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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수 언제 먹여줄거야

나는 국수를 싫어했다. 첫애를 갖기 전까지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임신을 하자 국수가 자꾸만 먹고 싶었다. 국숫집 순례를 다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동빈동에 있는 여러 색깔의 면을 파는 칼국수 집이 단골이었다. 그걸로 부족해 남편이 퇴근길에 한일 냉면에 들러 매콤한 비빔냉면을 포장해온 것만도 여러 번이었다.남편 말로는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하루 두 끼 정도 면을 드셨다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라면이라고 할 정도로. 배 속에 아이가 할머니 식성을 닮았던가 보다. 그 아이가 지금 청년이 되었고 면을 여전히 즐긴다. 나는 임신했을 때 입맛을 기억하는지 싫어하진 않게 되었다. 아들이 스마트폰까지 이용해서 끓여주는 늦은 밤의 라면이 몸매를 두껍게 만들고 있다.남편이 잘하는 음식 중 하나가 잔치 국수이다. 일단 국물부터 기가 막히게 만든다. 고명까지 부엌에서 콩콩콩 만들어서 양념장까지 곁들여주니 밤 열 시라도 한 젓가락은 먹게 된다. 이 또한 나를 살찌게 하는 이유다.구룡포 시장 국숫집에 갔다. 이번 방문이 몇 번째인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KTX매거진에 소개될 정도로 이 집이 요즘 인기이다. 처음 갔을 때는 쌓아 놓은 면발만 보고 돌아왔다. 이번엔 마침 말린 면발을 자르고 포장하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한 곳에 담아 놓으셨다. 무엇에 쓰냐고 물으니 다 쓸데가 있단다. 애교 섞인 웃음으로 가르쳐 달라니 따로 사가는 이가 있단다. 가져가서 무얼 하는지 모르시냐고 꼬치꼬치 물으니 국수를 살 거냐고 한다. 네, 팔아드릴게요 하며 또 여쭈었다. 새도 먹고 짐승도 먹는단다. 아하! 할머니 혼자서 사람 먹이고 짐승도 먹이고 새도 먹인다. 거룩한 직업이다. 집에 도착하니 부엌에 일찍 귀가한 우렁각시가 물을 끓이고 있다. 내가 국수 사 올 걸 알기나 한 것처럼. 저녁으로 따끈한 잔치 국수 한 그릇 먹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손 안 가고 얻어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는 법이다./이진아(포항시 남구 중앙로)

2020-11-23

동서뎐

현관문 앞에 동서가 귤 한 봉지를 두고 갔다.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덤으로 얻은 것. 시월드이다. 그중에 제일 고마운 존재가 동서이다. 내가 시집가서 십 년이 지나도록 시동생이 독신이어서 동서 구경을 못 하다가 뒤늦게 맞은 식구이다.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난다. 그런데도 내게 잘 맞춰주며 시댁에 적응을 잘해주었다. 그래도 신세대답게 내가 바꾸지 못하던 것들도 웃으며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렸다. 아버님 앞에서 눕는다던가 바닷가 시댁에선 먹지 않던 배추전과 솎아낸 푸성귀로 만든 겉절이도 슬쩍 밥상에 올려놓았다. 나는 조심스러워 어머님이 하라는 음식만 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동서의 음식을 좋아한다.똑순이라 물건도 잘 고른다. 시댁에 냉장고나 세탁기를 바꿔드려야 할 때도 전자매장에 가서 장단점을 잘 따져 묻는 걸 보면 매의 눈을 가졌다. 여기저기 인터넷에 가격도 찾아서 비교하고 찬찬히 살핀다. 나처럼 대충 가격 보고 사는 그런 엉터리 주부와는 차원이 다르다.나와 닮은 점이 하나 있다. 건망증이 심하다. 그것도 아주 심하다. 어느 정도냐면 시댁에서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자기 부츠 대신 어머님 슬리퍼를 신고 있던 일, 조카가 아기일 때 아기 짐을 몽땅 현관에 두고 가기도 해서 어머님을 놀래켰다. 그래도 ‘얼라’를 놓고 간 게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어머님은 내 건망증을 보고 걱정했는데 더한 아래 동서를 보더니 두 손 다 들었다 하셨다며 웃으셨다. 젊디젊은 나이부터 그러면 나이 들어서 어쩌려고 그러냐고 한걱정이 늘어지셨다.그런 동서가 자꾸만 헛갈리는 일이 있다. 남편과 시동생이다. 얼마 전에도 호박잎을 따다가 저기 고추밭에서 오이고추를 따는 남편 뒷모습에다 “여보”를 외치며 찾았다. 남편이 고개를 들자 “엄마야” 하며 방으로 뛰어들어 간다. 자주 그런다. 난 분명 잘 생긴 시동생과 조금 더 잘생긴 우리 남편이 구별되는데 말이다. 동서 덕분에 또 한 번 웃고 간다./최순자(포항시 북구 용흥동)

