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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추와 정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혼사를 치르고 우리 집 식구임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시부모는 새 며느리 치마폭에 대추를 던져주며 아들딸 많이 낳고 건강하게 살도록 기원한다. 하필 대추였을까. 장석주 시인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라 하였다. 한 알의 대추가 마치 태풍, 천둥, 번개와 같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끝내 이기고 견디어 검붉은 빛깔 멋진 대추를 선사하듯이, 새색시와 새신랑도 삶을 잘 헤쳐가기를 기원하면서 한 줌 대추를 안겼겠지.태풍과 천둥과 번개가 없는 삶은 없다. 어려움과 시련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의 살아가는 길 위에는 시련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스콧펙(Scott Peck)도 ‘삶은 어렵다(Life is difficult.)’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였다. 개인의 삶이 어렵다면 사람이 모인 집단과 사회가 걷는 길도 쉬울 수는 없다. 무엇이라도 거두고 이루기 위하여 우리네 살아가는 여정은 힘들고 어렵다. 시련과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혜롭게 견디고 슬기롭게 이겨내어 보다 나은 열매가 열리도록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지치고 힘든 마음을 가져다주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쳐야 할 것인가. 지나가야 할 수많은 어려움들 가운데 찾아온 태풍과 천둥과 번개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가진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인가를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나라가 어느 모로 보아도 어려운 일로 한 가득이다. 허리띠를 졸라맬 여유도 없을 만큼 일상이 어렵다는데 정치는 선거 놀음에 여념이 없다. 교육이 무너져 사방에서 아우성인데 정치는 표밭갈이에만 심취해 있다. 미래가 안갯속처럼 도통 보이지 않는데 정치는 과거로만 치달리고 있다. 나라 밖은 저만큼 달려가는데 나라 안은 시간이 멈춘 듯 갑갑한 마음. 왠지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은 필자에게만 드는 생각일까. 아시안게임에서 돌아온 젊은 선수들에게서나 겨우 힘을 얻는 국민은 하루하루가 태풍이고 천둥이며 번개가 따로 없다. 구청장 보궐선거가 결판이 나면 무엇이 조금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정치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면 그것도 그리 기댈 것이 되지 못한다.대추는 또한 몸을 따뜻하게 하며 젊게 해 준다고 하였다. 특별한 약성보다는 조화와 영양의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시련을 이겨낼 뿐 아니라 그런 결과 주변까지 맑고 밝게 하며 따뜻한 화합의 기운마저 보듬어 내라는 의미로 새색시는 대추를 한아름 받아들었던 것이다. 태풍과 천둥과 번개를 이겨낼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나은 빛깔로 변화해 가는 모습은 한 알 대추에서도 관찰도 가능하다. 우리 정치도 오늘 만난 어려움에 빠져있을 일이 아니다. 견디고 이겨낼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익어가는 대추를 바라보며 정치가 나라를 살릴 것을 기대해 본다.

2023-10-11

우리 글엔, 자존심도 없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여기서부터 원스푸드(Once Food)거리입니다’. 무슨 말일까. 관광지로 제법 이름난 국내 어느 도시 사거리에 걸린 현수막이다. 한글로 또박또박 적힌 글이라 읽을 수는 있었지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군민 플로깅챌런지’라 큼지막하게 적은 현수막도 보인다. 영문자의 도움도 없어 아예 그 뜻을 가늠조차 못하겠다. 어느 병원은 아예 ‘Moocheok Joeun Hospital’이라 상호를 내걸었다. 찬찬히 읽어 ‘무척좋은병원’이라 새기겠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떨떠름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글인가 영어인가. 한국인가 미국인가. 민족의 명절 추석을 지내면서, 우리는 ‘우리의 것들’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아연해 졌다.‘Special Live Dinner Buffet’라고 광고를 하거나 ‘Forest Camping BBQ’라 버젓이 적어 알린다. ‘프레시랍스터’와 ‘핑크새먼디쉬’가 맛있는 집이라며 손님을 모은다. 그런 표현을 보면서도 별 생각없이 이해하고 넘기는 소비자들도 문제가 아닐까.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우리글과 우리말이 무너져 내린다. 언젠가 로스앤젤레스 등 외국의 거리를 한국말 간판으로 물들인다더니, 이제는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우리말이 사라져 간다. ‘원스푸드’가 음식점에서 음식물을 두 번씩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니 그 뜻은 오히려 고맙다. ‘플로깅’도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도 줍는 캠페인이었다니 곱지않게 보았던 마음이 오히려 미안하다. 관광지라지만 이왕 한글로 적을 거였다면, 보다 새기기 쉽게 표현할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한가위 명절을 지나며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보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한글날이 다가오는데, 중국글자 한자(漢字)를 힘들어 했던 백성들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던 세종 임금의 마음도 다시 새겨본다. 우리가 우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말과 한글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업수이 여길 때 남들은 우리를 또 얼마나 하찮게 여길까. 멋진 우리말을 버젓이 두고 외래어와 외국표현에만 익숙해지면, 우리말과 우리글은 또 얼마나 빠르게 사그라들까. 때로 습관과 태도는 의지적으로 지켜야 한다. 대상이 우리만의 것이었을 때, 그걸 지킬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 세계화와 글로벌이 대세라 해도, 우리만의 고유한 멋과 맛은 소중하게 간직하며 지켜낼 때 빛이 나지 않을까.한가위 보름달은 어디에도 떴지만, 온겨레가 명절로 섬기기는 우리뿐이 아닐까. 정겹고 아름다운 전통은 지켜야 하고, 몸에 배어 습관이 된 문화는 키워야 한다. 밖으로부터 흘러든 문화와 영향도 어렵지 않게 받지만, 우리의 모습과 부딪힐 땐 잘 생각해야 한다. 때로 우리보다 나은 무엇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문화 안에 깃든 정서와 흐름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무엇이라도 함부로 가벼이 여겨 쉽사리 팽개치는 잘못은 없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작은 나라지만 문화적 정체성과 경제적 영향력은 간단하지 않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소중히 여기고 다루어야 한다.

