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 이름은 세라예요. 근데 집에서는 ‘사라’라고 불러요.‘ 지역의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한 아이가 자기소개를 한다. 엄마는 필리핀 출신, 아빠는 한국인이다. 한국어는 제법 유창하지만, 교과서 속 단어 몇 개는 여전히 낯설다. 점심시간이 되자 친구들은 자연스레 무리를 지어 놀지만, 세라는 머뭇거리게 된다. 언어보다 더 높은 벽은 ‘섞이지 못하는 낯선 분위기’다. 이런 장면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 아동은 2006년 5천 명 수준에서 지난해 18만 명을 넘어섰다. 20년 사이에 30배 이상 늘어났다. 전국 학생 100명 중 3명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며, 특히 농어촌과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높다. 한국 사회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다인종·다민족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경북의 교실도 예외가 아니다. 포항, 구미, 영천 등지의 초등학교에는 베트남·캄보디아·우즈베키스탄 출신 어머니를 둔 아이들이 한 반에 서너 명씩 있다. 한 교사는 ‘아이들이 처음 입학했을 때는 한국말을 거의 못해 교실에서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며 ‘같이 놀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해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경상북도교육청은 이런 학생들을 위해 ‘다문화학생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포항교육지원청은 언어지도 강사를 파견한다. 하지만 현실은 턱없이 부족하다. 포항의 한 언어지도사는 ‘5개 학교를 돌며 하루 한 시간씩만 수업한다’며 ‘담임교사와의 협력이 이뤄지지 않아 개별 맞춤지도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역 간 편차도 심하다. 대도시인 대구나 수도권에는 다문화 예비학교가 여럿 있지만, 경북 농촌지역에서는 찾기 어렵다.
문제는 정책의 시각이 ‘적응지원’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다문화 교육을 ‘결손을 보완하는 복지사업’으로 본다. 필요한 것은 ‘통합 교육’이다. 이주배경 학생이 한국 사회의 주변부가 아니라, 뉴노멀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제도적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은 언어교육과 문화이해 교육, 교사 집중연수, 학부모 지원을 통합적으로 운영한다. 한국은 부처별 사업이 따로 놀고, 현장 교사는 행정보고에 쫓긴다. 교사 양성과정에서 다문화 이해교육을 의무화하고, 전문 상담교사와 통역인력을 상시 배치하는 국가 차원의 통합적 시스템이 절실하다.
이주배경 아동의 교육권은 복지의 일부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미등록 체류아동은 여전히 입학조차 어려운 경우도 있다. 출입국관리법상 부모신분 노출을 꺼리는 탓에 학교 문턱에서 돌아서는 아이들이 생긴다. ‘교육은 인간의 권리’라는 원칙이 서류 한 장에 막히는 현실은 부끄럽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주배경 아동이 차별없이 배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교실이 ‘침묵의 공간’으로 남는다면 한국사회의 미래가 그만큼 닫혀버리지 않을까. 다문화는 더 이상 다른 문화가 아니다. 다문화를 우리 문화로 적극 포용하는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선진국의 힘은 배려와 공감에서 나온다.
/장규열 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