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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흔들리는 바다와 등대

어디로 가야 하나. 망망대해 더 넓은 한가운데 거친 파도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좌우로 번갈아 가며 쉼 없이 기울기를 멈추지 않는 바다다. 언제부터였는지, 언제까지 일지, 종잡을 수 없이 점점 더 거칠게 흔들리고 있다. 손을 뻗어 휘저어 보아도 손 하나 걸치고 의지할 곳 없는 바다다. 함께 하자며 위로해주거나 관심 둬주는 이 없는 오롯이 혼자가 되는 바다다. 이상(理想)과 현실이 뒤섞여 파도의 물거품처럼 시야를 가린다. 잃어버린 방향을 찾고자 하는 의지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여기가 어딘가. 나는 무엇인가. 바다는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바다는 태초부터 흔들렸다. 그리고 지구가 사라지고 없어질 때까지 흔들릴 것이다. 바다의 흔들림은 순리(順理)이고 이치(理致)이다. 더 많이 흔들리고 좀 적게 흔들릴 뿐이다.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하여 하늘에서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름에 가려져 있거나 서산 넘어 반대편 세상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태양은 언제나, 어떤 때나, 그 어디에 있다. 마찬가지로 쉼 없이 흔들리는 바다에도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왼쪽과 오른쪽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수 있는 수평선이 존재하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한 줄기 빛으로 방향의 기준이 되어주는 등대가 있다./신연우(사진작가)

2020-12-28

콩나물시루

아내가 관여하는 단체에서 장난감 같은 콩나물시루와 나물 콩을 받아들고 들어왔다. 시루 안 지름이 겨우 12센티밖에 되지 않아 두 식구가 한번 먹을거리도 되지 않을만하게 작았다. 호기심 반, 장난 반의 심정으로 콩을 하루 동안 물에 담갔다 시루에 안쳤다.시루를 식탁 의자 위에 올려놓고 오가며 심심풀이로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콩나물 머리가(대가리가) 커지고 줄기가 나오며 시루 위로 솟구쳐 올라와 무너지려 하였다. 처음 시도하다 보니 요령 없이 콩을 너무 많이 넣은 것이다. 임시변통으로 반 뼘 높이로 테를 매고 나서 사흘이 지나자 또다시 넘어지려고 하였다. 그러자 아내가 묘수를 부린다. 돌아가신 장모님도 이렇게 했다며 짚을 들고 들어와 촘촘하게 묶어주었다. 그러나 자라는 속도를 제어할 방법이 없어 이제 겨우 콩나물 모양을 하고 있는, 넘치는 부분을 뽑아 실로 60년 만에 기른 콩나물국을 끓여 먹었다.밭이 구멍가게이고 텃밭이 반찬가게이던 1960년대 시골에서는 추수를 모두 끝내고 한해 양식인 김장을 담고 나서는 집집마다 콩나물시루를 안쳤다. 한 번에 안치면 한꺼번에 자라 나중에는 발이 길게 자란 뻣뻣한 놈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맨 아래에는 생콩을 깔고, 중간에는 하루 동안 물에 불린 콩을, 맨 위에는 싹이 터서 자라기 시작하는 콩을 올렸다. 안방 따듯하고 그늘진 장소에 두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오가는 식구마다 수시로 물을 주어 키웠다. 가지런히 올라오면서 노란 머리에 모자를 반쯤 벗은 모습이 귀여웠다.추수 후에나 잠시 먹을 수 있었던 하얀 쌀밥을 콩나물국에 말아 김장김치를 올려 먹을 때 정말 맛있고도 행복했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물질의 풍요 속에 희망을 잃어버린 채 흩어져 지내는 오늘보다는, 조금 헐벗고 배고팠지만 기다리는 희망 속에서 가족 간에 사랑을 나누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장난감 같은 콩나물시루 하나가 타임캡슐이 되어 육십 년 세월을 갔다 왔다 하게 한다. /류대열(경주시 외동읍)

2020-12-28

첫눈

11월 27일 올겨울 첫눈이 왔다. 종일 오더니 많이도 왔다. 11월에 폭설이 내린 것은 1966년 11월 2일 이후 처음이란다. 무려 19.4cm를 왔기 때문이다. 겨울 채비로 황량했던 대지도 나무도 흰 솜털 이불을 덮은 것 같다. 갑자기 하얗게 채색된 사위(四圍)가 동화(童話)속의 나라를 연상케 한다. 옛날, 어린 시절 겨울 어느 날, 고향 집, 아침에 일어나면 장독대 위에 하얗게 쌓여 있던 눈, 첫눈만 보면 단숨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다. 동화 속의 나라가 거기쯤일까. 동화속의 나라라면 북유럽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 눈의 나라들에서는 눈을 나타내는 말이 3백여 개나 된다지. 눈을 사랑한 연고일 것이다. 그중에 첫눈은 연인이라는 말도 있겠지.이곳, 토론토, 우리 집 주위, 며칠 전까지 푸르던 나뭇가지는 어느새 눈꽃을 이고 있다. 날씨가 조금만 풀리면 금방 떨어질 눈꽃이지만 절세의 미인이 따로 없다. 사진을 찍었다. 눈이 부시다. 저리도 희고 깨끗한 순백(純白)에 내 마음마저 경건해진다. 다 덮었다. 지상의 잡다한 것들을 포용한 저 순백, 순진무구(純眞無垢), 그래서 더 아름답다.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덮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한다. 순백을 생각하면 신부의 드레스를 빼놓을 수 없다. 신부의 드레스가 순백이어야 할 이유를 눈꽃에서 본다. 순결한 신부, 그는 눈꽃과 같으리라.11월 말부터 겨울이 우기(雨期)인 이곳 캐나다는 사나흘이 멀다 하고 눈이 올 것이다. 그러면 도로 위의 눈은 아스팔트와 함께 짓이겨져 흉한 색깔로 변할 것이다. 그때쯤이면 눈이 원수가 된다. 천대받는 눈이 된다. 제발 눈이 그만 왔으면 한다. 그래도 나는 첫눈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으리라. 아스팔트 위의 눈이 아닌 저 능선을 덮은 하얀 눈을 보리라. 첫눈에 반해서 사랑하고 결혼했다는 청춘남녀와 같이 첫눈이 준 설렘과 환상을 버리고 싶지 않다. 순백의 저 눈이 이 세상의 온갖 고통을 다 덮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첫눈의 감상에 젖는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12-28

