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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헐크 이만수와 프로야구 연승기록

류기찬대구취재본부장삼성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86년도의 16연승 기록이다. 또 85년도에는 전, 후기 포함 7할6리의 승률로 우승. 아직도 그 승률이 깨지지 않고 있고 한국시리즈가 없었던 유일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09년의 삼성은 프로 스포츠 사상 처음인 1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이어 13년 연속 달성 기록에 실패한 이날(지난달 23일) 또 다른 기록의 제물이 됐다. SK가 삼성을 상대로 프로야구 최초로 17연승의 기록을 달성한 것. 이만수에게는 삼성 선수 시절 달성한 16연승과 SK에서 수석코치로서 17연승 기록달성에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만수는 86년도 시즌 당시 김영덕 감독과 재일 동포 출신 김일융(니이우라), 김시진 현 우리 히어로즈 감독, 권영호 현 영남대 감독 등 화려한 투수진과 배터리를 이루었고 함학수, 박승호, 이종두, 배대웅, 김성래, 김용국, 오대석, 정진호, 장효조, 정현발, 이해창, 장태수, 허규옥, 홍승규 등 쟁쟁한 타자들과 호흡을 맞춰 16연승을 기록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22일에는 소속팀인 SK가 삼성을 상대로 승리하며 삼성이 보유하고 있던 16연승에 타이기록을 따내고 23일에는 역시 삼성을 상대로 승리, 23년 만에 17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이만수가 몸담았던 삼성이 기록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당시 16연승의 주인공 가운데 김영덕 감독은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대구상고와 한양대 출신으로 환상의 배터리를 이룬 이만수와 김시진이 SK 수석코치와 우리 히어로즈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 최고의 외야수였던 장태수는 삼성 2군 감독에서 최근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겼으며 유격수와 3루수로 활약했던 류중일과 김용국은 역시 삼성에서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밖에 타격천재 장효조는 삼성에서 스카우트로, 홍승규는 해설가로 활약하고 있으며 나머지 선수들은 대부분 은퇴, 야구계를 떠났다. 이만수는 지난달 23일 밤 대기록 달성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86년 당시 달성한 16연승도 의미가 있지만, 수석코치로서 이룬 17연승이 더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만수는 짧은 소감이지만 두 번의 연승기록 달성에 자신이 포함됐다는 사실과 대기록 달성에 삼성이 제물이 됐다는 점에서 더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만수와 삼성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만수와 삼성의 껄끄러움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만수는 1997년 당시 39세로 40세까지 현역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은퇴 후에는 삼성에서 지도자 생활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이만수는 결국 은퇴를 해야 했고 은퇴식도 없이 자비로 미국 코치연수를 떠나게 됐다. 이어 2003시즌이 끝나고 나서는 삼성 측에서는 김응룡 감독을 필두로 새롭게 코치진을 개편하기 위한 계획에 돌입하게 되고 수석코치에 선동렬, 타격코치에 한대화, 그리고 배터리코치에 이만수를 낙점하고 코치직을 제의하게 됐다. 당시 이만수는 시삭스의 불펜코치(정확히는 불펜포수)가 되어 있었는데 삼성의 코치직 제의를 받아들여 시삭스 측에 사표까지 제출했다. 그러나 이만수의 삼성입단은 결국 무효화 돼 삼성과의 반목이 생길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시 시삭스로 복귀해 불펜코치를 맡을 수 있었고 몇 년이 지나고 나서 국내 프로야구 SK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야구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헐크 이만수. 삼성의 중심 타자였던 이만수는 1984년 한국 프로야구 최초이자 지금까지도 없는 단 하나의 트리플 크라운·타자로서 3할4푼, 23개의 홈런, 80타점으로 당시 최고 영예의 타자에 등극했고 자신의 프로 통산 1천276안타, 252개 홈런, 861타점, 타율 2할9푼6리로 한국의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당연히 회원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프로야구 첫 안타 첫 홈런 첫 타점을 기록한 것도 이만수다. 프로야구 초창기 시절 이만수를 우상으로 여겼던 초·중학생들이 이제는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의 나이다. 이들은 비록 이만수가 SK에 적을 두고 있지만, 대구 구장을 찾을 때면 이만수에게 그렇게 애착을 보이는 것도 그에 대한 보이지 않은 사랑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단연 이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프로야구 초창기의 강타자였고 삼성의 상징이었다.

