국도 좋은 지도자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월호 침몰`사건을 이야기했다. 이 학자는 대통령이 팽목항으로 가서 인터뷰하는 시간에 경찰이나 군인들을 보내서 배 속에 갇힌 학생들을 구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람의 비판은 2011년 3월11일 일본 토호쿠 지역에 쓰나미를 동반한 대지진이 있었을 때, 당시 간나오토 총리가 헬기를 타고 현장에 갔던 것에 대해서 일본 사람들이 비판했던 것을 연상시킨다.세월호 침몰이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때부터였고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을 방문한 것은 4월17일, 그리고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한 것은 4월18일이었다. 당시 이틀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배가 완전히 뒤집어지기 전에 탈출한 사람들 이외에 더 구출된 사람은 없다. 이런 일들을 두고 이 학자는 대통령이 사람들을 좀 더 구조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했어야 했던 것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의 비판에 필자는 한국 사람을 대신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며칠 전에 같은 연구소에 방문학자로 와 있는 한국 학자가 세월호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필자에게 환기시켰다. 이 학자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 학자는 16일 날 매우 피곤한 얼굴로 필자를 찾아와서는 어젯밤에 세월호 청문회가 열리는 것을 보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청문회를 보는 내내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런 복잡하고 피곤한 심정을 그의 얼굴에서 필자는 잘 읽을 수 있었다.이 학자의 주된 학문적 관심사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다. 세월호 침몰은 사상자, 가족 그리고 사회 전체에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그런 만큼 그는 이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팽목항에 여러번 방문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수백 명의 학자들이 팽목항으로 모여들었지만 이제 세월호 사건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학자는 두세 명 정도 남았다고 한다. 관련 논문 한두 편 쓰는 것으로 그들의 관심과 참여는 끝났다고.오늘 이 칼럼을 쓰려고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세월호 청문회를 다룬 신문기사가 총 세 건밖에 없다는 비판 기사가 검색되었다. 어느 순간 언론들이 세월호 침몰을 국가의 잘못된 역할 수행으로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사건이 아니라,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방해하고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급격히 줄었다. 이런 논조 전환은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대중들에게 관심을 끊을 좋은 빌미가 되었고 필자도 여기에 합류했다.그러면서도 필자는 누군가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끝까지 이 문제의 원인규명과 해결에 함께 했으면 하는 이율배반적인 심정도 갖고 있다. 또한 누군가 한 명은 이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끝까지 지켜보고 이런 고통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해주었으면 한다. 팽목항을 방문했던 수많은 기자와 학자와 정치가 중 누군가는 끝까지 남아 자신의 `직업적 소명`을 완수하면 좋겠다는 그런 기대를 염치없게도 필자는 하고 있는 중이다.

2015-12-22

미군의 점령 정책과 리그형 제국주의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자유로의 강제`라는 수업을 한 학기 들었다고 쓴 적이 있다. 이 수업은 1898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식민지 정책 혹은 점령 정책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수업의 절반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점령했던 일본, 서독 그리고 한국에 대한 것이다. 이 수업은 `점령`을 고전적인 의미의 제국주의가 아닌 새로운 유형의 제국주의로 규정을 하고, 세 나라에 대한 점령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이 수업에 따르면, 현재의 세계 질서 자체가 새로운 유형의 제국주의이다. 이것은 고전적 제국이 다른 나라의 주권을 뺏고 본국의 행정가를 보내서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유형이다. 새로운 제국주의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로는 대서양헌장, 민족자결주의, 자유무역, 각국의 경제발전과 안전보장 등이다. 이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추구할, 혹은 세계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대서양 헌장`은 1941년 8월 14일 영국의 처칠 총리와 당시 비교전국이었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북대서양에서 5일간의 선상회의 끝에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이것은 이후 `국제연합 공동선언`의 기초가 되었다. 앤드류 고든 교수는 국제연합을 미국형 제국주의의 새로운 경영 방식으로 규정한다. 여기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합쳐져서 미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 질서가 창출되었으며, 그 본질은 제국주의라고 수업은 규정하고 있다.이러한 제국주의는 리그(league)형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데, 독립 국가들의 동맹체 형식을 취한다. 이 리그형 제국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국가들이 바로 미군이 점령한 일본, 서독 그리고 한국이다. 일본과 서독은 한 때 미국과 함께 세계 3대 경제대국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1위와 3, 4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세 나라 중 두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라고 부르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수업을 강의한 앤드류 고든 교수는 이것이 바로 미국형 혹은 리그형 제국주의가 창출한 새로운 세계질서라고 주장하였다.세 점령국 중 일본과 서독은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이 두 국가들은 한 때 미국의 적국이었고 한 때 제국이었고 주권국가이자 민주적인 통치경험이 있고 상대적으로 발전한 자본주의와 산업경제 국가였다. 미국은 이 나라들을 미국을 모델로 한 국가 즉, 미국의 민주주의 질서와 `기독교`와 같은 미국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일본과 서독의 탈군사화, 탈-나치화, 시민 사회의 재건, 토지개혁을 포함하는 경제 개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새로운 헌법의 구성을 추구했다.그러나 남한(South Korea)은 이러한 점령 정책에서 예외적인 경우였으며, 어떤 가치가 남한에서 추구됐는지 불분명하다. 다만 명백한 것은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으며, 이런 이유로 일본의 협력자들이 미국의 협력자로 선택되었다고 고든 교수는 강조하였다. 하지만 점령 이후 남한의 정치, 경제적 변화들은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특히 1960년대부터 남한에서 싹 터온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추구는 한국 사회 자체가 만들어낸 것이다.한마디로 말해서 일본과 서독의 현재 모습은 점령기간 동안 미국이 추구했던 새로운 국가 건설의 결과물이었다. 더불어 미국이 창출한 리그형 제국주의 속에 점령지였던 한국도 당연히 들어가 있다. 하지만 미국에게 한국은 중요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일본이 미국에 대해서 갖는 중요성과 위상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현재의 세계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점령 이후 형성된 미국과 일본의 동맹 관계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미국에게 한국이 어떤 전략적 가치를 갖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5-12-15

