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늘 연구소에 나갔다가 연구소 동료로부터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 필자는 이번 합의가 큰 논란거리임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고, 이번 합의의 문제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합의문 발표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 합의에 반대하는 시위와 항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공감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의 외교문제가 아니라 ,`인권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과거 일본 정부가 한국 여성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범죄` 행위로 보지 않고,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원만한 동맹 관계를 방해하는 외교적 장애물로 취급하였다.
물론, 일본 정부의 합의는 과거 일본 정부의 입장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것이다. 지금까지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모집에 직접 관여했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또한 과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피해 배상 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상징적인 보상금으로 100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지금까지 일본은 조선을 식민 통치한 것으로 인한 법률적인 문제는 1965년 한일협상에서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에, 개인에 대한 배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비하면 우선 10억 엔의 배상비가 일본 정부가 직접 지출하는 것이라는 점이나, 일본 외무상 키시다가 “위안부 문제는, 그 당시의 군 당국이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심각한 상처를 준 문제”였으며, “일본 정부는 그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현한 것 등은 일본 입장에서는 큰 진전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번 배상이 `법률적인 배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위안부 모집이 일본 정부의 정책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위안부로 동원된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가 법률상의 책임을 시인하고, 이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공식적인 배상을 하라는 요구와는 상반된 것이다. 더구나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제공하는 대가로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할 것을 요구한 것은, 이들이 이 문제를 일본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외교적 골칫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반복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국과 일본에 촉구한 것이 이 합의의 배경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문제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동맹국의 단합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원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본에 대한 강경한 태도로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었고 아베 총리는 과거 부정 발언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와 배치되는 양국 정부의 갑작스러운 합의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서 국가 정상의 외교적 기본 노선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에는 총 238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중에서 46명만 생존해 있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의 당사자는 이 할머니들과 한국 정부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서 한국 정부는 당사자와 어떤 의논도 없이 일본 정부와 합의를 하였다. 이는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인권 문제, 정의의 문제가 아닌 외교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정의는 거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개인은 국가보다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는 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비극은 언제 어디에서든 반복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양심 있는 사람들이 이번 합의에 대해 비통해 하고 분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