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이기고 돌아오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아시안컵 축구대회의 막이 오른다. 카타르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한 대한민국 대표단은 역대 최강의 전력이다. 토트넘홋스퍼의 손흥민을 주장으로 파리생제르맹의 이강인, 울버햄튼 원더러스의 황희찬, 바이에른뮌헨의 김민재, 츠르베나즈베즈다의 황인범 등이 함께 뛴다. 실력으로만 보면 흠잡을 데 없이 강한 팀이다. 선수들이 모든 경기를 다치지 않고 거뜬히 치러주길 기대한다. 바라기는 물론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면 한다. 아시안컵대회에서 우리는 겨우 두 번 우승했었으며 그것도 64년 전이라 한다. 오랜 숙원을 시원하게 풀어내는 우리 대표팀이 되었으면 한다. 거의 전 국민의 기대가 아닌가 싶다.놀랍게도, ‘대한민국 대표팀이 우승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사람이 둘 있다. 손흥민의 소속 팀 토트넘 홋스퍼의 포스테코글루 감독, 그리고 손흥민의 부친 손흥정 감독. 우선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까닭은 익살스럽다. 호주 출신인 그는 ‘호주가 우승했으면 좋겠다’면서 대한민국이 준우승하라고 했다는 게 아닌가. 호주의 국가대표 감독도 역임했던 그로서는 거의 당연한 주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손흥정 감독의 까닭에는 의미가 있다. 아들이 뛰는 경기에서 우승하지 말라는 그의 속셈은 무엇일까. 우선 객관적인 전력에서 일본에 뒤진다고 했다. 선수 개개인의 축구실력을 모두 모으면 한국이 일본에게 절대적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이번에 우승하면 한국이 자만하게 되어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가 어두워진다고 했다. 실력뿐 아니라 경기력 향상을 위한 투자에도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에 턱없이 못 미친다고 한다. 우승이 선수들의 자만뿐 아니라 축구계의 타성과 게으름을 초래할 것을 경고한 표현으로 보인다.손 감독의 지적은 옳다. 실력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면 사람은 게을러진다. 그의 아들이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 수준의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데도 그는 ‘손흥민은 월드클래스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였다. 잘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하듯, 그는 아들이 더 나은 경지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이전 어느 때보다 가장 든든한 실력을 갖추었다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여 우승에 가까이 가 주길 기대한다. 마지막 한 경기까지 승리하여 우승컵을 거머쥐길 바란다. 손흥정 감독의 걱정어린 한 마디처럼 ‘이후에도 자만하지 않으며 조련의 고삐를 느슨하게 하지 않는 대한민국 축구’가 되어주길 소망한다.쓴소리는 약이다. 경기에 임하여 어느 순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국내 상황이 여러모로 어지럽고 복잡하지만, 시원한 경기력으로 사이다처럼 이기는 축구를 해주길 바란다. 이번에는 부친의 소망을 어기는 아들이 되어주길 바란다. 60년도 넘게 못 들어본 아시안컵을 들어올리는 건각들을 기대한다. 우승하였지만 자만하지 않는 축구계의 모습을 보여주어 대한민국 축구의 앞날도 환하게 해 밝혀주길 바란다. 오랜만에 축구로 하나가 되는 몇 날이 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축구, 파이팅!

2024-01-10

특별한 기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새해가 밝았다. 흐린 하늘 탓에 수평선을 박차고 오르는 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달력은 어김없이 용띠해로 접어들었다. 새날을 맞으며 거는 목표와 다짐이 한가득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사회와 나라에 바라는 바가 먼저 떠오른다. 개인적인 성취와 보람이 벅찰 터이지만, 공동체가 오늘보다 나아지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다.먼저,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 새해를 스산한 칼부림으로 시작하였다. 상상조차 끔찍한 폭력이 자행되는 오늘은 정상이 아니다. 누구를 미워하여 세상이 나아질 수 있을까.생각을 폭력으로 제압할 수 있을까. 남을 해치며 내가 이기는 게임을 오래 할 수 있을까. 칼이든 돌이든 물리적인 수단으로 거두는 성취는 보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보복이든 반격이든 폭력은 곱절로 번지게 마련이다. 신체적인 위해만 폭력도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어 마음에 병을 깊게 들게 할 수 있다. 학교폭력이 그렇고 사이버폭력이 그렇고 성폭력도 그렇다. 폭력은 범죄다. 무겁고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폭력을 물리치는 각성과 다짐을 새로이 하는 사회적인 캠페인이라도 일었으면 한다.새해는 정치판이다. 곳곳에 현수막이며 쉬지도 않고 전화벨이 울린다. 진심인지 빈말인지 헤아리기도 버거운 구호와 외치는 소리가 벌써부터 소란하다. 좋은 정치가 일어나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요란하기만 하고 공허한 세상이 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바뀔 것 같지 않으니, 깨끗한 한 표를 지닌 유권자들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질곡에서 건져낼 사람을 찾아야 한다.거짓과 선동에서 나라를 구해야 하고 폭력과 협박에서 사회를 건져야 한다. 희망과 기대를 다시 찾아야 하고, 상상과 창의를 다시 올려야 한다. 멈춰선 오늘에 시동을 걸 사람을 뽑아야 하고, 어제보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비난과 욕설에 솔깃하지 말고 비전과 계획을 말하는 사람에 주목해야 한다.새해에는 진짜 문제가 조금씩이라도 풀리는 모습을 만나고 싶다. 정략과 술수로만 시끄러운 정치권은 담론의 주제를 바꾸어야 한다. 공천과 탈당이 문제가 아니라 저출산과 고령화가 진짜 문제다. 당신들 개인 욕심이 문제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하루하루 민생이 진짜 문제다.정치판의 구도가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경제와 사회의 안녕이 진짜 문제다. 정치인의 이합집산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안녕과 국토의 수호가 진짜 문제다. 다음세대 교육과 미래는 누가 챙기는가. 지구온난화와 기후문제는 돌아보고 있는가. 미래를 향한 비전과 계획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해결책의 실마리라도 붙들고 씨름하는 정치를 만나고 싶다. 개인적인 소망도 여러 가닥이지만, 2024년에는 사회적인 진전이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벌어지는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봄에 있을 총선이 단초가 되어 나라와 사회에 좋은 일이 겹겹이 생기는 새해를 기대하고 기대한다. 2024년, 파이팅!