2009-10-05

정부 비판 주체는 전공노,민노총 아닌 국민

윤종현편집국/부국장최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전공노)의 민노총 가입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이는 공무원들이 정치활동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특히 향후 이들의 활동방향에 따라 국가가 한번이 될지, 두 번이 될지 대혼란 즉 행정대란(行政大亂)이 발생할 것은 기정사실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피해의 대상은 당연히 민원인인 우리 `국민`이 될 것인데, 이 피해를 과연 누가 보상할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지금쯤은 미리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공무원들에 대한 애정(愛情) 자영업자가 몰락하고 있다 현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지만, 실제 서민층 경제는 더욱 궁핍해 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 공무원들이 민노총과 상생(相生)을 한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그네들은 아는지 묻고 싶다. 공무원들의 영향력은 서민 경제와는 직결돼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성하다. 더욱이 관공서 주변 상가의 생사(生死)는 이들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의 경우 관공서가 도시 외곽으로 이전 계획을 세우면 인근 상가는 무조건 반대를 하는 등 그 `시달림`은 곳곳에 볼 수 있었다. 또한 우리네가 공무원이란 직업을 선호하는 것은 어느 직장보다 안정적이고, 신분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식 혼기를 앞둔 부모들이나,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이나, 모든 이들이 공무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는 것 또한 우리네 현실이다.정부 비판은 국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영태 전공노 위원장은 “전공노를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를 향해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면 `정부 비판` 능력이 있는 민노총에 가입하는 게 맞다”며 민노총 가입 당위성을 언급했다. 그러면 국민이 낸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이들이 사사건건 정부와 충돌하는 노조단체와 행동을 같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국민들이 갈등을 원하고, 조장하는 것에 대해 찬동(贊同)과 지원(支援)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전공노가 민노총 가입에 앞서 국민들에게도 찬반 여부를 묻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나 한다. 전공노가 간과한 부분은 이렇다. 민노총은 노조이기 이전에 과격한 정치단체로 활동해 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부당한 사업장에 있어 근로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한 긍정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국가 경제를 흔들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이 최근 발표한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보다 6단계나 하락한 19위로 나타났다. 이 평가 중 핵심사항은 노사협력(131위)을 비롯한 노동 부문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5년 민노총 출범 이후 파업에 따른 국가 경제의 손실액은 수조원대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現代) 관련 노조다. 민노총 최대주주인 이 회사 노조가 연례적으로 한 파업의 영향은 전국 각지 소규모 사업장까지 미치는 등 폭발력을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그런 현대자동차 노조가 최근 민노총 노선과 달리하는 `실용주의`로 돌아섰다는 것은 획기적인 부분이며, 전공노측이 어떻게 받아 드릴지 궁금하다. 이에 앞서 KT, 쌍용자동차 등 대형 사업장이 잇따라 민노총을 탈퇴하는 등 국내 노조가 강경일변도에서 실용으로 변화되는 자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는 데 대해 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묻고 싶다. 공무원은 공복(公僕)이다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각종 법률을 통해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대신에 정치활동과 단체행동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공복의 자세는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안전이 중요한 사명이며, 소금과도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공노의 민노총 가입을 두고 성 어거스틴의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에 버려져 밟힐 뿐이며, 공복이 봉사의 마음을 잃으면 백성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게 마련이다”.

