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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문학(Liberal Arts)이 뭐길래

박현미회사원수년 전, 고전 열풍을 타고 인문학 붐이 대한민국을 들썩였다. 책방에는 관련 서적이 넘쳐났고 나 역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고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고전을 처음 손에 잡기 시작한 이유는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솔깃한 구절을 본 다음이었다. 대표적 인물로 조선 시대 권율 장군은 고전을 파고든 뒤, 마흔이 되어 벼슬자리에 나갔다고 한다. 늦은 관직 진출이었지만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자 문신이 아니던가? 100세 시대인 요즘, 나 또한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똑똑해지고 싶었고, 말도 잘하고 싶었다. 난처한 상황에서도 빠른 상황 판단과 임기응변으로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었다. 지금 하는 일에 지성이라는 무기를 더하여 비상하고 싶었고, 궁극적으로 팍팍한 세상살이가 고전 읽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수월해지길 바랐다.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 지혜로운 삶과 정신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것이 고전이라는 희망을 품었다.처음에는 책에서 소개하는 추천도서 목록을 참고해 무턱대고 고전을 읽어 나갔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솝우화를 읽는 내내 미궁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수십 세기가 지나도록 살아남은 천재들의 책은 오르기 힘든 견고한 벽처럼 상상 이상으로 문턱이 높았다. 궁즉통이라 했던가? 내 바람은 결국 고전을 함께 읽는 모임을 통해 이뤄졌다.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통해 위대한 사상과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내게도 활짝 열리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깨달음의 순간은 경이롭다. 새롭고 깊은 울림은 기분 좋은 두통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 번 읽고 그만두지 않고 거듭 반복 읽기로 같은 고전을 한 번 더 읽을 때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전과 다른 나, 한 뼘 성장한 나를 발견한 것이다.고전은 우리에게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바른 삶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해준다. 어떤 잘못된 경험을 직접 반복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아픔 없이도 지혜롭게 삶의 교훈을 선물해 준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전을 공부하는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고전은 삶의 진짜 문제, 가장 깊은 관심사를 다룬다. 기쁨, 아픔, 두려움, 사랑, 증오, 용기, 분노, 죽음, 믿음,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들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갈등과 문제는 늘 우리 속에 있는 것이니, 고전을 읽고 토론하면서 우리는 삶의 가장 깊은 부분을 직면하고 진정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는다.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미래를 저당 잡히지는 말아야 하며 삶의 현장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인문학의 핵심은 휴머니즘이다. 내 기쁨도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기쁨을 줄 때 우리는 더 행복하고 삶의 기쁨은 두 배로 늘어난다. 나와 타인의 행복을 위한 인문학 정신이 퍼져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밝고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기성세대를 포함, 나 역시 얼마나 꽉 막힌 사고를 하며 현재를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가? 초, 중, 고 교육을 마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대학에 떨어지거나 진학하지 않는 것은 인생의 시련이자 패배로 치부한다.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나온다 해도 좋은 직장을 잡는 일, 연봉을 높이는 일을 위해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스펙은 결코 인문학적 성찰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국어를 꾸준히 해야 하며 미래를 위한 자격증도 두어 개는 따 놓아야 덜 불안하다. 그래야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세월을 허비하며 헛된 힘을 쏟을 뿐이다. 물질로 내 존재를 증명해 내야 하는 사회의 근본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잉여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저변에 깔린 탓이다. 그래서 우리 삶에는 인문학이 절실하다.인문학은 내게 속삭인다. 대단하고 심오한 사유로 홀로 서 있기보다 지혜를 추구하고 사랑하며 함께 살라고. 먹고 살만큼의 부에 자족하고 넓은 아량으로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며 살되 독립적이고 선한 의지로 살아가라고. 벌어도, 벌어도 모자란 물질문명에 속지 말고 깨어 있어 행복하라고. 끝

2020-05-03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김영체진솔 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단칸방에 살던 신혼부부가 신축 아파트로 입주할 때 큰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곧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편리함은 당연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넓고 편리한 새 아파트를 원하기 마련이다. 물질이 주는 행복은 주기적으로 채워 주고 더 좋고 크고 넓은 것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해야 만족감을 느낀다.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갖고 싶은 물건을 구매하는 순간 느끼는 행복은 곧 사라지고 말지만 여행을 통한 좋은 경험을 만드는 행위는 행복감을 더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경험을 통한 행복의 추구도 결국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오프라 윈프리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14세 때 성폭행을 당해 미혼모로 살았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밑바닥 삶을 헤매던 그녀가 그토록 유명한 공인으로 변신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한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는 ‘감사일기’였다. 그녀는 바쁜 일과 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매일 다섯 개씩 감사할 거리를 찾아 일기를 써 온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 역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감사일지를 쓰고 있다. 쓰기 싫은 날에는 단 한 줄이라도 쓰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쓴 감사일지는 SNS를 통해 지인들과 공유한다. 혼자만 보면 자칫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감사일지를 써온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다. 특별한 감사 거리를 찾기 어려운 평범한 날이 내 삶에 더욱 소중하다는 깨달음이다. 이런 날은 평소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 오늘도 끼니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온종일 아파서 누워있는 날도 있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어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내 몸에게 ‘나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생명’인지를 일깨워 주는 순간을 경험한다. 자연스럽게 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때로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가 나오지 않고 억지로 꾸며 가짜 감사를 쓰는 날도 있다. 비록 가짜 감사일지라도 매일 글로 쓰면 그 가짜 감사가 모여 진짜 감사로 변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은 독신으로 살기로 했으나 자신이 조각한 아름다운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애틋하게 바라본 신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진짜 여인으로 변신해 사랑의 결실을 보는 이야기다. 플라시보 효과도 있다. 진짜 약과 똑같이 보이는 가짜 약을 먹게 함으로써 환자가 실제 약을 먹었을 때와 같이 병이 치료되는 경우이다. 억지 감사일지라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진짜 감사보다는 그 효과가 덜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짜 감사에도 다소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 아닐까? 물질적 소유에서 찾으려 하는 행복은 분명 한계가 있다. 욕심이 통제하고 스스로 멈출 힘이 있지 않는 한 품질과 성능이 더 좋은 소유를 얻어야 행복할 테니 누가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서민들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아무리 갑부라 한들 이런 방식으로 물질만을 추구해 행복을 얻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물질에 상관없이 행복을 성취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보다 더 강력한 방법은 단 한 줄이라도 감사일기를 써 보는 것이다. 분명 우리 삶에 행복을 선사해줄 것이다. 미국의 긍정심리센터에서 감사한 일을 찾아 쓰게 한 실험이 있었다. 피실험자에게 감사한 점을 찾아 기록하게 하고 일주일 후 측정해 보니 우울감은 줄어들고 행복감은 증가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그 밖에도 감사일기가 행복과 직접적인 연관이 많다는 연구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필자가 지난 1천658일간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행복을 당신이 가져갈 차례다.

2020-04-26

잠시 멈춤

한효정한동대 4년·ICT창업학부미국의 작은 교차로에는 어디든 붉은색 STOP 표지판이 있다. 잠시 차를 멈추고 1, 2, 3을 세고 오가는 차가 없으면 출발해도 무방하다는 안내판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익숙한 한국인들은 간혹 이 표지판 앞에서 경찰에게 딱지를 많이 끊긴다고 한다. 주변에 접근하는 차가 없으니 잠깐 속도를 줄였다가 서행하면 괜찮겠지, 방심했다가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 적발당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STOP 표지판을 만났다. 일상을 멈추고 우리는 하나둘 셋 숫자를 센다. 자기 몸에 별문제가 없어 보여도 서로를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한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못했던 여러 일에 머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미국 전역에 자택 대기령이 떨어진 이후 처음에는 밀린 잠도 늘어지게 자고 맘껏 넷플릭스도 보며 지냈다. 허리가 아파 더 이상 침대에 누워있지 못하겠고 화면을 멍하니 노려보는 일도 귀찮아진다. 분리 수거하듯 미뤄 놓은 일들을 시작했다. 포항을 떠나 미국에서 인턴을 시작하면서 배운 작은 차이들을 하나, 둘, 셋 쉬어 가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다.하나, 가족 단위 활동이 많은 미국에 있으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은 한국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여기는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당연하다. 받아들이기 조금 낯설기도 했다. 이런 우리 민족에게 가족 얼굴 볼 기회가 찾아왔다. 옛말에 가화만사성이라 했다. 그동안 얼굴 보지 못해, 낯 뜨거워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표현들을 서로 건네는 시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둘, STOP 표지판에 잠시 멈췄다가 셋까지 센 다음에는 다시 액셀을 밟아야 한다. 이때 우회전을 할지 직진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잠시 멈춰있으니 길을 잘못 들었어도 좌나 우로 방향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코로나로 얻은 잠깐의 여백은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황금의 기회다. 치열하게 싸우고 죽음을 앞둔 고지전 마지막 순간에 왜 이렇게 열심히 싸웠는가 전쟁의 이유를 까먹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왜(why?)라는 질문을 꺼내 들어야 한다.셋, 이렇게 텅 빈 것 같은 시간을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작년에 쉬려는 마음으로 휴학을 감행했지만, 정작 포항을 떠나 수도권에서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나를 보며 인생에 쉼이란 불가능한 일인가보다 회의에 빠진 적이 있다. 그래서 남보다 더 잘해보려고 경쟁하던 내 본연의 모습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그냥 쉬어 보았다. 푹 자고 일어났고, 귀찮으니 대충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던 밥을 건강해 보이는 재료로 해 먹어도 보고, 치우지 않았던 책상 위도 한 번 쓱 훑어내고, 이렇게 방에만 있다가는 죽겠네 싶어 집 앞 산책도 나왔다. 일상에서 터부시하던 모습을 하나씩 지워가니 문득 어느 순간 “나 지금 진짜 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쉼이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숨겨진 보물찾기처럼 일상의 작은 일들을 꼭꼭 씹으며 살아갈 때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전 세계를 벌벌 떨게 한다. 돈과 성공을 정신없이 좇던 교만한 인간들에게 채찍처럼 나타난 아주 작은 바이러스. 조용히 다가와 매운맛을 보여준다. 경제를 힘들게 해 부모님 사업과 내 취업을 어렵게 하는 그 바이러스가 밉기도 하지만, 이 사태가 가져온 감사한 면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정을 회복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자의로 쉬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쉼을 선물하기도 하고, 여러 온라인 강의나 원격지원 업무를 통해 기술의 진보를 깨닫기도 한다.20대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살아가는 남은 날 동안 이런 전염병이 과연 한 번뿐일 해프닝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벌써 그 횡포는 시작했고 세상은 바뀔 것이다. 뉴노멀(New Normal)이 찾아올 것이고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격변하는 구름 아래가 아닌, 구름 위로 올라가 잔잔한 나만의 시간을, 방법을, 고민하고 찾을 수 있다. 잠시 후 다시 구름 아래로 내려와 뚝심 있게 남은 날들을 우리는 살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2020-04-19

