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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에서 도연명의 시 `음주`를 읽다

등록일 2015-10-13 02:01 게재일 2015-10-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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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도연명의 시 중에서 `음주이십수(飮酒二十首)`라는 연작시가 있다. 이중 제5수 `음주`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원시의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마을 안에 엮어 놓은 오두막집, 그래도 시끄러운 수레소리 들리지 않네/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가요? 마음이 멀면 사는 곳도 외진다오/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드니 그윽이 보이는 남산(南山)/산기운이 석양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도 무리지어 돌아가누나/이 가운데 있는 참뜻, 말하려고 하나 이미 말을 잊었도다.”

이 시의 마지만 구는 매우 유명해서 필자는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한시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금요일 이 시를 우연히 다시 접하게 됐다. 그것은 필자가 참석하고 있는 영어 회화 수업에서였다. 강사가 도연명의 `음주이십수` 중 제5수 `음주`의 영어 번역 복사물을 갖고 와서 나눠주었다. 다른 참석자들-대부분이 방문교수거나 박사논문연구생-과 함께 시를 읽고 시 내용에 대해 서로 대화를 했다.

`음주`의 영어 번역의 마지막 줄을 읽었을 때 필자는 이 시의 내용이라기보다 번역에 큰 의문이 들었다. 음주의 마지막 구의 영어 번역은 “I know that this must have some deeper meaning, I try to explain, but cannot find the words.”다.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나는 이것이 어떤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나 말을 찾을 수가 없다.”다. 필자는 이미 시 앞부분에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는데 더 설명할 말이 뭐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강사는 시의 앞부분은 풍경에 관한 묘사이니까, 그 풍경 묘사에 담긴 의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 고 반문하였다.

“欲辨已忘言”(욕변기망언)에서 망언을 `말을 잊어버렸다`고 번역하는 것과 `말을 찾을 수 없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잊어버렸다는 것`은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말하려고 하는 순간 말을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반면에 `말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를 말하고 싶지만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어 못 한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되면 시의 의미는 찾아야 하는 어떤 것이거나 혹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보통 시론(詩論)에서 `음주`의 마지막 구는 시의 궁극적인 경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란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는 것, 진실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그것을 시인과 독자가 이심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마지막 구가 표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아직도 시에서 묘사한 것에 대해서 설명할 말이 남아있다는 영문 번역은 이를테면 `음주`에 대한 완전히 몰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오독이 가능한 것은 강사의 말처럼 앞 구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풍경에 대한 묘사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사를 빼고 다른 학생들은 모두 중국, 일본, 한국, 그리고 베트남 등에서 온 동양인들이었고 `음주`의 마지막 구를 모두 `말을 잊어 버렸다`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 나라들은 모두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도연명의 `음주`를 한 번쯤 접해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미 배운 내용이 기억에 남아 유사한 해석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이에는 사고방식이 달라서라는 해석에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이전까지 필자의 외국 생활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더 많이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이 번 도연명의 `음주`의 영어 번역이나 그에 대한 강사의 반응 내지 해석을 보면서 정말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차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험으로 그런 차이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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