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작은 세계 속의 큰 세계

이른 아침, 안뜰은 이슬 축제로 수런거린다. 거미는 정교한 설계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잣는다. 아이비 푸른 넝쿨 위로 보석들이 쏟아진다. 크리스털 목걸이 여러 겹을 둘렀다. 렌즈를 통해 들어온 보석이 영롱하다. ‘작은 세계 속의 큰 세계’, 새롭게 펼쳐진 우주가 경이롭다. 미시적 세계를 카메라에 담아 보면 우리가 인지하는 못하는 세계를 볼 수 있다. 햇빛 반짝하면 스러지고 말 ‘찰나의 꽃’이라 애틋하다.매슬로우는 일상에서 행복, 환희, 황홀, 기쁨을 느끼는 순간을 ‘절정체험’이라 했다. 강렬한 애정, 예술과의 만남, 보석 같은 글과의 만남, 여행지에서의 즐거운 체험, 대자연의 경이로움에의 매료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수시로 절정체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훈련이 필요하다. 많이 감탄하고, 많이 기뻐하고, 많이 축복할 일이다.삶은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놓고 여기에 진주를 하나씩 꿰는 과정이라고 한다. 사람의 눈을 넘어선 미시적 체험은 내 삶의 목걸이에 진주 한 알을 꿴다.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는 것, 소유가 아닌 경험이라고 한다. 자연이 빚은 크리스털 목걸이 앞에서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한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해야겠다./서정애 사진작가

2020-09-07

대구 아가씨, 포항 아지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내가 결혼을 하며 남편 직장을 따라 포항에 온 것은 26살 초겨울이었다. 집, 직장이 전부였던 내가 타 지역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는 건 두렵고 설레는 모험이었다. 게다가 신혼집에서 몇 분만 걸어가면 대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넓은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서 너무나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화처럼 설레는 신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지금 생각해보면 그즈음 나는 향수병을 앓았던 것 같다. 호미곶에 큰시누가 살고 있었으나 나이 많은 손위시누가 갓 결혼한 새댁에게 마냥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될 순 없었다. 딸아이 둘을 낳고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작은 보습학원이 자금난에 허덕일 때 함께 살던 시어머니까지 병세가 악화되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살아보려 발버둥을 쳐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남편은 삶의 의지마저 꺽인 채 몇 달 동안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상실감과 배신감에 포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나고 자란 대구로 가자.그즈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도통 연락이 닿지않자 집으로 찾아왔다.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진 데다 얼굴색마저 형편없으니 여간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듣던 언니는 함께 눈물범벅이 되어 울어주었고, 자기도 넉넉지 못한 형편에 지갑에 있던 7만원을 털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지만, 그 잠깐 동안 나는 어떤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는지 그동안의 응어리가 씻은 듯 사라지는 걸 느꼈다.이제는 남편도 직장을 얻어 안정을 찾아가고, 포항을 떠나려했던 내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생소하기만 하다. 이젠 누구에게나 ‘나는 포항 아지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포항이 싫다고 떠나려했던 대구 아가씨를 말없이 품어 준 그 언니처럼 포항이 이제는 나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유향미(포항시 북구 장흥로)

2020-08-31

아부지

황소처럼 일만 하시다 ‘막걸리 한잔’ 요즘 핫한 노래 가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흥겹게 따라 불렀던 노래가 오늘 따라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내일이 아부지 기일이라 고향인 안동으로 언니와 함께 가는 중이었다.우리 아부지는 자린고비셨다. 절약이 몸에 베이신 분이다. 그런데 나에게만 유독 후하셨다. 오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에는 빠지지 않고 나가셨는데 그날만이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의 휴일이다. 장에 가시면 해가 앞산 너머로 고개를 떨구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약주를 하시고 볼이 불그스레, 손에는 봉지 하나를 들고 오셨다.나는 아부지는 뒷전이고 손에 드신 봉지에만 관심이 갔다. 안동은 산간지역이라 생선 구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래서 인지 장에만 가시면 간고등어를 꼭 사오셨다. 또 옛날과자도 가끔은 사오시니 봉지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신 아부지는 안방에 누우시면서 나를 부르신다. 머리가 아프시다며 내 작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어 달라 하신다. 나는 작은 손바닥에 아부지의 따뜻한 열기를 느꼈고, 그러고나면 동전 몇 개를 손에 쥐어 주셨다. 아부지만의 사랑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언니는 늘 나는 뒷전이라며 투덜거리고 가끔씩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지금도 너 때문에 나는 피해자라며 큰 딸이라고 궂은 일만 시키고 용돈 한번 안주셨다 한다. 언니께 고맙고 미안한 맘이다.한 시간여를 달려 고향집에 도착하니 여전히 마당 가장자리엔 봉선화. 채송화. 백일홍이 살랑살랑 우릴 반긴다. 아부지,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집은 여전히 그때 그 모습이다. 모깃불 피워 놓고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고 은하수강도 건너보려 했건만 추적추적 비가 내리니 밤하늘 별과의 데이트는 바람 맞아 버린 듯 허망하기까지 했다. 아버지생각에 잠시 눈시울이 뜨겁다. 내일 제사상에는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간고등어와 문어는 꼭 올려 드려야겠다. 고향집 여름밤은 빗소리와 함께 익어갔다. /박영희(포항시 북구 새천년대로)

