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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指를 잊었는가

등록일 2023-04-12 18:52 게재일 2023-04-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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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인류 소통의 역사에 혁명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오늘 경험하는 정보의 홍수는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컴퓨터의 보급이 일으킨 소통의 혁명이다. 세계사는 그보다 앞선 ‘구텐베르크(Gutenberg)의 인쇄술’을 소통혁명의 원조로 꼽는다. 교황으로 대표되는 교회나 왕실이 주도하는 상류사회에나 접근이 가능했던 성경을 비롯한 문건들이 밀물처럼 활자술로 인쇄되어 나오기 시작했으니, 가히 시민들을 위한 소통의 혁명이 시작된 셈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처음 인쇄된 1455년을 소통혁명의 기원으로 삼는 까닭이다. 보통사람들에게 비로소 눈이 열리고 생각이 트이는 혁명이었음에 틀림없다.

직지(直指)를 기억하는가. 고려말 간행된 직지는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이다. 1377년에 세상에 나왔으니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 앞선 활자인쇄물이다. 유네스코(UNESCO)도 직지의 문명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의 기억유산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였다. 결정위원장이었던 벤디크루가스(Bendik Rugaas)는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물임을 인정한다’고 하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를 열면서 직지를 다시 한번 세상에 내어놓는다. 도서관 수장고에 보관된 직지는 1973년 공개된 이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안타깝고 아쉽다.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한참이나 앞선 금속활자 인쇄물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직지는 여태 ‘혁명적인 인쇄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구텐베르크 성경은 교회의 그늘에 갇혀있던 성경을 인쇄하여 일시에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던 사실이 있었다. 반면, 직지라는 인쇄술은 연이어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는 근거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셈이다. 기술의 진보가 대중의 수용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탓이다. 혁명이라 일컫기엔 파급력이 미치지 못하였다는 평가가 아닌가.

무엇을 해도 마지막 평가는 보통 사람들의 손이 결정한다. 나라가 어지럽다. 경제가 위태롭고 교육이 위험하며 외교가 걱정스럽고 안보가 아슬아슬하다. 선출하여 믿으며 맡긴 이들이 최선의 지혜를 모아 잘 꾸려가길 바라지만, 보통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정부가 되었으면 하지만, 국민들이 생각을 모아 정부가 하는 일에 조언하여야 한다. 실수와 실책은 겸허히 인정하고 국민의 인정을 회복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판단을 내릴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국민이 수용하고 밀어줄 때에 정부의 정책에 동력이 생긴다. 국민이 실망하여 등을 돌렸던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직지가 인류문명에 기여했던 성과를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정부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땀흘리는 노력도 평가되어야 한다. 국민의 일상에 힘이 되고 나라의 앞길에 덕이 되는 정책들을 펼쳐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고, 국민은 정책의 추이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국민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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