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나 해석에서 급진적인 해석도 있을 수 있고, 보수적인 해석도 있을 수 있다. 교과서는 그런 역사적 해석들 중에서 대한민국의 시민들의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을 정리해서 싣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균적 입장은 국민들이 한국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역사적 경험`들을 겪으면서 집단적인 인식이 형성된 것이며, 역사의 진행과 함께 변화해가는 것이다.
이것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인정 교과서 편찬 기준과 같이 국가기구의 규율을 받는 것을 통해서 보증된다.
그런데 최근의 신문보도에 따르면 교육부에서는 역사교과서를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바꾸겠다는 정책을 입안 중이며, 이것은 이번 달 말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9월 2일 서울대 역사 전공 교수 33명과 전국의 역사 교사 2천255명이 공개적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또한 9월 11일에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새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을 만드는 학자와 교사들이 `국정화 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 시기가 가까워 오면서 역사를 집필하고 교육하는 주체들의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켜지고 있다.
역사 서술과 교육의 주체들인 교수와 교사 등의 공개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집권 여당은 `한 가지 교과서,` 즉 역사에 대한 한 가지 서사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며칠 전 새누리당 대변인의 말에 따르면, “좌파 성향의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역사교과서의 편향성과 반(反) 대한민국 정서는 더 이상 묵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행 검인정 국사교과서가 새누리당이 상상하는 `애국자`를 만들어내는 데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 내부에서 형성된 역사에 대한 공통감각 내지 의식을 무시하는 발상과 함께, 모든 국민들을 한 가지 유형의 역사적 인식만 갖게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헤럴드 신문을 통해 “보수가 영원히 정권을 잡는 게 아니다. 반대쪽이 집권하면 분명히 (교과서를) 다시 만들 텐데, 교과서가 이데올로기 세뇌의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없는 것 같다. 이들에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이성호 중앙대 교수가 걱정하는 `반대쪽의 집권`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민들이 한 가지 역사의식만을 갖게 만드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새누리당의 영구집권에 대한 병적 강박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즉, `(권력을) 잃어버린 10년`이 또다시 올까봐 두려워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국민들이 어릴 때부터 열심히 세뇌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들을 `애국자`로 만든다는 상투적인 명분으로 포장된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1936년 앙드레 지드가 `소련 방문기`(return from the USSR)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아침마다 `프라우다` 신문-소련공산당 기관지-은 그들이 알고, 생각하고, 믿어야 할 일들을 가르친다”고 지적하면서, 소련 주민들은 모두 같은 의견을 갖도록 세뇌 당하며 이는 `최고 권력에 대한 심각한 순응주의`로 귀결된다고 비판하였다.
한 개의 역사교과서로 교육하여 모든 국민들을 `단일한 역사의식`을 갖도록 만들겠다는 새누리당의 정책에서 앙드레 지드가 묘사한 어떤 사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소름끼치는 유사성의 발견이 필자의 오해일 뿐이라고 누군가 친절하게 해명해 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