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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부의 날 단상

유난히 기념일이 많은 5월도 하순에 접어 들었다. 근로자의날을 비롯 어린이날ㆍ어버이날ㆍ입양의 날ㆍ스승의 날ㆍ성년의 날ㆍ세계인의 날ㆍ부부의 날 등 대부분 가족이나 가정, 이웃 등 사회구성원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며 기억, 기념하는 일들이 많아져서 가정의 달로 정해진 것일까?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며, 인류의 존엄과 가치, 인간의 현재적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여기는 인본주의(人本主義, humanism)가 바탕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 마침 오늘이기도 한 ‘부부의 날’은,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만드는 밑바탕이자 디딤돌의 역할을 해온 부부를 위한 날이기에 사뭇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즉 가족의 최소단위가 부부이며, 애정으로 맺어진 부부관계를 통해 가족이 늘어나게 되어 가정과 사회적인 요소의 근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정은 우주의 중심’이라고도 말하며, 가정의 참된 기능과 역할은 건강하고 화목한 부부생활에서 비롯되고 그 기반이 다져지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되는 부부(夫婦)는 서로 다른 두 이성이 만나서 합한 관계이다. 이는 곧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합하여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두 가문의 결합이기도 하다. 가문의 뿌리가 서로 다르기에 상호존중과 배려로 예절을 지키면서 언제나 화목해야 하는 취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즉 혼인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회가 인정하는 결합을 의미하며, 예로부터 ‘두 성씨가 합하게 되는 만복의 근원(二姓之合 萬福之源)’으로, 이는 곧 서로 사랑하고 배우며 협력하여 사회적인 조화를 이루는 큰 일(人倫之大事)로 매우 중요시하게 여겼다. ‘긴 상이 있다/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좁은 문이 나타나면/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걸음을 옮겨야 한다/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의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다 온 것 같다고/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걸음의 속도로 맞추어야 한다/한 발/또 한 발’ -함민복 시 ‘부부’ 전문 어쩌면 이상적인 부부의 길이란, 이처럼 서로의 안색(顔色)을 잘 살피며 인생의 속도를 서로에게 맞추며 함께 걸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부부로 만나 가정을 운영하며 살다 보면 이러저러한 일들로 상이 기울어지거나 모퉁이에 부딪쳐 상 위의 음식들이 떨어질 위기가 있어도, 한 발 한 발 서로를 찬찬히 읽으며 가는 길에는 사랑의 익숙함이 깃들어 세월의 노련함으로 편하게 걸어가게 될 것이다. 배려와 양보로 빠르게 가라고 재촉하지 말고 상대방을 변함없이 존중하며 끝까지 정다운 부부의 애정이 유지되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갈수록 우리나라의 높아지는 이혼율과 1인가구 비율 증가추세 등으로 인구절벽이 현실화되고 지방소멸마저 위협받는 때, 둘(2)이 하나(1)가 되는 부부의 날에 가정의 의미와 부부의 위상이 새삼 중요하게 여겨진다. 건실한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면서 사랑과 행복의 꽃을 피워가는 새로운 부부가 많아지고 아름다운 삶의 동행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5-20