2009-09-28

용광로 같은 뜨거운 포항의 기세를 꺾는 것은

이준택편집국/부국장포항의 기세가 뜨겁다. 스포츠분야에서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경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듯하다. 스포츠분야에서는 스틸러스가 문화에서는 뮤지컬 `시카고`가 그렇다. 여기에다 이명박 대통령의 포항방문은 포항의 기세를 절정으로 몰고 있다. 피스컵의 스틸러스 우승은 포항시민에게 여러 가지를 선사한다. 스틸러스를 살펴보면 특별하게 뛰어난 선수가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스틸러스의 전력으로 우승을 하고 리그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MB방문·스틸러스·시카고의 기세 스틸러스의 우승 동력은 무엇일까. 감독과 선수 개개인의 노력이 첫 번째이겠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화답도 동인이다. 포항제철소 부소장 출신인 김태만 사장의 리더십도 칭찬받아야 한다. 김태만 사장이 내세운 90분간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스틸러스 웨이`는 한국축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결승전은 말 그대로 포항스틸러스 아니 포항시민의 잔치 한마당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들은 축배를 들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날 보여준 선수들의 조직축구는 한국축구의 미래를 보여주는 열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경기는 신났고 포항의 입장에서는 결과도 대만족이었다. 스틸 야드를 찾은 포항시민들은 잔치판에 몰입했다. 전국 최고의 축구전용구장의 매력은 이런 곳에 있었다. 박승호 포항시장이 취임한 후 많은 전국체육대회가 포항에 유치되면서 포항은 스포츠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스틸러스의 우승은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박 시장의 공로도 있는 듯하다. 포항은 지금 뜨거운 용광로의 기세를 받은 스틸러스 등으로 인해 스포츠 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다. 문화분야는 어떤가. 최근 포스코가 마련한 뮤지컬 `시카고`는 포항시민에게 문화의 욕구를 채워주기 충분했다. 18~19일 양일간 효자아트홀에서 열린 `시카고`는 자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했다. 조금 좁아 보이는 듯한 무대에도 불구하고 출연진은 최고의 무대를 선사했다. 시민들은 가을의 초입에서 포스코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시카고`를 보고 돌아가는 시민들 대부분은 아련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모습이었다. 포항의 기세를 정점에 올리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방문이다. 영일만항 개장식에 맞춰서 포항을 찾은 것이지만 취임한 후 처음이라는 명분은 시민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대통령이 무슨 선물을 챙겨 와서 포항의 열기가 고조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고향을 찾은 것만으로 기쁜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대통령의 고향방문은 포항시민들에게 더욱 축복일 수밖에 없다. 연고는 그만큼 중요하다. 스틸러스가 포항을 홈구장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포항시민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고 포스코가 포항에 있기에 `시카고`를 포항시민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것이다.대통령의 포항방문도 그런 의미를 더해준다. 이런 기세 속에 찬물을 끼얹는 일도 있다. 세상일이 다 그런 것일까. 향간에 지역사회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포항시의원의 처신은 아쉬운 대목이다. 선출직은 공인이다. 공인은 지켜야 할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우리가 목자를 존중해주는 것은 그들의 높은 도덕성을 믿기 때문이다. 목자가 도덕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창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 논하지 않아도 공인의 생명은 도덕성임이 분명하다. 도덕성을 잃는 것은 치명적이다. 찬물 끼얹는 포항시의회 최근 일련의 장관검증을 위한 청문회가 화제다. 위장전입, 논문표절은 단골메뉴가 됐다. 그 정도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될 정도다. 그나마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다. 그러나 포항시의회는 아직도 본인은 물론 동료의원들도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는 것도 순리다. 때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지 못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 포항에 불어오는 열기가 너무 고조된다면 자제해야 하지만 찬물까지 끼얹을 필요는 없다. 일부 선출직 공인에 대해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선출직의 도덕성은 지켜져야 한다. 선출직의 높은 도덕성은 대한민국 미래의 열쇠다.

