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그리스 영웅… 페르세우스자리

고대 그리스 티린스 왕 아크리시우스에게는 다나에라는 외동딸뿐이었다. 왕은 아들을 얻고자 신탁을 청했다. 그런데 내용이 충격적이었다.“너는 아들을 얻지 못할 것이다. 대신 딸 다나에가 사내아이를 낳을 터인데, 그 아들이 할아버지를 죽이게 될 것이다.”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나았을 신탁이었다. 운명을 바꿔야 했다. 왕은 다나에를 청동으로 꼭꼭 둘러싼 탑 꼭대기에 가둔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해 탑 속으로 흘러 들어가 다나에에게 접근했고, 다나에는 얼마 후 페르세우스를 낳았다.왕은 신탁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충격에 빠졌다. 고민 끝에 나무상자에 딸 다나에와 젖먹이 아들 페르세우스를 넣어 바다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운명을 바다에 맡겼을 뿐, 딸과 손자를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저들이 죽는다면, 바다와 파도 때문이다.”파도에 휩쓸린 두 모자는 길고 긴 표류 끝에 세리포스라는 섬에 닿을 수 있었고, 그 나라 왕의 동생 딕툭스 도움으로 한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페르세우스도 어느덧 늠름한 청년이 되었다. 그런데 세리포스 왕 폴리데크테스가 다나에에게 흑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녀 곁에는 항상 페르세우스가 있었기 때문에 여의찮았다. 왕은 고심 끝에 계획 하나를 세운다.왕은 젊은이들을 초대하는 잔치를 벌였다. 초대받은 젊은이 모두 선물을 하나씩 들고 왔다. 하지만 가난했던 페르세우스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왕이 선물로 괴물 고르곤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고르곤은 머리카락이 수백 마리 뱀으로 이루어진 세 자매를 통칭해 부르는 이름인데, 눈과 마주치면 돌로 변해버리는 무서운 자매였다. 그중 막내가 메두사다. 페르세우스는 자신 있게 그러겠노라 장담했다.하늘에서 이를 지켜보던 제우스는 화들짝 놀라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물의 정령 나이아데스를 보내 페르세우스를 돕게 했다. 페르세우스는 이들의 도움으로 메두사 머리를 자르는 데 성공한다.돌아온 페르세우스는 폭정을 일삼던 폴리데크테스를 궁으로 찾아가 메두사 머리를 왕 앞에 던지자 왕은 돌로 변하고 말았다.그런 후 페르세우스는 아내 안드로메다와 함께 고향 티린스로 향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테살리아 라릿사 지방을 들리게 되었다. 마침 그곳에서 원반던지기 경기가 열렸고, 페르세우스도 경기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그가 원반을 던지던 순간 태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원반이 구경하고 있던 관중 속으로 날아가 어떤 노인 머리를 명중시켜 버렸다. 그가 바로 티린스의 왕 아크리시우스였다. 페르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운 나머지 라릿사에 몸을 숨겼다가 원반던지기를 구경하던 중 원반에 머리를 맞고 숨을 거둔 것이다. 결국 신탁의 예언대로 비극적인 결말이 이루어졌다.미래를 미리 안다는 것은 불행을 피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다행이지만, 더한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오이디푸스 신화도 미래를 알게 되면서 불행을 맞은 경우다.거대한 자석에 딸려가듯 언젠가 죽을 운명이지만,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 아닐까. /박필우 스토리텔러 끝

2022-12-25

황금 양모의 전설 양자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화홍련전’이나 ‘신데렐라’처럼 계모에게 구박과 홀대를 받는 아이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다. 이번 이야기도 그렇다.아테네 북쪽 아타마스 왕이 다스리는 보이오티아라는 나라가 있었다. 왕비 네펠레(구름의 정령) 사이에 왕자 프릭소스와 공주 헬레가 생겼지만, 아타마스 왕이 네펠레를 쫒아버리고 이노라는 여인을 새 왕비로 맞이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노는 네펠레가 낳은 아이들을 맡아 키웠으나, 친아들이 생기자 남매를 구박하기 시작한다. 결국엔 도를 넘어 왕자와 공주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이노는 이듬해 논밭에 뿌릴 곡물을 몰래 불로 익혀 놓았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봄이 되자 씨앗을 뿌렸으나 익은 종자에서 싹이 돋아날 리 없었다. 당황한 아마타스 왕이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청했더니, 왕자와 공주 두 아이를 신전 제물로 바치면 싹이 돋을 것이라는 답이 나왔다. 이 역시 계모 이노가 신전 사제에게 돈을 주고 꾸민 거짓이었다.아무리 신탁이라고 해도 자신의 아들딸을 희생시킬 부모는 없다. 왕이 움직이지 않자 계모 이노는 신탁 내용을 나라에 퍼트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왕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왕은 어쩔 수 없이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힘든 결정을 내린다. 결국 제단에 바쳐진 프릭소스와 헬레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신전을 에워싸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 구름이 걷히고 보니 신전 제단에 묶여 있던 왕자와 공주가 사라졌다. 어머니 사랑이 일으킨 기적이었다.두 남매를 지켜보던 어머니 네펠레는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자 제우스신에게 남매를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제우스는 전령신 헤르메스에게 부탁해 하늘을 달리는 황금양을 얻어 네펠레에게 주었다. 구름의 요정이었던 네펠레는 그 덕에 신전으로 달려가 운무를 일으켜 두 아이를 숨긴 채 하늘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헤르메스에게 받은 황금양 등에 아이들을 태워, 당시 세상의 끝이라 여겼던 동쪽 끝 아득히 먼 콜키스로 날아가게 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바다를 건너야 했다. 이때 넓게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던 여동생 헬레가 현기증을 일으켜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오빠 프릭소스도 어쩌지 못했다. 동생은 까마득한 점이 되어 포말을 일으켰고, 결국 파도의 먹이가 되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동생 헬레가 떨어진 바다를 헬레스폰토스 해협이라 부르며 안타까워했다.혼자가 된 프릭소스는 흑해를 건너 콜키스에 도착하자 그곳 왕 아이에테스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프릭소스는 신의 계시를 받아 황금 숫양을 제우스 제단에 바쳤고, 아이에테스에게는 황금 가죽을 주었다. 왕은 기뻐하여 황금 가죽을 떡갈나무에 걸어놓고 밤에도 잠을 자지 않는 독룡에게 지키도록 했다. 제우스는 황금 숫양을 가상히 여겨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하게끔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프릭소스는 콜키스의 공주 카리오페와 결혼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향수병이 생긴 것이다. 고향 그리스를 그리워하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이래저래 불운한 프릭소스 삶이었다. ‘친아버지 도끼질하는데 가지 말고, 의붓아버지 떡치는데 가라’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게 들리는 신화다.양자리와 관련된 신화는 여기까지다. 그렇지만 이 신화는 유명한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대모험’에서 바로 이 황금 가죽을 얻기 위해 떠나는 새로운 영웅들이 탄생하는 시점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2-11

