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자유로의 강제`라는 수업을 한 학기 들었다고 쓴 적이 있다. 이 수업은 1898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식민지 정책 혹은 점령 정책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수업의 절반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점령했던 일본, 서독 그리고 한국에 대한 것이다. 이 수업은 `점령`을 고전적인 의미의 제국주의가 아닌 새로운 유형의 제국주의로 규정을 하고, 세 나라에 대한 점령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이 수업에 따르면, 현재의 세계 질서 자체가 새로운 유형의 제국주의이다. 이것은 고전적 제국이 다른 나라의 주권을 뺏고 본국의 행정가를 보내서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유형이다. 새로운 제국주의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로는 대서양헌장, 민족자결주의, 자유무역, 각국의 경제발전과 안전보장 등이다. 이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추구할, 혹은 세계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대서양 헌장`은 1941년 8월 14일 영국의 처칠 총리와 당시 비교전국이었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북대서양에서 5일간의 선상회의 끝에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이것은 이후 `국제연합 공동선언`의 기초가 되었다. 앤드류 고든 교수는 국제연합을 미국형 제국주의의 새로운 경영 방식으로 규정한다. 여기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합쳐져서 미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 질서가 창출되었으며, 그 본질은 제국주의라고 수업은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는 리그(league)형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데, 독립 국가들의 동맹체 형식을 취한다. 이 리그형 제국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국가들이 바로 미군이 점령한 일본, 서독 그리고 한국이다. 일본과 서독은 한 때 미국과 함께 세계 3대 경제대국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1위와 3, 4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세 나라 중 두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라고 부르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수업을 강의한 앤드류 고든 교수는 이것이 바로 미국형 혹은 리그형 제국주의가 창출한 새로운 세계질서라고 주장하였다.
세 점령국 중 일본과 서독은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이 두 국가들은 한 때 미국의 적국이었고 한 때 제국이었고 주권국가이자 민주적인 통치경험이 있고 상대적으로 발전한 자본주의와 산업경제 국가였다. 미국은 이 나라들을 미국을 모델로 한 국가 즉, 미국의 민주주의 질서와 `기독교`와 같은 미국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가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일본과 서독의 탈군사화, 탈-나치화, 시민 사회의 재건, 토지개혁을 포함하는 경제 개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새로운 헌법의 구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남한(South Korea)은 이러한 점령 정책에서 예외적인 경우였으며, 어떤 가치가 남한에서 추구됐는지 불분명하다. 다만 명백한 것은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으며, 이런 이유로 일본의 협력자들이 미국의 협력자로 선택되었다고 고든 교수는 강조하였다. 하지만 점령 이후 남한의 정치, 경제적 변화들은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특히 1960년대부터 남한에서 싹 터온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추구는 한국 사회 자체가 만들어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일본과 서독의 현재 모습은 점령기간 동안 미국이 추구했던 새로운 국가 건설의 결과물이었다. 더불어 미국이 창출한 리그형 제국주의 속에 점령지였던 한국도 당연히 들어가 있다. 하지만 미국에게 한국은 중요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일본이 미국에 대해서 갖는 중요성과 위상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현재의 세계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점령 이후 형성된 미국과 일본의 동맹 관계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미국에게 한국이 어떤 전략적 가치를 갖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