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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8·2 부동산 대책 성공할 수 있을까?

▲ 배개화 단국대 교수지난 8월 2일 정부에서 새로운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집값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서울 25개구 전체와 과천시, 세종시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강남, 서초, 송파 등 11개구와 세종시는 투기지역으로 분류했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할 때 대출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10%씩 낮아지고, 양도소득세도 50~60%를 내야한다. 과연 이 정책으로 한국의 집값이 안정될 수 있을까? 일단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천안 지역은 대출 규제 지구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새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다들 관망하는 분위기이다. 천안은 최근 건설 중인 신도시 한 곳 외에 다른 분양 지구는 미분양이 많고, 기존 집들은 다 조금씩 하락하는 상황이라 어찌 보면 과열과는 거리가 멀다.하지만 이 신도시의 경우를 보면 분양권 거래를 통한 차액을 노리는 다주택자들이 있고 이 사람들이 집값을 올리는 주범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신도시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프리미엄 상승을 부추기는 아파트 단지가 몇 개 있는데, 이 단지들의 비싼 분양가로 인해서 다수의 분양권은 소위 투자자에게 넘어갔다. 이들 투자자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아파트의 가치를 매일 선전하며 세종시 아파트처럼 프리미엄이 1억 이상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이 천안에 그런 집값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면 집값 올라가면 다들 좋은 거 아니냐고 반박한다.필자는 8·2 대책 덕분에 세종시처럼 천안의 집값이 올라가야 하며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왜냐하면 8·2 대책으로 세종시의 입주 예정 아파트의 프리미엄이 하루 사이에 5천만 원이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주변 도시의 집값 안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8월 7일자 한 경제신문의 기사를 보면 서울의 투기 세력의 목표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된다. 서울에 대규모 공원이 조성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여 이곳 아파트 분양가를 평당 1억 이상으로 만들고 덩달아 강남 지역의 아파트의 평단가도 평균 1억 원대로 만드는 것이다.이 투기세력은 서울 집값도 뉴욕의 맨해튼 가격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인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뉴욕의 맨해튼은 센트럴 파크라는 대규모 공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서울은 그런 지역이 없어서 뉴욕 수준의 집값이 나오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공원 조성과 유지를 위해서 지역주민들이 상당한 비용을 분담하고 있다고도 말했다.서울에서 대규모 공원이 조성 가능한 곳은 예전에 미군부대가 있었던 지역으로 예전에 필자가 모 은행 부동산 전문가의 강의를 들었을 때 강력하게 추천받았던 곳이다. 하지만 소위 투기 세력들은 얼마 전까지 재건축 불패를 주장하면서, 정부가 공원을 조성케 하고 운영도 세금으로 하게 하면서 집값 상승의 이익은 자기들이 독식하겠다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중이었다.8·2 대책으로 인해서 며칠 사이에 서울의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에서 3억이 내린 가격으로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만약 정부가 집값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면 서울의 투자세력들은 서울 강남 아파트 평단가 1억 이상을 목표로 자신들의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갔을 것이다. 지금도 이 계획은 잠시 유예되었지 포기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지금 일부 언론에서는 8·2 부동산 대책이 전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의 재탕이라며 그 때처럼 실패하기를 바라는 눈치를 숨기지 않고 있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도 상처를 입고, 지지율 하락과 함께 다른 정책 추진에도 힘이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필자는 이번 정책이 꼭 성공해서 다수에게 미래가 있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2017-08-08

특목고를 어찌할꼬

▲ 배개화 단국대 교수지난주 필자는 대학 동창의 생일 축하를 위해서 서울에 갔다. 목동에서 친구들과 만나 함께 삼계탕을 먹고, 카페에 가서 커피와 후식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아이들 교육 문제로 흘러갔다. 한 친구의 아들은 작년에 고3이었고 대학입시에 성공해 무사히 대학에 들어갔다. 다른 친구는 딸이 올해 고3이다. 딸이 고3인 친구는 아이의 입시 문제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이가 무용으로 대학에 가려고 하는데, 친구는 그 뒷바라지에 많이 지친 듯이 보였다.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그래도 너의 딸은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니까 좋지 않아? 요새는 자기가 뭘하고 싶은지 모르는 애들도 많은데….`라고 말하니까, 친구가 자기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입시 준비가 힘들어서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재수를 하면 무용이 아닌 일반 전공으로 가야하는 상황이라고 걱정한다.이 친구는 목동에 자녀가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인가 이사를 왔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친구는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교육열이 높은 목동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바닥권 성적을 갖게 됐다. 그래도 특별히 과외나 학원을 보내지도 않았고, 학습지도 하지 않았다.친구가 말하길, 과외나 학원을 보내서 공부를 시켜도 너무 늦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동의 사교육 수준은 상상 이상이어서,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중학교 교육과정을,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학원에서 미리 다 배운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학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수학문제에 고등학교 문제가 나온다고 한다.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정말 처음 들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아니 중학교면 중학교 교육 과정에 나오는 걸 문제로 내야지 고등학교 문제를 내면 어떻게 해?`라고 말하자, 친구는 `중학교 문제를 내면 변별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여기에 덧붙여 `이게 다 특목고 입시 때문`이라고 말한다. 목동의 많은 엄마들이 자녀들을 외국어 고등학교(외고)와 같은 특목고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자녀에게 사교육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최근 문재인 정부에서는 외고와 같은 특수목적학교나 자율형 사립학교를 점차적으로 없애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뉴스를 접했을 때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특목고나 자사고를 없애는 것이 한국 사회에 더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려고 한다.초등학교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되는 사교육이나 선수학습 그리고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치러지는 시험 등이 모두 특목고 입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특목고 졸업자가 소위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기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올해 6월 30일 종로학원 하늘교육에 따르면 특목고 및 영재학교 졸업자의 입학률이 SKY 대학이 가장 높다고 하며, 셋 중에서 서울대가 가장 높은데, 총 입학자의 26.7%가 특목고 출신 입학자이다.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중학교 수학 기말시험에서 고등학교 문제를 풀던 이 특목고 출신 학생들의 실력이 일반고 학생들보다 더 뛰어나냐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 따르면 작년 입학생의 74.4%가 특목고 출신인 KAIST 학생들의 경우 1, 2학년에는 특목고 학생의 수학성적이 높지만 3학년에 올라가면서는 일반고 학생의 성적이 더 높았다고 한다.이런 것을 보면 특목고나 영재학교가 진짜 인재와 영재를 키우는 학교인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대학 입시 수단으로 전락하여 이 목적을 위해서 정상적인 교육 과정마저 왜곡하고 있다면 이것은 없어지는 편이 사회 전체에 더 이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7-08-01

최저 임금 상승은 필요할까?

