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다가 보면 한국계가 아닌 한국학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 특히 역사 연구자들의 경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연구를 굉장히 `민족주의`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좀 더 균형잡힌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의 주된 이유중 하나는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일본 제국의 식민지정책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으로만 묘사하고 `식민지적 유산`을 너무 폄하한다는 것이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적 유산`에 대해서 강조하는 학자 중에는 카터 에컬트(Carter Eckert) 교수도 있다. 이 분은 하버드대 `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서 한국역사를 강의하고 있는 분으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조선인 기업인 `경성방직` 연구의 권위자이다. 이 분은 한 논문에서 총력전 기간( 1938~1945년) 동안 전쟁을 위해 조선의 공업화가 가속되었고 조선인들이 공장에서 일한 경험들이 해방후 공업화에 기여했으며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받은 조선 장교들과 그 훈련 경험 등도 식민지적 유산으로서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대표적인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는다. 이 논문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라고 하는 한국책에 수록돼 있어서 한국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소위 `뉴라이트`의 관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서로서 세간에 알려져 있다. 뉴라이트는 일제 식민지 정책을 긍정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적 유산`이 해방이후 한국 사회의 산업적, 정치적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면 뉴라이트적 관점으로 치부된다.
뉴라이트 비판자들은 해방 이후의 한국 역사를 일제에 의해서 단절되거나 왜곡된 근대화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묘사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서술은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적 전개과정-경제발전, 정치적 전개-을 지나치게 `특수화`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 통치를 경험한 나라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편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갖고 있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베네딕트 앤더슨은 박 대통령의 취임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존재하는 정치권력의 승계 방식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이것은 `황해문화` 2015년 여름호에 수록된 `아시아 혹은 아시아라는 정체`라는 대담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아시아에서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 중에 일본이 양성한 청년 장교들이 권력화 양상을 보였으며” 그들이 “암살이나 처형된 뒤 그들의 아내나 딸이 권력을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는 아버지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고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는 대통령 후보였고 마르코스 일당에 의해서 암살된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미망인이었다.
앤더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적어도 많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이 나라를 구한 첫 번째 가장 용감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으며 그런 맥락-나라를 구한 사람들이라고 인식되는 정치가와 그 가족들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이 아시아 전체에 존재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여기서 아시아 민족주의의 형성의 공통된 특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불행히 죽은 지도자들의 부인이나 딸들이 지도자가 된 후 그 지도자에 버금가는 능력과 지도력을 발휘하였느냐는 평가와는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한국의 정치가 `특수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무서울 정도의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직시가 있을 때 좀 더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연구 결과물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카터 에컬트 교수가 자신은 한국의 뉴라이트와는 아무런 관점도 공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무조건 뉴라이트라고 비판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