2024-01-03

문과와 이과부터 사라져야 한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사람은 사람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에 관해서 늘 궁금하다. 나는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다 보니, 사람을 유형별로 나누는 습관이 생겼다.혈액형으로 사람을 제 종류로 구분하더니, MBTI는 인간의 성향을 열여섯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문과와 이과로 나눈다. 공교육의 문턱을 나서는 어린 학생을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누어 오가지 못하게 설정하는 게 옳은 일일까. 다행히 최근에 수능은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통합형으로 치른다.그러면서도 수학과목에 통계와 확률을 선택하면 ‘문과’로 이해하고 기하와 미적분을 선택하면 ‘이과’로 본다.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뿌리깊은 인식구조가 아직 살아있는 셈이다.문과와 이과 구분을 없앤다는 정책이 저 ‘선택’ 탓에 오히려 왜곡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가 사라지고 있어 교육계는 학교교육이 뒤틀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과를 선택하면 대학입시에 유리하여 문과 성향 학생들마저 이과 수학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과적 또는 문과적 성향의 구분이 과연 가능할까.학문과 전공분야에는 이과와 문과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선택지가 넘치도록 많다. 직장사회와 직업구조도 문이과를 구분하기보다 오히려 문과와 이과적 사고와 태도 가운데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문과적으로만 생각하거나 이과식으로만 사고하는 세상이 이미 아니다. 문과와 이과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누구나 겸비해야 하는 소양성향쯤으로 이해해야 한다. 개인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가질 수도 있고 덜 가질 수도 있지만, 누구나 문과와 이과적 이해와 태도를 버무려 장착해야 한다.문제는 유형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기업경영은 문과인가 이과인가. 가정살림은 이과인가 문과인가. 상황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통합적이며 균형잡힌 사고가 날마다 필요하다. 상황을 분석해야 하고 사람을 읽어야 한다. 숫자에 밝아야 하고 느낌을 짚어야 한다.배경지식도 필요하고 미래예측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문과와 이과라는 벽을 치고 칸을 만들어 서로 오가는 일마저 불편해져 버렸다. 문과와 이과는 함께 나눌 이야기마저 궁핍해져서 사회는 또 다른 양극화를 겪는다. 넘나들기 어려운 섬들이 생겼다. 문과적 소양과 이과적 능력을 따로 구분해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학생들이 균형잡힌 인성을 형성해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문학과 역사, 수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폭넓게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유네스코(UNESCO)는 네 가지 영역을 든다. 분석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상상과 창의(Creativity), 협력과 상생(Collaboration), 소통과 교류(Communication)라 한다. 문과나 이과의 구분은 보이지 않는다. 과목의 이름도 없다. 통합적으로 균형잡힌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며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위하여 우리 교육이 문과와 이과라는 케케묵은 구분부터 실질적으로 없애야 한다.

2023-12-27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2023년 대한민국 인구포럼에 참여했던 미국 위스콘신대 카렌 보겐슈나이더 교수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절망적이다’라 하였다.그가 희망이 섞인 대안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현재 우리가 가진 인구위기는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사회적인 문제들이 속속 나타난다.이대로 가다가는 20년쯤 후는 나라의 경제, 사회, 문화가 총체적으로 가라앉지 않을까 싶다. 인구문제는 나라의 문제이면서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구는 얼핏 머리 숫자 문제처럼 보이지만, 보다 넓은 영역의 생활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내가 살기 힘든 곳에 아이들까지 낳아 고생시킬 부모는 없다. 살기 좋은 환경이 살아나려면 무엇을 먼저 고민해야 할까.대학을 졸업하는 청년들이 거의 모두 서울로 달려갈 꿈을 꾼다. 몇 년을 머물러 살면서 공부하고 생활했던 지역에는 왜 관심이 없을까. 청년들이 말하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는 일자리와 문화다. 경제력을 이어갈 일터가 부족하고 재미있고 신나게 즐길 문화텃밭이 척박하다는 것.일자리가 서울이라고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진짜 문제는 문화인 셈이다. 돈도 필요하지만 즐길 거리가 필수라는 것. 살기 좋은 도시를 공표하는 해외 자료들에도 문화적 배경이 경제적 여건보다 우선순위 앞자리를 차지한다.마을과 지역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와 자랑거리. 외지 사람들마저 마력처럼 끌어들이는 흥미와 매력.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독특한 그 무엇. 평범해 보여도 스토리텔링의 힘이 번득이는 홍보와 마케팅. 지역이 가진 문화의 힘 덕에 살아나는 지역시민의 자긍심. 솟아오른 긍지는 지역을 자랑스럽게 만들어내고야 만다.문화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발굴하여 나누면서도 오늘의 감각에 맞추어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 문화콘텐츠를 멋지게 ‘현재화’할 때 어른들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어린이들도 함께 즐기며 누리게 될 터이다. 담긴 의미를 그대로 두면서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재미있고 알기 쉽게 새롭게 만드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세상이 우리와 함께 호흡하도록 ‘글로벌화’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이 가진 소중하고 풍성한 이야기 소재들을 다시 돌아보아 오늘의 문화, 세계의 이야기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노력이 있었으면 한다. ‘옛것’으로서 문화를 넘어 오늘의 ‘일상’을 풍성하고 즐거우며 재미있게 만드는 문화의 텃밭을 가꾸어야 한다.문화가 살아나 지역민의 일상이 되면 지역의 자긍심이 올라가고 주변으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 터이다.지역의 품격과 매력에 끌려 찾아올 관광객의 발걸음과 함께 경제적 발전은 지역의 안정적인 인구정책과 관리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지역소멸을 두려워하기 보다 문화와 이야기의 힘에 승부를 걸었으면 한다. 우리만의 이야기를 살펴 발굴하고 오늘의 트렌드에 맞추어 새롭게 창조하여 문화와 예술이 넘실대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2023-12-20

이제는 문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60년대에 상업창부(商業創富)라 하였다. 장사로 얼른 돈을 벌어야 했다. 80년대가 되자 과기창신(科技創新)이라 외쳤다.과학기술로 새로운 걸 만들자고 했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문화창의(文化創意)의 기치를 걸었다. 이제는 문화로 뜻을 만든다는 것이다. 중국 이야기다. 중국이 공산사회주의롤 기조로 하면서도 시대마다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국가를 경영해 오는 기조를 그렇게 바꾸어왔다. 지난 세기를 건너오면서 상업과 과학기술에 운명을 걸었고 이제는 문화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문화산업을 핵심산업으로 지정하고 국민총생산(GDP)대비 5퍼센트 정도를 문화로 채우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문화확장정책의 한 가닥으로 눈에 뜨이고,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연결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에도 문화가 적지않은 부분을 차지한다.21세기는 문화가 이끄는 시대임을 선포한 것이며, 여러 방면에서 풍성한 문화정책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정치와 경제, 외교와 국방이 나라를 운용하는 기본수단이지만, 문화의 텃밭이 넉넉해야 새로운 시대를 자신있게 열어갈 것임을 알아챈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문화의 중요성에 눈을 돌리는 세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혼란했던 시절에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 주석이 이렇게 적었다.‘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그토록 어지러웠을 국가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문화를 떠올렸을까. 어떻게 문화를 ‘힘’이라 적었을까. 그는 사람이 푯대로 삼아야 할 여러 지향점들 가운데 문화가 가장 높은 경지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의 것이라 내세울 문화가 우리에게 있는가. 문화를 힘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얼마가 생각을 기울이는가. 정치와 경제로만 사람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며, 국방과 외교에도 한계가 있다. 독특하고 분명한 문화적 품격을 길러야 한다. 우리 스스로 이를 살피고 발굴하며 다듬어야 한다.지역은 어떠한가. 지역에 고유한 문화원형(文化原形)을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활용하여 지역만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는 모두 옛날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고루하다. 문화는 지극히 자연발생적이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언제든 새롭게 피어나고 저절로 변화해 간다. 오늘 우리의 모습에서 남들과 다른 독특한 문화자산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문화다. 문화로 승부하고 상상력으로 겨루어야 한다. 이전과 다르고 남들과 다른 나라가 되고 지역이 되어, 문화가 힘이 되는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어려웠을 때 문화를 떠올렸던 까닭을 새겨야 한다.