중화주의의 기초는 산업생산량이었다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이번 가을 학기에 필자는 하버드에서 `Forced to be Free` 제목의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은 1898년 이후 `제국, 그리고 점령자이자 국가 건설자로서의 미국`에 대해서 강의하였다. 그런데 정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첫 수업 시간에 들은 청나라 고종 황제와 영국의 조지 3세와의 서신 내용이었고, 청나라가 한 때 세계 1위의 산업생산국이었던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동시에 필자는 청 제국의 몰락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1793년 조지 3세가 교역을 할 것을 요청하자 고종 황제는 “우리 제국은 모든 것을 충분할 정도로 갖고 있으며 국경 안에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니 외부의 야만인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하였다. 당시 청나라의 산업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33%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영국은 2%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100년도 지나지 않은 1860년이 되자 청나라와 영국의 산업생산량은 교차점을 지나 역전되기 시작했으며, 1900년에는 중국은 6% 영국은 18%가 되었다.1860년은 중국에서 태평천국의 난(太平天國之亂, Taiping Rebellion)이 한참 일어나던 시기였다. 태평천국은 1850년에서 1864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대규모 내전이다. 교전 상대는 청나라 조정과 기독교 구세주 사상을 기반으로 한 종교국가 태평천국이었다. 태평천국의 난은 명청 전쟁 이래로 중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 전쟁이었으며, 인류 전체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유혈낭자한 내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난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2천만에서 7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난민 신세가 된 사람도 수백만 명에 달한다.또한 1856년에 발발한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는 영국 및 프랑스 연합군에게 패배함으로써 유럽의 중국 침략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영국은 프랑스와 구성한 연합군으로 광저우를 침략하여 방화와 살인을 저질렀고, 톈진을 점령하여 불평등 조약인 톈진 조약을 맺었다. 연합군은 톈진 조약 이후에도 진격을 계속해 1860년에는 베이징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청나라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베이징 조약을 맺으면서 전쟁은 종결되었다.세계 최고의 국가가 2류 국가로 몰락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현재 우리가 배울 점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일단 태평천국의 난은 기독교 국가를 표방하는 태평천국과 유교 국가 청나라의 전쟁이다. 즉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집단들이 정치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대규모 전쟁을 치렀으며, 그 결과 최대 7천만 명으로 추정되는 국민이 생명을 잃었다. 당시 중국은 농업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의 상실은 곧 노동력의 상실을 의미하고 이는 곧 산업생산량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 정치, 특히 보수 정당이 끊임없이 이념 갈등을 조장하고 모든 문제, 특히 경제적인 문제를 이념적인 문제로 몰아서 상대방과 대화나 타협을 하기보다는 진압을 하려고 하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국가 경제나 국민 생활의 향상보다는 `권력 유지`에 골몰하다 보면, 국력은 점점 쇠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정치 집단들이 권력 투쟁에만 골몰하는 모습은 국가의 행정력으로는 현재 우리 경제를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비관적인 의심조차 들게 만든다.세계 제2위 산업생산국으로 올라선 중국, 그리고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군사적 자율권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움직임 등은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점점 비관론을 갖게 한다. 어차피 나는 연구실에 혼자 앉아 키보드나 두들기는 수준이므로 이런 문제는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니까 잊어버리자 하면서도, 자꾸 걱정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좀 더 국민 생각, 국가 걱정을 하는 정치가 되었으면 한다.

2015-12-08

테러와의 전쟁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교수지난 11월 13일 IS가 파리에서 테러를 자행하여, 132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이 사건은 `파리 테러`로 불리고 있다. 테러 단체가 대중적인 장소에서 불특정 시민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인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이 전 세계인들에게 준 충격은 매우 컸다. 당시 SNS로 친구가 파리 테러 사건을 전하며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고 말했다. IS는 자신의 잔인성을 선전하기 위해서인지 시민들의 살해 장면을 실시간으로 전송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는 영어회화모임에 참석했다. 이 모임을 이끌어가는 분은 70세가 넘은 미국 부인이다. 이 부인에게 `파리 테러`는 2001년의 9월 11일에 있었던 탈레반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테러와 연결되어 인식되는 것 같았다. 즉 9·11 사태에서 받은 심리적 트라우마가 `파리 테러`로 인해 다시 살아난 것처럼 보였다. 또한 이 부인은 이 잔인한 사건에 대해서 참석자 모두가 규탄하고, 비난하고, 피해자들에 대해서 동정을 표현하기를 기대하였다.당시 참석자들은 파리 테러의 끔찍함과 IS의 범죄행위에 대해 비난하면서도, 언론이나 이 부인의 관점에 다 동의하지는 않았다.한 일본학자는 전 세계적으로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서 파리 테러에 대해서 애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인종주의적 태도에 대해서 지적하였다. 그녀는 “이번 테러로 많은 프랑스인이 사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리아 등지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테러와 공습 등으로 사망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프랑스인의 죽음에 대해서만 애도를 표현할 뿐, 시리아 등에서 주민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애도를 표현한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그녀의 지적처럼 오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러시아 공군 전투기가 시리아의 재래시장을 폭격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지난달 말 이집트 상공에서 러시아 여객기가 폭발했는데, IS가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지자 러시아가 이에 대해서 보복성 공습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민간인에 대한 공습은 `파리 테러`만큼 언론 매체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것을 보면 일본학자의 말처럼 유럽인과 비유럽인들 사이에는 목숨 값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영어회화모임을 주관하는 부인은 `파리 테러`에 대해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등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자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고, 학교에서는 이 테러에 대해서 어떻게 교육하고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이에 누군가가 왜 `파리 테러`에 대해서 수업 시간에 교육해야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반문하였다. 이 부인은 테러 행위의 악마성에 대해서 학교에서 꾸준히 교육해야 하며 9·11 테러에 더해 `파리 테러`는 그러한 악마성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로서 교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IS의 기원에는 미국의 잘못된 정책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파리 테러`는 매우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불특정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 될 수 없는 잔인한 범죄행위이다.하지만 IS와 미국 등의 전쟁으로 수많은 시리아인들도 사망하거나 난민이 되고 있다. 과거 걸프전만 해도 미국의 공격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이런 것을 보면서 왜 언론 매체들은 사람들이 강대국 주민들의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은 슬픔을 느끼도록 보도하는지 의문이 들었다.이런 상황 자체가 우리들이 평등하지 않은 국제 질서 속에서 살고 있음을 뚜렷하게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인이 가진 목숨의 값어치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의문도 동시에 들었다.