2020-08-31

보리굴비

맥문동이 한창인 황성공원을 거닐었다. 지인이 특별히 이 계절에 보라색 향연이 펼쳐진 곳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다. 든든한 소나무 사이사이 맥문동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더위도 잊을 만큼 즐거웠기에 한정식 한상을 대접하기로 했다. 보리굴비가 진수성찬 제일 가운데 놓였다. 이 계절에 가장 좋은 반찬이다.날씨도 무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니 입맛도 없다. 가족들 밥해 먹이는 게 어느 때 보다도 힘이 드는 계절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시던 보리굴비에 콤콤한 비린내가 그리워지는 계절, 보리굴비를 손질해서 맛나게 먹여야 겠다.냉장고가 없던 시절 조상님들의 지혜였다. 싱싱한 조기를 보리겨 속에 오랜 기간 동안 숙성시켜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러면 굴비는 엄청 딱딱하고 수분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로는 먹을 수 없는데 미지근한 쌀뜨물에 녹차 잎 몇 줌을 넣고 굴비를 넣고 2~3시간 우려 주면 특유의 콤콤함과 비린내가 거의 사라진다.이때 비늘은 긁어주고 가시와 지느러미, 꼬리는 잘라준다. 찜기에 20~25분 중불로 쪄내 주면 먹기에 알맞은 상태가 된다. 일일이 살을 발라 고추장과 버무려 주면 고추장 굴비가 된다. 한 마리씩 호일에 싸서 딤채에 보관해 두고 먹을 때 마다 약한 불에 뚜껑 닫고 데워 먹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된다. 이때 더 맛나게 먹는 방법은, 녹차를 우려내 차가운 얼음을 띄워 그 물에 밥을 만다. 함께 먹으면 보리굴비를 처음 접한 분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귀한 음식이라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어머니가 정성스레 발라서 자식들 밥숟가락에 얹어 주시던 모습이 그리워진다. 정작 본인은 자식들이 먹고 남은 것만 발라 드셨는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부쩍 입맛이 없어하는 부모님, 이번 주는 더 늦기 전 보리굴비 손질해 찾아뵙고 싶다. 이젠 어머니 밥숟가락에 내가 발라낸 보리굴비 다정하게 올려 주고 싶다. /이소영(경주시 천북면)

2020-08-31

첫인사

궁금하고 설렌다. 딸이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결혼을 해서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키워 시집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시집갈 때는 되었지만 스스로 나서는 것을 보니 이제 다 키웠구나 싶다.나는 퇴근하고 곧바로 식당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예약된 이름을 부르면서 주인을 찾았다. 그 소리에 어떤 총각이 방문으로 나와서 목례를 했다. 어이쿠, 목소리가 컸다 싶어 부끄러워 일단 식당 문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딸이랑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 소매 자락을 잡고 뒤따라갔다.그가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미리 준비해온 꽃다발을 내 손에 안겨주었다. 날이 날인지라 화사한 꽃다발만큼이나 그의 얼굴도 환했다. “인상이 참 좋으네요.” 나도 모르게 첫인사가 술술 나왔다. 얼굴이 희고 눈웃음이 부드럽고 머리숱이 적어서인지 이마 너머로 인상이 넉넉해 보였다.한정식이 입에 맞는지 잘 먹었다. 특히 배추김치를 좋아한다고 했다. 둘은 친구의 소개로 만난 지 몇 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편안한 사이로 보였다. 반찬을 들어서 옮겨 놓기도 하고 부족한 것은 더 시켰다. 밥 먹는 모습을 보니 다정해보였다.며칠이 지나서 그의 집에도 딸이 인사를 갔다. 우리가 만났을 때처럼 저녁은 밖에서 먹고 다과는 집에서 먹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딸을 보고 “고맙다.”라며 첫인사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고맙기도 했지만 약간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내 딸을 과분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부담도 되었다.상견례에서 어른들을 만났다. ‘고맙다’는 그 말이 겸손인 걸 느꼈다. 조용하고 편안했다. 반대로 옆에 앉은 바깥 분은 세상사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재미있게 분위기를 끌어가셨다. 취미로 불화를 그린다고 하며 폰에 저장된 작품을 보여 주었다. 바닥에 엎드려 작업을 하기 때문에 무릎관절이 안 좋다고 했다. 그래도 이 나이에 용기가 생겨서 만족한다며 멋쩍은 듯 웃으셨다.돌아오는 길에 ‘고맙다’는 인사말이 자꾸 맴돌았다. 사람을 만나면 말 한마디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은 재밌는 책 한권을 단숨에 읽은 것보다 더 기분이 좋다. 읽고 난 책을 껴안고 한동안 음미하듯이, 고맙다는 말이 떠나질 않아 가슴 위로 두 손을 모았다.또 다른 자식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다. 친구의 말처럼 ‘보고 싶은 장모님’이 되리라./최경하(경주시 현곡면)

