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필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로는 이 나이가 되도록 이런 고민을 하는 필자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도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 것이냐는 고민 중이다. 지난 주말의 승마 레슨은 이런 고민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필자는 작년 가을부터 9개월 정도 승마 레슨을 받고 있고, 지금은 구보(말을 타고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다. 필자는 운동신경이 둔해서 수영 외의 운동은 못하는데, 승마는 말이 알아서 거의 다 하는 운동이라 이것을 꽤 재미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연습 때 필자는 승마를 즐길 수 없었다. 구보 연습이 필자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구보를 하려면, 말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기승자가 음성과 동작 신호를 줘서 말이 달리게 만든다. 구보를 처음 배울 때는 이렇게 신호를 주는 것을 교관이 도와주는데, 기승자가 구보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구보를 시켜야 한다. 문제는 필자가 말에게 구보 신호를 정확하게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호가 정확하지 않으니까, 말이 혼란스러워하고 나중에 필자에게 짜증만 내고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 되자, 필자는 꼭 혼자 힘으로 말을 달리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런 마음과는 달리, 이번에도 필자는 첫 번째 구보 시도에서 말을 달리게 만드는 데에 실패했다. 혼자 힘으로 구보를 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필자는 말에게 신호를 보냈다. 말은 필자의 어설픈 구보 신호에 자꾸 짜증만 낸다. 필자는 말과 실랑이를 한 20분정도 하다가 말에서 내렸다.
말에서 내린 필자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아! 짜증나 죽겠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원래 필자는 승마를 재밌게 하는 편인데, 오늘은 그렇지 못했고 그런 기분이 말과 행동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자 승마 교관이 `너무 목표에 치중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즐기면서 타세요.`라고 필자를 달랬다. 이 때 그녀의 말이 필자의 머리를 한 대 쾅 치는 것 같았다. `아! 내가 오늘 나의 바닥을 다른 사람에게 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2년 전만 해도 필자는 매우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고, 그렇지 못할 때의 스트레스가 심했다. 재작년, 초등학교 입학 이후 처음으로 인생의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필자는 `이토록 소중한 시간을 짜증과 불만으로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지난 주말 필자는 오늘은 꼭 혼자 힘으로 말을 달리게 만들어야겠다는 목표 의식에 사로잡혀 그런 마음을 잊어버렸다. 목표 의식이 강했던 만큼, 실패에 대한 필자의 불만과 짜증도 심했다.
보통 사람들은 목표 지향적인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삶이 높은 성취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데에도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반면에 순간을 즐기는 삶은, 필자의 경험상, 행복감을 유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결과도 낳는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니, 자기도 자녀들에게 목표 지향적인 태도와 지금을 즐기는 태도 중 어느 것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한다. 마음 같아서는 후자를 장려하고 싶지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참고 견디는 법도 가르쳐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친구와 달리 필자는 지금을 즐기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소중한 인생을 스트레스로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