2023-12-13

포항은 사라지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최근 외신은 대한민국이 인구격감으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하였다. 합계출산율이 1 아래로 떨어진 나라가 세계적으로 드문 가운데, 우리나라는 놀랍게도 0.78을 기록하였다. 이는 한 세대 30년이 지나면 인구가 오늘의 39퍼센트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숫자다. 5천만 대한민국이 2063년 경이면 2천만이 되고 2093년에는 1천만도 안 되는 작은 나라가 된다. 인구가 국력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이웃 일본이 합계출산율 1.3 이상을 버티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인구정책에 있어 우리가 큰 문제에 봉착했음에 틀림이 없다. 포항은 어떤가. 작년 통계는 합계출산율 0.88이다. 국가평균보다는 낫지만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포항인구는 30년 안에 22만, 60년이면 10만 아래로 쪼그라든다.100년쯤 지나면 포항은 지도 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을 살리고 포항을 살릴 수 있을까. 인구동향에 지혜를 모아 대처해야 한다.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 논설은 대한민국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까닭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극심한 교육경쟁 문화가 젊은 부모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에 더한 극심한 불안을 안겨주는 문제가 우선 크다. 그리고 문화적 보수성향과 문화경제적 현대화 사이에서 생기는 사회적 갈등의 문제가 극심하다. 교육경쟁은 심각하다. 인구의 감소로 대학정원이 급격히 줄어드는 데도 대학입시를 정점에 둔 교육정책의 결과로 수험생과 부모들에 대한 압박은 오히려 늘어난다. 자녀양육과 교육을 편안하게 대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낼 정책적 배려가 시급하다.유교문화에 뿌리를 둔 우리의 가부장적 문화기반이 현대적 가족질서로 나아가는 길에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문화적 갈등을 빚고 있다는 지적도 따끔하다. 남성위주였던 노동시장의 질서는 양성이 모두 참여하는 새로운 길로 들어섰는데 가족관계와 자녀양육 등의 역할과 의무는 아직도 전통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모두 맡아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부담에서 탈피하려는 게 당연하다 싶다. 새 생명이 가정에 찾아오는 기쁨을 함께 누리고 다음세대의 성장을 즐겁게 도우며 미래를 가꾸어가는 보람을 만끽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고려가 있어야 한다. 가부장적 태도가 엿보이는 ‘여성중심’의 생각을 벗어나 ‘양성이 함께 참여하고 더불어 누리는’ 출산과 육아 그리고 가정으로 이끌어야 한다.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룬 결과 오늘의 인구수준을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은 2.0이 되어야 한다. 두 사람이 만나 두 사람을 남기는 일. 선진국들의 추세는 1.50 정도로 보인다. 합계출산율 0.78은 낮아도 너무 낮은 수준이다.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순전한 기쁨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가정의 행복이 나라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국가정책의 입안과정에서 인구문제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특단의 조치들이 따라야 한다.아이를 더 낳고싶은 터전을 만들어 미래의 대한민국을 앞당겨야 한다. 아기 울음소리로 가득한 포항을 만들어야 한다.

2023-12-06

선거문화, 문제있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정치의 계절이다. 총선이 다가온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데, 국민은 혼란스럽다. 300명 국회 구성원을 바꾸는 절차일 뿐인데 온 나라가 어지럽다. 아직은 지역구도 획정해야 하고 비례대표 선출방법도 오리무중이라 국민은 마음이 산란하다. 국민은 그저 평온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안심하고 살아가는 나라를 만나고 싶은데, 정치판은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소용돌이를 친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잔치가 이벤트 행사판이 되어 사방이 확성기 소음으로 시끄러울 예정이다. 지역이 바뀌고 살림이 나아질 기대는 저만치 가고 후보 간 표 싸움만 그득할 셈이다. 무엇이 어찌 바뀔지는 제대로 가늠도 못 하고 표를 던져야 하니, 선거가 정말 국민과 지역을 위한 결과를 낳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후보의 입장에서도 정책이나 능력으로 승부하기 보다 인기몰이나 세 과시가 최우선이 아닌가. 새로운 일을 만들고 지역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나라에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하지만, 표심몰이와 포퓰리즘에만 집중하는 선거는 또다시 그렇고 그런 결과를 낳을 터이라 유권자가 이제는 선거에 특별한 기대를 걸지도 않는다. 민주주의 발전은 그만 두고 제자리걸음만 반복한다.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현수막과 확성기, 악수세례와 허리인사로 치르는 선거를 하염없이 거듭하는 선거판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겠는지. 희망과 비전을 실은 정책을 만들고 토론과 홍보를 통해 겨루며 언론이 정상 작동하면서 검증되고 확인되는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할 길은 없는가.정책입안 과정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홍보전략의 진행이 체계적으로 정돈되며 언론 소통과 전달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일은 우리 민주주의에서 불가능한 일일까. 정책은 국정과 지역의 현안을 치밀하게 분석한 결과로 토론과 조율을 거쳐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홍보는 유권자의 생각과 의견을 반영하면서 진심을 담아 진행되어야 한다. 언론은 지역과 유권자의 현상을 가늠하고 후보자들의 정책을 비교하면서 균형있는 소통을 이끌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소란스럽고 현란하기만 할 뿐, 정책과 비전은 뒷전이고 표심만 구걸하는 모습이 아닌가. 막걸리와 고무신이 판을 치던 그 옛적 선거와 무엇이 그리 다른지 알 길이 없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미래동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책, 홍보, 언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전문교육기관이 필요하다.소란하나 공허한 ‘빈수레 선거방식’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도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는 선거방식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기필코 수정해야 한다. 제자리 걸음은 사실상 퇴보다. 민주주의의 껍데기를 쓰고 인기 영합에만 집중하는 선거는 실패한 시스템이다. 뽑아놓고 후회하는 습관이 이대로 좋은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책, 홍보, 언론이 선진화되지 않고는 선거가 제자리를 잡을 길이 없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정책, 홍보, 언론의 전문화가 시급하다. 선거는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빚고 있는가.