2015-12-01

사랑 없는 시대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지난주에 방문학자로 와 있던 대학시절의 같은 과친구가 보스턴을 방문했다. 이 친구는 지난주 수요일부터 보스턴에서 모더니즘 학회라는 큰 학회가 열려 이 학회에 참석도 하고 필자도 보기 위해서 겸사겸사 보스턴에 온 것이다. 학회가 끝난 주말에는 친구, 필자 그리고 필자와 같은 연구소에 있는 학자 이렇게 셋이서 보스턴 근교 `케이프 코드`에 나들이를 갔다. 케이프 코드까지 가는 2시간 동안 긴 수다에 지친 우리는 음악을 듣기로 했다. 스마트 폰에 저장된 음악들을 무심코 재생하게 되었고 10㎝의 `쓰담쓰담`, 빅뱅의`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그리고 혁오의 `위잉위잉`이 순서대로 흘러나왔다.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듣던 노래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문학적 감수성이 아직은 충만한 친구와 문학이나 영화이야기를 하다 보니 필자도 이 대중가요의 가사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노래들 사이의 놀라운 `의미`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었다.“토닥토닥토닥 토다닥디다리디독 해드릴까요/오갈 데 없던 나에게도/이런 날이 올 줄이야/외로워 미칠 때마다/밤이 외로워 미칠 때마다/그대 두 볼이 빨개질 때마다/불러줘요,”라는 `쓰담쓰담`의 가사를 음미하다 보니 무척 귀엽게 부르는 이 노래가 은근히 야하다는 것과 이 노래에는 외로움이 있지만 `사랑`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런 것을 아예 제목에서부터 당당히 이야기하는 빅뱅의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가 떠올랐다.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아직은 잘 모르잖아요/사실은 조금은 두려운 거야 그대 미안해요/우리 약속하지 말아요/내일은 또 모르잖아요/하지만 이 말만은 진심이야 그대 좋아해요.” 서로 좋아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말자는 이 가사는 현재 20대 혹은 청춘들의 관계에 대한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이 노래를 듣노라니 문득 필자는 얼마 전 하버드의 대학생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즘 대학생들은 서로 사귀기는 하지만 “너는 내 남자친구다, 혹은 여자친구다”라는 확인을 서로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아직 어리고 많은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말을 떠올리며, 필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단지 이런 생각에서 사랑을 회피하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느꼈다. “사랑도 끼리끼리/하는거라 믿는 나는/좀처럼 두근두근/거릴 일이 전혀 없죠.”라는 `위잉위잉`에 와서는 미래가 불안하니까, 사랑한다 말했다가 결혼하지 못하면 서로 미안하니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다는 빅뱅의 노래가 애교로 들릴 정도이다.“사랑도 끼리끼리 하는 것”이라는 `위잉위잉`의 가사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근대적 사랑의 공식을 철저하게 부셔버리고 있다.`낭만적 사랑`이란 사회적, 계급적 신분을 뛰어넘는 결혼을 가능하게 하는 근대의 마법이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랑` 그 자체이기도 한 `낭만적 사랑`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서로 외로울 때면 만나서 위로해주는 가벼운 관계, 혹은 미래(결혼)를 약속하지 않는 즐겁지만 미안한 만남, 그리고 더 이상 계층 혹은 계급 이동의 수단이 되지 못하는 철저하게 산문화된 사랑. 이것은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재인 것이다.`우리 사랑하지 말아요`나 `위잉위잉` 같은 노래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다, 혹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들이다. 이 점은 이 노래들이 음악 어플에서 1위를 했던 것들에서도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사랑을 하지 않는 혹은 회피하는 태도는 필자의 세대가 `낭만적 사랑`을 꿈꿨고, 여전히 사랑에 대한 믿음이랄까, 미련을 갖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노래를 들으며 필자는 요즘 사람들이 종종 말하곤 하는 `삼포 세대`니 `오포 세대`는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명백히 존재하는 심리적 현실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늘 그렇듯이 그들에게 이런 현실밖에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2015-11-24

미국의 한국문학 연구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지난주 목요일 금요일(11월12~13일)에 미국의 더램(Durham)시에 있는 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에서 북미한국문학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필자도 첫날 오후 발표의 토론자로 초대되어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필자의 대학 동창이 방문학자로 와 있고, 여자 후배 한 명과 기자인 남자 후배도 방문학자로 와 있다. 북미 지역 한국문학 연구자들과 대학 동창들을 같이 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좋은 기회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대학 동창 녀석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서로 바빠서 잘 만나지 못했는데, 이렇게 낯선 미국에서 만나다니 참 신기했다. 오후 3시부터 학회가 시작되었다. 이번 학회의 첫번째이자 내가 토론자로 참석하는 분과라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최인훈의 `광장`과 이태준의 `해방전후`, 그리고 북한문학에서 나오는 `사랑`에 대해서 세 명의 발표자가 발표를 했다. 최근 미국학계는 주로 국경을 넘거나 여러 문화를 경험하면서 이동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 세 개의 발표도 해방직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남한에서 북한으로 혹은 북한에서 남한으로의 국경 이동을 배경으로 한 발표들이었다.둘째 날 첫 번째 분과발표는 조선 후기와 근대 초기의 중국과 한국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조선후기에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소설 속에서 인식되고 묘사되는 양상, 일본과 한국의 시에서 중화문화권이 사유되는 방식, 그리고 조선후기 조선인의 영국 경험 혹은 영국인의 조선경험을 비교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재밌는 부분은 조선후기 지도에서 조선과 중국의 크기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고 일본은 한국 아래 있는 조그만 섬나라로 묘사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묘사는 조선을 중국보다 작지만 어느정도 대등하게 생각하고 일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조선인들의 아시아 인식을 보여준다.둘째 날 두 번째 분과발표는 개화기, 식민지 시대 그리고 50년대 소설과 영화에서 여성들이 묘사되는 방식과 그들의 젠더 의식에 대한 것이다. 세 번째 분과 발표는 한국과 독일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통일, 미술가 신학철의 그림에서 나타난 `민중,` 그리고 민족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 혹은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에 대해 발표가 있었다. 발표자의 국적이 영국, 독일, 미국 등 다양하다 보니 각국의 문화적, 역사적 경험과 한국의 경험을 비교하는 것이 많았다. 한국인 연구자들의 연구경향이 주로 한국에 한정된 좁은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외국인들의 한국문학 연구는 비교문학적 연구의 성격이 강하고 좀 더 넓은 시각에서 한국문학을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무엇보다 신학철이라는 미술가에 대해서 발표한 것이 흥미로웠다. 처음 들어보는 미술가라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1980년~ 1990년대 활발히 활동한 민중화가라고 나왔다. 또한 1987년 작품인 `모내기`는 북한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이 사람의 그림을 발표한 사람은 미국인 대학원생이었다. 한국에서 문학연구가 근대성 연구나 문화 연구 등으로 탈정치화 되고 있는 것에 비해 외국인들은 과거 4·19세대의 문학, 민중문학 등 한국인의 정치적 경험과 결합된 연구들을 좀 더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 사람들도 그렇고 외국인들은 이런 정치적 사건에서 드러나는 한국인의 강하고 역동적인 성격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한국인들이 한국문학에서 느끼는 흥미와 외국인들이 한국문학에서 느끼는 흥미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학술대회에서 느낀 점은 한국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한국문학을 보는 것보다는 좀더 넓은 시각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시아 안에서 혹은 세계 안에서의 한국문학을 본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한국문학의 특성과 장점이 좀 더 잘 드러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5-11-17