유머 넘치는 신화 염소자리

물병자리 남쪽과 궁수자리 동쪽 사이 큰 별과 자잘한 별이 뒤집어진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염소자리다. 황도12궁 중에서 10궁에 속하며 이 별자리 β별인 다비흐(Dabih)가 견우별(牽牛星)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들은 염소자리를 ‘신들의 문’이라 부르면서, 그 문을 통해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난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그리스 신화 대부분이 비극적이거나 영웅적인 내용이지만, 이 염소자리에는 거의 유일하게도 우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판(Pan)은 목축의 신이다. 판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아이러니하게도 오이칼리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다. 판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털이 숭숭 나 있어 어머니조차도 징그럽다며 젖을 물리지 않고 도망쳤을 정도였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희한하게 생긴 아들을 좋아했다. 다른 신들도 늘 명랑한 판을 좋아해서 ‘모든 것’이란 의미인 ‘판’으로 이름 붙여주었다.판이 짝사랑하던 님프 시링크스를 따라갔는데 놀란 시링크스가 급하게 도망치다가 풀로 변했다. 판은 잔혹하게도 그 풀을 꺾어 풀피리를 만들어 불며 들판이나 숲에서 노래와 춤을 즐겼다. 그 피리로 다양한 소리를 내 숲속 님프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잠든 사람에게 악몽을 꾸게 만드는 다소 짓궂은 면도 있었으며, 때때로는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공황(恐慌)을 뜻하는 ‘패닉’ 어원이 판에 의해 생겨난다. 반면에 다소 덜렁대기도 해서 신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어느 가을날, 이집트 나일강변에서 제우스를 비롯해 헤라, 아르테미스, 아폴론 등 올림포스 신들이 모두 모여 성대한 축제를 열었다. 축제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티폰이 공격해왔다. 티폰은 양팔을 벌리면 그 손이 동쪽 끝과 서쪽 끝에 닿는 데다, 머리는 은하수에 다다를 정도로 큰 괴물이었다. 상체는 백 개의 머리를 가졌으며, 하체는 거대한 뱀이 꿈틀거렸다. 타이폰, 즉 태풍의 어원이 티폰에서 유래되었다.당황한 제우스는 물론 신들이 동물로 변신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판이 나일강변에 이르렀다. 그는 물고기로 변해야 했지만, 허둥대다가 주문을 덜 외운 채 물에 뛰어든 탓에 하반신은 물고기로 변했지만 상반신은 염소 모습 그대로 남았다. 정작 이 사실을 몰랐던 판은 마치 자신이 완벽한 물고기인 양 헤엄쳤다. 그 모습을 본 신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신들은 이를 기념하겠다면서 판이 싫다는데도 막무가내로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던 것이다.유쾌하면서도 엉뚱한, 그러나 남을 놀래거나 괴롭히는 신이라니 다양한 신성을 지녔다.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는 스마트폰 천국이다. 그렇지만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범죄에 더 많이 이용되는 현실이다. 선한 사람이 만들면 선한 인공지능이 되고, 악한 사람이 만들면 악한 인공지능이 된다고 한다. 본성 중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장점만 활용해 살아가거나 단점에 지배당하는 삶이 결정된다. 장점만 살려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이나 건전한 사색이 필요하다.신들의 잔치에 나타나 공격했던 괴물 티폰은 어찌 되었을까? 사전에 의하면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잡아, 시칠리아 동쪽 해안 에트나산 아래에 가둬놓았다. 이 산은 지중해 섬들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자연은 간혹 인간에게 경고로써 말을 건네곤 한다. 에트나화산은 2007년 9월에도 분출했다. 티폰이 살아 발버둥 치는 것은 아닐까? 환경은 실천의 문제라고 말이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1-27