우리 집 그녀 이야기

옥상에 그녀가 산다. 이른 봄부터 부지런을 떨어 꽃망울을 맺어 우리 집 옥상을 환히 밝히는 예쁜 그녀, 미니장미. 6월 어느 날 꽃을 잘 기르는 친구에게서 화초를 튼튼하게 해 준다며 비료를 선물 받았다. 한창 꽃을 피우는, 기특하고 예쁜 그녀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 영양제라 생각하며 비료를 한 움큼 넣어주었다.그런데 아뿔싸, 애정이 넘쳤는지, 손이 너무 컸는지, 나의 일방적인 애정행각으로 의도치 않게 꽃이 마르고 초록 잎이 연두로 변하면서 우수수 낙엽 지고 쪼그라들었다. 한창 꽃 필 시기에 황량하게 말라버린 그녀를 보며 어쩌면 우리 애들 키울 때도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았는지, 애들이 원치 않은 방식으로 내 사랑을 강요하며 애들을 쪼그라들게 하지 않았는지, 많이 반성했었다.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국화와 구절초의 계절인 가을도 지나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왔다. 옥상의 꽃들이 거의 다 사라진 뒤라 옥상으로 향하는 나의 발길도 점점 뜸해졌다. 그러다 엊그제, 얼마나 추운지 어떤 외투를 입고 외출하는 게 좋을지 알아보러 옥상에 잠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여름과 가을 내내 힘없이 늘어져 있던 미니장미 줄기에 발갛게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칼바람을 맞고 일조량도, 물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녀 혼자 씩씩하게 피어 있었다. 애썼다 애썼어.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꽃 피워야 할 시절에 나의 실수로 마르고 사그라들어 죽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었는데,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 이 차가운 겨울에 다시 꽃을 피워줬구나.두두물물이 스승이라더니, 예쁜 미니 장미에게서 삶의 의지와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꽃 피우는 자세를 배운다. 그리고 우리 애들도 어설픈 내 사랑을 잘 승화해서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꺾이지 않고 힘차게 살아남아 장미 같은 삶을 꽃피우길 희망해 본다./이홍숙(경주시 안강읍)

2020-12-28

‘엄마를 부탁해’서 찾은 나

전효선씨“너의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고 시작하는 신경숙님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엄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두 아들의 엄마인 나 자신도 생각해 보았다.엄마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가슴 먹먹한 내용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인줄 알고 무엇이든 자식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사람 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도 누군가의 딸 이었거나 한 남자의 여자였으며 사랑 받기를 갈망하는 존재임을 잊어버리고‘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기를 강요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아들에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였고 처음 만나는 세상이었고 울타리였다. 모든 것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그 엄마가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의 곁을 떠나게 되고 힘없고 늙은 엄마는 세상의 울타리가 되어 주기에 너무 작아져 버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엄마를 점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이 책은 생일을 맞아 서울에 있는 자식 집을 아버지와 함께 상경한 엄마를 지하철역에서 잃어버리면서 엄마를 기억해 내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게 된다.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엄마. 같은 걸음으로 남편과 걷기를 바랬지만 남편은 앞장서 가면서 뒤처져 따라오는 아내를 나무란다. 뒤돌아보면 엄마는 항상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나의 삶의 전부를 잃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우리의 엄마를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이에게 부탁을 한다. 엄마를 찾기만 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엄마를 돌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슴이 터질 듯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음을 알고 절망하던 큰아들 형철의 모습에서 우리는 노년의 부모를 책임지기에 버거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전전긍긍한다.가족이라는 이름은 누군가에게 짐이 아니라 같이 있게 행복한 존재들로 남기를 소망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독서모임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이의 글쓰기 선생님을 통해 신문의 독자란에 글을 쓰면서 “나에게도 이런 재주가 있었지”하며 잊고 살던 꿈을 찾게 되었다. 이 또한 엄마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50대 중반에 초등학교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으로서 고단함도 있지만 엄마로서 기쁨과 감사가 더 많다. 13년을 엄마로 살아 그 깊이를 다 알 수 없는 초보 엄마가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쓴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12-21