하버드대생들은 미국이 ISIS보다 위험하다고 생각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며칠 전 필자는 하버드 학부생과 같이 웹 검색을 하면서 대화하였다. 그러던 중에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추락한 비행기의 블랙박스 분석 결과 비행기 사고의 원인이 기내에 실린 폭탄의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신문 기사를 발견했다. 필자는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가 웬만한 테러행위는 모두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위협적인 존재임을 세계에 과시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학부생은 하버드 대학생들은 미국이 ISIS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한겨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ISIS가 이 사건을 자기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마이클 맥콜 미 하원 국토안보위원장은 “전 세계에 미국이 약하게 보이는 등 외교실패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며 “중동정책이 혼란에 빠졌고 ISIS가 이라크와 시리아, 북아프리카, 이집트를 점령하고 러시아도 중동에 진출하려 한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최소한 하버드 학생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FOX TV에서는 뉴스 쇼 시간에 “하버드 대학생들에게 미국과 ISIS 중 어느 것이 더 위험 하냐”고 질문하였다. 그 결과 다수의 학생이 미국의 제국주의가 세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ISIS의 테러보다 더 위험하다고 대답하였다.FOX TV는 보수적인 채널이기 때문에 이 뉴스쇼에 나왔던 패널도 대체로 보수적이다. 패널 중 한 명은 학생들이 `제국주의`라는 단어를 쓴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큰 단어`를 쓴다고 못마땅해 했고, 한 가수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한국, 베트남 등 전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서 얼마나 헌신했는지 학생들은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최근, 허드슨 연구소의 `ISIS의 기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ISIS의 주요 지도자들 중 다수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조직한 공화국 수비대와 페다인 사담과 같은 부대의 간부들이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 한 후, 이들 간부들 중 일부는, 이라크 정보기관인 M4의 지도자들과 함께, 시아파가 지배하는 새로운 지배 질서에 대항하는 세력에 합류하였다. 자신들의 관점에서 시아파 정부는 미국의 협력자였기 때문이다.또한 사담 후세인이 제거되자, 이란이 1980년대에 이란전에 참전했던 이라크 군과 정보 요원에 복수를 하고자 하였다. 이라크의 전 총리 말리키 같은 경우 암살단을 조직하였으며, 이란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와 이란 혁명 수비대 장교가 이라크의 수니파 공동체에 반대하는 전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결국 수니파는 ISIS를 시아파의 공격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선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ISIS에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군 장교들이 일부 있으며, JRTN의 지도자들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라고 알려져 있다.ISIS는 미국이 이 지역에 지속적으로 무력 개입하여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하고 이권을 보장받으려고 한 것의 부산물이다. 하지만 러시아 비행기 폭발을 계기로 미국 정부는 오히려 중동에서 미국이 약해 보이는 것이 원인이라며, 더 강한 군사적 개입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 미국이 ISIS보다 더 세계평화를 위협한다는 하버드 학생들의 말을 `철없는 아이들의 말`로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또한, 한국의 많은 네티즌들이 미국이 이라크 전을 일으킨 원인은 중동지역의 평화나 민주주의의 정착 혹은 독재자 제거와 같은 이유에서가 아니라 `석유`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다수의 하버드 학생들도 `석유`가 분쟁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매스-미디어와 교육을 통한 선전활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건의 실체-원인, 이유-는 짐작되기 마련인가보다.이것을 좀 더 논리적으로 논증하는 일은 역사가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2015-11-10

자살을 권하는 사회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지난주 필자와 같은 연구소에 방문학자로 와 있는 한국의 인류학자가 중국의 북동부지역의 자살에 대한 `의료-인류학적(medical-anthropology)` 연구로 발표를 하였다. 이 발표에 따르면 1990년대 중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3명이었으며, 여성의 자살률이 남성의 자살률의 2배였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에 들어오면서 자살률은 10만 명당 9.8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런 발표를 들으면서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 떠올랐고, 중국의 사례에서 배울 것은 없는지 생각하게 되었다.1990년대 중국의 자살률 중에서 특히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의 자살률이 높았다고 한다. 발표자는 중국 동북부의 몇 개 농촌 마을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였는데, 이들의 자살원인은 첫째, 원만하지 못한 애정-결혼 관계, 둘째, 실망스러운 경제 상황, 셋째, 우울증 등이었다. 그리고 자살의 방법으로는 살충제나 생-콩물(사포닌 성분이 독성을 갖고 있어 자살에 종종 사용된다고 함)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대다수의 여성들이 평균 3명 이상의 여성 자살자를 알고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도 자살이 최후의 문제 해결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자살 관련 정보들이 커뮤니티 내에서 공유되고 학습되었다. 2010년을 전후로 해서 자살률이 절반 이하로 낮아진 것은 중국 정부의 자살 방지 프로그램의 적극적인 적용 덕분도 있지만, 텔레비전이 농촌으로 보급된것도 기여하였다고 발표자는 강조하였다. 농촌 여성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있다가 텔레비전을 통해서 더 넓고 더 많은 기회가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것은 자살률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또한 2000년 이후의 중국의 급속한 경제 생성 덕분에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이 많아지고, 소득 수준이 높아진 것도 자살률이 낮아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발표자는 지적했다.발표에 토론자로 참석했던, 중국의 자살 연구의 대부인 하버드 인류학과의 클레이만 교수는 자살의 원인을 개인적인 것으로 보는 것에 비판적이었다.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보는 사람들은 그 원인으로 우울증을 든다. 이에 대해 클레이만 교수는 우울증이 자살의 중요 원인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라며, 사회적, 경제적 원인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이런 발표를 들으면서 필자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 떠올랐다. 현재 한국은 10년째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1위이고, 작년에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는 27명이었다.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자살률의 2배가 넘으며, 노인의 자살률이 청년이나 장년층보다 훨씬 높다. 또한 20대의 경우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전 세대에 걸쳐서 자살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며칠 전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하위 50%의 부는 전체 부의 2%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하위 50%에는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층, 88만원으로 먹고 살아가는 세대, 그리고 노인 빈곤층이 있다. 특히 노인들은 한국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그 과실은 나눠가지지 못했고, 노후를 보장할 저축이나 연금도 없고, 이를 대체할 사회보장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청년과 노인을 대립시키고 이런 대립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잇속을 차리려고 한다. 하지만 소득 불균형과 불완전한 복지 정책으로 인해서 고통 받고 자살을 마지막 수단으로 취하는 사람들은 세대 전반에 걸쳐있다.중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해결할 방법이 눈에 띄는 경제 성장과 일자리의 확대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몇 년째 2~3%의 낮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소위 경제의 `낙수효과`도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선전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진 상황이다. 남은 수단은 하위 50%가 2%보다는 더 많은 부를 나눠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다.