2023-10-04

우리 말이 위태롭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우리 말이 위태롭다. 생각을 담아 표현하는 도구로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한다. 글로 쓰고 말로 전한다. 마음에 품은 생각과 느낌을 말에 실어 전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세상에 배울 일이 많지만, 말하기와 글쓰기만 제대로 습득한다면 필요한 교육의 절반쯤은 이미 성취한 게 아닐까.품은 생각을 조리있게 정리하고, 남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새롭게 구성하며, 품격을 싣고 안정감있게 표현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양이었다. 사회와 국가가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여 균형있게 발전해 가기 위해서도 공동체 구성원의 건설적인 제안과 아이디어가 풍성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모든 표현은 말로 해야 한다.그처럼 중요한 말이 흔들린다. 우선, 표현에 논리를 잃어간다. 조리있는 표현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논리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표현해야 하며 조직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말에 논리가 정연하면, 듣는 사람에게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쉽게 이해하고 정리된 응답도 가능하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하여 말을 사용하면 논리보다 ‘한 방’을 찾게되어 정연한 표현구조는 힘을 잃는다.‘사이다’라 불리우는 공격포인트를 올리기 위하여 논리쯤은 쉽게 무시하고 만다. 말은 논리를 잃고 논리가 빠진 표현은 질서를 잃는다. 심각해야 할 사회적 담론을 단답형 공격형 어조로만 응대하다 보니 누구든 일방적 외침에만 의지할 뿐 의사소통에서 배우거나 얻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말이 품격을 잃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소통과정에서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언어에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수다한 정책적 아젠다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정치권은 우리 말을 훼손하고 격식을 잃게 만든다는 면에서도 책임이 크다.정치에도 공격 뿐 아니라 조정과 숙고, 협상과 타협의 묘를 기해야 할 가닥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언사를 직선적인 공격으로만 채우다 보니 우리 정치인의 언어는 품격을 잃고 허공을 헤매고만 있다. 말이 격식을 잃어가면서 국민의 마음도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국민 앞에 노출이 빈번한 정치인의 언어는 시급히 그 품격을 가다듬어야 한다.말이 안정감을 잃었다. 보수도 진보도 자신들의 생각조차 안정감있게 전하지 못한다. 공격의 다급함과 수비의 분주함에 쫓기다 보니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생각을 다듬고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정치권의 불안정하고 일회적인 언어의 난무를 날마다 만나는 국민도 의견을 조리정연하게 간추릴 기회를 빼앗겨 버렸다. 공동체의 언어가 논리와 품격, 그리고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선 정치권이 책임감을 느끼고 돌이켜야 한다. 우리 말의 높은 격조와 아름다움을 다시 찾기 위하여 국민적인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싶다.정치, 사회, 문화, 경제가 모두 중요하지만, 언어의 품격과 자존심만큼 우리의 바탕을 확인하게 하는 소양이 다시 있을까.

2023-09-20

정치, 그 책임의 무거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를 맞았다. 아들의 사업에 부적절하게 관련된 혐의가 제기되었다. 하원의장 케빈 맥카시(Kevin McCarthy)는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고 공권력을 방해하였으며 권력을 부패하게 한 흔적이 짙다면서 의회가 탄핵 소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또한, 그는 대통령이 가족이 부당하게 연루된 일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대통령의 심각한 일탈에 동조하며 방관하는 백악관 당국에도 심각하게 경고하면서, 미국 의회가 즉각 대통령 탄핵 절차에 돌입할 것을 요청하였다. 바이든 대통령 측은 직접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정치적 공세에 대처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반응했지만, 미국 시민의 절반 정도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국내의 한 도지사가 국민소환의 위기에 처했다. 최근 있었던 수해 상황에서 있었던 지하차도 사고에서 그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여 인명의 손실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해당 지역에서 주민소환의 요건인 서명인 확보가 시작되었으며,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소환을 주장하는 측은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할 지사가 참사 당시 직무를 유기하고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언행으로 일관해 도정의 신뢰가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안정적인 도정의 지속적인 진행을 위해 소환을 반대하는 시민들도 있다. 뽑아준 유권자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선출직 공직자의 업무수행은 크나큰 도전을 받는다.선출직 공직자는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의 눈길을 피할 길이 없다. 시민들의 소환압박은 물론, 매서운 언론의 눈초리는 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공인으로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직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충분한 전문성을 가지고 성실하고 유능하게 매사에 임해야 하며, 모든 일의 진행과 결과는 한 치도 빠짐없이 공개되고 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주어진 임기 내내 비판과 평론이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겉으로는 균형을 잃지 않는 공직자의 모습을 지켜야 한다. 세평에 휘둘리지 않고 이념에 따라 편파적이지 않으며 국민과 시민만을 위하여 봉사하며 섬기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를 봉급으로 받으며 일하는 공직자의 가치를 날마다 증명해야 한다. 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국민은 때가 되면 다시 누군가를 뽑아 세워 일을 맡긴다.철학자 플라톤(Platon)은 지도자의 무지(無知)가 공동체 건설에 있어 최악의 조건이라 하였다. 무식한 지도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지도자, 알아야 할 사항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지도자가 가장 나쁜 지도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인간인 이상 실수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정(失政)의 책임(責任)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지도자가 되면 위험하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사회에서, 더 많은 국민이 인간다운 삶과 행복한 일상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문제는 심각하다. 정치는 그 책임의 무거움을 알고나 있는가.

2023-09-13

초고령사회, 위기일까 기회일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은 곧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이 인구의 20퍼센트를 넘기게 된다. 나이가 많아도 경제생활을 지속해야 하지만 일자리에서 물러난 노인들은 길을 잃는다.정부가 짊어질 복지정책 부담도 재정적인 면에서 가볍지 않다. 고령화는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전반적인 인구구조의 변화를 초래하면서, 지역에는 급격한 인구감소를 빚어내 지역소멸의 위기감마저 가지게 한다. 인구위기는 남북한을 가리지도 않는다.2070년이 되면 남한은 3천600만, 북한은 2천400만 인구로, 2021년 대비 각각 70%와 90%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되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위기의 그림자는 반드시 기회의 가능성을 품는다. 오늘 65세로 접어드는 사람들은 이전의 노령층과 어떻게 다를까. 그들은 한국전쟁 후 사회적 경향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로 베이비붐세대(baby boom generation)라 불리운다. 급격하게 초고령화로 접어든 느낌이 드는 데에도 까닭이 있는 셈이다. 그들은 사회문화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혼란을 모두 겪었다. 나라가 가장 어려웠을 시절에 때어났지만 눈부신 발전을 경험했으며, 정치적 변동을 체험하면서 거친 들판을 지나온 세대가 아닌가. 다양한 사회문화현상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깊고 여러 정치적인 이념성향도 겪을 만큼 겪었다. 이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며 배운 바가 있어 노후대비에도 무심하지 않았다. 이전 어느 노인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신개념고령층’이 출현하고 있다.한국사회에 처음 나타난 세대가 아닐까. 역사상 처음으로 체력(體力), 지력(智力), 재력(財力)을 겸비한 세대라고도 한다. 의학과 과학의 눈부신 진보로 인간수명 백세를 바라보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전후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가장 많이 배운 세대가 아닌가. 국가경제 발전을 몸소 견인해 온 어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은퇴한 다음 일로부터 손을 놓고 뒷방 늙은이로 자조적인 삶을 유지하던 노인층이 아니다. 건강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와 다짐을 불태우는 세대로 보아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도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s)를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이 블루오션이라는 게 아닌가. 인구 초고령화는 사회의 위기인 동시에 기회를 제공한다.초고령화를 위기요소가 아니라 기회인자로 보아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복지예산에 대한 재정적 부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대의 문화적 유연성과 경제적 소비성향을 진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년연장이 뜨거운 이슈가 되었지만, 이를 세대 간 갈등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인구고령화를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피할 수 없는 미래로서 ‘초고령화현상’은 사회문화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틀을 마련하여 준비해야 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맞게 될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대비하는 지혜를 준비해야 한다. 재정압박을 핑계로 회피하려 하거나 세대갈등의 빌미로 보아 배척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2023-09-06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난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처서(處暑). 여름을 지나 더위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예년에는 늘 그랬다. 처서를 지나 백로가 코앞인데 기온은 아직 고공행진이다. 2차 장마 소리도 들린다.세계기상기구(WMO)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한 달이었다. 가장 뜨거웠던 계절이 아직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어느덧 8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가을은 더디 오는가 싶다.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라 부르더니 이제는 기후재난이라 적는다고 한다.폭염과 홍수, 폭우와 가뭄, 폭풍과 한파, 산불과 허리케인 등 기후가 초래하는 이상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하다. 올해 7월 캘리포니아 데스밸리국립공원에서 섭씨 53도를 기록했는가 하면, 이란은 8월 초에 50도를 넘으면서 임시휴일을 선포하였다. 한겨울이어야 할 남반구 아르헨티나도 여름처럼 더웠다는 게 아닌가.기후가 재난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항공우주국 NASA는 인간이 주도한 지구온난화가 오래 지속된 결과라는 것이다. 기후가 자연현상 같지만, 실은 사람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탄소방출에 따른 대기오염, 에너지 과다사용에 따른 환경훼손 등이 초래한 인재(人災)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기후위기의 여파는 날씨와 기온에 머물지 않는다. 식품가격 상승이 불러오는 인플레이션을 푸드플레이션(Food flation)이라 부르는데 그 근본원인을 따져보면 기후변화라는 게 아닌가.식량농업기구(FAO) 쌀가격지수는 7월에 전월대비 2.8% 올라 129.7을 기록하여 22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쌀 세계수출량 40%를 맡았던 인도가 최악의 가뭄으로 수출제한 조치에 들어갔다.극심한 고온 기후는 인류에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온열질환의 가능성은 잼버리야영장에서 이미 목격하였다. 실제로 더워서 사망에 이르는 숫자가 홍수나 산불에서보다 많다고 한다. 일사병과 말라리아 등 심각한 질환에 인류는 다시 노출될 판이다.미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하와이의 마우이섬은 올여름 엄청난 산불로 관광, 여행, 레저산업은 생각도 못했다. 오랜 가뭄과 고온다습한 대기에 지나가던 허리케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빚은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그런 규모의 복합적인 기후재난이 다른 장소에서 재발할 확률은 점점 높아져 간다고 한다.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홍수로 인한 재난에도 국가와 지방자치제 차원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살피고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미 발생한 자연재해를 맞아 대처하는 수준의 경각심으로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기후재난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어려울 터이다.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해야 하고 자연재해를 맞아도 안전한 제반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건축관련 규정과 치수관련 시스템 등을 근본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할 기후관련 재난에 국민도 더 이상 수동적일 수는 없다. 주변에 산재한 위험에 경계를 늦출 수 없으며 물과 공기 등 자연자원의 이용과 소비에 예민한 시민의식을 발동해야 한다.가을은 오고야 말겠지만, 걱정은 깊어만 간다.

