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침 일찍 걷기 운동을 한다. 반환지점에서 다시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여우를 만났다. 캐나다 토론토 시내에서는 흔한 일이다. 허리는 길고 빼빼하게 생겼다. 하기야 살찐 여우를 본 일은 없다. 언제인가 골프장에서 여우를 두세 번 본 것 외에는 보지 못했다. 그랬는데 오늘은 동네 안에서 여우를 만난 것이다. 동네 안에서 여우를 만나기는 처음이다. 의외였다. 마침 주위에 걷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우와 나밖에 없었다. 내가 일부러 여우를 쫓는 척 하면서 뛰어서 가까이 갔다. 그러나 그 놈은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살살 도망을 갔다. 계속 따라갔다. 그랬더니 그놈은 얼른 길을 건너서 다른 집 방향으로 갔다. 나는 여우가 간 그 집 앞뜰을 유심히 보았다.그러는 사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다람쥐 한 마리와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쏜살같이 길을 건너 도망을 쳤다. 그 뒤를 여우가 따라가고 있었다. 토끼는 멀리 도망가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람쥐는 길을 건너 계속 도망가지 않고 땅을 뒤지고 있었다. 어느 사이 여우가 다람쥐를 물었다. 나는 다시 여우를 쫓아갔다. 그놈은 잡은 다람쥐를 입에 물고 여유 있게 길을 건너 어느 집 뜰 앞에 갔다. 입에 물었던 다람쥐를 한두 번 더 물었다 놓았다. 그 사이 다람쥐는 죽은 것 같았다.내가 얼른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내손에 폰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이때 새총이라도 있었으면 저 여우놈을 향해 쏠 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여우는 지금 아침식사를 준비를 잘하고 있는데 잘못하면 내가 방해꾼이 되는 셈이었다. 이른 아침에 여우가 나타난 것은 그 놈도 아침에 일어나 배가 고프니까 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이곳은 널려있는 것이 다람쥐다. 약육강식, 다람쥐는 결국 여우나 코요테 같은 짐승의 밥이 된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07-27
금장대 암각화에 얼굴이 있다.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생식기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했음을 알 수 있다.나는 어머니와 동네에 위치한 금장대와 암각화 근처로 자주 산책을 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어머니는 바위에 새겨진 사람 얼굴과 발자국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신기해하셨다. 긴 세월동안 암각화는 점점 닳았고, 어머니도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서 생을 마감하셨다.어머니 방에는 늘 약봉지가 많았다. 오래 전부터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장의 역할을 하시느라 골병이 들었던 것이다. 통증이 심한 날은 약을 한줌씩 털어 넣었다.어머니가 화장실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갔을 때, 백혈병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나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암제를 투여하면서 부작용은 어머니를 더 힘들게 했다.마냥 병원에 있을 수 없어 퇴원을 했다. 그 무렵 치매도 심해져 내게 걸려오는 전화는 일을 못 할 정도로 잦았다. 결국 ‘세상에 오직 한 분’이라는 번호를 차단하기에 이르렀다.어쩔 수 없어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매달 몇 번씩 수혈을 반복했지만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만 갔다. 심신이 지칠 때면, 암각화 앞에서 합장하며 병을 낫게 해달라고 소원했다.시간이 흐르면서 병세는 급성기로 전환되었다. 수혈빈도가 잦아지자 이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어린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밥을 굶기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처럼 절박한 심정이었다.어느덧 황금빛 들판도, 붉은 단풍도 사라져갔다.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마음에 바위를 매단 듯 무거웠다.바람이 세차게 불던 저녁 무렵, 병원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임종으로 가는 힘든 순간을 버티며 막내를 기다렸던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미 삶의 마지막 고개를 넘고 계시는 상황이었다. 차가워지는 어머니의 볼을 쓰다듬으며 ‘이제 마음을 내려놓으세요’라고 달랬다.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후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어머니와 병원을 오가던 시간은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다. 일을 핑계로 걸려오던 전화를 차단한 죄스러움은 오히려 간절한 바람이 되었다.어머니께서 마지막 한 줌 재로 이승을 떠난 후에도 자주 암각화를 바라보곤 한다. 나도 모르게 바위에 새겨진 얼굴을 어루만지고 발자국을 따라 금장대를 거닌다. 내 마음 속에는 암각화의 얼굴처럼 어머니가 깊이 새겨져 있다./배만식(경주시 현곡면 안현로)