특별한 소풍

이미하영어 강사내 인생에서 큰 축복 하나를 꼽으라면 평생 동지로 함께 하는 세 친구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총사는 같은 교회를 다니며 학창시절부터 오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친자매 이상의 정을 나누며 삶을 함께하고 있다. 부모님도 모두 같은 교회를 다니고 넷 모두 청년부에서 연애하고 짝을 맞춰 가정을 이루었다. 이런 공통점을 기반으로 우리는 결혼 이후 더욱 끈끈한 연대를 지속하고 있다.매년 만개한 꽃들이 새봄 축하 팡파르를 울리는 이맘때 우리 사총사는 특별 행사를 계획한다.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소풍이다. 이 특별한 소풍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했다. 당시 자녀들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부모로 사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를 모두 통감하고 우리 부모님도 이렇게 힘드셨겠구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일을 계획했다. 우리를 위해 애써주신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네 부부는 다가올 어버이날을 맞이해 부모님들께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 드리자며 의견을 모았다. 봄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으로 장소를 정한 후 모두 함께 타고 갈 버스를 예약하고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다.소풍날에는 빨강, 노랑, 나들이옷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들이 봄꽃보다 더 화사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버지 두 분은 머쓱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다.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너스레 담당 우리 남편. 부모님과 딸, 딸들의 사위 또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들을 짝 맞춰 세트로 소개하고 지금껏 길러주고 보살피신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렸다. 사진 담당인 나는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작은 카메라 뷰파인더에 부모님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또렷하게 잡힌다.즐거운 소풍 길에 흥겨운 노래 한 판 빠질쏘냐? 마이크가 돌아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손사래 치며 사양하던 분들이 흥이 오르자 마이크를 좀체 놓지 않는다. 숨겨 둔 뜻밖의 노래 솜씨를 뽐내시는 아버님께 앙코르 요청이 쏟아진다. 몇 바퀴 돌아가자 레퍼토리가 떨어지신 어르신들이 우리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셨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마이크를 꼭 잡고 며칠 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노래를 불렀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두우~~울이 앉아…….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울컥하는 마음을 눌러가며 노래를 마쳤다.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면서 자녀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시는 어르신들 눈에는 어여쁨과 사랑이 가득했다.소풍 장소에 도착해서 일행은 산책을 시작했다. 부모님 걸음 속도에 우리도 보조를 맞추며 함께 손잡고 봄의 한 가운데로 걸어가는 우리 네 딸은 가슴 뭉클함과 죄송한 마음을 동시에 느껴졌으리라. 이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우리는 곳곳에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딸의 손만 살짝 끌어당겨 닮은꼴 미소를 남긴다. 아들은 엄마의 가냘픈 어깨를 팔로 감싼다. 아들의 든든함에 엄마는 자랑스러움이 얼굴에 한껏 배어난다. 엄마를 사이에 두고 양옆에 꼭 붙어 앉은 딸과 사위, 다정한 웃음 띤 얼굴이 모두 둥글둥글 닮은꼴이다. 한껏 흥분한 어머니들 뒤편에서 어색해하는 아버님 챙기기는 딸 몫이다. 어머니 곁에 앉힌 후 함께 찍은 사진 속 아버지들은 소년마냥 수줍어한다.즐거운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화사한 봄꽃 기운을 받아서일까? 피곤할 법도 한데 여전히 어른들 얼굴에는 흥분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가는 길에 미처 부르지 못했던 노래로 마이크는 다시 돌아갔고 흥겨움 속에 포항에 도착했다. 엄마 중에 가장 맏언니가 자녀들에게 감사 인사를 나눈 후 부모님 시작한 첫 소풍을 기쁨과 감격 속에 마쳤다.해마다 부모님의 기대 속에 이 특별한 소풍을 지속했는데 근래 부모님들의 기력이 현저히 떨어져 재작년부터는 여행 대신 가까운 콘도에서 함께 일박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함께 모이기 불가능한 상황이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특별한 소풍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가는 날, 다시 특별한 소풍을 시작할 것이다. 부모님, 부디 건강해 주세요!

2020-04-12

잊기 쉬운 자동차의 어떤 기능에 대해

박근영 공무원“아! 이거 참…. 강사는 뭐 하는 거야!”도로주행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신호가 짧은 교차로 탓에 바짝 붙어 출발하다 화들짝 놀라 급정지를 했다. 짜증이 일었지만 도로주행 시험을 보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겸손 모드로 돌아간다.1999년 가을,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고 기어 변속 후 차를 출발시켰다. 식은땀이 흘렀다. 첫 신호등에 도착하자 긴장이 거의 풀렸다. 운전석 창문에 팔꿈치 걸치고 한 손으로 운전할 수도 있을 듯했다. 코스를 순조롭게 돌고 결승점에 도착해 시동을 껐다. 무사히 마쳤다. 90점은 가뿐하리라. 천만의 말씀! 감독관은 채점표를 보며 내 실수를 하나하나 짚었다. 출발할 때 형식적으로 차량을 돌아본 것, 후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학원에서 연습할 때 한 번도 그 행동의 의미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평소처럼 탑승 전에 바퀴를 몇 번 톡톡 차고 차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알고 보니 차량 주위에 장애물이나 위험요소는 없는지, 바퀴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운전석에서는 후방을 살피고 사이드미러로 양옆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야 했다. 하지만 나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거울을 째려보며 카레이서가 정면을 주시하듯 눈을 치켜떴다. 채점표를 보던 감독관에게 내 비장한 눈빛이 보일 리 없었다. 시동 걸고 출발하면 그만인 줄 알았지 이런 절차로 쇳덩이와 내가 세상의 안전을 도모하는 심오한 소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날 내 점수는 70점이었다.저녁 6시, 먼저 집에 가려는 차량들이 무례한 끼어들기를 반복한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따로 없다. 내 퇴근길은 램프 구간을 몇 번 지나 차선을 여러 차례 변경해야 한다. 차선을 바꿀 때는 옆 차 속도를 계산해 동물적 감각으로 끼어들어야 한다. 이때 내가 ‘끼어들겠다’는 의사 표시는 방향지시등으로 한다. 일명 깜박이. 옆 차선에서 누군가 깜박이를 켜고 진입하려 하면 나는 뒤에서 오는 차간 거리와 앞차와의 간격을 가늠해 속력을 살짝 줄여준다. 방향지시등을 켜는 것은 도로교통법 제38조1항에 명시된 운전자의 의무다. 차선을 변경할 때나 좌회전, 우회전, 유턴할 때도 반드시 켜야 한다. 깜박이는 여유를 두고 켜는 것이 좋으며 대략 6초면 옆 차선의 차들이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얌전히 가던 옆 차가 깜빡이 없이 칼치기로 들어올 때는 그 운전자의 손가락이 부러졌기 때문이다. 너그럽게 이해하기 때문에 심적 동요는 없다. 대신 화답하는 뜻으로 경적을 기다랗게 울려준다. 상대 운전자는 사과의 뜻으로 비상등을 몇 번 깜박거린다. 비상등을 켜려면 손을 뻗어야 하지만 방향지시등은 손가락만 뻗치면 닿는다. 자동차는 인체공학적으로 효율적이다.그날 도로주행 감독관은 내가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바로 끄고 차선 진입을 했다고 감점의 이유를 말했다(물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차선을 바꾼 기억조차 없는데 어찌 방향지시등을 켜자마자 끈 기억이 있을까? 두 차례나 그랬으므로 깜빡이 부문에서 내가 대량 실점을 했단다. 그 경험은 각인 효과가 있어 나는 이후로 확실하게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꾼다. 그 시절은 유난히 초보 운전자에게 가혹했다. 깜박이를 켜면 일부러 끼어들지 못하게 속력을 내는 일이 많다며 절대 깜박이를 쓰지 말라는 말까지 돌았다. 오죽하면 ‘여러분이 몰랐던 차의 기능’이라며 깜박이 켜기에 관한 유튜브 영상까지 나왔을까? ‘깜박이 켜기’ 운동도 있었다.운전자는 차를 흉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깜박이는 남을 배려하고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무례하게 차선을 넘나드는 운전자를 보며 실력 뛰어나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런 행동은 스트레스를 유발해 보복 혹은 난폭 운전을 일으킬 수 있다. 깜박이 사용은 주변 차량에 내 차의 방향 정보를 제공해 양보를 유도하고 사고를 예방한다. 나와 이웃을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우리가 잘 모르는) 자동차의 훌륭한 안전장치다. 운전대 왼쪽에 튀어나온 그것을 애용하는 일은 타인을 위한 배려다.