2023-11-29

수능 다음 교육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지나갔다, 수능이. 한 해 내내 속을 태웠던 그날이 흘러간 지 벌써 일주일이다. 수험생에겐 1년이 아니라 살아온 평생을 깎아 넣었을 그 하루를 살아낸 지금, 당신의 소감은 어떠신가. 고3 교실의 오늘 풍경은 어떨 것인지 궁금하다. 대학입시에 모든 걸 걸은 듯 보이는 우리 교육의 모습은 처연하다. 공교육의 목표가 대입은 아니라지만 현실은 언제나 같은 자리가 아니었을까.성패의 비결이 그날의 시험으로부터였음을 아는 청년들은 수능을 여전히 무겁게 만난다. 수험생뿐인가. 자녀들의 장래가 걸린 수능 날에는 부모와 온 가족이 비상이다. 고3 담임교사와 학교도 긴장하긴 매한가지. 그런 하루를 보낸 지금, 모두들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을까.교육의 진정한 모습을 발휘할 시간이다. 수능의 긴장에서 풀려난 오늘, 20대를 눈앞에 둔 청년들이 이제야말로 미래를 생각할 시간이 아닌가.시험과 점수의 압박을 벗은 오늘, 살아갈 내일을 상상하며 비전을 세우고 꿈을 만들어야 한다. 세상에 눈을 뜨고 이웃을 살피기 시작하는 오늘이 되어야 한다. 어깨를 펴고 어른이 될 준비에 나서야 한다. 학교와 교실에 묶였던 시선을 넓혀야 하고, 남들과 함께 사는 어른의 일상을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 체험의 폭을 확장하고 만남의 범위도 넓혀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비로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품을 단초를 깨우쳐야 한다. 공교육의 틀을 벗어나 스스로 공부할 준비에 나서야 한다. 읽고 묻고 의심하고 토론하는 환경에 익숙해야 하고, 정답을 찾기 보다 질문을 지어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수능이 지나간 오늘, 수험생 개인뿐 아니라 학교와 가족은 자녀의 미래에 시동을 걸 출발점에 선다. 고교졸업과 대학입학이 형식적인 과정이지만, 준비를 위한 태도의 조율은 지금부터 작동해야 한다. 풀어진 긴장에 익숙해진 나머지 준비없이 대학생활로 접어들지 말아야 한다.온라인과 SNS가 대세라지만, 지식과 트렌드의 핵심은 여전히 책 속에 있다. 교과서를 벗어나 폭넓은 독서에 나서야 한다. 지식인 선배들이 먼저 깨우친 발견과 생각 가운데 내게 필요한 가닥을 얼른 챙겨 익혀야 한다. 주변의 국내 소식도 알아야 하지만 이제는 멀리 나라 밖 환경에도 다가가야 한다. 가까운 이슈들도 챙겨야 하지만, 기후와 인구 등 거대담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수능 다음 교육’에 관하여 우리 학교는 잘 준비하고 있을까. 통합교과와 생활교육에 교육계가 분발해야 한다. 청년들이 미래환경에 익숙하도록 이끄는 일을 학교가 맡아야 한다.수능이 지났다고 교육이 할 일을 다한 게 절대로 아니다. 공교육이 누려야 할 ‘유종의 미’를 ‘수능 다음 교육’으로 거두어야 한다. 자칫 풀어졌을 학생들의 긴장을 흥미로운 주제와 관심으로 다시 잡아내야 한다.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마지막 날까지 교사의 할 일이 남아있어야 한다.수능과 함께 모든 고삐를 던져버리는 실수는 학생도 교사도 피해야 한다. 수능이 지나가도 교육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

2023-11-22

수능날 다시 생각하는 교육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어김없이 수능의 날이 밝았다. 날씨와 상관없이 마음이 추워진다. 해마다 겪으면서도 이날은 새삼 스산하다. 청년들의 내일은 수능보다 훨씬 넓고 깊고 높다. 그럼에도 오늘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쌓은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길 바란다. 실력도 답안지 위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오늘은 후회없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수능과 대학입시. 이거 너무 오래 되지 않았을까.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거나 바꾸어야 한다는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수능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가 바뀌고 저출산고령화로 인구추이도 바뀌어 학생숫자가 급격하게 줄었다는데 수능은 그대로다. 이제는 미래지향적이며 글로벌한 교육을 생각한다면서 수능은 수십년 째 같은 모양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우리가 기르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문과와 이과.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 책 제목에도 등장한다. 모방하고 추격하며 겨우겨우 헤쳐왔던 시절에는 그런 구분이 필요했다. 과학과 기술에 능한 인재와 문화와 역사에 집중하는 사람을 길러내어 얼른 우리도 잘 살아야 했다. 사회 각계에 분야마다 권위자들과 실력자들이 있어야 했다. 세월이 바뀌었다. 이제는 다르다. 공교육이 문과와 이과를 가르는 건 거의 위험하다. 사람을 이과형 또는 문과형으로 길러내면, 사회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문화적 갈등을 깊게할 터이다. 수학적 논리와 과학적 사고를 하면서도 문화와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는 인간을 길러야 한다. 세상을 과학기술의 눈으로만 보면서 역사에 무지한 인간을 길러야 할까. 문화적 상상력만 넘치고 논리적 사고에는 맹탕인 사람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특성이 다를 수 있겠지만 교육이 나서서 차이를 넓힐 필요는 없다.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태도를 탈피해야 한다.유네스코(UNESCO)도 교육이 관심가져야 할 덕목으로 네 가지 소양을 설정한다. 협력(Collabora tion), 소통(Communication), 창의(Creativity)와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더 이상 홀로 존재하는 사람도 없고 고립되어 존재하는 직업도 없다. 세상은 모두 ‘협력’을 바탕으로 움직이는데 독야청청 뛰어난 실력은 의미가 없다. 대면하여 나누는 소통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소통방식이 다양해 졌다. 효과적으로 효율성 높게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 새롭게 바라보고 다르게 연결하는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 정답제시를 위한 기억력보다 문제해결을 위한 ‘창의’가 요청되는 까닭이다. 새로운 무엇을 쌓으려면 우선 존재하는 것들에서 문제를 발견해야 한다. 매사를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문제는 과목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문과적 소양과 이과적 덕목을 균형있게 버무려 통합적 사고와 획기적 돌파를 해낼 수 있는 인간을 길러야 한다. 상상과 창의로 승부하는 다음세대를 길러야 한다. 고작 문과와 이과의 차이를 발견하는 미시적 접근에서 탈피해야 한다. 과학적 사고에도 능하면서 문사철(文史哲)에도 이해가 깊은 통합적 인성을 길러야 한다. 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2023-11-15

정치의 계절, 국민의 다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정치권이 뜨겁다. 국민을 생각이나 하는지 정치의 진심은 헤아릴 길이 없다. 주권은 어차피 국민의 몫,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든 눈치를 볼 까닭도 없다. 국민은 소중한 한 표로 차갑게 평가하고 분명하게 심판한다. 국민이 선거를 앞두고 가져야 할 자세를 간추려 본다.첫째, 열린 사고. 나만 옳다는 생각을 이제는 벗기로 하자. 나의 주장만 옳다는 독선이 우리에게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가져다주었는지 우리는 모두 기억한다. 내가 맞다고 믿는 만큼 남들 생각에도 가치와 의미를 인정하기로 하자. 함께 고심하고 다 같이 만들어 가는 나라로 나아가기로 하자. 협상과 타협 없이는 늘 같은 자리에 맴돌 뿐임을 확인하고 명심하기로 하자. 둘째, 참여하는 마음. 투표로 참여하지만, 지켜보며 나의 권리를 지키는 민심을 살려야 한다. 이미 선출한 권력이 실패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다. 더 이상 권력의 오만과 편견, 독주와 욕망의 질주를 방관하거나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국민을 무서워하는 정치권이 되도록 길들여야 한다. 당신들이 잘못하는 날, 국민은 언제라도 바꾸어 낼 것임을 가슴에 새기게 하자. 투표 이후에도 제안도 하고 쓴소리도 하여, 정치에 나선 이들이 긴장하게 하자. 셋째, 공감과 배려. 나라와 사회가 잘 되기 위하여 우리는 운명 공동체임을 명심해야 한다. 추격과 경쟁으로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모두가 잘 살아가는 상생공동체를 한번 만들어 보기로 하자. 지역갈등도 부끄럽고 세대갈등도 이겨내야 한다. 온갖 차별을 넘어 화합으로 일어서야 한다. 사람이 모두 사람으로 존중받도록 하고, 다음세대 청년들을 더욱 세워 주어야 한다. 어려운 이웃들에 눈길을 돌리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흩어 버리지 않고, 모으고 모아 함께 잘 어울리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권력은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한다. 세계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대한의 국민에게 손색이 없다. 더없이 높은 자긍심으로 더욱 싱싱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지키고 이루어 낼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 각자임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들은 국민을 섬기고 국민은 나라를 성심으로 섬겨야 한다. 정치는 최선을 다하고 국민은 끊임없이 지켜보아야 한다. 정치는 더 이상 실족하지 않고, 국민은 더 이상 실수하지 말아야 하자.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이 시선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정치의 담론과 정치인의 대화 속에 나라가 안 보이고 민생이 안 들린다. 국격이 가라앉고 민심이 멀어진다. 정치는 욕망을 담아 공천과 표심을 바라겠지만, 국민은 일상이 답답하고 오늘 장바구니가 힘이 든다.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기대하지만, 나아질 기미는 추호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의 성공은 공천에 달린 게 아니라 국민의 하루하루를 챙기는 진심에 달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좌우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상의 고단함을 누가 덜어줄 것인지가 관건이 아닐까. 국민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이번엔 다르게 펼쳐야 나라도 살고 국민이 산다.