세월의 속도감 줄이기

연초록 위에 진초록 잎새가 겹쳐지며 신록이 짙어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잎차례를 벌여가며 연록의 진영을 넓혀가더니 어느새 온통 초록의 숲을 이루고 있다. 마치 스밈과 번짐처럼 봄이라는 생장의 여울 속에 잎새들의 앞다투며 줄기차게 변화하는 양상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듯하다. 잎새뿐만 아니라 언덕배기의 풀이나 들판의 농작물들도 돌아서고 나면 아찔한 정도로 몸짓을 불려가며 빨리 자라 생동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언제 어느 때나 한결같고 공평한, 영원한 세월 속의 나그네(光陰者 百代之過客)일텐데, 유독 봄날만큼은 생명의 잔치를 벌이며 발걸음이 빨라 보인다. 그것은 기실 똑같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생기다 보니 봄날의 시간이 빠르게 느껴져서 일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변화에서도 시간의 완급이 느껴지듯이, 외부의 환경이나 자극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사람들마다 다르게 느껴짐은 대체로 보편적인 일로 여겨진다. 어릴 적에는 한 해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처럼 길게만 다가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빠르게 지나감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것이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서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사람의 뇌가 시간 인식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비롯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신경 가소성(可塑性)이 줄어들고 뇌는 정보를 적게 처리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기억 형성을 줄여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10대는 시속 10km, 60대는 시속 60km로 달려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어린 시절 대부분은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아 신선함과 흥미, 긴장감을 일으키며 이러한 경험은 뇌가 더 많은 인식과 정보를 처리하도록 만들어 시간을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반면 성인이나 중년·노년기가 되면 새로운 경험보다는 반복적이고 익숙한 일상이 더 많아지면서 뇌의 활동량이 줄어들게 되어 시간의 흐름이 단조롭고 빠르게 느껴지게 된다. 어쩌면 이같은 일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경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도 세월을 더디 느껴지도록 하는 방법이나 루틴이 얼마든지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에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며 보다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거나 현재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통해 충분히 시간의 흐름을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더 가치 있고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속도를 조절하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하루하루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듯한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일상의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새로운 취미나 학습, 봉사, 여행 등으로 낯선 곳과 마주하게 된다면 늘 흥미롭고 호기심 가득한 나날이 세월의 속도를 꾸준한 각도로 줄여줄 것이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5-13

산불피해 복구, 희망과 베풂의 씨앗

극명한 대조였다. 밭두렁이나 길, 개울이나 둔덕, 골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토록 판이한 양상이 나타나다니, 참으로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게 희비가 엇갈리는 현실이 비탄스럽게만 여겨졌다. 대지는 파릇파릇 생기를 더해가며 무채색의 황량함을 초록으로 채워가는데, 지척의 산야에서는 불에 탄 흔적이 검버섯처럼 칙칙하고 시커멓게 멍들어가며 신음하는 듯하니 3월에서 4월, 불과 한 달새 이다지도 잔인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순식간에 들이닥친 초대형 산불로 경북 북동부지역이 초토화되면서 사상 최악의 피해가 속출했다. 일상을 삼켜버린 화마에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을 하루 아침에 잃고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들이 3000명을 넘는다 하니, 막막하고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실의에 찬 이재민들을 위한 온정의 마음과 피해복구의 손길들이 각계각층에서 더해지고 있어서 그나마 안도스럽지만, 피해지역이 워낙 광범위하고 상흔이 깊어서 일상회복과 정상복구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하다. 작은 관심이 큰 희망이 되듯,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위로하는(患難相恤) 상부상조의 양속이 예나 지금이나 주변을 밝고 따스하게 비추며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산불피해성금을 전달하는 어린이나 기업체 등의 기부, 자원봉사자들의 한결 같은 복구활동 참여, 지자체 공무원들의 발 빠르고 체계적인 복구계획 시행·지원 등으로 피해복구에 다소 속도를 내고 이재민들의 임시거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거기에 휴일까지 반납하고 복구작업에 적은 일손이나마 보태며 피해 당사자들을 위로해주는 미담이 전해져서 훈훈하게만 여겨진다. 휴일 아침 일찍 영덕군 지품면 수암리의 한 과수원엘 가서 불에 탄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 감나무 등을 베어내고, 소실물 잔해 정리작업에 팔을 걷은 이들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ㆍ붓글씨봉사단원들이다. 주로 사진촬영과 붓글씨 나눔활동을 실시해온 재능봉사단원들이 이날만큼은 카메라와 붓 대신 톱과 낫을 들고 산불피해가 심각한 과수농가에서 복구작업을 펼친 것이다. 봉사단원들은 과수원 주인의 안내와 요청에 따라 불에 탄 사과나무 등의 피해목 30여 그루를 전동톱으로 베어내고 잔가지를 정리, 포터차량에 실어 폐목 임시보관장소로 운반하는 등의 작업을 실시했다. 또한 농가 2채와 농막, 저온창고, 차량 2대가 전소된 건조물 바닥의 소실물을 정리하고, 일부 불에 타고 찢어져 썰렁하게 일렁이는 그물망을 제거하는 작업도 단계적으로 실시했다. 과수 정리작업을 마치고는 한 봉사단원이 사비로 마련한 양말, 수건 등의 생필품을 과수원 주인에게 전달하면서 산불피해의 아픔을 달래 드리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복구작업은, 포스코 1%나눔재단에서 최근 산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의 조속한 피해복구를 위해 ‘Change My Town’ 지원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자발적인 봉사활동이다. 기부자인 임직원이 지역사회의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봉사활동까지 직접 실행하는 참여형 ‘체인지 마이 타운’ 나눔 사업은 2019년부터 시행돼 수혜처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는 포스코의 상생협력 나눔활동이 희망과 베풂의 씨앗이 되길 기대해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5-06