슬픈 연인의 신화 거문고자리

옛날에 하프를 잘 켜는 음유시인 오르페우스가 트라키아 물의 님프 에우리디케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어느 날, 에우리디케가 홀로 산책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재배의 신 아리스타이오스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뒤를 따라왔다. 이를 눈치챈 에우리디케가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숲에 숨어있던 독사에게 물려 숨을 거두고 만다.오르페우스는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으러 나섰다가 싸늘하게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오르페우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날 이후 다시는 하프를 켜지 않았다. 슬퍼만 하던 그는 용기를 내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를 찾아가 아내를 데려오기로 결심한다.길을 떠난 오르페우스는 타이나로스 곶에서 지하세계로 통하는 깊게 팬 구멍을 발견했다. 컴컴한 동굴에서는 퀴퀴한 냄새와 음침한 울음소리까지 들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지하세계에 도착한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에게 끌려가게 된다. 오르페우스는 하프를 연주하면서 아내를 돌려달라며 애원했다.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화가 났던 하데스 마음도 하프 소리에 조금씩 풀렸다. 그러나 지하세계에 만의 규칙과 질서가 있었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에게 조건을 걸었다.“아내가 따라가고 따르지 않고는 그녀 의사에 달렸다. 너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뒤를 따를 것이다. 그러니 땅 위에 도착하기까지 말을 해서도 안 되고 뒤를 돌아보아서도 안 된다. 그 약속을 어긴다면 다시는 아내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돌려준다는 말에 기뻐서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정말로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뒤를 따르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옥의 왕 하데스에게 속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동굴은 자신 발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기만 했다. 결국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변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내 에우리디케가 바로 뒤에 따라오고 있었다. 에우리디케가 창백해진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어찌 이러십니까? 저를 믿지 못하셨나요? 약속을 믿지 못하셨나요?”이 말을 마치자마자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하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오르페우스가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자신을 원망하던 에우리디케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산과 들을 이리저리 떠돌다 하프를 가슴에 안고 강에 몸을 던졌다.하프는 주인을 떠나 홀로 아름다운 선율을 내면서 둥실둥실 떠돌다 바다까지 흘러갔다. 그러자 하프 소리에 매료된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다른 이야기도 있다. 죽은 오르페우스가 영웅의 영혼만이 머문다는 낙원 엘리시온(Elysion)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이는 다분히 행복한 결말을 기대했던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거문고자리는 헤라클레스와 용자리 사이에 있다. 이 별자리 α별 베가가 우리나라에서 칠월칠석 때 볼 수 있는 직녀별이다. 견우직녀 사연과 거문고자리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겹치면서 묘한 느낌을 준다.이 신화가 주는 교훈은 사랑에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 앞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란 말이 생략되어 있으니 말이다./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1-13

황금사과를 지키는 용자리

용은 동·서양을 아울러 사람이 만들어 낸 상상의 동물로 신성한 존재로 주목받는다. 특히 동양에서는 제왕의 상징으로써, 임금의 옷을 용포, 앉는 자리를 용상이라고 한다. 또 과거 급제를 용문에 오른다 하여 등용문이라 불렀다. 용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관장하기도 하지만 불을 내뿜기도 하는 무서운 동물로 여겼다.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동물로 나타나기도 한다.별자리 중 북극성 근처에 용자리가 있다. 신화에 의하면 용의 임무는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지키는 일이다. 이 황금사과는 제우스를 비롯해 신들이 노니는 정원에 심겨 있는데, 제우스와 헤라가 결혼식을 올릴 때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신부 헤라에게 선물한 것이다. 사람이 먹으면 늙지도 죽지도 않고 도리어 젊어지는 신비로운 열매여서, 헤라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는 님프 헤스페리데스의 세 자매에게 이 나무를 보호하고 가꾸도록 했고, 용으로 하여금 사과나무를 지키게 했다.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고난의 임무 중 열한 번째가 용이 지키고 있는 황금사과를 훔쳐 오는 일이었다. 헤스페리데스 세 자매 아버지 아틀라스 도움을 받으면 황금사과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티탄족인 그의 일족이 제우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제우스로부터 영원히 하늘(천공天空)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벌을 받고 있었다.어쨌든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를 찾아가 딸들에게 부탁하여 황금사과를 구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평생 하늘을 이고 있어야 하는 아틀라스로서는 자유의 몸으로 돌아갈 다시없는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사연은 각설하고, 헤라클레스가 대신 천공을 떠받치고 있게 한 후 아틀라스가 황금사과를 구해왔다. 그런데 아틀라스는 자유의 몸을 간절히 원했다. 아틀라스가 한 가지 꾀를 냈다. 그가 황금사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자, 헤라클레스여! 그대가 원하는 황금사과가 여기에 있소. 그런데 이 사과를 가져오도록 명령한 에우리스테우스를 내 잠시 만나고 돌아올 터이니 그때까지 잠시만 있어 주시오.”이 말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의 속셈을 금방 알아차렸다. 아틀라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과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이 평생 무거운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헤라클레스는 속지 않았다.“그렇게 하시오. 그렇지만 내 어깨가 아프니 그 위에 천을 댈 동안만 이 하늘을 잠시 들고 있어 주시오.”속으로 쾌재를 부른 아틀라스는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하고는 들고 온 황금사과를 땅에 내려놓고 헤라클레스에게서 다시 하늘을 받아들었다. 헤라클레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땅에 놓인 황금사과를 가지고 왔던 길로 떠나버렸다. 헤라클레스에게 속은 아틀라스 표정을 여러분 나름대로 상상해 보시길 바란다.이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직접 용을 죽이고 황금사과를 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용을 죽이고 황금사과를 구했다는 신화도 따로 있다. 이 별자리는 작은곰자리 끝인 북극성 아래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는데, 헤라클레스자리 발아래에 있어 마치 용의 머리를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상상한 듯하다.그리고 영원히 하늘을 떠받들고 있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아틀라스에 대해서는 더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다. 페르세우스가 머리카락이 수백 개의 뱀으로 된 메두사의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천공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를 만나 하룻밤 묵을 것을 청했다. 하지만 아틀라스는 어떤 이유에선지 거절했다. 화가 난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보여주었고, 아틀라스는 그만 돌로 변하고 말았다. 아틀라스의 이름 ‘tla’는 ‘견디다. 혹은 버티다’란 어원이 들어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0-30