2023-11-08

한국교회에 묻는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506년 전 엊그제, 약관 34세 독일 청년이 세상을 바꾸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은 교회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세상의 물줄기를 소용돌이치게 하였다.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교황의 부당한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개신교의 출발을 알렸다. 루터 자신은 ‘종교개혁’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본인의 소신과 하나님의 이끌림에 따라 하는 수 없이 한 일이라고 술회하였다. 1517년 10월 31일 아침에 95개의 문장으로 적어 교회 정문에 내걸었던 선언문에도 그의 다짐과 경고는 물론 누구와도 토론하겠다는 의지를 함께 담았다. 개신교가 태동했으며, 사회와 역사가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오늘 우리 교회는 어떤가. 웬일인지 교회는 권력과 금력 앞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루터의 개혁은 교회를 ‘돈’의 그림자로부터 떼어내지 않았는가. 당시 면죄부로 상징되는 교황의 금권을 반성경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종교개혁을 시작하였다. 우리 교회가 권력을 탐하고 돈을 좇는 모습을 언론에서 만날 때, 목사님과 교회를 믿고 따르는 착한 교인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걱정이 된다. 교회는 개인의 복락만을 추구하는 기복(祈福)의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렵고 힘든 민생을 이어가느라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찾아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으로 부당하고 문화적으로 왜곡된 이슈들에 대하여도 윤리적 도덕적으로 반듯한 목소리를 만들어 전해야 하지 않을까.우리가 목격하는 한국교회는 사회적 담론 형성의 권위를 스스로 잃어버렸다. 오늘 들리는 교회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앞서 돈과 힘을 따라 세상에서 성공하여 행복하길 바라는 욕망을 전할 뿐이 아닌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정치적으로 건강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교회로부터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오백 년 전 독일 청년이 꿈꾸었던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전의 교회로 다시 돌아간 모습이 아닌가. 사람과 이웃을 섬기는 목사가 아니라, 교인들과 주변으로부터 대접받는 목사. 동네의 여느 집들보다 화려하게 우뚝 선 교회 건물들. 힘없는 이들을 보살피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힘있는 자들을 따르는 교회. 사회의 건강을 돌보기 보다 개인의 행복에만 천착하는 메시지.구석구석에서 선한 목회를 펼치는 목사님들도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싱싱한 포부와 멋진 믿음으로 신학에 도전하는 젊은이들도 많을 터이다. 16세기 독일 청년의 용기와 도전을 21세기에도 만나보고 싶다. 저렇듯 무너져 내리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 앞에 든든한 믿음으로 무장한 기개와 다짐을 목격하고 싶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두 번째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는 없을까. 이대로는 안 된다. 착한 교인들이 불쌍하고 수렁에 빠진 사회가 심각하다. 마지막 보루 한국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나라에 치유와 회복이 깃드는 날이 어서 찾아왔으면 한다.

2023-11-01

누구와 겨루는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학교폭력의 그늘이 짙다. 하필이면 권력의 주변에서 자녀들이 가해자로 발견되는 모습은 절망스럽다.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폭력도 무섭고 두렵지만, 마음을 병들고 무너지게 하는 게 학교폭력이다. 몸에 입은 상처는 곧 아물겠지만, 마음에 입힌 상흔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가해자는 장난이었기 때문에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일을 피해자는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떠올리곤 한다. 피해자 본인도 힘들지만, 부모와 가족이 겪는 고통은 또 어떤가.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이어가기 힘들어지고 긍정적인 관계형성이 어려워진다. 학교폭력은 반드시 사라져야 하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해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것일까.남보다 힘이 세다는 걸 증명하려고 그러는 게다. 상대방을 제압하고 올라서는 방법이 폭력이 아닌가. 남들이 무서워하는 게 통쾌해서 그럴 것이고, 힘으로 누구든 무찌르면 세상을 가진 듯하여 그런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남들을 괴롭힌다고 해서 나의 모습이 한 치도 자라지 않는다. 남을 딛고 일어서 내가 성장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지만 폭력은 진정한 우위를 증명하지 않는다. 비겁함과 졸렬함을 드러내면서 가해자의 인성적 가치는 곤두박질친다. 남들과 다투어 이기는 일을 ‘경쟁’이라 가르친 학교가 잘못한 게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강박은 폭력까지 동원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진정한 경쟁은 ‘나를 이겨내는’ 일이다. 부단히 실력을 닦아 성장에 이르는 길은 나 자신과 싸움의 연속이다.대한민국 헌법 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적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학교폭력이 막아서는 꼴이 아닌가. 학교에서 더는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미국 학교에서는 행복한 가르침과 즐거운 배움을 확보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다짐한다. ‘나는 학폭을 저지르지 않으며, 주변에서 학폭이 눈에 띄면 신고하고, 내가 학폭을 당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배움의 공동체여야 할 학교가 폭력에 물들게 할 수 없다. 학교폭력도 폭력이다. 발생하는 학교폭력을 보다 엄정히 대처하여 아침마다 등교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선도함은 물론, 피해자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법적인 처리방법도 강구해야 하지만,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교육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무한경쟁’이라 부르며 끝없이 남과 다투도록 내몰았던 교육방식의 공허함을 직시해야 한다. 나도 자라면서 남도 행복한 배움의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남을 해치면서 내가 성장하는 길은 없다는 걸 깨우치게 하고, 끊임없이 나를 이겨내며 거뜬히 일어서는 보람을 가르쳐야 한다. 생각으로 겨루고 토론하며 다투지만, 물리적인 폭력은 절대로 부르지 않는 행복한 교육을 회복해야 한다. 학교폭력으로 물든 어두운 교실은 시급히 바꾸어야 한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즐겁게 가르치며 배우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2023-10-25