2015-11-03

한국은 정말 성형 왕국인가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필자가 보스턴에 온 이후로 다양한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 미국인도 있고, 아시아인도 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유학을 온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외국인을 만나다 보면 자주 화제가 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한국 여성들이 성형을 많이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한 외국인은 압구정에 있는 성형외과 밀집 지역도 알고 있었다. 한국 여성들은 성형을 많이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을 때면 필자도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한국 여성이 성형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잘 모른다. 그래서 무심코 한 25프로 정도의 한국 성인 여성들이 성형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 지인은 너무 적은 것 같다, 더 많은 여성들이 성형을 할 것 같다고 반박했다.몇 프로의 여성들이 성형을 하는지 궁금해진 우리들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국제미용성형학회(international society of aesthetic plastic surgeries)의 2014년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성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미국으로 전 세계 성형 수술의 20.1%를 차지한다. 두 번째는 브라질로 10.2%, 세 번째는 일본으로 6.2%, 그리고 네 번째로 한국이 4.8%를 차지했다.작년 한국에서 있었던 외과적 성형수술(코 높임, 쌍꺼풀 수술, 복부 지방 제거, 가슴 성형 등), 비-외과적 성형시술(레이저 치료, 보톡스 주사 등) 횟수는 98만313건으로, 한국인의 성형 부위는 주로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의 얼굴 성형 비율은 77%로 미국의 경우 가슴 확대 수술이 전체 수술의 42%인 것과 대조적이지만, 일본과 유사한 비율이다.한국의 인구대비 성형비율은 1천 명당 19명 정도에 해당된다. 2011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1천명 당 11명이 성형수술을 했던 것에 비하면 성형인구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 미국인이 1천명 당 12명이 성형을 한 것과 비교해보면 한국이 인구대비 성형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는 하나 필자가 처음 말했던 것만큼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필자와 대화하는 지인은 한국인이 성형을 많이 한다고 알려진 이유는 뭘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아마 한국 여성들이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대답을 하고 보니 직접 성형외과에서 얼굴 성형을 하는 것 외에도 가정에서부터 부모들이 자녀들의 외모에 꾸준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무게와 키 등이 부모들에 의해서 관리를 받는 것이다.이렇게 외모 관리에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예뻐지고 싶다는 자기만족 외에도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다. 미국의 경우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는다. 따라서 서류상으로는 지원자의 외모나 인종 등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는 필자도 직접 경험한 것이지만, 많은 경우 이력서에 사진을 붙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성형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외모가 지원자의 능력을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믿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되고 있다.한국인은 평균적인 외모가 뛰어난 것만큼 그렇게 되기 위해서 개인적인 투자를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문화 자체가 외모를 중시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것, 심각한 취업난, 그리고 성형을 부추기는 대중매체 등이 서로 합쳐져서 사회가 점점 외모에 집착하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성형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필자는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문화는 상당히 걱정스럽다. `마음 미인`이라는 말은 이 시대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것 같다.

2015-10-27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요?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지난주에 지인들과 만나서 시를 같이 읽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편의 시를 가지고 1시간 반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경험했다. 감상의 시는 미국의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요?` (I`m nobody, who are you?)였다. 이 시의 원작은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예요. 당신은요?/당신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인가요? 역시?/그렇다면 우리들은 짝이네요!/말하지 말아요! 그들이 선전할 거예요!//감히 어떻게 대단한 사람이 되겠어요!/어떻게 공개적으로 개구리 같이/누군가의 이름을 이렇게 긴 유월에 말하겠어요/존경스러운 습지에다 대고!처음에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시가 늘 그렇듯이 정확하게 그 의미가 파악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아요, 그들이 선전할 거예요”의 의미를 “우리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 말하지 말아요, 사람들이 그것을 떠들어댈 거예요”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미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리 없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누군지 말하지 말아요. 말하면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떠들어댈 거예요”로 해석을 했다.그러자 2연의 내용과 연결이 되면서 시 전체의 의미가 이해되었다. 2연은 대중들의 입에 자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 유월은 한 해 중, 해가 가장 긴 달이다. 따라서 유월에 개구리들이 하루 종일 울어대듯이 우리가 누군지 알려지면 그들은 개구리처럼 우리들에 대해서 지독히도 오랫동안 떠들어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로는 사교계에, 요즘으로는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고, 그들에게 회자되는 것에 대해서 디킨슨은 무척 싫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녀가 태어난 집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1870년부터 죽을 때까지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알면 더 잘 이해될 수 있다.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에밀리 디킨슨과는 매우 다른 인간 유형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좋아하고, 매일매일 욕을 먹으면서도 그들의 에고는 전혀 상처받지 않는 듯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을 한국어로는 `낯 두꺼운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영어로는 `두꺼운 피부(thick skin)`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걸 보면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렇게 정치인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누군가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로널드 트럼프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그가 경선에 나온 것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를 전 세계에 선전하고 싶어서라는 해석과 함께. 이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그의 이름은 깊이 각인되었으니까 말이다.트럼프는 18일 미국 폭스뉴스의 크리스 월레스 앵커가 진행한 `선데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미국)는 한국을 사실상 공짜로 방어하고 있다”며 “2만8천명의 미군을 (한국에) 두고 있으며, 한국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은 미군 주둔 분담금으로 9천800억원을 해마다 분담하고 있다. 이처럼 억지 주장을 공공연히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늪지 같은 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시를 읽던 우리들은 갑자기 풍자적으로 돌변해서, 로널드 트럼프의 페이스 북에다 에밀리 디킨슨의 `저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요?`를 헌정했다.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시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심하였지만, 어느새 유쾌한 풍자꾼이 되어 정치인의 SNS를 들락거리는 것으로 감상 시간을 마무리 하였다.

2015-10-20

하버드에서 도연명의 시 `음주`를 읽다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도연명의 시 중에서 `음주이십수(飮酒二十首)`라는 연작시가 있다. 이중 제5수 `음주`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원시의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마을 안에 엮어 놓은 오두막집, 그래도 시끄러운 수레소리 들리지 않네/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가요? 마음이 멀면 사는 곳도 외진다오/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드니 그윽이 보이는 남산(南山)/산기운이 석양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도 무리지어 돌아가누나/이 가운데 있는 참뜻, 말하려고 하나 이미 말을 잊었도다.” 이 시의 마지만 구는 매우 유명해서 필자는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한시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금요일 이 시를 우연히 다시 접하게 됐다. 그것은 필자가 참석하고 있는 영어 회화 수업에서였다. 강사가 도연명의 `음주이십수` 중 제5수 `음주`의 영어 번역 복사물을 갖고 와서 나눠주었다. 다른 참석자들-대부분이 방문교수거나 박사논문연구생-과 함께 시를 읽고 시 내용에 대해 서로 대화를 했다.`음주`의 영어 번역의 마지막 줄을 읽었을 때 필자는 이 시의 내용이라기보다 번역에 큰 의문이 들었다. 음주의 마지막 구의 영어 번역은 “I know that this must have some deeper meaning, I try to explain, but cannot find the words.”다.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나는 이것이 어떤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나 말을 찾을 수가 없다.”다. 필자는 이미 시 앞부분에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는데 더 설명할 말이 뭐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강사는 시의 앞부분은 풍경에 관한 묘사이니까, 그 풍경 묘사에 담긴 의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 고 반문하였다.“欲辨已忘言”(욕변기망언)에서 망언을 `말을 잊어버렸다`고 번역하는 것과 `말을 찾을 수 없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잊어버렸다는 것`은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말하려고 하는 순간 말을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반면에 `말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를 말하고 싶지만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어 못 한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되면 시의 의미는 찾아야 하는 어떤 것이거나 혹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보통 시론(詩論)에서 `음주`의 마지막 구는 시의 궁극적인 경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란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는 것, 진실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그것을 시인과 독자가 이심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마지막 구가 표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아직도 시에서 묘사한 것에 대해서 설명할 말이 남아있다는 영문 번역은 이를테면 `음주`에 대한 완전히 몰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오독이 가능한 것은 강사의 말처럼 앞 구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풍경에 대한 묘사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사를 빼고 다른 학생들은 모두 중국, 일본, 한국, 그리고 베트남 등에서 온 동양인들이었고 `음주`의 마지막 구를 모두 `말을 잊어 버렸다`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 나라들은 모두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도연명의 `음주`를 한 번쯤 접해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미 배운 내용이 기억에 남아 유사한 해석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이에는 사고방식이 달라서라는 해석에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이전까지 필자의 외국 생활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더 많이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이 번 도연명의 `음주`의 영어 번역이나 그에 대한 강사의 반응 내지 해석을 보면서 정말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차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험으로 그런 차이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2015-10-13