2020-11-23

골목길 소경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은 내가 즐겨 찾는 사색의 장소이다. 지치고 힘이 들거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면 안식을 위해 고향을 찾듯 발길이 가는 곳이다. 그 골목길들은 대부분, 숨을 몰아쉬어야 할 만큼 가파르고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그 언저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의 굴곡진 삶을 고스란히 닮았다. 겹겹이 모여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있는 투박한 지붕 아래로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대문이 나 있고 그 대문 앞에는 자그마한 콘크리트 계단이 한두 칸씩 디딤돌처럼 자리하고 있다. 좁고 작은 부족함이 일상이 되어있는 미니멀 라이프의 공간이다. 풍족함의 정도가 과해서 불필요함이 넘치는 지금의 미니멀 라이프가 태초부터 다른 이유로 존재했었던 그곳이다. 가난이라는 불편함으로 힘에 겨워 한숨지으며 벗어나려 애썼던 미니멀 라이프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찾는 동네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기존의 주관적 관점에 대한 지향을 배제하고 사진 작업에 임한다. 오롯이 나만의 시공간 속에서 본능적인 심미적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가에 집중한다. 이러한 나의 작업은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생겨난 예술사조인 미니멀리즘에 근거한다. 대상으로의 접근에 있어 추론적인 접근을 피하고 꾸밈과 표현을 자제하여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형태와 색상을 통해 나의 내적 지향성에 충실해지려 한다.오래된 골목길은 나에게 그리움의 고향이 되기도 하고, 편안한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하며, 가슴 설레는 연인이 되어 있기도 하다. /박숙희(사진작가)

2020-11-23

원형(原型)의 울림

칼융의 심리학에 따르면, 무의식의 세계는 집단무의식, 즉 여러 원형(Archetype)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형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 유형이며, 신화와 종교의 원천이기도 하다. 여러 원형들 중에는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가 있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이고,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이다.예를 들면, 남성의 마음에 ‘아니마’의 원형이 작용하는 경우, 그 남성은 꿈에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보거나 매혹되거나 한다. 혹은 여성의 사진이나 회화 또는 실재의 여성에게 갑자기 끌리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아니마’의 원형이 작용하면 여성의 상·이미지가 남성의 마음속에서 큰 의미를 가져 온다. 이러한 여성의 ‘이미지·상’을 ‘아니마의 상’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상·이미지를 ‘원형의 상’으로서 나타내 보인다. 물론 ‘원형의 상’은 인물의 상에 한정되지 않으며, 모든 사물에도 나타난다.이와 같이 원형이 마음에 작용하면 자주 패턴화 된 ‘이미지’ 또는 ‘상’이 인식되고, 마치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또한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사로잡혀 버린 것처럼 갑자기 특이한 해방감을 경험한다. 이런 순간, 개인이 아니라 대상에 종속이 되어 빠져들며, 모든 인간의 소리가 내면에서 울려퍼지는 것이다.(‘The Collected Works of C. G. Jung’ 부분인용) /강순원(사진작가)

2020-11-09

‘마음챙김의 시’

‘마음챙김의 시’표지.좋은 글이나 마음에 와 닿는 시를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마음 따뜻한 오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나는 류시화 작가가 최근 엮은 ‘마음챙김의 시’라는 책을 읽으며 어떤 시가 나에게 왜 와 닿는지를 이야기하였다. 친구는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도 가장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해서 엄마에게 낭독을 해달라고 하였는데, 그 낭독한 음성파일을 내게 보내 왔다. 이제 막 변성기가 온 아이의 목소리에서 들리는 시는 ‘눈풀꽃’이라는 시였다. 겨울이 채 끝나기 전 이른 봄에 피는 수선화같은 흰색꽃이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사춘기 아들과 친구의 지난 세월의 일상들이 한 순간에 눈앞에 떠올랐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눈풀꽃’이라는 시를 쓴 시인이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한 시집은 단 한 권도 없고, 류시화 작가의 책에서 소개한 게 전부인 ‘루이스 글릭’이라는 여성시인에 대해 검색을 하고 친구와 카톡으로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예측불가능한 대위기의 시기에 고립, 단절, 불안, 고독 속에서도 소생하려는 생명의 의지를 잘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삶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를 통해 이를 넘어서는 회복력으로 자연과 일상 속에서 녹아내는 글릭의 시가 나에게도 깨달음을 준다.류시화 작가의 글들을 너무 좋아하여 책이 닳도록 읽기를 반복했던 류시화 작가의 책이 마치 오래된 내 친구 같다. 마음 한 켠에 와 닿는 시 하나가 나에게 울림이 되고 위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진실한 깨달음이 시의 문을 여는 순간이 있다!”라고 했다. 2005년도 출판된 류시화 작가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아직도 꺼내 읽기를 반복한다. 15년이 지나도 진실한 깨달음의 순간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 호시노 도미히로의 ‘일일초’를 읽었다.‘일일초’오늘도 한 가지슬픈 일이 있었다.오늘도 또 한 가지기쁜 일이 있었다.웃었다가 울었다가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부드럽게 감싸 주는헤아릴 수 없이 많은평범한 일들이 있었다.호시노 도미히로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체육 교사였던 그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기계체조를 가르치다 철봉에서 떨어져 전신마비로 장애라는 절망의 나락에서 평범함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일초’란 시를 썼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오랜 친구와 진실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삶의 평범함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낸다. /김예원(경주시 양북면)

