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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놀거리가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참담하다. 참혹했을 이태원 골목길의 토요일 저녁을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다. 너무나 많은 청년들을 어처구니없이 하늘로 보낸 일은 우리 사회가 두고두고 곱씹어 돌아볼 일이다.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만큼 앞으로는 절대로 같은 일을 반복할 수는 없다. 외국 풍습에 젖은 놀이문화를 탓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젊은이들에게 즐길 거리를 충분하게 마련해 주지 못한 문화의 척박함을 돌아볼 생각거리이다. 이 땅의 사람들을 일과 경쟁으로만 내몰아 온 우리의 허점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제라도 누구라도 여유롭게 즐기고 누릴 놀이문화를 길러내야 한다.탈출구가 필요하다.누구든 삶의 긴장으로부터 다소간의 해방을 즐길 여유가 있어야 한다. 치열한 일상의 연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만끽하는 기회가 허용되어야 한다. 경쟁의 악다구니뿐 아니라 공동체의 푸근함도 느낄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적자생존과 무한경쟁, 추격과 탈취의 목표만 떠오르는 곳에 여유로운 문화의 향기가 피어나지 않는다. 견제와 긴장의 차가운 다짐을 풀고 포용과 관용의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경쟁적 이념구도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조화로움을 구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외래문화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문화로도 충분히 즐거울 가능성을 개발해야 한다.돌아보면, 공동체적 놀이문화가 우리 문화에도 숨어있었다. ‘가무에 능한 민족’이라는 역사적 평가가 있었는가 하면 함께 즐기는 놀거리가 우리문화 안에는 수다히 존재하였다. ‘우리의 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어째서 사라진 것일까. 우리가 가진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까닭모를 자격지심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우리의 옛모습과 전통, 오늘 우리가 선 자리 등에 관하여 더욱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이 오늘보다 따뜻해져야 한다. 다툼과 질시, 경쟁과 추격의 대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서로의 모습을 긍정하고 포근하게 받아들이며 함께 즐기고 누리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줄다리기와 쥐불놀이, 숨바꼭질과 땅따먹기에는 함께 누리는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혹 겨루고 다툴지언정 늘 서로를 인정하는 눈길이 숨어있었다. 의식적으로 경쟁구도를 만들어 끊임없이 다투기만 하는 신자유주의적 긴장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당당히 맞서고 이기고 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우리가 함께 즐거운’ 공동체가 살아나야 한다. 사회가 문화로 강하려면, 그 문화가 공동체를 지지하는 지평을 품어야 한다.젊은이들이 일상의 긴장을 풀고 주말의 여유를 즐길 ‘우리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알 수 없는 열등감을 벗고 문화를 향한 자긍심도 길러야 한다. 문화를 전통과 구습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오늘을 사는 세대들이 모두 함께 누리는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문화가 일상이 되어 즐거운 놀거리가 우리 안에서 솟아올라야 한다. 남의 문화에 기대어 비극적인 결말을 보는 참담함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문화가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도록 가꾸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모두가 이긴다.

2022-11-09

문화경쟁력

장규열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이 문화로 떴다. K-pop과 한국영화의 성공이 줄을 이었다. 국경과 세대를 넘는 유행이 생겨났고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났다. 한국말 배우기 열풍이 일었으며 한국문화를 모방하려는 외국인들이 적잖이 보였다. 코로나 언덕을 넘으며 관심과 흥미가 더 높아지길 기대한다. 정치와 경제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한국을 바라보는 바깥의 시선에도 변화가 있다. 글로벌시대의 역동성은 무엇이든 때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고 해석한다. 한국과 한국문화는 그간의 긍정적인 이해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을까. 문화는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우리만의 문화인가. 우리만 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문화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콘텐츠를 보여주는가. 문화에 담긴 이야기를 그 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을 때, 콘텐츠를 장소와 동일시하여 그 스토리를 만나고 경험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찾는다고 한다.케이컬처(K-culture)가 아니면 느껴보지 못할 감동과 맥락을 전달할 때, 우리 문화의 경쟁력과 영향력은 배가된다. 성공을 경험한 우리의 콘텐츠가 전혀 새로운 감동을 담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문화가 젊어야 한다. 이야기가 세대를 관통하면서도, 특히 ‘다음세대’가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을 때 문화는 경쟁력을 가진다. 전통적인 옛이야기일수록 오늘의 콘텐츠로 새롭게 만들어 전달해야 한다. 우리만의 오래된 이야기가 아무리 많아도,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면 생명을 잃고 가치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문화적 자긍심은 세대를 넘어 전달이 가능할 때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문화적 환경이 글로벌하게 펼쳐질수록 콘텐츠를 오늘의 세대와 어울리도록 다시 만들어야 한다. 문화원형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되살리기 위해서 젊은 세대와 함께 향유하는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초연결(super-connectedness)이 현실이 되었다. 지구상 어느 곳과도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글로벌세상에서 문화도 그런 환경에 걸맞게 진화해야 한다. 이야기에 실렸을 가치와 내용을 적절하게 전달하고 공유해야 한다. 우리만의 전통과 기준을 고집하기보다 현재적이며 글로벌한 가치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세계인과 함께 즐기며 호흡할 콘텐츠를 지향해야 하고 끊임없이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과 방역, 경제와 한류로 쌓아온 나라의 저력을 지속적인 경쟁력으로 승화시키려면 우리의 이야기가 세계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도록 다듬어야 한다.문화의 경쟁력은 그 콘텐츠가 독창적이면서 젊은 세대와 세계인의 감각과 함께 할 때 형성된다. 디지털과 초연결의 새로운 사회환경에도 주목하여 문화적 영향력을 만들고 확장하여 갔으면 한다. 나라의 영향력은 문화의 힘과 비례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케이컬처의 지속적인 성공으로 지지될 터이다. 경제가 바깥의 울타리를 만들어 낸다면, 문화는 속깊은 자긍심의 뿌리를 제공한다.

2022-11-02

나라의 백년

장규열 한동대 교수 나라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재정과 경제, 외교와 안보, 사회와 산업, 국방과 치안, 정치와 안정. 수다한 과제들 가운데 우리가 쉽게 놓치는 명제가 있다. 교육. ‘백년대계(百年大計)’는 먼 앞날을 내다보며 세우는 크나큰 계획이어야 하는데, 오늘 우리는 어떤가.대한민국 공동체는 지금 교육으로 다져야 할 내일을 고심하는가. 아이들에게 넘겨줄 세상에서 ‘다음세대’가 자신있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가. 내일을 생각하는 교육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가르쳐야 세상이 밝아질 수 있을까.경쟁. 무한경쟁.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으로 세상을 배웠다. 남을 누르고 이겨야만 성공하는 세상. 다툼과 반목이 일상이 되고 끝없는 비교만 넘치는 세상. 그런 끝에 만난 세상은 아름다웠을까. 싸움에서 이긴 자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었을까.펼쳐진 주변의 모습에는 상처만 가득할 뿐,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경쟁’의 의미를 바꾸어야 한다. 경쟁의 진정한 뜻은 남과 다투는 게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게 아닐까. 남을 이겨 상처를 남기는 영광이 아니라 나를 이겨 건져 올리는 보람이 아닐까.궁극의 성공은 나 자신을 이겨내는 데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게으름과 부족함을 스스로 이겨내는 나를 이기는 경쟁이야말로 거친 세상을 이기고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태도가 아닐까.선생님은 학생에게 어떤 사람일까. 끊임없이 격려하고 응원하며 더 나은 무엇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날마다 부추기는 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반대로 실수를 지적하고 점수와 등수를 매기며 부족함을 드러내고 부끄럽게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학생이 오늘 무엇을 해도 ‘최선’을 던졌음을 인정해 주고 그보다 더 잘하도록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학생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당겨다 주는 스승을 만나고 싶다. 배우려고 다가온 아이에게 잘못한 부분만 들추어내며 핀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만나게 한다면, 아이는 그 날 무엇을 배울까. 비난과 부정으로 가득한 인성이 되어 자신과 주변이 어두워지지 않을까.교육이 공동체를 키워야 한다. 일등만 대접받는 세상은 공평할 수가 없다. 잘난 사람만 득을 보는 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다.함께 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고 서로를 보듬는 공동체정신을 길러야 한다. 세상은 거칠고 힘든 다툼의 장소가 아니라 따뜻하고 친절하여 함께 하는 마음이 그득한 곳임을 일깨워야 한다. 한 사람도 놓고 가지 않는 교육을 실천해야 하며 모두 함께 즐거운 교육을 구현해야 한다.남들보다 자신을 이겨 성공에 이르도록 이끌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당겨내도록 쉬지않고 격려하며, 누구도 포기하지 않아 모두 즐거운 보람으로 가득한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어찌 보면 당연했을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여 따뜻한 공동체를 새롭게 세우는 기회를 교육계가 앞당겨야 한다. 나라의 백년을 준비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10-26

