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공(朝貢)’은 먼 옛날 이야기로만 들린다. 그럼에도 강대국과 약소국 간 힘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한, 조공의 논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중국 황제가 주변국의 충성을 공물로 확인하던 질서는 형식과 이름만 달라졌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동안 한국에 방위비를 내라던 장면은 현대적 변주였다. 동맹을 거래로 바꾸었고 안보를 상품으로 정산하려 했다. ‘우리가 지켜주니 대가를 내라’는 언사는 동맹의 언어라기보다 제국의 언어가 아닌가.
냉전 이후 미국이 구축해온 자유주의적 질서 속에서 ‘동맹’은 신뢰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세계관에서 동맹은 ‘보호받는 고객’일 뿐이다. 그에게는 한국이 내는 돈이 조공과 다르지 않았다. 분담의 협력 대신 복종의 표시가 외교의 기준이 되었다. 조공의 본질은 금액이 아니라 위계의 상징이다. 방위비 협상을 통해 한국의 충성을 시험하고, 그 시험을 통과할 때만 ‘공정한 거래’라 부르려 한다.
오늘의 한미관계를 옛적의 조공체제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한국은 독립된 민주국가이고, 미군주둔은 상호 방위조약에 근거한다. 그래도 관계의 심층바닥에는 여전히 힘의 불균형이 놓여 있다. 한국은 ‘기여금’이라 부르고 싶지만 미국은 이를 ‘분담금’이라 부른다. 단어의 해석과 무게의 차이에는 외교질서의 위계가 살아있다. 그들의 요구는 금전협상이 아니라 권력시험인 셈이다. 한국사회가 ‘동맹은 동등하다’고 외치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말할수록 조공체제의 줄타기처럼 보였다. 한쪽에는 새로운 중화가 있고 다른 켠에는 구미제국이 있다. 우리는 지금도 어느 쪽에 먼저 절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같은 형태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오늘의 조공은 조공이 아닌 듯 포장된다. 외교문서는 ‘동맹강화’와 ‘상호이해’가 가득하다. 돈이 언어를 대신하고 힘이 정의를 가리면 관계는 본질적으로 예속이다.
진정한 자주는 군사적 독립 그 이상이다. 사고의 독립이며 스스로 가치를 지키는 정신의 독립이다. 구시대 조선은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면서도 문화의 자존을 잃지 않았다. 오늘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도 정신과 가치임에 틀림없다. 힘의 비대칭은 어쩔 수 없더라도 존엄한 가치의 비대칭은 피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내세워야 할 공물은 돈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는 품격이어야 한다. 마침 31~11월 1일 신라의 왕경 경주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린다. 트럼프가 오고 시진핑이 온다. APEC 역내 이슈들이 다루어지고 정상들 간 현안들에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 통상현안과 한국과 미국 간의 관세 줄다리기가 관심을 모은다. 북한의 김정은이 트럼프를 만날 것인지도 세간의 흥밋거리다. 복잡다기한 이익을 조정하기 위한 정상들 간 대화를 세상이 지켜본다.
신라의 자존이 살아있는 땅에서 열리는 의미를 살려야 한다. 중국도 미국도 대한민국을 가볍게 여길 수 없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들의 나라 안 사정이 어렵다고 우리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압박은 부적절하다. 부당한 압력에 당당한 대한민국을 세워야 한다. 조공체제를 당당하게 거부하고 공정한 협력관계를 이룩해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