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라는 무기를 들고 세계 각국을 압박한다. 예외는 없다. 동맹국조차 ‘안보를 이유로’ 관세부과 대상에 올리며 협상을 강요한다. 일본은 협상에 응해 농산물과 자동차 분야에서 일정한 양보를 포함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표면적으로 일본은 ‘최악의 충돌’을 피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농축산물 시장을 열어주되 자동차 부문에서는 부분적 유예를 얻어냈다는 식이다. 일본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막대한 관세 압박 앞에 사실상 ‘방어적 후퇴’를 선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번 합의로 일본경제에 돌아올 실질적 이익은 제한적인 반면, 미국이 얻는 정치, 경제적 성과는 확연하다. 일본언론과 경제계 일각에서 ‘미국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수용했을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어찌해야 할까. 한국 역시 미국의 관세공세에서 시달린다. 철강과 자동차는 물론,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전략산업까지 협상테이블에 올라올 가능성이 짙다. 일본처럼 조급하게 협상하는 것은 단기적 충돌을 피하는 방편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한국 산업의 자율성과 교섭력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한국이 지혜롭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첫째, 다자무역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WTO나 FTA 협정을 근거로 미국의 조치가 ‘차별적이며 위법적’임을 분명히 하면서 국제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일본이 미국과 양자 협상에 매몰되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한 것과 달리, 한국은 다자적 협상의 틀을 조성하여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둘째, 산업다변화와 내수강화다. 미국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동남아, 중동 등 대체시장을 적극 공략하여 대미협상에서 ‘대체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다소 불편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산업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셋째, 최근 발생한 미국의 이민 단속 실수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조지아주 배터리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기술자들이 이민당국의 과잉 단속으로 불법 구금되었던 사태가 있었다. 동맹국 기업과 인력의 정당한 활동을 침해한 명백한 행정 실패다. 외교적 항의를 너머 무역과 관세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삼아야 한다. ‘동맹과 투자 파트너를 존중하지 않는 한, 협력의 지속은 어렵고 상생의 의미는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여 상대의 압박을 견제할 수 있다.
한국의 선택은 ‘단기적 양보 또는 장기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기로에 섰다. 일본은 양보를 택했지만 이는 한국의 해법이 아니다. 국제공조와 전략적 옵션을 활용해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국의 관세압박은 피할 수 없겠지만 대응방식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 지형은 크게 달라진다. 급박해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위기는 내일의 기회로 바뀔 가능성마저 제공할 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에서 예외나 면제는 없다’면서 무차별적 재촉에 나서지만, 이는 미국의 단견과 조급함을 드러낼 뿐이다. 대한민국은 정돈된 전략적 선택을 통해 국익을 착실하게 확보하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정권교체를 앞두고 경솔하게 결정하여 체면을 크게 깎인 일본의 선택과는 달라야 한다. 국민의 일상을 지키고 나라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