딸기가 좋아

나는 딸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 예쁜 빨강과 꽃받침 같은 초록의 꼭지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변함없는 조합처럼 질리지 않는 색이다. 점점이 일정한 비율로 박힌 딸기 씨의 그 질서는 또 어떤가! 모나지 않은 삼각뿔 같은 딸기의 모양은 가로로 썰어도, 세로로 썰어도 식욕을 마구마구 일으킨다.잘 익은 딸기의 달큰하고도 아름답기까지 한 냄새를 맡노라면 내 모든 후각세포가 들고 일어나 환호하는 듯하다. 딸기를 씻고서 잘라낸 딸기 꼭지를 주방 싱크대에 두어도 온통 딸기향이 진동을 한다. 작은 몸으로 한 공간을 채우는 녀석의 힘이 대단하다.원래 딸기의 계절은 봄이라지만 찬바람 부는 겨울에 하우스에서 재배된 딸기는 어찌된 일인지 제철 봄딸기 보다 더 달고 맛이 좋다. 농부들이 딸기에게 쏟는 정성이 얼마인지 당도로 짐작할 따름이다. 한겨울에 맛보는 딸기 케이크는 조각난 단면이 어서 한입 커다란 포크로 잘라내 맛보라는 듯 유혹적이다. 봄에 본격적으로 딸기가 재배될 때 알이 좀 작은 것을 골라 잼을 만든다.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덜 달게 하되 알맹이의 과육을 살아있게 끓여두었다가, 푹신한 하얀 식빵에 발라 먹을 때면 입안에 침부터 고인다. 그리고 알이 좀 굵은 딸기는 싱싱한 것을 골라 냉동해 두었다, 여름에 우유나 얼음을 넣고 갈아서 쉐이크나 쥬스로 마셔도 마음이 붕붕 뜨고 좋아진다.크리스마스가 너무 조용하다. 캐럴이 저작권 문제로 거리에서 사라진 지는 좀 되었지만, 지금의 이 고요가 어디 저작권 때문이겠는가. 꿈과 설렘이 있는 크리스마스인데 산타 할아버지는 굴뚝으로 다니니 자가격리는 저절로 되실 듯하다. 집콕 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 딸기를 썰어 생크림을 사용해 산타 딸기를 만들어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올 한 해 우는 일이 많았어도 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달된 것만 같아진다./권마루(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2-21

난 이런 셀러리맨이 좋다

차를 샀다. 지지난해 12월이니 일 년차 무료점검 기간이 지났고 이년이 지나면 무료가 아니란다. 내게 팔았던 그 사나이가 1년이 다가올 무렵 전화라도 주었으면. 차를 판 후로 연락이 없다. 물론 새로운 차가 나왔다고 팸플릿은 고정적으로 온다. 6개월에 한 번 정도 차를 잘 타고 다니는지 안부라도 전한다면. 자동차 서비스공장에 가서 무료 서비스를 받았는지 슬쩍 팁을 준다면 이 사람을 나의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소개하겠다. 하지만 소식이 없다.보험을 들었다. 아들이 길에서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병원에 입원해 수술도 받았다. 보험을 타려니 서류가 참 많이도 필요했다. 또 팩스나 등기로 보험회사에 보내야 했다. 아이가 아픈 것도 힘든데 서류에 또 보험회사에서는 이것저것 따지며 보험금을 쉽게 주지 않으려 했다. 혼자 뛰어다니니 눈물이 났다. 이럴 때 설계사가 찾아와 서류도 알아봐 주고 한다면, 난 이 사람 또한 친구들에게 시간 내서 소개해 줄 것이다. 도배를 하고 나서도 한 달쯤 지나서 우리 집에 다시 방문해서 불편한 건 없나 물어봐 준다면 그 사람 또한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알려주리라. 하지만 아직도 내 주위에 이런 세일즈맨은 없다. 딱 한사람 빼고.그 사람은 남편 후배이다. 자동차 보험을 파는 사람인데 서비스가 만점이다. 어느 날 길에서 내 차가 서버렸다. 연락하니 바로 렌터카를 보내준다며 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렌터카는 개인적으로 보내준 거지 보험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남동생이 빙판길에 사고가 났다. 물론 남편 후배가 일하는 보험사가 아니었지만 내가 조언을 구하자 모든 일을 해결해 주었다. 그 후로 우리 집 모든 형제들 보험은 그 후배에게 들었다. 세일즈는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이다. 팔기 전에 갖은 애교보다 팔고 나서가 더더 중요하다./최순자(포항시 북구 용흥동)

2020-12-21

어머니는 나 자신

‘어둠이 내리면 작은 등불 하나 밝힌다. 암흑의 천지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누구의 호젓한 마음 하나 밝히기 충분한 빛이다. 언젠가는 어두운 밤하늘 수많은 별 중의 하나 되어 영원히 빛날 그 빛이다.’사진에서의 대상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도 하고 그 대상이 과거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도 한다.또한, 내 눈앞에서 존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진에서의 대상은 존재한다는 것과 사라졌거나 사라지리라는 것을 함께 의식하게 되므로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진 이미지의 특성 중 하나인 시간의 다양성이라 하겠다. 따라서 대상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유는 시간의 다양성 선상에 있게 된다.아울러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인간의 심리구조를 인간 상호작용 차원에서 조명한다. 이 이론에 비추어 보면, 어머니는 그 상호 작용의 첫 대상이며 심리구조 형성의 기초가 된다. 어머니에 대한 존재와 부재에 대해 인식하거나 간과(看過)하고 있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개개인의 심상에는 남아 있기 마련이다. 어머니란 존재가 나(자아)를 형성하는 원초(原初)가 된다는 이론은 어머니가 나 자신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나호권(사진작가)

