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민의 나라다. 극소수 본토 인디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미국인은 이민자들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조차 그들의 뿌리는 다른 나라에 있다. 그런 미국이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주위군을 투입한 데 이어 급기야 해병대까지 동원하겠다는 위협을 쏟아낸다. ‘불법체류자’라는 용어가 쉽게 사용되지만 사실 ‘서류가 미비한(undocumented)’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까다로운 조건을 갖추지 못했을 뿐 대부분은 열심히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 미국경제는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이민자의 희생과 노동 위에 세워진 나라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미국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다. 그 덕분에 미국은 산업과 경제를 일구었고 성장과 발전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중국인 노동자들의 대륙횡단 철도건설, 멕시코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농업 현장 점유율, 실리콘밸리의 이민자 출신 기업가들, 의료계를 지탱하는 이주 의료진, 건설현장과 서비스업계에서 이주노동자들 없이는 미국이 경제적 위기를 견디기 어려웠을 터이다. 정부와 극우 보수층이 몰아세우는 이들은 오늘도 직장에서 농장에서 가정에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하게 일하고 있다. 그들을 몰아세우는 일이다.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는 ‘우리는 모두 이민자의 후예다’라 자랑스럽게 적는다. 미국 정부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불법체류자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미국의 근본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불법체류자 강제추방정책에 맞선 저항이 거세다. 미국 각지 법원은 행정부의 과잉단속에 법적제동을 건다. 미국의 진보는 인종주의와 배타주의에 맞선 투쟁을 거듭해 왔다. 미국이 더 넓은 포용과 정의를 향해 나아가면서 진정한 힘을 발휘해 왔다.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군을 동원하는 모습은 6개월 전 대한민국에서 목격했던 부끄러운 광경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는 이민자들을 미국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백인 중심주의로 회귀하려 한다. 그들은 엄연한 역사적 진실을 애써 외면한다. 선량한 시민들의 합법적인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한다. 군대는 국민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미국 사회는 정부의 강경책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낸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수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미국이 여전히 ‘이민의 나라’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미국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미국이 이민자의 기여를 부정하고 백인 중심의 폐쇄적인 사회로 돌아선다면 스스로 택하여 쇠퇴의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목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미국인들은 그들의 저항과 노력이 정부의 독주를 막는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민자로 살면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열심히 살아가는 ‘서류미비체류자’들을 범죄자로 낙인찍으며 추방하려는 일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스스로 뿌리를 부정하는 일이며 오늘 사회공동체를 훼손하는 일이다. 미국이 ‘자유의 여신상’ 아래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지 갈림길에 섰다. 이민의 나라 미국이 위기에 빠졌다.
/장규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