2020-07-20
어스름 해질녘에 길을 나선다. 물 한 병 챙기고 작은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자전거에 오르면 길 나설 채비는 끝났다. 오늘 하루의 시름은 잠시 내려놓고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게 나서는 나만을 위한 나의 길이다. 자전거는 동네 어귀에서 불 밝힐 채비를 하는 가로등을 지나 포항 형산 강변 자전거 전용 길로 접어든다. 강바람의 익숙한 인사는 오늘도 새롭다. 해 질 녘 하늘은 짙푸른 미소로 내 몸을 감싸 안고 오늘의 노고를 위로한다. 매일 아침 서둘러 지났던 넓고 빠른 시커먼 출근길은 저 멀리서 이방인처럼 어색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형산강의 자전거 길은 오늘도 익숙하게 그리고 새롭게 나와 하나가 된다.오늘은 형산강 에코 생태전망대에서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목을 축인다. 형산강 프로젝트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17년에 개장한 에코 생태전망대는 철새를 주제로 한 ‘증강현실(AR)영상관’과 ‘철새전시실’ 그리고 형산강을 찾는 철새들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탐조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나는 목을 축이고 숨을 고르며 나의 내면에서 존재하는 고정 관념적 시각을 비우고 지금 감성에 충실한 셔터를 누른다.‘자전거 산책’의 사진 작업은 20세기 초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과 이미지에서의 선, 형태, 색채 등은 표현가능성 만을 위해 사용하는 ‘표현주의(Expression ismus)’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나는 왜곡과 강렬함, 그리고 강한 과장은 최소화하고 즉흥적이며 순간적인 감정을 최대한 표현하여 철저히 여행자 시각으로 대상과 마주하려 한다. 이러한 나의 사진 작업은 내 삶에 중요한 힐링 포인트가 된다./정태용(사진작가)
‘마음아, 넌 누구니?’ 책 표지.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도덕주의적 판단을 내리고 타인을 비판하기 일쑤인 사람이 가까이 있는가?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본인은 욱하지만 뒤끝 없는 쿨 한 성격일 뿐이라고 하며, 감정을 쏟아 붓는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은 감정 쓰레기통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화를 잘 내거나, 타인을 비판하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두어 이러한 괴로운 인간관계를 멀리 하여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반복될 고통의 관계가 남아 있을 것이다. 타인의 비판과 화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거나, 스스로 화를 추스르기 어려워 타인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잦다면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 작가의 ‘마음아, 넌 누구니?’와 마셜 B.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이들 책에 의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은 충족되지 않은 자기 욕구의 왜곡된 표현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관계 속에서 폭력을 부추기는 것이다’라고 한다. 비판받는 사람도 폭력에 노출되지만, 비판하는 사람도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표현하여 부정적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고 부정적 단어에 갇힌 삶을 살게 된다. ‘말은 마음의 창, 아니면 벽’이라는 루스 베버마이어의 말이 참으로 와 닿는다. 화 잘 내는 것도 성격이라 생각하는 무지에서 벗어나려면 감정을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감정소통을 하려면 상대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성숙되게 표현할 수 있는 마음 훈련을 해야 한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인간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고, 디딤돌로 작용하도록 비폭력대화의 방법을 익혀야 한다. 비폭력은 우리 안에 잠재한 긍정적인 면이 밖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비폭력대화법을 익히는 것은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자유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삶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긍정적인 행동 언어를 사용하는 비폭력 대화법과 슬기롭게 화내는 방법을 익힘으로써 불편한 인간관계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데 이 두 책이 힘을 실어줄 것이다./김예원(경주시 양북면)
2020-07-13