환경을 깨끗하게, 도시를 활기차게

꽃이 피어 봄인가 했더니 꽃이 져버리자 어느새 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며칠간 초여름 같은 날씨였었다. 그에 맞춰 연둣빛 잎새는 하루가 다르게 초록의 진영을 넓혀가고, 사람들은 얇고 짧아진 옷차림새로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다. 도심의 화단에는 온실에서 자란 화초들이 앙증맞게 손짓하는가 싶은데, 들판이나 텃밭에서는 파종과 작물 가꾸기의 일손으로 분주해지는 것 같다. 풋풋한 땅의 기운과 봄 햇살의 양기를 받아 만물이 생장하며 저마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봄이 되면 집을 새 단장한다거나 문을 활짝 열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안팎을 대청소하는 등 깨끗하고 산뜻하게 가꾸기 마련이다. 그래서 봄날의 춘축(春祝)으로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掃地黃金出)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開門萬福來)‘는 대련을 즐겨 썼던 것일까? 땅을 쓴다는 것은 봄처럼 부지런하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라는 의미이고, 문을 연다는 것은 마음을 열어 긍정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 스스로의 복을 짓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집 안팎은 물론이고 골목길이며 길거리, 공원 등지에서 쓰레기를 줍고 청소하며 화단을 가꾸는 손길들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에 더하여 해안을 비(梳)로 쓸듯이 해양 쓰레기를 줍는 이른바 ‘비치코밍’을 실천하며 바다환경을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움직임들이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해변을 뜻하는 비치(beach)와 빗질을 의미하는 코밍(combing)의 합성어로, 친환경적 가치가 중요해진 최근 해안가로 밀려나온 폐플라스틱 등의 표류물이나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보호 활동으로 그 의미와 활동폭이 커지고 있다. 어린 자녀들과 삼삼오오 해변을 거닐며 모래밭의 조개껍질이나 유리조각을 줍고, 방파제 돌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폐플라스틱과 폐어구 등을 제거하는 손길들이 진지하기만 하다. 멀리서 보면 평온하게만 여겨지던 해안이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어찌나 해양쓰레기들이 많던지, 실제 몇 번이고 비치코밍을 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초여름 같은 날씨에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해변에서 100여 명이 동시다발로 환경정화활동을 펼치니, 수거한 쓰레기가 순식간에 더미를 이뤘다. 이와 같은 풍경은 지난 주말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한리해수욕장에서 포철공고총동창회 ‘행복나눔봉사단’에서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해변정화 봉사활동 장면들이다. 40여 명의 모교 재학생들도 동참하고 멀리 광양에서까지 달려와 ‘흥해읍에서도 아끼는 용한리 해변’에서 합심으로 펼친 정화활동에 흥해읍의 공무원들도 반갑게 맞이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때마침 용한리의 자매부서인 포스코 생산기술부 직원들도 가족과 함께 비치코밍을 실시해 눈길을 끌었다. 포철공고총동창회는 2023년 4월 ‘행복나눔봉사단’을 창단해 포항 영일대 해변 환경정화, 광양 옥곡면 드림스타트 협력 소외계층 사랑의 집짓기 봉사, 연말 포항시 흥해읍 취약계층 연탄 나누기 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추진해왔다. 포항과 광양에서 번갈아 펼쳐지는 행복 나눔봉사단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사랑 나눔을 실천하며 영·호남 화합에도 기여하고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봄 햇살처럼 따사로이 골고루 비추면서 도와주고 챙겨주는 꾸준한 이웃사랑으로 도시가 활기차고 환경이 깨끗해지길 기원해본다.

