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우리는 멋진 장면을 목격했다.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두 번씩이나 추락 후 끝내 일어선 한 선수가 결국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7미터 높이의 빙벽을 타고 올라 공중회전을 거듭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작은 실수 하나로 경기는 물론 선수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추락은 실수를 넘어 ‘끝’처럼 보였다. 선수는 끝이라 여겨진 지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열었다.
우리는 메달의 색깔과 개수에 반응한다. 결과 뒤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새벽 훈련, 실패 반복, 부모의 희생, 부상과 재활, 낙담과 희열. 특히 대한민국 선수들의 현실은 넉넉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충분하지 않은 지원과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국제 무대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개인과 가족의 감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일어난다. 넘어짐을 핑계로 삼지 않고, 오히려 추락을 발판으로 삼는다.
추락은 부상을 불렀다. 누구도 기권을 비난하지 않았을 추락이었다. 선수는 통증을 이유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한 선수의 용기를 넘어, 우리가 오랫동안 공유해 온 한 가닥 기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어려움 앞에서 체념하지 않는 끈기, 상황을 변명으로 삼기보다 한 번 더 시도하는 태도, 끝까지 가보려는 고집과 집념. 대한민국은 숱한 굴곡과 곡절을 통과하며 그런 힘을 축적해 왔다. 위기 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성향, 그것이 스포츠 현장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여기서 멈춰,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 헌신을 박수로만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극적인 장면에 환호하고 눈물을 나누지만, 정작 선수들이 겪는 구조적 어려움과 훈련 환경의 한계에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가. 위기의 순간에 빛나는 투지를 ‘한국인의 미덕’으로만 칭송하는 사이, 그것이 반복적으로 개인의 희생 위에 세워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감동은 값지지만, 감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금메달을 확정한 뒤 ‘엄마!’를 외치며 무너져 내리던 장면이 깊게 남는다. 개인의 승리뿐 아니라, 함께 버틴 시간의 승리였다. 가족의 헌신과 지도자의 인내,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한순간에 폭풍처럼 터져 나왔다. 눈물에서 과정을 읽어야 한다. 과정이 있었기에 결과가 더욱 빛났음을 확인해야 한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하프파이프를 마주한다. 넘어짐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일어설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동시에 질문해야 한다. 선수 개인의 집념에만 기대는 시스템으로 충분한가. 그들의 도전이 더 이상 ‘기적’으로 불리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 수는 없을까. 아픈 무릎으로도 가장 높은 자리에 도달했던 장면을 기억해야 한다. 선수의 투지가 개인의 희생으로만 남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2026년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새해에도 어렵고 힘든 시간을 만날 터이다. 누군가는 포기하고 돌아서겠지만, 우리는 기어이 이겨내는 결기를 다져야 한다. 개인이 지난한 과정을 감내하려면 사회적 고조가 상생과 협력을 지지해야 한다. 건강하게 올라서는 새해를 당겨와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