2020-08-24

도원경(桃源境)

부친께서는 6·25전쟁이 발발하여 북한군이 낙동강 아래로 내려올 당시 보급품을 운반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경북도 영덕군 창수를 거쳐 영해로 내려올 당시 적군 비행기가 보급품인 것을 알고 공중 사격을 가하였습니다. 그때 부친께서는 어깨에 짊어진 보급품을 벗어 던지고 숨은 곳이 복숭아 나무 밑이었습니다. 복숭아 나무를 잡으니 나무가 물렁물렁 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복숭아 나무가 그 시절에도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산문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나오는 무릉도원 역시 복숭아 꽃이 대표적인 무릉도원의 상징입니다. 어부가 발견한 무릉도원 마을 사람들 또한 진(秦)나라 때 난을 피해 가족과 함께 피난한 사람들입니다.‘도화원기’내용을 보면 “민물고기 어부가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강 주변에 복사꽃이 만발하여 경치가 아름답고 향기롭기 그지 없고, 복사꽃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앞에 커다란 산이 가로 막고 있다”고 했다. 바로 그곳 무릉도원의 배경과 마치 흡사한 이미지를 지닌 영덕은 무릉산 밑으로 흐르는 오십천 강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눈앞에 옥계계곡과 팔각산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아름다운 영덕 복사꽃이 오십천 강줄기 주변으로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도화원기’에서 나오는 민물고기 어부가 본 풍경은 영덕 풍경을 옮겨 놓은 듯합니다.우리는 무릉도원과 같은 아름답고 아무 걱정 없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갈망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잠시 행복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움츠려 있습니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고, 코로나 유행 이전의 도원경과 같은 아름답고 평화롭고, 근심 걱정이 없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희망합니다. 영덕에는 장사상륙작전과 같은 학도병과 군 장병 등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무릉도원과 같은 영덕을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그 기운을 이어 받은 영덕 복숭아가 익어가는 이 계절, 무릉도원의 결실인 복숭아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드시고 모두 코로나를 이겨 내시기 바랍니다./이두환 사진작가

2020-08-24

초롱이의 일기

2020년 8월 21일. 내 이름은 ‘초롱이’다. 나이는 네 살, 우리 엄마의 이름은 샛별이고 아버지는 가까이에는 사신다는 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초롱이란 이름은 주인님에게 오기 전 외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나는 초롱이란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 비록 덩치가 작은 발바리지만 싸나이 이름이 초롱이가 무엇인가 말이다. 깡다구 있어 보이게 백호나 청룡이라면 맘에 들겠지만 하다못해 바둑이나 독구는 되어야 하는데 여자이름인 초롱이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그래도 초롱이란 이름이 싫지 않을 때가 있기는 하다. 며칠 집을 비우신 주인님이 돌아오시며 “초롱초롱 초롱이 우리 초롱이 집 잘 보았나?” 하시며 과자를 주시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때이다. 한번 지어진 이름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가 없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초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바에는 초롱이란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자꾸만 생각해 볼 것이다.2020년 8월 23일. 오늘은 쥐를 두 마리나 잡았다. 우리 주인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일 중 하나가 내가 쥐를 잡았을 때이다. 그래서 나는 쥐를 보면 숨어있다 꼭 잡는다. 사실은 쥐를 보고 잡을 때 보다는 못 잡을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주인님은 내가 쥐를 보고도 놓치는 경우도 많고, 주인님이 기분 나쁘게 하실 때는 일부러 잡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을 모르신다. 하룻밤 사이 두 마리를 잡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연달아 이틀 동안은 한 마리씩을 잡아 주인님에게 칭찬을 들었고, 안주인님께서 챙겨주신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오늘처럼 쥐를 잡으면 주인님이 다니는 길 중간에 배를 위로 가게 놓아둔다. 아마도 쥐를 보시면 또 맛있는 무엇인가를 주실 것이다. 오늘은 기록을 깼으니 무엇을 상으로 주시려나 기다려진다. 더 많은 쥐를 잡기 위해 몰래 그들의 말을 엿들으니 쥐들은 내가 고양이보다 더 쥐를 잘 잡는 개라는 것은 모르는가보다. 나는 그것이 정말 다행스럽다./류대열(경주시 외동읍 입실리)