2020-04-05

우리 안에 있는 성장의 씨앗

허진욱 회사원셋째 형은 중학생 시절 권투를 했다. 프로 복서였던 아버지는 못 이룬 챔피언에 대한 꿈 때문에 권투를 시켰지만 형은 권투에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를 거역하면 혼날까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 훈련도 대충, 눈치껏 운동했고 성과도 없었다. 의심을 품은 아버지는 새벽 훈련을 몰래 뒤따라간 일이 있다. 선수 모두가 체육공원을 달리는 훈련이었다. 모두 열심히 뛰는데 형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갔고 30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화장실로 찾아가 재래식 화장실에서 쪼그린 채 잠들어 있는 형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분노했고 형을 다그쳤다.형과는 반대로 나는 진심으로 권투를 잘하고 싶었다. 부모님께 떼를 쓰다시피 요청해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 간절히 원하던 권투를 시작한 기쁨에 시키지 않아도 새벽부터 알아서 벌떡 일어나 체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나는 성장을 간절히 원했다. 학교 짱이 되고 싶었다. 한참 예민하던 때라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공부보다 싸움 잘하는 모습이 더 멋져 보여 시작한 권투는 내게 기술과 체력만 성장시켜준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신력을 덤으로 선물해 주었다. 운동으로 단련한 정신력은 삶의 힘든 시기마다 극복할 힘을 주었다.청소년기에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초가 부족해도, 지식이 없어도 주눅 들지 않았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르면서도 배우지 않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행동이라 생각했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일했고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배워 나갔다.항상 배움의 목표를 정하고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시기에는 네 시간만 자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성장은 저 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우쳤다.성장의 씨앗은 이미 내 안에 있다. 성장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는 결국 내 선택이다. 그 씨앗에 물을 주고 정성껏 가꾸어야 한다.내가 속한 회사에도 성장과 도약의 바람이 불고 있다. 새로운 대표이사 취임을 계기로 회사 분위기는 변하고 있다. 이전 경영자와 180도 다른 경영을 한다.소크라테스처럼 팀장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머리가 아프다. 정신이 없다. 그러나 그가 전하고 싶은 진심을 나는 알 수 있다. 스스로 성장하라는 것이다. 회사는 이익추구를 위해 혁신과 변화는 필수다. 결국 직원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성장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볼링을 잘하는 직원이 있다. 동호회 경기 때 한 번씩 퍼펙트를 칠 정도로 실력이 좋다. 하지만 볼링을 처음 배울 때에도 잘했고 좋아했는지 질문해 보았다. 답은 ‘아니다.’ 였다. 호기심에 몇 번 해보았는데 재미를 느꼈고, 더 잘하기 위해 방법을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연습했다고 했다. 실력이 늘고 볼링이 더 좋아지는 선순환이었다. 그는 볼링 레인과 공을 분석하면서 지금보다 성장하기 위해 주도적인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 볼링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은 빛난다. 행복해 보인다. 입가의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성장의 씨앗을 스스로 잘 키워 퍼펙트를 치는 경지에 올랐다. 이것이 성장 비결이다.지식근로자에게 일과 삶은 분리하고 싶어도 본질적으로 분리가 어렵다. 삶 속에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일을 통해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면 삶은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행복하게 하면 삶도 행복해진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성장본능을 꺼내는 방법이다. 삶을 즐겁게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스로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것이다.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를 계획하고 놀이처럼 그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코로나19로 인해 대한민국과 전 세계가 마비되어 있다. 심각하다.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무너져버린 일상을 복구하고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 성장을 통한 재도약이 절박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온 국민이 단합해 성장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다.

2020-03-29

내가 희망하는 숫자는?

오지은 공무원희망이란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뜻한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하고 싶은 ‘생각’이 선행해야 하고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생각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마음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머리와 가슴 사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마다 반복하는 3대 국민 결심은 금연, 다이어트, 영어공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새롭게 결심하지만 쉽게 이루지 못한다.희망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무언가를 결심하고 야심 차게 시작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성과에 실망하고 좌절한다. 결국 이런저런 합리적 핑계를 만들어 포기하고 만다. 이런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 성취하는 과정을 즐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목표를 잘게 쪼개 우선 임계점까지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잘 설계하면 작은 성취감을 즐기며 희망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희망’이라는 것은 태고로부터 인간이 극한의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고안해낸 일종의 자기 최면 기술은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유명한 역사학자가 말했다. 샤먼이 생겨나고, 그것을 구심점으로 사람들은 모여 협업할 수 있었으며, 이런 행동 양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동물들보다 우위에 있도록 만들었다. 희망도 그런 맥락에서 인류를 움직인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인생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내게는 욕망의 숫자가 있다. 그 숫자는 95 그리고 800이다. 95는 내가 욕망하는 티셔츠 사이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평균 몸무게였던 적이 없었던 나는 100이라는 숫자 아래의 티셔츠를 입어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95는 번번이 실패하는 다이어트에 대한 내 희망의 숫자다. 올해로 오십에 도달한 나는 800이란 숫자를 갈망한다. 800은 내가 받고 싶은 토익 점수다. 토익 900점이나 만점자도 넘쳐나고, 토익 스피킹, 오픽 같은 말하기 시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토익 800점이 내 욕망의 숫자일까? 필자가 대학생이던 90년대 초반에는 이 점수가 요즘 토익 900에 해당하는 꿈의 점수였기 때문이다. 토익 800점은 열심히 살지 않고 무심히 흘려보낸 내 젊은 날에 대한 후회를 치유해 주고 싶은 숫자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희망을 이룰 수는 없을까? 나는 선천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무엇인가 반복하는 행동에 쉽게 싫증을 낸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는데 날씬한 몸으로 바뀌어 있고,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희망하는 일을 이루려면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계속 반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희망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야 한다.희망의 시작은 나 자신이다. 최초의 희망은 내 머리에서 싹이 트고 내 가슴 속 열정이 싹튼 희망을 계속 품을 수 있게 한다. 결국 내 생각이 가장 중요한 희망의 씨앗이다. 훌륭한 생각을 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벤치마킹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았던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이다. 지혜로운 옛사람의 길을 따라가고, 내 삶에 녹여내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는 나는 고전을 손에 붙잡고 살아간다.고전은 우리에게 선뜻 답하기 어려운 난감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사고는 조금씩 넓어지고 유연하게 변한다. 가장 강한 자는 힘 있는 자도 아니고, 지식이 많은 자도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가장 강한 사람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유전공학으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4차 산업혁명의 벽두에 선 우리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유연한 사고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고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연습을 멈추지 않기로 결심한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고전 읽기가 아닐까?

2020-03-22

잃어버린 일상을 찾아서

정은숙생각학교ASK 연구원·프리랜서이른 아침, 비 내리는 수목원을 걸었다. 궂은 날씨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19 사태로 힘겨운 대구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이 누리는 작은 위안이다. 틀어박혀 살아야만 하는 요즘, 산책 한 번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는다.얼마 만에 돌아온 주부의 삶인지 모르겠다. 남편 출근시키고, 설거지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 후 모닝 요가로 긴장을 푼다. 시계가 아침 아홉 시를 가리키면 수목원, 화원동산, 수변공원을 요일마다 번갈아 가며 산책한다. 이렇게 바뀐 일상은 낯설지만, 짙은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에서 일상의 자그마한 행복을 한 조각 선물해 준다.사람들의 삶은 멀리서 보면 대략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분리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주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사연과 이유를 갖고 살아간다. ‘수많은 인생들은 과연 자신의 삶에 스스로 얼마나 만족하며 살아갈까?’ 대부분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불평불만에 젖어 막연히 저 멀리 어딘가 감추어진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까?근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예기치 못하게 덮친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붕괴되고 삶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클 것이다. 불안감 속에 자가격리나 스스로 절제하며 대면 접촉을 기피하는 현재 상황에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 집단 속에서 받던 스트레스가 이제는 일상에 대한 절실한 욕구로 옮겨졌다. 나도 그랬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며칠은 마치 휴가를 얻은 것처럼 좋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고 격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익숙했던 과거를 갈망하는 나를 발견하는 중이다.아침이 밝으면 출근하고, 저녁 어둠이 깃들면 퇴근길에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거나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 일상이 지고한 만족감을 주는 시간이기 때문은 아니다. 손에 붙잡을 수 없는 금지된 일상이기에 어쩌면 욕구가 강렬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큰 위기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런 불편한 현실쯤은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스스로 다독인다.전쟁처럼 바뀐 요즘, 일상의 두려움을 행복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자세히 보기’다. 예전까지는 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에도 바빴던 일상이라 무심하게 지나치고 자세히 시선을 주지 못한 것들,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는 일에 집중해 보는 거다. 갑자기 늘어난 산책 시간은 내게 그렇게 ‘자세히 보기’가 주는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들의 아름다움을.가냘프게 매달린 앙상한 가지에 조금씩 물이 차오르는 모습, 메마른 땅속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야생화가 움트는 생명력, 소리 없이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며 활기를 얻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은 고요하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고개를 내미는 봄꽃으로부터 위대함과 침착함을 배운다. 그들의 조화로움을 배운다. 나름의 색깔과 다채로움으로 봄이 탄생하듯 사람 또한 각양 색깔과 가치관들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조화롭지 못한 일이 생기는 건 무언가 순리를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도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왔다. 이겨내야 한다.고통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을 반성하게 해 준다. ‘평범함’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에 대한 감사,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감사, 더불어 함께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반성, 집 안 구석구석 내 손길이 필요함을 깨닫는 시간이다. 매일 집안 일정한 공간을 지정해 정리정돈을 시도해 보고,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일을 기억을 떠올려 누려보는 일, 때로는 멍 때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보는 것, 비 오는 공원을 걸으며 구석구석 야생화를 찾아보는 작은 실천이 지친 우리에게 또 다른 행복을 발견하게 해 줄 것이다.“이 또한 지나가리라.” 옛 왕의 반지에 새겨진 문구처럼, 지금의 힘든 시간은 언젠가 좋은 기억으로 그리움이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세히 보기’를 통해 행복을 되찾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기 때문이다.