2020-12-21

약봉지

지금 나는 내가 스무 살 일 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열아홉 살부터 아들 다섯을 드문드문 낳았다. 나는 엄마 나이 서른여덟에 늦둥이 고명딸로 태어났다.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런 내가 몇 개월 동안 현실의 아픈 손가락의 고통으로 고생 중이다. 저녁이면 붓고 아프고 구부러지지도 않는다. 밤잠을 이룰 수도 없고 통증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어떤 이는 류머티스라 하고, 어떤 이는 퇴행성관절염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갱년기 증상이라고도 했다.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았다. 원인을 알아야 뭐든 노력해 볼 것 같았다. 한 달째 온갖 검사를 하고 의사는 내 안의 나를 공격하는 놈이 있다며 처방전을 내렸다. 다행히 나는 아직 젊고 그것들은 착한 녀석들이니 두 달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그때는 좀 좋아져 있을 거라고 희망을 던졌다.예전에 아버지가 사 오시던 뻥튀기 봉지만 한 약봉지를 받아들고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무심하게 보아왔던 그분들의 수두룩하던 약봉지들, 마치 고정 멤버처럼 식탁 위에 자리 잡고 있던 어머니 아버지의 약봉지가 자꾸만 생각난다. 그때는 그냥 연세가 들면 어른들은 다들 저런 약들을 드시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 어쩌면 그렇게 어수룩하고 무심한 딸이고 며느리였을까? 멀리 산다는 핑계로 내가 한 일이라고는 빼먹지 말고 드시라고 약봉지에 날짜를 적어드리거나 약 드실 시간에 고작 알림 설정을 해 드렸을 뿐이었다.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약을 타는 것은 늘 부모님 근처에 사시는 오빠나 시아주버님의 몫이었다. 그분들의 그림자 같았던 효심과 수고로움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어느새 내가 그런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러나 아직 누구에게 의지할만한 나이는 아니다. 가족들은 각자의 삶에 바빠 있다. 자신의 일은 자신들이 알아서 해야 할 시대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체감하고 겪어봐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병도 그렇다. 어떤 병이든 자기가 아파봐야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비가 오는 병원 담벼락을 끼고 한 손에 커다란 약봉지를 들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걸었다. 약봉지가 비바람에 흔들린다. 약봉지 크기만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내 마음도 자꾸 흔들린다./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

2020-12-14

거실 공부방

공부방처럼 꾸며진 허명화씨의 거실.거실을 공부방처럼 꾸미기로 했다. 차일피일 미루어둔 일이라 양치 안 한 식후처럼 불편하던 터였다. 거실을 지나다니며 ‘정리를 해야지’하면서 신경이 쓰이는 순간부터 마음도 들쑥날쑥 했더랬다. 며칠 전 집 정리 tv프로그램을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늘 바쁘다는 남편에게 아이들도 자랐으니 거실을 공부방으로 만들면 완벽한 공간이 될 거라고 바람을 잡았다.한 동안 거실을 중심으로 삼고 지내온 흔적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우선 버려야 할 것들을 아이들과 타협해야만 했다. 피아노 위에 도토리 키 재기로 앉은 인형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어릴 적 사촌들에게 받은 거며 벼룩시장을 통해 하나둘 쌓인 것들이다. 이웃에 나눔을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후줄근 한 건 버리고 그 수를 줄이기로 했다.다음은 책장이다. 무엇보다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 떠나보내기 아쉬운 책들과 어린이집과 유치원 때의 추억의 활동 파일들, 학원 수업 자료, 문제집들, 해마다 늘어나는 나와 남편의 책들까지 한 몸이 되어 아우성 치고 있다. 이 공간이 안고 있는 무게를 쏟아내야만 했다. 고심 끝에 방과 거실의 책장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옮기는 건 남편의 몫이다. 키가 높았던 책장이 새로운 장소에서 옆으로 누우니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어울렸다. 서로의 책들을 묵혀둔 빨랫감을 빨아버리듯 말끔히 정리했다.공부방 꾸미기의 가장 골칫거리는 TV였다. 남편에게 TV시청보다 가족 간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보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견물생심이라고 대거리를 해보지만 tv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남편의 지론이다. 그렇다고 방으로 옮기기도 침대위치까지 바꿔야 하는 탓에 쉽지 않았다. 떡하니 놓여있는 tv와 남편을 째려보며 주말에만 보기로 약속하고 한 발 물러선다.옆집과 마주하고 있는 빈 벽에는 방에 있던 세계지도와 대한민국전도를 내걸었다. 탐험가가 되고 싶어 하는 둘째가 지도를 가까이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역사에도 관심이 생기고 지도를 보며 유럽이랑 아시아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니 벌써부터 성공인 셈이다. 비어있는 거실 한가운데는 베란다에 잠들어 있던 긴 탁자를 가져와 책상으로 쓰기로 했다. 탁자까지 자리를 잡으니 시작할 때 그렸던 공부방의 모습이 갖춰졌다.마지막은 이 공간을 채울 우리 가족의 모습이다. 공부방으로 정리된 모습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풀어 놓을 것이고 나와 남편은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책을 볼 것이리라. 때로는 가족회의와 나의 열람실도 되어 주면서. 책상에 앉은 아이들 사이로 초겨울 햇살이 한 가득이다.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빛이 난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우현동)

