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학술대회가 끝난 뒤, 필자는 함께 발표한 친구들과 인사동에 갔다. 저녁 식사를 위해서인데, 워낙에 필자가 돌아다니는 것을 잘 못하는 터라 친구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인사동을 방문하였다. 인사동은 이제외국인을 위한 관광명소라고나 할까? 그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 친구들은 모두 감격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인사동은 옛날풍의 가게들도 많고, 상품들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소품들이 많았다. 그래서 인사동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소위 문화상품이라는 것은 상품 그 자체로는 부족하고 거기에 스토리가 덧붙여져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소비자들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스토리를 소비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이런 대표적인 예로는 이탈리아 출신 화가 모딜리아니를 들 수 있다. 모딜리아니는 32세의 짧은 나이에 요절한 화가로 그는 짧은 화가 생활 내내 여인의 초상화만 그렸다. 그리고 그의 모델은 주로 아내였다. 그는 1920년 초 결핵성 늑막염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아내도 정신착란에 빠져 자살하였다. 그는 생전에는 자신의 그림을 많이 팔지 못해 늘 가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사후에 그의 그림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높은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중요한 이유는 그와 아내의 슬픈 죽음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인사동에서 이런 스토리가 있는 공간을 찾으라면 `귀천`이라는 카페이다.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시이자, 교과서에도 실린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죽음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이라고 노래했지만, 그의 삶은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귀천`이라는 카페를 열고 생계를 책임졌다. 지금은 그도 그의 아내도 모두 귀천하고 아내의 조카가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사동의 식당에서 한식 정식을 먹고 난 뒤 우리 일행은 차를 마시러 나왔다. 일요일이고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 카페가 문을 닫았는데 마침 귀천 카페가 문을 열고 있었다. 천상병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필자는 이 카페로 가자고 제안했다. 모두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은 후 필자는 천상병이라는 시인의 아내가 운영했던 카페이고 카페의 이름도 시의 제목을 딴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이때까지만 해도 `흠 그렇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던 친구들은, 필자가 그 집에 걸려있는 액자 속 시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주자 너무 좋아한다.
`행복`이라는 이 시는 “나는 세계에서/제일 행복한 사나이다//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생활에 걱정이 없고” 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긴 말 필요 없이 이 몇 소절만으로 친구들은 다들 깔깔 웃으면서 정말 행복한 사나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후 일본친구의 페이스북을 보니 그녀는 귀천 카페의 전경과 그 안에서 함께 찍은 우리의 사진, 그리고 마셨던 대추차, 쌍화차의 사진 등을 긴 설명과 함께 게시하여 놓았다. 그 게시물은 내가 이런 한국음식 먹었다라고 자랑하는 수준 이상으로 한국을 안 것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카페에 들른 것이 기대 이상으로 친구에게 좋은 인상을 줬던 것 같다.
필자는 여행을 갈 때면 이야기가 있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알게 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도 인사동은 한국 전통 음식이나 물건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이상으로 한 시인의 아내의 카페가 있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기억과 이야기를 공유하게 될 때 비록 다른 나라의 문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진정으로 알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