영웅들의 스승이자 인간 삶을 관장하는 사수자리와 남두육성

태양이 하늘의 별자리 사이를 지나는 길을 황도(黃道·ecliptic)라 하고, 이 황도에 자리한 12개의 별자리를 황도12궁이라 한다고 앞서 이야기했다. 황도12궁 가운데 아홉 번째 별자리가 바로 사수자리(궁수자리)다. 여름날 초저녁이면 남쪽 지평선에 S자 모양으로 이어진 웅장한 곡선의 별들이 나타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전갈자리인데 그 옆에서 활을 겨눈 모습을 한 별자리가 사수자리다.사수자리는 머리와 가슴은 사람이지만 아래는 말의 모습을 한, 켄타우로스족 중 한 명인 케이론이다. 일반적으로 켄타우로스족은 성질이 거칠고 난폭했지만(헤라클레스 아내를 유혹하려다 죽은 네소스도 켄타우로스족이다), 케이론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제우스 아버지 크로노스가 아내 레아 몰래 말로 변해서 오케아노스 딸 필리를 유혹해 태어난 아들이다. 케이론은 정의를 중요한 가치로 여겼고, 성격도 온화하고 선량해서 주위로부터 존경받았다. 특히 음악과 무예, 사냥과 예언 등에 뛰어났던 그는 헤라클레스에게 무예와 음악을 가르치는 등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의 스승이기도 하다.케이론은 신의 아들인 만큼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불사의 몸이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실수로 물뱀 히드라의 독이 묻은 화살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히드라 독은 그 어떤 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했다. 불사의 몸인 케이론은 죽을 수도 없어 영원히 고통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제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사의 몸을 양보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케이론은 하늘에 올라가 활을 잡은 모습의 별자리가 되었다.다른 이야기도 있다. 그의 제자인 이아손이 헤라클레스 등 영웅들과 함께 콜키스로 황금 양모를 찾아 떠날 때였다. 이들을 안전하게 인도할 목적으로 스스로 하늘로 올라가 활을 잡은 채 별자리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케이론이 헤라클레스, 이아손, 아스클레피오스 등 뭇 영웅의 스승이지만 별다른 신화는 전해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웅들의 지혜와 무예는 그에게서부터 나온 것이니 그 역할은 중요하다 하겠다.재미있는 것은 이 사수자리에 한국과 중국에서 매우 신성시 하는 별자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수자리 가운데에 작은 북두칠성처럼 생긴 여섯 개의 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를 두수(斗宿)라고 하는데 이는 하늘사당이라는 뜻이다. 이 별들을 북두칠성을 닮았다고 해서 ‘남두육성’이라 한다. 사람들은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별로 여긴 것에 반해, 이 여섯 개의 별을 삶과 장수를 관장하는 별로 여겼다.우연하게도 프로메테우스에게 생명을 양보한 케이론과 삶을 관장하는 남두육성이 같은 별자리에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별을 두고 백사 이항복은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의 충절에 비유했으며, 김시습, 정지상 시에도 등장한다. 고소설 ‘임호은전(林虎隱傳)’에서는 난세를 헤쳐 가는 영웅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렇게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삶과 영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별자리라고 할 수 있다.덧붙이면,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을 받는다. 이때 헤라클레스 도움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케이론에 의해 영생을 부여받는 극적인 드라마틱한 주인공이 되었다. 인간 문화에 공헌했던 그에게 신화를 창조한 인간에 의해 보상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10-16