2020-11-09

모르는 게 약

최경하씨퇴근길이었다. 감포 고갯길을 막 들어서는데 늙수레한 산골 아저씨가 팔을 흔들며 차를 세웠다. 가까이서 보니 늦가을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금방 날이 어두워지겠다 싶어 차 문을 열었다.그는 타자마자 무안할 정도로 굽실굽실 거리며 인사를 했다. 요 고갯길 너머 동네에 산다면서 들통 하나를 발 사이에 놓고 양발로 꽉 잡았다. 이곳에는 버스가 자주 없어서 가끔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신세를 진다고 했다. 만약에 타고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절대로 책임을 안 지게 한다며 묻지도 않은 일에 손사래를 치면서까지 설명했다. 나는 미소로 대답했다. 이제야 한숨을 돌렸는지 힐끔거리며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쳐다봤다. 차분하게 운전하는 모습이 얼굴하고 꼭 닮았다며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인사를 또 시작했다.듣는 순간 속이 뜨끔했다. 과속하다가 접촉 사고를 낸지 불과 며칠 사이였다.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를 출퇴근 하다 보니 자질구레한 자동차 문제가 가끔 발생했다. 출근시간을 간당간당 맞추며 다니는 습관 때문에 운전을 급하게 했다. 늘 혼자만 타고 다녀서 옆자리에 배려할 일이 없으므로 운전을 거칠게 하는 버릇도 있다. 그런데도 멋모르고 하는 칭찬을 들으니 속으로 우습기도 하고 그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고개를 넘어서자, 그는 서서히 내릴 준비를 했다. 똑바로 보이는 저 언덕위에서 잘생긴 소나무 앞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들통 뚜껑을 툭 치면서 한번 들썩거려 보더니 얼른 다시 닫았다. “이놈들이 벌써 겨울잠 자러 들어갔는지 없어서 늦도록 잡았네.” 라며 밑도 끝도 없는 혼잣말을 했다. 억지로 한통 채운다고 저녁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둥, 뱀탕집에는 내일 아침에 넘겨야겠다는 둥, 중얼중얼 희귀한 말만 계속했다.그럼 저 들통 속에 뱀이 와글와글 하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하마터면 운전대를 놓칠 뻔했다. 말문은 이미 탁 막혔고, 불과 백 미터도 안 남은 거리를 두고 백리 길을 가는 듯 했다. 온몸이 오글거려서 도착하자마자 얼른 내리라며 다그쳤다. 그는 잘 타고 왔다는 인사말과 함께 혹시나 싶은지 내리던 발을 이쪽저쪽 들어보며 차 밑을 유심히 살폈다. 유유자적 걸어가는 뒷모습은 마치 뱀이나 산나물이나 똑같다고 여기는 사람 같았다.누군들 뱀을 좋아하랴. 산을 오르다 지나가는 뱀 꼬리만 봐도 간담이 서늘하거늘 한동안 기분이 언짢았다. 온갖 뱀이 생각났다. 어느 날 군견이 수색을 하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는 뉴스가 떠올라 다시 가슴이 내려앉았다. 뱀 그림이 있는 하얀색 셔츠를 입고 도마뱀에게 사랑스런 눈빛을 보내는 파충류 학자 얼굴도 생각나서 눈을 질끈 감았다. 좁은 차 안에서 바글거리는 뱀과 함께 드라이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아는 게 병이 됐다.어느 군인의 입담이 떠올랐다. 동료 한 명과 야간 보초를 마치고 막사로 가는 길목에서 바닥에 떨어진 닭 한 마리를 발견했다. 달밤에 누가 볼세라 얼른 주워 막사 뒤로 가서 둘만의 비밀로 그것을 삶았다. 어찌나 구수하고 담백하던지 정신없이 뜯어 먹었다고 했다.다음 날 아침, 간밤에 먹었던 닭이 생각나서 뼈다귀라도 한 번 더 감상하려고 슬슬 가보았다. 그런데 뼈다귀 주변에 허연 밥풀이 눈송이처럼 흩어져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불어터진 구더기였다. 닭 속에 가득 찬 구더기까지 뜯어먹으면서 툭툭 흘린 것이었다. 순간 군인은 심한 구토와 함께 그 후로는 닭고기를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모르는 게 약이었다.그나저나 고민이다. 앞으로 이 고갯길에서 사람을 태우나? 마나? / 최경하(경주시 현곡면)

2020-11-09

시절인연(時節因緣)

떨켜를 준비하는 나무에 가을바람이 분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잎을 떨구고 새잎을 준비하는 자연의 섭리란 우리의 인연들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지난 여름은 소란과 정적 속에서 한 시절이 갔다. 어찌 됐건 만인이 그리워하는 가을의 초입에서부터 나는 지금 추녀가 되고 싶어 설레고 있다. 어느 해 보다 길고도 지루한 여름날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던 지난 계절의 꽃들과 사람들. 어쩌면 시절인연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존재를 기다리며 벌써부터 기쁨에 젖는다. 그들과의 해후는 설레면서도 얼마나 소망하고 갈망한 시간들이었나 생각해 본다. 평소에 너무 가까이 있어 느끼지 못했던 아쉬운 정도 그러하겠지만 아무튼 보고 싶은 마음이 호수만 한 것은 틀림이 없다.가만히 그동안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만난 사람들, 또는 남편 회사와 관계된 만남도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어느 순간 떠나간 사람도 있고 까마득히 잊은 사람도 있고 그대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떠나갔지만 고마웠고 좋아서 생각나는 사람도 있다. 여러 동아리에서도 어쩌면 필요에 의해 만나고 스치고 지나간 인연도 많다. 그러나 필요에 의하지 않았어도 오래 함께한 사람도 있고, 어떤 이유에서건 떠났다가 다시 만난 사람도 있다.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를 말고’라는 시절인연 노랫말이 생각난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돼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킨다. 즉 때가 되어야 인연이 합한다는 불교 용어로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는 그것을 시절인연이라고 한다.이번에 만날 사람들은 가을에 잎을 떨굴, 봄여름 수고한 나무들과 가을에 피어날 꽃들을 함께 기다리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단풍과 무채색과 가을 하늘을 빛낼 하얀 억새까지. 그것은 멀리에 있어도 오래 소통하지 않았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우정과도 같은 것. 시절의 인연들은 나뭇잎 하나라도 다 쓸모 있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요즘을 버티고 살아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또는 내가 응원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첫사랑이 떠나가는 것도, 좋은 관계였던 사람들이 떠나간 것도 슬퍼하거나 서운해하지 말일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야 할 인연들은 만날 것이고 굳이 붙잡지 않아도 떠나갈 인연은 떠나는 것이니 섭섭함에 울지도 말아야할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다정한 시절인연이 다가 올테니…. /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100)