2025-04-22

2,000번째의 장수사진

봄꽃 떨어지자 눈꽃인가. 팝콘 같은 벚꽃 잔치가 끝나기가 무섭게 강풍과 돌풍에 때아닌 4월의 폭설과 우박을 동반한 봄비라니? 사람사는 세상에 탄핵과 파면, 화마와 붕괴 같은 이변이 속출하자 하늘에서는 일진광풍의 일갈(?)로 날씨마저 변덕을 부리는가. 그래도 꽃이 진 자리마다 연두색 새 움이 실눈을 뜨고, 산과 들에는 소생의 희뿌연 기운에 연초록이 어우러지며 하루가 다르게 생동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몇 차례의 꽃이 피고지며 봄날이 깊어가는 때, 봄꽃은 산이나 들, 길거리에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짧게 피었다가 져버리는 꽃보다 더 밝고 화사하게 오랫동안 향기롭게 피어나는 꽃이 있으니, 이른바 ‘사람 꽃’이다. 머리와 얼굴을 곱게 손질하고 분홍, 연두, 남색의 알록달록한 한복 저고리로 새단장한 모습은 그야말로 활짝 피어나는 꽃이나 다름없다. 움직이는 사람 꽃이 피워내는 웃음꽃은 얼마나 환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울까? 그러한 꽃같은 매무새와 얼굴 표정을 애써 카메라에 담으며 오래도록 사람 꽃을 기억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의 갈퀴 같은 이마의 주름살이며 검버섯이나 오므라들고 쪼그라드는 얼굴의 살갗마저 순수하고 리얼하게 앵글에 담으며 시간의 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람의 얼굴에는 저마다의 희로애락이 스미고 풍진세사가 점철돼 있다. 그러한 얼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당사자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려는 진솔한 정성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취지에서 어르신들의 인물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봉사단은 2019년 7월 창단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의미가 담긴 장수사진을 찍어 두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활기차게 익수(益壽)한다는 속설로 붙여진 ‘장수사진’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긍정이고 자신감이라 할 수 있다. 즉, 지금까지의 자취이자 앞으로의 존재감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남겨두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출범 이래 포항시의 읍·면지역과 동·리단위의 마을 30여곳을 골고루 찾아다니며 어르신들께 장수사진을 찍어 드린지 5년 9개월만인 지난 주 촬영누계 2,000명을 돌파했다. 포항시 65세 이상 인구 11만여명의 2% 남짓한 어르신들께 장수사진을 선물한 셈이다. 직장에 몸 담으면서 주말이나 개인일정을 뒤로하고 간혹 휴가까지 내면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단원들과 가족의 노력이 사뭇 가상하고 고무적이다.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익을 위해 힘쓰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을 체득하면서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소리없이 일조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갈수록 고령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때, 경로효친의 측면에서도 ‘찾아가는 장수사진’은 주위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추억과 스토리가 배인 사진을 보면 기억력이 살아나고 뇌운동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장수사진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꽃이 여생을 환하게 비추는 등댓불이 되어 어르신들께서 편안하고 느긋하게 연년익수(延年益壽) 하시기를 빌어본다.

