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잡지를 읽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1950년대 미국 공군은 1920년대 디자인 된 표준화된 좌석을 사용하였는데, 이 목적은 비행사들이 비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공군은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2천명의 공군의 몸통 길이와 가슴둘레 등을 쟀는데 한명도 같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조종사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표준화된 좌석에서 전투기를 운전하라고 하였으니,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1950년대 미 공군의 표준 좌석처럼 한국의 학교교육에는 성공을 위한 표준이 존재한다. 한국의 소위 입시 교육에는 성공을 위한 공식이 있어서, 이 공식을 따르지 않으면 아이를 부모들이 원하는 대학에 보낼 수 없다고 많은 부모들은 믿고 있다.
어머니들은 이 공식을 따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엄청난 사교육에 내몰리고 대학 입시를 위한 조기 교육에 시달린다. 그리고 아이의 성공 여부에 따라 어머니 사회에서 그녀의 지위도 높아진다.
특히 요즘은 소위 SKY 대학을 가기 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경력 관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직업을 정해서 거기에 맞춰서 봉사활동이나 특기활동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타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아이들의 경력관리를 위해서 가끔 아버지들이 자신이 쓴 논문에 아이의 이름을 공동저자로 올려주기도 한다. 최근 국립암센터의 한 연구자가 자신의 아들을 공동저자로 올린 사례가 그것이다.
보스턴에서 우연히 만난 한 어머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입할 할 때까지 한 번도 안 변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이 어머니는 여름방학 동안 딸 둘을 데리고 미국 여행을 온 분이었다. 자신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시달리는 것이 싫고, 학원에서부터 아이들이 서열화 되고 차별 당하는 것도 싫고 해서, 학원 보내는 비용으로 아이들과 여행을 다닌다고 말했다. 자기처럼 엄마들 중에는 한국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수라고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다양한 유형의 유학생들을 만나는데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유사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한 한 학생은 사교육은 자기가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냥 학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운 것을 자기화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은 결국 혼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학생도 부모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했지만 결국 입시에서 `실패`했다고만 생각한다.
또한 학생들의 재능도 다양하다. 어떤 학생은 사람들과 사귀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데 남다른 능력을 보인다.
이 학생을 접해본 사람들은 모두 이 학생이 `로비스트`나 `세일즈맨` 등 회사 생활에서 엄청난 재능을 발휘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누구도 이 학생에게 학자로서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반면에 위에서 말한 하버드 박사 신입생은 스스로를 `공인된 오타쿠`라고 말한다. 자기가 하고 있는 공부에 몰두가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사교 생활로부터 거리를 둔다. 이 학생은 공부밖에 할 것이 없어 보이고 스스로도 교수가 되고 싶어 한다.
이처럼 학생들에게는 개별적인 재능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 한 가지 기준으로 학생의 재능을 재단할 수 없고, 성공을 예측할 수 없다. 학생의 재능에 맞는 다양한 교육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