2020-11-09

독서에 대한 잡스런 기억들

허명화씨의 책들.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독서에 대한 취미를 붙였느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이러하다.먼저 독서는 나에게 취미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독서 감상문을 써오기 위한 책 읽기였으니 말이다. 매번 검사 받아야 하는 숙제라 여기니 재미있다거나 신나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자주 쓰시던 부모님전상서를 의미도 모르면서 읽은 것이 그 시작이었을 거라고 얼버무리고 말 성싶다.분명한 것은 이런 일들이 학기 초 교과서 읽기로 이어졌다. 이렇게 책을 가까이 하며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지난 주말 찾았던 고향집 거실 책장에는 중·고등학교 다닐 시절 사 놓은 시집이나 소설책, 잡지, 또 열기도 겁나 보이는 두꺼운 전공서적들이 여전히 촘촘히 꽂혀 있다. 볼 때 마다 내 인생의 한 단편을 보는 것 같아서 아련해진다.내가 살았던 시골은 책 한권 사볼 서점이 마땅치 않았다. 당연히 학교도서관은 책을 볼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만난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는 나의 첫 책이었다. 그 후로 계속 읽게 된 안데르센 동화들. 여름날 더위 날리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 내가 생각한 그 범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중학교 때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여자의 일생, 언젠가 독일에도 가보고 싶게 만든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는 목련꽃 아래에도 서 보았다. 4월에 아파트 화단에 목련꽃이 피면 넌지시 눈길을 건네곤 한다.한 동안 온몸으로 생각했고 ‘내가 아큐 형 인간은 아닌가 ’ 했던 노신의 ‘아큐정전’,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 현진건, 이효석의 소설들. 러시아 소설 속 등장인물들 이름은 왜 이렇게 길고 어려운지 입에서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부활’의 남자 주인공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흘류돌프는 메모를 해가며 외운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나’였다고나 할까.자취를 했던 고등학교 때 토요일 오후가 되면 내 발걸음은 서점으로 향했다. 진열된 책의 제목에 마음이 꽂혀 책장을 들추게 되고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 잠시 몰입하는 기쁨은 도둑의 긴장감처럼 황홀했다. 이렇게 구입한 책은 친구들과 함께 했던 독서동아리 책이 되었다. 스스로 만든 동아리라 진실은 독서보다는 모여서 수다 떨기로 더 바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먼지 앉은 책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때론 소중하기도 하다.나는 식자(識者)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은 아니다. 그러나 다독가이고는 싶다.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마간산으로 훑은 책을 다시 보고자 했다. 하지만 한갓지게 독서한 기억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기웃기웃한다. 여행이 아쉬운 지금 앞선 작가들의 여행기를 덥석 빼 든다. 오늘은 산티아고를 넘어 남미여행기에 푹 빠진다. 독서의 즐거움에 여행의 기쁨도 더해진다.책과 함께하는 일상이 오롯하다./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2020-11-02

나의 직업

전효선씨.나는 요양병원 간호사입니다.코로나 시대에 항상 감염의 중심에 서 있는 것같이 방송에 나오는 위험지역에 근무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요양병원은 청정지역입니다.갇혀있는 섬이라고 할까?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으로 직원이 바깥에서 옮겨오지 않으면 절대 코로나가 발생할 수 없는 곳입니다.그러나 외부에서 잘못 옮겨온 병원균으로 인해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직원들은 더 조심하고 경계하고 통제합니다.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극한 직업입니다.아니 정말 힘든 사람은 요양병원 환자일지도 모릅니다.입으로 먹지도 못하고 “춥다, 덥다”말도 못하고 심지어 자식도 몰라보고 자신의 세월도 잊어버린 채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내손으로 수저질하다. 반찬 올려 보조하여 먹다가 남은 음식 일부 떠 먹여 식사량 유지함. 전적으로 떠 먹여줌’. 이것이 요양병원 환자분의 식사하기 일상 활동의 기록입니다.전적으로 떠 먹여도 치매로 삼키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연하곤란으로 삼키지 못하면 경관식이를 합니다. 일명 ‘코줄’을 꽂아서 튜브를 통해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그러나 그렇게라도 살아있는 것이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고 믿고 싶습니다.삶의 의미는 우리가 부여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기에 오늘도 일방적인 질문과 답을 하면서 그분들과 말을 이어갑니다. 오래 입원하고 계신 분들 중에는 가족들이 띄엄띄엄 찾아오다가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통제 되면서 비대면으로 영상 통화만 가능합니다. 저는 여기서 3년 조금 넘게 근무했습니다. 몇 년을 같이 지내다 보면 정말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마지막 가실 때는 내 가족 같아서 마음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직하는 간호사들도 있습니다.방송에서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학대하고 인권이 없는 곳이라고 일부의 잘못을 가지고 모든 곳에 적용시키는 것을 보면 속상해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하지만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환자분들이 계시고 간호사들이 해야 될 일이고 해내야 되기 때문에 오늘도 힘을 내 봅니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11-02