2025-04-15

포어스(4us), 포스코와 한동대의 아름다운 교육기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청명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완연한 봄날이 온 듯하다. 겨울의 초입에 별안간 내려진 12·3 비상계엄령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던 나라가,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현직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파면시키자 혼란과 불안이 종식되고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봄날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탄핵 찬반의 대치가 극에 달하고 돌연한 화마의 상흔이 참혹한 가운데 사필귀정의 결정이 내려져서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이제는 암울과 갈등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도와 평온의 일상 속에 저마다 본연의 역할과 과업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날씨가 맑고 밝아 좋아서 청명(淸明)이라 했던가? 청명절에 날씨가 좋으면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가 수월해지고 잘돼 그 해의 풍작과 풍어를 점치며, 들판에서는 봄 논, 밭갈이를 하고 어촌에서는 그물코를 손질하는 등 본격적인 생업활동을 펼치게 된다. 일이 비록 작더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듯이(事雖小 不作不成), 봄에 밭을 갈아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곡식이 없어 후회한다(春不耕種 秋後悔)는 의미를 되새기며 시기와 때에 맞춰 일을 하고 준비하곤 했었다. 학업의 시기도 비슷하여 때를 놓치지 않고 배우고 익혀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배워서 남주나’는 말도 있지만, 사람의 일생은 어쩌면 배움의 과정으로 다양한 학습을 통해 성장·성숙하고 나아지며, 배움을 체득하면서 결국 그 자신의 삶을 바꿀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배움의 모티브(motive)는 긴요하고 중대하여 어떤 계기나 기회에 배움의 실마리를 찾아 탐구하고 궁구하여 학습효과를 배가시키며 변화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면, 진정 의미 있고 가치로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난 주말, 포스코와 한동대가 산학협력을 통해 2년째 펼치고 있는 ‘글로벌 교육기부 프로그램 포어스 제2기 발대식’은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다문화가정이나 취약계층 청소년들의 진학과 취업을 지원하는 ‘포어스(4us)’ 프로그램은 포스코1%나눔재단의 기부금과 한동대학교의 교육 인프라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고교생 멘티와 대학생 멘토의 1:1 멘토링을 중심으로 학습 및 취업 지원, 진로체험, 방학 진로캠프 등 다양한 테마로 학습활동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즉, 포어스는 서로가 만나 배우고 알아가는 성장 과정으로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고 꿈을 구체화시키며 가능성을 열어가는 큰 힘이라 할 수 있다. 배워서 나눌 수 있고 그러한 나눔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된다. 포어스는 배움과 깨달음으로 새로운 꿈을 찾아 함께 떠나는 가능성의 여정이다. 그것은 곧 병아리와 어미닭이 알의 안과 밖에서 부리를 모아 동시에 껍질을 깨어 새 생명이 탄생되는 즐탁동시(559E啄同時)의 계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조력으로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참여와 헌신의 동시성으로 함께 성장, 변화하여 포항지역과 철강분야의 미래 인재육성에 기여하는 포어스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5-04-08

화마(火魔)의 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잔인하다 못해 처참했다. 비통하고 참담하기만 했다.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옛 숨결이 스민 문화재며 고택이나 가옥 등을 가리지 않고 화마는 닥치는대로 순식간에 집어삼키며 광란의 불춤을 추고 있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백주 대낮에도 화산처럼 먹구름이 솟아 오르고 불기둥이 솟구치는 괴물 같은 불길 앞에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마저 숯검댕이로 타들어 가는 절체절명의 현실 앞에 망연자실하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만물이 소생의 몸짓으로 새순과 싹을 틔우는 생동의 길목에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만고에 푸른산이며 대대손손 가꾸고 지켜온 터전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무참하게 일그러지며 무너져버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분신처럼 키우던 가축이며 산속이 집이었던 토끼, 다람쥐, 고라니 따위의 짐승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디로 정처 없이 떠나 갔을까? 불길 앞에 온몸이 타들어가도 의연히 버티는 나무들의 외마디 절규 같은 타닥거림을 누가 애처로이 들어주기라도 했던 것일까? 사상최악의 피해를 낸 경북 북동부 대형산불은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 5개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149시간만에 꺼졌다. 26명의 사망자와 4천여 명에 이르는 이재민, 3천채가 넘는 건물의 소실 등으로 천문학적인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한 순간의 부주의와 실화로 인해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바뀌게 됨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자나 깨나 불조심’ 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산불로 인한 상상 초월의 인적·물적인 피해가 따르게 됨을 경고하며 심각성과 경각심을 시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방천지 느닷없이 연막을 둘러치며/걷잡을 수 없는 불길 가증의 혀 날름대니//애타게 울부짖으며/숯덩이로 스러지고//대대의 보금자리 잿더미로 주저앉고/골골이 외마디소리 뼈저리게 타들어가도//무참히 집어삼키며/삶마저도 할퀴네” -拙시조 ‘화마(火魔)의 혀’전문 우리나라 산불의 대부분은 사람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된다고 한다. 입산자에 의한 실화, 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소각 등 절반 이상이 사람에 의한 실화 또는 소각행위에서 비롯된다. 즉, 인위적인 요소가 가장 큰 산불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감시체계와 입산통제, 감시원 배치 등으로 집중 감시하고 계도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보다는, 사전 점검과 예찰을 선제적으로 실시하여 조기에 산불 발생의 징후를 인지 및 즉각적인 대응으로 대형산불을 예방하는 것이중요하리라고 본다. 3~4월의 고온건조한 날씨와 편서풍의 영향으로 연간 산불 발생의 절반 이상이 봄철에 나타나게 된다. 본격적인 농번기로 농부들의 움직임이 많아지고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의 바깥 나들이 활동이 늘어나면서 산불 발생의 위험도도 증가하게 되는 것이니 만큼, 각별한 주위와 산불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인정사정 없이 할퀴고 위협하며 잿더미로 만드는 화마에게 한평생 일궈온 우리의 삶과 재산을 제물로 바칠 수야 없지 않을까?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너도 나도 불조심’하여 국민 모두가 평온한 일상을 지켜가면 좋겠다.