2023-08-30

힘든 청년, 병든 나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나라가 병들었다. 무고한 사람을 까닭도 없이 죽이고 해치는 일이 기승을 부린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대책은 또 어떤가. 문제의 근본부터 뿌리를 뽑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엄정한 처벌’에 머물고 있다. 장갑차가 등장했었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논한다. 벌어진 폭력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엄정하게 대처하여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생각도 틀리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범죄를 두고 형벌로 다루겠다는 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생각 가운데 하수(下手)다. 하필 이 여름에 이런 일들이 줄을 이어 발생하는지 그 까닭을 살펴야 한다. 날이 덥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건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을 해친다고 자신의 처지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바보가 있을까.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미움과 욕설’로 가득한 세상이다. 국회가 들려주는 언어의 패턴은 혐오와 조롱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편가르기와 등돌리기가 정치행위의 상식이 되었다. 멋진 정치에서 경청과 타협, 토론과 양보를 기대했던 국민은 이제 누구를 만나도 ‘어느 편’인지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겠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모든 면에서 나와 생각이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슈에 따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제거한 끝에 인간은 결국 홀로 남지 않을까. 다양하고 풍성한 ‘생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이 존재해야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투표와 다수결이 소중한 까닭이다.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국가와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나라 안에 가득한 혐오분위기와 차별 정서는 젊은 세대에게도 전염되었다. 인정하고 포용하기보다 밀어내고 미워하는 기운에 익숙해진 청년들은 점점 더 ‘외로운 늑대’로 내몰리고 만다. 기회가 보이지 않고 기대할 것도 사라진 세상은 그들에게 등을 돌린듯 여겨질 터이다. 출처가 어딘지 분명치 않은 미움을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대상에게 퍼붓는 게 아닐까. 무엇 때문인지 모를 자신의 힘든 처지를 그렇게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게 아닐까. 사회적 병리현상은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개인적 일탈현상으로 여겨 처벌로만 대처하다가는 사회적 골든타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하고 문화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편가르기의 폐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후대에 좋은 나라를 넘겨주기 위하여 사회적인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병든 줄 뻔히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끝내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묻지마범죄가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오늘, 사회적으로 차분히 문제의 뿌리를 살펴야 한다. 미래세대가 중요하지만, 오늘의 청년세대가 든든한 허리로 받쳐주지 않으면 다음세대도 기대하기 어렵다. 20대와 30대에 건강한 사회환경을 실현해 주어야 하고,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닦아낼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청년에게 기대와 소망을 안기지 못하면, 사회와 국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8-23

스카우팅, 누구의 일인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지나갔다. 낯선 이름의 국제행사에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이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정부가 깊이 관여하였다. 스카우트운동은 민간사회운동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적인 수련활동이기는 하지만, 본질은 여전히 보통사람들의 자발적인 사회운동이다. 주로 야외활동에 방점을 두고 진행되는 다양한 운동의 결과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존능력을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활동역량을 증진하며 공동체를 위한 봉사정신을 함양하게 된다. 필자의 오랜 해외경험에 비추어도 스카우트운동에 정부조직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그리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스카우트운동을 지켜보면서 지원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할 터이다.새만금잼버리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에 참여한 결과, 부정적인 부분에 대하여 책임소재를 놓고 시끄러울 판이다. 더욱 혼돈스러운 일은 책임 시비를 두고 정권이나 이념의 향배에 따라 편을 가르고 지방색을 극도로 드러내는 비난이 들리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바뀌어도 같은 나라이어야 하며 지방정부에 책임이 있다면 이를 밝혀 시정하면 될 일이다. 어느 나라의 문제와 책임은 그 나라의 것일 뿐 ‘특정한 정권의 나라’에 귀속하지 않는다. 사회공동체의 사안을 어느 집단의 사안으로 바꾸어 시비와 정쟁을 일삼으면, 해결책의 도출은 고사하고 논쟁과 싸움의 이전투구만 거듭하게 되어있다. 실익과 결과가 보이지 않는 아귀다툼은 멈추어야 한다.길에서 새만금잼버리에 참가하였던 유럽 국가 청년들을 만났다. 생생한 느낌과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들 사이에도 생각과 의견이 달랐다. 전반적으로, K-콘서트가 인상적이었던 반면 스카우팅 본질에는 미흡하였다는 인상을 전해 주었다. 더위는 견딜 수 있지만 그늘이 없었던 건 힘들었다고 했다. 자연적인 난관은 얼마든지 이겨낸다는 스카우팅 운동의 실체를 엿들은 느낌이었다. 조금만 더 잘 준비하였더라면 그리 실패할 것도 없는 잼버리였을 모양이었다. 그르친 책임을 묻고 새롭게 만들어 갈 다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과도한 정쟁으로 혼돈스런 광경이 연출되지 않았으면 한다. 스카우트운동의 본질을 다시 찾아가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민간운동을 정권다툼으로 퇴색시킬 수는 없지 않을까.‘준비하라.’ 스카우트운동의 슬로건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몸과 마음으로 늘 준비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다음세대 청소년들에게 어려움을 이겨내고 난관에 미리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이끄는 셈이다. 세계잼버리 행사가 늘 여름 한가운데 벌어지는 까닭이 아니었을까. 폭염과 태풍 등 기후조건에 대하여 사전에 보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처하였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운동의 본질을 잘 이해하였다면 행사의 운영에 보탬이 되었을 터이다. 국민은 정치권의 끝모르는 아귀다툼에 지쳐간다. 정치권이 진정성있는 돌파구와 해결책을 찾아내는 정치적 효능감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청소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2023-08-16