강낭콩 씨앗을 심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봄 아이의 원격 수업에서 강낭콩의 성장 과정 이야기가 나왔다.‘그래, 이거다!’ 싶었다. 베란다에 다육이로만 가득 채웠었는데 올 봄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심어보고 싶다하던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아이도 좋아라고 했다. 머릿속에는 벌써 콩꼬투리 속의 콩들을 그리면서.그렇게 심은 강낭콩은 일주일이 되지 않아 초록 초록하며 머리를 밀어 올렸다. 그 작고 앙증맞은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던 게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니 꽃을 피우고 콩꼬투리도 살짝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아이와 번갈아 물을 주고 정성을 쏟은 결과이리라.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런 세심한 보살핌과 기다림 속에 피어나는 강낭콩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자니 문득 육아로 유독 힘들어 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기다려 주기보다는 아이보다 한 발 먼저 내딛는 성격 급한 엄마였다.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닐 때 시작한 방통대 공부는 늘 ‘빨리’를 외치게 했고 주말이면 시험과 출석 수업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력단절이라는 말이 싫었고 아줌마라는 말은 더 더욱 밀어내고 싶었다.아이들이 어서 자라기를 바랐고 겨울 같은 이 시간들이 지나고 새봄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무엇을 위해 가는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의문이 들면서도 말이다.지금 강낭콩이 자라는 것처럼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는 시간들이 부족했다. 늘 초봄에 일찍 열매 맺기를 꿈꾸며 내달리던 마음이었다. 매일 물을 주고 마음을 써 준 덕일까 지친 내 마음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아이들이 ‘엄마. 사랑해’라고 하는 말, 따뜻한 손, 깔깔 웃음소리는 잊어버렸던 일상을 다시 반짝이게 했다. 서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는 시간 안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 강낭콩에게 물을 주듯,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눈빛을 가득 담고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의 삶도 조금 더 단단해진다.아직도 엄마 역할이 힘들지만 그 단단해진 힘으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고 지지해 주리라. 그 안에서 자라는 멋진 열매를 꿈꾸며.베란다에는 어느 새 콩꼬투리 속의 콩들이 무르익고 있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87-2)
자정이 넘은 밤, 할머니의 SNS 장례식이 있었다. 할머니가 해외에서 고인이 되었기 때문에 캐나다 현지 시간에 맞춘 일정이었다. 한국에 있는 우리부부는 평소 같으면 잠든 시간이었지만 검은색 옷으로 예를 갖추어 앉았다. 식탁 위 십오 인치 노트북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은 남편과 나는 긴장했다. 전날부터 인터넷 환경을 점검하고 음향 테스트도 했다. 단정한 손수건 두 개도 준비했다.인터넷 와이파이 망으로 현지 장례식장이 연결되었다. 고인의 생애와 작별 인사가 노트북 화면으로 전파되었다. 누워 깊은 잠이 든 할머니가 보였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였다. 구십팔 세가 되도록 장수하셨던 할머니는 태블릿 피시를 사용할 정도로 새로운 것을 수용하길 좋아하는 노인이었다. 명절에는 음성 채팅 서비스를 이용하여 고국에 사는 자손들을 축복해 주셨다.“할머니가 늘 기도한단다. 우리 손녀내외 감사하고 즐겁게 살아라.”할머니는 당신의 수명이 다할 것을 직감했다. 냉동고에 유언서와 현금을 밀봉해 놓고 잠드셨다. 나는 봄이 오면 할머니를 찾아뵙겠다고 다짐 했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몇 달 후 전염병이 퍼져 국가와 국가뿐 아니라 미주 지역 내에서도 출입이 통제될 줄 몰랐다.일 초의 순간, 한 번의 손가락 터치로 COVID-19의 장벽을 넘었다. 소설 페스트가 발표될 이십 세기 초 무렵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육대주가 링크되어 시공간을 공유하는 날이 예측되었더라면 카뮈의 소설 플롯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이십 년 후 화성에서 내가 조카 결혼식을 어떤 방식으로 축하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인류의 문화가 이십억 년 동안 변화했지만 소시민으로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상상할 수 있다. 이십 년 후 얼리어답터 고모할머니가 된 내가 화성에서 조카의 결혼을 축하하는 순간을./김정희(포항시 남구 SK3차아파트)