▲ 배개화 단국대 교수일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너무 더워 집 근처 카페로 갔다. 거기서 책을 읽다가 잠시 쉴 겸 해서 페이스 북을 열어보았다. 페이스 북 친구 중의 한 명이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한 자신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가 실시간 검색 2위를 하고 있다고 링크를 걸어놓았다. 필자는 내용이 궁금해서 그 기사의 링크를 따라가 보았다. 이 기사는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천60원이 오른 시간당 7천530원으로 인상됐지만 노동계와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 모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자칫 `을`들 간의 전쟁이 벌어질까 우려된다.”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이런 기사 내용처럼 요새 언론 매체에서는 시간당 임금이 올라가면 편의점, 치킨 가게나 피자 가게 등의 점포주들의 수입이 준다는 내용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최근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내년도 최저임금 시간당 7천530원을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를 기준으로 월 급여를 계산하면 157만3천770원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시급이 상승하면 아르바이트 직원의 한 달 수입이 9급 공무원의 초봉보다 높아진다고 보도하고 있다. JTBC의 8시 뉴스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 공무원은 특별 수당 등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르바이트 직원의 수입보다는 많다고 보도하기도 했다.이런 보도를 보면서 필자는 “아~ 저런 비교도 하는 언론사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 직원의 한 달 수입이 9급 공무원보다 많아지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바 직원과 9급 공무원은 비교할 수 없는 근로 및 고용 조건 하에 있다. 알바 직원은 시간당 급료를 받는 비정규직이다. 4대 보험도 되지 않고 고용 안정성도 없으며 한 직장에서 1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호봉이나 직급의 상승도 없다. 반면에 9급 공무원은 20년 일하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고 호봉과 직급도 올라간다.현재 우리 사회에서 7, 9급 공무원은 안정된 직장의 대표 주자로 인식되며 많은 대학생들이 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청년층 취업준비생은 71만 명이고 그 중 37%가 7,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청년들의 54.3%가 첫 직장에서 150만원 미만 임금을 받고 있는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2016 비정규직 노동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2016년 8월 644만4천명이다.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2.8%이며, 이들의 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53.5%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비정규직에는 알바 직원과 같이 시간제 급여를 받는 직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설령 시급을 올린다고 해도 이들은 대한민국 근로자 평균 소비지출 250만원을 벌지 못하는 상황임은 분명하다.필자는 알바 직원일수록 시간당 급료가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보다는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고용안정성도 없고 4대 보험에도 들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고용주는 시간당 급료로 보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또한, 시간제 급여를 받는 근로자에는 청년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비율도 상당하다. 따라서 시급 인상을 특정 세대나 정치적 지지층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으로 바라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언론에서는 치킨집 사장이나 편의점 사장 등을 내세워서 `알바 고용하지 않고 가족끼리 운영하겠다,` `시간당 급료가 올라가는 대신 일자리가 준다`는 식으로 보도하면서 `을`의 전쟁을 부추기는 태도는 지양했으면 한다. 오히려 영세 자영업자나 영세 기업에게 손해가 나는 부분을 어떻게 정부가 지원하고 보전해줄 것인가, 그리고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더 논의해야 한다.

2017-07-25

욜로 문화, 이건 뭐지?

▲ 배개화 단국대 교수최근 지상파나 케이블 TV 채널의 오락프로그램을 통해서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생활이 소개되고 높은 시청률을 얻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주로 즐기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계기로 “욜로 문화”라는 용어가 언론 매체를 통해서 대중화되고 있다. 욜로 문화를 어떻게 봐야만 하는 걸까? 욜로(YOLO)는 “당신은 오직 한 번만 산다”(You Only Live Once)에서 해당 영어 단어의 앞글자만 딴 것이다. 오직 한 번만 사는 인생이니까, 지금을 즐기면서 살자는 메시지가 이 안에 담겨 있다. 현재 욜로 문화는 20, 30대가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오늘에 집중하려는 태도가 이 문화에 반영되어 있다.미디어가 묘사하는 욜로족의 삶은 취업 준비를 하는 대신에 1년간 세계여행을 떠나고,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에 돈을 아끼지 않고 소비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미디어가 묘사하는 욜로족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내 집 마련 혹은 노후 준비보다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 생활이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자기 계발 등에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하지만, 욜로 문화에 비판적인 비평가들은 욜로 문화는 현재의 저성장과 낮은 취업률로 20, 30대들이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운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20, 30대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없으니 현재를 즐기자는 쪽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사실 욜로 문화는 작년과 재작년에 미디어에서 유행했던 미니멀 라이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집과 같이 비싼 것을 사기 위해서 근검절약하는 대신에 여행이나 취미 같이 재미있지만 상대적으로 값싼 것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과거 필자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칼럼에서 욜로 문화에 비판적인 비평가들과 비슷한 논조로 말했다.20, 30대에게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남녀 상관없이 취업과 결혼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안정된 삶이란 가족을 부양할 만한 수입이 생기는 직장에 취업을 하고,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교육하고 등과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포함한다. 욜로족들은 이 중 많은 것을 생략하고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적당한 파트너와 함께 즐기면서 살겠다는 것이다.사회의 재생산이라는 면에서 욜로 문화의 대중화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취업, 결혼, 가정 생활이라는 재생산의 토대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하는 용어가 유행했던 것처럼 이미 우리 사회 자체가 재생산 기능을 많이 상실하고 있다. 욜로 문화는 이처럼 재생산 기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사회에 어떻든 적응하려는 젊은 세대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필자의 부모 세대만 해도 인생의 성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서,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패자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의 시선에서 보면 20, 30대의 다수는 실패 대기자들쯤 된다. 그렇다고 20, 30대들이 “나는 이미 글렀으니까” 하고 페시미즘에 젖어서 우울해 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욜로 문화는 20, 30대들이 우울해 보일 수도 있는 자신의 현실을 최대한 긍정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기 인생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좀 더 부각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욜로 문화로 인해서 젊은 세대들이 좀 더 즐거워질 수 있다면, 사회가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의 총량이 주는 것이므로 사회적 측면에서도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단순히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소비문화로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2017-07-18

문화라는 것

▲ 배개화 단국대 교수2주 전 학술대회가 끝난 뒤, 필자는 함께 발표한 친구들과 인사동에 갔다. 저녁 식사를 위해서인데, 워낙에 필자가 돌아다니는 것을 잘 못하는 터라 친구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인사동을 방문하였다. 인사동은 이제외국인을 위한 관광명소라고나 할까? 그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친구들은 모두 감격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인사동은 옛날풍의 가게들도 많고, 상품들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소품들이 많았다. 그래서 인사동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소위 문화상품이라는 것은 상품 그 자체로는 부족하고 거기에 스토리가 덧붙여져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소비자들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스토리를 소비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이런 대표적인 예로는 이탈리아 출신 화가 모딜리아니를 들 수 있다. 모딜리아니는 32세의 짧은 나이에 요절한 화가로 그는 짧은 화가 생활 내내 여인의 초상화만 그렸다. 그리고 그의 모델은 주로 아내였다. 그는 1920년 초 결핵성 늑막염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아내도 정신착란에 빠져 자살하였다. 그는 생전에는 자신의 그림을 많이 팔지 못해 늘 가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사후에 그의 그림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높은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중요한 이유는 그와 아내의 슬픈 죽음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인사동에서 이런 스토리가 있는 공간을 찾으라면 `귀천`이라는 카페이다.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시이자, 교과서에도 실린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죽음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이라고 노래했지만, 그의 삶은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귀천`이라는 카페를 열고 생계를 책임졌다. 지금은 그도 그의 아내도 모두 귀천하고 아내의 조카가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인사동의 식당에서 한식 정식을 먹고 난 뒤 우리 일행은 차를 마시러 나왔다. 일요일이고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 카페가 문을 닫았는데 마침 귀천 카페가 문을 열고 있었다. 천상병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필자는 이 카페로 가자고 제안했다. 모두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은 후 필자는 천상병이라는 시인의 아내가 운영했던 카페이고 카페의 이름도 시의 제목을 딴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이때까지만 해도 `흠 그렇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던 친구들은, 필자가 그 집에 걸려있는 액자 속 시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주자 너무 좋아한다.`행복`이라는 이 시는 “나는 세계에서/제일 행복한 사나이다//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생활에 걱정이 없고” 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긴 말 필요 없이 이 몇 소절만으로 친구들은 다들 깔깔 웃으면서 정말 행복한 사나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이후 일본친구의 페이스북을 보니 그녀는 귀천 카페의 전경과 그 안에서 함께 찍은 우리의 사진, 그리고 마셨던 대추차, 쌍화차의 사진 등을 긴 설명과 함께 게시하여 놓았다. 그 게시물은 내가 이런 한국음식 먹었다라고 자랑하는 수준 이상으로 한국을 안 것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카페에 들른 것이 기대 이상으로 친구에게 좋은 인상을 줬던 것 같다.필자는 여행을 갈 때면 이야기가 있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알게 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도 인사동은 한국 전통 음식이나 물건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이상으로 한 시인의 아내의 카페가 있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기억과 이야기를 공유하게 될 때 비록 다른 나라의 문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진정으로 알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2017-07-11

