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고문
민주주의를 국가의 정치체제나 법적 시스템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좁은 시각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규정되며, 삼권분립을 통해 작동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정부의 운영방식이기만 하다면, 이는 외형적 발견에 불과하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제도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로 터를 잡아야한다. 민주주의는 특정한 정치체제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 안에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 선언하고,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다. 표현만으로 민주주의가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추상적인 개념에 멈출 위험이 있다. 민주주의가 국민의 삶과 실질적 일상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헌법이 공허한 선언을 한 꼴이 되어버린다. ‘민주주의가 문화로 자리잡는다’는 건 국민들이 민주적 가치와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 권력자의 결정을 비판적으로 관찰하는 자세, 공적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하는 습관 등이 민주적 문화의 부분이 아닐까. 단순히 선거에 투표하는 일을 넘어,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길거리와 모든 일상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민주적 태도를 익히고 실천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문화로 정착된다.
민주주의를 문화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를 선택가능한 여러 체제 중 하나로 이해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가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여길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권위주의적 체제를 선호하는 태도로 나아갈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민주적 제도를 도입했다가 권위주의로 회귀한 사례가 수다하다. 단순히 정치인들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의 문화로서 민주주의가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1979년 부마항쟁과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2016년 촛불혁명의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는 단번에 종결적으로 확립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제도뿐 아니라 공동체의 문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부적절한 비상계엄같은 반민주적인 사태가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를 문화로 자리잡게 하려면,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토론을 통해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공동체 안에서 자율적으로 집단적으로 의사결정과정을 경험하면서 민주적 가치관과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또한, 가정에서도 구성원 간 관계가 민주적이어야 한다. 권위적인 가정에서 민주적 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론과 미디어도 민주주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 다양한 의견이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비판적 사고를 키울 수 있는 보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공동체의 문화로 뿌리내려야 한다.
2025-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