글로벌호연지기

장규열 한동대 교수 하루가 멀다하고 큰 뉴스가 터진다. 오늘 뉴스가 어제 뉴스를 덮는다. 내일을 생각하면 어제는 이미 먼 옛날이다. 어제를 돌아보다 오늘을 놓치면 내일 힘들지도 모른다. 전쟁같은 삶 가운데 머뭇거릴 틈이 없다. 쏟아지는 일 가운데 정신없이 살아간다. 디지털과 온라인, 21세기와 4차산업혁명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지칠만도 하겠구만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놈의 이념논쟁.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어 가는데, 우리에게 말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돌아보면 지난 세기내내 세상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그런 시비에 붙들리지 않는다.케케묵은 색깔논쟁이 한반도에만 살아있다. 우리는 왜 그러는 것일까. 바뀐 세상에 어울리는 나은 모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열린 세상에 북한이라고 꽁꽁 닫힌 태도를 언제까지 고집하지 못한다. 바뀐 판세에 바뀐 자세로 임해야 한다.이념에 빠진 정치권이 어처구니가 없지만,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멈춰 선 가닥도 있다. 내일을 준비한다는 교육이 그렇다.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따라는 간다지만 싱싱한 생각을 기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펼쳐진 세상도 가르쳐야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가르쳐야 한다. 오늘을 고민하며 내일을 향하는 비전을 심어주어야 한다. 우리를 돌아보며 나라 밖을 겨냥하는 인성을 길러야 한다. 한반도는 좁다. 우리 안에도 생각거리가 없지 않지만, 여기만 생각하는 좁은 태도는 벗어던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한없이 너른 저 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길러야 한다. 세상과 우주를 견주는 ‘다음세대’를 준비해야 한다.글로벌호연지기(浩然之氣). 작은 마을에서 나라 끝까지 바라보라는 게 호연지기였다면, 한반도 너머 세상을 꿈꾸는 비전이 글로벌호연지기가 아닌가. 21세기에는 이념과 국경을 넘어 세상과 호흡하는 세대를 길러야 한다. 경상북도교육청이 세계교육의 표준이 되겠노라는 깃발을 들어올렸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구체적인 이정표를 기대한다.경상북도가 세상의 구석일 까닭이 이제는 없다. 넘치는 자연자원, 풍성한 이야깃거리와 압도하는 전통가치는 글로벌교육을 겨냥하고도 남는다. 세상이 주목하고 글로벌로 나아가는 교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넷과 온라인은 초연결세상을 열어 세계는 언제 벌써 글로벌빌리지(Global village)로 변하고 있다. 세상을 터득하여 내일을 앞서가는 사람을 경북에서 길러야 한다.‘구습과 구태를 벗고 새로움과 신선함을 경험하려면 경북으로 오라’는 슬로건을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멋진 전통과 싱싱한 초현대가 함께 숨쉬는 지역에서 미래를 꿈꾸는 내일의 인재를 기르는 비전. 경북교육청이 올린 푯대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인 과제를 쏟아낼 것으로 기대한다.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이념에 묻히고 우물에 갇힌 좁다락한 굴레는 벗어야 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더 빠르게 질러가는 교육을 구현해야 한다. 글로벌호연지기로 빛나는 경북교육을 기다린다.

2022-10-19

가을에 거둘 게 없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멋진 시월이 약속이나 한 듯 불현듯 싸늘하다. 추수를 앞둔 들판과 함께 올해의 결실을 생각한다. 무엇을 거두었는가. 연초에 다짐하였던 생각을 얼마나 건져올렸는가. 허비한 지난 시간이 아까와 무엇인가 새롭게 쌓겠다던 우리는 이 한 해 무엇을 하였는가. 온 백성이 고심하며 바꿔낸 정치판은 국민들에게 어떤 세상이 돌아왔는가. 나라와 민족은 앞으로 가고 있는지, 보통 사람들 삶은 나아졌는지 돌아보는 생각이 한가득이다. 가을에 되짚어 보람보다 의문만 쏟아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까.우선 순위가 잘못 설정되지 않았을까. 하루하루의 일상이 힘이 든 판에 뉴스는 전혀 다른 걱정을 전하는 게 아닌지.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 높아서 어려워진 경제수치를 누구라도 적확하게 분석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위기를 자아내는 북쪽 소식은 평화를 기대하는 민심과 얼마나 먼 것인지, 통일은 고사하고 대화와 협상을 이제는 잊어야 하는지.안에서도 밖에서도 자랑스런 나라가 되어야 할 터에, 유엔 인권이사국 선임에 실패한 경우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나라는 무엇으로 존재이유를 증명해야 하는지, 정권은 국민의 표심에 무엇으로 답을 해야 하는지, 국민은 어느 장단에 호흡을 같이 할 것인지.진심이 안 보인다. 문제를 지적하면 진정을 담아 그 문제를 고심해야 한다. 이전에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는 말은 답이 아니다. 같은 문제가 켜켜이 반복되므로 이제는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닌가.국민에게 문제로 발견된 사안은 모든 국민에게 문제가 아닐까. 여와 야가 따로 없고 보수와 진보를 겨룰 일이 아니다. 문제를 바로 보아 함께 지혜를 쏟아부어 해결에 이르는 용기와 강단을 만나고 싶다. 본질과 상관없이 말로 때우려 하거나 거짓으로 들통나는 일이 거푸 발생하면 국민은 금방 알아채 버린다. 진심이 빠지면, 금세 보인다.함께 넘으려는 생각이 없다. 가파른 언덕은 함께 넘어야 한다. 외교와 국방은 특히 그렇다. 국익으로만 똘똘 뭉친 상대국들 앞에 우리 안의 전선이 흩어지면 이길 수가 없다. 바깥에서 적이 닥치면 보수와 진보 가운데 누가 살아남을까. 나뉘어 이길 방법은 처음부터 없다.하나로 모아 송곳처럼 뚫어야 한다. 다른 생각을 모두 쏟아 좋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비난과 반대만으로 해결책은 찾아지지 않는다. 슬기로운 대안을 함께 찾겠다는 태도부터 정돈해야 한다. 날마다 다른 소리만 외치고 있으면 남들과 적들은 얼마나 좋을까. 말싸움에 이겨봤자 나라의 기둥이 흔들리면 어찌할 터인가.가을이 묻는다. 우리는 무엇으로 소중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약속처럼 결실로 다가오는 계절 앞에 우리는 어떤 답을 내어놓을 것인지. 우선순위를 다시 보아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진심을 회복해야 하며, 어려운 언덕을 함께 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 가을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겨레가 되어야 한다.