무너지는 사회, 일으키는 교육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마음이 무너지는 일들이 발생한다. 중학생이 40대 주부를 성폭행했다고 하고, 60대 의사가 병원 간호사 탈의실에 몰카를 설치했다는 게 아닌가. 동방예의지국을 들먹일 까닭은 이제 무너져버린 것일까. 사회의 맨 앞에 선 정치와 언론은 정치놀음과 정략다툼으로 날이 새는데, 건강한 사회를 향한 담론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있는 것일까.나라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경제, 안보, 문화, 산업 등 수다한 과제들 가운데 우리가 쉽게 놓치는 명제가 있다.교육. ‘백년대계(百年大計)’는 먼 앞날을 내다보며 일으키는 일인데, 오늘 우리는 어떤가. 국가 공동체는 지금 교육으로 다져야 할 내일을 생각하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넘겨줄 다음세상에서 ‘다음세대’가 자신있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가. 내일을 고심하는 교육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가르쳐야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까.경쟁. 끝도 없는 경쟁.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으로 세상을 배웠다. 남을 이겨야만 성공하는 세상. 반목과 다툼이 일상이 되고 끝없는 비교만 넘치는 세상. 그런 끝에 만난 세상은 아름다운가. 이긴 자들이 과연 좋은 세상을 만들었는가. 주변의 모습에는 상처만 가득할 뿐, 행복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경쟁’의 본 뜻을 바꾸어야 한다. 진정한 경쟁의 의미는 남보다 나를 이기는 게 아닌가. 남을 밟고 일어서는 영광이 아니라 나를 이겨 거뜬히 서는 보람이 아닐까. 진짜 성공은 나 자신을 이겨내는 데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부족함과 게으름을 스스로 이겨내는, 나 자신을 이기는 경쟁이야말로 거친 세상을 이기고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첩경이 아닐까.선생님은 학생에게 누구인가. 끊임없이 응원하고 격려하여 더 나은 내일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날마다 부추기는 이가 아닌가. 반면, 실수를 지적하고 점수와 등수를 매기며 부족함을 드러내고 부끄럽게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학생이 오늘 무엇을 해도 ‘오늘의 최선’을 던졌음을 인정하고 그보다 더 잘하도록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그립지 않은가. 오늘 학생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당겨다 주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배우려고 다가온 아이에게 모자란 부분만 탓하며 비난으로 가득한 하루를 만나게 한다면, 아이는 그날 무엇을 배우게 될까. 부정적 인성이 되어 자신과 주변을 어둡게하지 않을까. 교육은 함께 사는 공동체를 키워야 한다. 일등만 대접받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잘난 사람만 득을 보는 문화도 공평하지 못하다.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서로를 포용하는 정신을 길러야 한다. 세상은 힘들고 거친 다툼의 장소가 아니라, 친절하고 따뜻하여 함께 사는 마음이 가득한 곳임을 가르쳐야 한다. 한 사람도 놓고가지 않는 학교를 구현해야 하며 모두 함께 즐거운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나라의 백년을 준비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2023-10-18

대추와 정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혼사를 치르고 우리 집 식구임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시부모는 새 며느리 치마폭에 대추를 던져주며 아들딸 많이 낳고 건강하게 살도록 기원한다. 하필 대추였을까. 장석주 시인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라 하였다. 한 알의 대추가 마치 태풍, 천둥, 번개와 같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끝내 이기고 견디어 검붉은 빛깔 멋진 대추를 선사하듯이, 새색시와 새신랑도 삶을 잘 헤쳐가기를 기원하면서 한 줌 대추를 안겼겠지.태풍과 천둥과 번개가 없는 삶은 없다. 어려움과 시련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의 살아가는 길 위에는 시련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스콧펙(Scott Peck)도 ‘삶은 어렵다(Life is difficult.)’고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였다. 개인의 삶이 어렵다면 사람이 모인 집단과 사회가 걷는 길도 쉬울 수는 없다. 무엇이라도 거두고 이루기 위하여 우리네 살아가는 여정은 힘들고 어렵다. 시련과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혜롭게 견디고 슬기롭게 이겨내어 보다 나은 열매가 열리도록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지치고 힘든 마음을 가져다주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쳐야 할 것인가. 지나가야 할 수많은 어려움들 가운데 찾아온 태풍과 천둥과 번개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가진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나면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인가를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나라가 어느 모로 보아도 어려운 일로 한 가득이다. 허리띠를 졸라맬 여유도 없을 만큼 일상이 어렵다는데 정치는 선거 놀음에 여념이 없다. 교육이 무너져 사방에서 아우성인데 정치는 표밭갈이에만 심취해 있다. 미래가 안갯속처럼 도통 보이지 않는데 정치는 과거로만 치달리고 있다. 나라 밖은 저만큼 달려가는데 나라 안은 시간이 멈춘 듯 갑갑한 마음. 왠지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느낌은 필자에게만 드는 생각일까. 아시안게임에서 돌아온 젊은 선수들에게서나 겨우 힘을 얻는 국민은 하루하루가 태풍이고 천둥이며 번개가 따로 없다. 구청장 보궐선거가 결판이 나면 무엇이 조금 바뀌려나 기대해 보지만 정치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면 그것도 그리 기댈 것이 되지 못한다.대추는 또한 몸을 따뜻하게 하며 젊게 해 준다고 하였다. 특별한 약성보다는 조화와 영양의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시련을 이겨낼 뿐 아니라 그런 결과 주변까지 맑고 밝게 하며 따뜻한 화합의 기운마저 보듬어 내라는 의미로 새색시는 대추를 한아름 받아들었던 것이다. 태풍과 천둥과 번개를 이겨낼 뿐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나은 빛깔로 변화해 가는 모습은 한 알 대추에서도 관찰도 가능하다. 우리 정치도 오늘 만난 어려움에 빠져있을 일이 아니다. 견디고 이겨낼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익어가는 대추를 바라보며 정치가 나라를 살릴 것을 기대해 본다.

2023-10-11

우리 글엔, 자존심도 없나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여기서부터 원스푸드(Once Food)거리입니다’. 무슨 말일까. 관광지로 제법 이름난 국내 어느 도시 사거리에 걸린 현수막이다. 한글로 또박또박 적힌 글이라 읽을 수는 있었지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군민 플로깅챌런지’라 큼지막하게 적은 현수막도 보인다. 영문자의 도움도 없어 아예 그 뜻을 가늠조차 못하겠다. 어느 병원은 아예 ‘Moocheok Joeun Hospital’이라 상호를 내걸었다. 찬찬히 읽어 ‘무척좋은병원’이라 새기겠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떨떠름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글인가 영어인가. 한국인가 미국인가. 민족의 명절 추석을 지내면서, 우리는 ‘우리의 것들’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아연해 졌다.‘Special Live Dinner Buffet’라고 광고를 하거나 ‘Forest Camping BBQ’라 버젓이 적어 알린다. ‘프레시랍스터’와 ‘핑크새먼디쉬’가 맛있는 집이라며 손님을 모은다. 그런 표현을 보면서도 별 생각없이 이해하고 넘기는 소비자들도 문제가 아닐까.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우리글과 우리말이 무너져 내린다. 언젠가 로스앤젤레스 등 외국의 거리를 한국말 간판으로 물들인다더니, 이제는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우리말이 사라져 간다. ‘원스푸드’가 음식점에서 음식물을 두 번씩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니 그 뜻은 오히려 고맙다. ‘플로깅’도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도 줍는 캠페인이었다니 곱지않게 보았던 마음이 오히려 미안하다. 관광지라지만 이왕 한글로 적을 거였다면, 보다 새기기 쉽게 표현할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한가위 명절을 지나며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보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한글날이 다가오는데, 중국글자 한자(漢字)를 힘들어 했던 백성들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던 세종 임금의 마음도 다시 새겨본다. 우리가 우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말과 한글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업수이 여길 때 남들은 우리를 또 얼마나 하찮게 여길까. 멋진 우리말을 버젓이 두고 외래어와 외국표현에만 익숙해지면, 우리말과 우리글은 또 얼마나 빠르게 사그라들까. 때로 습관과 태도는 의지적으로 지켜야 한다. 대상이 우리만의 것이었을 때, 그걸 지킬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 세계화와 글로벌이 대세라 해도, 우리만의 고유한 멋과 맛은 소중하게 간직하며 지켜낼 때 빛이 나지 않을까.한가위 보름달은 어디에도 떴지만, 온겨레가 명절로 섬기기는 우리뿐이 아닐까. 정겹고 아름다운 전통은 지켜야 하고, 몸에 배어 습관이 된 문화는 키워야 한다. 밖으로부터 흘러든 문화와 영향도 어렵지 않게 받지만, 우리의 모습과 부딪힐 땐 잘 생각해야 한다. 때로 우리보다 나은 무엇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문화 안에 깃든 정서와 흐름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무엇이라도 함부로 가벼이 여겨 쉽사리 팽개치는 잘못은 없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작은 나라지만 문화적 정체성과 경제적 영향력은 간단하지 않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소중히 여기고 다루어야 한다.