그리스 최고의 영웅 - 헤라클레스자리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을 꼽으라면 단연 마초적인 캐릭터 헤라클레스다. 헤라클레스는 신들의 제왕 제우스와 페르세우스 손녀인 알크메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알크메나는 티린스의 왕 암피트리온의 왕비, 즉 유부녀였지만 바람둥이 제우스는 개의치 않았다. 제우스는 남편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녀에게 다가갔던 것이다.이를 안 헤라는 화가 머리까지 치솟았다. 헤라는 어린 헤라클레스에게 뱀 두 마리를 보내 죽이려고 했지만, 헤라클레스가 목을 눌러 죽여 버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헤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헤라는 헤라클레스에게 주문을 걸어 아내와 아들을 죽이게끔 만든다. 죄를 뉘우친 헤라클레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를 12년을 섬기며 그가 명하는 12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신탁을 듣게 된다. 해라가 신탁을 통해 헤라클레스에게 고난의 모험을 겪게 계략을 짰던 것이다.처음 ‘사자자리’ 신화 황금사자를 죽이는 일부터, 괴물 뱀 히드라를 퇴치하는 일, 케리네이아 산에 사는 사슴을 비롯해 에리만토스 산의 멧돼지, 크레타의 황소, 괴물 게리온이 가지고 있던 소, 사람 잡아먹는 4마리의 말, 저승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마지막 임무)를 산 채로 잡는 일이었다. 이 외에도 3천 마리 황소가 사는데도 30년간 청소하지 않은 아우게이아스 왕의 가축우리를 정리하는 일, 사나운 새를 퇴치하는 일, 아마존 여왕 히폴리테 띠를 탈취하는 일, 요정妖精 헤스페리데스가 지키는 동산의 황금 사과를 따오는 일 등 모두 12가지의 힘든 업을 모두 마쳐야 했다.이 과정에서 지하세계 하데스에게 사로잡혀 있던 테세우스를 구해주었으며,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었다는 죄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며 바위산에 묶여 있던 프로메테우스를 구출해 주는 등 그의 영웅담은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마침내 고난의 12가지 임무를 모두 마친 헤라클레스는 오이칼리아 공주 이올레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왕이 약속을 저버리자 배신감에 격분한 나머지 오이칼리아 왕자이자 친구인 이피토스를 죽이고 만다. 헤라클레스가 분을 삭이지 못하게끔 꾸민 집념의 헤라 작품이었다. 이에 대한 벌로 헤라클레스는 옴팔로스 나라 옴팔레 여왕의 몸종으로 들어가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영웅의 모습 대신 여장을 하고 3년을 지낸 뒤에야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훗날 자신의 두 번째 아내 대이아네아라를 유혹한 켄타우스로 족 네소스를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네소스가 죽기 전 헤라클레스가 변심하면 히드라의 독이 스민 자기 피를 옷에 발라서 입히라는 거짓말을 아내가 곧이곧대로 믿는 바람에 죽음을 맞는다.하늘의 신들은 지상의 영웅이 죽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으나 제우스만은 그러지 않았다. 비록 인간의 육신은 불에 타버렸을지라도 자기 아들은 영원히 죽지 않음을 알았다. 신들은 헤라클레스를 하늘로 올려 헤라와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고 헤라의 딸이자 청춘의 여신인 헤베와 부부의 연을 맺어 준다.헤라클레스자리는 여름철 북쪽 하늘의 별자리로, 직녀성과 지난번에 다뤘던 왕관자리 중간에서 3등성 이하의 어두운 별들과 더불어 H자를 이루고 있다. 독자들은 직녀별을 찾아 서쪽에 무릎을 꿇고 거꾸로 서 있는 헤라클레스를 그려보시기를 바란다. 중심 부분에 H자로 펼쳐진 별들이 헤라클레스의 몸체인데, 특별히 밝은 별은 없으나 전체적으로 뚜렷한 윤곽을 가지고 있어서 쉬이 찾을 수 있다. /박필우 스토리텔러

2022-09-18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 - 왕관자리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계절 여름밤은 화려한 별들의 축제다. 특히 거문고자리의 α별 베가(직녀별), 독수리자리의 α별 알타이르(견우별), 그리고 백조자리별들 중 가장 빛나는 α별 데네브를 이어서 여름날 별자리들을 찾는 데 길잡이로 이용하곤 한다. 이 별들을 이은 대삼각형 좌를 중심으로 은하수가 마치 강처럼 가로로 길게 흘러 화려하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연출한다.이 삼각형을 이용해 여름철 별자리를 찾아보면 거문고자리와 독수리자리 그리고 헤르쿨레스자리, 왕관자리, 백조자리, 돌고래자리, 전갈자리, 궁수자리, 뱀자리, 뱀주인자리 등을 관찰할 수 있다.지금부터 여름 밤하늘의 대표적인 별자리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자. 헤르쿨레스별자리 바로 옆에는 7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는데 이것이 왕관자리다. 이 왕관자리에는 크레타를 다스리던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 이야기가 담겨 있다.크레타섬은 에우로페의 미모에 반한 신들의 왕 제우스가 소로 변신해 그녀를 등에 태워서 데려간 곳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 미노스가 크레타의 왕이 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크레타 왕궁 깊은 곳에 머리와 꼬리는 소, 몸은 사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가 살고 있었다. 이 괴물은 크레타 왕 미노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한 약속을 어기자 격노한 포세이돈이 미노스의 왕비 파시에에게 저주를 걸어 소와 사랑을 나누게 한 후 낳은 괴물이었다. 미노타우로스는 성질 또한 포악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 자손이자 건축과 공예의 명장인 다이달로스(이카로스 아버지)가 만든 미로 궁궐 속에 갇혀 지내면서 일 년에 제물로 바쳐진 미소년과 미소녀를 7명씩을 받아먹으며 지냈다.아테네 왕자이자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자 7명의 제물 속에 자진해서 끼어들었다. 이때 크레타 공주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의 늠름한 모습에 반한다.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미로를 만든 다이달로스를 만나게 해 미노타우로스가 사는 곳을 알려준다.그리고 실 꾸러미를 주면서 돌아올 때 길잡이로 삼으라고 했다. 테세우스는 그녀 말대로 실을 풀면서 미궁을 찾아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을 따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크레타를 떠났다.그러나 테세우스는 가는 도중에 그만 마음이 변하여 아리아드네를 낙소스 섬에 홀로 버려둔 채 아테네로 돌아가 버렸다. 사랑하는 테세우스로부터 버림을 받은 아리아드네는 낙심하여 울기만 했다.-임신한 아리아드네가 뱃멀미가 심해서 섬에 남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때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나타나 아리아드네를 달래주었고, 이 둘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디오니소스는 행복에 겨운 나머지 아리아드네에게 7개의 보석이 달린 왕관을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아리아드네는 나이가 들어 숨을 거둔다. 디오니소스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신과는 엄연히 다른 인간이었던 탓이다. 디오니소스는 너무나 슬퍼한 나머지 그녀를 영원히 가슴에 묻기 위해 선물로 주었던 왕관을 하늘 높이 올려 별자리로 장식하게 했다. /박필우(스토리텔러)Tip / 소로 변신한 제우스에게 납치당했던 에우로페의 이름을 따 현재 유럽(Europe)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또 발칸반도와 이탈리아반도 사이에 길게 형성된 해안을 아드리아해로 부른 것은 크레타 공주 아리아드네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2022-08-28