2009-09-21

상소(上疏)

이창형편집국/국장백로(白露)가 지나고 추분(秋分)을 앞둔 가을이다. 신문 기자로서의 일상사가 뭔가 특별할 것이 있을 것 같지만 다람쥐 챗바퀴 돌듯 하니 계절이 바뀌는 것 말고는 별다른 자기 인식에 소홀한 것 같다. 시시각각, 매일매일 사회 구석구석을 체감하면서 감동과 환희도 있을 테지만 요즘엔 썩은 냄새가 온천지에 진동하는 구역질병을 앓고 산다. 그러던 차에 본지 객원논설위원으로 있는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신두환 교수가 낸 책을 한권 샀다. `선비, 왕을 꾸짖다`란 제목의 이 책은 상소로 보는 역사이야기다. “요즈음 어사는 역마를 타고 포졸을 거느리고 마패를 노출시키고 본색을 드러내 뭇사람이 알게 하옵니다. 강산누각과 기암절승지, 이름난 절간을 찾아 활개를 펴고 놀이를 일삼으니 가는 길마다 그 고을에서 알아차리고 극진히 대접하니 이러한 어사는 보내지 않는 것보다 못하고 백성들에게는 도움은 커녕 해만 끼치옵나이다” 평안북도 용천 기생 초월이 헌종에게 올린 상소문 중 일부다. 2만1천여자의 방대한 초월의 상소문은 당대의 시폐를 묘사한 서사와 진솔하고 과감한 표현이 한 시대를 울린 조선 말기 최고의 문제작이다. 자기의 남편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출발하여 임금에 이르기까지 조정의 모든 관료들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당대 최고의 사회고발 상소다. “군왕은 마땅히 경술(經術)을 좋아하여 날마다 유신(儒臣)과 더불어 경사를 토론하고 정치를 토론하여 그 이치를 묻고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룩하기에도 겨를이 없는 터인데 만고에 걸쳐 변할 수 없는 윤상(倫常)을 무너뜨림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 고려 충선왕 때 관리들의 잘못을 따지는 `감찰규정`이란 벼슬에 있던 우탁은 왕이 선왕의 후궁을 범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상복을 입고 도끼를 든 채 대궐에 들어가 왕의 패덕(悖德)을 지적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지부상소(持斧上疏)로서 글자 그대로 도끼를 들고 가서 왕에게 드리는 상소로 `내 말이 틀리다면 도끼로 내 머리를 쳐 달라`며 목숨을 걸고 상소한 것이다. 신하들이 놀라 벌벌 떨고 왕도 부끄러워 다시는 선왕의 후궁과 통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라시대 김후직이 무덤 속에서 했다는 충간은 `묘간(墓諫)`이라고 해 선비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진평왕이 사냥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김후직은 사냥을 그만두기를 간했으나 왕은 듣지 않았고, 김후직은 병으로 죽기 전 왕이 사냥하러 다니는 길가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가는데 어디선가 “가지 마십시오” 하는 소리가 들렸고 왕은 묘에 얽힌 사연을 알고 크게 뉘우쳐 사냥을 가지 않고 정사에 힘썼다고 전해진다. 현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소다. 선조 7년에 율곡 이이가 올린 만언봉사(萬言封事)는 선조가 먼저 상소를 요청하고 이에 답한 상소다. 임진왜란 전 선조는 나라의 병폐를 인식하고 구국의 계책을 율곡에게 요청한 것이다. 1만 글자로 된 장문의 상소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담고 있으며 선조를 감동케했다. 저자는 `상소문은 왕조시대의 사라진 글이 아니라 그 서슬 퍼런 정의감과 직설의 정직함은 오늘을 살아가는데도 절실히 필요한 정론`이라고 정의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간했으며 도끼를 들고 들어가 알렸으며 벼슬을 버리면서 직간을 했다. 머리를 찧으며 이마에 피를 흘릴때까지 간했으며 자결을 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 이것이 바로 선비가 가야만 하는 `우국애민`의 길이었다고 했다. 이 가을, 자신의 몸가짐을 청아하게 하고 지부상소를 올릴 강직함이 있는지, 그 상소를 받을 허물은 없는지 되새겨볼만 하다.