2020-08-24

엄마 갱년기 그리고 아들 사춘기

“지금 몇 신줄 알아, 시계는 보고 게임 하는 거야.”하면 두 아들들은 건성으로 “알았어요, 지금 끌 거예요”한다. 그러고도 도무지 끌 기미가 보이지 않아 참다못한 갱년기 엄마는 “지금 당장 꺼”하고 욱 하고 고함을 지르면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끄면 되잖아요.”하는 신경질적인 대답과 함께 최대한 천천히 폰을 끈다. 꾀 많은 둘째는 “엄마, 지금 제가 게임하는 걸로 보이세요. 유튜브 보고 있어요, 유튜브에 얼마나 배울게 많은지 아세요.”하고 뻔뻔스럽게 대답을 한다. 지금까지 엄마 말이라면 고분고분하던 아들들이 초등 6학년. 초등 5학년이 되면서 눈에 빤히 보이는 반항을 한다. ‘이제는 많이 컸구나’하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큰 아들은 ‘초등4년 병’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엄마에 대한 무언의 반항으로 시작해서 영혼 없이 “예. 몰라요. 엄마가 맞춰보세요” 건성으로 대답하는 걸로 바뀌었다. 한 살 어린 둘째아들은 이마에 아토피처럼 생긴 피부를 보이면서“엄마, 이것 여드름 맞지. 나 이제 사춘기지?”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철없는 행동에 웃음이 나지만 엄마 말에 조목조목 따지고 들 때면 사춘기 인 것도 같다.우리 집에는 3단계의 의사소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작은 아들의 설명과 큰 아들의 해설을 더해야 이해가 이루어진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엄마와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엄마, 국민학교 졸업한 것 맞아. 딱 보면 보통 핵꼬(학교) 졸업 한 것 같은데”하면서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기도 한다.이제 엄마는 노안도 오고 말귀도 알아듣기 힘들다. 엄마가 나이 먹고 힘이 없어지는 만큼 얘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대견하다.그래도 엄마는 눈 안에 모든 것을 넣어 놓고 키우고 싶어 안달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에 담아 놓고 키워야겠다. 한 발 앞서가는 엄마가 아니라 한 걸음 뒤에서 지켜봐 주고 실수해도 믿고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 엄마 보다 키가 더 큰 아들들을 우러러(?) 보며 언제나 같은 자리에 버팀목으로 서 있고 싶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2020-08-24

토론토의 한여름 해거름

아직은 해가 빠지기 전이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저녁이 되었다. 해가 빠지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 더 있어야 한다. 나는 집 뒤 켠, 집과 붙은 집 뒤쪽의 테라스의 의자에 혼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 흰 구름 몇 점이 한가로이 떠간다. 가끔씩 어디에서 오는 바람인가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린다. 살만하다.바로 옆집들의 정원의 나무들이 유월의 녹음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싱싱하고 푸르다. 푸르다 못하여 진녹색이다. 짙푸른 저 나무들은 해마다 저렇게 잘 자란다. 무슨 조화일까? 나뭇잎들은 올해의 몫은 다 컸다. 이제 더 이상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될 준비를 하겠지. 계절은 그렇게 지루한 듯, 그러나 잘도 간다.가끔씩 텃밭을 망가뜨리는 다람쥐가 나타난다. 나는 불이 나게 일어나 다람쥐를 쫓는다. 깡패새로 이름난 북미주의 Robin(울새)이라는 새는 오늘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새는 사람이 다가가도 별로 겁을 내지 않는다. 뒤뜰의 관상용 양귀비는 겨우 일주일 정도를 피고는 떨어진지 오래다. 그 옆의 수선화 역시 잠시 피었다 졌다. 그야 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 옆으로 무궁화 몇 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꽃을 피운지 몇 년 된다. 그러나 아직 어린 무궁화 몇 그루는 언제 꽃을 피울지 모른다. 아마 2, 3년 안에는 꽃이 필 것이다.텃밭은 해마다 심어서 올해는 묵히자고 했는데 아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내는 거름을 엄청나게 많이 사서 뿌리고 몇 가지 채소를 심었다. 들깨, 고추, 오이, 부추 등이다. 거름 값도 제대로 못할 것 같다. 아내는 매일 해거름에 물을 준다. 그래도 제 구실을 할 것 같지 않다. 상추는 따로 심지 않아도 작년 가을부터 텃밭에 있던 것이 겨울을 이겨내고 올해는 그대로 조금씩 거두어 먹을 만큼 된다. 나는 이 머나먼 남의 나라에 와서 80이 다 되어도 내 고향 텃밭에서 나던 것을 가꾸고 먹는다./김용출(캐나다 토론토)

