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초에 중간고사 성적 처리가 끝났고 중간고사 성적 공시가 그 주 화요일 날 자정에 있었다. 그 후 수요일 오전에 수업을 들어가니 애들이 모두 기운이 없이 축 처져 있었다. 필자도 그 전날까지 성적 처리 등으로 수면 부족 상태여서 학생들의 상태를 예민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중간고사 결과 때문에 힘이 빠진 거냐고 지나가면서 묻는 것으로 끝냈다. 하지만 학생들의 우울은 이번 주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문과 계열의 학생들에게 이런 증세가 심했다.
대학 신입생들은 대부분 일 학년 일 학기 중간고사를 치기 전까지는 이 번에 잘해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을 갖고 있다. 좋은 성적을 얻고, 학점 관리를 잘 하고, 그래서 높은 평점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고 등의 계획을 마음속으로 짜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고사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으면 왠지 자기가 세운 계획이 시작부터 잘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을 학생들은 갖는다. 그러다보면 의기소침해지고 금방 좌절 모드로 들어간다.
우울해하고, 기운 없어 하는 학생들에게 “중간고사 성적 때문에 힘 빠져 하느냐”고 필자가 물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아주 작은 소리로 “네”하고 대답한다. 아이들의 기분을 대략 짐작하는 필자는 “너무 그렇게 실망하지 말아요, 이번 중간고사는 전체 시험의 십육 분의 일밖에 안돼요”라고 말해줬다. 또 이 과목에서 중간고사의 비중은 20%이므로, 전체로 따지면 십육 분의 일 곱하기 오 분의 일의 비중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도 더불어 강조했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분명 학생들 사이에 상대적인 능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거기에 노력까지 더해지면 분명 성적 차이가 생겨날 것은 분명하다. 현재의 성적 평가 시스템에 따르면 모두 1등을 줄 수는 없다. 1등이 되지 못한 것에 실망한 학생들은 곧 자포자기해서 대학교 수업에 열의가 없어진다.
의기소침한 필자는 학생들에게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고, 좀 더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기니까 작은 실패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런 격려는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 때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8~9% 대의 경제 성장의 끝자락이라 대학을 졸업하면 어쨌든 일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2% 대의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교 진학률도 70% 가까이 된다. 대학 졸업장이 곧 취업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위해 포기하지 말라는지 말하는 사람도 애매하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예전처럼 취업준비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4학년이 돼서 필자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과 대화해보면 희망은 대기업인데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장래 희망의 경우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도 강하다. 전공을 불문하고 `스포츠 에이전시`가 되고 싶다는 남학생이 많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아니면 경제학이나 경영학과의 복수전공을 한다. 상대적으로 문과의 다른 전공에 비해서 취업할 수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공과대학이나 의과대학처럼 `전문성`과 `취업`이 보장된 과의 경우 학생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는 좀 더 긍정적이다. 이들은 중간고사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의과대학의 경우 예과 때의 학점이 졸업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공대생의 경우는 어떻게든 취업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인문, 사회계열 학생들과 확실히 비교된다.
더구나 최근 교육과학부의 `프라임 사업`의 경우는 이런 대학 분위기를 더욱 조장하고 있다. 문과계열 특히 인문학은 취업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학문으로 낙인찍고 취업이 되고 국가 경쟁력에 보탬이 되는 공과대학을 육성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인문, 사회 계열을 지원한 학생들의 우울함은 더욱 늘어갈 수밖에 없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힘내라고도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참 답답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