2022-10-12

국민은 숨이 막히는데

장규열 한동대 교수 ‘나라의 말이 중국과는 달라서 한자만으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여도 제 뜻을 바로 실어 펼치지 못한다. 내가 이를 가엾게 생각하여 새롭게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무두 쉽게 배워 날마다 쓰므로 편하게 하려 함이다.’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하면서 세종은 생각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지구상에 헤아릴 길 없이 많은 언어들 가운데 스스로 문자를 가진 민족이 채 서른도 되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 대개는 영문 알파벳을 빌어 표기한 경우가 많아서 우리 한글은 독특하기가 견줄 데가 없다. 그런 글자를 만들었던 까닭이 글쎄 ‘어린 백성의 불편함’을 알았기 때문이며, 글을 ‘사람마다’ 쉽게 배워 쓰면서 편안하길 바랐던 것이었다니!놀라울 따름이다. 군주로서 더할 나위 없는 ‘백성사랑’이 아니고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의 불편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왕의 진심’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백년도 훌쩍 넘는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궁궐 밖 시민들의 삶을 걱정하는 지도자의 아픈 마음이 거의 보인다. 고루한 신하들의 격렬한 반대를 예상한 그는 한글을 거의 혼자서 만들었다고 한다. 반포하면서 저렇듯 절절하게 백성을 염려하는 왕의 마음을 기록한 것은 속좁은 관료들의 꽉 막힌 심사를 넘으려 했음이 아닐까. 진심으로 백성을 생각하여 왕이 손수 쉬운 글자를 만들었으니 신료들은 그리 알고 다른 말씀을 마시라. 왕과 백성이 하나로 묶이는 경험을 우리는 576년 전에 한 셈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만나는 지도자와 백성의 모습은 어떠한가.정치에서 우리는 진심을 읽을 수 있는가. 그들은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국민을 마음으로 생각하는 정치가 보이는가. 아니면 정략과 술수로 겨우 피하기만 하는 말싸움의 아수라가 아닌가. 그만하면 보일만도 한데, 국민이 만난 어려운 상황과 고단한 일상은 누구도 헤아리지 않는다. 물가가 뛰고 이자가 춤추며 환율이 올라가도 정치판은 오히려 복지부동이 아닌가.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일이 이 판에 무에 그리 급한지 알 길이 없다. 난관을 헤치며 하루하루를 사는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누구도 돕지 않는 처절한 나날을 2022년에 만나고 있다니! 한글날을 맞으며 정치는 세종의 속마음을 다시 한번 읽었으면 한다. 무엇으로 세상을 바꿀 것인지, 누구를 위하여 정치를 하고 있는지. 최소한 당신 자신의 영달을 위함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는가, 아니면 때때로는 뒤로도 흐르는가. 말로만 국민을 주워담는 정치는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한다. 당신들이 아무리 ‘국민’을 떠들어도 국민은 당신의 마음을 이미 읽고 계신다. 공천과 당선에만 관심이 있어 일신의 안위만 생각한다는 걸. 아니라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공감과 배려가 보여야 한다. 오늘 만난 어려움에서 국민의 어깨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져야 한다. 사이다 발언도 이제는 식상하다. 국민은 숨이 막히는데, 정치는 국민을 생각하라.

2022-10-05

사라질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디지털세상이다. 사이버와 온라인,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은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어떤 세계가 펼쳐질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상상과 추측을 해 보지만 그리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사회설문조사에서 10년 내에 사라질 직업으로 번역가, 경리직원, 공장근로자, 비서 등을 꼽으면서, 앞으로도 생존할 직종으로 연예인, 작가, 영화감독, 운동선수, 화가, 조각가 등을 선정했다 한다. 실제로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들 직업군에는 나름 관통하는 유사점이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은 기계가 대신하게 되고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일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측이 아닌가. 산업화의 물결 속에 넘치듯 부족했던 인적요소를 앞으로는 대체로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예견이다.인공지능은 법률, 의료, 회계 등의 전문직에도 도전한다. 과정의 정교화와 예측의 최적화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예측도 빗나가는 셈이다.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수학적으로 모델링이 가능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공지능이 잠식할 터이다. 살아남으려면 상상을 뛰어넘는 변칙과 변화를 담았거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나만의 그 무엇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니, 4차산업혁명의 물살에도 든든하게 생존할 직군으로 ‘문화’와 관련된 일들만 떠오르는 게 아닐까. 하기야, 창의와 상상조차 인공지능의 앨고리즘이 곧 따라올 것이라 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일전도 이미 보지 않았는가.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력과 창의는 넘는 창의가 필요한 셈이다. 그런 상상과 창의는 놀랍게도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나만의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우리만의 이야기, 즉 우리 문화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스토리를 찾아야 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놀이문화는 향수어린 우리만의 옛 기억을 오늘의 좌절과 느낌에 절묘하게 연결하였다. 문화원형이란 그런 게 아닐까. 우리에게만 그리고 내게만 있는 모습과 이야기를 세상이 공감할 스토리로 끌어낼 때 함께 공유하는 성공으로 이어져 간다. 생각해 보면, ‘미나리’도 그랬고 ‘기생충’도 그랬다. 나만 품고 있었을 이야기 줄거리를 남들과 나눌만한 주제와 연결시키는 능력,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닌가.‘디지털’을 극복하는 힘은 놀랍게도 ‘아날로그’에서 나온다. 일과 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들고 발전적으로 관리해 가는 일이 인공지능에게 가능할까? 기계적이며 디지털적인 분석과 예측, 작업과 진행이 가능하다 해도 ‘관계’를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기계가 할 수가 없다. 기계가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4차산업혁명시대에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디지털환경에도 잘 적응하면서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인간적 관계형성능력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수준의 창의와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 전통적인 산업직군들이 인공지능의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문화’ 관련 영역들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문화로 강한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사라지는 것들과 살아남을 것들을 잘 구분해야 할 터이다. 문화가 강해야 모두가 산다.

2022-09-28

모방은 가라, 창의가 온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선언하였다. “모든 유행은 틀려먹었다”남들을 따라하는 일이 처음에는 설사 그럴듯해 보여도, 나만의 무엇을 좀처럼 가지지 못하게 함으로 틀려먹었다는 의미. 남의 모습을 따라만 하게되어, 과감하게 도전하며 새롭게 만들어내는 열정을 죽여버린다. 식어버린 감각은 끝내 무디어지고 나만의 세계를 드러낼 방법을 잃게 만든다. 유행을 좇으며 흉내만 내는 일은 예술가에게는 금기인 셈이다. 그 뿐 아니다. 일본 소니(SONY)의 공동창업자 이부카마사루(井深大)는 ‘비즈니스나 과학기술의 세계에서 진짜 성공에 이르려면, 남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였다.‘효자손’을 경계한다. 관광지마다 똑같은 효자손이 어르신의 등을 시원하게는 하겠지만, 지역의 독특한 관광효과를 드러내는 데에는 빵점이다. 도시마다 도심재생을 한다면서 서로서로 닮은 모습의 시가지를 끝없이 반복하며 조성하는 모습은 애처롭다. 상상과 창의의 부재라기보다 추격과 모방에 붙들리다 보니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 지역에는 그곳에만 있는 그 무엇이 틀림없이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우선 내가 가진 이야기를 찾아야 하고 이를 오늘의 모양으로 다시 빚어야 한다. 동네마다 마을마다 이야깃거리는 한가득이다. 문화와 예술이 똑같은 이야기로 수렴한다면 웃음거리가 아닐까. 우리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하고 다음세대와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오늘의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미국 가수 리 안 워맥(Lee Anne Womack)은 “세상을 정말로 놀랍게 하고 싶다면, 무엇인가 다른 시도를 반드시 해야하고 실패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하였다.다른 곳에는 없는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을 반복하면 안 된다. 여기서만 만날 수 있어 이곳으로 사람을 끌어올 꿈을 가져야 한다. 내게는 있으나 남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사람들이 모두 남들이 되어간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경고는 섬칫하다.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찾고 살피며 그들의 삶을 모방하고 추격만 하느라 나의 모습은 잃어간다는 게 아닌가. 끝내 나 자신이 아니라 남이 되어가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아프게 꼬집는다.도시마다 지역마다 특색있고 풍성하게 다른 모습들을 만나고 싶다. 포항의 색깔은 무엇일까. 지역의 이야기는 어떤 스토리라인을 가져야 하는지. 시가지의 저녁 풍경은 어떤 빛을 발해야 할까.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향기가 느껴지는지. 끊임없이 찾고 물으며 살펴야 한다. 독특하고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야 하고,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깔이 피어올라야 한다. 포항만의 삶이 있다. 여기에서만 발견하는 기쁨과 슬픔이 있고 우리만 느꼈던 즐거움과 상처가 있다.문화와 예술이 관광자원이 되고 지역이 도시브랜딩으로 성공하려면 우리만의 상상과 창의가 살아나야 한다. 우리만의 향기와 그림을 피우고 그려야 한다. 구경꾼을 부르고 사람이 모이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2022-09-21