사람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 배개화 단국대 교수필자는 지난 주말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왔다. 3월 초에 비행기 표를 샀으니까 꽤 오래 전부터 계획된 여행이다. 5명이 함께 여행을 왔는데 필자 외에 2명은 직장인이라 휴가 신청도 하고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세웠다. 간만의 휴식에 다들 너무 좋아한다. 제주도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예정대로 모두 오긴 했지만, 위기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생 중 한 명이 여행 오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다. 동생에게 직장동료가 연구프로젝트 계획서를 다 써놓고 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은 여행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동생이 리조트에서도 연구 계획서를 쓸 수 있으니까 일단 제주도는 가자고 설득해서 동생은 우리와 함께 제주도에 왔다. 동생은 출발하는 날 아침에도 연구소로 출근해야만 했는데, 이날은 출근하지 않는 날이다. 분명 우리의 여행은 토, 일, 월요일이고 월요일은 휴가를 받았다. 주말은 출근하지 않는 날인데, 왜 동생은 3개월 전부터 계획한 가족 여행을 포기하려고 한 것인지? 그리고 직장 동료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연구계획서를 써놓고 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최근 언론에서는 퇴근 후나 주말에는 SNS로 직장 동료에게 업무 지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것은 업무를 휴식 시간에도 강요하고, 별도의 수당을 주지 않으면서 타인의 노동을 강요하는 행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생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는 여전히 시간 외 업무를 무상으로 강요하고 있다.한국의 노동시간은 2015년 기준 취업자 1인당 연평균 2천113시간이라고 하며 이것은 OECD 평균 노동시간 1천766시간 보다 347시간 많은 것이다. 1일 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으로 이를 나눠보면 한국인은 OECD 평균 노동시간보다 43일이나 더 많이 일한다.이것은 멕시코에 이어서 두 번째라고 한다. 하지만 동생의 경우와 같이 한국인은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해도 초과 근로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까지 생각하면 한국인은 2천113시간보다 더 많이 일을 할 가능성이 높다.반면에 한국인의 노동생산성은 2015년 기준 OECD 평균의 68%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은 노동시간을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휴식 시간이 짧은 만큼 피로가 더 많이 축적된다. 피로가 축적되면 집중력이나 신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현재 국회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여야는 올 3월부터 노동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고, 기본 40시간에 추가노동 12시간으로 하는 법안에 대해서 토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7월 국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달 안으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물론 사람은 일에서 보람이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일이 잘 되면 일하는 사람의 자존감이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일을 하면 사람은 불행하고 비참해진다. 필자만 해도 지난 몇 년 간 강의와 수업 준비 등으로 일주일에 3일 정도를 3~4시간만 자고 보낸 적이 있다. 늘 일에 치여 혼자 연구실에 있었다. 그 때 필자는 매일 신경질에 불평불만이 많았다.필자는 빨리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원한다. 한국의 취업자들이 좀 더 많은 휴식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필자의 경험 상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때는 놀 때이다. 행복하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일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진다. 그럼 일도 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노동시간이 줄면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므로, 사회 전체로 보아 이익일 것임이 분명하다.

2017-07-05

국제학술대회를 다녀와서

▲ 배개화 단국대 교수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고려대학교에서 아시아학으로는 제일 큰 학술대회 중 하나인 `AAS IN ASIA`가 열렸다. 원래는 미국의 도시에서 해마다 1번씩 하는 것인데, 아시아학이니까 아시아의 도시에서도 열자고 해서, 작년에는 동경, 올해에는 서울에서 열렸다. 필자는 지난 25일 오후에 패널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해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이번 학회에 참석한 것은 물론 국제학술 대회에서 필자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다른 학자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서이다. 필자와 함께 패널을 구성한 사람들은 중국, 일본, 대만, 홍콩 그리고 한국 이렇게 다섯 나라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재작년에 필자가 미국에 연구년을 갔을 때 만났던 분들이다.재작년에 1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교수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맛보지 못한 친밀한 인간관계를 만들었다. 그런 관계를 `친구`라고 한다면,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런 탓인지 서로 헤어질 때 많이 서운했고, 그래서 송별 파티도 정말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이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고 다들 바쁘기 때문에 이-메일도 서로 자주 주고 받지 못했다.이런 우리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국제학술대회이다. 외국에서 열리고 보통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을 이 기회에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학회가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에 주로 지하철로 이동하는 친구들을 가이드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뻤던 이틀이었다.24일 저녁에는 필자가 연구년을 보냈던 하버드-엔칭 연구소의 리셉션이 있었다. 처음 필자는 이번 학술대회 발표자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자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번 모임은 공식적인 연구소의 `동문모임`(alumni meeting)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것이라 주로 한국사람들이 많았지만, 국제학술 대회에 참석한 다른 나라 사람들도 꽤 많이 왔다. 덕분에 귀국한 뒤로는 서로 바빠서 만난 기화가 없었던 한국 교수들도 만날 수 있었다.물론, 리셉션에서 하버드-엔칭 연구소의 스텝들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스텝 중 우리들과 친하게 지냈던 한 여자 스텝은 필자에게 언제 또 보스턴을 방문할 지 물어본다. 그 말에 필자를 다시 만나고 싶었던 정이 느껴져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서 곧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이 이야기를 같이 발표한 친구들에게 하니까, 오는 2019년 AAS의 국제학술대회가 보스턴에서 열리니까, 곧 만날 수 있다고 한 친구가 대답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두 그 때 다시 패널로 참석하기로 약속했다.어느 정도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친해지기 매우 어렵다. 리셉션 장 같은 데서 만나서 말을 걸고 싶어도 직접 말을 건네기가 어렵다. 누군가 소개가 있어야 대화가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한 번 만들어진 관계들은 소중히 여겨야 하고 잘 관리해야 한다. 외교도 이런 것이 아닐까?언론에서 가끔 `휴민트`(휴먼네트워크, 결국은 인간관계라는 말이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버드-엔칭 연구소가 AAS의 국제학술대회를 따라다니면서 동문모임을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사람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이 국제 관계든 인간관계든 가장 중요한 일이다. 또한 이런 관계를 이미 갖고 있는 사람도 외교 자산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2017-06-27

아랫사람이 있어야 윗사람도 있다?

