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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진짜 어려움은 어디에 있는가

등록일 2025-10-01 16:11 게재일 2025-10-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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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본사 고문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관세와 투자 압박을 연일 가하고 있다.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요구하더니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선불’로 내놓으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겉으로는 안보 동맹을 흔들고 방위비 분담을 무기로 흔드는듯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재정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발언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짊어진 국가부채 규모는 이미 천문학적 수준에 이르렀고 해마다 갚아야 하는 이자만 1조달러를 넘어선다. 이자를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미국 정부가 동맹국을 상대로 현금확보를 노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이 직면한 어려움은 재정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첫째, 미국은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을 쉽게 철수할 수 없다. 겉으로는 철수 가능성을 흘리며 압박 수단으로 삼지만, 동북아의 전략적 거점을 포기하는 일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미군 주둔은 협상카드가 아니라 안보 필수 조건이다. 둘째, 미국의 산업기반은 소위 ‘공업공동화’현상을 겪어왔다. 제조업의 해외 이전과 탈산업화 흐름 속에서 미국이 생산능력을 회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조지아주에서 최근 벌어진 비자 사태는 그 단면을 보여준다. 전기차, 배터리, 조선, 반도체 등 미래산업의 전략적 주도권을 쥐려는 미국 입장에서, 기술력과 생산망을 확보한 한국기업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협력의 언어가 아니라 압박의 언사를 구사한다면, 내부의 정치적, 재정적 곤경을 외부로 전가하려는 태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거절’과 ‘수용’ 가운데 양자택일로 접근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한국도  안보적으로 미국에 크게 의존해왔고, 수출시장과 금융질서 또한 미국 중심의 구조 속에 들어있다. 동시에 이번 사태는 한국이 스스로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무조건적인 추종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트럼프의 ‘선불 요구’ 발언이 나온 지도 여러 날이 흘렀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뚜렷한 후속 조치나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압박이 전략적 구상보다는 즉흥적이며 단기적인 재정압박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었임을 방증한다.

미국의 진짜 어려움은 한국이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있다. 한국은 동맹의 가치를 인정하되 일방적 요구에는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 동시에 산업과 기술, 금융질서를 다변화하여 ‘미국 없이는 설 수 없다’는 구조적 취약함을 줄여가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의 압박이 반복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을 터이다. 트럼프식 협상술은 익숙한 패턴이다. 큰 소리를 치며 상대를 위협하면서 일부라도 얻어내는 방식이었다. 이번만큼은 한국이 조급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한국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에게 전략적 자산이자 파트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과 위치를 자각할 때, 비로소 선불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주권적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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