2020-08-10

바다를 먹고 산다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간에 바다를 본 적이 있다. 내 몸속에서 바다와 우주가 출렁이는 듯했다.동빈내항을 지나 죽도시장에 도착하니 여명을 기다리는 시간인데 벌써부터 활기가 넘친다.포항(浦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항구에 접한 죽도시장의 수산물 유통은 동해안 최대 규모이며 죽도어시장이라 부른다.바다에서 온 생선이 밥상에 오기까지는 제법 여러 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친다. 일반적으로 생산조건과 자연환경에 따라 그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죽도어시장은 바다와 인접한 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산지위판의 특징과 소비지 도매시장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외지의 관광객들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새벽 경매가 시작되면 부산스러운 시장의 하루도 시작된다. 바다에서 온 생선들은 다시 바다가 된듯 어시장에서 출렁이고 있다. 어시장은 바다와 인간을 이어주는 관문 같다.손짓과 말을 그들만의 언어로 사용하는 경매인들과 어시장 시멘트 바닥에 경매를 기다리는 생선들과 싱싱한 해산물을 사러 온 사람들이 뒤엉켜 왁자하니 생동감이 넘친다.사람이 하루라도 바다를 떠나 산 적이 있을까? 육지에 발을 딛고 살지만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바다가 내어준 생선을 먹고 소금과 젓갈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 단 한순간도 바다를 떠난 적 없이 살아간다.새벽바다를 건너온 만선의 꿈들이 다시 바다가 돼 포항 죽도어시장에서 출렁이고 있다. /김주영 사진작가

2020-08-10

인연

습도가 높아지고 있다. 한여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연일 30도를 오르내린다. 진돗개의 공격을 피해 라일락 그늘이 드리운 담장 위에서 먹고 자던 고양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가지러 가려고 현관문을 열면 늘 먼저 야옹 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발레리나처럼 몸을 늘려 스트레칭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고양이는 7년 전 어미젖을 덜 뗀듯 눈매가 희미하고 털이 보송송한 모습으로 우리 집과 인연을 맺었다. 사람들 왕래가 뜸한 아파트 뒤쪽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폼이 위태롭게 보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져온 우유를 주자 그 시간이면 나타나 주는 우유를 깨끗이 핥아 먹었다. 현관 앞에 집을 만들어 주고 사료를 담아 주었더니 애초부터 제 보금자리 인양 눌러 살았다. 아이들 품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고양이는 빨래를 너는 내 다리에 감기고 담장 너머 텃밭까지 졸졸 따라다녔다.어느 날 빨래를 걷는 남편의 다리에 감겼다가 그만, 밟히고 말았다. 그 후유증으로 사료를 먹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입자가 작은 사료로 바꿔주고 고양이용 캔을 사서 사료에 버무려 주었더니 곧잘 먹었다. 사료 냄새를 맡고 도둑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사료를 주고 돌아서기 무섭게 그릇이 바닥을 보였다. 학교 갈 준비로 바쁜 아이들을 불러 세워 고양이가 사료를 다 먹을 때까지 교대로 보초를 서게 했다. 소유하는 것에는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요일을 정해 밥 당번을 시켰다. 그렇게 한 가족처럼 산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집을 떠났다. 성장한 아이는 부모를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지만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무심코 고양이가 머물던 담장 위로 눈길이 간다. 아침이면 야옹 하고 인사를 건네던 울음소리가 그립다./김지연(경주시 마동)

2020-08-10

경주 기림사의 템플스테이

여고동창들과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 지난 해 대상포진으로 고생한 친구의 제안으로 떠난 여행이다. 오래된 친구들은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서로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였다. 휴식형과 체험형이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휴식형만 운영하고 있었고, 가격은 성인기준으로 인당 5만원이었다. 삼시세끼가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들은 담백한 절밥을 기대했다. 살가운 친구는 소풍가기 전 날인 듯, 간식꾸러미를 야무지게 챙겨왔다. 그 친구 정성을 까먹으며 도착한 기림사는 웅장하면서 기품이 있었고, 단아하면서도 아기자기했다. 보시로 들어오는 꽃과 화분을 심기 시작한 정원은 연꽃이 피기 시작해 더 기품 있는 사찰로 보였다.새로 지어진 멋진 한옥건물에 방마다 개인화장실과 샤워실도 같이 있었고, 시원한 선풍기 한대와 소박한 탁자 하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템플스테이용 옷은 파란색조끼와 하늘색바지로 여고 때 체육복색과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친구들과 함께 사찰을 둘러보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어느덧 저녁 식사시간이 다 되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공양실로 한걸음에 달려간 우리들을 보살님께서 아기보살이라며 따뜻하게 불러주었다. 보약 같은 저녁 공양 뒤, 큰스님과 함께 저녁예불을 드린 후 방으로 돌아왔다.다음날 새벽, 사찰의 하루는 일찍 시작되었다. 예불은 새벽 4시반 이었는데, 전날 친구들과 폭풍수다로 우리는 오전 6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 공양 후, 용연폭포로 트레킹을 떠났다. 사찰에서 20분 거리로 평지라서 아이들과 걷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울창한 숲길을 걷다보면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는 표지판을 만나고 나서야 용연폭포를 마주할 수 있었다.산책로에서 만난 스님께서는 인생의 진리와 마음의 수양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친구들과 함께 마음공부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기림사를 기대하면서 템플스테이가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엄미나(포항시 북구 환호동)