남들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세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세계 각국의 인재유치매력도 순위를 발표하였다. 어디서 공부하고 준비하였든 젊은 인재들이 소양과 재능을 펼치며 일하고 싶은 나라의 순위를 매겼다. 대한민국은 조사대상 63개국 가운데 49위에 그쳤다. 나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같은 조사에서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점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결과인데, 이전보다 여덟 계단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미국이 4위, 일본이 27위, 호주가 14위라 하고, 그나마 중국이 우리보다 아래쪽에 보인다. 썩 괜찮은 나라인줄 알았던 대한민국이 젊은 인재들의 눈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셈이다. 그마저 해를 거듭하며 내려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여러 나라들이 인구감소를 힘들어 하는 가운데, 유독 캐나다가 한 해에 이민인구 유입 100만 명을 돌파하며 인구를 획기적으로 늘이고 있다. 비결은 역시, 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게 아닐까. 우리는 대한민국을 얼마나 그런 나라로 만들고 있을까. 정부는 위기를 맞은 인구정책을 가다듬으면서 양질의 고급인력을 끌어들이는 고급인력 유입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를 문제로 인식하여 국내인구를 늘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점차 확연해지는 글로벌 환경에서 해외의 인재들을 대한민국으로 맞아들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유학 떠난 인재들이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고국으로 다시 불러들일 만한 여건을 만들어 내는 일도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한다.세금과 연금제도, 환경적 정주여건, 2세를 위한 교육환경, 문화적 다양성과 수성, 일상생활에서의 불편제거 등 인재들을 대한민국으로 모으기 위한 과제들이 즐비하다. 그동안 경제적 집적효과에 방점을 두고 국가경쟁력을 생각해 왔다면, 이제는 보다 다각적이며 심층적인 시각에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야 한다.‘세계 10위권’ 타이틀이 세계인의 마음속에 단단하게 자리잡기 위해서 우리에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치안과 안전이 우리의 자랑이었는데 그마저 무너진 듯 보이는 오늘의 현실 앞에 혹 나라의 경쟁력 관리를 위한 길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세계스카우팅잼보리에 참여했던 대원들이 다소 실망하여 속을 끓였겠지만 국가이미지를 다시세울 방법을 얼른 찾아 끌어올려야 한다. 스카우팅의 본질과 젊은이들의 심장을 함께 두드릴 방도를 찾아야 하고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잊지않고 교감을 이어갈 관심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좋은 생각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남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 앞에 겸손해야 한다. 생각은 금방 바뀌지 않는다. 진심과 공감을 실어 태도와 방법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세계인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오늘보다 나아지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세계10위권’ 허상을 붙들고 자만해 봐야 아무도 이 나라를 곱게 봐주지 않는다. 꿈에서 깨어나 우리의 실상을 보아야 하고, 거기서부터 쌓아올려야 한다.

2023-08-09

둘로 나눌 수 있을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문과와 이과는 누가 갈라놓았을까.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초중고 공교육 과정을 지나면서 우리는 문과와 이과 가운데 선택을 한다. 그 기준은 무엇이엇을까. 대체로 수학을 좋아하는지가 자기 판별의 기준이었다. 수학적 사고능력이 소위 이과적 인간이 되기 위한 절대적 기준이 되는 지도 사실은 그리 분명하지 않다. 수학적이며 논리적인 표현 능력은 인문사회, 정치경제 영역에서도 대단히 필요한 소양임이 밝혀지고 있다.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예로 들어보자. 이과적 성향이 다분한 직종으로 여겨지지만, 수학적 기능만으로는 절대로 부족하다. 실제 현장에서는 고도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소양이 필요하고, 분석적 사고능력은 물론 구성원 간 인화적 소통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사람의 소양과 품격을 문과와 이과로 단순하게 둘로 나누어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으로 이해하는 일에서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오늘날 문제들이 유형별로 생기지 않는다. 기업경영은 문과인가 이과인가. 가정살림은 문과인가 이과인가. 상황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발생하며 균형잡힌 통합적 사고가 언제나 필요하다. 사람을 읽어야 하고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느낌을 짚어야 하고 손익에도 밝아야 한다. 배경지식도 필요하고 미래예측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사람들 사이에 칸을 치고 벽을 만들어 서로 오가는 일마저 막는다. 문과와 이과는 함께 나눌 이야기 소재마저 궁핍해 져서, 사회는 또 다른 양극화를 겪는다. 넘나들기 어려운 섬들이 생긴다. 문과적 소양과 이과적 능력을 따로따로 구분해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이제 접어야 한다. 공교육을 받는 우리 학생들이 폭넓고 균형잡힌 인성을 형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문학과 역사, 수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배워야 한다.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유네스코(UNESCO)는 21세기에 가르쳐야 할 네 가지 필수영역들로 분석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Creativity), 협력(Collaboration), 소통(Communication)을 들었다. 문과나 이과의 구분은 어디에도 없다. 개별 과목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 전통에 따라 구분된 과목의 이해를 넘어 통합적으로 균형잡힌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는 게 아닐까. 대학에서도 지나친 세부 전공영역의 구분을 경계해야 한다. 전문지식 심화의 필요를 인정하더라도 인성의 널푼수를 지향해야 한다.다음세대가 창의와 혁신으로 가득한 내일을 만나려면 다르게 가르치고 새롭게 배워야 한다. 문과와 이과 구분에 길들여진 습관을 벗어야 한다. 과학자가 문학에 능하고 역사가가 과학에 밝은 날들이 와야 한다. 새로운 상품개발에 인문학적 경험과 불편함이 스며들고 철학자의 논변에 과학의 발자취가 녹아들 때 비로소 학문 간 균형과 인성 간 조화도 가능해 진다. 인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 지고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에는 배려와 상생의 기운이 돌지 않을까. 포용과 협력이 시대의 기운이라면, 문과와 이과의 구분부터 사라져야 한다.

