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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뜨거운 여름, 당신의 내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여름이 시작되었다. 장마를 지나 땡볕이 쏟아질 터이다. 서서히 기온이 오르며 계절이 다가오듯이, 스물스물 정치가 올라온다. 선거판이 시동을 걸어 정치가 언론지면을 물들이고 있다. 주장과 막말이 춤을 춘다. 오가는 말들에 주목하며 심사가 오르내리는 착한 국민들. 그 말들에 진심과 성실, 공감과 배려가 실렸으면 좋겠다.눈을 씻고 보아도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하고 옹호할 뿐이다. 국민들의 어려운 처지와 답답한 일상은 그들의 심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 제 아무리 심대한 정치적 의미를 건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의 삶과 죽음보다 소중한 게 있을까. 정치가 춤추지만 국민은 힘이 든다.때가 되어 치르는 형식적인 선거보다는 진정으로 세상이 나아지는 그 한 판을 기대한다, 총선이 그런 축제를 몰고 올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하는 꼴을 보면 패거리다툼과 표싸움이 되고 말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세상 모습이 최선이 아닌 것쯤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당신은 뭘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누구에게도 들은 바가 없다. 현란한 언변과 시원한 말솜씨로도 그들의 ‘생각없음’을 감추지 못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힘든 다리를 거뜬히 건너온 국민의 눈에는 그들의 허망한 철학과 공허한 비전이 뻔히 보인다.언제까지 기다릴 터인가. 언제쯤이면 정치가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게 될까.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해야할 터이다. 동화작가 롤달(Roald Dahl)은 ‘세상을 바꿀 힘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하였다.특별한 정치인이나 엄청난 지도자가 가진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게 아닌가. 선거를 주목하며 걸으면서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여론조사에 참여하고 후보자에게 생각을 적극적으로 건네야 한다. 직접 온라인과 SNS로 참견해야 한다. 당신의 생각이 들리도록 선거의 모든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덜 떨어진 사람을 당신의 대표로 선출하게 된다’고 플라톤(Platon)이 던진 말은 투표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이제 막 운을 뗀 총선의 과정에 당신의 소신과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당신을 대변해 주기를 기다리는 일은 기대난망이다. 희벌건 욕망으로 가득한 직업정치인일 뿐이다.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도 ‘선거는 보통 사람의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선거를 통하여 무엇인가 이루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이어야 한다는 깨우침이 아닌가. 세상을 바꾸는 힘을 남에게 양보할 일인가.국민의 일상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없다. 한여름을 꿰뚫으며 내일을 생각하는 당신과 우리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여름이 뜨겁게 달구어질 까닭은 대한민국의 내일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당신을 기대함이 아닐까.총선은 내년이지만, 당신은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우리의 내일을 맡길 것인가. 나라와 국민을 이고지고 미래로 나아갈 운명은 당신과 나의 어깨에 걸려있다.

2023-06-28

수능, 대학, 교육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교육이 위태롭다. 수능이 불안하다. 겨우 150일 남은 올해 수능을 앞두고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헤아리느라 모두들 혼돈스럽다. 너무 어려워서 내용을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과 적당히 어려워야 변별력이 있다는 의견이 부딛힌다.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졌다 하고 학부모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책의 논의와 조율과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쉬움과 함께 하루 하루 다가오는 수능날짜는 버겁기만 하다. 백년대계 교육을 조삼모사 당국에 맡겨놓은 꼴이라 온 나라가 조마조마하다. 논란의 가닥이 여럿이지만, 필자는 ‘언어영역 비문학 문제나 과목융합형 문제를 배제하겠다’는 교육부의 지침에 주목한다.비문학이나 융합형 문제는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미래 인성을 기르는 일이다. 수험생의 언어능력을 시험하면서 평가대상 영역을 ‘문학’으로 제한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다음 세대가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발휘해야 할 언어능력을 어떻게 문학 지문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비문학 소재를 다루어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왔을까. 초중고 국어 교과서에도 문학작품들만 실려있는 게 아니다. 문학작품 읽기와 쓰기가 물론 주요 관심사이지만, 언어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가닥의 소재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역사 이야기, 진로탐색 스토리, 매체습관 훈련 등 사회와 문화, 과학과 기술 관련 지문들이 여럿 보인다. 학생들의 언어소양을 문학 소재로만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과목융합형 문제도 제외하겠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이미 융합형 통합형 인성을 기다린다. 교과과정 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하여 학생들의 인성을 인위적 틀에 가두는 편협한 사고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였다. 국어, 영어, 사회, 과학…. 학습의 편이를 위하여 학교교육은 과목을 구분하지만, 오늘의 문제는 과목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에 도로를 개설할 때에 길 주변 마을공동체의 문화사회적 상황을 살펴야 하고, 사회복지정책을 수립할 적에 성별세대별 인식수준을 관찰해야 한다. 수능의 언어영역 문제로 과학적 글쓰기소양을 살펴야 하고 수리영역 문제에서 사회적 책읽기가 평가되어야 한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유연하고 포괄적인 사고능력을 발휘하는 통합형 미래인성을 길러야 한다.수능은 12년간 초중고 교육을 통하여 길러진 수험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여 앞으로 대학교육을 받아낼 소양을 살피는 제도이다. 수험생들 간 차이를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하여 문항들 사이에서 적정한 난이도 배분은 불가피하다.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치밀한 분석력을 발휘하여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지 가늠할 필요도 있다. 어렵고 쉬운 문제가 고루 등장하여 수험생의 주의력과 분석력이 적절하게 평가되어야 한다.프랑스의 학생평가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00E9at)에 올해 등장한 문제는‘평화를 원한다는 것은 정의를 원하는 것이기도 한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우리와 사뭇 다른 경우다, 하지만, 학생들의 통합적 융합적 사고능력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

2023-06-21

아직도 어른을 찾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다.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 공동체에서 발생한 폭력은 일반 사회에서 벌어진 폭력과 다르기는 하다. 가장 중요한 가닥은 아마도 가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까닭이 있겠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해도 피의자가 미성년인 경우에는 특별하게 다룬다. 학교에 교육이라는 명제가 있다지만, 사회에도 교정과 회복이라는 까닭이 있다. 학교폭력이라 하여 과도하게 다르게 바라보고 특별하게 다루어야 할 까닭이 그리 분명하지 않다.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수사, 기소와 재판이라는 정교하고 치밀한 제도적 접근방법이 정비되어 있는 반면, 학교폭력이 절차에 있어 시스템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지는 오히려 미지수다. 학교폭력도 당연히 폭력이다.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맞서는 우리의 태도는 어찌해야 할까. 일본이 바다에 버린다는 물을 사람이 마셔도 괜찮을 것인지를 묻는다. 물에 오염되었을 방사능으로 인간이 건강을 해칠까 하여 불안하다. 방류의 결과가 안전하다면 일본은 왜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바다에 버린다는 것인지, 가장 중요한 질문에 속시원한 답이 아직껏 없다. 실은, 한 가지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오염수로부터 인간이 안전할 것인지를 묻기 전에 방류가 바다와 자연을 혹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다. 물고기와 바다는 어찌 되는 것인가. 하나뿐인 지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국제사회는 일본에 물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하고 바다를 보전하기 위하여 일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방류가 자연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관하여 일본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방사능에 아무런 까닭없이 피폭을 당해야 하는 물고기들과 저 멋진 바다는 어찌할 것인지.다가오는 여름이 엄청 무덥겠다는 예측이 있다. 정부가 보다 분명하게 사안을 짚어내어 국민을 안심하게 하고 환경훼손을 최소로 하도록 접근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있다. 경륜이 깊고 덕망도 높은 인사들이 왜 침묵을 지키는지 안타깝기도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적에 그런 분들이 논란의 매듭을 풀어내는 데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나라 안에 그런 분들이 사라졌다기 보다 오히려 생각깊은 사람들이 오히려 많아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교육과 지식수준이 한층 높아졌으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이해도 우리 안에 편만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건너온 사회적 집단 경험치도 대단히 높다. 예전에 역사와 민족 앞에 깃발을 들었던 소수의 지도자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열어가는 수많은 어른들이 나라 안에 가득하다. 당시에 대결과 타도로 난제를 돌파했다면 이제는 토론과 협상으로 논리적인 해결을 이어가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앞에 설 어른을 찾지 말아야 한다. 겪을만큼 겪었고 배울만큼 배운 당신이 이제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건강한 집단지성으로 가득한 사회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2023-06-14