재주보다 집요함으로 승부한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한국의 골목길이 가장 미국적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1949년 미국 텔레비전아카데미가 시작한 에미상(Emmy Awards)은 그 성격이 조금씩 바뀌어오긴 했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최근에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OTT 상영물까지 담게 되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그런 시점적 트렌드를 잘 타기는 했어도, 누가 보아도 스토리에 담긴 향수와 긴장감, 상상력과 도발성으로 장식한 콘텐츠가 강렬했다. 에미상의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비롯하여 무려 6개 부문을 획득하였다. ‘기생충’, ‘미나리’와 함께 칸영화제,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거치며 인정을 받아 K-콘텐츠는 이제 글로벌 기준이 되었다. 이런 성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실력. 어려움과 힘든 시간을 거치며 지치지 않고 쌓아온 내공의 힘이 아닐까. 스크린쿼터제를 썼어야만 했을 정도로 한국영화는 가시밭길을 거쳐왔다. 깊은 수렁을 지나면서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집요함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인고의 시간이었다. 탁월한 재주가 물론 마지막 빛을 발하지만, 바닥에 도도히 흐르는 집념이 이룬 결과가 아닐까.감독은 수상소감에서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역사를 만들었다’고 고백하였다. 진심이 아니었을까. 한국 드라마가 가장 미국적인 상을 받았다는데, 실제로 그 옛적 동네 골목길 이야기들로 글로벌시장을 승부한 셈이 아닌가. 우리에게만 있는 스토리베이스가 세계 천장을 뚫은 셈이다. 문화원형의 또다른 승리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또 무엇이 있을까 돌아보아야 한다.전 미국을 통틀어 텔레비전 수상기가 5만도 채 안 되던 시절에 에미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겨우 걸음마를 떼었을 텔레비전이라는 뉴미디어의 오늘같은 성공을 상상이나 했을까. 씨앗도 그런 씨앗이 없었을 터에, 그 작은 성공의 가능성에 물을 주고 거름을 댄 사람들이 있은 다음에 74년이 흘러 오늘이 되었다.미국 텔레비전이라고 좋기만 했을까. 수다한 부침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을 미국인들의 집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어떤 노력도 쉽게 펼쳐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영화를 한다는 생각도 한때는 얼마나 허무맹랑했을까. 문화와 예술은 단번에 피어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과 창의가 고단하고 집요한 노력을 만나 지치지 않고 길고 긴 시간과 싸움을 한끝에 겨우 조금씩 솟아오른다. 떼는 발걸음마다 무거웠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켜보는 눈길은 또 얼마나 아슬아슬했을까.잘 만들어야 하지만, 또 잘 알려야 한다. 아무리 멋진 스토리도 누군가 알아채지 못하면 보러올 재간이 없다. 기획과 제작, 홍보와 실행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인 전략이 구사되어야 작은 성공이라도 거둘 수 있다. 고집과 집념이 상상과 창의를 만나도록 이끌어야 한다. 지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문화와 예술이 일어나면 사람이 모인다. 서울거리에는 외국인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가능성의 싹을 본 김에 문화로 승부했으면 한다. 정치보다 나아도 훨씬 낫지 않은가.

2022-09-14

태풍유감 명절유감

장규열 한동대 교수 지나갔지만 너무 아프다. 밤새 소동이었지만 금세 맑은 하늘이다. 밖은 거짓말처럼 멀쩡한데, 병든 포항이 되고 말았다. 자연 앞에 약한 게 인간이지만, 이렇듯 깜쪽같이 할퀴고 내뺀 힌남노는 해도 너무했다. 하필 하늘의 비바람이 바다의 만조기와 겹쳐 이 동네만 아수라장이었다. 돌아가신 님들의 명복을 빌고 다친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 밤을 꼬박 새운 북새통에서 깨어나 마주친 현실에 지역은 한동안 몸살을 앓을 터이다. 아프지만 다시 일어서야 한다. 추석명절이 코 앞이라 더욱 힘들다. 명절 식탁에 올릴 이야기를 만드느라 정치권이 별 소릴 다 하지만, 지역의 추석 밥상은 태풍이 먹어치울 판이다.지난 놈을 어쩌랴. 사람이라면 쫓아가 붙들고 하소연이라도 하겠지만, 자연이 부린 조화에 어쩔 도리가 없다. 회복과 복구, 위로와 공감은 온통 사람의 몫이다. 태풍이 남긴 뒷 소식은 온통 포항소식 뿐이니, 나라가 지역을 또 얼마나 챙길지 두고 보아야 한다. 지역에서 먼저 일어서는 용기를 찾아야 한다. 사람의 사정을 뒤집어 놓고 돌아서면 나 몰라라 하는 게 정말 태풍 뿐일까. 온갖 약속으로 표심을 흔들어 자리를 차지하고는 당선 후엔 나 몰라라라 하는 게 닮지 않았을까. 힘없는 사람들을 힘들게만 하고, 오늘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있는 당신은 반성해야 한다. 자연에는 끝끝내 어찌할 바가 없겠지만, 당신이 쌓았을 거짓과 기만은 속았던 이들이 반드시 갚아줄 터이다. 거센 비바람은 높은 하늘로 표변하지만, 당신 탓에 허물어진 가슴들은 내내 상처투성이가 아닐까.태풍이 저지르고 도망간 걸 보고, 추석 앞에 우리는 마음을 다듬어야 한다. 반드시 지킬 약속만 할 것. 아쉬운 무엇에 건 약속만 남긴 채 돌아서서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믿은 건 당신의 약속이었지 다음에 벌어질 사정이 아니었지 않은가. 정치에서 흔하게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보통사람도 이따금씩 약속을 쉽게 여기는 실수를 한다. 힘들었을 밤새 했던 이야기가 새파란 하늘 아래서 달라지면 어쩌란 말인가. 약속은 언제나 무거워야 한다.한가위에 가신 어른들을 생각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듯, 태풍 뒤에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 배려와 공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피해와 상처가 오래 남지 않으려면, 공동체의 배려깊은 위로와 회복을 향한 공감어린 협력이 있어야 한다. 포항시는 물론 나라도 힘껏 도와야 한다. 재난지역 선포는 당장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올 추석이 명절 다우려면, 태풍이 남긴 상처를 함께 잘 보듬어야 한다.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어려움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지진이나 태풍이나 낯선 단어들에 포항이 익숙해져 버렸다. 난관을 딛고라도 새롭게 일어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태풍 다음날 푸른 하늘이 야속하긴 했지만, 기대와 희망의 빛줄기를 보여준 건 아닐까. 태풍마저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역을 기대한다. 태풍, 갔지만 밉다. 명절, 하필 지금이냐.

