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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가 되지 못하면 도구가 된다

등록일 2025-06-25 17:49 게재일 2025-06-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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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본지 고문

한국은 인구 4000만 명 이상 국가 중 0~14세 인구 비율이 가장 낮다. 유엔 세계 인구추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유소년 인구는 전체의 10.6%. 초고령화로 이름난 일본보다도 낮은 수치다. OECD는 한국 인구가 60년 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 경고했고, 세계 최저수준 출산율 0.72의 원인은 높은 사교육비, 집값 상승, 장시간 노동,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등을 지목했다. 한국사회는 절망적 통계 앞에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꾸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는다.

프랑스는 달랐다. 최근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철학 시험에는 두 개의 질문이 등장했다. ‘우리의 미래는 기술에 달려 있는가?’, ‘진실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는가?’ 정답이 없는 질문이 프랑스 학생들에게 생각하고 토론할 것을 요구한다. 기술 만능과 정보과잉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인간의 미래가 어디에 달려 있는지를 묻는 질문들은 시험문제를 넘어 오늘날 인류가 품어야 할 통찰과제다. 프랑스의 교육은 지식만 주입하지 않는다. 생각의 습관을 키우는 데 목적을 둔다.

한국은 어떤가. 시험은 여전히 정답을 찾는 데 혈안이고 교사는 논술답안을 기계적으로 채점한다. 사고의 깊이를 가늠하기보다 틀리지 않는 답안지에 점수를 주고 학생은 점수로 줄을 세운다. 고교생의 글쓰기조차 ‘AI 요약 서비스’나 챗GPT에 떠맡기고, 대학입시를 통과한 뒤에도 입시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펙 경쟁에 몰두한다. 프랑스 교사들이 ‘주체가 되지 못하면 도구가 된다’고 외칠 때, 우리는 학생들을 그저 쓸만한 도구로만 만들어 낸다. 정반대가 아닌가.

MIT 미디어랩의 실험은 AI가 인간의 자율적 문제해결 능력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AI의 도움없이 스스로 글을 쓴 학생들이 뇌신경 활동이 더 활발했고 학습의 몰입도도 높았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AI기술이 ‘더 빠르고 더 정확한 정답’을 알려준다는 이유로 부작용에 눈을 감는다. 교육현장은 사라진 질문, 사라진 사고 주체, 사라진 교육철학에 침묵한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단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미래를 바라볼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미래를 설계할 능력을 주기보다 현재를 버티는 기술만 요구하고 가르친다. 결혼과 출산은 ‘불가능한 선택’이 되고,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마저 들지 않게 만든다. 사교육은 치열해지고 교육격차는 깊어지며, 부모 세대는 아이를 투자 대상으로만 여긴다.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하면 아이 낳을 이유도 사라진다.

필요한 것은 껍데기를 슬쩍 손질하는 개혁이 아니다. ‘생각과 상상의 주체를 키우는 교육의 대전환’이다. 점수 매기는 교육에서 질문 던지는 교육으로, 정답 찾는 교육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아이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미래가 없는 나라를 만나게 될 터이다. 한국사회가 진정 아이를 원한다면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를 바꾸어야 한다. 변화는 학교에서, 교사에게서, 그리고 교육철학에서 태동할 것이다. 미래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인간에게 달려있다.

/장규열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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