모국어가 그리울 때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동네 체육관이 있다. 이름하여 Mitchell Field Community Center이다. 오후 5시경, 걷기 운동을 하러 갔다. 초가을답지 않은 차가운 기온이라 실내에서 걷기로 하고 체육관에 간 것이다. 아래층 농구 코트에서는 고등학생 정도의 학생들이 무리 지어 농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2층 워킹트렉에는 열심히 돌고 있는 여인들 대여섯 명이 보였다. 남자는 나 혼자였다. 전광판의 시계를 확인하고 걷기 시작했다.나보다 빨리 걷는 이들도 있고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나이 많은 서양 할머니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내가 걷는 속도의 반도 안 되는 속도로 걷고 있었다. 몸이 무거워 걷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살이 좀 많이 찐 편이었다.걷다가 운동기구의 의자에 앉아 쉬었다. 그 표정을 보니 삶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였다. 팔순이 넘어 보였다. 그 나이쯤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그때 걷던 젊은 여자가 쉬고 있는 그 할머니와 한참이나 말을 하였다. 아마 모녀지간인 것 같았다. 젊은 여인 역시 몸이 꽤 살이 찌고 무거워 보였다. 그래도 나보다 더 빨리 열심히 걸었다.얼마 걷다 보니 거의 다 나가고 그 육중한 체구의 할머니와 나만 남았다. 할머니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나는 그렇게 사십여 분을 걸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때 그 할머니도 내려와 내가 앉은 의자 끝에 앉았다. 말을 걸어 볼까 하다가 말았다.40여 년을 토론토에 살았어도 영어로 하는 대화는 항상 긴장을 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늘 눈인사로 대신한다. 모국어를 사용한 시간보다 더 오래 외국살이를 했지만 나이 들어서 배운 언어는 늘 입안에서만 맴돈다. 잠시 후 젊은 여자가 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간다. 그의 등에 대고 see you again 하고 눈으로만 인사를 했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11-02

그래도 꽃은 핀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겨울에 몸을 움츠리게 하던 찬바람과 함께 뜬금없이 찾아온 불청객은 봄이 지나고 여름을 거쳐 가을이 다 지나도록 떠나지 않고 지척에서 맴돈다. 듣지도 못했었고, 보지도 못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고약한 그놈과의 불편한 동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떠나보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이유가 분명한 그놈이다. 가까이해서는 절대 안 되는 생존의 위기를 초래하는 그놈이다. 떠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참 끈질긴 그놈이다.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일상마저 앗아간 몹쓸 그놈이다.학교에 가고 싶은 학생들, 직장에 가야만 하는 가장들, 수십 년 해온 점포를 닫아야 하는 소상공인들,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는 자식들, 명절에도 오지 말라고 한 가슴 아픈 부모님들, 가까이 있어도 못 보는 친구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상을 잃어버렸다. 평범했던 일상이 귀하고 소중해진 지금이다.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서로 간에 거리를 두라고 강요하는 매정한 지금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가까이하라고 위안하는 안쓰럽고 안타까운 지금이다. 참으로 잔인한 2020년이다.황무지가 되어버린 일상에도 불구하고 먼 산엔 단풍이 물들었다. 낙엽은 그리움이 되어 떨어지고 얼어붙은 대지에 포근한 흰 눈이 내리고 나면 또다시 봄은 오겠지. 엘리엇(T. S Elliot)의 시 ‘황무지(荒無地)’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은 피우고’처럼 그렇게 꽃은 피고 지고 또 피겠지. /윤현도(사진작가)