2020-12-14

책 읽기는 당분간 금지

오늘 사진을 네 장이나 찍었다. 내 모습을 찍기는 오랜만이다. 자세를 잡아주는 남자분의 손길이 조심스럽다. 찍기 전 목걸이가 거슬린다고 빼란다. 내가 혼자 빼려고 애쓰고 있으니 그것도 손수 빼주신다. 자상도 하시지. 목부터 전면 옆모습, 그러더니 누우란다. 난 마지못해 누웠다. 옆으로 돌아누운 모습까지 찍고서야 됐다고 나가 있으란다.의사가 사진을 보더니 목이 많이 삐었단다. 한동안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약도 처방해준다. 그리고 물리치료실로 갔다. 이곳은 물리치료를 잘한다고 지인이 추천한 병원이다. 뜨듯한 찜질팩을 목과 허리에 대고 누우니 잠이 온다. 목에 뭔가 한참을 문질러 주기도 하고 전기 충격 같은 것도 주고 원적외선도 쬐었다.그렇게 오래 기다리니 물리치료사가 나타났다. 아까 다정히 사진을 찍어준 그 사람이다. 다방 면에서 일하는군. 내 옆 침대의 할머니를 먼저 만졌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어떻게 다친 건가요. 손을 잡고 요리조리 움직이게 하고 한참 돌려도 보고는 아픈 데를 찾았는지 치료를 시작했다. 허리벨트 같은 걸 자신의 몸에 두른다. 어머나 왜 자기 몸에 저걸, 하는 그 순간, 그 띠를 할머니 팔에 같이 끼고, 당기고 밀고를 반복한다.그러는 동안 내내 조곤조곤 할머니께 왜 아픈지를 설명하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치료가 끝나자 할머니는 팔을 잘 움직였다. 마법 같다. 내 목도 만졌다. 눕혀 놓고 당기고, 앉혀놓고 인사시키고, 뒤로 젖히고. 그러고 나니 금방 움직여진다. 완벽하게 안 아픈 건 아니지만 움직임이 훨 편해졌다.책 읽기는 당분간 하지 말아라, 스마트 폰도 들여다보지 말라는 잔소리가 듣기 싫지 않다. 만지는 솜씨도 좋지만 잘 들어주고 환자들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차분히 답해주는 게 환자들의 마음을 낫게 하는 거 같았다. 집에서 한참 먼 거리라 세 시간은 비워야 가능하지만 낼 또 가야지. /김상동(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2-14

뚝방길

자다가 떡이라더니! 집 옆으로 흐르는 동천강 상류를 정비하면서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한 뚝방길 산책로가 생겼다. 동천강은 외동읍 북쪽 어디에선가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 울산 태화강과 합쳐지면서 동해로 흘러 들어간다.뚝방길 서쪽은 강이고 동편에는 작지 않은 들판이라서 양편의 풍광이 사철 바뀌게 된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는데도 세월은 흘러간다. 찬바람과 함께 들국화가 피고 갈대 순이 펄럭일 때 들판은 노란색이 짙어지며 황금색으로 변한다. 가끔씩은 인기척에 놀란 꿩이나 고라니가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뚝방길 끝부분에는 우람한 정자나무가 네 그루가 있었다. 매년 태풍에 시달리며 모두 북쪽으로 비스듬하게 서 있었는데 올여름 모진 태풍을 맞아 거대한 나무 두 그루가 세로로 절반으로 갈라지며 넘어져 버렸다. 아쉬운 일이지만 자연의 조화를 누가 말릴 수 있는가. 여기부터 백 미터 구간은 조금 비탈길이다.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부부 사이이지만 이 구간은 팔짱을 끼고 내가 끌며 올라간다. 그때, 나는 심청이고 남편은 심 봉사라며 한번 웃는다.출발하는 시간이 해뜨기 삼사십 분 전이므로 산책길에서 매일같이 새로운 아침 해를 맞는다. 해 뜨는 방향으로 서서 눈을 감고 두 팔다리를 벌려 나무처럼 서서 아침 해를 맞는다. 햇살이 얼굴을 더듬을 때 눈꺼풀 속 눈알이 따스해지며 해 뜨기 전의 냉랭함은 햇살과 함께 온기로 바뀐다. 빛과 열과 에너지가 혼합된 따스함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이 감촉이 좋고, 이 시간이 좋다. 사람도 해가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식물에게 햇빛은 생명의 원천이다.추수가 끝난 들판은 삭막하다. 논마다 하얗게 포장된 소먹이 짚 둥치만이 널려있다. 산책길 좌우로 하얀 갈대가 서리를 머리에 이고 흔들릴 때, 모든 초목은 생명을 숨기고 새봄을 기다린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이말필(경주시 외동읍)