2020-08-10

기이한 만남

붉게 백일홍이 활짝 핀 형산강변을 걷다보면 마음까지도 상쾌해진다. 고운꽃빛을 담아본다. 어떤 느낌의 사진을 찍었을까? 필름으로 사진을 찍으면 완성될 이미지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좋다. 사진을 찍는 순간, 이미지를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보다 기다림과 설렘의 순간들이 아날로그 사진작업에는 있다.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사진이미지로 만나는 순간들. 설렘은 매순간 낯선 시간과 낯선 공간을 걷게 한다.몇 년 전부터 형산강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아왔다. 강변에 생활체육공원이 생긴 후로는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마스크와 모자로 복면을 한 채 운동을 하는 모습들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진작업 제목도 ‘기이한 만남’이 되었다. 하지만 기이하게 느껴졌던 풍경들이 지금은 일상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기이한 일이다. 코로나19사태가 많은 것들을 정지시키고 바꿔 놓았다.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은 여전히 보도되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일상의 소중함을 지키고 찾고 있다. 운동이나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들은 언제나 공간 속 주인공이 되어 당당한 모습이다. 나는 그런 모습들을 숨을 멈추고 카메라에 담는다. 기이한 만남들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강철행 사진작가

2020-08-03

고장난 체중계

아내는 몸무게를 재고 있다. 청소나 설거지를 하고서는 어김없이 체중계에 올라선다. 그 때마다 표정은 밝지 않다. 때론 고개를 갸우뚱 거리기도 한다.설을 지나자마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 세계를 강타하며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집 밖으로 나가거나 사람을 대면하는 자체가 두려웠다. 그 여파로 아내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칩거에 들어갔다.그 무렵 때마침 ‘미스터트롯’의 열풍이 불어 집에서 소일하며 지내기에 불편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나를 유혹하기도 했고 음악을 듣고 화초를 가꾸면서 나름 즐거워했다. 어느덧 나도 ‘미스터트롯’의 매력에 빠져들었다.TV를 보면서도 입은 항상 즐거웠고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자세 변화도 다양해졌다. 처음엔 소파에 앉았더니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고 급기야 매트를 거실에 깔기까지 했다. 거실은 또다른 침실이 되었다. 나에 대한 음식 유혹의 빈도도 잦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파 앞 티 테이블 위에는 먹거리로 다양해져 갔고 옷차림은 헐렁하게 바뀌었다.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퇴근 후 걷기운동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바라던 일이었기에 이를 공감하고 즉각 수용했다. 그렇게 매일 산책을 했지만 집에 와서는 TV를 보며 여전히 입은 즐거워 보였다. 그러면서도 고민이 되는지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얼마 후 다급해 졌는지 스스로 운동량을 늘려갔고 티 테이블 위에도 조금씩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윗몸일으키기도 했다. 체중감량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찐 살이 쉽게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아내는 수시로 체중계에 올랐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상하다 체중계가 고장 났나?’라는 표현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또 한편으로는 운동을 포기할까 걱정도 되었다.이찬원의 ‘딱풀’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딱 붙어있지만 고장난 체중계는 언제쯤 고쳐질 지 궁금하기만 하다. /배만식(경주시 현곡면)

