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통신
아직은 해가 빠지기 전이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식고 저녁이 되었다. 해가 빠지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 더 있어야 한다. 나는 집 뒤 켠, 집과 붙은 집 뒤쪽의 테라스의 의자에 혼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 흰 구름 몇 점이 한가로이 떠간다. 가끔씩 어디에서 오는 바람인가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린다. 살만하다.
바로 옆집들의 정원의 나무들이 유월의 녹음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싱싱하고 푸르다. 푸르다 못하여 진녹색이다. 짙푸른 저 나무들은 해마다 저렇게 잘 자란다. 무슨 조화일까? 나뭇잎들은 올해의 몫은 다 컸다. 이제 더 이상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될 준비를 하겠지. 계절은 그렇게 지루한 듯, 그러나 잘도 간다.
가끔씩 텃밭을 망가뜨리는 다람쥐가 나타난다. 나는 불이 나게 일어나 다람쥐를 쫓는다. 깡패새로 이름난 북미주의 Robin(울새)이라는 새는 오늘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새는 사람이 다가가도 별로 겁을 내지 않는다. 뒤뜰의 관상용 양귀비는 겨우 일주일 정도를 피고는 떨어진지 오래다. 그 옆의 수선화 역시 잠시 피었다 졌다. 그야 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 옆으로 무궁화 몇 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꽃을 피운지 몇 년 된다. 그러나 아직 어린 무궁화 몇 그루는 언제 꽃을 피울지 모른다. 아마 2, 3년 안에는 꽃이 필 것이다.
텃밭은 해마다 심어서 올해는 묵히자고 했는데 아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내는 거름을 엄청나게 많이 사서 뿌리고 몇 가지 채소를 심었다. 들깨, 고추, 오이, 부추 등이다. 거름 값도 제대로 못할 것 같다. 아내는 매일 해거름에 물을 준다. 그래도 제 구실을 할 것 같지 않다. 상추는 따로 심지 않아도 작년 가을부터 텃밭에 있던 것이 겨울을 이겨내고 올해는 그대로 조금씩 거두어 먹을 만큼 된다. 나는 이 머나먼 남의 나라에 와서 80이 다 되어도 내 고향 텃밭에서 나던 것을 가꾸고 먹는다.
/김용출(캐나다 토론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