2020-12-07

할머니는 일학년

저녁 먹고 나니 잠이 쏟아진다. 소파에 누워 스르륵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얼마나 잤을까? 깨어보니 밤 12시가 다 되어 간다. 다들 잠자리에 들었기에 나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잠을 재촉해도 눈이 말똥해졌다. 30분 뒤척이다 다시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다들 잠든 밤이니 스펙터클한 영화도 싫고, 살인이 난무하는 서스펜스는 어깨가 아파 더 싫고, 호러 영화는 무서워서 혼자서 보는 것은 무리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박한 영화를 골라야지 하며 쭈욱 둘러보다가 고른 영화가 ‘할머니는 일학년’이다. 다큐멘터리인가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가슴이 저리기 시작한다. ‘집으로’영화가 떠오른다. 하지만 ‘집으로’ 영화보다 조금 무게감이 있다고 할까. 장면마다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대사가 많거나 아주 슬퍼서라기보다는 그저 눈물이 났다.아들을 홀로 키웠던 까막눈의 할머니, 엄마를 잃고 새로 얻은 아빠까지 사고로 잃은 일곱 살 여자 아이 동이, 베트남에서 시집와서 노름꾼 남편과 팥쥐 엄마 닮은 시어머니를 둔 며느리, 이렇게 셋이 한글을 배우는 이야기이다.할머니는 아들이 사고로 죽으며 남긴 수첩을 유품으로 받았다. 거기에 적힌 아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읽지 못하니 안타까워 초등학교에 무작정 찾아간다. 배경을 자세히 보니 시월에 수업을 다녀온 영양의 초등학교였다. 동네로 달려가는 버스가 지나친 길은 주실마을 앞 숲길이었다. 영양에서 찍었구나 싶어 자막이 올라갈 때 도와주신 분들의 이름까지 자세히 읽었다.세 사람이 글을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를 의지한다. 할머니는 글을 배우자 세상에 대해 문을 열고, 베트남 새댁은 남편을 집으로 들어오게 하는 쪽지를 쓰고, 동이는 가족을 얻는다. 글은 이래서 배워야 한다. 글자는 더 큰 세상으로 가는 문이 되어 주니까. 새벽까지 나는 실컷 울었다. 눈은 퉁퉁 부었지만 밤낮없이 돌아다녀 몸살이 날 것 같던 내 몸이 가뿐해졌다. /이향기(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2-07

복돼지

눈을 번쩍 떴다.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잠에서 깨었다. 옆자리 남편도 눈을 떴다. 동시에 일어난 셈이다.평소보다 한 삼십분 일러서 뭉그적거렸다. 옆으로 얼굴을 돌려보니 기분이 좋은 듯 남편이 혼자서 실실 웃고 있었다.꿈을 꾸었단다. 그것도 얼굴이 하얗고 토실토실한 복돼지 꿈이란다. 화들짝 놀랐다. 시집간 딸은 이미 만삭이고 여러 사람이 태몽을 들고 나왔기 때문에 태몽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재물이 들어 올 꿈이 아니던가.바싹 다가들며 자세히 말해 보라고 했다. 복권을 사야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복돼지 꿈은 확실한데 옆에 누가 있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복스럽게 생긴 개였다고 했다. 나는 “에이, 개판쳤네.”라며 아쉬워했다. 해몽은 성급히 했으나 미련을 지울 수가 없었다.아침 출근시간이라 잠시 꿈 이야기를 접어두고 각자 할 일을 했다. 출근을 하면서 꿈속의 개는 생각나지 않고 통통한 복돼지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 덕분인지 콧노래를 부르며 하루가 즐겁게 지나갔다.퇴근 후 저녁밥을 지었다. 인근에 살고 있는 딸이 왔다. 쓱 지나가는 말로, 요 앞에서 직장 동료를 만났다고 했다. 이 동네로 이사를 했다는 동료는 얼마 전에 구입한 세탁기가 너무 커서 이사한 집에 맞지 않다고 했다. 구입한 가전회사에 수거 부탁을 하니 구입 가격의 10%만 보상이 가능하다고 한다며 너무 아까워했단다.나는 귀가 번쩍거렸다. “그 세탁기 내가 사꾸마.” 손가락을 브이로 보이며 두 배를 주겠다고 했다. 당장 연락해보라고 다그쳤다. 그러면서 아침에 있었던 복돼지 꿈 이야기를 꺼냈다. 그 동료가 큰집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세탁기에도 복이 묻어 있을 거라며 웃었다. 어릴 적에 부잣집 농을 사면 재물복도 같이 따라 들어온다는 어른들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순식간이었다. 딸의 도움으로 세탁기가 아주 쉽게 성사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세탁기는 딸이 초등생일 때 구입된 거라 오래 되었지만 요즘 나오는 세탁기가 워낙 비싸서 망설이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신제품 세탁기를 들인다고 생각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남편의 복돼지 꿈 덕분이다. 개판을 쳐도 이 정도인데 꿈속에 개가 없었더라면 우리 집에 무엇이 들어왔을까? 생각하다가, 가만히 있는 개를 내 멋대로 홀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복돼지랑 개, 딸이랑 동료에게 무지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최경하(경주시 현곡면)