▲ 배개화 단국대 교수필자는 요즘 만주국 시대에 창작된 문학 작품에 대한 자료를 읽고 있다. 만주국은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했던 국가로서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 즉 만주 지역에 세운 소위 위성 국가이다. 관련 자료를 보다가 사회계층의 형성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을 보게 되었다. 만주국은 오족협화와 왕도정치를 표방하면서 시작되었다. 오족협화는 일본, 조선, 만주, 몽고, 한족 등 오족이 서로 협력하면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만주국 내에서 이 다섯 민족의 지위는 서로 평등한 것으로 상상되었다.하지만, 오족협화의 건국이념과는 달리 실제로는 민족적인 차별이 존재했다. 일본인이 가장 우위에 있었으며, 조선인이 일본인 다음으로 다른 민족들에 비해서 우위에 있었다. 이것은 각 민족에게 주어지는 봉급과 식량배급 등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일본인이 100원을 받을 때, 조선인은 40원대 그리고 만·몽족은 20원대의 봉급을 받았고, 식량배급에서도 일본인은 백미, 조선인은 백미 반, 수수 반, 그리고 중국인은 수수만을 받았다.야마무로 신이치는 `키메라:만주국의 초상`이라는 책에서 만주국 건국 이후 대만에서 피지배자였던 사람들이 만주국에서 지배자의 위치로 옮겨간다고 주장한다. 대만에서는 낮은 월급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주인과 똑같이 중국어를 쓴다는 이유 때문에 관동주나 만주국에서 아주 높은 월급을 받게 된다. 높은 월급을 받게 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신분상승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인이라는 아랫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윗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만주국에서 대만인과 유사한 상황이 조선인에게도 발생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은 피지배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만주에서는 일본인 다음으로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인이 일본인에 비해 중국에 대한 이해가 높고, 일본의 정신을 연마 정진하여 일본인을 능가하는 인재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일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조선인을 일본과 중국 민족연합의 중개자로 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필요 때문에 조선인 역시 만주국 사회에서 다른 중국 민족들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자신들 역시 차별받았지만 더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에 있는 사람, 적극적일 경우 지배층의 말단에 위치할 수 있었다.아랫사람을 만듦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필자는 아직도 건설 중인 신도시의 LH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런데 입주자 커뮤니티의 온라인 게시판에 `민영아파트 엄마들이 LH 아파트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의 아이와 자기 아이를 같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고 성토하는 글이 올라온다.신도시의 민간아파트와 LH 아파트의 분양가 차이는 평당 100만원 이하이다. 이삼천만원에 소위 신분이 낮은 사람이 되어 신분 높은 사람들로부터 소위 물을 흐리는 상종하기 싫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이처럼 아랫사람을 만들어서 윗사람이 되는 전략은 소위 취업 시장에서도 늘 일어나는 일이다. 199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를 명분으로 생겨난 파견 근무나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방식에 다른 근로자들이 쉽게 타협하고 안주하는 것, 오히려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에 대해서 우월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는 아랫사람을 만듦으로써 윗사람이 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자기보다 더 적은 봉급을 받고 복지혜택이 적은 것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건강성을 해치는 데도 문제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결국은 자신의 삶마저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성찰과 반성 없이 말이다.

2017-06-21

아파트 주차난

▲ 배개화 단국대 교수필자는 작년 말에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였다. 요즘 신축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대세이다. 그런데 필자의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을 1층으로 만들어서 세대 당 주차 대수가 1.18대이다. 요새는 2대 이상의 차를 굴리는 세대가 많기 때문에, 처음 분양할 때부터 입주예정자들은 주차문제로 걱정이 많았다. 아니다 다를까, 몇 달 전부터 온라인에 있는 입주민 커뮤니티가 매일 주차 문제로 시끄럽다. 커뮤니티의 여러 논란들을 보면서 한국사회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입주민 커뮤니티에서 불법 주차로 지적당하는 차량들을 보면 외제 차량이 많다. 아우디, 벤츠, BMW 등이 주로 게시판에 올라온다. 오늘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에는 아우디 차량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바로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이 차는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차와 정면충돌하기 좋은 위치에 놓여있었다. 이밖에도 차주가 차를 2개의 주차 칸에 걸쳐서 놓은 경우도 많고, 장애인 주차 칸에 주차하는 경우도 많다.이렇게 주차하는 이유를 필자는 선배교수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한 번은 그가 제자와 점심을 먹으러 주차장으로 나오니, 제자가 `마이바흐`라는 차를 2개의 주차 칸에 걸쳐서 주차해놓았다고 한다. 제자는 식당에 가서도 자기는 벌금을 물더라도 장애인 칸에 주차를 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바이마흐 주인이 그러는 이유는 다른 차들이 자기 차를 긁게 해서 괜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비싼 내 차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로가 약속한 규칙을 어겨도 된다는 이런 생각은 정말 무섭다. 소위 갑질이라는 것도 물질적인 능력 등을 토대로 모두 자기를 높게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타인보다 높은 사람이니까 뭐든 해도 괜찮고, 그깟 규칙이나 예의 따위 어겨서 문제가 되면 돈으로 벌충하면 된다는 생각에 이들은 태연하게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우리 아파트의 주차난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환기시킨다. 입주민 커뮤니티에 사고를 유발하는 곳에 주차한 아우디를 성토하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애초에 주차공간이 많았다면 이런 불법 주차를 하지 않았겠죠.` 그렇다! 애초에 건축비가 좀 더 들더라도 현실을 반영해서 주차장을 2층으로 건축했다면 이런 주차대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분양회사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 주차대란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주차장을 지하1층으로 지었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다른 신축아파트에는 없는 지상주차장까지 조그마하게 만들어놓다.우리 아파트의 주차난을 보면서 “아담이 죄를 짓는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죄를 짓게 하는 세상이 있다”는 그레마스의 말이 생각났다. 주차난의 원인은 주차난을 예상하면서도 건축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세대 당 1대 정도만 주차 가능하게 주차장을 건축한 것이다. 아파트가 건설 중일 때부터 입주민들은 주차대란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래서 여러 가지 방안들을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논의하곤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타인을 배려하겠지만, 아우디 소유자처럼 자신이 너무 소중해서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법주차를 하는 것이다.우리 아파트의 주차난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와 그 해결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장 최선책은 사회적 비용이 들더라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원천봉쇄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차선책은 문제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빨리 찾고 서로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규칙을 어겼을 때는 누구든 예외 없이 적절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의 주차난을 보면, 불법을 유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2017-06-13

대통령 선거 끝나니 오르는 부동산 가격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지난 주 필자가 소속된 대학의 여교수협의회 모임이 있었다. 반년에 한 번씩 여교수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특정 주제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서 가벼운 식사를 같이 한다. 이번에는 부동산 동향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강연자는 한 시중은행의 수석부동산전문위원으로 단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부동산 강의도 하시는 분이다. 강연을 들으면서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점점 오른다는 언론보도가 떠올랐다.강연자는 `2017년 하반기 부동산 시장전망과 이슈 분석`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서울의 부동산은 오르는 시점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2년 전 서울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쳤고, 이제는 올라가는 국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작년에 자신이 한 투자자에게 압구정동에 있는 34평 아파트를 10억에 사기를 권유했고, 그 아파트 가격이 지금은 17억쯤 한다고 말했다.필자는 2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이 7억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의 연봉이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따로 대학과 연봉 협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는 연말정산서에 적혀있는 총수입을 연봉으로 생각하고 있다. 1년에 2~3만원씩 본봉이 올라서 2~300만원씩 봉급이 오른다. 거기에 연구비 등이 더해져서 소위 연봉이 되는데, 최근 대학교에서 연구비를 줄이고 있어서 필자의 연봉은 몇 년 전보다 적다. 필자의 연봉이 줄어드는 동안, 어떤 사람은 부동산 투자를 해서 7억을 벌었다고 하니 조금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또한 강연자는 서울의 재건축이 예정된 아파트 단지를 소개하면서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를 지역이니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내년부터 시행예정인데, 재건축 조합원 1인당 평균 개발이익이 3천만원을 넘으면 그 이상 부분에 대해 최고 50%를 부담금으로 내게 하는 제도다. 그에 따르면 이 제도는 최종적인 아파트 소유자에게만 부과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공평하다는 것이다.강연자가 이런 주장을 한 것은 현재 서울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재건축 아파트 단지를 위주로 이뤄지고 있고,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위해서는 아파트 및 분양권의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초과이익 환수제는 이를 방해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강연자는 현재 가락 시영아파트 재건축 분양가가 4천만원이라면서 다른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도 이 이상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 가격이 평당 3천만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가락시장 아파트 가격이 4천만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필자가 서울 거주민이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여교수들 중에서는 이처럼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강연 내용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분들도 있었다.한 교수님은 최근 적극적으로 정보 수집을 해서 재건축 예정지의 아파트를 하나 샀는데 그게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그녀는 필자에게도 부동산 투자를 권유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지인이 프리미엄 2천만원에 20억 아파트를 샀는데 완공 후 그 아파트 가격이 40억이 됐다면서 2천만원으로 20억 벌었다는 예시를 제시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한국에서는 한푼 두푼 봉급 모아서는 소위 부자가 되기는 힘든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연자는 어떤 부동산 규제 정책도 소용없다면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상황을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부동산 가격 상승에 편승해서 아파트 하나라도 더 사두어야 한다는 것이다.최근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부동산 가격 안정화는 백약이 무효인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동시에 다시 한 번 미래세대를 위해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2017-06-07