2009-09-14

한 장 남은 가을 잔치 초대장의 향방

`가을 잔치에 초대받자!` 2009프로야구 가을 잔치에 초대받은 4강과 초대받지 못한 4강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초대받은 4강은 소속구단과 선수들은 물론 열화와 같은 지역연고의 팬들과 함께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는 황금색 잔디밭 광장에서 가을 잔치의 풍성함을 맛보게 되지만, 나머지 4팀은 이들 4팀이 펼치는 가을향연에 멋쩍은 박수를 보내며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쓸쓸함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초대받은 4강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희망과 함께 명예와 부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다. 이러한 특권을 주는 가을 잔치에 어느 팀인들 초대받기를 싫어할까. 그러나 그 초대장은 팀당 1백33경기를 치러야 하는 대장정에서 승수에 따라 4팀만이 받을 수 있다. 매년 이 시점이면 프로야구 정규레이스의 4강 윤곽이 어느 정도 가려지고 팀별로 숨 고르기에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막판까지 `가을 잔치` 초대장의 마지막 주인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혼전이 이어지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상위권 순위 싸움은 관중 폭발을 동반했고 이미 2년 연속 500만을 돌파해 6일 현재 531만1천300명이 입장했고 이런 추세라면 이번 주 중 연간 관중 신기록(540만 6천374명) 돌파가 유력하다. 올 시즌은 6일 현재 리그 1위 기아와 2위 SK. 3위 두산이 가을 잔치에 초대장을 예약해놓고 롯데, 삼성, 히어로즈 등 3팀이 4위를 두고 막판까지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기아와 SK가 1, 2위를 차지해 한국시리즈와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는 두 팀 외에 3. 4위는 순위에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가을 잔치에 초대받으려면 리그 4강이 마지노선이다. 결국, 한 장 남은 가을 잔치 초대장의 향방에 팬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한 장 남은 초대장을 노리는 팀은 지난해 8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롯데와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리는 삼성, 또 한 팀은 현재 5위 삼성을 0.5 게임차로 추격하고 있는 히어로즈 등 3팀. 6일 현재 롯데가 600승 63패(승률 0.488), 삼성이 58승61패(승률 0.407)로 승차 없이 승률에서 1리 앞선 롯데가 4위를 삼성이 5위를 달리고 있으며 히어로즈는 56승59패로 0.5 게임차로 4, 5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지난해 8년 만에 가을 야구 한풀이를 해낸 롯데와 극성 갈매기 팬들은 올해도 가을 잔치 초대장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또 지난해 12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오른 `명가` 삼성은 `못해도 4강`이라는 저력을 믿는 분위기다. 선발진도 무너졌고 확실한 해결사도 없지만, 불가사의하게 4위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김시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 2년째인 히어로즈는 현재 리그 6위에 올라 있지만 4·5위와의 승차가 크지 않다. 게다가 6일 현재 총 116경기를 치러 롯데(123경기)와 삼성(119경기)보다 잔여 경기가 훨씬 많이 남았다. 막판 총력전을 펼치기에는 좋은 조건이기 때문에 막판까지 포기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들 3팀은 잔여경기 한게임 한게임을 결승전처럼 치러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결국, 잔여 경기 결과에 따라 웃고 우는 피 말리는 마지막 혈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잔여경기는 롯데가 10경기로 가장 적고 삼성이 14경기 히어로즈가 16경기로 가장 많이 남았다. 일반적으로 잔여 경기가 많으면 순위 싸움에서 유리하다. 특히 히어로즈는 순위 싸움 상대인 롯데, 삼성과 각 3경기 남았다. 특히 잔여 경기 중 3팀이 맞붙는 경기 결과에 따라 4강행 티켓의 향방이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하위 한화와 3경기 남은 것도 괜찮지만, 문제는 히어로즈가 올 시즌 한화와 8승8패로 그리 만만하지도 않다. 롯데와 삼성, 히어로즈는 모두 장단점이 있다. 그러기에 마지막까지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속단하지 못한다. 결국, 9월 셋째 주 또는 마지막 주에 결판이 날 것 같은 한 장남은 초대장은 마지막에 어떤 팀이 집중력을 보이느냐에 따라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이며 잔여경기 결과에 따라 어부지리도 작용할 전망이다. 과연 이들 3팀 가운데 어느 팀이 마지막에 웃을지 주목된다.

