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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미국의 대학들

장규열 고문
등록일 2025-04-16 09:54 게재일 2025-04-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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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고문

미국 트럼프(Trump) 정부가 대학들을 상대로 압박을 시작했다. 다양성과 포용, 평등을 중시해 온 미국 대학들의 전통적 정책에 정면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백악관은 대학들이 인종 간 형평성을 고려한 입학정책과 인사정책 등을 수정하지 않으면, 총액 22억 달러에 이르는 연방 연구자금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사실상 협박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을 대표하는 사립대학인 하버드(Harvard)대학이 가장 먼저 반기를 높이 들었다. 하버드는 이러한 정부의 개입이 단순히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온 민주주의의 기반을 뒤흔드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대학은 특정 정치권력의 입맛에 따라 생각을 바꾸며 운영방식을 수정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대학들이 지난 긴 세월동안 유지해온 핵심 가치를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버드대학은 “트럼프 정부의 요청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전국의 많은 대학들이 하버드의 입장에 동의하며 정부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 대학들은 어떤가.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언제쯤 학문의 자유를 이처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외부의 간섭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운영하며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지적 공동체로 설 수 있을까. 학문이 정치에 종속되지 않고 지식이 권력에 복무하지 않는 구조를 우리 대학은 얼마나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는가. 학문의 자유는 고상한 이상이나 듣기 좋은 구호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당당함과 직결되는 가치다. 대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사회에는 신박한 창의성도 존재할 수 없으며 뚜렷한 비판정신도 사라지고 긴 안목의 비전도 설 자리를 잃는다. 교육과 연구의 중심이 권력에 종속되는 순간, 사회와 공동체는 쇠퇴와 몰락의 비탈에 서게 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든든한 지식기반 위에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학문의 자유는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누가 대신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정부나 사회가 나서서 선사하지 않는다. 대학 스스로 자유의 가치를 인식하고 지켜내기 위해 싸우며 때로는 불이익도 감수할 각오를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하버드와 미국 대학들이 보여주는 대응은 바로 그런 태도의 실천이다. 자금이 끊기더라도 정책의 방향에 동의할 수 없다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대학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는 다짐이 아닌가. 대학은 교육기관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가 크고작은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며 미래를 위한 실험공간이다. 그런 장소가 위축되거나 침묵할 때, 사회 전체는 비판적 사고를 잃고 방향감각마저 잃게 될 터이다. 학문이 자유로울 수 없다면, 사회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 한국의 대학은 학문의 자유를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되묻고 행동할 시간이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자유를 지킬 책임은 대학 스스로에게 있다. 학문의 자유를 지키지 못한 결과는 사회 전체가 짊어진다. 대학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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