2020-11-02

지는 노을 바라보며

얼마 전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편과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멋진 노을을 보았다고. 그 자리에서 차를 세우고 노을을 보고 싶었지만, 배고픈 남편이 차를 세우지 않고 통과해버려 아름다운 노을을 놓치고 말았다고.문득 호주에서 살 때가 생각났다. 아침에는 학교에 다니느라 도시락 싸서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다녔었고, 주말에는 나를 먹여 살리느라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다. 그래도 평일 오후에 집 근처 달링하버에서 산책을 할 때면 노을 지는 풍경을 가끔 바라보곤 했었다. 붉은 해가 뒷걸음칠 때면 그리운 가족들, 보고픈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울음을 삼키곤 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엉엉 우는 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진 않았던 거 같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통화를 할 때면 그저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했었다. 여행할 때마다 해넘이를 보며 넋을 놓았던 것도 그때의 어린 내가 생각나서였다.며칠 후, 아침부터 흐린 하늘이 나를 우울하고 멍하게 만들었다. 지인과 함께 노을을 보러 떠났다. 포항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칠포해수욕장 입구였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나다니던 바닷가였는데, 지인의 놀라운 관찰력과 세심함에 한 번 더 놀랐다. 지나가던 나이든 남자도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역시 무덤덤한 아저씨조차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노을 명소 인가보다.칠포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에 노을이 내려앉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서산으로 귀가하는 태양의 모습만으로도 우리들의 발길을 사로잡고도 남는데, 그 모습이 강물에 반영돼 노을의 모습이 두 배가 되었으니 감동이 두 배였다. 바람 한 점 없어서 더 풍경이 아름다웠다. 강물이 바다에 진입하기 전에 또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고서 강이라는 이름을 반납하고 바다가 되었다. 오랫동안 말없이 노을을 바라보았다. 20대의 내가 40대를 준비하는 나에게 그동안 잘살았노라고 붉을 노을로 토닥여주고 있었다./엄민재(포항시 북구 삼호로)

2020-10-26

담벼락

공간을 둘러막기 위해 흙이나 돌, 벽돌 등으로 쌓아 올린 것을 담이나 벽이라 한다. 영역을 보호하고 표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벽을 만들기도 하고 독립된 공간에서 외부와 단절의 안식을 갖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종종 아주 미련하여 어떤 사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담벼락이라 하기도 한다. 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꽉 막히고 답답하니 그렇게 비유된다. 이렇듯 담벼락은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고 영역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자의에 의한 단절과 고립의 용도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을 최대한 잘 나타내는 것이 담벼락이라고 할 수 있다.현대의 담벼락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었다. 예전과 달라진 특징 중에 두드러지는 것은 소통을 배려한 형태의 담벼락이다. 수많은 정보와 간접 경험의 기회가 풍부해진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 조건 중의 하나가 소통이기 때문이다. 소통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적절히 편승하는 것이며, 소통을 통해 신속하게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존재감과 사회적 위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인간은 소통과 자의적 고립의 양립 선상에서 숱한 고뇌와 번민에 빠지게 된다.나는 담벼락의 형상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통해 소통과 자의적 고립 사이에서 고뇌하는 현대인의 다양한 본능을 탐색하고 기록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외적 형상이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 무엇을 감추려 하는지 어렴풋이라도 알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박의희(사진작가)

2020-10-26

할머니의 숟가락 사과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이가 몇 개 없으셨다. 내 기억에 할머니는 입술 밖으로 살짝 튀어나온 아래 송곳니 하나와 그와 비껴 달려 있는 윗니 두 개가 잇몸에 남아 있으셨다. 그런데 나는 모든 이가 멀쩡한데도 애늙은이란 별명처럼 딱딱한 음식은 잘 씹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내게 할머니는 사과를 깨끗하게 씻은 후 껍질째 사과를 반 쪼개서 할머니의 왼손바닥에 사과를 얹어 쥐시고는 밥숟가락으로 사과를 긁어주셨다.그렇게 숟가락으로 긁어주셨던 사과는 어찌나 달고 잘도 넘어가던지, 사과 반쪽이 순식간에 내 입속으로 꿀떡꿀떡 들어왔다. 과육이 숟가락에 반 정도 차면 입안에 침이 고이며 빨리 사과가 갈아지길 기다렸고, 그렇게 가운데 씨를 중심으로 사과는 위아래 꼭지를 빼고 껍질만 남아 그릇처럼 비워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쉬지 않고 사과를 갈아내셨던 할머니는 얼마나 손목이 아프셨을까 싶다. 그때의 내 모습은 마치 맛난 간식 앞에서 빨리 그걸 넘겨주길 바라는 댕댕이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할머니는 머리숱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셨는데도 정갈하게 쪽 머리를 하셨고 할머니의 물건 꾸러미에는 참빗이 있었다. 그리고 꽤나 오래 사용하신 듯한 낡은 은비녀를 쓰셨다.나는 아침에 할머니께서 쪽 머리를 하시기 전 풀어 내려진 할머니의 긴 머리 길이를 보고 놀랐고, 그 머리를 가지런히 참빗으로 빗으신 후 말아 올려 쪽지시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었다. 우리와 늘 함께 사셨던 게 아니라 어쩌다 다니러 오시면 내게 사과를 갈아주셨던 할머니. 다 비워졌던 사과 껍질처럼 할머니의 몸무게가 가벼워지셨을 그 언젠가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가끔 사과를 보면 한번 숟가락으로 갈아 먹어볼까 하는 생각과 할머니께서 갈아주신 사과즙의 달콤함과 너무 어려서 뭔가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아릿함이 겹쳐진다./권현주(포항시 북구 장성동)