2023-08-02

교실은 누가 책임지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젊은 선생님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압력에 못 이긴 결과로 보인다. 선생님은 누구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사가 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맡겨야 하는가. 학교와 가정, 사회와 국가 가운데 교육의 궁극적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학부모는 학교 교육에 관하여 어떻게 어느 만큼 개입할 수 있을까. 평소에도 궁금했던 질문들이 한 선생님의 극단적인 선택 앞에 불쑥 올라온다. 교사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우리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갈등이 빚어져 회복할 수 없었다면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유사한 상황이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믿고 맡겨야 한다. 교직은 성직이었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았을 만큼 높은 신뢰의 대상이었는데, 언제부터 선생님이 감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을까. 수십 년 전 학교의 모습에서 교사가 자행했던 폭력과 오만의 그늘을 기억한다. 불신과 경계가 일부 교사들의 악행에서 비롯했던 부분도 부인하기 어렵다. 선생님들이 우선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첫 다짐을 회복해야 하고, 학부모는 젊은 선생님의 진심을 받아주어야 한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교육과 관련한 모든 결정과 진행에 학부모의 믿음을 실어야 한다. 교사와 부모가 한마음이 되어 자녀교육을 쌓아야 한다.교사는 을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언제나 갑과 을의 관계로 인식하려는 우리 문화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나이와 성별, 직책과 소속, 업무와 직종에 따라 갑과 을을 판정한 다음, 그 비대칭적인 관계에 따라 나머지 모든 일을 진행하는 방식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필요에 따라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자신이 선택한 업무에 임하는 만큼, 누구든 전문인의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비대칭의 갑을문화가 교육에 들어서 있는 한, 교육의 전문성이 살아날 방법이 없다. 교사와 학부모가 각기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인식과 태도를 견지하고 자신있게 본연의 업무에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기대는 각자의 전문적인 소양을 진작시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자녀교육을 위하여 서로를 믿고 격려하며 소통하고 공유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아이는 온 마을이 기른다. 선생님과 학부모뿐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나는 주변의 사람들과 사물들이 모두 교육에 함께 한다. 교육정책을 만드는 정부와 교육청은 교사가 교실 안에서 가르치는 일에 던지는 과도한 감독과 감시의 눈길을 거두어야 한다. 교사가 전문적이며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긍정적인 교육을 자유롭게 진행하도록 신뢰하고 격려해야 한다. 선생님들이 처음 가졌던 순수와 열정을 회복하고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싶다. 공교육의 근간은 학교에서 찾아야 하며, 교실은 학교 교육의 현장이다. 교실은 선생님의 가르침과 자녀들의 배움으로 가득해야 한다. 선생님이 살아야 교육이 선다.

2023-07-26

빗줄기 속에서 생각한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기다렸던 비가 내렸다. 목이 타도록 고대하던 빗줄기가 시원했다. 청청한 초록이 싱싱한 기운을 흠뻑 들이켰다. 신기하게도 장마는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나름 고르게 물줄기를 대었다. 더욱 신통한 것은 장마가 지나면 폭염이 찾아올 터이다. 흠씬 적신 대지를 익히며 뜨거운 햇발이 쏟아질 것이다. 정성으로 심은 곡식들이 장마 뒤 폭염 속에 푹푹 익어갈 참이다. 그래서 ‘장마에는 돌도 큰다’고 했을까. 자연은 이렇게, 소리없이 인간을 돕는다. 장마를 지나며 바라던 대로 풍성한 결실을 내려면, 장마 전에 여러 가닥 준비를 해야한다. 장마를 홍수로 까먹지 않으려면 치수에 미리 손을 써야 한다. 기다리던 장마가 왔다고 저절로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이 아닌 것은, 인간에게 장마를 대비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려는 것일까. 하늘이 도울 테니 사람은 준비하라는 소리가, 거의 들린다.윤흥길의 소설 ‘장마’는 마침 이즈음에 맞았던 한국전쟁의 모습을 여러 갈래로 그리고 있다. 준비없이 맞았던 민족의 비극이어서 그랬을까, 어둡고 지겨운 어려움으로 다가온 전쟁을 마침 함께 찾아왔을 긴긴 장마 빗줄기에 빗대고 있다. 삶의 어려움이 지나가면서 장마가 그친다는 복선에 장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보인다. 기다림이 기대만큼 열매를 거두려면, 장마가 오기 전에 가져야 할 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혹 준비하지 못했다면 퍼붓는 빗줄기 속에라도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지 다짐해야 한다.전국 각지에서 물난리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목마름이 애통함으로 바뀐 뉴스는 안타까울 뿐이다. 애타게 기다리면서 준비하지 못한 결과를 보는 참이다. 더이상 빗줄기가 재난이 되지 않도록 했어야 했는데 나라는 무엇을 했을까. 해마다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각오와 다짐을 새롭게 해야한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모두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물난리에서조차 좌우로 갈라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념이란 결국 더 나은 내일을 만나기 위한 지향성과 방법론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그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더욱 나라다운 나라를 당기기 위한 또다른 모습의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진영으로 갈라서 생각없이 손가락질만 퍼부을 일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마음 가닥들을 모아가야 하지 않을까. 더이상 반목과 비난으로 아까운 날들을 허비하지 않아야 한다. 다가온 장마가 뒤이을 폭염 속에 온갖 과실을 맺는 것처럼 다른 생각들 속에 숨은 모든 이들의 열정을 묶어 진정한 나라다움을 일구어야 한다.기다림이 장마로 이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간절함이 기다림을 건너 빗줄기를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을 도우려는 자연의 마음에 화답하지 못한 인간의 미련함을 다시 보았다.이제 다시 하는 다짐 속에는 간절했던 기억을 반드시 함께 심어야 한다. 장마 후 결실을 위해 무더위가 찾아오듯이 희망과 함께 공동체를 건져 올리려면 열정 가득한 담론과 비평과 함께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준비가 있어야 한다. 장마를 홍수로 까먹지 말아야 한다.

2023-07-19

교육으로 세상을 건지게 하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장 교수의 선친은 바보였다.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의 입지를 선정하고 실제 도로디자인을 손수 하였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집에는 한 꼭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남들은 떼돈을 번다는데 아내에겐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80년대 초 서슬이 시퍼런 군사정권이 들어서 숙정의 바람이 불었다. 숱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멀쩡히 일했었다는 게 그의 자랑이었다. 어머니 눈에는 그야말로 ‘바보 아버지 인증’이었다. 필자도 한 때는 어머니와 같은 심정이었지만,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늘 저 혼란한 세상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깨끗하고 당당하게 부끄럼 한 점 없이 공직자의 길을 지켜낸 아버지가 자랑스럽다.세상이 어지럽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와 끝없이 힘만 드는 경제. 약속을 저버리는 정치를 어떻게 믿으며 나아지지 않는 경제에 무엇을 기대할까.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과 차곡차곡 모으는 꾸준함이 민생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다음세대를 기르는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세상 모습 그대로 거짓과 혼돈을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바르고 성실하며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는 학교는 날마다 무너진다. 교실에서 이야기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매일 만나는 선생님들은 오늘도 힘들다. 아이들은 눈치채지 않았을까. 교육은 학교만 하는 게 아니다. 집과 동네에서 만나고 스치며 세상을 배운다. 미디어와 언론은 아이들에게도 제한없이 열려있다. 숨길 수가 없고 숨겨지지도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혀 딴판이라면, 그런 교육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는가.교육적 견지에서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한다. 사회적 가치가 바로 서지 않고는 정상적 교육이 불가능하다. 선동과 기만으로만 가득한 세상에서는 성실과 정직을 가르칠 수 없다. 혼돈과 주장만 그득한 일상에서 안정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꿈과 비전이 야심과 욕심이 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용기와 상상력이 술수와 기만으로 해석되는 가르침은 교육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게 교육이지만, 고르지 못한 텃밭에 바른 교육이 설 자리는 없다. 사람을 도구화하는 교육은 부적절하다. 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야 한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키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도록 이끌어야 한다.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눈속임이 가득한 세상에 진정어린 정직을 길러내야 한다. 다음세대의 시선이 넓은 세상을 향하도록 길러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우리는 좁은 우물에 갇히지는 않았을까. 세상을 등진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는 교육이 되어야 하고, 무너진 세상을 바로잡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던지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와 어지러운 세상에는 교육이 희망을 던져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세상이 선다.