2025-04-01

일월문화원의 발돋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완연해진 봄의 길목에서 난데없는 산불로 국토가 신음하고 있다. 지난 주말, 건조한 날씨 속에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해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산청과 의성, 울주 등 하룻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이 29건으로, 강풍을 타고 번져 나간 불길이 좀처럼 잡히질 않고 연기와 매캐함이 동해안 일대에서까지 느낄 정도였으니 심각함에 우려를 금할 길 없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이 무슨 화마의 변고란 말인가? 하늘이 온통 스모그 마냥 희뿌연 장막을 드리운 듯한 현상을 접하다 보니 초읽기에 들어간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안개정국과 뒤엉키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아 때아닌 산불의 연무로 연상됨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어쨌든 봄은 왔고 산불은 곧 진화될 것이며 베일 같은 안개는 사라질 것이다. 널뛰기하듯 잎샘추위에 3월의 폭설까지 내리다가 화마의 엄습까지 봄은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시련과 위협 속에서 오는가 보다. 나무에는 이미 물이 올랐고 꽃은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으며 새순이 앙증스럽게 돋아나는 파릇함 속에 새들은 지저귀고 온갖 생물은 생명과 성장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겨우내 찬바람을 견디며 이기려고 몸에 힘을 줬다면 이제는 나른함을 이기려고 애를 써야 될 때, 문화의 새바람으로 봄보다 부지런히 심신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곳이 있다. 그곳은 해와 달의 고장 답게 일월의 의미를 되새기며 독특한 문화적인 아이템으로 지역의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일월문화원이다. 전통문화의 전승, 보급의 사회교육과 문화유산 보호활동으로 지역민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2012년 설립된 (사)일월문화원은, 일월문화아카데미와 문화유산답사 등의 다양한 문화강좌와 문화사업 추진으로 현재까지 매년 200여 명의 회원과 수강생이 동참해 역사와 종교, 철학 등에 대한 인문학적인 소양과 의식을 함양한 문화시민을 육성하며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강의나 답사가 아닌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실질적인 문화사업 운영으로 주체적이며 지속가능한 문화발전을 담보하는 의미와 가치가 큰 문화활동이라 할 수 있다. 즉, 고품격 인문학 강의와 문화유산 방문교육·문화재 지킴이 봉사단 운영·문화유산 해설사 양성·감성계발 문화교실 등 일련의 사업을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기획하고 펼침으로써 문화의 융성과 건실한 내일을 기약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비전과 역량으로 일월문화원은 2019년 제1회 장기유배문화축제를 주도적으로 개최했으며, 재작년에는 삼일문화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설립 15주년을 맞은 일월문화원은 올해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이 포항에 터전을 둔 포항사람임을 부각시키며 일련의 추모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문화이며, 문화예술의 품격이 그 도시의 품격이고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우리 지역 전통문화의 발굴, 보존과 정체성을 탐구, 정립하여 문화유산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전승으로 현대화·미래화하는 일들은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고 융합·전파시키며 문화시민 저변확대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가는 일월문화원의 기여와 발돋움이 사뭇 기대된다.