스무살 정신으로 돌아가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일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갓 스무살 축구선수들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나라 안 소식은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그들이 보내오는 소식에 가슴이 다 시원하다. 어른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아이들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국내뉴스로 국격이 내려가는데 해외뉴스가 나라체면을 붙들고 있다. 정치와 경제와 외교와 국방에 날마다 낙제점수가 쌓여가는데 스포츠 한 방에 백점 기분이 되어 하루가 즐겁다.이겨놓고도 태도가 놀랍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고 모두가 서로를 칭찬할 뿐이다. 천금같은 골을 넣고도 잘 올려준 코너킥 덕분이라고 했다. 승리를 따낸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들을 다독이고 선수들은 하염없이 동료들을 챙긴다. 나라야 어찌 되든 내 자리만 지키는 이 나라 정치판과 얼마나 다른가. 국민이 어찌 살든 내 욕심만 채우려는 어른들과 얼마나 다른가. 뻔히 보이는 실수에도 남들만 탓하는 그네들과 참으로 다르다. 어쩌다 좋은 일에는 자기자랑으로 침이 마르는 당신들과 너무나 다르다. 힘들고 어려워도 욕심없이 서로 부추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무살 정신이 부럽고 자랑스럽다. 어디까지 이길 것인지 묻는 기자에게 감독은 바로 앞 경기에 집중할 뿐이라고 했다.스무살 그들이 나라 안 어른들보다 백 배는 멋지다. 이기고도 한없이 소박한 청년에게 배워야 한다. 끝없는 탐욕을 날마다 들키는 나라 안 어른들이 창피할 일이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달리고 달리는 너희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정치판 악다구니에 식상한 국민들이 새벽잠과 싸워가며 축구경기에 몰두하는 까닭이 있다. 빈껍데기 약속들과 거짓말 스테레오에 지칠대로 지친 시민들이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경기에 집중하여 열심히 달리고 욕심없이 함께 땀흘리는 팀스피리트를 청년들의 축구경기에서 드디어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나라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구하지 못한다. 겸손하고 소박한 보통사람이 힘을 모아 지킬 뿐이다. 어려운 경제도 허장성세 한 방에 풀어지지 않는다. 성실한 국민이 티끌모아 쌓아올릴 때 나아질 터이다. 무엇을 해도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길러온 실력으로 오늘의 최선을 던지는 젊은 선수들이 고맙고 고맙다. 자신이 힘든 만큼 함께 달린 동료들도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고개숙일 줄 아는 청년들이 너무나 귀하다.다음 경기에 기대가 높이 걸린다. 이기든 지든 온 힘을 다해 달려줄 선수들에게 높은 기대를 건다. 화려한 정치 술수보다 그네들의 축구실력이 훨씬 정직하고 순수하다. 경기 내내 보여줄 거짓없는 열심과 욕심없는 협력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내일의 경기에도 혼신의 열정을 다하여 이겨주길 간절히 원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젊은 기백에 박수를 보낸다.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멋지게 싸워 줄 것으로 기대한다. 쉬운 경기가 없고 쉬운 정치가 없다. 나라를 책임진 당신들도 스무살 정신을 다시 찾았으면 한다.

2023-06-07

교육, 기본으로 돌아가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경제가 어렵고 외교가 복잡하다. 안보가 위태롭고 사회도 불안하다. 온 관심과 신경이 대통령실과 국회에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도외시되는 가닥이 있다. 그런 중에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가 ‘교육’이다. 생각을 놓고 있으면 퇴보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끊임없이 고심하고 지혜를 모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교육이다. 겉으로 중요해 보이는 사회적 관심분야들이 즐비하지만,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가닥이 교육이다.미국교육의 개혁을 이끌었던 다이앤래비치(Diane Ravitch), 위대한 미국교육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해 새로운 발상을 여럿 제시하였다. 시장의 논리를 교육에 도입하였고 학교들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줄을 세웠다. 경쟁과 시험을 적극 강조하여 잘하는 학교들을 밀어주었다. 경제논리를 적용하면 미국교육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였다. 수년간의 시도 끝에 그는 교육이 오히려 뒤로 물러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교육개혁이 추진될수록 공교육의 질은 퇴보하고 처음 목표에서 벗어나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기대를 저버린 결과에 실망하였지만, 교육에 관하여 중요한 진실을 깨달았다.사람을 길러야 하는 교육을 시장논리로 접근하면 오히려 다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우리의 교육개혁을 위한 실험은 실패하였다. 경제적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학교에 진정한 교육적 요소를 불어넣으며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을 가능하게 할 여건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고백하였다. ‘대한민국의 선한 양심’으로 알려진 손봉호 교수는‘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도록 이끄는 일과 기본적 도덕성을 길러주는 일’이라고 하였다. 혼자서도 배우며 세상을 헤쳐나갈 힘과 누가 보지않아도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용기를 길러주는 것보다 필요한 게 있을까.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교육은 기본을 지켜야 한다. 교육부는 수년 내에 지방대학들 가운데 30개 대학을 선별하여 글로컬대학으로 키운다고 한다.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을 교육에 적용하고 시장의 논리를 교육에 도입하여 대학들을 줄세우고 탈락하는 대학들이 쏟아져 나올 모양이다. 선발되지 못할 수많은 지방대학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경쟁과 시험, 선발과 탈락의 굴레에만 머무르는 교육의 모습은 처연하다. 학교의 운명이 그저 돈만 바라보게 된다면, 이미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진 게 아닐까. 교육은 국민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서열을 짓고 특권층을 만들며 차별이 생기는 교육은 지양해야 한다.세월도 변하였다. 그간 교육의 주제어가 추격과 경쟁이었다면 이제 세상은 상생과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상상과 창의로 가득한 다음세대를 길러내려면 오늘 우리의 교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교육개혁에 실패했던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교육에 평생을 바친 노교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경제로 교육을 어찌해 보려는 시각을 거두어야 하고, 나라의 교육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5-31