2020-03-15

세 가지 성찰

정현아간호사매주 ‘논어’를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학이(學而)편 4장 증자의 ‘세 가지 성찰’에 대해 나눈 적이 있다.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뜻은 이렇다.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세 가지 측면에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며 충실하지 못한 부분은 없는가? 친구와 교제하며 미덥지 못한 점은 없는가? 지식을 전수하면서 스스로 익히지 못한 부분은 없는가?”어느 날 퇴근 후, 증자의 세 가지 성찰을 자신에게 적용해 보았다.첫째,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가? 일할 때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진심을 다해 일했을까?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객을 대한 순간은 없었을까? 내 직무를 즐기는가? 기쁘고 즐겁게 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을 바꾸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했는가?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하루를 마친 건 아닌지 돌아본다.둘째, 친구와 교제하면서 미덥지 못한 점은 없었는가?새로운 팀원이 들어왔다. 변화가 생기면 삐그덕 거리기 마련이다. 서로 적응하고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각자 모난 부분이 부대끼며 동글동글해지는 시간임을 알면서도 들려오는 불협화음이 신경 쓰인다. 억지로 되는 게 있겠나 싶어 시간을 두고 마음을 열어보자고 한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오해가 쌓이고 그 오해가 다시 큰 오해를 만들기 마련이다.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고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살피고, 내가 먼저 행하면 통하리라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오늘 만난 소중한 이들을 진심으로 대했는가? 그들의 소중함을 느꼈는가? 감사한 마음을 가졌는가? 내 기분을 내세워 상대를 이용하진 않았는가? 일방적인 강요로 불편하게 하진 않았는가? 거짓으로 가면을 쓴 채 대하진 않았는가?셋째, 제자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면서 스스로 익숙하지 못한 부분은 없었는가? 이 부분은 나 자신의 배움에 적용해 본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만난 이들에게 무엇을 배우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는가? 새로운 지식을 하나라도 배우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은 사람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백과사전이라도 들추어 한 가지를 배우고 잠들었다는 대목이 놀라웠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갇혀 뱅뱅 맴돌지 않고 늘 배우려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스승이다. 일상의 모든 부분이 내 스승이다.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나보다 못한 것은 없다.나는 증자의 세 가지 성찰에 하나를 더해 본다.넷째,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는가? 현대인은 고독한 시간이 없다는 기사를 보았다. 왜 고독의 시간이 필요할까? 정보의 늪에 빠져 눈이 먼 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시간을 갖지 못한다. 심란하고 복잡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에 나를 맡기는 행동을 반복하면 결과는 어떨까?남들이 올리는 화려한 사진에 대리 만족하고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또다시 거짓 가면을 쓰고 멋지게 한 컷 올리는 삶이 진정한 삶일까?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그 시간 자체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외부 자극 없이 고요한 상태가 필요하다.나를 홀로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하루 어떤 감정이었는지, 지금 상태를 살피고 내면의 말을 들어주는 시간을 매일 갖는다. 고독한 시간이다. 조금 익숙해지면 짙은 고독이 찾아와도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나를 찾기 시작한다. 모든 창조적인 일은 고독이 필요하다. 매일 성찰하는 삶은 ‘선택과 실행’을 돌아보게 한다. 삶에 다가온 변화들, 소중한 가치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든다. 성찰을 통해 몰입과 집중할 대상을 정한다. 해야 할 것은 시작하고 계속해야 할 것을 지속해 나간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중단한다.삶을 진하게 살아내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매일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충만한 삶이다. 오늘도 증자는 묻는다.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2020-03-08

내 통장은 내가 지킨다

문춘희종합자산관리사작년 말, 본 지면에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필자의 졸고가 실렸다. 강의해 달라는 분도 있었고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격려도 쏟아졌다. 좋은 경험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 글에 관심을 보이셨던 분들 가운데 과연 통장 나누기를 실천에 옮긴 사람은 몇이나 될까?수렁이 깊지 않아 빠르게 방향을 잡은 독자도 있었을 것이다. 굳어버린 소비 패턴에 젖어 수습하기 쉽지 않은 독자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매달 입꼬리가 오르는 순간과 한숨이 푹푹 나오는 순간을 반복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경제 활동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태어나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돈’의 굴레를 벗어나 살 수 없기 때문이다.“딩동” 급여 이체 알림 문자가 들려오는 즉시 통장 나누기를 실천한다. 맨 먼저 재정관리 전반의 선순환을 위해 ‘예비비 통장’으로 수입액의 5~10%를 보낸다. 다음으로는 3개월 평균 소비 패턴으로 파악한 지출 금액을 ‘소비 통장’으로 보낸다. 이 통장에 연결한 체크카드로 적정 소비습관을 만들어 간다. ‘고정지출 통장’에는 스쳐 지나는 재정을 이체한다. 자동이체로 빠지는 이 항목 목록은 내 삶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하고 나를 슬프게도 하는 비밀이 감춰져 있다. 통신비, 아파트 관리비, 학원비, 대출금 상환, 보험료 등. 여기까지는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한 패턴이 아닐까 싶다.필자는 30대 중반, 보도 쉐퍼의 ‘돈’이라는 책에서 “돈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돈은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이다. 이 사실을 터득한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대목을 읽고 기부를 시작했다. 아주 적은 돈으로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아이들 후원하는 방식으로 기부를 한다. 마음 한켠에는 이 기부가 부메랑처럼 더욱 큰 복으로 내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심(私心) 가득하지만, 매년 연말 정산에도 요긴하고 나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임을 느끼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소득에서 언젠가 닥칠 노년을 대비한 내 몫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이 있지만, 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다. 소득이 줄거나 단절될 때를 위해 최소 10% 이상을 내 몫으로 만들어 가되 수입이 늘면 그 비중을 더 늘려가야 한다. 내 가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수입이 있는 동안에는 평생을 쌓아가야 한다. 내 자식을 비롯해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오직 나를 위한 몫이다.아이가 블록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할 때부터 아이 몫도 만들어 가야 한다.회사 복지가 최상이고, 다양한 장학 혜택을 받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자영업자나 조건이 맞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 아닐까? 사립대, 예체능, 원룸, 이런 무서운 단어를 만나더라도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흔들림이 없다. 대학생이 되어 독립시킬 비용을 일찍 준비한다면 귀한 내 몫을 뺏기지 않아도 된다.노후를 위해서 준비만 하는 게 삶인가? 아니다. 매달 사용하는 ‘소비 통장’이 지금 나를 위한 몫이다. 그것으로 삶을 위로받기는 너무 부족한가? 친구나 가족들과 해외여행도 가야 하고, 수고한 나를 위한 가치 있는 소비도 하고 싶지 않을까? 일단 지르고 나중에 갚느라 등골 휘는 것보다 나를 위한 특별한 소비 항목을 정하고 미리부터 일정 부분 준비해야 한다.마지막으로 목적 자금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결혼, 집 구입, 혹은 투자를 위한 종잣돈 마련일 수도 있다. 이 목적 자금 준비가 충실하다면 매달 쌓여가는 기쁨, 눈덩이처럼 굴러가는 종잣돈의 위력을 결국 만날 수 있다. 종잣돈이 커가면서 본인의 투자 성향이 금융 쪽일지 부동산 쪽인지 확인해 깊이 있게 공부해갈 필요가 있다.자산을 쌓는 방법은 수평적 방법과 수직적 방법이 있다. 전자는 수입에서 적절한 비율을 안배해 월급이 오르면 비율을 다시 조정해 가는 방식이고, 후자는 당면 문제부터 해결하고 또 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어떤 방법이든 최종 목적은 노동 소득과 더불어 종잣돈을 투자해 버는 자본 소득이 공존할 수 있는 수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많은 일을 감당해 내야 하는 사랑스러운 통장. 오늘부터 내 통장은 내가 지킨다!

2020-03-01

나는 나를 아는가?