사진 이미지는 조각난 단편들이다. 촬영 대상 이외의 주변 상황들은 사진가에 의해 가감되며 그 경계를 결정하는 것이 사진작가의 권한이자 의지이며 성향이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이미지화된 대상은 그 본질적 의미가 변형되기도 하며 외양적으로 분리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의 주관이나 의도, 철학, 사상 등이 개입되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었던 대상에서 새로운 의미로 재창조, 재해석되는 것이다.나의 작업은 대상을 세부적으로 분해해 그 본질에 대해 고찰(考察)하고 분해된 단편들을 다시 중첩, 조합하는 과정에서 프레임을 붕괴해 통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로 시작됐다.팝아트 선구자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포토 콜라주 작품들이 모티브(motive)가 됐으며, 2009년 ‘오천시장 풍경’을 포토 콜라주 형식으로 제작했다. 이후 콜라주 형식은 유지하며 대상에 대한 시점의 변화를 주지 않으므로 익숙함과 어색함이 공존하는 데 중점을 둔 작업을 하게 됐다.대상에 대한 탐구와 이해, 그리고 그 대상만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울림을 찾기 위한 노력은 내 사진 작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호권(사진작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인간의 삶에 무엇이 과연 필수적인가를 많이 깨우치게 되었다. 그 동안 꼭 있지 않아도 될 일들이 얼마나 많은 자원과 인력을 소모시켰는지도 조금은 알겠다.요즘 여기 토론토 시내를 관통하는 401 고속도로를 보면 옛 생각이 난다. 20년 전과 비슷한 풍경이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401 고속도로는 하루 종일 정체였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어느 시간이든 정체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교통사고가 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렇다.영업을 할 수 없는 업종의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동차가 집 밖으로 나올 일이 훨씬 적어진 반증일 것이다. 문닫은 업소들의 영업도 재개되고 고속도로가 비록 복잡하더라도 코로나 사태 이전처럼 바쁘고 번잡한 일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번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말 인간의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많은 활동과 자원의 소모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활화가 되고 일상이 되면 보다 쾌적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삶,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사는 삶이 된다면 그러한 삶은 모든 면에서 인간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추구하고 살아왔다. 더 많고,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즐겁고, 더 좋고, 더 건강에 도움이 되고 등, 그러다가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지 않았을까? 우리의 욕망을 줄이지 않으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한다. 필수적인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면서 사는 지혜를 이번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깨우쳐 줬다 할 수 있다./캐나다 토론토시 은퇴 목사
2020-07-06
오늘의 목적지 불국사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던 산과 들과 논이 알록달록 수채화처럼 예쁘게 색칠해 놓은 듯 했다. 푸르름에 반해 한동안 넋 놓고 있다 보니 불국사 주차장이었다. 오래간만에 달려간 불국사는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나와 내 친구들을 아낌없이 품어줬다. 좀 전까지 세차게 불던 바람도 갑자기 멈추었고, 접시꽃은 수줍은듯 분홍빛 웃음으로 반겼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의 단골장소였던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이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그날의 기억도 되살려주었다.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북소리가 텅 빈 불국사에 울려 펴졌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우리들만 남아서 오후의 홍차를 지인이 싸온 쑥떡과 함께 나눠마시던 참이었다. 손에 들었던 것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소리에 놀란 소떼들처럼 부지런히 뛰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터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 친구는 그 순간 우사인 볼트가 되었고, 그렇게 빨리 뛰어가는 친구를 따라 잡으려고 열심히 내달리는 내 모습이 너무나 웃겨서 배를 움켜잡고 달렸다.스님들은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북을 두드렸다. 서너 분이 1분씩 돌아가며 치는 북소리에 내 가슴도 쿵쾅거렸고, 스님마다 약간의 리듬이 달라서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뭐라고 표현 못할 정도의 그 느낌. 북소리가 끝나자 종소리가 울리고 종소리에 화답하듯 목어와 운판이 몸을 떨었다. 그 소리들은 나를 지혜로운 사람으로, 우리를 자비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그날은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우울했던 내가 빨강머리 앤 같은 S양, 빨간 망토 차차 같은 J양, 그리고 환한 웃음 짓는 C양과 함께한 소풍은 행복하고 또 행복한 하루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하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적 거리는 더 가까워졌으면 한다./포항시 북구 해맞이 그린빌