2020-12-07

토마토와 시금치

평상시 꼭 챙겨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값이 뛰면 괜히 더 먹고 싶어지고 생각나는 건 나만 그런 걸까?몇 년 전 수박값이 폭등했을 때 그랬고, 올해 긴 장마와 잦은 태풍으로 토마토 공급이 어려워, 패스트푸드 햄버거 매장에서도 토마토는 넣어 드릴 수 없다는 사과문까지 나온 요즘,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 파스타가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샌드위치에도 구운 토마토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영락없는 청개구리 같다.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낮은 온도의 오븐에 구워(꽤 긴 시간 공을 들여)낸 구운 토마토의 달달함은, 당류가 들어간 음식의 스윗함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 난다. 마트에서 소포장으로 토마토나 방울토마토를 사다 먹다가, 결국 꽤 센 가격표가 부착된 방울토마토를 상자째 사 와서, 물에 씻고 식초 탄 물에 담가두었다 다시 헹구고 오븐 예열을 시작했다. 오븐 팬에 유산지를 깔고 반쪽 낸 토마토를 조심스레 가지런히 놓고선 오븐에 넣어 굽기 시작했다. 구워지는 동안 샐러드로 먹을 어린잎 시금치도 씻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썰었다. 이탈리아 국기 색을 나타낸다는 마르게리타 피자에서의 녹색 담당 루꼴라처럼 오늘 여린 시금치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며칠 전 코로나로 집밥의 횟수가 늘며 자칫 빠지기 쉬운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먹으면 좋은 식재료들을, 다섯 가지 영양소로 구분해서 설명해 놓은 잡지 기사를 봤는데, 시금치에 네 개 부분의 영양소가 모두 들어있었다. 비타민A와 C, 칼륨, 엽산이 풍부하다는 기사를 보면서, 아주 예전에 뽀빠이라는 만화영화에서 시금치만 먹으면 팔뚝 근육이 순간 솟아나는 뽀빠이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채소를 먹이기 위한 전략만 들어있는 것이 아닌, 이유 있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잘 구워진 토마토를 옮겨 식힌 후, 시금치를 깔아둔 접시에 담고 발사믹 시초와 올리브유를 섞어 두른 한 끼 샐러드가 완성됐다. 시금치를 먹기 꺼렸던 아들도 두 손 엄지 척이다./권현주(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1-30

길 위에 서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걸어왔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길이었고 순식간에 지나간 찰나였다. 세상은 헤쳐 나아가야만 하는 거친 정글이라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걷기만 했던 지난날이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자신감이었다. 이제와 잠시 내려놓고 뒤돌아보니 참으로 만만치 않았던 길이었다. 길의 마디마디를 넘을 때마다 어김없이 치열하고 비장한 전투였다. 죽기 살기로 덤비고 이기려 안간힘을 다 쏟았었다. 그렇게 힘겹게 마디마디를 넘길 때면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위안 삼았고 자신을 대견해하며 칭찬하고 위로했었다. 매 순간 임전무퇴의 각오로 전투에 임하듯 비장했었고 필승의 각오로 임했다.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나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음 전투를 준비해야 하는 긴장감으로 곳곳에 난 상처가 아물 겨를도 없었다. 상처를 치유하고 나를 뒤돌아보며 나를 쉬게 할 여유를 나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만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그 순간에도 소중함이 내 안에 담아지기 때문이다.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옹이 없는 나무 없듯이 돌부리 없는 길 없으니 넘어지지 않고 상처가 남겨지지 않게 쉬어가며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유병재(사진작가)

2020-11-30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수첩을 선물 받았다. 초록색 표지의 스프링 형식이었다. 손바닥만 한 공책을 보니 또 다른 공책이 떠올랐다.남편과 연애 시절이었다. 삐삐로 소식을 전하던 시절이었지만 내겐 그런 거 하나 가질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보는 사람이었지만 편지를 썼다. 하지만 보내면 늘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저 스프링 공책이었다.내가 먼저 마음을 적어 주고 다음 만날 때 써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안 썼다면 나오지 말라는 반협박을 얹어 주었다. 1년 동안 연애하며 그렇게 손바닥만한 공책 한 권을 주고받았다.세월이 지난 어느 날, 아들과 책꽂이를 정리하다 그 스프링 달린 공책을 보게 되었다. 이게 뭐지 하며 들쳐 본 아들이 큰소리로 읽어주기 시작했다. “H에게” 아들이 첫 구절을 읽으며 닭살 돋는다며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웃는다. 가로등을 배추꽃으로 표현한 남편의 편지, 글씨도 궁서체로 반듯하게 썼다.아들도 오래도록 ‘모태 솔로’이더니 군대를 다녀와서 연애를 시작했다. 과 후배와 캠퍼스 커플로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20대를 데이트도 하며 좋은 사람도 만나 편지도 보내라고 등을 떠밀었다.아들의 눈에 나이 든 엄마와 아빠가 닭살 돋는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가 보다. 또 휴대전화를 몸에 붙이고 다니며 카톡으로 빠르게 마음을 전하는 시대이니 이렇게 종이에 글을 써서 주고받는 연애가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라떼는 말이야, 꼰대처럼 우리 때는 단짝 친구와도 비밀노트를 주고받았고, 위문편지도 쓰고, 일기장에 자물쇠도 달아놓고 썼다는 ‘썰’을 풀었다. 이런 게 진짜 연애지 하며 뻐겼다. 아들은 아버지의 연애편지와 아버지 얼굴을 번갈아 보며 키득거렸다. 그런 아들을 향해 묵묵히 책 정리만 하던 남편이 한마디 던졌다.“나도 내 손을 찍고 싶다.”/이규헌(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1-30