축제도시, 포항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지역마다 축제가 있다. 하필 코로나19 탓에 몇 년 동안 숨을 죽였던 축제의 기운이 나라 안에 넘실거린다. 적지 않은 재원을 써가며 진행하는 축제는 무엇인가 거두어야 한다. 지역은 축제를 왜 하는가.포항은 4년 만에 포항국제불빛축제를 쏘아 올린다. 2004년에 자그마하게 시작했던 행사가 오늘만큼 성장한 일은 수많은 이들의 정성이 모아진 결과다.슬로건 “Light on 포항, 밤하늘을 비추다’에 맞추어 축제를 펼쳐 올린다. 다른 곳은 몰라도, 포항에는 이 축제에 분명한 까닭을 싣는다. 알려지기로 하룻저녁 불꽃놀이가 초점이라지만, 포항의 축제는 이름부터 다르다. 불과 빛, 도시의 열정을 한데 모아 ‘불꽃’을 터뜨리지만, 포항은 은은하고 꾸준한 희망의 빛이 넘치는 지역이고 싶다. 이 도시에 기대어린 내일이 있음을 밝히고 싶고, 사람을 모으는 정성이 환하게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다. 시민들에게 젊은 가슴이 넘침을 확인하고 싶고, 멀리서도 찾아오는 외지인의 발길을 목격하고 싶다. 축제가 모든 이들에게 소망의 불씨를 살려내는 이벤트가 되었으면 하고, 사흘 축제가 지난 뒤에도 긴긴 여운을 남겼으면 한다.시민들이 손수 만드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미 가지고 있었던 소양과 재능이 드러나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지역의 스토리가 보란 듯이 무대에 올려져야 한다. 포항문화재단이 주관하지만,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축제를 구현해야 한다. 시민들이 ‘우리들의 축제’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으면 한다. ‘퐝거리퍼레이드’에 사람들의 열정이 보였으면 하고, ‘시민디자인불꽃쇼’에서 시민의 상상과 창의를 목격했으면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손길이 모아진 축제에서 지역의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고 외지인의 부러움도 한껏 살아나지 않을까. 시민참여형 축제가 포항에서 불빛처럼 타오르길 기대한다.포항시는 축제를 도시브랜딩의 중요한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지역에는 포항국제불빛축제 외에도 다양하고 풍성한 축제 프로그램이 있다. 예산을 소비하고 빈축만 사는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축제마다 독특하고 분명한 지향성을 확인하고 지역의 열정과 기대가 한데 어우러지는 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포항에서만 발견하는 지역정체성을 확인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바다와 철강의 이미지를 살려야 하고 도시와 자연이 함께 호흡하는 분위기를 드러내야 하며 유구한 전통이 숨쉬고 싱싱한 내일이 꿈틀거림을 확인해야 한다. 어른과 아이가 모두 행복한 도시가 되어야 하고 기꺼이 서로 도우며 함께 발전하는 지역임을 보여주어야 한다.‘축제도시 포항’에서 기대와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도시가 살아있음을 세상에 알려야 하고, 상생과 협력의 기운이 이 도시에 충만함을 자랑해야 한다. 메인이벤트인 불꽃의 향연에는 도시의 열정이 한껏 발산되어야 하고 지역의 탄성이 마음껏 터져나와야 한다. 축제는 지역을 하나로 묶어내는 시간이어야 하고 외지인의 관심이 지역으로 모여드는 계기여야 한다. 오래간만에 축제의 열기에 흠뻑 취하고 싶다!

2023-05-24

유행은 가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만 생각해도 신비로운 한 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행복하기 위하여 산다’는 쉬운 답에도 개운치 않은 것은 인간에게 행복은 어떻게 찾아오는지 누구에게도 그리 명쾌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가장 위험한 태도가 유행따라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모든 유행은 틀려먹었다’고 하였다. 남들 따라 사는 일이 처음에는 제법 그럴듯해 보여도 나만의 무엇을 좀처럼 가지지 못하게 함으로 틀려먹었다는 게 아닌가. 부러운 남들의 그 모습을 따라 사느라, 나를 찾으며 도전하고 새 것을 만들어내는 열정은 사라지게 마련이다.애플의 스티브잡스(Steve Jobs)는 고교 시절 어느 날, 세상에 보이는 저 모든 것들이 따지고 보면 누군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물건들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 자각과 함께 남들을 흉내내며 살아오던 자세를 무엇인가 내 것을 만들어낸다는 각오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랬던 끝에 우리 손에 아이폰이 들려있는 게 아닐까.대한민국 청년들이 오늘 힘들다고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무엇을 향한 기대나 열정이 식어있는 것은 혹 아닐까.어려운 가운데 돌파구를 열어내고 힘든 속에서 빛줄기를 찾아내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세상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각을 익히기 위하여 관찰해야 하지만 세상만 좇아가는 삶으로 마감하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나 짧고 아깝다.유행과 모방 탓에 식어버린 감각은 무디어지고 나만의 세계를 드러낼 방법을 잃게 만든다. 소니(SONY)를 창업했던 이부카마사루(井深大)도 ‘비즈니스나 과학기술의 세계에서 진짜 성공에 이르려면 남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였다.기업에도 브랜드 자산 외에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자신만의 무엇이 있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무엇이 있는가. 끊임없이 살피고 찾아내어 당신만의 무엇을 만들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지역에도 그곳에만 있는 그 무엇이 틀림없이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지역문화와 예술이 지역마다 똑같은 이야기로 수렴한다면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하고 다음 세대와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미국 가수 리앤워맥(Lee Anne Womack)은 ‘세상을 정말로 놀랍게 하고 싶다면, 무엇인가 다른 시도를 반드시 해야 하고 실패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하였다. 다른 곳에는 없는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을 반복하면 절대로 안 된다. 여기서만 만날 수 있어 이곳으로 사람을 끌어올 꿈을 가져야 한다.내게는 있으나 남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포항지역에는 이미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포항에만 있었던 포스코가 지역을 우뚝 일으켜 세웠고 오늘은 저 높은 곳에 스페이스워크가 상상과 가능의 지평을 일깨워 준다. 당신은 누구인가. 남들을 닮으려 애쓰기 보다 남들과 다른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 유행은 가라, 나를 찾을 터이니.