2022-09-07

나는 나를 모른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아주 짧은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나를 거의 보지 않는다. 내게 이름이 있지만, 그건 내가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남이 나를 부를 때 사용할 뿐이다.다 아는 것 같아도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한다. 남들이 보기엔 뻔해 보이는 약점도 글쎄 나는 잘 모르기 일쑤다. 언론 지면을 장식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어쩌면 저렇게 부끄러운 짓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을까 싶지만 글쎄 그는 그런 줄 모르고 있기 십상이다. 진짜로 모른다.나는 나를 그만큼 모른다. 나라가 어지러운 것도 그럴만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 그런 사정을 까맣게 모르는 탓이 아닐까. 잘하는 줄 알고 하는 일이 아 글쎄 온 국민들에게는 걱정을 끼치는 줄 아마도 모르는 게다.물건을 만드는 사람 다르고 파는 사람이 달라야 그 물건이 잘 팔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물건을 만든 사람은 공을 들인만큼 애착이 있어, 그냥 좋은 줄만 알아서 그냥 내 물건 자랑만 한다는 게다. 소비자가 어떨 때 그런 물건이 필요한지 사실은 도무지 모른다는 게다.애플(Apple) 컴퓨터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어 낸 사람은 물론 스티브잡스(Steve Jobs)다. 하지만, 애플이 처음부터 잘 팔렸을까? 아니, 처음엔 시장점유율이 바닥을 기었다. 잡스가 죽기 전에 남긴 회고에 따르면, ‘물건은 내가 만들었지만 팔기는 저 사람이 팔았다’는 사람이 있다.광고전문인 리클로우(Lee Clow).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잡스를 도와 애플이 만든 매킨토시(McIntosh) 컴퓨터가 공전의 성공에 이르도록 만들어낸 사람. 그는 당시 컴맹에 가까운 문외한이었다고 한다.물건을 만들었지만 ‘물건의 까닭’을 당신은 아직 모른다. 사람들이 당신의 물건을 사야 하는 그 느낌을 글쎄 모른다. 리클로우가 컴퓨터의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다르게 생각합시다’라고 말을 걸었을 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안테나를 잠에서 깨웠다. 애플 컴퓨터가 빌게이츠(Bill Gates)에게 의미있는 도전장을 던진 건 그래서 스티브잡스가 아니라 리클로우인 셈이다.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그래서 물건을 팔지 않아야 하는 게 공식처럼 되어버렸다. 내가 나를 모르듯이, 내 물건도 내가 모른다는 ‘홍보의 겸손법칙’을 배운 게 아닐까. 우리 동네, 잘 아는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 사람이 서울을 가장 잘 모른다’는 통계가 있었다고 한다.그랬던 잡스가 남긴 한 마디가 있다. ‘인생은 짧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짧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내가 가장 잘할 일을 찾기도 만만치 않지만, 남이 나보다 잘할 일을 붙들고 있는 미련함은 떨쳐야 한다. 잡스가 컴퓨터 만들기를 넘어 팔기에도 매달렸다면, 어쩌면 우리는 아이폰을 구경도 못했을지 모를 일이다.나는 나를 모른다. 포항은 포항을 모르고, 경북은 경북을 모른다. 누구라도 밖에서 우리를 찾아올 까닭을 발견할 사람은 우리 안에 없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한다. 그게 누굴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올까?

2022-08-31

문화가 살면 사람이 모인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우리나라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구위기에 직면해 있다.’어느 국회의원이 최근 한 정책토론회에서 털어놓은 고백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사회적인 문제들이 속속 나타난다. 신생아출산은 반세기만에 4분의 1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20년쯤 후에 나타날 경제, 사회, 문화적 충격을 생각하면 가히 종합적이지 않을까 싶다. 인구문제는 나라의 문제이면서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구는 얼핏 머릿수자 문제처럼 보이지만, 보다 넓은 영역의 생활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내가 살기힘든 곳에 아이들까지 낳아 고생시킬 부모는 없다. 살기좋은 환경이 살아나려면 우리는 무엇부터 고민해야 할까.지역 소재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수도권으로 달려갈 꿈을 꾼다. 수년을 머물며 공부하고 생활했던 지역에는 왜 관심이 없을까.청년들이 말하는 두 가지 중요한 까닭은 일자리와 문화다. 경제력을 이어갈 일터가 부족하고 재미있고 신나게 즐길 문화공간이 없다는 것. 돈도 필요하지만 놀거리가 필수라는 것. 살기좋은 도시를 발표하는 해외자료들을 보아도 경제적 여건 못지않게 문화적 배경이 우선순위 앞자리를 차지한다. 지역과 마을에 풋풋하게 살아있는 이야기와 자랑거리. 다른 동네 사람들을 마력처럼 끌어들이는 흥미와 매력. 어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역만의 독특한 그 무엇. 평범해 보이는 소재라도 스토리텔링의 힘이 번득이는 홍보와 마케팅. 지역이 가진 문화적 역량 덕에 살아나는 지역민의 자긍심. 솟아오른 긍지는 지역을 자랑스럽게 만들어내지 않을까.문화는 ‘옛날이야기’만이 아니다. 발굴하여 나누지만, 오늘의 감각에 맞추어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 문화콘텐츠를 효과적으로 ‘현재화’할 때, 어른들뿐 아니라 자라나는 다음세대도 함께 누리게 될 터이다. 담긴 의미를 그대로 두고도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재미있고 알기 쉽게 새롭게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이즈음에 세계가 우리와 함께 호흡하도록 ‘글로벌화’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지역에 이미 있을 풍성하고 소중한 스토리 소재들을 다시 돌아보며 오늘의 문화로 새롭게 창조하는 노력이 있었으면 한다. ‘옛것’으로서 문화를 넘어 오늘의 ‘일상’을 풍성하고 즐거우며 재미있게 만드는 문화의 텃밭이 되었으면 한다.문화가 살아나 모두의 일상이 되면 높아가는 지역의 자긍심과 함께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까. 지역의 매력에 끌려 찾아올 관광객의 발걸음과 함께 일어날 경제적 융성은 지역의 안정적인 인구정책과 관리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지역소멸을 두려워하기 전에 문화와 스토리의 힘에 승부를 걸었으면 한다. 우리만의 이야기를 살펴 발굴하고 오늘의 느낌에 맞추어 새롭게 창조하여 문화와 예술이 넘실대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세상에서 지역의 문화적 강점은 지리적 장벽을 뛰어넘어 글로벌하게 번져갈 터이다. 문화로 강한 지역을 만들어보자. 재미있는 곳에 구경꾼이 모이듯, 문화가 일면 사람이 온다.

