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날씨가 따뜻해졌다. 낮 시간 날씨가 20℃ 가까이 되면서 꽃들이 한꺼번에 피었다. 개나리, 벚꽃, 목련, 그리고 진달래 등 봄을 상징하는 꽃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피어서 한창이다. 노랑, 연분홍 등으로 핀 꽃들을 보니 필자의 마음도 그렇게 물드는 것 같고 행복감이 솟아나는 것 같다. 이름이 개화여서 그런지 필자는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좋다.
원래 봄꽃은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그리고 철쭉의 순서로 핀다고 한다. 한 달 내지 한두 주 정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꽃들이 차례로 핀다. 그런데 올해는 목련, 개나리, 벚꽃이 동시에 피었다. 이렇게 꽃들이 동시에 피는 것도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한다. 소위 이상 현상이란 것인데, 필자는 그저 개나리와 벚꽃이 동시에 피어 있는 것에만 마음이 쏠린다.
필자는 10년째 천안에 살고 있는데, 올해는 예년과 달리 옆 동네 병천에서 `위례 벚꽃 축제`를 한다는 선전이 대단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사람들이 광고를 퍼 날랐고 여기저기 현수막도 걸렸다. 병천은 독립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순대이다. 최근에는 벚꽃 축제가 유명해져서 벚꽃 개화시기를 알리는 지도에도 지명이 날짜와 함께 나온다. 이런 광고에 마음이 움직여서 필자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지난 일요일 병천에 갔다 왔다.
필자는 병천에 도착하자마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순대거리에 들렀다. 점심시간인 이유도 있지만 한 달 전부터 병천 순대가 먹고 싶었던 탓이다. 맛있다고 입소문이 난 순대집에 들렀더니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순서 표를 뽑았더니 필자의 앞에 대기자가 50명이다. 거리를 한 바퀴 돌고 다시 갔더니 10명이 줄어 있다. 이대로라면 필자의 순서가 되기까지 네 바퀴를 더 돌아야 한다. 어쩔 수 없어 다른 식당으로 갔더니 거기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주말인데다가 축제까지 겹쳐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방문한 까닭이다.
줄을 서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차를 타고 벚꽃 축제 장소로 갔다. 멀리서부터 도로는 차로 꽉 막혀있다. 어쩔 수 없이 벚꽃 축제장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천안으로 돌아왔다. 필자가 재직 중인 단국대로 갔더니 벚꽃이 한창이다. 바로 옆이긴 해도 병천의 경우 도로가 벚꽃나무의 꽃이 아직 봉오리인데 여기는 활짝 폈다.
학교 앞의 호숫가로도 벚꽃이 활짝 피어있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를 벚나무 아래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엄마 아빠를 뒤에 달고 어린이들이 장난감 차를 몰고 가기도 하고, 부부들이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하고, 다들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그리고 들뜨게 하는 것 같다.
필자도 동네친구들과 함께 호숫가 산책로를 걸어서 근처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커피숍의 3층 창가에 앉아서 호숫가를 내려다 보며 맛있는 커피를 마시니 무척 행복했다. 사실 필자는 그 사이 많이 피곤했다. 수업한 지도 한 달이 넘은 데다가 연구 자료를 찾으러 일주일 사이에 서울을 세 번이나 갔다 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그리고 함께 하다 보니 그런 피로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필자가 병천의 꽉 막힌 도로 위에 있었다면 이런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친구들과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가 있다고 떠들썩한 광고를 했던 병천에서 필자는 지루한 줄서기와 교통체증만을 경험했다. 하지만 매일 출근하는 학교의 정원은 필자에게 예상치 못한 행복한 오후를 선물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은 분명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