2023-05-17

대학개혁, 진심이라면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정부가 3대 개혁을 내걸었다. 노동, 연금, 교육 분야를 혁명적으로 바꾸겠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지 세간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된다.마침, 교육부장관이 교육개혁을 위한 3대정책을 제시하고 연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하였다. 세 가닥 가운데 ‘대학개혁’이 솔깃하지만, 대학교육의 ‘내용’을 바꾸기 위한 고민과 철학이 담겼다기보다 대학교육지원을 위한 ‘돈’관리체계에 집중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대학교육과 관련하여 해묵은 과제들이 많지만 대학입시제도를 한번 생각해보자.수능,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은 그 이름으로 시행된 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학력고사, 예비고사 등 유사한 기능을 가졌던 제도까지 생각한다면 무려 반세기를 넘는 동안 연례행사처럼 치러온 시험제도가 아닌가. 교육계에서는 취지와 내용 등에 변화가 있어왔다 하겠지만, 수험생들과 사회일반에게는 그냥 같은 제도가 수십 년째 시행되고 있는 터이다.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대폭 줄고 고교학점제가 곧 시행될 것이며 대학교육의 기능과 실체도 여러 각도에서 도전을 받는 가운데, 대학입학을 위한 기본관문격 제도로서 수능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대학교육과 관련하여 바꿀 가닥이 있다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것이 바로 ‘입시제도’이며 그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수능’이다. 본질과 취지를 다시 생각해야 하며, 구체적인 내용과 시행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수능 다음날이면 입학가능 점수가 예측되는 걸로 보아 수능의 기능은 점수로 학생의 실력을 가늠하여 줄을 세우는 격이었다. 대학 공부를 앞둔 학생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이전보다 다양해진 현실을 보더라도 수능점수로만 실력을 평가하는 일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수능의 역할을 실력평가가 아닌 학력인준이나 적성평가도 바꾸어 대학입학을 위한 최소기준을 확인하거나 수험생 개인의 적성을 가늠하는 도구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다.수능의 형식도 오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에서 이제는 벗어날 필요가 보인다. 대학생활을 기대하는 수험생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표현될 서술형, 논술형, 또는 단답형 주관식 시험을 시도할 때가 아닐까 싶다. 수능이 중요한 시험이긴 하지만 일 년에 딱 하루만으로 정하여 그 한 날의 시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도박형 시험제도도 수명을 다하였다. 몇 번도 응시가 가능하게 하여 학생들이 불필요한 긴장과 극도의 압박에서 벗어나도록 배려해야 한다. 대학교육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대학의 이름에 따라 서열을 정하던 사회적인 평가도 서서히 바뀌어 간다. 대학명을 간판삼던 세태에서 실제 역량을 기대하는 인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대학이 스스로 변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대학 재정을 정부에 기대던 체질이 자연스럽게 바뀌도록 유도해야 한다. 돈으로 대학을 좌지우지하던 정부의 태도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돈이 아니라 교육이 살아나도록 살펴야 하고 대학은 스스로 일어서는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5-10

인공지능, 위기인가 기회인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의 발전이 눈부시다. 정보를 모으고 가공하여 새로운 예측자료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향후 5년 안에 전세계 일자리 23%가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 한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많을 것도 사실이지만, 새롭게 만들어질 일거리도 무시할 수는 없다. 많은 일자리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지, 없어진다고만 하지 않았다. 관련 전문가들도 일자리의 변동률이 유례없이 높을 것이라고 한다. 가파른 변동률은 일자리의 급격한 변화를 예측하는 것일 뿐, 없어진다고만 하지는 않았다.기술의 발전과 함께 일자리의 변화는 언제나 존재한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함께 노동시장의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날 터이다. 일부는 사라지지만, 새로운 일자리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노동집적도의 수준에 따라 사라지는 일자리의 단위 갯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지만, 그런 류의 변화는 산업혁명 이래 늘 우리 곁에 있어왔다. 전통적인 관리와 경비기능, 공장과 상업 부문에서 대폭적인 일자리의 감소가 예측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교육, 보건, 농업 등에서는 오히려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노동력이 더욱 필요해질 전망이다. 자동화와 전산화로 단순반복적인 업무기능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지만, 기술의 집적과 함께 인간의 응용 및 적응능력을 확장해야 하는 부문에는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날 터이다.인공지능의 도래와 관련하여 인류에게 큰 도전이 되는 부분은 일자리의 갯수보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초래할 직업윤리적인 영향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의 개발에 깊숙이 관여했던 구글의 제프리 힌튼(Jeffrey Hinton)이나 히브리대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멈출 수 없는 인공지능경쟁에 글로벌규제가 필요하다’든가 ‘강력한 기술도구의 안전을 점검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빌 게이츠(Bill Gates)는 ‘인공지능개발을 중단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인류가 과학기술을 보다 건강하게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인공지능의 도래와 함께 과학기술은 물론 인간사회에도 급격한 변화가 찾아올 모양이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존재하지만, 변화하는 일거리의 모습에 유연하게 준비하고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오히려 기회로 삼을 가능성도 다분히 있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윤리적 위험성에 경고등이 들어왔지만, 문명의 산물을 인류에게 이롭게 쓴다는 다짐이 있는 한 긍정적인 발전으로 변모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산업혁명 이래 인류에게 기술은 언제나 위기의식을 동반한 필요악이었다. 사라졌던 일자리는 새롭게 일어난 생산성으로 극복되었으며, 인류의 위기는 세상의 기회로 슬기롭게 바뀌어왔다. 인공지능이 던지는 그림자에도 인류는 지혜를 모아 참신한 빛줄기를 불러올 터이다. 사그라들 무엇을 아쉬워하기 보다 찾아올 약속에 집중해야 한다.

2023-05-03

아, 독도는!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2차 세계대전을 실질적으로 마감하면서 연합국들과 일본이 체결한 조약이다. 미국, 영국, 소련 등 48개국이 서명하고 1952년 4월 28일에 공표되었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대한민국과 북한은 어느 쪽이 한반도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하여 초대받지도 못하였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2조 이 한 줄에 ‘독도’가 들어있지 않다 하여, 일본은 아직껏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이다. 독도가 일본 땅으로 ‘남은’ 증거라는 것이다. 저 조항의 해석은 물론 조약이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한다.신한일어업협정. IMF사태 한 가운데였던 1998년에 체결되어 다음해에 발표된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어업협정이다. 양국 간에 ‘중간수역’을 설정하여 두 나라의 국민과 어선이 상대국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여야 할 독도가 중간수역에 포함되어 두 나라가 함께 관리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영토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설정하지 않고 중간수역에 빠진 꼴이 된 것이다. 이후 일본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흔들 수 있는 빌미를 남긴 셈이다. 중간수역에 떨어진 독도의 운명은 누가 돌아보는가. 우리가 독도를 생각하며 다분히 정서적이며 감정적인 ‘독도는 우리땅’을 부르고 있을 때, 일본이 조직적인 논리로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들을 모으며 국제적 분쟁거리로 독도문제를 준비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한국전쟁의 소용돌이와 IMF사태의 어려움을 기억하는 일에도 몸서리를 치겠지만, 그런 와중에 ‘우리땅 독도’의 운명이 위태로울 움직임들이 있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뿌리깊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의 섬 독도’의 운명을 흔들 수 없음을 체계적으로 조리있게 세계만방에 고해야 하지 않을까. 신한일어업협정은 그야말로 어업에 관한 나라 간의 약속으로 대한민국 독도의 영토적 지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도 분명히 해야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지극히 지엽적인 어업을 대상으로 하는 신한일어업협정이 대한민국 영토 독도의 영유권적 지위를 침탈할 수 없음을 세계만방에 천명해아 한다.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국익의 관점에서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살려가되, 우리의 땅 독도의 지위를 들먹이는 행태는 단호하게 막아야 한다. 중앙정부는 물론, 경북도와 울릉군 등에서 펼칠 다양한 독도 관련 정책과 이벤트도 추후 있을지도 모르는 국제적 갈등에 미리 대비한다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독도는 우리땅!’을 끊임없는 다짐과 구호로 간직하면서 우리는 보다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논거와 실효적인 수호논리를 확보해야 한다. 독도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닌가.