2022-08-24

세상은 대한민국에서 답을 찾는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서울, 그것도 강남이 물난리를 겪었다. 하루 반나절 쏟아부은 빗줄기에 모든 게 속절없이 떠내려갔다. 자연의 힘이 센 줄을 모르지 않았지만, 이렇듯 맥없이 당하는 처지는 어처구니가 없다.홍수뿐일까. 수확기의 가뭄, 한겨울의 한파, 때를 가리지 않는 지진. 우뚝 선 빌딩 숲과 온갖 화려한 문명의 산물들을 자랑하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부리는 심술 앞에 언제까지 이렇듯 힘없이 스러지기만 하는지. 대한민국 서울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산불과 지진, 토네이도와 폭염, 한파와 전염병에 도무지 무기력하기는 매한가지다. 전쟁과 폭력 등 인간의 악행이 초래하는 어려움보다 자연이 던지는 위협 앞에 인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빌게이츠(Bill Gates)가 우리 국회에서 연설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습격을 수년전에 예견하였다는 그는, ‘다른 나라들이 미래를 바꾸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했다.갈등과 다툼으로 뒤범벅이 된 이 나라에 와서 저런 말을 한 사람은 그뿐이 아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1929년에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 부르며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고 했다. 타고르나 게이츠가 생각없이 남의 나라를 치켜세웠을까. 상대를 높이기 위한 예의가 작용했겠지만, 언론에 기고하고 국회연설을 하며 던진 생각에는 진심이 실었을 터이다.오늘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대한민국은 다른나라들의 기다림에 답해야 하고 동방의 등불 역할을 해내야 한다. 해묵은 악다구니 속에서도 젊은 정치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찾는 몸부림이 있다. 잘못 짚는 국가리더십을 팽팽하게 견제하는 목소리도 있다. 도전과 저항이 느껴지는 논란과 갈등도 엿보인다.국가공동체의 역동성은 한 방향으로만 모이는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아니다. 나라와 국민이 가진 수다한 문제들 앞에 생각과 의견을 민주적으로 모으는 겸허함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의 역동성을 적절하고 조화롭게 버무리고 수렴하여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게 국가의 역할이 아닌가. 국민의 손으로 선출해 맡긴 정부의 역할은 한반도를 너머 세계가 주시한다. 기대에 못 미치는 대통령을 평화적으로 바꾸어 본 국민의 눈길도 날카롭다.새 정부가 잘했으면 좋겠다. 나라와 국민에게 가능성과 역량이 있음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열어갔으면 한다.지난 수십년간 국민이 더러 이용당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만큼 겪었으면 보수와 진보 따위로 헷갈리지도 않는다. 낡은 진영논리로 국민을 현혹하지 말아야 한다. 보다 분명한 변화와 혁신을 위하여 의미있게 바꾸어가는 대한민국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허무맹랑한 말싸움터를 이제는 건강한 토론의 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세상은,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대한민국에서 찾는다.

2022-08-17

완벽한 평소에 위기를 상상해야

장규열 한동대 교수 물난리가 났다. 여름 가뭄을 탓하며 기다리던 비였는데, 하루저녁 쏟아부은 물 폭탄은 문명이 쌓아 올린 도시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인간의 똑똑함이 자연의 손아귀에 다시 한번 장난감이 되어버렸다.신참 교수로 부임했던 미국대학에서 열정과 기량을 펼치며 열심히 일하리라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른 나라 출신 교수가 끼어들어 무엇 하나 할 일이 없어 보였다. 한 선배 교수와 마주 앉아 낙담한 내용을 고백했더니 돌아온 충고는 나름 충격이었다. ‘그래도 더 좋게 바꿀 일이 분명히 있을 게야(You can always make it better)’ 할 일은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면 생각하면 없다.위기를 지나며 생각을 한다. 인간은 보기보다 게을러서 어려움을 꼭 겪어야만 무엇이라도 집중해서 궁리하고 의미있게 바꾸곤 한다. 치수관리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했고, 더욱 많은 예산을 들여 대비했어야 하는 등 허점들이 이제는 보인다. 전문가들의 지적질에 이제 귀가 열리고 보통 사람들의 질곡이 드디어 조금씩 보인다. 자연이 안겨주는 어려움이긴 해도 사람이 준비하는 데에 따라 얼마든지 고난의 강도와 밀도를 조절할 수 있다. 어려움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려워도, 경험과 과학의 지혜를 모아 준비하고 훈련하여 다가올 고통을 최소한으로 제어해야 한다. 정작 위기에 봉착하여 피해와 복구에 임하려면 일의 순서와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아 실패와 패착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여 평화로울 때 오히려 위기를 걱정하며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2017년 가을, 평온했던 포항에서 지진을 만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지진의 충격 앞에 교수와 학생들은 미리 알고나 있었던 듯 모두 건물을 신속히 벗어나 중앙운동장으로 모여들었고 흥분과 불안 가운데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자칫 공포와 전율로 아수라장이었을 지진의 충격을 무사히 겪어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였을 평소에 위기를 생각하며 준비한 덕이 아니면 무엇이었을까.휴가와 여행의 즐거움으로 들뜬 승객들에게 비행기 탑승 후 첫 경험은 객실승무원의 ‘위기대피요령안내’가 아닌가. 완벽해야 할 그 순간에 왠지 어색한 상상마저 하게 하지만, 아무도 승무원을 탓하지 않는다. 위기는 평소에 지켜야 한다. 위기를 닥치면, 언제나 늦다.위기가 가져올 위험을 잘 견뎌야 하지만, 위기를 지나면서 건져 올릴 기회는 혹 없을까. 그렇게 많은 물 때문에 모두 힘들었지만, 그 물을 붙들어 활용할 방법은 혹 없었을까. 별일 없어 보이는 완벽한 평소에 위기를 상상하고 해결책을 구상하며 남다른 실력도 길러야 한다.위기를 상상하는 준비태세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군인과 공무원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완벽한 평소에 극심한 위기를 상상하며 준비하는 태도를 지닐 때, 사회와 공동체는 상생과 협력, 공감과 배려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젖어들지 않을까. 다가올 어려움의 언덕을 함께 넘을 용기와 기백으로 나라는 든든해지지 않을까. 완벽한 평소에 위기를 만나야 한다.

2022-08-10

초등교육과 박사학위가 이토록 가벼웠을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 교육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여부를 놓고 시름이니, 박사학위 표절부정 시비로 나라가 시끄럽다. 백년대계(百年大計)라면서 정작 우리는 교육을 신중하게 다루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교육의 시작점과 끝점이 한꺼번에 걱정거리가 되는 일은 나라의 교육이 처한 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치원과 박사학위. 언제 공교육을 시작할지는 어린이들의 평균적 발달상태를 세심하게 살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학문적 성숙상태를 철저하게 검증하여 수여하는 박사학위는 지난한 수학과정의 종착점으로서 진중한 무게를 지녀야 한다.초등교육의 근간에 손을 대면서 장관과 대통령이 섣불리 결정하여 진행할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교육정책의 변화는 숙고와 토론, 조사와 검증을 거쳐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 교육이 경제라는 식의 도구적 접근도 위험하지만 교육의 진행과정을 삽시간에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간주했던 장관과 대통령의 인식에 실망을 금하기 어렵다. 철회수순을 밟는 듯하여 다행이지만, 앞으로도 교육을 다루는 태도에 신중함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안의 심각함에 반하여 시도교육청들이 비교적 조용하였던 일도 우리 교육의 자리를 걱정하게 만든다. 교육계가 교육을 바라보는 태도도 돌아보아야 할 터이다.대학이, 표절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드러난 사안에 대하여 ‘문제없다’고 발표하였다. 특정 대학의 부끄러움을 넘어 나라의 고등교육이 백척간두에 섰다. 표절과 오역이 넘쳐흐르는 논문에 그같은 판정을 하여 박사학위를 인정하였다. 해당 논문을 처음 심사하였던 교수들은 물론 다시 검증하였다는 인사들의 책임이 크다. 학문의 완성도를 확인해야 하는 박사학위 수여과정이 도둑질을 허용한 꼴이 아닌가. 해당대학 공동체에서 재검증을 요청한다고는 하지만, 교육계와 대학 일반이 이에 비교적 조용한 까닭은 무엇인가. 대학의 위신과 학문의 신성함은 정권의 향배나 의중과는 상관이 없어야 한다.오늘 교육이 위태로우면 내일 나라는 불안하다. 초등교육과 고등교육에서 함께 문제가 붉어진 오늘, 교육에 관하여 우리는 부끄러운 고백과 함께 특단의 각성에 이르러야 한다.어린이들의 교육을 가벼이 보았음을 고백하여야 하며 박사학위도 무겁게 여기지 않았음을 고백하여야 한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생계의 수단쯤으로 여겨 그리 신중하지 않았음을 털어놓아야 한다. 교육을 맡지않은 이들이 교육을 가볍게 대하여도, 미진하게 반응하여 교육이 교육답지 못한 자리까지 밀려나도록 방치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초등교육은 소홀히 대하고 박사학위는 돈으로 주고받는 우리 교육의 민낯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어린이 교육을 무겁게 인식하고 박사학위의 진중함을 회복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일이며 학문의 위신이 걸린 일이다. 유치원에서 박사학위까지 교육의 모든 통로가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새겨야 한다. 교사와 학교, 교육청과 교육계는 교육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교육이 스러진 곳에 싱싱한 내일은 없다.