융통성 있는 여자

라넌큘러스의 계절이다. 개구리 왕자처럼 볼품없는 미나리 같은 줄기에서 장미처럼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이 있다. 바로 라넌큘러스. 이름도 개구리를 뜻하는 라틴어 ‘라이나’에서 유래했는데, 주로 연못이나 습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300장이 넘는 하늘하늘한 꽃잎이 둥글게 포개져 있어 얼핏 보면 장미로 착각하기 쉬운데, 겉모습은 습지가 아니라 볕이 잘 드는 정원에 피어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생김새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꽃이라 습도가 맞지 않으면 쉽게 잎이 마르거나 시들어 버린다. 게다가 두꺼워 보이는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어 꺾어지기 쉬우므로 살살 다뤄야 한다.꽃병 속 꽃을 오래가게 하려면 아스피린을 넣어주라는 기사를 어제 봤다. 집에 아스피린은 없고, 타이레놀이 있길래 넣어주고는 걱정이 되어 밤에 약사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타이레놀도 괜찮지? 하고 물었더니 아침에 연락이 왔다. 아스피린은 산성이라 오래가게 할 수 있는데, 타이레놀은 아니란다. 이런!아침에 약물 오남용으로 축 처진 라넌큘러스 버터를 보니 미안하다. 그래서 얼른 줄기도 자르고 물도 갈아줬다. 약에 대해 잘 모르면서 적극적인 융통성을 발휘하는 건 위험하니 특히나 조심해야겠다. 융통성 발휘의 나쁜 예다.약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까스명수이다. 어릴 적 배앓이 할 때마다 엄마가 사주신 약이다. 그 맛이 어찌나 맛난지 먹고 싶을 때마다 융통성을 발휘해 배가 아픈 척을 했다. 엄마는 장에 넣어두었던 한 병을 꺼내서 따 주셨다. 아 감질나는 양이었다.어른이 된 지금은 소화 안 될 때 내 몸무게를 생각해 꼭 두 병씩 먹는다. 한 병은 성에 차지 않아서이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건만 병의 크기는 왜 아직 그대로인지. 요구르트도 대용량이 나왔는데 까스명수는 왜 큰 병을 안 만드는 걸까.장식장 위의 라넌큘러스가 물끄러미 이런 나를 본다. /이홍숙(경주시 안강읍)

2020-11-30

조바심내다

할머니가 조를 추수하고 있다. 창 넓은 밀짚모자를 쓰시고 동그마니 앉아서 조 이삭을 말려 두드리고 있다. 가까이 가 보니 손에 든 것은 법주 빈 병이다. 그 모습이 재밌어 옆에 앉아 이것저것 여쭈었다. 이거 떨어서 뭐 하실 건지, 자식들 오면 준다기에 자식은 몇이나 되는지, 얼마나 자주 오는지 묻자, 좋은 회사에 다닌다며 자랑도 하셨다.친구 아들이 주말에 에버랜드를 다녀왔단다. 사진을 보니 신난 표정이다. 그런데 돌아다니다 용돈을 잃어버렸단다. 에고, 아까운 거, 얼마나 속상했을까. 내 어릴 적 그날이 떠오른다. 할아버지 삼촌이 집에 다녀가시면서 주신 용돈을 모으고 모아 운동회날에 군것질하려고 들고 갔다. 체육복 주머니가 얕아 어디서 흘린 건지 솜사탕 하나 겨우 사 먹고 하늘로 날아간 내 용돈. 학교 운동장 가의 나무 밑에서 기다리던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달려갔다. 잃어버린 돈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울먹거리자 삼촌이 잃어버린 니가 죄 많다고 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길질을 하며 울어버렸다. 그걸 위로라고 하는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서럽다.오래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상처를 줬다. 가슴이 너무너무 아파서 놀러 온 친구에게 넋두리했다. 그럼 그 사람이랑 다신 보지 말면 되겠네 한다. 그걸 위로라고.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거지. 누가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했나.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거지. 어줍잖은 충고를 하라고 했나. 속상하겠다 하며 밥이라도 먹든지 소주 한 잔이라도 따라주면 그만인 것을.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은 위로하는 방법을 모른다. 운전면허처럼 위로면허도 따도록 법으로 정하면 좀 나아지려나.타작한다는 말을 옛날에는 ‘바심’이라고 했다. 조를 추수하면 그것을 비벼서 좁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쉽게 비벼지지 않는다. 그래서 방망이로 두드려서 떨어낸다. 쪼그린 할머니 옆에 앉아 법주 한 병 나발불고 해질 때까지 조바심이나 내야겠다./이지헌(구미시 양호동)

202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