2023-07-12

국가브랜딩, 살려야 한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미국의 한 일간지 US News World Report가 세계국가순위를 발표한다. 삶의 질, 사회적 역동성, 문화적 자산, 기업친화성 등 10개 분야에서 객관적으로 취합한 자료를 합산하여 해마다 공표한다. 작년에는 스위스, 독일, 캐나다에 이어 미국이 4위, 일본은 6위, 중국이 17번째에 올라있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괄목한 발전을 보여온 대한민국은 20위였다. 기업이 물건을 잘 만들어야 하지만, 업체와 상품의 이미지를 효과있게 긍정적으로 알려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오늘처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할수록 마케팅과 브랜딩이 점점 각광을 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국가도 마찬가지다.해외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대한민국은 어디쯤 자리잡고 있을까. 경제력이 성장하였다고 평판이 그대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세계무대에서 선진국의 위치에 근접했다는데, 세계인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어디쯤 와 있을까. 세상은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기업이 좋은 물건을 팔아도 업체가 하는 일과 상품의 가치를 알리는 일은 특별한 경영수단을 필요로 한다. 이름하여, 브랜딩(Branding). 대한민국이 여러 가닥에서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인의 마음에 다가가는 일에는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도 브랜딩에 나서야 한다. 나라들 사이에서 교류와 통행이 활발해지면 관광과 여행은 국가경영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산업영역이 된다. 대한민국을 세계인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마음을 사로잡을 ‘국가브랜딩’이 더없이 긴요해진다.우리에게도 법정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있어 지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어가는 데에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세월이 흐르면서 위원회가 명맥을 간직하고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아 국가가 나라를 효과적으로 알려내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외형적인 국가경쟁력과는 또 다르게 나라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일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사이몬앤홀트(Simon Anholt)가 개발한 ‘좋은나라지표(Good Country Index)’는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을 위하여 끼친 기여도를 평가하여 순위를 매긴다. 2022년 발표에 일본이 34위, 한국 37위, 미국 46위, 중국 69위 등이었다. 세계와 함께 호흡하며 상생과 공존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우리의 모습이 세계인의 인식 가운데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새겨질 수 있도록 전문적이며 적극적인 브랜딩에 착수해야 한다. 효과적인 이미지 개발을 위하여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취지와 기능을 살려내어 제 역할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나라가 더 많을 일을 하여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만큼, 세계인들에게 이를 잘 알리고 전하여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를 올려내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만드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알리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대한민국이 더욱 발전하고 성장해야 하지만, 더없이 멋진 나라로 알려내야 한다.

2023-07-05

뜨거운 여름, 당신의 내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여름이 시작되었다. 장마를 지나 땡볕이 쏟아질 터이다. 서서히 기온이 오르며 계절이 다가오듯이, 스물스물 정치가 올라온다. 선거판이 시동을 걸어 정치가 언론지면을 물들이고 있다. 주장과 막말이 춤을 춘다. 오가는 말들에 주목하며 심사가 오르내리는 착한 국민들. 그 말들에 진심과 성실, 공감과 배려가 실렸으면 좋겠다.눈을 씻고 보아도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하고 옹호할 뿐이다. 국민들의 어려운 처지와 답답한 일상은 그들의 심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 제 아무리 심대한 정치적 의미를 건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의 삶과 죽음보다 소중한 게 있을까. 정치가 춤추지만 국민은 힘이 든다.때가 되어 치르는 형식적인 선거보다는 진정으로 세상이 나아지는 그 한 판을 기대한다, 총선이 그런 축제를 몰고 올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하는 꼴을 보면 패거리다툼과 표싸움이 되고 말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세상 모습이 최선이 아닌 것쯤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당신은 뭘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누구에게도 들은 바가 없다. 현란한 언변과 시원한 말솜씨로도 그들의 ‘생각없음’을 감추지 못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힘든 다리를 거뜬히 건너온 국민의 눈에는 그들의 허망한 철학과 공허한 비전이 뻔히 보인다.언제까지 기다릴 터인가. 언제쯤이면 정치가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게 될까.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해야할 터이다. 동화작가 롤달(Roald Dahl)은 ‘세상을 바꿀 힘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하였다.특별한 정치인이나 엄청난 지도자가 가진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게 아닌가. 선거를 주목하며 걸으면서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여론조사에 참여하고 후보자에게 생각을 적극적으로 건네야 한다. 직접 온라인과 SNS로 참견해야 한다. 당신의 생각이 들리도록 선거의 모든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덜 떨어진 사람을 당신의 대표로 선출하게 된다’고 플라톤(Platon)이 던진 말은 투표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이제 막 운을 뗀 총선의 과정에 당신의 소신과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당신을 대변해 주기를 기다리는 일은 기대난망이다. 희벌건 욕망으로 가득한 직업정치인일 뿐이다.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도 ‘선거는 보통 사람의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선거를 통하여 무엇인가 이루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이어야 한다는 깨우침이 아닌가. 세상을 바꾸는 힘을 남에게 양보할 일인가.국민의 일상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없다. 한여름을 꿰뚫으며 내일을 생각하는 당신과 우리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여름이 뜨겁게 달구어질 까닭은 대한민국의 내일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당신을 기대함이 아닐까.총선은 내년이지만, 당신은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우리의 내일을 맡길 것인가. 나라와 국민을 이고지고 미래로 나아갈 운명은 당신과 나의 어깨에 걸려있다.

