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긴 설연휴 끝에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마냥 기다려지고 설레기만 하던 설날의 감흥이나 명절의 풍속도도 어언간에 많이 바뀌고 달라진 것 같다. 길게 이어지는 ‘황금 연휴’에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을 떠나는 것은 예사이고, 모바일 생활환경의 변화로 사이버 세배나 영상통화, 보드게임 등의 형태로 가족과 만나지 않고도 명절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 전통적인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며 전래놀이를 하는 풍습이 유지되는 곳도 많아서, 요즘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명절문화로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설이나 추석 같은 민족 대명절에도 가족이나 친지들의 만남이 뜸하거나 아예 없다보니 덕담이나 근황을 나누고 소통하는 마음도 서먹하고 성글어질 수밖에 없어지게 된다. 가족과의 소통과 만남은 단순히 말을 나누고 그냥 얼굴 보는 것을 넘어, 서로의 존재가치를 깨달으며 아껴주고 챙겨주며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가 아닐까 싶다. 소통이나 대화의 시간이 줄어들고 단절되면 그만큼 가족 구성원 간의 도타운 정을 느끼기도 어렵고 가족애도 갈수록 식어지게 될 것이다. 그 이면에는 희대의 총아같은 컴퓨터나 스마트폰도 적잖이 한몫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대사회에 있어서 가족의 의미와 가훈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 이상으로 다소 희석되고 퇴색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가족의 친밀함과 따스한 정은 서로 부대끼며 스스럼없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배어나듯이, 가훈 역시 가족 구성원들의 한결 같은 마음과 따스한 인식으로 수긍하고 되새기면서 지켜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가족 간의 원만한 소통과 대화, 융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가훈(家訓)이란, 한 집안의 어른이 그 자손에게 대대로 전해주는 가르침으로서 지켜야 할 근본 도리를 짧게 또는 설명을 곁들인 문장으로 전하는 훈화라 할 수 있다. 즉, 가훈의 내용은 주로 훈계, 자녀교육, 마음가짐, 몸가짐, 건강관리, 대인관계, 재산관리, 관혼상제, 관직생활 등의 내용을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가훈은 우리들의 가정을 화목·단란하고 건실하게 하기 위한 전통적인 집안 교훈으로, 우리 선조들은 그 자손들의 장래, 행복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신중하고 정성스레 가훈을 지어 가르쳐 왔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핵가족 중심의 사회에서는 가훈이 뭔지도, 아예 없는 가정이 많아 자녀 훈육과 관련된 전통의 소중한 가치가 점차 사라지는 듯해 아쉽기만 하다. 그러한 차제에 애써 가훈을 보급이라도 하듯이 설날부터 가훈을 붓글씨로 써주며 두루 알리고 나눔을 실천한 곳이 있다. 지난 설날 낮부터 포항문화원 주관의 ‘2025 설맞이 포항전통문화한마당’ 행사장에서 포항서예가협회와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이 합동으로 포항의 명소 영일대 누각 주변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새해 소망과 가훈 써주기 재능기부활동을 펼친 것이다.
묵향 머금은 가훈을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받아들며 흡족해하는 가족이 가훈을 통해 가족애를 느끼고 자녀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어, 가정에 온화함과 희망의 가풍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202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