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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을 지워라

등록일 2025-05-21 18:11 게재일 2025-05-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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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고문

‘누구보다 앞서야 한다.’ 한국 교육을 관통하는 명제가 아닌가. 등수로 줄 세우고 시험으로 선별하며, 일등은 존경하고 꼴찌는 무시한다. 최종 승부처는 대학입시다. 그러면서 우리는 묻지 않는다. 교육이 본래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경쟁이 교육의 본질인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교육 목표에서 ‘경쟁’을 제거했다. 나치 정권 하에서 교육이 어떻게 전체주의의 도구로 전락했는지를 처절히 겪은 뒤였다. 독일 헌법 제1조는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으며, 이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고 선언한다. 독일 교육은 이 선언을 실천하는 장치다. 

경쟁보다는 공동체, 효율보다는 존엄을 우선시한다. 교실은 우열을 가리는 곳이 아니라, 시민을 길러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각성에서 출발한 기준이며 철학이다. 핀란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모든 학교는 평등해야 하며 어떤 학생도 소외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렸다. 시험은 고등학교 졸업 시기에 단 한 번 치러지며 평가는 절대평가 중심이다. 석차는 없다. 교사는 신뢰받는 전문가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고, 학생은 협력 속에서 스스로 배우는 힘을 키운다. 핀란드의 교육은 경쟁 없는 시스템으로 세계적 성취도를 자랑한다. 교육이 인간 존중 의식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원칙을 사회가 공유한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은 교육을 오랫동안 계층 상승의 사다리로 인식해왔다. 대학입시를 통한 선별 경쟁 시스템이 굳어졌다. 중학교부터 내신은 상대평가로 운영되며, 고등학교는 내신·수능·논술·면접 준비에 집중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한다’는 잣대가 교육의 근간을 지배하고 있다. 교육은 인간을 길러내는 공간이 아니라 선발과 배제를 위한 훈련장이 되고 말았다. 대입제도는 여러 차례 개편되면서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시·정시 비율을 조정하고 내신과 비교과의 비중을 달리하면서 ‘공정성’ 논란에 대응하지만, 정작 입시가 왜 이처럼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는 질문조차 꺼내지 않는다. 대학 서열과 연계된 입시경쟁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왜곡시키고, 사교육 의존도를 극대화했다. 강남 8학군과 지방 학교의 격차는 해마다 끝을 모르고 벌어지고 있다. 이는 교육 격차이자 기회 격차이며 급기야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한다는 것은 단순히 전형 방식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교육의 목적을 되묻고, 그에 맞는 평가 체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첫째,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도록, 대학입시는 획일적인 시험 중심 선발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대학 서열 구조 자체를 완화하거나 공론화함으로써, 입시에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독일이나 핀란드처럼 교육이 사회적 통합과 평등을 지향하도록 공동체적 교육 철학을 세워야 한다.

교육은 더 많은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경쟁을 통해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의 적성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다면적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입시제도’가 아니라, 경쟁을 덜어내는 교육 철학의 전환이다. 그것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다.

/장규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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