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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국, 기로에 서다

등록일 2025-08-20 18:23 게재일 2025-08-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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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본사 고문

미국은 ‘Make America Great Again(MAGA)’을 외치며 세계질서를 흔들고 있다. 보호무역과 자국 이익 우선을 내세운 관세강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일부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표면적 승리를 얻은 듯 보일 수 있다. 길게 보면, 세계 곳곳에서 미국발 일방적 관세정책에 고통받는 국가들의 원성이 있고 뿌리째 흔들리는 국제질서가 있다. 미국이 쌓아온 ‘신뢰 자본’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결정적인 자산의 침식이 자리 잡고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 각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고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 유럽연합, 일본 등 동맹국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철강업계는 환영했지만 동맹국들은 깊은 당혹감과 분노를 드러냈다. 캐나다는 보복관세로 맞섰고 유럽연합도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대응에 나섰다. 함께 가자던 오랜 파트너들이 각자도생의 태도로 돌아섰고 미국의 지도력은 도전받기 시작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는 더 복잡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가 매겨지자, 한국과 대만, 베트남 같은 중간재 수출국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스마트폰과 가전,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뒤틀렸고, 중소기업들은 무역 차질로 문을 닫았다. 한·중·미 간의 삼각무역 구조 내에서 미국의 변화무쌍한 무역정책은 외교적 마찰을 넘어 각국의 생존에 위협이 되었다. 중국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브라질, 러시아, 동남아 국가들과의 교역을 강화하며 미국 중심의 무역의존도를 낮추었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상대국의 항복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디커플링’을 초래했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가치사슬은 서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포스트-미국’ 무역 질서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무역 규범이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WTO 분쟁해결기구의 상소기구 판사 임명을 거부하면서 국제무역 규범의 수호자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 다국적 규칙 기반의 질서 대신에, 국력에 의존한 양자 협상 체제가 부상했다. 무역뿐 아니라 국제 정치 전반에서 불확실성을 키우게 되었다. 세계는 갈수록 더욱 ‘미국 없는 세계질서’를 상상하게 되고 대안적 리더십을 모색하는 중이다. 흐름의 저변에는 미국이 축적해 온 ‘신뢰 자본’의 자멸이 있다. 신뢰 자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다. 오랜 기간 세계의 조정자이자 경찰 역할을 자임하며 쌓아온 정치적 신뢰, 경제적 예측 가능성, 국제규범의 준수자라는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그 자본을 스스로 갉아먹으며 소모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소중한 신뢰 자산을 깎아 먹는 셈이다.

미국이 위대한 나라로 다시 서려면, 보호무역과 자국 중심의 승자 독식 전략이 아닌, 다자 협력과 신뢰 회복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관세라는 칼을 휘두를 때마다 파편은 온 세계를 향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는 미국 자신의 리더십에 남는 법이다. 짧은 안목으로 거둔 이익이 긴 미래의 전략적 손실이 되지 않도록, 미국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세계는 미국을 주목하고 있다. 세상의 시선이 기대와 존경일지 아니면 실망과 의심일지는 미국의 손에 달렸다. 국제관계는 멀리 넓게 보아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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