2023-04-26

글로컬 포항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세상이 변했다. 물리적 한계와 함께 지역이 고립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극동의 변방이었으며, 포항은 나라 안에서도 시골구석이었다. 상대적 박탈감도 한 몫 거들어 나라와 지역은 세계를 향하는 글로벌을 외쳤다. 수출은 여전히 국가경제의 주축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노력은 멈출 수 없다. 인터넷과 온라인은 초연결성을 기반으로 지구를 통째로 묶어버렸다. 큰 나라들만 판을 치던 세계질서는 어느새 급변하여 대한민국을 날로 인정하는 모양이 아닌가. 중심과 변방이 따로 없으며 수도와 지역의 구분은 사라져간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만 알아주던 무대에 이제는 낯선 얼굴들이 쑥쑥 올라온다.21세기가 중반으로 달리면서, 또 한가닥 변화의 모양새가 눈에 뜨인다. 세계로만 달리는 태도로는 부족하다. 글로벌로만 달리면 모두 같은 모양이 되고 만다. 맥도날드가 그렇고 블루진이 그렇다. 글로벌 기준에 변화가 일어난다. 세계로 달리면서 지역의 모습을 함께 심는다.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을 함께 버무려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낸다. 20세기에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글로벌을 겨냥했다면, 21세기에는 글로벌과 로컬을 의미있게 섞는 상상과 창의가 필요하다. 글로벌마인드 뿐 아니라 글로컬마인드를 요청하고 있다. 시선은 글로벌을 향하면서 상상력의 기초는 로컬에 두는 21세기형 리더십을 길러야 한다.‘글로컬포항’이 그래서 가능하다. 지역특색을 담아 세계적 경쟁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역의 상상력이 주도하는 특별한 세계화는 수도권이 시도하는 밋밋한 국제화보다 앞설 수 있다. 독특한 문화적 경쟁력을 끊임없이 기대하는 시대정신과도 맞물린다. 세계화와 지방화가 만나야 한다. 지역에는 그럴만한 소재도 다양하다. 바다가 그렇고 철강이 그렇다. 온 나라와 여러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여성과 아이들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연로하신 어른들을 바라보는 존경심이 그래야 하고 젊은 청년들의 지역 생각을 키워야 함이 또한 그렇다. 포항에만 있거나 포항에는 있어야 하는 소재와 가치들을 찾아내고 일구어서 글로벌시장과 상대해야 한다.글로컬 시대에는 지방에서 뿌리를 찾아 세계시장과 겨루는 상상과 창의를 키워야 한다. 교육부가 나서서 지방대학들이 글로컬 가치를 살피고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일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몇 개 안 되는 대학들을 선별하여 차등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공연히 경쟁심을 유발하고 돈으로 줄을 세우는 낡은 발상이 숨어있어 우려스럽다. 글로컬의 힘은 모든 지역에 숨어있을 터이다. 한정된 재원을 나누어 사용한다 해도, 백(100) 또는 영(0) 식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건강한 글로컬리즘의 개발과 진전에 도움이 될까.글로컬의 세상이 열렸다. 대한민국은 이미 저 앞에 서 있다. 한반도의 작은 도시 포항과 지역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이 되기 위하여 어떤 가치를 뿜어낼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반도를 넘어 세계시장을 직접 두드리는 포항의 미래가치에 높은 기대를 건다.

2023-04-19

直指를 잊었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인류 소통의 역사에 혁명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오늘 경험하는 정보의 홍수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컴퓨터의 보급이 일으킨 소통의 혁명이다. 세계사는 그보다 앞선 ‘구텐베르크(Gutenberg)의 인쇄술’을 소통혁명의 원조로 꼽는다. 교황으로 대표되는 교회나 왕실이 주도하는 상류사회에나 접근이 가능했던 성경을 비롯한 문건들이 밀물처럼 활자술로 인쇄되어 나오기 시작했으니, 가히 시민들을 위한 소통의 혁명이 시작된 셈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처음 인쇄된 1455년을 소통혁명의 기원으로 삼는 까닭이다. 보통사람들에게 비로소 눈이 열리고 생각이 트이는 혁명이었음에 틀림없다.직지(直指)를 기억하는가. 고려말 간행된 직지는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이다. 1377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 앞선 활자인쇄물이다. 유네스코(UNESCO)도 직지의 문명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의 기억유산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였다. 결정위원장이었던 벤디크루가스(Bendik Rugaas)는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물임을 인정한다’고 하였다.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를 열면서 직지를 다시 한번 세상에 내어놓는다. 도서관 수장고에 보관된 직지는 1973년 공개된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안타깝고 아쉽다.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한참이나 앞선 금속활자 인쇄물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직지는 여태 ‘혁명적인 인쇄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구텐베르크 성경은 교회의 그늘에 갇혀있던 성경을 인쇄하여 일시에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던 사실이 있었다. 반면, 직지라는 인쇄술은 연이어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는 근거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셈이다. 기술의 진보가 대중의 수용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탓이다. 혁명이라 일컫기엔 파급력이 미치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아닌가.무엇을 해도 마지막 평가는 보통 사람들의 손이 결정한다. 나라가 어지럽다. 경제가 위태롭고 교육이 위험하며 외교가 걱정스럽고 안보가 아슬아슬하다. 선출하여 믿으며 맡긴 이들이 최선의 지혜를 모아 잘 꾸려가길 바라지만, 보통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부가 되었으면 하지만, 국민들이 생각을 모아 정부가 하는 일에 조언하여야 한다. 실수와 실책은 겸허히 인정하고 국민의 인정을 회복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판단을 내릴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민이 수용하고 밀어줄 때에 정부의 정책에 동력이 생긴다. 국민이 실망하여 등을 돌렸던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직지가 인류문명에 기여했던 성과를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정부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땀흘리는 노력도 평가되어야 한다. 국민의 일상에 힘이 되고 나라의 앞길에 덕이 되는 정책들을 펼쳐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고, 국민은 정책의 추이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국민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2023-04-12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나라가 좁다. 우리나라 면적은 세계 108위에 인구 숫자로는 세계 29위라서 인구밀도가 세상에서 네 번째로 높다. 좁은 땅에 복닥거리느라 늘 경쟁과 다툼이 화두다. 모든 게 좁은 문이고 일상이 긴장과 투쟁의 연속이다. 웬만한 시험은 몇십대 일 경쟁이 다반사가 아닌가. 기회가 없지는 않지만 늘 제한적이고 바늘구멍이다. 다음세대에게 우리는 어떤 내일과 비전을 가르칠 수 있을까. 사회는 늘 복잡하고 치열하며 힘든 싸움만 부추기는데, 청년들은 무엇에 희망을 걸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답답하지 않을까.호연지기(浩然之氣).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기운이라 하였다. 호연지기를 품고 내일을 설계할 때 인물이 나고 세상이 바뀐다 하였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과 땅 사이에는 한반도만 있는게 아니다. 시선이 가 닿는 지평이 넓어야 한다. 세상 저 끝까지 호기심과 상상력의 경계를 넓혀야 한다. 나라 안에서 우리끼리만 바라보며 이기고 질 생각을 하니 긴장과 고난의 연속이 아닐까.정치와 사회, 문화와 경제도 국내로만 시선을 고정하면 모든 게 정체되고 탈출구가 좁아 보인다. 생각을 넓히고 세상을 바라보면 뜻 밖에 할 일과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글로벌호연지기를 길러야 한다.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호기심부터 길러야 한다. 우리와 다른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경계를 허물어 다른 점을 발견하고 닮은 가닥을 찾아야 한다. 세상의 모습을 글로벌하게 알아야 하고,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을 깨우쳐야 한다. 저 밖을 향한 관심과 궁금증을 키워야 하고 조금씩이라도 날마다 세상을 생각해야 한다. 어울려 일하고 겨루며 ‘널푼수’를 키워야 한다. 더 넓게 생각하고 더 멀리 바라보며 더 깊이 느껴야 한다.국내만 바라보며 답답했던 심사가 글로벌한 지평을 내다보며 넓어져야 한다. 나아진 국격과 함께 자신감도 한층 높여야 한다.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도 자신있게 익혀야 한다. 세상을 만날 준비부터 쌓아 올려야 한다.글로벌은 이미 현실이다. 펼쳐진 마당을 알아채야 한다. 경쟁과 다툼으로 소중한 에너지를 소진할 게 아니라 글로벌 환경을 깨우쳐 앞서가야 한다. 다음세대는 글로벌호연지기를 장착해야 한다. 좁은 국내를 벗어나 광활한 세상을 열어가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좁은 한반도 갇힐 수가 없다. 상상과 창의로 세상과 겨루어야 한다. 무엇을 바꿀까, 누구와 일할까, 어디에서 펼칠까, 넓고 깊게 생각하는 다음세대를 길러야 한다.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글로벌호연지기를 펼칠 때 대한민국의 운명과 국격도 더욱 상승할 터이다.경북교육을 세계교육의 표준이 되도록 하겠다는 경북교육청의 교육비전이 새롭게 보인다. 구호에 그칠 일이 아니라 실천적이며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어린이들이 어릴 적부터 세상을 느끼고 배우고 익혀 세상을 바꾸어낼 인재로 길러야 한다. 좁은 땅에서 경쟁으로 시들어 갈 일이 아니라, 넓은 텃밭에서 마음껏 날아다니도록 길러야 한다. 글로벌은 교육으로 실천해야 한다.

