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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에게 한자교육을 꼭 해야 하나?

등록일 2015-08-25 02:01 게재일 2015-08-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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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최근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려는 정부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는 작년에 교육부가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고 등급별로 적정한 한자 수를 정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 확대를 검토 한다고 한 것과 연결된다. 이 정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한자가 학습효과를 높인다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학업부담과 사교육 증가를 우려한다.

1990년 이후 보편화된 한글전용을 무시하는 교육부의 정책은 필자에게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있었던 `한글 간소화 파동`을 떠올리게 하였고, 이 둘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한글간소화` 파동은 1949년 10월 9일 한글날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조선어학회의 한글 표기법(단어의 어근을 밝혀 적는 법)의 어려움을 지적하고, 구 철자법(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조선어 표기법)으로 개정할 것을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1953년 4월 정부의 문서와 교과서 등은 구철자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국무총리 훈령으로 시달됐고, 1954년 7월 문교부와 공보처의 공동명의로 표기법 간소화 공동안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한글간소화 방안은 국어학자들과 여론의 반대로 폐기됐다.

맞춤법이나 표준어 등은 `언문일치`를 실천하기 위해서 국가가 정한 것으로서 이것은 모두 `국어`라는 제도로 수렴된다. 국어의 토대가 되는 언문일치는 말과 글을 일치시킨다는 뜻으로, 보통 말하듯이 쓰는 것으로 설명된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국가의 공문서나 왕과 신하들 사이의 공적인 의사소통은 모두 한문으로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개화기에 언문일치는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쓰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문학작품 등을 통해서 현대적인 한글문장들이 끊임없이 실험, 생산됐다. 동시에 조선어학회에서 한글연구를 통해서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 사정안`을 발표하여 `언문일치`의 기준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한자는 훈독보다는 음독의 형태(예를 들어 飛行機를 `날틀`로 하지 않고 `비행기`로 적는 것)로 한글화되었다.

사실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들 중에서 많은 것들이 한자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개화기 이전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고, 개화기 이후 서양의 문명어들이 한자어로 번역돼 우리말로 된 것도 있다.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한자 유래 단어들의 한자들을 정확히 알면 그 뜻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은 문장에서 한자를 시각적으로 인식하지 않아도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은 일본어가 한자 쓰지 않으면 문장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과 차이가 난다.

이와 관련해, 올 3월 말 필자는 시카고 대학에서 열린 소규모 발표회에서 한 일본인 학자가 이광수의 `무정`의 표기법에 대해서 발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학자에 따르면 애초에 이광수는 무정을 `국한문혼용체`로 쓴다고 선전하였으나, 실제로는 국문전용으로 썼다고 한다. 이 학자는 일본어 문장과 한국어 문장을 비교하면서, 일본어 문장은 한자를 가나로 쓰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한자를 써야하지만, 한국어 문장은 한자를 한글로 써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일본어는 같은 소리를 공유하는 한자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한자를 써서 시각적으로 의미 전달을 보충해야 한다.

`일본어의 언문일치`를 연구해온 이연숙은 `언문일치` 운동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실현 과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언문일치는 특권 계층이 독점하고 있었던 글을 대중화한 것이며, 모든 국민이 문자를 대등하게 소유하는 것을 의미 한다. 한자 교육 강화의 밑바닥에는 조선 정부가 1894년 공문서를 국문으로 쓴다고 발표함으로써 언문일치를 최초로 제도화한 이래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고자 하는 욕망이 깔려 있다. 문자간소화 파동이나 한자병기 부활 밑에 흐르는 이 공통된 정서를 떠올리면서, 이 정권이 `이승만 재평가`에 집착하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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