2023-10-04

우리 말이 위태롭다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우리 말이 위태롭다. 생각을 담아 표현하는 도구로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한다. 글로 쓰고 말로 전한다. 마음에 품은 생각과 느낌을 말에 실어 전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세상에 배울 일이 많지만, 말하기와 글쓰기만 제대로 습득한다면 필요한 교육의 절반쯤은 이미 성취한 게 아닐까.품은 생각을 조리있게 정리하고, 남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새롭게 구성하며, 품격을 싣고 안정감있게 표현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소양이었다. 사회와 국가가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여 균형있게 발전해 가기 위해서도 공동체 구성원의 건설적인 제안과 아이디어가 풍성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모든 표현은 말로 해야 한다.그처럼 중요한 말이 흔들린다. 우선, 표현에 논리를 잃어간다. 조리있는 표현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논리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표현해야 하며 조직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말에 논리가 정연하면, 듣는 사람에게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쉽게 이해하고 정리된 응답도 가능하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하여 말을 사용하면 논리보다 ‘한 방’을 찾게되어 정연한 표현구조는 힘을 잃는다.‘사이다’라 불리우는 공격포인트를 올리기 위하여 논리쯤은 쉽게 무시하고 만다. 말은 논리를 잃고 논리가 빠진 표현은 질서를 잃는다. 심각해야 할 사회적 담론을 단답형 공격형 어조로만 응대하다 보니 누구든 일방적 외침에만 의지할 뿐 의사소통에서 배우거나 얻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말이 품격을 잃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소통과정에서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언어에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수다한 정책적 아젠다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정치권은 우리 말을 훼손하고 격식을 잃게 만든다는 면에서도 책임이 크다.정치에도 공격 뿐 아니라 조정과 숙고, 협상과 타협의 묘를 기해야 할 가닥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언사를 직선적인 공격으로만 채우다 보니 우리 정치인의 언어는 품격을 잃고 허공을 헤매고만 있다. 말이 격식을 잃어가면서 국민의 마음도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국민 앞에 노출이 빈번한 정치인의 언어는 시급히 그 품격을 가다듬어야 한다.말이 안정감을 잃었다. 보수도 진보도 자신들의 생각조차 안정감있게 전하지 못한다. 공격의 다급함과 수비의 분주함에 쫓기다 보니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생각을 다듬고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정치권의 불안정하고 일회적인 언어의 난무를 날마다 만나는 국민도 의견을 조리정연하게 간추릴 기회를 빼앗겨 버렸다. 공동체의 언어가 논리와 품격, 그리고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선 정치권이 책임감을 느끼고 돌이켜야 한다. 우리 말의 높은 격조와 아름다움을 다시 찾기 위하여 국민적인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싶다.정치, 사회, 문화, 경제가 모두 중요하지만, 언어의 품격과 자존심만큼 우리의 바탕을 확인하게 하는 소양이 다시 있을까.

2023-09-20

정치, 그 책임의 무거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를 맞았다. 아들의 사업에 부적절하게 관련된 혐의가 제기되었다. 하원의장 케빈 맥카시(Kevin McCarthy)는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고 공권력을 방해하였으며 권력을 부패하게 한 흔적이 짙다면서 의회가 탄핵 소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또한, 그는 대통령이 가족이 부당하게 연루된 일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대통령의 심각한 일탈에 동조하며 방관하는 백악관 당국에도 심각하게 경고하면서, 미국 의회가 즉각 대통령 탄핵 절차에 돌입할 것을 요청하였다. 바이든 대통령 측은 직접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정치적 공세에 대처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반응했지만, 미국 시민의 절반 정도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국내의 한 도지사가 국민소환의 위기에 처했다. 최근 있었던 수해 상황에서 있었던 지하차도 사고에서 그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여 인명의 손실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해당 지역에서 주민소환의 요건인 서명인 확보가 시작되었으며,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소환을 주장하는 측은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할 지사가 참사 당시 직무를 유기하고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언행으로 일관해 도정의 신뢰가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안정적인 도정의 지속적인 진행을 위해 소환을 반대하는 시민들도 있다. 뽑아준 유권자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선출직 공직자의 업무수행은 크나큰 도전을 받는다.선출직 공직자는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의 눈길을 피할 길이 없다. 시민들의 소환압박은 물론, 매서운 언론의 눈초리는 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공인으로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직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충분한 전문성을 가지고 성실하고 유능하게 매사에 임해야 하며, 모든 일의 진행과 결과는 한 치도 빠짐없이 공개되고 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주어진 임기 내내 비판과 평론이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겉으로는 균형을 잃지 않는 공직자의 모습을 지켜야 한다. 세평에 휘둘리지 않고 이념에 따라 편파적이지 않으며 국민과 시민만을 위하여 봉사하며 섬기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를 봉급으로 받으며 일하는 공직자의 가치를 날마다 증명해야 한다. 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국민은 때가 되면 다시 누군가를 뽑아 세워 일을 맡긴다.철학자 플라톤(Platon)은 지도자의 무지(無知)가 공동체 건설에 있어 최악의 조건이라 하였다. 무식한 지도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지도자, 알아야 할 사항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지도자가 가장 나쁜 지도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인간인 이상 실수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정(失政)의 책임(責任)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지도자가 되면 위험하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사회에서, 더 많은 국민이 인간다운 삶과 행복한 일상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문제는 심각하다. 정치는 그 책임의 무거움을 알고나 있는가.