권해창 고등학교 교사어느 토요일 아침, 북 콘서트에 참여했다. 저자의 강연과 참여자들이 주어진 질문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평소 자신에 대해 잘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간단한 질문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만났다.질문은 이랬다. ‘좋아하는 계절은?’ ‘좋아하는 색깔은?’ ‘좋아하는 숫자는?’ ‘나를 닮은 동물은?’ ‘나를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이 쉬운 질문들 앞에서 나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잠이 덜 깬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갑자기 무색무취의 존재처럼 느껴졌다.‘좋아하는 계절은?’ 봄과 가을이 좋아 보이는데, 왜 좋은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좋아하는 색깔은?’ 무지개가 떠올랐지만 하나를 고르기는 불가능했다. 흰색? 회색? 검은색은 아닌 것 같았다. ‘좋아하는 숫자는?’ 아, 숫자를 좋아해 본 기억이 없다. 난감했다. 숫자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나를 닮은 동물은?’ 이건 대답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돼지? 곰? ‘나를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한 글자로 나를 표현하라니, 어떻게? 이 질문이 가장 어려웠다.오늘 처음 본 짝에게 나를 ‘빛’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유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순간적으로 ‘빛’이 떠올랐다. 막상 말은 했지만 내가 진짜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횡설수설하면서 내가 ‘빛’인 이유를 댔다.쉬운 질문에 대답을 잘못했다고 부끄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선했다. 대답을 주저했던 나에 대한 궁금증이 오히려 생겼다. 북 콘서트가 끝난 후 조용한 카페를 찾아 아까 받은 다섯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종이에 질문과 답을 하나씩 적어가며 나 자신과 대화를 시작했다.‘좋아하는 계절은?’ 봄. 봄이 주는 생기와 따스한 햇볕이 좋다. 바닷가를 걸을 때 불어오는 시원한 봄바람은 기분을 좋게 만들고 근심·걱정을 다 씻어주는 듯하여 좋다. 여행가기에 이보다 좋은 계절은 없다. ‘좋아하는 색깔은?’ 파란색과 흰색. 옷을 살 때 파란색과 흰색 상의를 종종 사는데 내 얼굴 톤이 이 두 색과 잘 맞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숫자는?’ 2. 전면에 나서서 무언가를 진행하기보다는 뒤에서 조력하는 쪽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생각학교 2기라서 그런지 숫자는 2가 좋다. ‘나를 닮은 동물은?’ 팬더. 느릿한 행동과 느긋해 보이는 외모. 왠지 나를 쏙 빼닮았다. 직접 나를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나를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앞으로 되고 싶은 나를 표현해본다면 ‘물’이다. 노자의 ‘도덕경’8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타인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모습. 예전에 동양고전을 공부하면서 물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이런 질문에 잘 대답한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거나 대오각성하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해 보일지라도 나와 관련된 질문들에 답하는 행위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를 더 잘 알아갈 수 있다. 나를 잘 안다면 크고 작은 삶의 변화를 앞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나를 모를 때보다 조금 더 나을 수 있다.짧은 도보 여행을 할 때 출발지가 없거나 명확하지 않다면 목적지를 정하기 힘들다. 설레는 마음으로 목적지를 정한다 해도 출발지를 모르면 어떻게 가야 할지 막연하다. 목적지만큼 출발지도 중요하다. 출발지는 현재 내 모습, 목적지는 내가 세우는 삶의 크고 작은 목표라고 할 수 있다.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다짐한 새해 목표는 잘 지켜지고 있는가?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었다면 포기하기 전에 나를 한 번 살펴보자. 목표가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내가 세운 목표는 진짜 원하는 것이었는가, 현재의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 등등. 질문을 던지면서 솔직하게 답 해보자. 이왕이면 종이를 펴서 생각을 글로 적어 구체적으로 나를 대면해보자.목표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출발지에 서 있는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루 정도는 간단한 질문들로 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2020-02-23

금각사와 불국사

용문중 포스텍 신소재 공학과 박사과정얼마 전 일본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일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는 저녁 시간이라 남는 시간을 활용해 교토에 있는 금각사를 방문했다. 예전에 읽은 소설 ‘금각사’에 나오는 실제 금각사의 모습과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금각사는 1950년에 한 견습 승려가 지른 불 때문에 누각이 불타고 말았다. 소설 ‘금각사’는 그 견습 승려의 성장 배경을 그리며, 그가 왜 불을 질렀는지 이유를 다룬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 금각사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하지만 직접 수도자로 경험한 금각사는 상상만큼 아름답지도 않았고,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기대 주위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밖에는 경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금각사의 아름다움을 타락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굳힌다. 결국 타락의 뿌리를 뽑기 위해 불을 지른다는 내용이다. 실제 금각사 방화범의 범행 동기도 ‘금각의 아름다움이 탐나서’라고 밝혔다. 대체 금각사는 어떤 모습이었길래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궁금했다.정문에 도착해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니 바로 황금색 금각이 보였다. 금각은 총 3층 구조인데, 위의 2층만 황금색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고, 맨 아래층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금각 주위에는 연못과 나무들이 있었는데, 금각의 화려함과 자연의 모습이 선명한 대비를 이뤄 아름다웠다. 산속에 오로지 금각만이 밝게 빛나는 모양이었다. 주위의 관광객들은 금각과 주변 나무 풍경이 잘 어우러지는 자리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소설 속 주인공처럼 금각의 아름다움에 너무 큰 기대를 품었기 때문일까, 실제로 금각사를 보니 금세 시시한 마음이 들었다. 그저 금빛 3층 건물인데, 왜 이 건물을 그토록 아름답다고 할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금각사를 나와 산책길을 걷다가 문득 가까운 경주 불국사 내부의 석가탑과 다보탑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금각의 외형에서 석가탑의 단정하고 반듯하며 단단한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종 친구들과 불국사에 갈 때면, 대웅전 앞에 서서 석가탑과 다보탑 중에 어느 게 더 낫냐고 묻곤 했다. 친구들마다 선택은 달랐지만, 나는 언제나 석가탑에 더 끌렸다. 다보탑의 화려한 모습과 개성도 인상적이지만, 그래도 단단하고 편안한 석가탑 모습이 더 좋았다. 그렇게 두 탑을 보고 있으면, 서로가 각자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느낌이 들곤 했다.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금각을 생각해 보았다. 금각은 산속에 홀로 서 있고, 오로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비춰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없기에, 아무리 스스로를 열심히 바라본다고 해도 타인이 보는 나를 명확히 알 수 없는 법이다. 어쩌면 소설 금각사에서 금각 주위가 타락하는 이유가 금각 혼자만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취하면 다른 사람의 진면목을 제대로 못 보는 것처럼.삶의 여정 가운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곤 한다. 금각처럼 화려하고 멋진 사람, 석가탑처럼 단단하면서도 조용한 사람, 다보탑처럼 개성이 넘치면서도 자신만의 뚜렷한 색을 지닌 사람. 첫눈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고, 오래 만나면서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는 사회에서 인정받아 금각처럼 빛나는 사람도 있고, 보이진 않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존재하는 석가탑 같은 사람도 있다.아무리 금각처럼 반짝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잘난 맛에 취해 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자신이 빛날 수 있는 건, 그런 빛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인도에서는 부와 권력이 아무 의미가 없듯, 한 개인의 잘남은 결국 사회 속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어쩌면 모든 것을 다 갖춘 인간보다,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메꾸려 애쓰는 사람이 더 알찬 삶을 살지도 모른다. 삶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석가탑과 다보탑이 서로의 부족함을 메꿔주는 것처럼. 삶이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직면하고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과 함께하며 나아가는 행위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2020-02-16

철갑을 두른 소나무를 지키자

김영체 진솔 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며칠 전, 포항에서 대구로 향하던 중 서포항 나들목 근처를 지나다가 저절로 눈길이 머무는 경험을 했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법. 내 눈에는 제일 먼저 산(山)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지역은 소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임지(林地)다. 운전 중 눈길이 머문 이유가 있다. 벌겋게 죽은 소나무가 보였기 때문이다. 병든 소나무를 보는 순간 가시에 찔린 듯 마음이 따끔했다. 소나무숲이 주는 푸르름은 간데없고 벌겋게 변한 소나무들이 눈에 밟힌다. 한두 그루가 아니었다. 이미 많은 소나무가 벌겋게 변했다. 산이 일터인 필자는 이런 장면을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 더 가슴이 아프다.벌겋게 서 있는 소나무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이다. 재선충(材線蟲)병에 감염된 소나무는 서 있는 채로 말라버린다. 이 병에 걸린 소나무는 고사할 확률이 100%에 가깝다. 재선충은 소나무의 양분과 수분을 빼앗아 간다. 인위적으로 소나무에 영양제를 투여하지 않는 이상 재선충에게 소나무의 영양분을 대부분 뺏겨 말라 죽는 것이다. 재선충은 스스로 다른 나무로 이동하지 못한다. 솔수염하늘소와 같은 매개충을 통해 이동한다. 솔수염하늘소는 2~3cm 크기의 작은 벌레다. 산림청에서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를 위하여 매년 예산을 배정한다. 솔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서식처를 없애는 일이다. 매개충의 서식처가 되는 고사목에 대해서 훈증 및 매몰 파쇄 작업을 하는 것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이다.필자는 2014년도에 포항 나들목 인근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사업의 설계용역을 한 적이 있었다. 벌써 6년 전 일이다. 그 당시에도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많았었다. 그 이후 매년 꾸준히 산림청과 포항시에서 방제작업을 해왔다. 다행히 죽어가는 소나무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2020년 초, 6년 전 못지않게 다시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익숙한 노랫말이다. 애국가이다. 식전행사로 국민의례를 할 때 주로 듣는다. 70~80년대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거의 매일 들었다. 애국심을 고취시켜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국민적으로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국기 강하식이라는 행사도 매일 거행했는데 관공서와 학교에 게양한 태극기를 내릴 때 애국가가 전국에서 흘러나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국민은 누구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쉽게 듣지 못하는 애국가다. 그래도 애국가 1절은 많이 들어 볼 기회를 접하지만 4절까지 전부를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애국가 2절 가사에 소나무가 등장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소나무는 다른 수종에 비하여 성장이 느린 편이지만 수명이 길다. 자연히 장수의 상징이다. 불로장수라는 꽃말이 붙였다. 소나무 모양은 다양하다. 곧게 자라기도 하고 구불구불하게 자라기도 한다. 쭉 곧게 자란 소나무는 전통 건축물 목재로 사용하기에 제격이다. 백 년 이상 모진 비바람을 견디면서 성장한 소나무가 불타버린 남대문 축조에 쓰였다. 구불구불하게 자라는 소나무는 조경수로 으뜸이다. 척박한 토질에서도 자란다. 바위산에도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볼 수 있다. 소나무는 쓸모없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곧게 자라면 건축 자재로, 못생겨도 그 나름대로 조경수로, 아니면 생활에 필요한 땔감으로, 여러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지금은 우리나라 어디든 소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일어나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2100년에는 백두산 같은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는 임업인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의 작은 관심만 가진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의 애환과 함께해 온 소나무를 지켜야 한다. 다시 반만년 역사를 이어가도록 온 국민의 작은 관심이 절실한 시기다.