2023-04-05

국가소멸위기, 이민과 다문화로 극복하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나라가 비어간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모든 정책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2017년에 5천136만명이었던 한국인구는 2047년에 4천771만명, 2067년에 3천689만명, 2117년에는 1천510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 한다. 백 년 후에는 나라인구의 70%가 사라진다는 셈이다.지역소멸이 문제라지만, 이쯤 되면 ‘국가소멸위기’라 불러야 하는게 아닐까. 인구가 국가성장동력의 한 축이라면 대한민국은 특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계 10위를 넘나든다는 국위와 국격도 인구가 실제로 급격히 줄어든다면 그리 오래가지 못할 터이다.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실효적인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한다.많은 나라들에서 인구정책으로 골치를 앓는 가운데, 캐나다 인구는 1년 만에 100만명 이상 증가하여 인구증가율 2.7%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의 인구가 14% 감소한 데 비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캐나다 정부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하여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한다. 이같은 증가세가 지속된다면 약 25년 후에는 캐나다 인구가 지금의 두 배가 된다는 예측마저 한다.미국은 건국초기부터 이민자의 나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인종갈등과 여론동향에 따라 이민정책이 그리 유연하지 않았다. 이민자들에게 유리한 다문화정책(multiculturalism policy)과 동등기회정책(equal opportunity policy)을 점진적으로 시행하면서 미국 이민사회와 인구추이는 안정적인 성장을 기록하는 중이다. 캐나다와 미국에도 이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없지 않지만, 유입되는 이민인구에 대하여 점차적으로 개방적인 정책성향을 장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보다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이민정책을 시도하는 셈이다.우리는 어떤가. 5천100만 전체 인구 가운데 다문화배경 인구가 200만명을 넘어서고 결혼하는 10쌍 가운데 1쌍은 다문화가족이라고 한다. 전체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동안, 초중고교에서 다문화 학생수는 한 해 1만명 이상씩 늘어난다고 한다. 이민과 다문화정책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문화배경 시민들의 70% 이상이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단일민족을 내세우는 고루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은 이미 글로벌 환경으로 변하였는데 우리만 폐쇄적인 구습에 머물 수가 없다. ‘다’문화를 ‘다른’ 문화로 구별하여 차별적으로 대하고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다문화는 낯설고 다른 문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의 새로운 얼굴로 받아들여야 한다.글로벌 세상에서 대한민국이 환영받으려면 나라 안에서 글로벌을 환대해야 한다.추세로 보아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 인구감소위기에 반전의 계기가 솟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민을 신성장동력의 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고, 교육과 문화의 현장에서 보다 포용적인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국가소멸위기는 이민과 다문화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정책적 시선으로 극복해야 한다.

2023-03-29

복수가 해결책일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며 우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에 열광하였다. 폭력에 대한 징악과 보복을 탓할 수는 없다. 감정적으로 시원하고 최후 승리를 거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 방법으로 보복과 복수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학교, 교육청과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학교폭력이 사회적 담론의 이슈가 되는 경로가 있다. 미디어가 전하는 뉴스나 드라마를 통하여 학교폭력의 실상이 전달되면, 대중적 분노를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일시적으로 생성된 피해의식과 응보감정을 정책마련의 근거로 삼는다. 분노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적 관심은 자연스럽게 가해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일에 방점을 둔다. 가해자는 처벌을 피하려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학교폭력의 처리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입은 피해로부터 회복하는 일은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한국청소년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20대 성인들의 34% 정도가 어린 시절에 학교폭력을 경험했다고 하며 그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자살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학교폭력은 피해자들에게 씻어내기 어려운 온갖 피해를 안긴다.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만성적이며 장기적인 외상을 안긴다. 발생했던 학교폭력을 가해자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피해자들은 방금 벌어진 듯 생생하게 되뇌이며 마음에 입은 상흔을 털어놓곤 한다. 피해학생과 가족들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언론과 미디어의 충격적인 보도에 대한 관심의 강도는 약간 증가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다루는 사회적 기관들은 넘쳐나는 가운데,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와 회복에 관심을 두는 공적 기관은 드문 형편이다.학교폭력을 바라보는 학교의 시선도 문제다. 학생들의 바른 인성을 길러내기 위해서도 ‘폭력’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노력을 교실에서부터 기울여야 한다. 학교폭력을 교사가 성가시고 귀찮은 현상으로만 치부한다면, 폭력없는 학교가 온전히 회복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운영하는 대안학교 ‘해맑음센터’가 피해학생들을 맡아 돌보며 지도하지만, 정작 그들이 떠나온 학교는 교실 분위기에 어떤 변화를 시도하는지 의문이라고 한다. 학생을 기르는 일이 학교의 일이라면, 폭력없는 즐거운 교실을 확보하는 일은 교사의 당연한 책임이 아닌가.최근 증폭된 관심에 따라 교육부는 학교폭력근절대책을 준비한다고 알려졌다. 학교폭력 경력을 생활기록부에 적극적으로 기재하고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가중한다는 방침은 학교폭력의 뿌리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 처벌에 더하여 진정한 화해와 조정, 사후처벌보다 사전예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피해복구와 관계회복에 초점을 두는 피해학생 보호와 회복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폭력은 범죄다.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가해자를 벌하는 엄정한 접근과 함께 피해자와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폭력이 사라져야 교육이 산다.

