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한국문학 관련 학회에 갔다. 상허학회와 반교어문학회의 공동학술대회였는데, 주제가 한국의 `노동문학`에 대한 것이었다. 필자는 이 학회의 주제에도 관심이 있었고, 만날 사람도 있고 했기 때문에 성균관대학교에 갔다. 덕분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에 갈 수 있었다.
사실 필자는 학회에 참석해서 발표를 듣기는 했지만, 그렇게 성실하게 듣지는 못했다. 필자의 지인을 만나느라 학회 주제를 기획한 천정환 교수의 발표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종합토론 시간에 토론하는 것을 들으면서 기획자의 기획 의도 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정환 교수는 1980년 이후 사회는 크게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문화는 왜 그다지 바뀌지 않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천정환 교수는 지난 해 11월부터 최근까지 광화문의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민주노총의 천막에도 여러 번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모두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빨간 조끼를 입고 모여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파업과 같은 집단행동을 할 때의 노동자를 상징하는 옷차림이다. 이런 옷차림은 이제는 일상적인 문화코드가 되어 파업하는 노동자를 연상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다. 예를 들어, 지난 주 종영한 드라마 `김과장`도 택배 노동자들이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빨간 조끼를 입고 파업하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도한 촛불집회에 대해서 국내외의 언론매체들은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유례가 없는 평화집회, 록-페스티벌 같은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행복해보였다`고 보도하였다. 이런 촛불집회의 이미지와 빨간 머리띠, 빨간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의 이미지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촛불집회의 운영에 재정적으로나 참가자 동원 등에서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역할은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는 개별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다. 필자의 대학 동창생들도 부부가 거의 매번 참여하다시피 하였는데 이들은 전업주부이거나 대학교수 등이다. 이런 시민들에 대해서 연세대 조기숙 교수는 `신좌파`(New Left)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조 교수는 신좌파는 탈권위와 개인주의에 토대를 둔 새로운 좌파라고 주장하면서, 과거 노무현 정부의 이념이 이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조 교수는 촛불시민들도 모두 신좌파라고 주장하면서, 빨간 머리띠와 빨간 조끼로 상징되는 민주노총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좌파라고 비판한다.
문화는 그 문화를 생산해내는 사람들의 생활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장노동자들의 노동과정은 군대와 같은 규율과 복종 등을 토대로 한 체계화된 노동 분업을 요구한다. 조금만 노동규율이 흐트러져도 심각한 부상과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 엄격한 규율에 토대한 분업 체계와 집단행동이 어우러져서 만든 이미지가 빨간 머리띠와 빨간 조끼이다.
그러나 이런 고전적 노동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점점 산업의 중심이 서비스와 같은 소프트 노동으로 이동하고 있고, 인공지능 로봇을 이용한 육체노동의 대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알바생이나 기간제 노동자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52.5%(2016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 혹은 단기 노동의 일반화는 `각자도생`이나 `1인 시위`와 같이 자기 문제는 각자가 해결하는 분위기를 일반화시켰다. 이것은 분업화된 공장노동에 토대한 과거의 노동운동과 노동자 문화를 낡은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최근 문학작품에서도 공장 노동자를 배경으로 한 소설보다는 아르바이트생이나 기간제 노동자를 묘사하는 소설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 중심의 이런 단기노동에서 어떤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위문화로서의 노동자 문화가 갱신될 날이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