2020-02-09

연대의 힘

박현미 회사원TV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상대를 짓밟고 생존하는 정글을 보는 느낌이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거북하다. 이들의 꿈을 지원한다는 미명 하에 가해지는 잔인함은 시청하는 내 인간성마저 파괴하는 기분이다.입시와 취업 등,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매일 서바이벌 게임처럼 살고 있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순으로 자리를 지정하는 순간, 친구는 경쟁 상대로 변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겠다며 끙끙거리다가 대상을 알지도 못하는 분노로 마음이 가득 차기도 했다. 결국 능력 부족, 근성 부족, 체력부족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체념하고 말았지만.오디션 서바이벌은 나처럼 뒤처지는 것이 싫어 도망치는 부류가 맘 편히 볼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늘 경쟁에 져 울고 있는 이들에게 시선이 먼저 간다. 그들이 겪는 좌절이 안타까웠고 잘 털고 일어나길 바라는 무거운 맘으로 지켜봤다.어느 휴일,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시선이 저절로 갔다. 사회자의 멘트 한 마디가 가슴에 콕 박혀왔다. “여러분은 옆에 친구들이 다 경쟁자라고 느껴지나요?” 참가자들은 어깨를 나란히 걸쳤지만 불안한 눈빛으로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주어지는 팀 미션과 경연은 상대 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입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 커트라인을 넘겨 전원 생방송 무대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와!”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도 환성이 터졌다. 기존의 오디션 방식에서 봤던 수없이 딛고 올라야만 하는 피라미드 구조가 아닌 함께 오르는 정상이라니. 왕좌에 올랐다 해도 미안함에 고개만 떨구던 승리자들, 그들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야 했던 탈락자들, 기쁨과 좌절, 두 감정으로 얼룩진 현장을 보는 일은 나를 얼마나 피곤하게 했던가?이번은 달랐다.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린 소년들은 얼싸안고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향해 맘껏 웃는다.나는 이들의 동반성장을 무척 기대한다. 시간이 닿는 한 그들의 발전과 성장 과정을 지켜보려 한다. 승자독식 세상에 오래 함께 가는 것이 진정한 힘이고 바른길임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별 인터뷰에서 벌써 이들은 한 뼘 더 자라 있었다. 본인들의 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다 함께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내겠다는 포부가 당차다. 결국에는 이들도 일부만 데뷔하고 각자 다른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를 끌고 당겼던 기억은 살아가는 동안 큰 힘을 주고 자신감의 원천이 되어 줄 것이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연대하며 서로를 지지했던 추억을 오래 간직할 것이다.얼마 전 포항에 이런 연대의 철학을 담은 ‘잉클링스’라는 북클럽이 생겼다. 잉클링스(Inklings)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수들이 만든 문학 토론 모임이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S.루이스와 그의 형 워렌 루이스,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이 주축이 되어 1930년부터 모임을 시작했다. 브런치를 나누며 읽은 책과 쓰고 있는 작품을 매주 1~2회 모여 잡담처럼 나누던 소모임이다. 포항 잉클링스도 전국 각지에 흩어진 멤버들과 책으로 연대하고 동행하는 것을 추진한다. 함께 호흡하며 느슨하게 연대해 서로를 격려한다. 포항 지역에서는 오프라인에서 ‘작가연구 소모임’에 참여해 위대한 작가의 작품으로 토론하고 이 결과를 한 달에 한 번 전국 각지의 멤버들과 문서로 공유하고 결국 책으로 출간해 모든 멤버들에게 선물한다. 포항에서 시작하고 전국 각지로 소모임을 확산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지지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큰 용기를 얻는다. 연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한마음이 되어 힘을 합해 추진하면 못해 낼 것 같은 일도 결국 해내게 된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임계점을 넘는 순간 혼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진짜 변화를 느끼는 것이다.나만 아니면 된다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 무수한 경쟁 속 공감받지 못하는 고민과 현실 앞에서 이런 모임 하나 간직하며 연대한다면, 서바이벌 같은 세상도 조금은 살만하지 않을까? 모두 같이 성장하는 원팀(One team)을 상상해본다.

2020-02-02

‘다꾸’를 시작했습니다

이미하 영어 강사요즘 ‘다꾸’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예쁜 신상 ‘마테’랑 스티커 사느라 두부 20모쯤 되는 돈을 쏟아 부었나 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이 대부분 아닐까 짐작한다. ‘다꾸’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뜻하고 ‘마테’는 알록달록하게 디자인한 예쁜 마스킹 테이프를 줄인 말이다. ‘다꾸’에 열성을 보이는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여대생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다.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쓰는 언어에 익숙해진다. 왠지 이런 표현을 쓰면 마음까지 살짝 젊어지는 기분이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작년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푸른색 커버에 2019 숫자가 음각으로 찍힌 다이어리를 구입해 업무를 중심으로 스케줄 관리를 위해 사용했다. 1년이 지난 후 다시 펼쳐본 낡은 다이어리는 흉측했다. 검은색 볼펜으로 찍찍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메모들, 바빴던 스케줄 중심의 건조한 기록들로 가득한 다이어리는 그냥 버린다고 해도 미련을 둘만한 아무런 미적, 정서적 가치도 없었다. 올해는 나만의 가치를 담은 색다르고 예쁜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었다. 일 년 동안 내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낼 예쁜 다이어리를 꾸미기에 의미를 부여하자 부질없는 시간 낭비로 보였던 장난 같은 ‘다꾸’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다이어리부터 바꾸었다. 작년까지 사용했던 푸른색 커버 대신 투명 비닐 커버의 노트처럼 생긴 캐주얼한 다이어리이다. 올해 받은 탁상 달력 속 노란색 뽀글 머리에 큰 눈을 가진 소녀 캐릭터가 사랑스러웠다. 달력을 포기하고 오려내 다이어리 앞. 뒤 표지에 붙인 후 꽃 스티커로 장식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다이어리가 탄생했다. 표지 장식을 끝낸 후 거금을 투자한 스티커를 이용해 월간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 매달 컨셉을 잡아 어울리는 스티커로 전체를 장식하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날은 특별히 눈에 잘 뜨이는 스티커를 붙였다.1월은 상큼한 출발을 다짐하며 레몬에 다양한 표정을 담은 스티커로 꾸몄다. 개나리색 형광펜으로 ‘좋은 일만 가득해라’ 소망도 써 두었다. 음력 내 생일과 양력 아들 생일이 겹치는 신기한 일이 있어 삼단 케이크 스티커와 빨간 하트 풍선을 쥐고 달리는 소녀 스티커로 꾸몄다.2월 월간 계획표는 한 편의 추상화다. 단순한 모양에 예쁜 파스텔 톤의 꽃과 나무 스티커를 곳곳에 배치하니 세련된 멋이 넘친다. 화요일 오전의 독서 모임 외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허전해 보이는 2월, 어떤 내용으로 빈칸을 채워갈지 기대 가득하다.새 생명이 약동하는 3월의 다이어리에는 온통 사슴들이 뛰어논다. 모진 추위를 견디고 생명이 움트는 계절, 사슴처럼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 모양이다. 3월에 있는 아버지 생신을 잊지 말자고 파란 별 스티커를 붙였다. 계절의 여왕 5월에는 다이어리에도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정성껏 꾸민 분홍, 보랏빛 예쁜 꽃 스티커에서 향기가 진동하는 느낌이다. 5월 8일 어버이날 칸에 빨간 하트 스티커를 붙이고 사인펜으로 진하게 눌러쓴다. 사랑해요! 감사해요!7월 다이어리는 온통 푸른색이다. 화요 독서모임 회원 중 문구점을 운영하는 분이 내가 ‘다꾸’하는 걸 알고 스티커를 여러 장 선물했다. 그중에서 조개, 불가사리, 고동, 유리병 스티커로 시원한 여름 바닷가의 모습을 연출해 본다. 즐거운 여름 휴가가 기다리는 7월, 올여름 휴가는 어디로 갈까? 동남아? 중국? 벌써 마음이 설렌다. 휴가지를 결정하면 그곳 풍물이 가득한 스티커를 사서 꾸미려 한다.재미삼아 시작했던 다이어리 꾸미기는 점점 의미 있는 일로 변했다. 매달 그달의 컨셉을 잡고 꾸미는 일은 한 달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희망이며 약속을 시각화해 자연스럽게 그날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다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들었다. 소중한 날들을 미리 예쁘게 꾸며 놓았기 때문에 마음 든든하다. 아직 꾸미지 않은 빈칸이 많이 남아 있다. 바라기는 더욱 다채로운 스티커들과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2020 나의 다이어리가 꽉꽉 채워져 소중한 삶의 기록으로 오래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20-01-19