경북매일이 7월부터 시민광장 코너를 개설합니다.독자들의 일상 속 소소한 경험담과 재미있는 이야기, 나만의 레시피, 지역의 숨은 명소, 지역의 과거와 현재, 지역의 풍경과 사람, 반려동물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의 글과 사진을 매주 화요일 신문에 게재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200자 원고지 0.5매∼최대 5매 이내 분량의 글과 관련 사진(JPG파일)을 이메일(kbm24@kbmaeil.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에겐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경북매일신문 편집국 시민광장 담당자(054-289-5002)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한다는 것은 생성과 동시에 소멸을 의미한다. 그러한 반복들은 지형을 변화시키고 공간을 장소화하기도 한다.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초적 자연일지라도 같은 모습을 두 번 보여 주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이 닿는 자연은 그 변화의 속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나의 작업들은 이렇게 지속적인 시간의 변화 속에서, 내가 만나는 자연에 대한 탐색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서 변화무쌍하게 변화하고 있는 자연의 본질을 묻는, 그러니까 자연을 거울삼아 내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반추해보는 일종의 성찰이기도 하다. 포항 앞바다가 그렇고 내연산 청하골이 그랬다. 내가 나고 자란 포항의 앞바다는 이미 오래전의 자연 그 자체는 아니다. 바다와 더불어 숨을 쉬고 바다에 의지해 생존을 해결하던 공존 생명체의 지위를 잃은지 오래다. 우리의 산업화와 더불어였다. 그 자리는 철의 도시라는 배경으로, 도시의 확장과 함께 소비의 대상으로 이미 장소화 되었다. 요즘은 자연의 색에서 인공의 색으로 또 기억의 공간에서 욕망의 장소로,변화의 속도가 도시의 변화 속도를 오히려 견인한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나에게는 추억과 사색의 공간이다. 자연의 색에 대한 감성을 열어주고 자연을 정신적으로 인지하는 감각을 가르쳐 주는, 생명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칼로스(kalos)이다./사진작가
나에게 2012년 봄은 특별했다. 보물 하나 내어주고 보물 두개를 얻은 슬프고도 기쁜 봄이었다.나는 언제부터인가 나비를 좋아했다.나비로 다시 태어나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던 엄마의 말이 나비를 좋아하게 만든 듯하다.나의 엄마는 곧 태어날 첫 손주를 고대하며 힘을 내 보겠노라고 암과의 힘든 싸움에서 8개월을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칠흙같은 어두운 밤 우리의 곁을 조용히 떠나버리셨다. 그 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도 당신을 잊지 않겠노라 매일 당신을 기억하겠노라 약속했더랬다.2020년 봄, 지금의 난 세 아이의 엄마, 내조 잘하는 아내로 평범하고도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라’라는 당연한 말의 뜻을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왠일인가? 엄마와의 행복했던 추억들만 기억날 줄 알았는데 왜 투정부리고 화내고 짜증부렸던 일들만 기억이 나는지…. 엄마의 웃던 얼굴을 떠올리고 싶은데 늘 힘들어하던 엄마의 얼굴만 기억나는지…. 어딘가 여전히 남아있는 엄마 사랑속에 나의 부족함이 뒤섞인 탓일터. 이제 그 기억마저도 조금씩 조금씩 잃어가니 정말 안타깝다.오늘 아침 막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등원길에 신이나 앞서가던 아이가 길가 주인 모를 화분의 꽃을 보더니 뒤돌아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거기엔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앉아있었고, 아마도 나비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꼬맹이가 급하게 찾은 깜짝 선물인 듯했다. 아이는 뿌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고 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엄지척을 날려주고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꽃 위에 날개를 세우고 있는 하얀 나비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오늘 더욱 그대가 보고싶네요….’/포항시 북구 삼호로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