2023-03-22

결국 미디어가 한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학교폭력은 무섭다. 폭력은 범죄라는 상식이 있지만, 폭력이 학교에서 벌어지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지 누구에게나 어렵다. 피해당사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학교, 교육청과 정부 등 모두 이를 대처하는 방식에 혼돈스럽고 당혹해한다. 사건이 붉어지면 언론이 뜨겁게 보도하고 정치가 담론으로 삼기도 하지만, 오래 가지않아 불씨는 시들고 기억에서 다시 멀어진다. 그런가하면, 종교를 허울삼아 못된 짓들이 발생해도 우리는 마찬가지였다. 교회나 사찰 등지에서 성폭력이 간간이 발생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대처방식은 늘 같은 모습이었다. 정치와 언론이 근본적인 대안들을 만들어주었으면 하지만, 기대가 있었을 뿐 우리 사회는 같은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품고만 있는 셈이다.미디어의 역할이 신선하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의 실체를 극적으로 부각하여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을 행사하는 극적진행을 통해 학교폭력이 처음부터 없어야 했다는 당위명제를 던진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는 실제피해자들을 가감없이 등장시켜 피해자가 겪는 고통의 깊이와 범죄상황의 적나라한 모습을 있었던 그대로 전달한다. 언론에 기대했던 사실의 전달과 정치에 기대했던 해결의 실마리를 미디어의 이야기가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보다 강도 높은 전달효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언론과 정치는 각성해야 한다. 사실전달이 언론의 본령인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함께 전달하고 제시하는 시도도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번져가는 솔루션저널리즘(Solutions Journalism)은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탐색한다. 정치는 중첩한 사회문제를 논하며 정치적 수사와 탁상공론으로 허비할 게 아니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담론을 설정하고 토론을 진행하여 실천적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언론이 겉모습만 겨우 보도하고 정치가 허망한 수사만 반복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기대와 희망을 더 이상 당신들에게 걸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치와 언론에서 실질적인 담론과 실천적인 대안을 구하기보다,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은 다음 시민들이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언론과 정치가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결과를 빚을지도 모른다.디지털세상이 그래서 무섭다. 특히, 정치와 언론에 가혹한 현실을 드리울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사회문화적 현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대중에게 정치와 언론이 가교역할을 해 주었다면, 디지털은 그 거리를 현저하게 좁혀놓았다. 모든 뉴스와 사건의 현장이 시민들에게 그리 멀지 않게 되었다. 언론의 보도기능과 정치의 담론진행조차 누구나 온라인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언론과 정치가 보통사람들의 일상에 가 닿는 저널리즘과 정치행위를 실천해야 한다. 언론과 정치가 본질을 회복해야 사회가 살고 나라가 선다.

2023-03-15

그걸 못하면 모두 죽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벗꽃피는 순서로 죽는다’고 야단이다. 대학들, 특히 지방대학들이 남쪽으로부터 죽어나갈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어간단다. 그건 벌써 오래전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학은 게을렀을 뿐이다.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정부의 재정지원에만 기대며 살아온 게 수십 년이 아닌가. 대학을 잘못 운영하면 재정지원을 중단하는 게 나라의 규정이었으니, 사고만 치지 않으면 학교는 그럭저럭 굴러갈 판이었다. 온 나라가 혁신과 개혁을 외쳐도 대학은 그냥 그렇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힘들다는 거다. 학생숫자가 눈에 보이게 쪼그라들 판이니 나라가 도와주는 걸로만 버티기에 힘들어졌다는 게 아닌가. 아직도 홀로 일어나 보겠다는 대학은 보이지 않는다.대학은 그전에도 망해 있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 거의 모든 학과가 있다. 같은 종류의 청년들을 모든 대학이 만드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대학마다 바라보는 바가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같은 무늬로만 존재하는 대학들은 이미 천천히 무너지고 있지 않았을까. 같은 전공은 같은 내용을 담는다. 교수가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는 건 핑계일뿐, 같은 껍데기가 같은 영역을 다루지 않겠는가. 모든 대학이 같은 전공학과들을 모두 가진다는 건, 대학마다 특성이 없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우리 대학은 그래서 이미 죽어있었다. 모두 같은 일을 하면서 오래도 버틴 셈이다. 이제는 대학이 달라져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순서대로랄 것도 없이 모두 사라지게 되어있다.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그간 모방하고 추격하며 달려왔다면 이제는 혁신하고 창조하며 달려야 한다. 대학은 더이상 무엇인가 많이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게 아니라 작은 무엇이라도 새것을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암기반복형 인재가 아니라 문제해결형 인성을 길러야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들도 강의 중심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의 거친 물결을 만나기 전에 학생들이 실전과 검증을 경험해야 한다. 성공의 짜릿함도 느껴봐야 하고 실패의 쓰라림도 일깨워야 한다.지방대학은 지역과 함께 살아내야 한다. 대학은 지역에서 문제를 탐색하고 지역담론에 참여하여 지역과 더불어 호흡해야 한다. 교수들이 지역에서 연구프로젝트를 발견하고 학생들이 지역에서 배운 것을 나누어야 한다. 몇 년을 보내며 가르치고 배운다면서 지역과 담을 쌓은 모습은 스스로 존재이유를 망각한 처사가 아닌가. 대학이 지역사회와 문화에 흠뻑 젖어야 하고 지역은 대학으로부터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지역과 대학은 운명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소멸의 위기는 지역과 대학이 함께 풀어야 한다. 대학이 있으면서도 지역의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대학과 지역은 함께 부끄러워야 한다. 젊은이들로 넘치면서 젊은이가 없다는 불평이 말이 되는가. 지역이 대학을 품고 대학이 지역으로 나서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 지역도 대학과 함께 죽는다.

2023-03-08

평등만으로 부족하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최근 방영됐던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100’에 등장한 출연자들은 출신, 성별, 국적, 직업에 상관없이 똑같은 조건에서 겨뤘다. 같은 무게 돌덩이를 들고 버텼으며 같은 밧줄에 매달려 견디었다.누가 봐도 차별없는 동일한 룰을 적용받으며 기량을 다투었다. 완전한 평등을 보장받으며 기량껏 겨루어 결과를 받아들였다. 진 사람은 불평없이 탈락했으며 이긴 사람은 힘차게 다음 승부에 도전했다.평등했으니 괜찮은 것일까.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똑같은 조건만 주어지면 세상은 좋아지는 것일까. 투명하고 평등했으므로 결과는 이제 공정했을까. 몸으로 겨루는 경쟁을 붙이면서 평등한 조건만 내걸면 모두가 결과에 행복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지만, 공정하기 위해서 더 생각할 필요는 없었을까.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는 회원국들에서 ‘성별 간 임금격차’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들여다본다. 남성노동자가 받는 평균임금에 비하여 여성노동자가 어느 정도 받는지 비교한다. 우리나라는 이 통계에서 수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31% 적게 받는다. 세계평균 12%에 견주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닌가. 사회문화적인 다른 까닭을 떠올려도 보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여전히 낮은 대우를 받고있음을 시인할 수 밖에 없다. 다 자란 두 딸이 사회생활을 늠름하게 하길 바라지만, 여성이라는 까닭에 공정하지 못한 자리에 서지 않을까 부모는 걱정스럽다.사회가 ‘공정’하려면 개인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각자에게 맞는 자원과 기회를 할당해야 한다. 평등을 넘어 공정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오는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여성의 권익향상과 차별철폐를 위해 유엔이 정한 기념일이며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삼는다.올해 캠페인주제는 ‘공정포용(Embrace Eguity)’이다. 평등한 기회제공만으로는 더이상 충분하지 않으며, 공정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언이다.성경은 2000년 전에 이미 ‘남자와 여자가 같다(갈라디아서 3:28)’고 했다. 기나긴 세월을 두고도 아직 우리는 남녀 간에 평등한 세상도 만들지 못했다.그럼에도, 공정한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서로가 가진 처지와 배경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새롭게 해야한다. 똑같은 조건만 제공했으니 공정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가 생기고 또다른 불균형에 이르게 된다.평등하고 공정한 세상. 쉽지않은 과제다. 기계적인 평등은 객관적인 조건을 같게해 이룰 수 있겠지만, 보다 공정한 세상에는 더 많은 고민과 배려를 필요로 한다.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모두의 다짐이 있어야 비로소 공정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그나마 평등한 조건을 확보했으니, 공정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외부적인 조건이 차별받지 않을뿐 아니라 처지와 배경이 인정되고 능력과 경륜에 따라 공감있는 배려가 제공되는 공정한 세상을 당겨야 한다. 평등을 넘어 공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3-03-01