내면의 어둠 물리치기

한효정 한동대 4년·ICT창업학부청소년 캠프에 대학생 봉사자로 참여해 진행했던 활동이 있다. 납작한 접시에 깨끗한 물을 담는다. 깨끗한 마음을 상징한다. 그 물에 후춧가루를 뿌린다. 더럽고 어두워진 마음을 의미한다. 다음 단계로 손가락에 세제 한 방울을 바른다. 어둠을 밀어내는 빛의 역할이다. 세제를 바른 손가락을 더러운 물 한 가운데 넣자 순식간에 후춧가루가 바깥으로 밀려난다.캠프에서 이 활동을 한 이유는 그날 주제였던 어둠 물리치기 Rejecting Darkness, 곧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모습을 경험적 자극을 통해 각인하려는 의도였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그때 함께 했던 이 경험이 기억에 맴돈다.최근 내 마음에는 어둠이 안개처럼 짙게 내려앉아 오래 머문다. 내면의 목소리는 나를 책망하기 바쁘고 더 잘할 수는 없겠느냐 다그치는 엄격한 검열관이 버티고 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자존감이 쪼그라들고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목소리만 커지는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하다.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둠에 잠식당해 컴컴했던 마음의 밤을 물리치고 싶었다. 빛나는 새 아침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의 밤은 이렇게 시작됐다. 4학년 2학기를 맞으며 휴학을 결정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대학 생활을 잠시 멈췄으니 느긋하게 쉬려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갑자기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을 경험할 좋은 기회가 생겨 쉬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그 길을 선택했다. 버겁고 힘들었지만 애써 무시한 채 머뭇거리는 두 다리를 머리로 달래며 걸었다. 나를 위한다고 쏟아내는 엄마의 조언은 잔소리를 넘어 참견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딸을 믿지 못하겠어요?” 꾹꾹 누르던 감정이 서러운 목소리로 변해 엄마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돌아서서 자신을 자책했다. 학교를 벗어나 접하는 회사의 환경도 낯섦 그 자체였다. 긴장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며 처음 겪어야 하는 미숙한 내 모습과 한계를 보며 당황스러웠다.이렇게 어두움이 깃든 내 마음에 빛을 비춘다면 어떨까? 내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4학년 2학기를 맞으며 휴학을 결정했다. 그리웠던 내 방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기숙사에서 그토록 먹고 싶었던 집밥을 먹으며 가족들과 매일 눈 맞춤도 할 수 있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일이 있고, 출근할 수 있는 회사가 생겼다. 회사에 다녀오면 나름 쉴 수 있다.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 엄마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비록 많이 서툴지만 아직 인턴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모르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는 회사 분들이 고맙기만 하다.아무리 예쁜 구슬을 모은다 해도 실과 바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화려한 스펙과 좋은 경험이 있다 해도 내 안에 감사와 기쁨이 없다면 예쁜 목걸이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 그저 공간만 차지하여 굴러다니는 구슬일 뿐이다. 감사는 빛과 같다. 내 주변에 놓인 좋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내가 의식조차 못 하는 사이 내면을 가득 채우는 부정적인 생각은 어느새 관성이 붙어 밤과 밤을 이으려 한다. 하지만 비록 지금 밤에 있다고 해도, 결코 아침을 건너뛴 채 내일 밤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매일 어김없이 뜨는 태양이 있기에 마음을 다잡는다. 아침이 오더라도 눈을 뜨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한 어둠 속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재미보다 기쁨을 추구하며 살고 싶다. 영상을 보며 2~3시간 재밌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돌아서면 공허한 그런 행위보다 30분이라도 차분히 책상에 앉아 글로 내 마음을 써 내려가며 삶의 기쁨을 채우는 시간 여행자가 되고 싶다. 혹 매일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매일 감사하며 살고 싶다. 감사한 일이 너무 많은데 몇 가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고 스스로 어둠 속에 잠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싶다. 감사는 어둠을 물리치는 강력한 빛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제 두 손을 앞으로 쭉 뻗고 내 마음에게 말한다. “어둠아 물러가라!”

2020-01-12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정은숙 프리랜서연초에 빠뜨리지 않는 활동 한 가지가 있다. 지난해 바인더에 꼬박 작성한 플래너를 보며, 머물렀던 시간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일이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한 해 계획을 짠다. 당시에는 상황에 함몰되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부분을 이때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순간을 잘 이겨냈구나. 포기했으면 후회할 뻔했지?’ 이런 아찔함을 느끼기는 일도 있다. 무언가 쉽게 포기하면서 얻는 안락함보다 고비를 넘겨 쟁취한 승리의 달콤함이 수십, 수백 배 더 가치 있음을 알아간다.한때 자기계발서를 부지런히 읽으며 목표를 세운 적이 있었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반드시 한 가지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책에서는 꿈을 이루는 공식을 와닿게 설명했다. R(꿈의 현실화)=V(생생한 vivid) D(꿈꾸기·dream), 즉 생생하게 꿈을 꾸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였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이루고 싶은 바를 생생하게 실체를 보듯 꿈꾸라는 뜻이다. 실천하려 애썼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의식 속에 있는 부정적 생각을 없애는 방법으로 내 소망을 가족 앞에서 말로 선포하기로 했다.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엄마가 2009년 12월에 새 자동차를 살 건데 차종은 어떤 게 좋을까?” 모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비아냥거렸다. “엄마, 이번에는 대체 무슨 책을 읽은 거야?” “그때쯤 YF 쏘나타가 나온다고 하던데.” 가족들이 농담처럼 말했다. 이런 반응은 너무도 당연했는데 당시 내게는 돈도 계획도 그렇다고 희망이 있었던 상황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또를 맞지 않고서 3천만 원이 넘는 새 차를 장만하기란 꿈도 꿀 수 없음을 가족만 아니라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선포하고 행동으로 옮겼다.아직 정식 배포도 안 된 신차 카탈로그를 어렵게 구해 주방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 매일 마음속에 새기려고 애썼다. 의심이 스며들 때마다 스스로를 타일렀다. “확신을 가져라. 의심은 금물이다.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당신의 내부의 부정적 자아가 어떤 소리를 하든 상관하지 마라. 오직 믿음에 믿음만 더하라.”결론을 말하자면 가족에게 선포한 예정일보다 한 달 앞당겨 차를 탈 수 있었다. 신기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하고 긍정의 소리를 들려주는 단순한 행위가 힘이 있다는 걸 경험해 보았다. 자신이 생겼다.이 일을 계기로 작은 꿈을 하나씩 이뤄가는 성취감이 벽돌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생각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 또 얼마나 강렬한지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 용기를 더해 다른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면 행동이 쉬워진다.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해 이루어 보는 경험을 해 보는 것이다. 가끔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거나, 내 앞에 나타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보이진 않지만, 에너지 파장으로 전해지는 힘일 것이다.말이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을 보다가 신기해서 직접 해 보았는데. ‘사랑해’라고 말한 밥은 하얀색 곰팡이가, ‘짜증 나’라고 말한 밥은 검고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는 곰팡이로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맺은 긍정의 열매와 부정의 열매를 돌아보았다.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실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좋은 말은 긍정적 상황을 만들어 가는 씨앗이다. 좋은 말, 좋은 생각으로 시작하는 기운은 꿈을 이루는 초석이다.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 생각 한 자락이 나의 몸에 기록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 2020년을 맞으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난 이렇게 못난 모습일까?” 의기소침했던 마음, 아쉬웠던 마음을 “난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꿈을 이룬다”라는 긍정의 소리로 바꾸어 보자. 실험 삼아 조금 큰 도전일 수도 있는 꿈 하나를 선택하고 즐겁게 상상해 보면 어떨까? 작은 점 하나를 찍는 것으로 무엇이든 시작하는 법이니까. 2020년 우리 모두 긍정의 꿈을 꾸는 한 해이기를 소망한다.

2020-01-05

새해 결심을 이루려면

박근영 공무원예년과 다른 새해를 맞이하려는 의욕이 충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가 불 보듯 뻔한 탓에 새해 각오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지난 2018년 말, 실로 오랜만에 ‘새해 결심’이라는 것을 써 보았다. 리스트에는 일회성도 있고 꾸준히 습관을 만들어 삶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중대 결심도 있었다. 이대로 실천하면 삶은 충만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려대로 연초 다짐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일상의 반복만 거듭하며 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그때 작성한 새해 결심을 펴보지도 않다가 1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열어본다. 무려 스물다섯 가지나 적혀 있다. 한 줄 한 줄마다 포부가 엿보인다.첫 번째 목표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 올라가 오케스트라 공연 관람하기로 적혀 있다. 못 갔다. 대신 2월에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빈 첼로 앙상블 공연을 보고 왔다. 공연, 콘서트, 전시회 같은 유희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기에 이런 활동은 내 정신적 제약을 뛰어넘는 행동이다. 보통 사람은 고민 없이 실행하는 이런 간단한 일도 내게는 거창한 이유가 달린다. 어쨌거나 첫 번째 목표는 달성으로 친다. 두 번째 목록에는 문장 중간에 ‘꾸준히’라는 낱말이 있다. 신문에서 유용한 자료를 골라 스크랩을 한단다. 꾸준히. 이미 내 습성을 간파하고 나름 굳은 결심으로 꾹꾹 눌러쓴 결심이었을 거다. 몇 번 실천했는데 과연 이를 목표 달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 번째부터는 차마 적지도 못하겠다.새해가 되면 빠지지 않는 외국어 공부에 관한 것도 몇 개나 적혀 있다. 이건 몇 번 했고, 저건 절반쯤 했고, 아예 손 안 댄 것도 있다. 목록을 넘기다 보니 마지막에 파주 출판단지에서 북캉스 체험하기가 있다. 이 항목에선 슬며시 웃음이 났다. 참여 중인 생각학교 여름 컨퍼런스가 파주 출판단지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당일치기 일정이었지만 나는 지혜의 숲에서 따로 하루를 더 묵으며 책이 뿜어내는 지향(紙香)을 맘껏 쐬었다. 그 행사 아니었으면 북캉스도 틀림없이 미뤘을 게 뻔하다. 습관을 형성하기 위한 항목은 하나를 빼고 대부분 미완성이라 결국 2020년 새해 결심으로 옮길 판이다. ‘작심삼일’로 씁쓸하게 마무리한 수많은 목록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백발의 미국 안무가 트와일라 사프(Twyla Tharp)는 새벽 5시 30분이면 침대에서 일어나 바로 택시를 불러 헬스장으로 간다. 눈뜨자마자 택시를 타는 행동 사이에 불필요한 동작은 없다. 이 작은 습관은 나이 70이 넘기까지 현역 무용가로 활동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이 일화는 리추얼(ritual) 즉 의식(儀式)이 단단한 습관을 구축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사례로 종종 인용한다. 그녀는 기상과 운동 사이에 ‘택시 타기’라는 의식을 연결 고리로 넣었다.내가 올 한 해 습관 형성에 성공한 그 하나는 새벽 4시 기상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새벽 시간을 선택했다. 알람을 끄고 다시 곯아떨어지거나 겨우 일어나 졸다가 우왕좌왕 출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포기하고 다시 시도하기를 무수히 반복하며 수면의 질만 나빠지던 차에 나만의 리추얼을 찾았다. ‘샤워하기’였다. 침대에서 알람을 끄고 일어나서 곧장 욕실로 간다. 잡생각은 금물이다. 10분 가량 샤워를 마치면 책상에 앉아 조는 일 없이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기상과 독서 사이에 샤워라는 고리를 찾아낸 것이다. 새해 결심은 대부분 이렇게 작은 고리가 없어 습관으로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유레카!2020년 하얀 쥐의 해를 바라보면서 내가 도달하고 싶은 곳의 모습을 리스트로 정리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는 무엇을 연결 고리 삼을지도 생각한다. 이루지 못한 것들, 하다가 만 것들을 다시 손질해서 내년엔 쥐처럼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 있길 기원하며 새 다이어리에 조심스럽게 옮겨 적는다. 연초, 가슴을 뛰게 했던 수많은 계획이 지금 초라하게 구겨져 있다면 실행을 어렵게 했던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분명 둘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자! 겁내지 말고 새해 결심을 작성해 보자.