목표 지향적인 삶? 아니면 지금을 즐기는 삶?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가끔 필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로는 이 나이가 되도록 이런 고민을 하는 필자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도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 것이냐는 고민 중이다. 지난 주말의 승마 레슨은 이런 고민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필자는 작년 가을부터 9개월 정도 승마 레슨을 받고 있고, 지금은 구보(말을 타고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다. 필자는 운동신경이 둔해서 수영 외의 운동은 못하는데, 승마는 말이 알아서 거의 다 하는 운동이라 이것을 꽤 재미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연습 때 필자는 승마를 즐길 수 없었다. 구보 연습이 필자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보통 구보를 하려면, 말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기승자가 음성과 동작 신호를 줘서 말이 달리게 만든다. 구보를 처음 배울 때는 이렇게 신호를 주는 것을 교관이 도와주는데, 기승자가 구보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구보를 시켜야 한다. 문제는 필자가 말에게 구보 신호를 정확하게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호가 정확하지 않으니까, 말이 혼란스러워하고 나중에 필자에게 짜증만 내고 말을 듣지 않는다.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 되자, 필자는 꼭 혼자 힘으로 말을 달리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런 마음과는 달리, 이번에도 필자는 첫 번째 구보 시도에서 말을 달리게 만드는 데에 실패했다. 혼자 힘으로 구보를 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필자는 말에게 신호를 보냈다. 말은 필자의 어설픈 구보 신호에 자꾸 짜증만 낸다. 필자는 말과 실랑이를 한 20분정도 하다가 말에서 내렸다.말에서 내린 필자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아! 짜증나 죽겠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원래 필자는 승마를 재밌게 하는 편인데, 오늘은 그렇지 못했고 그런 기분이 말과 행동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자 승마 교관이 `너무 목표에 치중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즐기면서 타세요.`라고 필자를 달랬다. 이 때 그녀의 말이 필자의 머리를 한 대 쾅 치는 것 같았다. `아! 내가 오늘 나의 바닥을 다른 사람에게 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2년 전만 해도 필자는 매우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고, 그렇지 못할 때의 스트레스가 심했다. 재작년, 초등학교 입학 이후 처음으로 인생의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필자는 `이토록 소중한 시간을 짜증과 불만으로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지난 주말 필자는 오늘은 꼭 혼자 힘으로 말을 달리게 만들어야겠다는 목표 의식에 사로잡혀 그런 마음을 잊어버렸다. 목표 의식이 강했던 만큼, 실패에 대한 필자의 불만과 짜증도 심했다.보통 사람들은 목표 지향적인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삶이 높은 성취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데에도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반면에 순간을 즐기는 삶은, 필자의 경험상, 행복감을 유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결과도 낳는다.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니, 자기도 자녀들에게 목표 지향적인 태도와 지금을 즐기는 태도 중 어느 것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한다. 마음 같아서는 후자를 장려하고 싶지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참고 견디는 법도 가르쳐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친구와 달리 필자는 지금을 즐기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소중한 인생을 스트레스로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2017-05-30

고사리는 언제 캐나?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지난주 토요일에 필자는 비교문학 관련 학회에 갔다 왔다. 필자는 이 학회의 이사이기는 하지만, 발표나 토론을 하거나 사회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소위 순수한 청중으로 학회에 참석했다. 비교문학학회답게 서로 다른 나라들의 문학 작품을 비교하는 발표가 대다수였다. 필자는 `에즈라 파운드와 동양`이라는 제목의 발표에 흥미를 느껴서 이 발표를 들으면서 고사리를 채취하는 철이 언제인지를 알게 되었다. 에즈라 파운드는 20세기 영미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이미지즘`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시에 도입한 시인이다. 그의 이미지즘은 중국의 한시 번역을 통해서 습득한 기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실제로 많은 한시를 번역하였다. 그는 중국의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시경`에 실린 시나 백거이, 이백의 한시를 영시로 번역하여,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였다.`에즈라 파운드와 동양`의 발표자는 파운드가 `시경`에 실린 `채미`를 번역한 것을 소개하였다. `채미`는 봄에 흉노족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온 군인이 늦가을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는 오랑캐와 싸우느라고 지치고 배고픔과 향수병에 시달리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필자는 중국 한시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한시 옆에 붙은 한글 번역을 중심으로 시를 감상하였다. 그런데 시를 읽다가 보니 3연에서 한글 번역이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3연의 한글 번역은 “고사리 캐세 고사리를 캐세/고사리도 쇠어졌다네/돌아가세 돌아가세/올해도 벌써 시월 양춘이 되었다네/나라 일이 끝나지 않아/쉴 겨를이 없다네/근심하는 마음 큰 병이 되어도/나는 가서 돌아오지 못하네”와 같았다. 이것은 “歲亦陽止(세역양지)” 중 陽을 “시월 양춘(陽春)”으로 번역한 것이다.시월은 가을이고 양춘은 봄인데, 이게 나란히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필자는 발표자에게 나물은 보통 봄에 캐는 것인데 `시월`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陽止를 봄으로 해석하면, 시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시간적 배경이 일치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 시의 마지막 연은 “지난 날 내가 출발할 때/버드나무 무성했는데/이제 내가 돌아갈 생각하니/눈과 비가 흩날린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적 불일치에 혼란을 느끼다 필자는 고사리 캐는 때가 언제인지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더니, 고사리는 가을부터 이른 봄에 캔다고 나왔다.파운드는 `陽`을 10월로 번역하였고, 인터넷에 검색되는 채미의 번역들도 모두 10월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필자는 왜 陽이 10월로 번역되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다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양월(陽月)이 음력 10월을 뜻한다고 나온다. 발표문에 실린 번역은 중국유학생이 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는 양월의 뜻을 몰랐던 것 같다.이 일이 있은 후 필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고사리 언제 캐는지 아냐고 물으니, 모두 봄에 캐는 것이 아니냐고 답변한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은 지금, 즉 5월에 캐는 것이 아니냐고 답한다. 필자가 물어본 사람들이 다들 학자들이어서 그런지 고사리가 가을부터 초봄에 캐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 농촌에서 성장한 것도 아니고, 수입산 고사리를 사서 먹다보니 고사리를 언제 채취하는지 몰랐던 것이다.이처럼 우리들 중 다수는 문화적 전통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더 잘 안다고 자만하는 사이에 우리들은 많은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반면에 멀리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더 잘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채미`의 번역자인 에즈라 파운드는 양월을 “October(10월)”라고 정확하게 번역하였다. 더구나 그는 시·공간적 간극을 초월하여 2400년 전에 중국에서 살았던 한 `인간의 마음`을 훌륭하게 해석하였다.