2020-10-26

꽃에게서 배운다

꽃을 키우다 보면 항상 먼저 꽃망울을 터트려 기쁨을 주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른 애들이 한창 필 때쯤엔 처음에 핀 꽃들은 시든다. 당연한 결과이리라. 처음 보여준 고마움에, 미련에 시들어 가는 꽃대를 그냥 두면 꽃나무도, 시든 꽃도 피우려고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도 모두 힘들어진다. 그래서 부지런히 시든 꽃을 잘라줘야 한다.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이리라. 친구 H의 아들이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1년 넘게 슬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가슴 아픈데, 지켜보는 엄마는 얼마나 속이 시릴까?살다 보면 꽃 피지 못 하고 사그라든 인연도 많다. 한때 꽃 피웠으면 그걸로 됐다. 토닥토닥 시절 인연이 다 했으니 힘들어하는 그 인연을 놓아 줘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인연의 꽃이 필 테니.나의 말을 듣던 K가 새 인연을 위해 놓아주어야 한다는 그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며 자신의 꽃을 떠나보낸 마음을 털어놓았다. 꽃나무 드라코를 기르다 자신의 부주의 때문에 죽어버렸다고. 나는 꽃을 죽인 게 아니라 화훼 농가를 살린 거라고 위로했다. 화훼 농장하는 언니가 해준 말이었다. 많이 죽여봐야 그다음에 잘 키운다는 덕담도 해주었더니 경제적 마인드로 자신을 위로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우리 집 옥상에 가을꽃이 한창이다. 소국이 퐁퐁 꽃을 피워 향기를 가득 내뿜고 키 낮은 채송화도 색색이 피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힘든 일이 있으면 허리를 숙여 자신을 보고 웃으라는 듯 생글거린다. 이른 봄을 준비하는 동백은 몽오리를 한껏 만들고 있다. 백작약은 마른 잎을 더 말며 5월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한다. 목이 말라도 주인의 손길이 오기만 기다릴 뿐 생떼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말 없는 꽃을 기른다는 것은 쉬운 듯 보여도 언제 목이 마른 지 추위를 타는지 자주 들여다보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온몸으로 알려준다. 말수 적은 꽃에게서 오늘도 배운다./이홍숙(경주시 안강읍 갑산2리)

2020-10-26

경계를 마주하다

경계는 기준에 의해 양분되는 한계이며 끝과 시작을 연결하는 변화의 기준이기도 하다. 흐름이 중단된 경계에서는 방향을 결정해야만 하는 긴장감의 순간이 된다.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경계에 선다. 밤과 낮의 경계에서 힘겹게 눈을 떠야 하고, 아침과 오전의 경계에서 일터로 갈 채비로 분주해진다. 집과 직장의 경계에서는 늦지 않기 위해 어느 길로 가야 하나 고심하고, 오전과 오후의 경계에서는 점심 메뉴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한다. 오후와 저녁의 경계에서는 술 한잔의 유혹에 빠지고, 일과 삶의 경계에서는 항상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의 삶을 꿈꾼다.그래서 경계는 선택이다. 흐름이 중단된 경계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필연적 선택의 순간이다. 흘러왔던 과정과 경계에서 느끼는 결과를 판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선상(線上)이다. 경계의 선상에서는 누구나 조급해진다. 끊어진 흐름에 익숙하지 않아서 오는 조급함이다.나는 경계에 대한 사진 작업을 통해 경계 선상에서 한발 물러나 그 경계와 마주하고 있다. 경계 선상에서 나를 분리하고 객관적 관점에서 그 경계를 조망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경계와 거리를 두고 마주하다 보면 경계는 마지막도 시작도 아닌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이어져 가는 흐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경계는 조급한 단절도 아니고 새로운 시작의 절박함도 아니다. 경계는 흐름이다./김만기(사진작가)

2020-10-19

해도 해도 너무하다

남편은 몇 년째 대장내시경을 했다. 검사를 할 때마다 암탉이 알 품듯 노른자가 올망졸망 붙어 있었다. 매달린 혹이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으나, 무슨 자신감인지 이번 검사가 마지막이 될 거라며 호언장담했다. 검사를 앞두고 자신만만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가벼웠다.아침에 흰죽을 끓였다. 내시경 검사 전날의 식사는 묽은 죽이었다. 쌀을 씻어 죽을 쑤는데 팔이 저렸다. 꾀가 살살 났다. 네이버양에게 물으니 간단하게 대안을 제시했다. 밥을 지은 후에 쌀뜨물을 부어 다시 끓였더니 시간도 단축되고 팔도 아프지 않았다. 일은 닥치면 요령이 생기는 모양이다.예전, 몸져누운 엄마는 매일 죽을 먹었다. 엄마의 입맛을 살펴가며 올케가 끓이는 죽은 아주 다양했다. 매 끼마다 죽을 차리는 것이 대단해서 고맙다고 하자 올케는 자꾸 하다보면 어렵지가 않다고 했다. 갑자기 흰죽 하나 끓이면서 쩔쩔매는 내가 우스웠다. 남편은 검사 전날 저녁부터 병원에서 받아 온 물약만을 마셨다. 저녁상 차릴 일이 없으니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나는 할 일이 없으면 깨를 볶는 버릇이 있다. 미뤄두었던 참깨부터 볶았다. 톡톡 튀는 참깨 냄새로 집안이 온통 고소했다. 절반은 깨소금으로 찧었다. 깨소금 냄새에 코가 실룩거리면서 기분이 들떴다. 이왕에 궁중 팬 열기가 남았으니 들깨도 볶았다. 깨들이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들깨를 볶다가 떡 본 김에 깨강정이 생각났다. 들깨에 노란 잣을 한줌 넣고 설탕과 조청으로 버무렸다. 그것을 쟁반에 담아 소주병으로 납작하게 굴렸다. 네모, 마름모꼴로 쓱쓱 썰었다. 한 놈을 깨물어보니 입에 짝 달라붙었다. 맛도 모양도 앙증스러워 내심 뿌듯했다.그때였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남편이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나왔다. 소복이 담아놓은 깨강정을 보더니 “해도 해도 너무하다. 독사 독 올리느냐.” 며 화를 벌컥 냈다. 유난히 깨강정을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앞에 놓인 강정을 보자마자 고꾸라질듯 휘청거렸다. 죽 한 그릇으로 수십 번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람 앞에서 아이쿠, 싶었다. 더군다나 깨 같은 씨앗 종류는 금식 중에서도 절대 먹지 말아야하는 음식이 아니던가.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젓국을 얻어먹는다고 했다. 대장내시경 준비로 물만 먹고 있는 사람 앞에서 눈치도 없이 집안에 있는 깨란 깨는 다 꺼내어 볶았으니, 그것도 모자라 깨강정까지 만들었으니, 이일을 어쩌랴. 눈치 없는 것도 큰 병이다.내가 생각해도 이번 일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최경하(경주시 현곡면)