2023-06-28

수능, 대학, 교육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교육이 위태롭다. 수능이 불안하다. 겨우 150일 남은 올해 수능을 앞두고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헤아리느라 모두들 혼돈스럽다. 너무 어려워서 내용을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과 적당히 어려워야 변별력이 있다는 의견이 부딛힌다.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졌다 하고 학부모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책의 논의와 조율과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쉬움과 함께 하루 하루 다가오는 수능날짜는 버겁기만 하다. 백년대계 교육을 조삼모사 당국에 맡겨놓은 꼴이라 온 나라가 조마조마하다. 논란의 가닥이 여럿이지만, 필자는 ‘언어영역 비문학 문제나 과목융합형 문제를 배제하겠다’는 교육부의 지침에 주목한다.비문학이나 융합형 문제는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 교육은 미래 인성을 기르는 일이다. 수험생의 언어능력을 시험하면서 평가대상 영역을 ‘문학’으로 제한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다음 세대가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발휘해야 할 언어능력을 어떻게 문학 지문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비문학 소재를 다루어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왔을까. 초중고 국어 교과서에도 문학작품들만 실려있는 게 아니다. 문학작품 읽기와 쓰기가 물론 주요 관심사이지만, 언어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가닥의 소재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역사 이야기, 진로탐색 스토리, 매체습관 훈련 등 사회와 문화, 과학과 기술 관련 지문들이 여럿 보인다. 학생들의 언어소양을 문학 소재로만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과목융합형 문제도 제외하겠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이미 융합형 통합형 인성을 기다린다. 교과과정 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하여 학생들의 인성을 인위적 틀에 가두는 편협한 사고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였다. 국어, 영어, 사회, 과학…. 학습의 편이를 위하여 학교교육은 과목을 구분하지만, 오늘의 문제는 과목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에 도로를 개설할 때에 길 주변 마을공동체의 문화사회적 상황을 살펴야 하고, 사회복지정책을 수립할 적에 성별세대별 인식수준을 관찰해야 한다. 수능의 언어영역 문제로 과학적 글쓰기소양을 살펴야 하고 수리영역 문제에서 사회적 책읽기가 평가되어야 한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유연하고 포괄적인 사고능력을 발휘하는 통합형 미래인성을 길러야 한다.수능은 12년간 초중고 교육을 통하여 길러진 수험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여 앞으로 대학교육을 받아낼 소양을 살피는 제도이다. 수험생들 간 차이를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하여 문항들 사이에서 적정한 난이도 배분은 불가피하다.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치밀한 분석력을 발휘하여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지 가늠할 필요도 있다. 어렵고 쉬운 문제가 고루 등장하여 수험생의 주의력과 분석력이 적절하게 평가되어야 한다.프랑스의 학생평가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00E9at)에 올해 등장한 문제는‘평화를 원한다는 것은 정의를 원하는 것이기도 한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우리와 사뭇 다른 경우다, 하지만, 학생들의 통합적 융합적 사고능력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

2023-06-21

아직도 어른을 찾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다. 교육적이어야 할 학교 공동체에서 발생한 폭력은 일반 사회에서 벌어진 폭력과 다르기는 하다. 가장 중요한 가닥은 아마도 가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가 많으므로, 교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까닭이 있겠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해도 피의자가 미성년인 경우에는 특별하게 다룬다. 학교에 교육이라는 명제가 있다지만, 사회에도 교정과 회복이라는 까닭이 있다. 학교폭력이라 하여 과도하게 다르게 바라보고 특별하게 다루어야 할 까닭이 그리 분명하지 않다. 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수사, 기소와 재판이라는 정교하고 치밀한 제도적 접근방법이 정비되어 있는 반면, 학교폭력이 절차에 있어 시스템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지는 오히려 미지수다. 학교폭력도 당연히 폭력이다.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맞서는 우리의 태도는 어찌해야 할까. 일본이 바다에 버린다는 물을 사람이 마셔도 괜찮을 것인지를 묻는다. 물에 오염되었을 방사능으로 인간이 건강을 해칠까 하여 불안하다. 방류의 결과가 안전하다면 일본은 왜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바다에 버린다는 것인지, 가장 중요한 질문에 속시원한 답이 아직껏 없다. 실은, 한 가지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오염수로부터 인간이 안전할 것인지를 묻기 전에 방류가 바다와 자연을 혹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지 않겠다는 약속이 있다. 물고기와 바다는 어찌 되는 것인가. 하나뿐인 지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국제사회는 일본에 물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하고 바다를 보전하기 위하여 일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방류가 자연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관하여 일본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방사능에 아무런 까닭없이 피폭을 당해야 하는 물고기들과 저 멋진 바다는 어찌할 것인지.다가오는 여름이 엄청 무덥겠다는 예측이 있다. 정부가 보다 분명하게 사안을 짚어내어 국민을 안심하게 하고 환경훼손을 최소로 하도록 접근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있다. 경륜이 깊고 덕망도 높은 인사들이 왜 침묵을 지키는지 안타깝기도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적에 그런 분들이 논란의 매듭을 풀어내는 데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나라 안에 그런 분들이 사라졌다기 보다 오히려 생각깊은 사람들이 오히려 많아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교육과 지식수준이 한층 높아졌으며 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이해도 우리 안에 편만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건너온 사회적 집단 경험치도 대단히 높다. 예전에 역사와 민족 앞에 깃발을 들었던 소수의 지도자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열어가는 수많은 어른들이 나라 안에 가득하다. 당시에 대결과 타도로 난제를 돌파했다면 이제는 토론과 협상으로 논리적인 해결을 이어가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앞에 설 어른을 찾지 말아야 한다. 겪을만큼 겪었고 배울만큼 배운 당신이 이제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건강한 집단지성으로 가득한 사회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2023-06-14

스무살 정신으로 돌아가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일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갓 스무살 축구선수들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나라 안 소식은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그들이 보내오는 소식에 가슴이 다 시원하다. 어른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아이들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국내뉴스로 국격이 내려가는데 해외뉴스가 나라체면을 붙들고 있다. 정치와 경제와 외교와 국방에 날마다 낙제점수가 쌓여가는데 스포츠 한 방에 백점 기분이 되어 하루가 즐겁다.이겨놓고도 태도가 놀랍다.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고 모두가 서로를 칭찬할 뿐이다. 천금같은 골을 넣고도 잘 올려준 코너킥 덕분이라고 했다. 승리를 따낸 감독은 끊임없이 선수들을 다독이고 선수들은 하염없이 동료들을 챙긴다. 나라야 어찌 되든 내 자리만 지키는 이 나라 정치판과 얼마나 다른가. 국민이 어찌 살든 내 욕심만 채우려는 어른들과 얼마나 다른가. 뻔히 보이는 실수에도 남들만 탓하는 그네들과 참으로 다르다. 어쩌다 좋은 일에는 자기자랑으로 침이 마르는 당신들과 너무나 다르다. 힘들고 어려워도 욕심없이 서로 부추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무살 정신이 부럽고 자랑스럽다. 어디까지 이길 것인지 묻는 기자에게 감독은 바로 앞 경기에 집중할 뿐이라고 했다.스무살 그들이 나라 안 어른들보다 백 배는 멋지다. 이기고도 한없이 소박한 청년에게 배워야 한다. 끝없는 탐욕을 날마다 들키는 나라 안 어른들이 창피할 일이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달리고 달리는 너희들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정치판 악다구니에 식상한 국민들이 새벽잠과 싸워가며 축구경기에 몰두하는 까닭이 있다. 빈껍데기 약속들과 거짓말 스테레오에 지칠대로 지친 시민들이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경기에 집중하여 열심히 달리고 욕심없이 함께 땀흘리는 팀스피리트를 청년들의 축구경기에서 드디어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나라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구하지 못한다. 겸손하고 소박한 보통사람이 힘을 모아 지킬 뿐이다. 어려운 경제도 허장성세 한 방에 풀어지지 않는다. 성실한 국민이 티끌모아 쌓아올릴 때 나아질 터이다. 무엇을 해도 욕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길러온 실력으로 오늘의 최선을 던지는 젊은 선수들이 고맙고 고맙다. 자신이 힘든 만큼 함께 달린 동료들도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고개숙일 줄 아는 청년들이 너무나 귀하다.다음 경기에 기대가 높이 걸린다. 이기든 지든 온 힘을 다해 달려줄 선수들에게 높은 기대를 건다. 화려한 정치 술수보다 그네들의 축구실력이 훨씬 정직하고 순수하다. 경기 내내 보여줄 거짓없는 열심과 욕심없는 협력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내일의 경기에도 혼신의 열정을 다하여 이겨주길 간절히 원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젊은 기백에 박수를 보낸다.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멋지게 싸워 줄 것으로 기대한다. 쉬운 경기가 없고 쉬운 정치가 없다. 나라를 책임진 당신들도 스무살 정신을 다시 찾았으면 한다.