젊은이들이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왜 궁금할까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지난 1일 하버드대학교에서 김구재단과 하버드 한국학연구소(Korean Institute) 공동주최로 포럼이 열렸다. 포럼은 전 주한미국대사 3명을 초청하여 이들과 청중이 담화하는 것이었다. 발표자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대사를 지낸 보스워즈씨,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대사를 지낸 스티븐스씨, 그리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대사를 지낸 성 김씨였다. 이 포럼에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필자에게는 꽤 인상 깊게 다가온 대화가 있다. 그것은 `젊은이`들에 대한 것이었다.이들 전 대사들은 반복해서 한국인의 반미의식을 언급했다. 이들에게 한국인의 반미의식은 1980년대에 일어났던 대학생들의 미 대사관 점거 사건들과 연관되어 회상되었다. 이때는 한국 사회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이 가장 활발했다. 그리고 미국은 당시 한국사회의 심각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방조자로서 대학생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이것은 가끔 미국대사관 점거 사건이나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등으로 표현되었다.이런 경험을 통해 이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관점에서 다른 하나는 그 상황을 직접 경험한 개인의 관점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왜 미국을 이토록 미워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포럼 패널 중 한 명이었던 캐시 문은 대학생들의 반미의식을 한국에서 매우 고생한 사건과 연결해서 말하였다. 한국교포 2세인 그녀는 1980년 초에 미국대사관 인턴으로 서울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녀가 서울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서 미국 대사관에 대학생들이 담을 넘어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 대사관 사람들이 며칠 동안 밤을 새며 고생했다고 한다. 스티븐스 전 대사도 1984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과 부산의 미국대사관 영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생의 반미감정을 직접 경험했다고 말했다.자기의 체험담을 말하면서 전 대사들은 왜 한국의 젊은이들은 미국을 미워하는(혹은 했는)지에 대한 미국의 의문을 표시하였다. 그러면서 1970년대 8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은 강한 반미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요즘의 젊은이들도 여전히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현재 한국은 과거와 같이 소위 학생운동이 활발하지 않고, 국내 문제의 원인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일도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이런 고요함 밑에 여전히 반미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의문은 있을 수 있다.젊은이들은 `미래 세대`이다. 이들은 지금 당장은 한국사회나 한미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미래에는 그렇지 않다. 즉, 이들에게 잠재된 생각이나 정치적 경향 등은 미래 한국의 정치와 한미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젊은이들을 보면 미래의 한국 사회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젊은이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고, 또 미국을 미워하는 사람이 없게 만들고 싶은 욕망도 생길 수 있다.대사들의 한국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은 현재 한국의 정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젊은이 쟁탈전`을 필자에게 상기시켰다. 지난 십 수 년 간 논란이 되었던 `역사 바로 세우기` 혹은 `역사교육` 문제 등은 모두 젊은이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이들에 대한 투자는 그들의 가치만큼 크지 않아 보인다. 대사들과의 대화중에서 미국의 취업비자 문제에 대한 유학생들의 질문이 있었다. 취업 비자 할당량이 너무 적고 발행도 너무 까다롭는 것이다. 비슷한 질문들을 한국사회에도 던질 수 있다. 역사교과서를 바꾸는 것보다는 젊은이들에게 직장과 미래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들을 내편으로 만드는 것 보다 실질적인 방안이 아닐까? 하는 질문 말이다.

2015-10-06

제발 고래싸움에 새우등 안 터졌으면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지난 19일 일본 의회는 해외에서 무력행사를 허용하는 `집단자위권`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일본 자위대는 자국의 군사적 방어뿐만 아니라, 주변국 및 우방국이 공격을 받아 일본이 존립을 위협받거나 자국민의 권리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존립위기사태)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외국에서도 군사작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만약 우리나라에 군사적 위기 상황이 발생하고, 이것이 일본의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일본은 우리나라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고 한다. 집단자위권의 법제화는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아베 수상의 발언을 통해서 이런 부분들이 여러 번 암시되었고, 올해 4월 말에 그가 미국을 방문한 것도 이런 문제에 대해 미국의 양해 내지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 아베 총리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태평양 지역의 안정화`에 대해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즉, 집단자위권의 행사는 `태평양 지역의 안정화`라는 명분으로 합리화될 수 있으며, 주된 대상은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이 문제와 관련해서 필자는 일본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몇 번 가질 기회가 있었다. 어제 같은 경우 필자는 연구소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자들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일본에서 온 한 박사 과정생은 아베 정권이 집단자위권 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서 `stupid`즉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한국이나 중국에서 자신이 일본 사람인 것으로 인해서 당했던 냉대를 언급하였다.이 연구소에는 일본에서 온 다른 대학원생도 있는데, 그녀는 아베 정권을 `우익`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일본에는 좌익이나 우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으며, 아베는 자신이 보기에 중도라고 말했다. 그녀는 중국인의 반일 감정이 심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중국 사람들의 일본 사람들에 대한 오해가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처럼 아베 정권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 만들기 정책에 대해서 모든 일본인들이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교도통신의 19일과 20일 여론조사에서 국회 법안 심의가 불충분했다는 응답이 79%에 달했으며, 헌법학자들을 중심으로 집단자위권을 허용하는 법안을 위헌이라고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평화헌법 9조은 일본국은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것을 “영구히 포기”하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은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집단자위권은 이 헌법규정과 명백히 모순되는 하위법안이다.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로 재무장할 수 있게 된 것은 중국의 부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싼 두 나라의 경쟁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표현되고 있다. 중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반감과 그에 대한 일본인의 반발심은 연구소의 대학원생들의 대화에서 나타나듯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이제 일본이 외국과 교전할 수 있는 나라가 됨으로써, 두 나라가 서로에 대한 미움을 무력행사로 표현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센카쿠 열도는 제2의 노구교-중일전쟁의 원인이 된 최초의 무력충돌이 일어난 곳-가 될 가능성이 높다.토요일 저녁 모임에서 필자는 “제1차 중일전쟁(1894-5)처럼 한반도에서 중국과 일본이 싸우는 것 아니야?”라며 걱정하자, 한 중국학자가 “너무 걱정하지마라. 한반도가 아니라 센카쿠 열도나 다른 지역에서 싸울 가능성이 높아”라고 위로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지만,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중일 두 나라가 싸울 때 한반도가 아무 상관없기는 어려울 것 같다. 두려운 일이다.