2009-09-07

求賢令

`귀화인 공기업 사장 1호`가 탄생했다. 독일 출신의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다. 1978년 한국에 온 그는 본명 베른하르트 크반트 대신 `칼과 도마`를 연상시키는`칼 토마`란 이름을 썼다. 그후 귀화 이름을 이한우(李韓佑)에서 이참(李參)으로 바꿀 땐 `한국을 돕는 사람`에서 `한국에 참여하는 참된 한국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귀화인 공기업 사장 1호가 된 그는 그의 이름처럼 됐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인생의 절반을 이 나라에 바쳤는데, `당신은 이 나라 사람이 아니다`라며 따돌리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외국인이 이 땅에 들어와 새로운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놓겠다며 살아온 인물은 드물지 않다. 조선시대 귀화한 네덜란드인 얀 얀스 벨테브레, 우리 이름으로 박연이다. 그는 1627년 폭풍으로 표류, 경주 앞바다로 흘러들어왔다. 이후 조선 땅에 정착한 박연은 정묘호란 후 군사력 강화가 시급한 조선을 위해 홍이(紅夷)포라는 네덜란드 대포를 개발해 병자호란을 이겨낸 일등 공신이 됐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때 왜병 장수로 한반도에 들어왔다 귀화한 일본인이다. 본명은 사야가. 조선 진주 직후 귀순한 그는 조총을 우리나라에 전해 오히려 왜적을 무찌르는 데 앞장섰다. 그 뒤 북쪽 변방 수비를 자청해 10년간 국경을 지켰고,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도 큰 공을 세웠다. 벼슬이 정2품 정헌대부까지 올랐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을 때는 “어찌 개 같은 오랑캐 앞에 무릎을 굽힌단 말인가”하고 통곡했다. 태조 이성계의 오른팔은 여진족이었다. 퉁두란, 훗날 청해 이씨의 시조가 된 이지란 장군이다. 두 사람은 무예 겨루기로 맺어진 의형제였다. 태조가 물동이를 철환으로 꿰뚫으면 이 장군이 화살촉에 솜을 끼워 쏘아서 그 구멍을 막았다 한다. 조선 개국 9공신 중 한 명인 설장수 역시 위구르 출신의 귀화인이다. 중국어와 유학에 능통해 8차례나 사신으로 활동한 외교 전문가였다. 고려에 과거제도를 도입한 쌍기 역시 중국 후주 사람으로 사신을 따라왔다가 광종의 눈에 들어 귀화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결혼이민자 등으로 형성된 다문화가족이 15만 세대에 이른다. 인구 대비로는 2.3% 수준이다. 이미 다민족 국가 범주에 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지난해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는 명칭을 쓰지 말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다민족 국가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정서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철저한 순혈주의에 갇혀 있다. 이참씨의 한국관광개발공사 사장 발탁으로 이같은 순혈주의가 타파되고 진정한 글로벌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 국가는 물론, 기업들도 영역에 겹겹이 담을 치는 또다른 순혈주의를 지양하고 글로벌 인재영입을 통해 조직의 다양화를 추구할 때다. 빌 게이츠 회장 기술자문역이자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술자인 아눕 굽타 마이크로소프트(MS) 부사장. 핵심인재 영입을 위해서라면 회장 전용기까지 보낼 정도인 MS사는 끝내 이적을 거절하는 아눕 굽타를 확보하기 위해 아눕이 소속된 회사를 아예 통째로 사버렸다. 조조의 재능제일의 인재등용방침이 구현령(求賢令)으로 공포된 역사도 같은 범주가 아닐까.

