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Mutual Assured Destruction·상호확증파괴), GPU(Graphics Processing Unit·그래픽처리장치), AV(Auronomous Vehicles·자율주행자동차). 서로 다른 표현이지만, 이들 셋은 오늘 인류가 서 있는 좌표를 가리킨다. 상호확증파괴는 냉전이 자칫 서로 확실히 멸망시킬 수 있음을 뜻했고, 그래픽처리장치는 인공지능 혁명의 심장을 움직이는 반도체를 지칭하며, 자율주행은 인공지능이 물리적 이동 세계에 스스로 개입하는 첫 신호다. 셋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 문명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실행하고 움직이는 기계’와 공존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인공지능 AI의 시대가 열렸다. NVIDIA 창립자 젠슨황은 최근 ‘대한민국이 AI시대를 열어갈 나라’라고 치켜세웠다. 그 시선에는 두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한국은 초고속 네트워크와 반도체 인프라, 그리고 교육열이 결합된 기술기반 성장생태계를 갖고 있다. 둘째, AI를 둘러싼 사회적 흥미와 논쟁, 관심 수준과 유발 동기가 활발하다는 점이다. 과학과 기술뿐 아니라 철학과 윤리의 언어로 AI를 적극적으로 논하는 토양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한국을 ‘AI 사용자’를 넘어 ‘AI문명의 설계자’로 여긴다는 의미다.
기술의 지평은 늘 그림자를 동반한다. 계산하고 사고하는 속도는 인간의 능력을 수천수만 배 앞지르겠지만, 빠름이 곧 출중한 지혜와 궁극의 효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AI는 논리적이고 효율적이며 냉정하다. 효율의 논리는 인간의 감정과 공감적 배려를 배제한다. 전쟁터에서 효율은 곧 ‘선제 공격’의 합리성이다. 냉전의 상호확증파괴가 핵무기 억제를 통한 공포의 균형을 유지했다면, AI시대의 MAD는 알고리즘이 서로를 감시하며 자동보복할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전 세계 군사 강국들은 인공지능이 탑재된 방어시스템을 실전배치 중이다. 레이더 감지, 목표식별, 요격경로 계산까지 대부분이 자율적 루틴으로 돌아간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의 사고와 판단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입력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곧 존재 이유인 AI에게 ‘멈춤’이라는 개념은 없다. 두 AI 체계들이 서로를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반응한다면, 인간의 의도나 공존의지와는 무관한 ‘기계 간 상호확증파괴’로 번질 수 밖에 없다.
기술은 ‘결정의 속도’를 다툰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신호등의 오작동을 0.01초만 늦게 인식해도 참사가 벌어지듯, AI의 순간적 오판은 핵 버튼보다 빠르게 인류의 안전망을 무너뜨릴 터이다. AI의 자율성은 편리함의 상징이지만, 자율이 윤리성을 대체하고 나면 모두는 ‘공포의 균형’ 속으로 빠져든다. 젠슨황이 기대한 ‘AI 여명의 국가’라는 표현은 한국이 기술적 능력뿐 아니라 인류적 성찰의 책임과 윤리성을 함께 짊어져야 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AI는 현대인간이 만든 거울이다. 거울 속에 탐욕과 경쟁을 투사하면, AI는 냉정한 방식으로 이들을 증폭시킬 것이다. 공존과 평화의 알고리즘을 심는다면, AI는 인류의 새로운 동반자가 되지 않겠나. 인류는 이미 MAD의 공포를 이겨낸 기억이 있다.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윤리의 진화를 장착해야 한다. 인류는 AI가 공멸이 아닌 공존을 가져오도록 기대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