2015-09-22

역사 서술에는 모범 답안이 있다?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나 해석에서 급진적인 해석도 있을 수 있고, 보수적인 해석도 있을 수 있다. 교과서는 그런 역사적 해석들 중에서 대한민국의 시민들의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을 정리해서 싣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균적 입장은 국민들이 한국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역사적 경험`들을 겪으면서 집단적인 인식이 형성된 것이며, 역사의 진행과 함께 변화해가는 것이다.이것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인정 교과서 편찬 기준과 같이 국가기구의 규율을 받는 것을 통해서 보증된다.그런데 최근의 신문보도에 따르면 교육부에서는 역사교과서를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바꾸겠다는 정책을 입안 중이며, 이것은 이번 달 말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이 때문에 9월 2일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3명과 전국의 역사 교사 2천255명이 공개적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또한 9월 11일에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새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을 만드는 학자와 교사들이 `국정화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 시기가 가까워 오면서 역사를 집필하고 교육하는 주체들의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켜지고 있다.역사 서술과 교육의 주체들인 교수와 교사 등의 공개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집권 여당은 `한 가지 교과서,` 즉 역사에 대한 한 가지 서사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그 이유는, 며칠 전 새누리당 대변인의 말에 따르면, “좌파 성향의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역사교과서의 편향성과 반(反) 대한민국 정서는 더 이상 묵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한마디로, 현행 검인정 국사교과서가 새누리당이 상상하는 `애국자`를 만들어내는 데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발언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 내부에서 형성된 역사에 대한 공통감각 내지 의식을 무시하는 발상과 함께, 모든 국민들을 한 가지 유형의 역사적 인식만 갖게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헤럴드 신문을 통해 “보수가 영원히 정권을 잡는 게 아니다. 반대쪽이 집권하면 분명히 (교과서를) 다시 만들 텐데, 교과서가 이데올로기 세뇌의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없는 것 같다. 이들에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이성호 중앙대 교수가 걱정하는 `반대쪽의 집권`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처럼 국민들이 한 가지 역사의식만을 갖게 만드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새누리당의 영구집권에 대한 병적 강박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즉, `(권력을) 잃어버린 10년`이 또다시 올까봐 두려워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국민들이 어릴 때부터 열심히 세뇌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들을 `애국자`로 만든다는 상투적인 명분으로 포장된다.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1936년 앙드레 지드가 `소련 방문기`(return from the USSR)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아침마다 `프라우다` 신문-소련공산당 기관지-은 그들이 알고, 생각하고, 믿어야 할 일들을 가르친다”고 지적하면서, 소련 주민들은 모두 같은 의견을 갖도록 세뇌 당하며 이는 `최고 권력에 대한 심각한 순응주의`로 귀결된다고 비판하였다.한 개의 역사교과서로 교육하여 모든 국민들을 `단일한 역사의식`을 갖도록 만들겠다는 새누리당의 정책에서 앙드레 지드가 묘사한 어떤 사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이 소름끼치는 유사성의 발견이 필자의 오해일 뿐이라고 누군가 친절하게 해명해 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2015-09-15

교육에서 성공을 위한 표준이 존재하는 걸까?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최근 잡지를 읽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1950년대 미국 공군은 1920년대 디자인 된 표준화된 좌석을 사용하였는데, 이 목적은 비행사들이 비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공군은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2천명의 공군의 몸통 길이와 가슴둘레 등을 쟀는데 한명도 같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조종사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표준화된 좌석에서 전투기를 운전하라고 하였으니,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1950년대 미 공군의 표준 좌석처럼 한국의 학교교육에는 성공을 위한 표준이 존재한다. 한국의 소위 입시 교육에는 성공을 위한 공식이 있어서, 이 공식을 따르지 않으면 아이를 부모들이 원하는 대학에 보낼 수 없다고 많은 부모들은 믿고 있다.어머니들은 이 공식을 따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엄청난 사교육에 내몰리고 대학 입시를 위한 조기 교육에 시달린다. 그리고 아이의 성공 여부에 따라 어머니 사회에서 그녀의 지위도 높아진다.특히 요즘은 소위 SKY 대학을 가기 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경력 관리를 해야 한다고 한다.초등학교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직업을 정해서 거기에 맞춰서 봉사활동이나 특기활동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타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이렇게 아이들의 경력관리를 위해서 가끔 아버지들이 자신이 쓴 논문에 아이의 이름을 공동저자로 올려주기도 한다. 최근 국립암센터의 한 연구자가 자신의 아들을 공동저자로 올린 사례가 그것이다.보스턴에서 우연히 만난 한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입할 할 때까지 한 번도 안 변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이 어머니는 여름방학 동안 딸 둘을 데리고 미국 여행을 온 분이었다. 자신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시달리는 것이 싫고, 학원에서부터 아이들이 서열화 되고 차별 당하는 것도 싫고 해서, 학원 보내는 비용으로 아이들과 여행을 다닌다고 말했다. 자기처럼 엄마들 중에는 한국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수라고 말했다.나는 이곳에서 다양한 유형의 유학생들을 만나는데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유사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한 한 학생은 사교육은 자기가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냥 학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운 것을 자기화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은 결국 혼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학생도 부모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했지만 결국 입시에서 `실패`했다고만 생각한다.또한 학생들의 재능도 다양하다. 어떤 학생은 사람들과 사귀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데 남다른 능력을 보인다.이 학생을 접해본 사람들은 모두 이 학생이 `로비스트`나 `세일즈맨` 등 회사 생활에서 엄청난 재능을 발휘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누구도 이 학생에게 학자로서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반면에 위에서 말한 하버드 박사 신입생은 스스로를 `공인된 오타쿠`라고 말한다. 자기가 하고 있는 공부에 몰두가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사교 생활로부터 거리를 둔다. 이 학생은 공부밖에 할 것이 없어 보이고 스스로도 교수가 되고 싶어 한다.이처럼 학생들에게는 개별적인 재능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 한 가지 기준으로 학생의 재능을 재단할 수 없고, 성공을 예측할 수 없다. 학생의 재능에 맞는 다양한 교육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2015-09-08