2017-05-23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20대의 선택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다음날, 필자의 학생 두 명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라서 그런지 대화가 자연스럽게 대통령 선거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필자는 20대의 정치적 선택과 미래의 한국 정치 지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구에게 투표했는지에 대해서 필자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한 학생이 자기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다른 학생은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고 말한다. 두 후보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4위와 5위를 한 후보이다. 필자는 20대면 문재인이나 안철수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이런 대답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필자가 학생들의 고향에 대해 궁금해하자, 둘 다 진주가 고향이라고 대답한다. 진주는 소위 PK지역으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텃밭인 곳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에는 65%의 유권자가 박근혜 전대통령을 지지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39%의 유권자가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를 지지했다. 두 학생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 지역에서 살았고, 이번 대통령 선거도 고향에 가서 하고 왔다고 했다.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한 학생이 자신이 왜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는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후보들의 공약집을 다 꼼꼼히 읽어보았는데, 심상정 후보가 가장 현실적인 복지 정책을 제시하고 있어 지지하였다고 말한다. 다들 엇비슷한 복지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심 후보만이 그것을 실제로 실현할 예산을 제시하였다고 학생은 말했다.우리의 밥상머리 대화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20대의 투표 결과를 반영하고 있다. 5월 9일 저녁 8시 선거종료 직후 발표된 `지상파 3사 공동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19세를 포함한 20대의 47.6%만이 문재인 후보(민주당)를 지지했다. 20대는 문재인 후보 다음으로 안철수 후보(국민의 당), 유승민 후보(바른정당), 심상정 후보(정의당)에게 10%대의 지지율을 보였으며, 홍준표 후보만을 8.4%로 지지하였다. 이런 결과는 지금의 20대가 소위 온건한 보수나 선명한 진보에 더 마음이 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언론이나 정치비평가들은 30, 40대가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많이 지지하였고, 이 지지자들은 모두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런 추론을 지금 20대의 투표 결과에도 적용해보면, 이들은 앞으로의 선거에서 중도보수나 선명한 진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최근의 여론조사도 이런 추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로 19대 대통령선거 직후인 10일부터 12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천5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민주당이 44.7%의 지지를 받았고, 자유한국당은 13%, 정의당이 9.6%의 지지를 받았다.정의당의 부상은 한국의 정치가 이번 대통령 선거를 분수령으로 해서 좀 더 왼쪽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경향은 어린 세대의 성장과 함께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된다.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칠지 그리고 국민들의 기대에 어떻게 부응할지에 따라서 현재의 경향은 점점 가속화될 것이다.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한국의 정치가 과거처럼 `색깔론`이나 `북풍` 등에 의해서 왜곡되지 않고, 사법정의나 노동문제 그리고 복지문제에서 좀 더 변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20대의 선택은 미래의 유권자들이 이런 변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정치 세력에게 지지를 보낼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2017-05-16

오늘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오늘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지난 5월 4일과 5일에 있었던 사전투표에서 약 1천107만여명이 투표하였는데, 이는 전체 유권자의 26.6%에 해당한다. 이 같은 높은 투표율은 국민들의 정치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지난번 선거와 다른 점은 많은 후보가 나왔다는 점이다. 제18대 선거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의 양자대결이었지만, 이번에는 5명의 유력 후보들이 함께 대통령 후보 토론회도 하면서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이처럼 후보들이 많아지면서 국민들도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서로 다른 대답을 한다. 여론조사 결과처럼 문재인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안철수와 홍준표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도 있다. 또한 TV토론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준 심상정, 유승민 후보에 대한 지지자도 있다.이처럼 유권자들이 누구를 뽑을까 고민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선거가 지난번처럼 2강 구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5번의 대통령 후보 TV토론회 등을 통해서 각 후보들의 정치적 입장과 정책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자신을 대변하는 후보를 찾지 못하는 답답함을 과거보다 적게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하면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갈 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할 수 있었다.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서 정치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번 선거는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산업화 시대와 공식적으로 결별하는 시점이다. 지난 세기 말부터 우리 사회는 산업화 시대에서 벗어나 소위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보화 시대의 의미를 문자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국민들은 낮은 경제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정치가의 출현을 기대했고,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해결자로 선택했다. 하지만 이 두 분은 결국 국민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시대는 제3차 산업혁명을 넘어서 제4차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데, 국민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처와 자신들의 생존문제의 해결을 산업화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에게 맡겼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선택은 마치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들이 가혹한 공장노동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기계를 파괴했던 것과 유사하다. 기계를 파괴한다고 자본주의화가 멈출 리 없는 것처럼 과거 회귀적 방법으로 사회의 변화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경제 성장률을 높여 그 혜택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발상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국민들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과거 산업화 시대처럼 국가가 경제개발을 주도하는 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오히려 국가의 임무는 국가의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고 그것을 어떻게 분배하여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지에 집중해야 한다.보통 진보는 변화를 추구하고 보수는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국민들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변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고, 이것이 현재의 진보 우위의 정치 구도를 만들었다. 과거와 같은 색깔론, 북풍 등이 이번 선거에서 먹히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들은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시대에 맞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후보를 제19대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를 위해, 미래를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2017-05-09

가짜 뉴스로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최근 언론매체를 통해서 `가짜 뉴스`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가짜 뉴스는 거짓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서 유통시키는 것을 말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 혹은 당선시키기 위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서 `가짜 뉴스`가 대량 유통되고 있다. 현재 가짜 뉴스는 주로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후보에게 집중되어 있고, 지지율 1, 2위에 있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이런 뉴스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대표적인 가짜 뉴스는 `문 후보의 부친이 인민군 출신이다`, `문 후보가 세월호를 소유한 `청해진 해운`의 자문 변호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에 대한 것은 그의 부인이 딸을 원정 출산했다, 안 후보가 대주주로 있는 안랩의 계열사가 투표지 분류기를 만들어 18대 대선 투표조작을 했다는 것이다.후보 당사자들 간의 가짜 뉴스 공방도 치열하다. 4월 28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아들 취업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당이 매일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허위사실 유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30일에는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선대위 이용주 공명선거추진단장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와 비방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최근에는 대선 후보 지지율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된 가짜 뉴스도 유통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 기사에 따르면, 4월 30일에는 오전부터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매경레이더 빅데이터 여론분석`이라는 제목으로 “4월 29일 오늘 홍준표가 1위다. 홍준표 45.22%, 안철수 21.12%, 문재인 20.18%, 보수집결 양상”이라는 가짜 뉴스가 SNS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매일경제신문은 이런 분석을 한 적이 없다며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고발 조치하기로 했다.또한 다른 언론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 SNS, 카카오톡 채팅방 등에서는 “홍준표 후보는 유명 대형교회 K교회 안수집사,” “홍 후보 부인은 신실한 K교회 권사” “동성애를 반대하는 유일한 후보 홍준표를 찍자”는 등의 내용이 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유포되고 있는 내용과 달리 홍준표 후보 내외는 불교 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올 초부터 4월 26일까지 대통령 선거 관련 가짜 뉴스는 3만 1천746건이나 된다고 한다. 이것은 제18대 대선 때 가짜 뉴스 적발 건수의 4배가 넘는다. 가짜 뉴스는 주로 네이버 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퍼진 것이 7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흥미로운 점은 최근 대선 지지율 여론조사 1, 2위 후보에게는 부정적인 성격의 가짜 뉴스가 유통되는 반면에 3위 후보에게는 긍정적인 성격처럼 가짜 뉴스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 선거전에서 가짜 뉴스가 유통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이런 가짜 뉴스의 유통은 최근 대통령 후보의 주장에 대한 `팩트(사실 여부의) 체크`가 언론을 통해서 이뤄지거나 정책 토론회가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것과 대조된다. 이것은 국민들이 단순히 후보에 대한 평판이나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도움이 될 정책을 펼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고자 하기 때문이다.`가짜 뉴스`의 유통량을 보면 이번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전은 매우 수준이 낮다. 하지만 국민들은 후보에 대한 정확한 사실 판단과 그들의 정책에 대한 소신 있는 판단으로 이 수준을 높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2017-05-02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얼마 전 수업을 하면서 필자는 상식이 항상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글의 내용을 읽고 분석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필자는 천동설의 입장에서 지동설을 반박하는 글을 예시로 분석해보였다. 이 예문의 주장은 `만약 지구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다른 물체보다 더 무겁기 때문에 빨리 낙하하여 우주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경험에 배치되므로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천동설의 지지자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낙하한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만약 이 사람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았다면 감히 이런 식으로 논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는 논문을 출판한 것은 1632년이고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증명하는 논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판한 것은 1687년이었다. 뉴턴 이전 시기에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지 못했으니 이런 주장도 할 수 있다.또한 이 예문은 틀린 주장을 전제로 해서 지동설을 비판하였다. 여기서 틀린 전제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낙하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것을 주장한 이래로 오랫동안 옳은 것으로 통용되었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중력이 작용하고 진공인 상태에서는 물체는 무게와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것을 증명했다.자유낙하법칙의 발견은 물리학 역사뿐 아니라 전 과학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발견이다. 갈릴레이는 2천년 가까이 유럽사회에 지배적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의 오류를 바로잡고 현대 과학의 문을 열었다. 이 발견은 훗날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갈릴레이는 이것을 순전히 사고실험으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그가 피사의 사탑에서 자유낙하실험을 했다는 것은 지어낸 이야기이다.물론 중력이 작용하고 공기저항이 있는 상태에서 물체의 무게가 매우 무겁다면 가벼운 물체보다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실제 우리 경험의 범위 내에서 무게 차이가 아주 크지 않다면 두 물체는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믿고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필자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필자는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갈릴레오의 자유낙하의 법칙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고, 고등학교 1학년 물리 시험에서 혼자 100점을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매우 오래되었고, 전공도 한국문학이다 보니 수학, 물리는 이미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필자의 머릿속에서 어느새 상식은 진리를 대신하여 옳은 것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만약 수업 중에 학생들이 자유낙하의 법칙에 대해서 환기시켜주지 않았다면, 필자는 잘못된 내용을 옳은 것으로 믿고 있었을 것이다.상식의 사전적 뜻은 `일반적인 사람이 다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이다. 상식이라는 단어에는 `다수의 사람이 옳다고 믿고 있다`는 함의가 있다. 그러나 위의 사례처럼 다수의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자연과학에서 `법칙`이라고 불리는 주장은 어떤 조건하에서 항상 100% 옳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상식이 법칙 혹은 진리를 대체하는 일이 종종 경험한다. 어떨 때는 옳은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단지 소수라는 이유로 비난받고 핍박받는 경우가 있다.상식의 힘을 믿고 진리를 핍박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항상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신중하게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2017-04-25