2022-08-03

학교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나

장규열한동대 교수 대학 캠퍼스에서 저질러진 성폭행에 이은 안타까운 죽음이 언론지면을 뒤흔든다. 우발적인 범행이었는지 아니면 계획된 살인이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등교육의 현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여교사가 남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성적조작 등 정상적인 학교업무 방해까지 의심된다고 한다. 교육의 현장이 어디까지 무너져야 하는지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다. 사람을 가르치고 길러야 하는 교정에서 도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 대학도 고등학교도 교육기관으로서 일정 부분 책임감을 느껴야 할 터이며 유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와 경계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나라의 앞날을 생각할 때, ‘교육’은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를 차지해야 할까.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주창한 하버드대 조지프나이(Joseph Nye) 교수는 ‘21세기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근간으로 하는 하드파워(hard power)가 아니라, 매력을 통한 자발적 동의에 의해 얻어지는 능력이 중요해 질 것’으로 예견하였다. 즉, 부국강병을 앞세우던 경성(硬性)국가의 시대로부터 문화를 토대로 한 연성(軟性)국가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문화는 교육, 학문, 예술, 과학과 기술 등 인간의 이성 및 감성을 토대로 한 창의적 노력과 관련된 모든 분야라고 하였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되어 소프트파워가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나라의 앞날을 준비하고 미래비전을 세워가는 일에도 힘의 논리보다는 문화와 교육의 역할이 크게 주목되는 바이다.교육의 현장을 어찌할 것인가. 지난 정부도 교육에 그리 높은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더니, 새 정부에는 교육을 떠올릴 겨를조차 없어 보인다. 발등에 떨어진 경제적 난관과 정치력 조율에 매달린 나머지, 긴 미래를 두고 나라의 앞날을 조망할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찾을 길이 없다.교육의 현장에서 목격되는 부적절한 사고와 사건들은 우리 교육이 나라의 리더십에게 얼마나 심각하게 도외시되고 있는지 우회적으로 그러나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런 경고음을 치명적으로 인식하고 치밀하게 대응하여 교육이 지켜야 할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교육을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변화하는 세상이 뒤틀린 가치를 끊임없이 제시해도, 교육이 제자리를 지키며 바른 기준을 꾸준히 가르친다면 나라와 사회는 균형을 잡고 나아갈 바를 찾아낼 터이다.교육현장의 무너진 모습에 교육을 맡은 이들이 특별한 각성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소프트파워의 맨 앞자리에 선 교육은 학교만 하는 게 아니다. ‘한 아이를 기르는 일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는 아프리카 속담은, 교육의 책임이 어느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았음을 웅변한다.무너진 성도덕과 비뚤어진 성인지감수성은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발현의 장소가 ‘학교’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교육이 스러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2022-07-27

반도체와 반교육

장규열 한동대 교수 경제가 몸살이다. 대통령의 고백처럼 ‘세계가 힘든 터에 뾰족한 방법이 없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를 헤쳐오면서 풀렸던 돈들이 인플레이션을 추동하고 자칫 빠져나갈 달러를 방어하려면 금리의 추가상향조정도 이미 보인다. 물가는 치솟는데 노동문제까지 겹치니 누가 해도 어려울 판이다.국민도 안다. 우리만 죽을 쑨다면야 똑똑한 국민이 가만히 있었겠나. 온 세상이 힘든 판이니 정부라도 지혜를 모아 노력해 달라는 게 아닌가.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데 주무장관마저 공석이 아닌가. 정책의 이름이야 어떻게 부르든 국민은 모른다. 하루가 멀다하고 급격히 올라가는 감염추세를 꺽어야 하지 않겠나. 국민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일상을 이어가도록 지켜주시라.경제가 힘든 가운데 한 가닥 힌트가 보인다. 반도체. 세계증시의 폭락기도 가운데에도 대만의 반도체기업, TSMC가 사상초유의 이익을 기록하며 초강세를 보인다. 시장트렌드와 수요추세로 보아 반도체시장의 장기적 성장과 발전은 거의 분명하다. 사물인터넷과 자동차 등 관련업계 수요와 4차산업혁명의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 더욱 급격한 상승세가 예견된다고 한다.이에 우리 관련업계는 물론 정부의 정책기조도 반도체산업에 초점을 맞추는 중이다. 정부가 최근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2027년까지 반도체 관련 대학정원을 5천700명 늘리기로 했다. 2031년까지 관련 인재양성 규모를 4만5천명에 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성장 가능성이 확인된 분야에 집중하여 투자하겠다는 생각에는 같은 마음이다.교육이 이뤄야 할 바를 생각하면 한 가닥 걱정도 있다. ‘교육이 바로 경제다’라는 생각. ‘돈이 안 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만 배워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배우는 아이들을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정책이 건강할 수 있을까. 그렇게 인식되며 자라나는 아이들은 혹 세상을 돈으로만 바라보지 않을까.귀하고 소중한 가치들을 풍성하게 가르쳐 험하고 거친 세상에도 넉넉하고 여유있는 인성으로 길러야 하는 게 아닌가. 어른들의 기준과 욕심으로만 아이들을 몰아간 끝에 각박하고 메마른 사람들만 기르게 된다면 어찌 되는가. 대학정책은 가르치는 학문분야들의 영역 간 균형과 상생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관련 분야에만 투자를 몰아세우는 방식도 아슬아슬하다. 견제와 균형은 교육에도 필요하다.반도체로 가다가 반교육이 될까 두렵다. 반도체를 일으키려다가 절반만 가르치거나 아예 교육에 반하는 결과를 낳으면 어찌하겠나. 교육은 사람을 길러야 한다. 교육은 인적자원을 기르는 일이 아니며, 사람은 돈 만드는 기계가 아니다. 교육이 길러낸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며 주변을 밝히고 이웃을 섬기도록 이끌어야 한다.재주와 욕심으로만 그득한 인성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차고도 넘친다. 이해와 관심, 공감과 배려와 함께 쌓아올린 실천력으로 승부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07-20

