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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이야기

등록일 2015-09-01 02:01 게재일 2015-09-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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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오늘은 필자에게 아주 멋지고 특별한 날이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에서 고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미국 `보스턴`에서 말이다. 고래와의 만남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필자는 고래를 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필자가 방문 중인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보스턴 덕-투어를 가는 일에 마음이 설렜을 뿐이다. 미국은 가을 학기가 새 학기이기 때문에, 이때에 맞춰 새로 초대받은 학자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리고 오늘은 새로 온 학자들이 보스턴 시내 관광을 하는 날이었다. 덕-투어는 수륙양용차를 타고 시내를 구경한 뒤 찰스 강을 배처럼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오전을 보낸 뒤 한국에서 온 학자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보스턴 부두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보스턴 부두에는 흰색의 요트들과 함께 섬들을 여행하는 소형 크루즈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처음에는 부두를 산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크루즈 선의 하얀 옆구리에 검을 글씨로 크게 고래 관찰(Whale Watch)이라고 써진 것을 본지 얼마 되지 않아 필자는 크루즈선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

크루즈 선이 점점 먼 바다로 나가고 있었지만, 1시간 반이 넘도록 고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실망한 한 일행이 “우리 지금 대서양으로 배타고 나온 거죠?”라며 고래를 못 보는 상황을 긍정하려는 발언을 하였다. 안내 방송으로도 오전에는 고래가 있었으나 지금은 먼 바다로 나간 것 같다는 말이 나와 우리의 실망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 갑자기 앞쪽에 고래가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그 말을 듣자말자 일행들은 여객실에서 갑판으로 뛰어올라왔다. 배의 왼쪽으로 두 마리의 고래가 물위로 등을 둥실 올린 채 숨구멍으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고래의 하얀 배가 바닷물에 비쳐 물빛이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배가 근처까지 와서 지켜보는 것에 익숙한 듯 고래 두 마리는 10분이상 물을 뿜으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물속으로 자맥질하며 들어갔고 귀여운 꼬리가 안녕하고 말하듯이 물위에서 잠시 팔락거리다가 사라졌다.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우리는 다시 고래 한 마리를 만났다. 아까 본 고래는 밍크고래였는데, 이번에 만난 고래는 험프백(humpback) 고래였다. 그런데 이 녀석은 좀 장난꾸러기다. 크루즈선의 왼쪽과 오른쪽은 오가면서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기도 하고 등을 보여주기도 하고 하얀 얼룩무늬 꼬리를 흔들며 자맥질을 한다. 고래가 너무 배 가까이에 와서 혹시 부딪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이 녀석도 이렇게 한동안 재롱을 부리다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좀 더 가다보니, 이번에는 고래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나란히 물 위로 나와서 숨을 쉬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가 뒤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이미 세 마리를 본 터라 그렇게 신기하다는 느낌은 없어졌지만, 고래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에 입으로는 경탄이 저절로 나오고 있었다. 고래 무리를 좀 더 보고 싶었지만 돌아가는 길이 바쁜 듯 배는 아까만큼 오래 머물지 않고 보스턴을 향해 출발하였다.

생명이 있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뭔가 상투적인 느낌이 들어 식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 바다에서 본 고래들은 너무 귀엽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수족관 같은 것에 가둬놓을 수 없는 크고 강하고 아름다운 짐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함께 크루즈 선을 탔던 일행 중 한 명이 SNS로 배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줬다. 처음에는 평범한 미소를 띠고 있던 얼굴들이 고래를 배경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본 것 같은 미소`를 사진 속에서 짓고 있었다.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얼굴이었다. 모두 오늘 고래를 처음 본 까닭이다. 그 속에는 필자의 동그란 얼굴도 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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