개나 소나 친일파?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지난주, 필자는 선배교수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 분은 정년퇴직을 2년 정도 앞둔 분으로 필자의 대학 대선배이기도 하고 필자처럼 소위 TK출신인 분으로 현재 필자와 영어회화수업을 같이 듣고 있다. 하여튼 이 분이 필자를 보고 반가워하며 말을 걸기에 함께 앉아 대화를 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대화 중에 우리나라 우파 정서의 기원이랄까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이 분은 필자와 영어 수업을 함께 하다 보니 다른 교수들은 모르는 필자의 생활을 조금 알고 있다. 최근 필자는 논문 쓰는 문제로 일제 강점기 총독부 자료나 일본 의회 자료를 찾으러 일본을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회화시간에 한 적이 있다. 그런 이유인지 그는 필자에게 승진 등을 위해서 논문을 몇 편 써야 하며, 요새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그는 문학에 대한 논문을 꼭 필자처럼 써야만 하는 건지 묻는다. 그러면 논문의 양을 채우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고 걱정을 한다.산업공학을 전공하시는 분에게 문학 연구에 대해서, 또 식민지 시대 문학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렇게 진지하게 질문을 하시기 때문에 필자도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필자는 요즈음 이광수의 친일협력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고, 이미 한 편을 한글 논문으로 출판 하였다. 일본에 가야 한다는 걱정도 일제 말 일제의 식민지 통치와 관련한 정책 자료들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최근 상당수의 자료를 한국에서 확보를 하였지만 말이다.이렇게 필자의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도중에 필자의 선배 교수는 자기 어머니가 일제시대 때 교사를 했는데, 이러면 친일파인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자 합석했던 다른 분이 일제 치하에 한반도에 살면서 친일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에 필자는 두 분에게 `그런 식이면 모든 사람이 친일파이다, 한국에서 친일파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간 4천389명으로 봐야한다, 교수님의 어머니는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선배교수들과 헤어진 뒤, 필자는 한국에서 우파적 심정의 한 원인에 대한 단서랄까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 선배교수는 지난겨울 촛불집회가 있었을 때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돈을 받고 참여한 사람들이라는 유언비어를 믿었던 사람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사고방식은 태극기 집회에 나온 많은 노인들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이 선배교수의 우파적 심정의 근원에는 소위 `친일파` 자손이라는 것이 놓여있다.한반도에서 살면서 친일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냐는 말은 소위 `친일행위자`들이 자신들을 옹호할 때 쓰는 것이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출판했을 때 거기에 등재된 사람들의 자손들이 반발하면서 이런 식의 반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사실 북한정권이 식민지 시대 문학을 부정하는 논리로도 쓰인다. 북한문학사는 현재의 북한문학을 `항일혁명문학`을 계승한 것으로 주장하고, 김일성 항일 빨치산 운동 시기의 문학작품들을 그 기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문학사는 식민지 시대의 좌익 문학자들마저도 배제하거나 비판적으로 보는데, 이는 식민지에 살면서 문학을 했기 때문에 대일협력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북한 주류의 관점과 남한의 주류-친일파의 관점이 서로 통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정치가들이나 소위 논객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 등을 이유로 많은 논리들을 왜곡하고, 그것을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는다. 한국에서 친일파란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도 그 예일 것이다.

2017-04-18

벚꽃 엔딩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지난주부터 날씨가 따뜻해졌다. 낮 시간 날씨가 20℃ 가까이 되면서 꽃들이 한꺼번에 피었다. 개나리, 벚꽃, 목련, 그리고 진달래 등 봄을 상징하는 꽃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피어서 한창이다. 노랑, 연분홍 등으로 핀 꽃들을 보니 필자의 마음도 그렇게 물드는 것 같고 행복감이 솟아나는 것 같다. 이름이 개화여서 그런지 필자는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좋다. 원래 봄꽃은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그리고 철쭉의 순서로 핀다고 한다. 한 달 내지 한두 주 정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꽃들이 차례로 핀다. 그런데 올해는 목련, 개나리, 벚꽃이 동시에 피었다. 이렇게 꽃들이 동시에 피는 것도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한다. 소위 이상 현상이란 것인데, 필자는 그저 개나리와 벚꽃이 동시에 피어 있는 것에만 마음이 쏠린다.필자는 10년째 천안에 살고 있는데, 올해는 예년과 달리 옆 동네 병천에서 `위례 벚꽃 축제`를 한다는 선전이 대단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사람들이 광고를 퍼 날랐고 여기저기 현수막도 걸렸다. 병천은 독립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순대이다. 최근에는 벚꽃 축제가 유명해져서 벚꽃 개화시기를 알리는 지도에도 지명이 날짜와 함께 나온다. 이런 광고에 마음이 움직여서 필자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지난 일요일 병천에 갔다 왔다.필자는 병천에 도착하자마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순대거리에 들렀다. 점심시간인 이유도 있지만 한 달 전부터 병천 순대가 먹고 싶었던 탓이다. 맛있다고 입소문이 난 순대집에 들렀더니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순서 표를 뽑았더니 필자의 앞에 대기자가 50명이다. 거리를 한 바퀴 돌고 다시 갔더니 10명이 줄어 있다. 이대로라면 필자의 순서가 되기까지 네 바퀴를 더 돌아야 한다. 어쩔 수 없어 다른 식당으로 갔더니 거기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주말인데다가 축제까지 겹쳐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방문한 까닭이다.줄을 서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차를 타고 벚꽃 축제 장소로 갔다. 멀리서부터 도로는 차로 꽉 막혀있다. 어쩔 수 없이 벚꽃 축제장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천안으로 돌아왔다. 필자가 재직 중인 단국대로 갔더니 벚꽃이 한창이다. 바로 옆이긴 해도 병천의 경우 도로가 벚꽃나무의 꽃이 아직 봉오리인데 여기는 활짝 폈다.학교 앞의 호숫가로도 벚꽃이 활짝 피어있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를 벚나무 아래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엄마 아빠를 뒤에 달고 어린이들이 장난감 차를 몰고 가기도 하고, 부부들이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하고, 다들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그리고 들뜨게 하는 것 같다.필자도 동네친구들과 함께 호숫가 산책로를 걸어서 근처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숍의 3층 창가에 앉아서 호숫가를 내려다 보며 맛있는 커피를 마시니 무척 행복했다. 사실 필자는 그 사이 많이 피곤했다. 수업한 지도 한 달이 넘은 데다가 연구 자료를 찾으러 일주일 사이에 서울을 세 번이나 갔다 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그리고 함께 하다 보니 그런 피로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필자가 병천의 꽉 막힌 도로 위에 있었다면 이런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친구들과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가 있다고 떠들썩한 광고를 했던 병천에서 필자는 지루한 줄서기와 교통체증만을 경험했다. 하지만 매일 출근하는 학교의 정원은 필자에게 예상치 못한 행복한 오후를 선물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은 분명 맞는 말이다.