2009-08-10

누가 회초리를 들 수 있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녀석이 또 말썽을 피웠다. 대한민국의 조변석개같은 교육정책이 대학 입시생으로서는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공부벌레를 양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들은 학교공부가 싫은지 자주 거짓말을 한다. 집으로 온 전화에서 담임선생님은 “애가 정규수업 이후 1시간 하는 보충수업을 이틀이나 빼먹고 홀연히 사라졌다”며 아내에게 짜증을 냈다. 스승이 부모만을 탓하며 마치 “애 교육 잘 시키라”는 투였다고 하니 아내가 퇴근전인 남편에게 전화로 하소연할만 했다. 그날 저녁, 아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았다. 학교 빼먹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야 커가는 애들에게 무슨 큰 허물이 될 수야 있겠냐만 한두번이 아닌 이같은 일에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까닭에 다 큰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게 했다. 학창시절, 그만한 `잔머리`를 굴리지 않은 사람들이 없으랴만, 회초리를 든 아비의 마음이 편치못했다. 새벽, 다리가 퉁퉁 부은 채 자고 있는 아들을 보며 속울음으로 편지를 썼다. “다 큰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 만큼 자격이 있는 아버지는 못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아들을 믿는다”고. `펄펄 나는 저 새가 우리 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즐거이 놀려고 찾아왔도다. 여기에 올라 깃들어 지내며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 전남 강진에서 15년째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이 딸에게 보낸 족자로 만든 매조도(梅鳥圖)다. 매화 가지를 찾아온 멧새처럼 딸과 함께 지내고 싶은 아비의 소망이 묻어 있다. 하지만 출가외인,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다 하면 예쁜 꽃이 진 자리에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듯 기쁘고 즐거운 일이 언제나 가득할 것이란 희망을 전하고 있다. 다산이 보낸 편지는 그의 아내 홍씨가 유배지로 보낸 낡은 6폭의 치마를 잘라 만든 `하피첩(霞陂帖)`. 4첩을 잘라 두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나머지는 작은 가리개로 만들어 딸에게 보낸 것이다. 어머니가 시집 오시던 날 입었던 빛바랜 치마 위에 아버지가 써 주신 훈계의 말씀을 받아 든 자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고 훈계를 할만한 자격있는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라고 자처하는 위인들 역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조직과 국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만 앞세워 짙은 화장으로의 위선을 통해 사리사욕에만 빠져 있다. 정치는 없고 정파만 있다. 필자 역시 부끄런 아비로서 아들에게 매를 들 자격이 있을리 없겠지만,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그 백성들이 아버지를 향해 표출하지 못하는 회초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훗날 그 자식들이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회초리를 들고 호통을 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 스스로 반성할 때다. 가시나무새라는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고 달아나면 수컷이 홀로 남아 알이 부화될때까지 정성을 다해 키운다. 그리고 새끼들은 그 아비의 살점을 뜯어먹고 살아간다. 아비의 희생으로 대를 이어 그 새끼들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보 노무현 중) 비단 가정사만이 아니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알을 낳고 달아나는 무책임한 암컷 가시고기는 없는가. 자신의 살점을 `새끼`들에게 먹이며 정의를 지키고 `파사현정`하는 아버지는 있는가? 배고픈 자식들에게 자기 살점을 뜯게 하지는 못할 망정, 회초리를 들고 호통만 치는 이는 없는가. 자기의 허물을 자식들에게 떠넘기고, 사랑이 없는 회초리로 질서를 고집하는 우리사회의 아버지는 또 없는가. 수신(修身)이 이토록 어려울진대, 제가(齊家)만 고집하고, 회초리를 휘두르며 치국(治國)을 욕망하는 자는 또 없는가. 이 삼복더위에 뼈저린 수신을 위해 피땀을 쏟으며 가시고기같은 태산양목(泰山樑木)이 보고 싶다.

2009-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