고래이야기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오늘은 필자에게 아주 멋지고 특별한 날이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에서 고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미국 `보스턴`에서 말이다. 고래와의 만남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필자는 고래를 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필자가 방문 중인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보스턴 덕-투어를 가는 일에 마음이 설렜을 뿐이다. 미국은 가을 학기가 새 학기이기 때문에, 이때에 맞춰 새로 초대받은 학자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리고 오늘은 새로 온 학자들이 보스턴 시내 관광을 하는 날이었다. 덕-투어는 수륙양용차를 타고 시내를 구경한 뒤 찰스 강을 배처럼 내려가는 것이다.이렇게 오전을 보낸 뒤 한국에서 온 학자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보스턴 부두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보스턴 부두에는 흰색의 요트들과 함께 섬들을 여행하는 소형 크루즈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처음에는 부두를 산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크루즈 선의 하얀 옆구리에 검을 글씨로 크게 고래 관찰(Whale Watch)이라고 써진 것을 본지 얼마 되지 않아 필자는 크루즈선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크루즈 선이 점점 먼 바다로 나가고 있었지만, 1시간 반이 넘도록 고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실망한 한 일행이 “우리 지금 대서양으로 배타고 나온 거죠?”라며 고래를 못 보는 상황을 긍정하려는 발언을 하였다. 안내 방송으로도 오전에는 고래가 있었으나 지금은 먼 바다로 나간 것 같다는 말이 나와 우리의 실망은 더욱 커졌다.그런데 갑자기 앞쪽에 고래가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그 말을 듣자말자 일행들은 여객실에서 갑판으로 뛰어올라왔다. 배의 왼쪽으로 두 마리의 고래가 물위로 등을 둥실 올린 채 숨구멍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고래의 하얀 배가 바닷물에 비쳐 물빛이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배가 근처까지 와서 지켜보는 것에 익숙한 듯 고래 두 마리는 10분이상 물을 뿜으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물속으로 자맥질하며 들어갔고 귀여운 꼬리가 안녕하고 말하듯이 물위에서 잠시 팔락거리다가 사라졌다.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우리는 다시 고래 한 마리를 만났다. 아까 본 고래는 밍크고래였는데, 이번에 만난 고래는 험프백(humpback) 고래였다. 그런데 이 녀석은 좀 장난꾸러기다. 크루즈선의 왼쪽과 오른쪽은 오가면서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기도 하고 등을 보여주기도 하고 하얀 얼룩무늬 꼬리를 흔들며 자맥질을 한다. 고래가 너무 배 가까이에 와서 혹시 부딪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이 녀석도 이렇게 한동안 재롱을 부리다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좀 더 가다보니, 이번에는 고래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나란히 물 위로 나와서 숨을 쉬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가 뒤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이미 세 마리를 본 터라 그렇게 신기하다는 느낌은 없어졌지만, 고래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에 입으로는 경탄이 저절로 나오고 있었다. 고래 무리를 좀 더 보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길이 바쁜 듯 배는 아까만큼 오래 머물지 않고 보스턴을 향해 출발하였다.생명이 있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뭔가 상투적인 느낌이 들어 식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 바다에서 본 고래들은 너무 귀엽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수족관 같은 것에 가둬놓을 수 없는 크고 강하고 아름다운 짐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함께 크루즈 선을 탔던 일행 중 한 명이 SNS로 배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줬다. 처음에는 평범한 미소를 띠고 있던 얼굴들이 고래를 배경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본 것 같은 미소`를 사진 속에서 짓고 있었다.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얼굴이었다. 모두 오늘 고래를 처음 본 까닭이다. 그 속에는 필자의 동그란 얼굴도 끼어있었다.

2015-09-01

초등학생에게 한자교육을 꼭 해야 하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최근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려는 정부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는 작년에 교육부가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 등급별로 적정한 한자 수를 정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 확대를 검토 한다고 한 것과 연결된다. 이 정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한자가 학습효과를 높인다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학업부담과 사교육 증가를 우려한다.1990년 이후 보편화된 한글전용을 무시하는 교육부의 정책은 필자에게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있었던 `한글 간소화 파동`을 떠올리게 하였고, 이 둘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한글간소화` 파동은 1949년 10월 9일 한글날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조선어학회의 한글 표기법(단어의 어근을 밝혀 적는 법)의 어려움을 지적하고, 구 철자법(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어 표기법)으로 개정할 것을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한 것이 발단이 됐다.이후 1953년 4월 정부의 문서와 교과서 등은 구철자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국무총리 훈령으로 시달됐고, 1954년 7월 문교부와 공보처의 공동명의로 표기법 간소화 공동안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한글간소화 방안은 국어학자들과 여론의 반대로 폐기됐다.맞춤법이나 표준어 등은 `언문일치`를 실천하기 위해서 국가가 정한 것으로서 이것은 모두 `국어`라는 제도로 수렴된다. 국어의 토대가 되는 언문일치는 말과 글을 일치시킨다는 뜻으로, 보통 말하듯이 쓰는 것으로 설명된다.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국가의 공문서나 왕과 신하들 사이의 공적인 의사소통은 모두 한문으로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개화기에 언문일치는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쓰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문학작품 등을 통해서 현대적인 한글문장들이 끊임없이 실험, 생산됐다. 동시에 조선어학회에서 한글연구를 통해서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 사정안`을 발표하여 `언문일치`의 기준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한자는 훈독보다는 음독의 형태(예를 들어 飛行機를 `날틀`로 하지 않고 `비행기`로 적는 것)로 한글화되었다.사실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들 중에서 많은 것들이 한자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개화기 이전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고, 개화기 이후 서양의 문명어들이 한자어로 번역돼 우리말로 된 것도 있다.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한자 유래 단어들의 한자들을 정확히 알면 그 뜻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은 문장에서 한자를 시각적으로 인식하지 않아도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은 일본어가 한자 쓰지 않으면 문장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차이가 난다.이와 관련해, 올 3월 말 필자는 시카고 대학에서 열린 소규모 발표회에서 한 일본인 학자가 이광수의 `무정`의 표기법에 대해서 발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학자에 따르면 애초에 이광수는 무정을 `국한문혼용체`로 쓴다고 선전하였으나, 실제로는 국문전용으로 썼다고 한다. 이 학자는 일본어 문장과 한국어 문장을 비교하면서, 일본어 문장은 한자를 가나로 쓰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한자를 써야하지만, 한국어 문장은 한자를 한글로 써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일본어는 같은 소리를 공유하는 한자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한자를 써서 시각적으로 의미 전달을 보충해야 한다.`일본어의 언문일치`를 연구해온 이연숙은 `언문일치` 운동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실현 과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언문일치는 특권 계층이 독점하고 있었던 글을 대중화한 것이며, 모든 국민이 문자를 대등하게 소유하는 것을 의미 한다. 한자 교육 강화의 밑바닥에는 조선 정부가 1894년 공문서를 국문으로 쓴다고 발표함으로써 언문일치를 최초로 제도화한 이래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고자 하는 욕망이 깔려 있다. 문자간소화 파동이나 한자병기 부활 밑에 흐르는 이 공통된 정서를 떠올리면서, 이 정권이 `이승만 재평가`에 집착하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201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