학교폭력, 나라의 문제

장규열 한동대 교수 배우려고 학교에 간다. 다양한 학습과 훈련을 통해 습득하고 경험하여 바람직한 인성으로 자라기 위해 학교교육을 받는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는 끊임없는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부모와 교사, 친구와 이웃이 성장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다. 배우고 자라는 길에서 주변으로부터 받는 신호와 목소리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긍정적인 부추김과 부정적인 두려움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들게 된다. 한때 부모나 교사가 무서워 억지로 구겨넣듯 배웠던 과목들이 있다. 느꼈던 공포는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무엇을 배웠는지는 생각도 하기 싫지 않은가. 학교폭력은 어른들만 저지르지 않는다. 같은 반 친구가 두려움의 대상이라면, 일상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불안과 분노, 스트레스와 우울증세, 무력감과 실패감에 휩싸이고 학교성적이나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피해학생의 일상이 무너지게 된다. 길게는 사회성의 저하, 정신과민증, 대인기피증, 인격장애현상 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같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자살(Bullycide)에 이르기도 한다. 일상이 망가질뿐 아니라 일생을 망치게도 된다. 최근 OTT 인기드라마에 등장한 한 연예인에게 오래전에 학교폭력을 당했노라는 고발이 있었다. 가해자는 심심해서 장난삼아 생각없이 벌인 일이 피해자에게는 평생을 두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터이다. 피해는 학교현장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번져 24시간 발생하므로 가해자로부터 피할 방법이 없다. 학교폭력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두려움이 그늘진 마당에 교육이 일어날 방법이 없다.폭력은 벌어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학교폭력은 더욱이 사후수습보다 사전예방이 먼저다. 미국학생들은 학폭과 관련하여 세 가지 다짐을 한다. 학교폭력이란 해서도 안 되고, 하는 걸 목격했을 때 간과해도 안 되며, 당했을 때에 가만히 있어도 안 된다. 이와 함께 연중 꾸준히 학교폭력의 위험과 폐해에 관해서 경계하고 가르친다. 학폭에 대하여 무관용원칙(Zero tolerance principle)을 가지고 강력하게 대처하는 미국이 다소 심하다 싶지만, 자칫 총기사고와 연결되는 그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럴만도 하겠다. 벌어진 학교폭력에 대응하여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교육지원청 주도로 구성되지만, 구성과 심의방법 및 처분결정내용 등은 보다 전문적으로 정교하게 기획할 필요가 보인다. 학폭위의 논의과정이 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 처벌에 방점을 두는 현황을 재고하여 피해자와 가족들이 장기적으로 겪을 어려움과 상흔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일에도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모든 폭력에 반대한다.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과 학대, 놀림과 따돌림은 현대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 폭력이 교육의 현장에서 똬리를 트는 일에는 전쟁이라도 선포해야 한다. 한 아이에게 참다운 교육이 진행되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학교폭력을 학교만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 전 사회적 관심이 일어나야 한다. 다음세대를 바르게 키우는 일보다 중요한 숙제가 어디 있을까.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2-22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폭풍전야. 대학교육은 폭풍을 앞에 두고도 변하지 않는다. 타성과 관성에 젖어 구태와 구습을 반복하면서 개혁과 혁신에 나서지 않는다. 급격한 인구감소는 대학정원을 채우기에도 힘들 시간을 예고했지만, 대학들은 교육부의 지원에 기댄 채 아무런 변화를 불러내지 않는다. 유초중등 공교육이 기른 학생들을 받아 책임있는 고등교육을 이어가야 하는데, 대학은 정원의 위기와 재정의 어려움 앞에 내실있는 교육을 일으키지 못한다. 교육부장관이 제안하는 대학교육 개선방안에도 ‘교육’보다는 ‘재정’에 높은 우선순위가 놓여 있다. 대학설립과 운영을 위해 정해진 재정적 요건을 완화하거나 대학기본역량 진단을 폐기하여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생각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돈 문제만 해결되면 대학교육이 제대로 될까.대학은 시대를 읽어야 한다. 디지털과 온라인은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대세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챗GPT로 이어지면서 교육현장을 거세게 흔들 모양이다. 지난 세기를 휘몰았던 이념경쟁이 물러가고 실리 위주의 국제관계 형성이 글로벌 트렌드가 되었다. 대학교육을 20대 초반에 마치고 평생을 사는 교육 모델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기술과 지식의 수명도 예전같지 않다. 인성의 기본을 다지는 유초중등 교육과는 다르게, 대학교육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인간을 길러야 한다. 대학개혁을 진정으로 겨냥한다면, 대학교육의 본질과 내용을 다시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대학은 각자 차별화와 특성화에 나서야 한다. 모든 대학에 모든 전공과 학과가 존재하는 ‘백화점식 대학교육’은 수명을 다했다.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며 모두 서서히 가라앉는 방식은 버려야 한다. 대학마다 독특한 연구와 색다른 융합을 통하여 각자의 존립이유를 밝혀야 한다. 특정한 대학에 진학하는 특별한 까닭을 학생이 찾아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학이름이 출세를 위한 간판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학에서 익히는 전문지식이 삶을 이어가는 데 끊임없이 힘이 되는 ‘지속적인 전문교육의 장’으로 대학을 바꾸어야 한다.대학은 내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을 겨우 따라잡는 교육은 대학교육이 아니다. 내일을 성큼 앞당겨야 하고, 미래를 먼저 조망해야 하며, 오늘 보이지 않는 사조를 이끌어야 한다. 실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하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열하게 겨루기 위하여 토론이 일어나야 한다. 어제는 없었던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대학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래지평을 향한 특별한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는 대학은 사라져야 한다. 다짐과 각오가 분명하지 않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대학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변화와 혁신을 위한 분석과 통찰이 있어야 한다. 공교육이 아무리 애를 써도 대학교육이 매듭을 잘 지어야 한다. 공교육과의 연계성을 잘 살려야 하고, 사람의 일생에 멋진 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사람이 평생을 거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대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