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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

등록일 2015-02-24 02:01 게재일 2015-02-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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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2001년 8월이니까, 지금부터 약 13년 전에 미국을 간 적이 있었다. 미국은 신용 사회라는 말을 그 전부터 들었지만, 그곳에 가니 그 말을 정말 실감할 수 있었다. 1달러 이하도 모두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했다.

그 후 한국도 신용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투명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신용카드의 사용이 장려되었고, 지금은 동네의 소형 마트에서도 천원 이하의 물건을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되었다. 신용카드 한 장이면 버스나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 이용도 자유롭다.

이처럼 신용카드 사용해 익숙해 있던 나는 재작년 여름 일본 방문에서 큰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였다. 한국에서 신용 카드 사용에 익숙하다 보니, 그리고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니 당연히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나는 엔화를 많이 환전해 가지 않았다. 한 달 숙박비 외에 약간의 경비를 엔화로 준비해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방문한 센다이(仙台)에서는 신용카드를 받는 상점이 거의 없으며, 모든 것을 현금으로 사야만 한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상점이나 식당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고, 나도 신용카드로 물건을 한 번도 사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얼마 안 가 가져간 돈이 거의 떨어졌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또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곳 은행의 ATM기에서는 외국카드로 현금인출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진국 일본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호언하였고, 우체국 ATM기는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니까 한국 카드로 현금인출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우체국 ATM기로 무사히 엔화를 인출하였고, 그 이야기를 해주자 다들 금시초문인 눈치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본에 있는 동안, 모든 것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 그곳 대학의 한 유학생은 대학 성적 처리도 교수가 성적표를 손으로 직접 써서 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의 행정 직원들도 수기 성적표를 일일이 직접 처리하기 때문에 방학 내내 성적처리에 매달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학생은 한국에서는 콘서트 예매도 모두 온라인으로 하지만, 일본에서는 우편으로 예매를 하며 표도 우편으로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 예를 들면 노인을 배려해서라고 한다.

일본이 현금 사용과 사람에 의한 업무 처리를 고수하는 모습은 선진국 일본의 이미지와는 너무 상반되었다. 나는 은근히 일본의 미래가 걱정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처럼 느리고 불편한 일처리가 일자리 수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일본의 경우 대학졸업자의 64%, 그리고 대졸 취업희망자의 95%가 취업했다고 하니, 우리나라보다 취업률이 높은 편이다.

인터넷 상거래, 온라인 뱅킹, 신용카드의 광범위한 사용, 업무의 전산화 등 우리는 편리하고 빠른 속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본에서 내가 느낀 불편함과 답답함과 비교할 때 매우 장점이 큰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빠름과 편리함으로 인해 사회가 감당해야 할 손해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산 시스템이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는 것 등으로 인해서 일자리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을 수도 있다. 일자리가 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부의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지난 2월 4일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는 “한국은 소득불평등이 점점 커지면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며 “재분배 정책으로 이들을 재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득 재분배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몰두하고 있는 `속도전`을 조금 늦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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