2019-12-29

선물은 내 마음속에 있다

허진욱 회사원가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뜨거운 햇볕은 얼굴과 몸을 태우는 듯하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온몸은 땀 범벅이고 젖은 옷이 묵직하다. 힘들다. 청소년 시절 내 모습이다. 고된 훈련을 하는 이유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었다.88서울올림픽을 TV로 보면서 꿈이 생겼다. 복싱 문성길 선수가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 올랐다. 그의 목에 금메달이 걸리는 순간 감전된 듯한 전율을 느꼈다. 멋있었다. 나도 저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그 순간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내 가슴에 새겼다. 심장은 뛰었고, 아무리 힘든 훈련도 내 꿈을 꺾을 수 없었다.고등학교 1학년이던 필자는 시합에서 고등부 최연소, 최우수 선수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전직 권투선수인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아버지도 기대가 컸다. 당신의 꿈을 아들이 대신 이루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합마다 우리는 함께 했고, 우승할 때마다 아버지는 나보다 더 기뻐했다.어느 날 사고가 났다. 훈련 중 왼손을 다쳤다. 수술을 받았지만, 신경이 끊어진 탓에 복싱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졌다. 꿈과 희망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밥도 먹기 싫었고 학교도 가기 싫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끝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술에 취했다.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전락했다. 담임도 내 방황을 이해했지만, 방황은 더 심해졌다. 많이 울면서 답도 없는 질문만 던졌다.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닥친 걸까?” 친구들도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꿈을 잃은 내 마음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긴 방황은 아버지의 설득과 어머니가 흘린 눈물, 내 이야기를 끊지 않고 묵묵히 들어준 형들 덕분에 끝났다. 마치 차가운 얼음이 따뜻함에 스르르 녹아내리듯 마음이 풀렸다. 그 지점에서 새 희망이 보였다. 다시 심장이 뛰었다.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법일까? 문제 속에 답이 있다는 깨달음이 왔고 위기 속에 기회가 숨어 있음을 알았다.“후회한다고 해서 이미 늦은 것은 아니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깨달으면서 후회의 진정한 뜻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후회하며 지나간 일에 대한 아쉬움이나 슬픔에 빠질 게 아니라 내 연약함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시간을 보냈다. 철학자의 말처럼 이미 늦은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나는 또 다른 희망을 품은 것이다. 내가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는가에 따라 절망에 빠질 수도 희망으로 마음 설렐 수 있음을 알았다먼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파랑새를 찾아 헤맨다.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파랑새가 바로 내 집에 살고 있었음을 깨닫는 이야기처럼, 고등학교 시절 시련을 통해 희망이 저 멀리 밖에 있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음을 배웠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새 희망이 생겨나는 법이다.그 깨달음은 내게 큰 선물이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생기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데 있어 큰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였다. 남들이 힘들어하는 일도 오히려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마음을 품었다. 누가 불만을 터뜨리면 나는 그 시간에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려 노력했다. 그런 태도 덕분에 입사 첫해, 우수사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희망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절망하는 때도 모두 내 안에서 시작하는 법이고 내 마음이 만드는 결과임을 배워갔다.희망은 이미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키워 활활 타오르게도 할 수 있고 얼음처럼 차갑게도 할 수 있다. 시련은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 어린 나이에 깨달은 이 선물 덕분에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있었을까?이틀 후면 즐거운 크리스마스다. 2020년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성탄과 새해, 나를 위해 준비해 둔 가장 귀한 선물을 받기 위해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2020년 한 해 동안 내게 펼쳐질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내 안으로 탐험을 떠나는 연말이다.

2019-12-22

평범하고 작은 것이 쌓여 飛上하는 일에 대해

오지은 공무원나는 역사책 읽기를 좋아한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결과가 늘 궁금하기 때문이다. 왜 문명 발전이 늦었던 서양이 20세기에는 동양 대부분을 지배했을까? 왜 문명사에서 가장 앞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아랍 지역은 이후 한 번도 문명의 주인공 노릇을 못 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터지는 중동 지역의 일상생활은 어떨까? 생활 전반이 불편해 보이는 히말라야 자락의 부탄이라는 최빈국의 행복지수가 왜 세계에서 가장 높을까? 그들이 행복하다면 왜 행복한가? 이런 것들이 늘 궁금하다.역사, 책을 보면 인류는 자연환경을 지혜를 모아 극복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문명은 작은 지혜가 모여 쌓인 결과물이다. 역사적 사건은 한 가지 단순한 원인에 의해 벌어지지 않는다. 여러 정황과 사건이 쌓이다가 마지막에 어떤 결정적인 변수 하나가 방아쇠를 당기면 비로소 거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세상을 바꾼다. 이것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한다.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아주 작은 변화 하나만 일어나면 거대한 물결이 일어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제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보스니아의 라틴 다리에서 암살당한 사건으로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물밑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티핑포인트에 근접해 있었다. 늦게 식민지 경쟁에 합류한 독일, 보스니아를 점령해 지중해를 장악하고 아시아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하는 오스트리아, 부동의 항구를 얻고 싶은 러시아, 대(大)세르비아 민족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세르비아. 발칸반도에 전운이 무르익을 대로 익었을 때, 세르비아 비밀결사체 흑수단 청년이 얼떨결에 죽인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죽음으로, 발칸반도와 이해관계가 있던 모든 나라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강대국이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동시에 전쟁에 뛰어들었다.진나라가 멸망한 후 다시 분열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유방과 그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초나라의 항우가 겪은 성공과 실패는 그 원인을 찾기 어렵지 않다. 완벽한 능력을 갖췄지만 백성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던 항우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별다른 기술 없이 어쩌다 나라를 세운 느낌의 유방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의 지혜가 있었다. 이 작은 차이는 두 사람의 운명, 두 나라의 운명, 중국이라는 문명의 운명을 바꾸었다.25년을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인정받는 직원의 비결에 대해 그 공통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진정성 있는 성실한 업무를 매일 수행해 조금씩 신뢰를 쌓고 성실성을 만들어 낸다. 결국 어떤 일이든 믿고 맡기는 선수로 인정받는다. 일단 인정을 받으면, 다음 일은 쉽게 풀릴 수 있다. 호감을 주는 직원은 누구든 도와주고 싶어 한다. 재테크에서 종잣돈과 비슷한 역할이다.올여름 농촌 여성을 대상으로 도 단위 경진대회를 목표로 부채춤 교육을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30명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15명이 남았다. 그 15명이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채춤을 추고, 대상을 받았을 때 미리 포기한 15명은 크게 후회했다.부채춤을 발표 과제로 결정하고 연습을 시작했을 때, 이들은 부채조차 펼 수 없는 왕초보였다. 부작은 원, 큰 원, 물결 모양 등 흐름이 변할 때마다 위치를 암기해야 했고, 음악에 순서를 맞추는 일은 60세에 가까운 농촌의 여성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이들이 끝내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교육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마다 바쁜 일이 있고, 동작이 어려워 힘들 때는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교육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대에서 공연하고 상을 받는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었다.주차를 할 때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만든다는 이치를 느낀다. 주차 라인에 차를 넣기 위해서는 각도를 조금씩 꺾으면서 움직이면 꼭 맞게 들어간다. 핸들 각도를 많이 틀지 않아도 된다.평범하고 작아 보이는 일상이 매일 쌓여 지금 우리 모습으로 나타났다. 조금씩 쌓인 것은 언젠가 결정적 순간을 맞이할 것이고 애벌레가 나비로 비상하듯 우리도 그런 날을 맞이할 것이다. 평범하고 작아 보이는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

2019-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