2023-06-07

교육, 기본으로 돌아가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경제가 어렵고 외교가 복잡하다. 안보가 위태롭고 사회도 불안하다. 온 관심과 신경이 대통령실과 국회에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도외시되는 가닥이 있다. 그런 중에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가 ‘교육’이다. 생각을 놓고 있으면 퇴보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끊임없이 고심하고 지혜를 모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교육이다. 겉으로 중요해 보이는 사회적 관심분야들이 즐비하지만,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가닥이 교육이다.미국교육의 개혁을 이끌었던 다이앤래비치(Diane Ravitch), 위대한 미국교육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해 새로운 발상을 여럿 제시하였다. 시장의 논리를 교육에 도입하였고 학교들을 평가하여 선택적으로 줄을 세웠다. 경쟁과 시험을 적극 강조하여 잘하는 학교들을 밀어주었다. 경제논리를 적용하면 미국교육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였다. 수년간의 시도 끝에 그는 교육이 오히려 뒤로 물러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교육개혁이 추진될수록 공교육의 질은 퇴보하고 처음 목표에서 벗어나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기대를 저버린 결과에 실망하였지만, 교육에 관하여 중요한 진실을 깨달았다.사람을 길러야 하는 교육을 시장논리로 접근하면 오히려 다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우리의 교육개혁을 위한 실험은 실패하였다. 경제적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학교에 진정한 교육적 요소를 불어넣으며 진정한 가르침과 배움을 가능하게 할 여건을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고백하였다. ‘대한민국의 선한 양심’으로 알려진 손봉호 교수는‘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도록 이끄는 일과 기본적 도덕성을 길러주는 일’이라고 하였다. 혼자서도 배우며 세상을 헤쳐나갈 힘과 누가 보지않아도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용기를 길러주는 것보다 필요한 게 있을까.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교육은 기본을 지켜야 한다. 교육부는 수년 내에 지방대학들 가운데 30개 대학을 선별하여 글로컬대학으로 키운다고 한다.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을 교육에 적용하고 시장의 논리를 교육에 도입하여 대학들을 줄세우고 탈락하는 대학들이 쏟아져 나올 모양이다. 선발되지 못할 수많은 지방대학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경쟁과 시험, 선발과 탈락의 굴레에만 머무르는 교육의 모습은 처연하다. 학교의 운명이 그저 돈만 바라보게 된다면, 이미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진 게 아닐까. 교육은 국민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서열을 짓고 특권층을 만들며 차별이 생기는 교육은 지양해야 한다.세월도 변하였다. 그간 교육의 주제어가 추격과 경쟁이었다면 이제 세상은 상생과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상상과 창의로 가득한 다음세대를 길러내려면 오늘 우리의 교육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교육개혁에 실패했던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교육에 평생을 바친 노교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경제로 교육을 어찌해 보려는 시각을 거두어야 하고, 나라의 교육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5-31

축제도시, 포항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지역마다 축제가 있다. 하필 코로나19 탓에 몇 년 동안 숨을 죽였던 축제의 기운이 나라 안에 넘실거린다. 적지 않은 재원을 써가며 진행하는 축제는 무엇인가 거두어야 한다. 지역은 축제를 왜 하는가.포항은 4년 만에 포항국제불빛축제를 쏘아 올린다. 2004년에 자그마하게 시작했던 행사가 오늘만큼 성장한 일은 수많은 이들의 정성이 모아진 결과다.슬로건 “Light on 포항, 밤하늘을 비추다’에 맞추어 축제를 펼쳐 올린다. 다른 곳은 몰라도, 포항에는 이 축제에 분명한 까닭을 싣는다. 알려지기로 하룻저녁 불꽃놀이가 초점이라지만, 포항의 축제는 이름부터 다르다. 불과 빛, 도시의 열정을 한데 모아 ‘불꽃’을 터뜨리지만, 포항은 은은하고 꾸준한 희망의 빛이 넘치는 지역이고 싶다. 이 도시에 기대어린 내일이 있음을 밝히고 싶고, 사람을 모으는 정성이 환하게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다. 시민들에게 젊은 가슴이 넘침을 확인하고 싶고, 멀리서도 찾아오는 외지인의 발길을 목격하고 싶다. 축제가 모든 이들에게 소망의 불씨를 살려내는 이벤트가 되었으면 하고, 사흘 축제가 지난 뒤에도 긴긴 여운을 남겼으면 한다.시민들이 손수 만드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미 가지고 있었던 소양과 재능이 드러나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지역의 스토리가 보란 듯이 무대에 올려져야 한다. 포항문화재단이 주관하지만,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축제를 구현해야 한다. 시민들이 ‘우리들의 축제’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으면 한다. ‘퐝거리퍼레이드’에 사람들의 열정이 보였으면 하고, ‘시민디자인불꽃쇼’에서 시민의 상상과 창의를 목격했으면 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손길이 모아진 축제에서 지역의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고 외지인의 부러움도 한껏 살아나지 않을까. 시민참여형 축제가 포항에서 불빛처럼 타오르길 기대한다.포항시는 축제를 도시브랜딩의 중요한 한 축으로 삼아야 한다.지역에는 포항국제불빛축제 외에도 다양하고 풍성한 축제 프로그램이 있다. 예산을 소비하고 빈축만 사는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축제마다 독특하고 분명한 지향성을 확인하고 지역의 열정과 기대가 한데 어우러지는 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포항에서만 발견하는 지역정체성을 확인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바다와 철강의 이미지를 살려야 하고 도시와 자연이 함께 호흡하는 분위기를 드러내야 하며 유구한 전통이 숨쉬고 싱싱한 내일이 꿈틀거림을 확인해야 한다. 어른과 아이가 모두 행복한 도시가 되어야 하고 기꺼이 서로 도우며 함께 발전하는 지역임을 보여주어야 한다.‘축제도시 포항’에서 기대와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도시가 살아있음을 세상에 알려야 하고, 상생과 협력의 기운이 이 도시에 충만함을 자랑해야 한다. 메인이벤트인 불꽃의 향연에는 도시의 열정이 한껏 발산되어야 하고 지역의 탄성이 마음껏 터져나와야 한다. 축제는 지역을 하나로 묶어내는 시간이어야 하고 외지인의 관심이 지역으로 모여드는 계기여야 한다. 오래간만에 축제의 열기에 흠뻑 취하고 싶다!

2023-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