교육은 어디로 가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세상이 어지럽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와 끝없이 힘만 드는 경제. 약속을 저버리는 정치를 어떻게 믿으며 나아지지 않는 경제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어른도 믿을 수 없는 게 정치라면 다음세대에게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게 경제라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나.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과 차곡차곡 모으는 꾸준함이 민생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공약을 파기한 정치인들이 진정어린 사과나 진솔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경제현상이라고 해도 오르는 물가와 어지러운 집값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어지럽힌다.다음세대를 기르는 우리의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세상모습 그대로 거짓말과 혼돈을 주입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바르고 성실하며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는 학교는 날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교실에서 이야기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매일 만나는 선생님들은 오늘도 힘들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일하지 않는 어른들을 아이들은 눈치채지 않았을까. 교육은 학교만 하는 게 아니다. 집과 동네에서 만나고 스치며 세상을 배운다. 미디어와 언론은 아이들에게도 하염없이 열려있다. 숨길 수도 없고 감춰지지도 않는다. 세상의 부끄러움과 세상의 어두운 구석은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노출되어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혀 딴판이라면, 그런 교육을 우리는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는 것일까.교육적 견지에서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한다. 사회적 가치가 바로 서지 않고는 정상적 교육이 불가능하다. 선동과 기만이 그득한 세상에서 성실과 정직을 가르칠 방법이 없다. 혼돈과 격동만 가득한 일상에서 안정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꿈과 비전이 야심과 욕심으로 변질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용기와 상상력이 술수와 기만으로 해석되는 가르침은 교육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게 교육이지만, 고르지 못한 텃밭에 온전한 교육이 설 자리는 없다. 세상을 바꾸는 게 교육이지만 교육을 잘못 이해하는 세상도 문제가 아닐까. 사람을 도구화하는 교육은 부적절하다. 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야 한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키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이끌어야 한다.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눈속임이 가득한 세상에 진정어린 정직함을 길러내야 한다. 서로서로 흉내나 내는 세파에 든든한 상상력을 전해주어야 한다. 다음세대의 시선이 넓은 세상을 향하도록 길러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우리는 좁은 우물에 갇히지는 않았을까. 세상을 등진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는 교육이 되어야 하고, 무너진 세상을 바로잡는 교육으로 일어서야 한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던지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와 어지러운 세상에는 교육이 희망을 던져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세상이 선다.

2022-07-13

문화로 도시를 살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지역의 인구문제가 심각하다. 저출산고령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동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학령인구가 격감하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늘어난다. 지역에서 젊은이들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기만 하다. 대학들이 있어 청년들이 지역에 있기는 해도, 거의 모두 졸업과 함께 떠날 채비를 한다. 사회진출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지역을 떠나는 까닭을 물으면, ‘지역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거나 ‘지역에 문화기반이 부실하여 지역에 머물 재미가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들이 장래를 걸만한 비전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상을 이어갈 정주여건이 부실한 터이다. 인구문제는 사람 머릿수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이들의 마음을 묶어낼 매력을 만들어야 한다.문화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여러 생각이 가능하겠지만, 문화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 전통문화를 찾아내어 아름답게 보전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우리가 발딛고 사는 곳에 어떤 문화적 매력을 심을 것인지 생각을 모아야 한다. 문화는 독특하고 흥미로우며 이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지역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한국문화는 한국에만 있듯이, 포항문화는 포항의 정체성이어야 한다. 지역의 정체성인 문화가 외지로부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찾아와 살고싶게 만들어야 한다. 정주여건과 연계한 문화인식이 필요한 까닭이다. 다른 지역을 흉내내어서도 안 되고 다른 지역이 따라할 수도 없어야 한다. 독특한 정체성을 확보한 지역문화는 도시브랜딩의 기초가 된다.차별적이며 흥미진진한 지역문화를 일으키면, 우리만의 지역문화를 홍보와 마케팅에 활용하는 도시브랜딩에 적용하게 되고 사람을 당기고 청년을 머물게 하는 인구정책에 기여할 수 있다. 늘어나는 지역의 인구는 다시 다양한 문화적 저변을 발굴하고 창출하게 하고 지역의 문화적 지평을 넓히게 하여, 선순환적 문화정책과 도시정책이 가능해질 터이다. 청년들에게 지역을 왜 떠나느냐고 따져 물을 게 아니라, 지역이 먼저 전향적으로 풍요하고 재미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외치지 않아도 찾아오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고 붙들지 않아도 떠나지 않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문화가 ‘정주여건’의 필수요소임을 명심해야 하며, 행복과 기쁨은 일상에서 만나는 문화의 풍성함과 흥미로움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산업화의 결실이 사람을 당기는 외형적 유인이었다면, 문화적 풍요는 사람을 머물게 하는 매력의 열쇠인 셈이다. 문화도시로 선정되었음에 만족할 일이 아니며, 문화가 구체적으로 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심해야 한다.오래된 고전이 물론 훌륭한 문화자산이지만, 오늘 일상에서 만들고 경험하는 재미와 향기는 우리 도시만의 문화적 매력과 긍지가 된다. 산업화로 여기까지 왔다면, 문화로 새 날개를 달아야 한다. 나라와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브랜딩을 문화를 테마로 시도해야 한다. 글로벌시티로 다시 태어나는 포항이 되어야 한다. 문화를 살리면 도시가 깨어난다.

2022-07-06

다르고 새롭게, 만들어 알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시간보다 빠르게 바뀌는 지역이 있다. 포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나라의 변화 맨 앞에 서서 바뀌는 세월을 주도하였다. 산업화의 기치를 포스코가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지역의 발전과 도시의 성장을 경험하였다.4차산업혁명의 문 앞에 섰지만, 경기의 침체와 경제적 난관을 함께 겪으며 우리는 모두 지역의 미래에 걱정이 앞선다. 디지털혁신을 도시가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그리고 목전의 어려움을 어찌 헤쳐갈 것인지 우려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 젊은이들이 학업을 위해 제법 머무는 지역이면서도, 청년들을 붙들어 맬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잘 가르친 보람이야 물론 있겠지만, 모두 떠나고 난 자리에 도시는 허탈하다.우리는 무엇으로 도시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확보해야 하는지. 유네스코(UNESCO)가 한 자락 힌트를 던진다.문화기반 관광산업(Cultural Heritage Based Tourism). 문화유산을 기초로 삼는 관광자원은 남들이 흉내내기가 힘들다. 우리만의 모습에 트렌디한 연출을 가미하여 차별적인 관광자원을 만들어낸다. 유네스코는 관광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가운데 하나이며, 많은 나라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다’고 정의하면서, ‘사람을 기초로 하는 산업이라 일자리창출과 지역경제에 크게 기여한다’고 치켜세웠다. 포항과 지역이 겨냥할 새로운 지향점으로 문화와 관광에 역점을 두어야 함은 자명하다. 지리적 특성과 문화적 강점에 주목하여 지역만의 관광자원을 창출할 가능성은 차고도 넘친다.첫째, 포항에서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곳에만 있는 그 무엇을 보고 만지고 경험하며 인증하기 위해 그들이 몰려와야 한다. 부득이 비슷한 무엇을 만들더라도, 하다못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알리고 들려주어야 한다. 포항만의 ‘새로움’에 빠지도록 해야 한다. 어디서도 맛보지 못할 특별한 매력을 선사해야 한다.둘째, 문화를 트렌디하게 해석하여 내어놓아야 한다. 발굴하여 전시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문화가 품은 스토리를 다음세대도 쉽게 이해하고 가깝게 느끼도록 젊은 감각을 입혀야 한다. 우리의 고전 ‘춘향전’을 영어힙합뮤지컬로 다시 만들어 세계관객들에게 선보였던 기억이 있다. 놀라우리만큼 호응했던 외국인들은 한국 고전에 담긴 ‘고난을 기꺼이 참으면서도 기다리는 사랑’ 이야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돌려주었다.셋째, 과감하게 글로벌시장을 두드려야 한다. 국내 관광객뿐 아니라 세계 시민들을 위해 만들고 알리고 불러와야 한다. 우리만의 문화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졌다면, 자신있게 글로벌관광객들을 끌어와야 한다. 팬데믹의 끝자리에서 세상은 새로움을 만나러 떠날 채비를 한다. 잘 만드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잘 알리는 일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홍보와 마케팅에도 강한 문화관광역량을 쌓아 올려야 한다. 콘텐츠가 다르다면 알리는 메시지도 달라야 한다. 다른 문화에 멋진 관광객이 몰릴 터이다.

2022-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