2020-10-19

참새미(참샘)진로와 청이슬

흥해 새말리 논 한가운데 ‘참샘’이라는 곳이 있다.여름에는 찬물이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이다. 우리 남편 어릴 적에 낮에는 남자들이. 밤에는 여자들이 목욕하던 노천탕이었다고 한다. 작은 웅덩이 보다 좀 더 큰 곳이었는데 지금은 ‘새말리 참샘 공원’이라고 하여 종종 어린애들 손잡고 견학을 오기도 한다.여름 햇볕 쨍쨍 하던 날.우리 아들과 친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참샘에서 정말 손톱만한 청개구리를 한 마리 잡아와서 키우고 싶다고 했다. 개구리를 엄마, 아빠, 가족들과 같이 살게 놔두지 이산가족 만들지 말고 놔 주라고 했다.그런데 옆에 있던 아들 친구가 자기집에 가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전화로 엄마한테 허락을 받자마자 좋아하며 “진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왜 이름이 진로니” 하고 물어보니 유튜브에서 본 개구리 광고에서 “진로”라고 했단다. 개구리와 두꺼비도 구별 못하는 촌놈들.진로를 키울 사육통도 사고 인테리어에 쓸 수초와 자갈도 사서 집을 꾸몄다. 그렇게 반려동물이 되어 버린 진로가 외롭다며 그 다음 주에 참샘에 가서 ‘참이슬’을 데리고 왔다.도시에 있는 친구들은 개구리 보기 힘드니 100마리쯤 잡아서 분양할까 하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아이쿠! 참새미 개구리들 야단났네~뱀보다 더 무서운 얘들이 나타났다.어떻게 알려줄까?개굴~개굴~개굴~~~모두 도망가!다음에 잡히면 금복주다.여름내내 주말마다 참샘에 가서 개구리 잡고 놀던 얘들이 벼가 익어가는 지금은 매미채를 가지고 가서 미꾸라지를 잡고 잠자리를 잡고 논다.참샘의 모습도 달라졌고 놀던 아이들도 바뀌었지만 많은 이의 가슴에 추억으로 남아 있는 한 마르지 않는 샘이 될 것이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10-19

언니들이 간다

나는 모임이 여러 개다. 글 쓰는 모임에 독서토론모임이 셋, 대학 동기 모임, 남편 대학 동문 마누라 모임도 있다. 매월 둘째 토요일에 만나는 대학 동기 모임을 오늘 했다. 멤버는 여덟 명이다. 수연이를 빼면 모두 언니들이다. 17살 많은 언니부터 한 살 위 언니까지 나이도 다양하다.H 언니는 악기를 배워 봉사활동을 다니고 어린이집도 일도 하며 아이를 셋이나 어여쁘게 키웠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Y 언니는 늘씬한 키에 늘 같은 몸매를 자랑하는 어여뿐 여인이다. 내가 그녀를 만나는 동안 한 번도 남의 흉을 보는 걸 보지 못했다. 모두 아주 참한 여자들이다.가장 배울 점은 긍정적이라는 거다.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웃느라 배가 아플 지경이다. 또 추진력이 뛰어나 말이 나오면 바로 실천이다. 지난달 모임에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다가 대구 코스트코에 한번 가자고 했더니 당장 가자는 거다. 나는 하이힐을 신었다니까 차 트렁크에 고무신 하나를 빌려주며 나서자 한다. 내 쪼그만 모닝에 올라타고 대구까지 가는 내내 언니들의 수다는 끝나지 않았고 돌아올 때까지 한 사람도 지치지 않고 서로를 웃겨주었다.영덕에서 새벽부터 떡을 찌고 장미를 만들어 올린 케이크를 준비해오는 K 언니. 마침 내일이 H 언니 생일날이라 우리는 삼계탕집에서 축하 송을 불러줬다. 주위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말이다.불국사 야경을 보러 갔다. 가을이 물든 산사의 서늘함이 참 좋았다. 특히 해가 지고 나니 경내에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라 고요함 그 자체였다. 우리 발소리와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뿐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나눈 사람들끼리라 어두워지는 그 순간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다보탑 위로 달이 뜬다.다음 달엔 K 언니에게 떡 만드는 걸 배우기로 했다. 씩씩한 언니들이 앞서가는 길, 나는 늘 숨이 차지만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뒤를 따른다./김순혜(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