견우직녀의 애틋한 사랑

지난 8월 4일이 음력으로 7월 7일, 즉 견우와 직녀가 일 년 중 딱 하루 오작교에서 만나는 칠월칠석이었다. 하늘에 얽힌 전설 중에서 우리에게 견우직녀만큼 친숙한 이야기는 없다. 일 년에 고작 단 하루밖에는 만날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이기 때문이 아닐까.동양에서 견우별은 ‘우리 별자리 28수’ 중 북방7수 7개의 성수 가운데 우수(牛宿)에 속하는 별인데, 서양에서는 염소자리에서 다비흐(Dabih)라고 부르는 β별이다. 그리고 직녀별은 여름밤부터 가을밤 사이, 길게 늘어선 은하수 서쪽에서 청백색의 1등성으로, 서양에서는 거문고자리 α인 베가를 가리킨다. 이 두 별은 해마다 음력 7월 7일이 되면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아주 가까워진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애틋한 전설을 만들어냈다.옥황상제의 외동딸 직녀는 이름처럼 베를 아주 잘 짰을 뿐 아니라 미모 또한 하늘나라에서 으뜸이었다. 구름 옷감을 정성스레 짜고 있는 그녀 모습은 그야말로 선녀가 따로 없었다. 옥황상제는 그런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배필을 구해 혼인시켜주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옥황상제가 은하수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였다.은하수 위쪽에서 황소를 탄 한 젊은이가 늠름한 모습으로 피리를 불며 다가왔다. 목동 견우였다. 평소 견우가 예사롭지 않은 젊은이라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던 옥황상제는 그것이 정말인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소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살짝 찔렀다. 놀란 황소가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견우는 침착하게 소를 진정시키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피리를 불면서 멀어져갔다. 그런 견우의 모습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그를 직녀의 배필로 정했다.그리하여 견우와 직녀는 축복 속에 혼인을 올리게 되었다. 둘은 서로의 사랑이 어찌나 깊은지 신혼 재미에도 푹 빠져들었다. 날이 갈수록 일은 모두 잊어버린 채 그저 놀며 즐길 뿐, 더 이상 소를 치고 베를 짜던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이를 지켜보다 화를 참지 못한 옥황상제는 직녀를 궁으로 데려와 견우와 떨어지게 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직녀는 식음을 전폐한 채 매일 울기만 했다.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딸을 안타깝게 생각한 옥황상제는 일 년에 단 한 번, 견우와 만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대신 예전처럼 견우는 성실하게 소를 키우고, 직녀는 베를 짜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 단 하루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드디어 둘의 만남이 허락된 칠월칠석이 되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둘은 만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까마귀 떼가 날아와 서로 몸을 연결해 다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둘은 까마귀 다리를 밟고 해후할 수 있었다.그때 다리를 까마귀 떼가 놓았다고 해서 까마귀 ‘오(烏)’자를 써서 오작교라 한다. 그리고 칠월칠석에 내리는 비를 일러 둘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는 의미의 칠석비라고 하며, 그 다음 날 동틀 무렵 내리는 비를 두고는 두 사람이 헤어짐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이라고 여겼다.고구려 무덤인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동 고구려 고분벽화(408년)에 은하수 사이에서 소를 모는 견우와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 그림이 발견되었다. 이렇듯 ‘견우직녀’ 설화는 칠월칠석의 민속과 함께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그리고 사람에게 놀고 즐기는 것이 삶의 중요한 요소라면 그러기 위해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 /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8-07

