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없어졌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은 역사의 한 장면을 강렬하게 새겼다. 최고권력자가 법의 심판을 받았고, 국민은 거리에서 침묵과 함성으로 그 순간을 지켜보았다. 체념과 분노 그리고 마지막 남았던 희망도 사그라진 시간이었다. 대통령이 없는 나라에서 허전함은 곧 혼란으로 남았다. 책임을 못다한 권력의 잔해들로 남았다. 대통령이 없는데도 낡은 권력과 그 잔재는 아직도 곳곳에 살아서 꿈틀거린다. 부패한 권력체계는 단순히 대통령의 퇴진으로 마감되지 않는다. 국정농단의 진실이 밝혀졌지만 일부 세력은 아직도 기득권을 붙들고 움직이고 있다. 경제는 멈췄고 민생은 외면되며 외교는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한미 간의 대화는 자취를 감췄고, 보호무역주의적 경제공세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관세폭탄이라는 현실 앞에 대응은 커녕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게 아닌가.
무책임한 정권이 남긴 그림자가 깊고도 어둡다. 시대를 잘못 짚은 비상계엄으로 문제를 덮으려 했지만 국민은 지혜로왔다. 우리는 달랐다. 대통령이 사라진 날에도 아이는 학교에 가고 지하철은 정시에 달렸으며 국민은 법을 지켰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것은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국민에게 있었다. 우리는 과도기의 한복판에 섰다. 두 달도 못미칠 권한대행 체제는 한계가 있다. 나라가 스러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정권 때문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정능력과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 덕분이다. 그렇기에 더욱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책략이나 술수에 나라를 맡기지 않는다고. 잘못 사용된 군경의 위협과 ‘장난같은 게엄’이라는 터무니없는 궤변 앞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았던 국민이기에 이제는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자격이 있다고.
조기대선은 단지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는 혼란의 끝에서 진짜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누구를 위한 나라를 만들 것인가.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더 이상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책임질 줄 알고 공감할 줄 아는 리더를 요구해야 한다. 선택은 단지 희망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사라졌지만, 국민은 깨어 있다. 혼란 속에서도 상처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길을 찾는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온 세상을 향해 말을 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아니,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더욱 단단히 붙들었다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온 나라가 한마음이 되었다고. 온 세상이 혹 거꾸로 달린다 해도 대한민국은 국민이 자유롭고 풍요할 내일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국민은 많이 배웠다. 자유와 민주의 고귀함과 헌법을 지켜야 할 까닭에 관해 분명히 깨우쳤다. 주권자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권력자는 언제든지 버려질 것이라는 스스로의 목소리에 경탄하는 중이다. 지난 몇 달이 모두의 위기였지만, 나라의 역사 위에는 오히려 빛나는 시간으로 새겨야 한다. 국민이 살아있어 나라가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