2020-08-03

달과 6프렌즈

달은 얼마만큼의 거리에서 우리를 비추이는 걸까요? 바다가 보이는 휴게소 벤치에 앉았습니다. 빠듯한 일 박 이일의 번개 팅의 일정을 마치는 즈음이었습니다. 마지막 휴게소에서 몸속의 뜨거워진 것들을 비우고 숨 가빴던 하루를 식히던 참이었습니다. 우연히 달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피곤한 줄 모르고 헤매며 다니던 우리들을 향해 그 달이 계속 따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달도 바다를 향해 섰고 희미하게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느라 지친 몸을 식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날은 첫 출사 수업 날이라 빠질 수도 없는 날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수목원까지 와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려 납치하듯 나를 태우고 떠났습니다. 문득문득 서로의 시간이 맞아떨어지는 날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수시로 뭉치게 됩니다. 요지는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그러니까 그나마 내 의지로 다닐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다니자 주의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떠난 소중한 추억여행이었습니다. 무섬마을, 부석사, 소수서원, 평창의 육백 마지기 샤스타데이지, 바위공원 등에서 추억을 담고, 곳곳에 우리의 수다와 웃음을 뿌렸습니다.구름사이로 달빛이 스미는 소리가 들립니다. 달은 저장된 기억만큼이나 멀리에 있는 것 같지만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에서 그만큼의 간격을 두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창에서 그것도 고지대 청옥산 육백마지기 언덕 베기에서 샤스타데이지를 조용히 숨어서 바라보던 희미한 달이었습니다. 친구들 함박웃음으로 구름을 쫓아내던 달, 우리들의 우정으로 평창의 친구는 앓고 있던 대상포진을 잠시나마 잊고 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7번 국도를 따라 정동진, 삼척, 죽변, 장사, 달은 우리와 동행을 했다가 또 앞에서 끌어주다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뒤에서 바라보았습니다. 평창에서 빛나던 달은 포항으로 왔다가 다시 경주로 따라갔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평창의 내 아름다운 친구 부부를 지켜주고 있을 것입니다. 친구는 달 같은 사랑입니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달그림자가 마음 든든합니다. 달은 해마다 3.8센티씩 멀어진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 갈수록 친구와의 우정은 해마다 3.8센티씩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

2020-08-03

나를 설레게 하는 것

목요일이다.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외출을 서두른다. 평소보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옷매무새를 매만지는 손끝에서도 즐거움이 묻어난다. 한 주간 같이 수업을 듣는 책친구 선생님들은 뭘 하며 지냈을까? 오전 10시까지 작은도서관 책친구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서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집 가까이 있는 도서관이 아닌 탓도 있지만 빨리 선생님들을 뵙고 싶어서다.여름에 들어서면서 지리 한 장마가 계속되지만 차창 밖의 나무들은 제 색깔을 만들어 놓았고 곳곳에 여름 꽃들도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도 서로 먼저 연주회 열 듯 정겹다. 조수석에 놓인 수업파일에 눈길을 주며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로 수업이 펼쳐질지 살짝 기대도 된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에 발을 들여 놓은 지도 햇수로 십 여 년이다.작은도서관이 막 생겨날 즈음 큰 아이를 낳고 포항에 둥지를 틀었다. 두 살 터울로 둘째가 태어나면서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도서관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 북스타트를 시작으로 인문학 붐에 발맞추어 도서관은 최고의 최적의 평생교육장이 되었다. 물론 나도 기뻤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독서동아리에서 만난 그림책은 남편까지도 육아로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어 준다. 그 중에서도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은 남편이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우리가족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면 대출해온 책으로 저녁 이야깃거리가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책으로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즐겁다.이런 멋진 도서관이라니.그래서일까. 아이들도 도서관에서 하는 행사나 수업에는 적극적으로 참여를 한다. 나 또한 도서관은 ‘공주(공부하는 주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사람이 있다. 여러 해 동안 알고 지내는 강사 선생님들, 익숙하게 반겨주는 사서 선생님들. 여기서 만나는 인연들은 참 따뜻하다. 서로가 책으로 소통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또 내가 잊고 있었던 꿈을 생각나게 했고 다시 문학소녀로 돌려놓았다. 아이들은 도서관 다니는 엄마를 자랑스레 이야기 한다.책친구 수업에서 고등학교 때 익숙했던 시인들을 만난다. 한용운, 윤동주, 황동규, 서정주, 김종길, 박재삼, 두보의 칠언율시까지.오늘은 또 어떤 시인들이 나를 설레게 할까. 작은도서관으로 올라서는 내 발걸음이 가볍다. /허명화(포항시 북구 아치로)

2020-08-03

우편물은 현대슈퍼로

이순혜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해맞이길에 작은 문학관이 있다. 영일만과 청보리를 소재로 많은 수필을 남긴 흑구 한세광 선생님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평소에 찾는 이가 없는 듯 문학관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헛걸음인가 싶어 발길을 돌리는데 출입문에 붙은 종이 하나가 바람에 나풀거린다. 하얀 종이에 한 획 한 획 꾹꾹 눌러쓴 내용은 휴관을 알리며 우편물과 택배는 건너편‘현대슈퍼’에 갖다 달라는 내용이었다. 길 건너를 바라보았다. 지붕은 한 귀퉁이를 바다에 내어주었는지 떨어져 나갔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졌다. 나직이 앉은 담은 어제도 오늘처럼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길 건너 슈퍼는 낡고 허름했지만, 간판은 늘 ‘현대슈퍼’였다 .오래된 기억 하나가 현대슈퍼에 배달되었다. 누런 밀가루 포대에다‘콩밭’이라고 꾹꾹 눌러쓴 편지였다. 부모님은 콩밭에 있으니 학교 마치면 미숫가루를 타고 막걸리를 받아 오라는 메시지다. 미숫가루는 집에 있는데 막걸리가 문제였다. 매번 외상으로 달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마루에 놓인 편지는 다양했다.‘구판장에’라는 편지도 있었다. 가방을 마루에 냅다 던져 놓고 구판장으로 달려갔다. 가게에 들어서면 아버지는 막걸리에 취해 불콰한 얼굴로 노랫가락 한 곡조 뽑고, 어머니는 고추장 그릇 옆에서 멸치 대가리를 떼어내고 있었다. 과자 한 봉지를 얻어 가슴에 안고 가게 문을 나설 때, 또 외상일지라도 기분이 좋았다.산골 마을의 뒷산 그림자는 성큼성큼 마을로 내려왔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부모님은 흙 묻은 옷을 털며 대문에 들어섰다. 툇마루에 앉아 날마다 부모님을 기다렸던 내 유년의 시절이었다.호미곶에서 서성이던 바람은 청보리밭으로 가고, 우편물은 현대슈퍼로 가는데, 과거로 보낸 그리움의 우편물은 고향 하늘 어디쯤에서 떠돌까./이순혜(포항시 남구 효성로)