우리 별자리 28수

시간은 공간과 달리 형체가 없다. 따라서 옛날에는 하루 24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의 시간이란 왕이 알려주는 것이었다. ‘관상수시(觀象授時)’라 하여 옛날 제왕들에게는 하늘의 모양을 살펴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임무 중의 하나였다.세종대왕은 장영실에게 명해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만들어 이를 통해 시간을 재서 종을 쳐 백성에게 알렸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종루(현재 종각)를 짓고 하루 두 번 종을 쳤다. 그것을 인정(人定)과 파루(罷漏)라고 한다. 인정이란 저녁에 성문을 닫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28번의 종을 치는 것이고, 파루는 새벽에 성문을 연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33번의 종을 치는 것이다. 28번의 종소리는 밤하늘에 자리한 28개의 별자리에 알려 백성이 편안한 밤을 맞이하라는 뜻이었으며, 33번은 불교의 33천天에 하루를 알리는 시작이라는 의미였다. 또한 새해가 되면 달력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달과 날짜를 알려주었다. 1년 주기의 농사일에 참고하기 위해 양력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여 절기를 정하고 달력에 표시했다. 옛사람들은 시간이란 흐르는 것과 동시에 끝없이 순환하는 것으로 여겼다. 천체의 운동 주기를 일 년으로 하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주기를 한 달로 하였으며, 낮과 밤이 바뀌는 지구의 자전주기를 하루로 삼았다.그렇다면 인정의 의미인 밤하늘 28개 별자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달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약 27일 7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앞서 우리는 지구에서 관찰했을 때 태양이 ‘황도12궁(黃道十二宮)’을 따라 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달도 별자리 위를 움직인다. 이 길을 ‘백도白道’라고 한다.달의 길인 백도와 태양의 길인 황도와의 차이는 약 5°정도 경사각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달이 하늘의 백도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약 28일 동안에 달은 초승달, 반달, 보름달, 반달, 그믐달로 변해간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달이 가는 길을 28등분하여 이 시간을 한 달로 정했다. 이것이 음력(陰曆)이다. 더불어 달이 지나는 길의 28개 별자리를 28수라고 불렀다. 나아가 28수를 각각 7자리씩 묶어 동방칠수, 서방칠수, 남방칠수, 북방칠수로 나눴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을 정했다. 동쪽에는 뿔 달린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상상의 새 주작, 북쪽에는 거북이와 뱀이 결합한 현무가 그것이다.동방7수는 28수 중 춘분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첫째 별자리 각수(角宿·용의 뿔·서양에서 쳐녀자리)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등장하는 7개 별자리 별들을 일컫는다. 북방7수는 하짓날 초저녁에 여덟째 떠오르는 별자리(남두육성, 궁수자리)부터 7개의 별자리 별들을, 서방7수는 추분날 초저녁에 열다섯째 떠오르는 별자리(안드로메다)부터 7개 별자리 별들을, 남방7수는 동짓날 초저녁에 스물둘째 떠오르는 별자리(쌍둥이자리)부터 7개 별자리 성수(星宿·모든 별자리의 별)를 의미한다. 28수를 동양에서만 구분했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1900년경 바빌론에서도 28수로 나눴는데 점차 주변으로 퍼졌다고 한다.참고로 해가 지면 곧바로 깜깜해지면서 별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햇빛의 반사로 하늘이 어둑어둑한 때가 있다. 이를 혼각(昏刻)이라 하며, 해가 뜨기 전에 하늘이 희끄무레해지면서 별이 보이지 않게 되는 때를 신각(晨刻)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이 둘을 합쳐 ‘트와일라잇(twilight)’라 부르며, 동양에서는 박명(薄明)이라고 한다. /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7-24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영양군 반딧불이천문대. /사진제공 = 정종훈 사진작가 하늘에 수많은 별이 알알이 박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심에서는 오염된 대기와 주위의 밝은 불빛으로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먼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욱 많은 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별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우리 인류와 함께해왔다.인간의 상상력은 별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별자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22년, 국제천문연합학회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별자리는 88개였다. 물론 이는 서양의 기준이다. 최초의 별자리는 대략 기원전 3천 년, 메소포타미아 지방 사람들이 만들어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여러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등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기원전 7세기에 이르러 처녀자리, 사자자리 등 모두 36개의 별자리가 완성되었다. 이후 서기 2세기 중엽이 되면서 알렉산드리아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큰곰, 작은곰,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안드로메다 등을 추가하여 48개로 확정 지었다. 이후 별자리는 항해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과 더욱더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천문학 발달에 힘입어 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하는 등 인간들이 지구 반대편까지 오가면서 새로운 별자리들을 만들어낸 것이다.우리나라에도 견우직녀 같은 이야기가 있듯 이집트, 남아메리카, 인도 등지에서도 별자리에 이야기가 입혀졌다. 전설이나 신화에 바탕을 둔 서양과 달리 동양의 별자리에는 생활과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인간 세상을 하늘에 올려다 놓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북극성을 하늘나라 왕이라 여기면서 그를 중심으로 하늘나라 궁전 ‘자미원’, 나랏일을 돌보는 ‘태미원’, 백성이 모여 살아가는 시장 ‘천시원’, 제사를 지내는 ‘하늘사당’ 등이 그것이다. 당연히 장군과 신하별도 있다.먼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양이 하늘의 별자리 사이를 지나는 길을 일러 황도(黃道·ecliptic)라고 했다. 태양이 지나는 길에 물고기자리,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궁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등 12개가 있다. 이를 ‘황도12궁’이라 한다. 이 길을 따라 태양이 일 년에 한 바퀴를 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구에서 보면 태양이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태양 빛이 밝은 낮에 별자리가 보일 리 없다. 그런 까닭에 태양이 움직이고 있는 뒤편의 별자리들이 차례로 바뀌는 것이다. 태양이 조금씩 기울어져 해가 지기 전에야 반대편에 별자리가 나타나기 때문에 밤하늘에는 태양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별들만 보게 된다. 그렇게 사계절을 거치는 동안 초저녁에 나타나는 별자리들이 달라진다.하늘 전체를 사계절로 구분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해 하늘을 360도로 사등분 하여 계절로 나누었을 뿐이다. 그리고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간 뒤 초저녁 밤하늘에 나타나는 별자리를 그 계절의 자리로 정해놓았다. 따라서 밤이 새도록 밤하늘을 바라본다면 최소한 세 계절의 별자리는 확인할 수 있다.별에도 이름이 있다.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별의 이름은 대부분 별자리를 사용하며, 더욱 밝은 별일수록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다. 시리우스, 안타레스, 베가, 알타이르 등 그리스·로마 시대, 그리고 이슬람 문화가 번성하던 때에 붙여진 이름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별의 밝기에 따라 그리스 알파벳 순서로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 제타, 에타, 시타, 이오타 등의 순으로 부른다. 여기에 북극성과 직녀성도 속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별은 여전히 이름이 없다. 그러니 자신의 별을 정해 이름을 붙여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와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7-10