2017-04-11

노동자들의 새로운 문화는 가능한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지난 금요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한국문학 관련 학회에 갔다. 상허학회와 반교어문학회의 공동학술대회였는데, 주제가 한국의 `노동문학`에 대한 것이었다. 필자는 이 학회의 주제에도 관심이 있었고, 만날 사람도 있고 했기 때문에 성균관대학교에 갔다. 덕분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에 갈 수 있었다. 사실 필자는 학회에 참석해서 발표를 듣기는 했지만, 그렇게 성실하게 듣지는 못했다. 필자의 지인을 만나느라 학회 주제를 기획한 천정환 교수의 발표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종합토론 시간에 토론하는 것을 들으면서 기획자의 기획 의도 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정환 교수는 1980년 이후 사회는 크게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문화는 왜 그다지 바뀌지 않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천정환 교수는 지난 해 11월부터 최근까지 광화문의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민주노총의 천막에도 여러 번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모두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빨간 조끼를 입고 모여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파업과 같은 집단행동을 할 때의 노동자를 상징하는 옷차림이다. 이런 옷차림은 이제는 일상적인 문화코드가 되어 파업하는 노동자를 연상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다. 예를 들어, 지난 주 종영한 드라마 `김과장`도 택배 노동자들이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빨간 조끼를 입고 파업하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다.`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도한 촛불집회에 대해서 국내외의 언론매체들은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유례가 없는 평화집회, 록-페스티벌 같은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행복해보였다`고 보도하였다. 이런 촛불집회의 이미지와 빨간 머리띠, 빨간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의 이미지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촛불집회의 운영에 재정적으로나 참가자 동원 등에서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역할은 주목받지 못했다.물론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는 개별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다. 필자의 대학 동창생들도 부부가 거의 매번 참여하다시피 하였는데 이들은 전업주부이거나 대학교수 등이다. 이런 시민들에 대해서 연세대 조기숙 교수는 `신좌파`(New Left)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조 교수는 신좌파는 탈권위와 개인주의에 토대를 둔 새로운 좌파라고 주장하면서, 과거 노무현 정부의 이념이 이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조 교수는 촛불시민들도 모두 신좌파라고 주장하면서, 빨간 머리띠와 빨간 조끼로 상징되는 민주노총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좌파라고 비판한다.문화는 그 문화를 생산해내는 사람들의 생활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장노동자들의 노동과정은 군대와 같은 규율과 복종 등을 토대로 한 체계화된 노동 분업을 요구한다. 조금만 노동규율이 흐트러져도 심각한 부상과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 엄격한 규율에 토대한 분업 체계와 집단행동이 어우러져서 만든 이미지가 빨간 머리띠와 빨간 조끼이다.그러나 이런 고전적 노동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점점 산업의 중심이 서비스와 같은 소프트 노동으로 이동하고 있고, 인공지능 로봇을 이용한 육체노동의 대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알바생이나 기간제 노동자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52.5%(2016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 혹은 단기 노동의 일반화는 `각자도생`이나 `1인 시위`와 같이 자기 문제는 각자가 해결하는 분위기를 일반화시켰다. 이것은 분업화된 공장노동에 토대한 과거의 노동운동과 노동자 문화를 낡은 것으로 보이게 한다.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최근 문학작품에서도 공장 노동자를 배경으로 한 소설보다는 아르바이트생이나 기간제 노동자를 묘사하는 소설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 중심의 이런 단기노동에서 어떤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위문화로서의 노동자 문화가 갱신될 날이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17-04-04

세월호 인양을 보면서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요사이 TV를 틀면 뉴스나 속보로 세월호 인양에 대한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부터 세월호의 인양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다행히 25일 새벽에 반잠수식 선박 위에 배가 무사히 실렸다. 배는 반잠수식 선박에 실려 목포신항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배의 인양 성공을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자 배가 인양되었다는 댓글을 많이 달았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말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기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논란과 의혹을 양산하는 상황을 고의로 조장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싶다.어쨌든 세월호의 인양 성공으로 가장 좋은 일은 배 안에 남겨져 있을 지도 모르는 실종자 9명의 시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양과정에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도 배가 훼손되어 배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시신이 유실되는 일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의 바람대로 시신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무엇보다 배가 인양됨으로써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세월호는 큰 각도로 변침(방향을 바꾸는 것)하다가 무게 중심을 잃고 왼쪽으로 기울면서 침몰하였다. 세월호가 침몰되었을 때, 배의 침몰 이유를 두고 여러 가지 `설`(設)이 분분하였다. 예를 들어 배에 규정 이상의 많은 화물이 선적된 것, 기계 고장으로 인한 조타 각도 조정 실패, 배의 램프가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물이 배로 들어온 것, 또는 스태빌라이저(선박의 좌우 균형을 맞춰주는 장치)에 뭔가가 걸려서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올 초에는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세월호의 침몰은 잠수함과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작년 5월 배의 인양과정에서 배의 왼쪽 스태빌라이저가 제거되었고 이번 인양과정에서 배의 왼쪽 램프가 절단되었다. 이처럼 배의 침몰 원인으로 지목된 장치들이 제거됨으로써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걱정들은 모두 배의 침몰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기를 바라는 바람에서 나온 것들이다. 일단 배가 물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조사를 하면, 침몰원인은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 `고의 수장설`과 같은 믿기 어려운 황당무개한 주장도 인터넷 댓글을 중심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런 설들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닌 것은 배의 침몰 원인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 등을 통해서 몇몇 원인-배의 조타장치 고장으로 인한 급변침-들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말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이것도 어디까지나 설에 지나지 않았다.한 여당 의원이 말한 것처럼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는 세월호 사고에 사람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국민들이 배가 침몰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보면서, 죄책감과 무력감에 토대한 `감정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배의 침몰을 눈뜨고 있으면서도 막지 못한 것과 아이들이 배 안에서 부모들에게 살려달라는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도 그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은 죄의식을 느꼈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서 속죄하고 싶은 욕망을 공유하게 되었다.어서 빨리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객관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밝혀졌으면 한다. 이런 원인 규명으로 처벌받을 사람은 처벌받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함으로써 국민들의,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은 속답답함이 시원하게 풀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국가재난관리시스템도 잘 정비되기를 기대한다.

2017-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