2020-07-27

지극히 높은 놈

“와~~아 뱀이다.”“아~악~악 뱀, 뱀이다.뱀을 봤을 때 당신의 반응은 어디에 속합니까?첫 번째는 우리 아들 친구들이 집에서 키우는 도마뱀을 봤을 때의 반응이라면 그 다음은 누구인지 알 수 있겠죠?우리 집에는 너무 작아서 성별을 알 수 없는 레오와 에드라는 도마뱀이 있다.처음에 작은 아들이 도마뱀을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식구 모두가 반대했다. 더욱이 육십갑자를 코앞에 두고있는 아빠의 반대가 심했지만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고 마는 우리 아들의 집요하고 뱀같이 영리한 꾀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다.키우게만 해 주면 모든 것을 책임지기로 하고 레오와의 동거가 작년 추석부터 시작되었다.레오는 우리 아들의 예절 선생님이기도 하다, 사육통을 조금만 건드려도 “레오야, 미안해. 스트레스 많이 받았지.”하며 최상의 공손함으로 다가간다. 엄마, 아빠에게는 반말 왕자님인 우리 아들 가장 작은 자를 지극히 높게 대접해야 된다고 하면서 우리 집에서 자기가 제일 높다고 하더니 이제는 더 높은 놈이 생겼다. 레오가 허물벗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우리 아들은 희귀동물 수입업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도마뱀을 한 마리 더 사달라고 했다.그래서 전교 남부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조건으로 에드를 샀다.내 돈으로 산 레오와 에드를 1살 많은 형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 형을 마음대로 부려 먹는다.예상 문제를 주고 테스트를 해서 1개 틀리면 1급, 2개 틀리면 2급이라는 엄격한 잣대로 회장 직인 찍은 자격증도 발행했다. 레오와 에드의 교육에도 열정적이다.“혀 낼름” 하고는 혀 내밀어서 먹이를 먹으면 “잘 했어” 하고 먹이를 준다. 그리고는 뿌듯해 하며 아빠미소로 바라본다.또 하나의 가족이 된 레오와 에드.그 애들의 수명이 25년이나 된다고 하니 어쩌면 엄마, 아빠보다 더 오래 우리 아들 곁을 지켜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효선(포항시 북구 흥해읍 한동로 )

2020-07-27

나는 꽃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인생의 아픈 기억보다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기에 순간의 찰나와 같이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이 느껴질 때면 나는 자동, 반사적으로 셔터를 누르곤 합니다.돌이켜보면 그것도 다 사랑이더라라고 회상되는 순간들이 그리운 향수로 아름다운 향기 가득한 꽃내음으로 사진 안에 남겨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의 맑고 깨끗한 영원의 물같이 우리의 깊은 곳에 간직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신을 사랑해보세요. 기나긴 추운 겨울 지나 따뜻한 봄을 하염없이 기다린 꽃처럼 참고 인내한 나에게 한마디 해주세요.‘난 참 행복하다’ ‘지금까지 참 잘했어’라고, 진심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토닥여 주고 안아주세요.남들이 볼 때 안 괜찮아도 내가 괜찮으면 다 괜찮은 겁니다.누구보다 더 잘 나고 더 아름답고 싶고,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들. 우리가 상대와 비교하며 살아가는 잣대를 잠시 멈추고 얼음 속에서 순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을 보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남들과 비교해 내가 가진 게 더 많아 상대적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꽃도 사진 속에 그저 꽃인 것처럼, 나는 그냥 남들과 비교한 나의 모습이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무엇을 남들과 비교해 더 못 가져서 부러워하고 잘 나가는 누구를 애써 닮을 필요도 없이 자신이 가진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참 행복한 삶을 살아가세요. /유소피아(사진작가)

2020-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