신비한 우주 속으로

우주(宇宙)는, 중국 송나라 육상산(1139~1192)이란 사람이 공간을 ‘宇’라 하고 시간을 ‘宙’라 하면서, 이 두 글자를 합쳐 ‘우주(universe, space, cosmos)’라고 했다.백과사전 역시 우주를 ‘모든 물질과 복사(輻射)를 포함하는 공간과 시간의 전체’라고 이르면서 ‘우주라는 말은 시공(時空)을 뜻할 때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공간·시간을 포괄하고, 지구 밖의 공간을 지구를 둘러싼 원우주(遠宇宙)라고 한다’고 부연하고 있다.이를 보면 우리 동양인들은 우주를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포함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눈에 반짝이는 저 별빛은 수만 년, 아니 수십만 년을 달려온 과거의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사랑이나 종교를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분석적으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변색되듯이 어느덧 동심은 사라져버리고 가슴도 삭막해지게 마련이다.시인 윤동주님은 물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소행성 B612도 빛이 바래지고 말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 역시 글맛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us·85?~165?)는 처음으로 하늘의 별을 세어본 후 모두 6천개에 이른다고 했다. 그러나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웃기는 주장이 되고 말았다.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만 약 2천억~4천억여 개, 우주 총 1천375억여 개의 은하가 존재한다. 지구의 모래알 보다 4~5배 많은, 어쩌면 인간의 상상으로는 가늠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계산해보길 권한다.옛날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서 국가와 개인의 운명을 점치기도 했다. 태양이 달에 가려서 나타나는 일식이나,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위치하면서 나타나는 월식, 낮에 보이는 금성 등 일상에서 벗어난 천문현상이 나타나면 왕은 자신의 부덕함을 반성했고, 백성 역시 재난이나 우환에 대비하는 지혜를 발휘했다.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세웠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라고 하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돌에 새겨 놓았다. 유학자 양촌 권근(1352~1409)은 ‘달걀의 흰자가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우주 역시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있으며, 하늘은 둥글고 끝없이 돈다’고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혼천설(渾天), 즉 하늘은 둥글며 끝없는 일주운동(日周運動)을 이해했다.별도 하늘에 영원히 떠있지 않는다. 사람처럼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란 뜻이다. 우리 태양의 수명은 대략 100억년 정도라고 한다. 현재 태양이 약 50억년 정도 되었으니 앞으로 50억년 정도가 지나면 태양은 이 우주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다른 모든 별도 태양처럼 태어나서 진화하다가 결국 소멸을 맞는다.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질량이다. 질량에 따라 별의 크기와 밝기,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별의 일생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구름이 모여 탄생되고 진화를 거듭하다가 대량의 기체를 우주 공간에 방출하면서 죽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방출된 기체는 다시 모여 다음 세대의 별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처럼 별은 지난 과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우리네 동경과 꿈을 밝혔던 밤하늘에 별은 여전히 무수히 많은 비밀을 품고 있다. 이 모두를 알려고 하기보다, 별을 보며 희망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용기와 사랑을 잃지 않으려는 지혜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별은 태양이 빛나는 낮에도 반짝이니까 말이다./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6-26

별빛, 우리네 소망의 메신저

반짝이는 별을 보며 꿈을 투영했던 때가 있었다. 부족한 것 투성이 삶이었지만, 희망이 있어 행복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팍팍해진 요즘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인 본성을 되돌아볼 기회가 아닐까. 별 시리즈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 꾸었던 아롱진 꿈을 위해서라고 자위한다. 짧은 글이나마 행복했던 추억을 불러내거나, 우리네 소망을 하늘에 전하는 메신저였으면 참 좋겠다.“별들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 때문이야.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할 거야”-‘어린 왕자’중어린 시절,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가슴에 꿈 한 자락 품어보지 않았던 이가 있을까. 광활한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별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의 힘으로 별과 별을 선으로 엮어 그림을 만들고 이야기도 지어가며 상상의 나래를 한없이 펼쳤던 기억들이 있다.어둠이 별을 낳은 저녁이면 밤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산 너머로 별똥별이 떨어지고, 마당 살평상에 누워 별을 장난감 삼아 놀곤 했다. 하나둘…. 그렇게 별을 세다 점점 눈으로 부서져 내리고 알알이 가슴에 박힐 즈음이면 스르르 잠에 빠지곤 했다. 아마 별꿈을 꾸며 단잠에 들지 않았을까.이렇듯 별은 우리네 정서에 짙게 녹아들어 있다. 누구에겐 슬픔을 달래주는 위안으로, 또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이와 행복을 꿈꾸게 하는 설렘으로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주 속으로 달려가는 눈길을 따라 별을 향해 희망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별을 우리네 소망을 하늘에 전하는 불빛으로 여겼던 것이다.“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하략)우리 민족시인 윤동주 님의 ‘별 헤는 밤’이다. 별 하나마다 추억을 담아 우리 민족 정서와 함께하고 있다.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회상, 애환과 미련에 대한 대상, 추억과 생명에 대한 단상 등 삶이 된 별들이 거친 마음을 순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시로 승화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벗 삼아 희망으로, 꿈으로 엮었다.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하늘에 흩어진 별들을 그냥 바라보지만 않았다. 하늘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믿음 자체였던 까닭이다. 밤하늘의 별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홀로 외롭게 떨어진 별은 그리 많지 않다. 무리를 이루거나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옛사람들은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별을 이어 별자리로 만들기도 하고, 견우직녀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참으로 믿었다.얼마 전 고인이 되신 이어령 님 말씀에, 별은 하늘이 만들었지만, 별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다. 같은 별자리를 두고도 민족과 나라에 따라 전설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와 생활방식, 역사 등에 따라 각기 다른 별자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동양과 서양의 별자리가 각기 다른 것처럼 말이다.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하늘에 그려놓았다는 점에서 서양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뒤에 다루겠지만 일상에서 비롯된 기억이나 일상을 함께해온 인물은 물론, 일상에서 마주친 동물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별로 떠올렸다. 별과 나를 엮어 내 별을 점찍기도 하고,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했다. 이는 별 하나에도 자아를 투영해 내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였다. /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