2023-09-13

초고령사회, 위기일까 기회일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대한민국은 곧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이 인구의 20퍼센트를 넘기게 된다. 나이가 많아도 경제생활을 지속해야 하지만 일자리에서 물러난 노인들은 길을 잃는다.정부가 짊어질 복지정책 부담도 재정적인 면에서 가볍지 않다. 고령화는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전반적인 인구구조의 변화를 초래하면서, 지역에는 급격한 인구감소를 빚어내 지역소멸의 위기감마저 가지게 한다. 인구위기는 남북한을 가리지도 않는다.2070년이 되면 남한은 3천600만, 북한은 2천400만 인구로, 2021년 대비 각각 70%와 90%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되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위기의 그림자는 반드시 기회의 가능성을 품는다. 오늘 65세로 접어드는 사람들은 이전의 노령층과 어떻게 다를까. 그들은 한국전쟁 후 사회적 경향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로 베이비붐세대(baby boom generation)라 불리운다. 급격하게 초고령화로 접어든 느낌이 드는 데에도 까닭이 있는 셈이다. 그들은 사회문화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혼란을 모두 겪었다. 나라가 가장 어려웠을 시절에 때어났지만 눈부신 발전을 경험했으며, 정치적 변동을 체험하면서 거친 들판을 지나온 세대가 아닌가. 다양한 사회문화현상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깊고 여러 정치적인 이념성향도 겪을 만큼 겪었다. 이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며 배운 바가 있어 노후대비에도 무심하지 않았다. 이전 어느 노인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신개념고령층’이 출현하고 있다.한국사회에 처음 나타난 세대가 아닐까. 역사상 처음으로 체력(體力), 지력(智力), 재력(財力)을 겸비한 세대라고도 한다. 의학과 과학의 눈부신 진보로 인간수명 백세를 바라보는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전후 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가장 많이 배운 세대가 아닌가. 국가경제 발전을 몸소 견인해 온 어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은퇴한 다음 일로부터 손을 놓고 뒷방 늙은이로 자조적인 삶을 유지하던 노인층이 아니다. 건강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와 다짐을 불태우는 세대로 보아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도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s)를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이 블루오션이라는 게 아닌가. 인구 초고령화는 사회의 위기인 동시에 기회를 제공한다.초고령화를 위기요소가 아니라 기회인자로 보아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복지예산에 대한 재정적 부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대의 문화적 유연성과 경제적 소비성향을 진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년연장이 뜨거운 이슈가 되었지만, 이를 세대 간 갈등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인구고령화를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피할 수 없는 미래로서 ‘초고령화현상’은 사회문화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틀을 마련하여 준비해야 한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맞게 될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대비하는 지혜를 준비해야 한다. 재정압박을 핑계로 회피하려 하거나 세대갈등의 빌미로 보아 배척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2023-09-06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난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처서(處暑). 여름을 지나 더위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예년에는 늘 그랬다. 처서를 지나 백로가 코앞인데 기온은 아직 고공행진이다. 2차 장마 소리도 들린다.세계기상기구(WMO) 발표에 따르면, 지난 7월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한 달이었다. 가장 뜨거웠던 계절이 아직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어느덧 8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가을은 더디 오는가 싶다.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라 부르더니 이제는 기후재난이라 적는다고 한다.폭염과 홍수, 폭우와 가뭄, 폭풍과 한파, 산불과 허리케인 등 기후가 초래하는 이상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각하다. 올해 7월 캘리포니아 데스밸리국립공원에서 섭씨 53도를 기록했는가 하면, 이란은 8월 초에 50도를 넘으면서 임시휴일을 선포하였다. 한겨울이어야 할 남반구 아르헨티나도 여름처럼 더웠다는 게 아닌가.기후가 재난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항공우주국 NASA는 인간이 주도한 지구온난화가 오래 지속된 결과라는 것이다. 기후가 자연현상 같지만, 실은 사람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탄소방출에 따른 대기오염, 에너지 과다사용에 따른 환경훼손 등이 초래한 인재(人災)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기후위기의 여파는 날씨와 기온에 머물지 않는다. 식품가격 상승이 불러오는 인플레이션을 푸드플레이션(Food flation)이라 부르는데 그 근본원인을 따져보면 기후변화라는 게 아닌가.식량농업기구(FAO) 쌀가격지수는 7월에 전월대비 2.8% 올라 129.7을 기록하여 22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쌀 세계수출량 40%를 맡았던 인도가 최악의 가뭄으로 수출제한 조치에 들어갔다.극심한 고온 기후는 인류에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온열질환의 가능성은 잼버리야영장에서 이미 목격하였다. 실제로 더워서 사망에 이르는 숫자가 홍수나 산불에서보다 많다고 한다. 일사병과 말라리아 등 심각한 질환에 인류는 다시 노출될 판이다.미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하와이의 마우이섬은 올여름 엄청난 산불로 관광, 여행, 레저산업은 생각도 못했다. 오랜 가뭄과 고온다습한 대기에 지나가던 허리케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빚은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그런 규모의 복합적인 기후재난이 다른 장소에서 재발할 확률은 점점 높아져 간다고 한다.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홍수로 인한 재난에도 국가와 지방자치제 차원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살피고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미 발생한 자연재해를 맞아 대처하는 수준의 경각심으로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기후재난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어려울 터이다. 사전에 감지하고 대비해야 하고 자연재해를 맞아도 안전한 제반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건축관련 규정과 치수관련 시스템 등을 근본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할 기후관련 재난에 국민도 더 이상 수동적일 수는 없다. 주변에 산재한 위험에 경계를 늦출 수 없으며 물과 공기 등 자연자원의 이용과 소비에 예민한 시민의식을 발동해야 한다.가을은 오고야 말겠지만, 걱정은 깊어만 간다.

2023-08-30

힘든 청년, 병든 나라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나라가 병들었다. 무고한 사람을 까닭도 없이 죽이고 해치는 일이 기승을 부린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대책은 또 어떤가. 문제의 근본부터 뿌리를 뽑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엄정한 처벌’에 머물고 있다. 장갑차가 등장했었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논한다. 벌어진 폭력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엄정하게 대처하여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생각도 틀리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범죄를 두고 형벌로 다루겠다는 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생각 가운데 하수(下手)다. 하필 이 여름에 이런 일들이 줄을 이어 발생하는지 그 까닭을 살펴야 한다. 날이 덥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건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을 해친다고 자신의 처지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바보가 있을까.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미움과 욕설’로 가득한 세상이다. 국회가 들려주는 언어의 패턴은 혐오와 조롱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편가르기와 등돌리기가 정치행위의 상식이 되었다. 멋진 정치에서 경청과 타협, 토론과 양보를 기대했던 국민은 이제 누구를 만나도 ‘어느 편’인지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겠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모든 면에서 나와 생각이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슈에 따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제거한 끝에 인간은 결국 홀로 남지 않을까. 다양하고 풍성한 ‘생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이 존재해야 건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투표와 다수결이 소중한 까닭이다. 혐오와 차별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국가와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나라 안에 가득한 혐오분위기와 차별 정서는 젊은 세대에게도 전염되었다. 인정하고 포용하기보다 밀어내고 미워하는 기운에 익숙해진 청년들은 점점 더 ‘외로운 늑대’로 내몰리고 만다. 기회가 보이지 않고 기대할 것도 사라진 세상은 그들에게 등을 돌린듯 여겨질 터이다. 출처가 어딘지 분명치 않은 미움을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대상에게 퍼붓는 게 아닐까. 무엇 때문인지 모를 자신의 힘든 처지를 그렇게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게 아닐까. 사회적 병리현상은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개인적 일탈현상으로 여겨 처벌로만 대처하다가는 사회적 골든타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사회적 각성이 일어야 하고 문화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비뚤어진 정치가 바뀌어야 하고, 편가르기의 폐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후대에 좋은 나라를 넘겨주기 위하여 사회적인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병든 줄 뻔히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끝내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묻지마범죄가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오늘, 사회적으로 차분히 문제의 뿌리를 살펴야 한다. 미래세대가 중요하지만, 오늘의 청년세대가 든든한 허리로 받쳐주지 않으면 다음세대도 기대하기 어렵다. 20대와 30대에 건강한 사회환경을 실현해 주어야 하고,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닦아낼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청년에게 기대와 소망을 안기지 못하면, 사회와 국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