2025-03-25

꿈나무에서 실버까지 피우는 묵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오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은 듯 비바람과 강원 산간에 ‘봄눈 폭탄’까지 내리니 막바지 동장군의 심술(?)이 만만찮은 것 같다. 더욱이 이번 주부터는 영하권의 꽃샘추위로 남도에 피기 시작한 산수유나 홍매화가 화들짝 놀라며 가녀린 꽃잎을 짐짓 다물지 않을까 싶다. 한창 망울이 부풀어가던 벚꽃나무 가지가 찬 기온에 필 듯 말 듯 낭창거리며 개화시기를 가늠하고 있어도, 볕 바른 곳엔 이미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며 생동의 새봄을 부추기고 있다. 생동하는 봄날의 리듬을 먼저 타기라도 하듯 고사리 여린 손길에서부터 백발의 주름진 더벅손까지 벼루에 물을 부어 먹을 갈고 붓을 잡는 모습들이 진지하게만 보인다. 사각거리며 먹이 갈리는 소리가 긴 겨울의 움츠림을 걷어내는 손끝의 기지개 같고, 붓에 먹물을 찍어 서툴지만 한 점 한 획 써내려 가는 운필(運筆)은 성글어진 마음의 밭을 일구는 쟁기질 같다. 마치 예전의 서당이나 글방처럼 지필묵(紙筆墨)을 가까이하며 은은하게 묵향을 피워가는 몸짓들이 사뭇 담담하고 새롭기만 하다. 이러한 광경은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에서 펼치고 있는 ‘함께하는 서예 나눔’의 테마별 재능봉사활동 장면들이다. 즉,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에서는 매월 지역의 아동센터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서예체험학습을 통한 정서순화와 감성계발에 도움을 주는 ‘찾아가는 서예교실’을 운영하는가 하면, 고령화사회를 맞아 노년기의 인지력ㆍ기억력 개선과 치매 예방 및 어르신들의 활력증진을 도모하는 ‘실버인지 서예치유’ 교육 프로그램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서예 꿈나무들의 육성에서부터 황혼기의 어르신들께 인지학습 소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세대와 공간을 아우르는 활기차고 유익한 서예 재능기부활동이 아닐 수 없다.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은 2021년 4월에 창단돼 서예재능 나눔으로 관내 취약·소외계층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재능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찾아가는 서예교실 30여 회, 포항다문화가정·탈북민가족 가훈 써주기, 사회복지시설 방문 부채작품 써주기, 포항문화원 주관 새해 가훈 써주기 등의 서예 나눔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했다. 어르신들의 말벗을 해주며 인지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이색적인 서예치유 프로그램은 올해 3월부터 실시돼 주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서예를 배움은 단지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만이 아닌, 그에 수반되는 유용한 가치와 활동으로서 심신의 건강과 의지의 단련, 심미안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고도의 정신수양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먹을 갈고 먹물의 농도를 조절해서 붓글씨를 순서대로 써내려 가는 과정에는 뇌의 여러 영역이 자극되고 교감해 뇌의 활발한 활동이 이뤄진다. 한글이나 한문 글자의 의미와 필순을 떠올리며 기억력과 표현력이 좋아지고, 글자의 대소강약이나 먹물의 퍼짐, 전체적인 구도를 생각하면서 붓을 움직이면 공감각적인 능력이 살아나는 등의 효능을 기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웃음치료 못지않게 ‘서예 치유’가 실버세대들의 정신과 마음의 안정, 치매 예방과 건강을 유지하는 신 장르로도 주목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예 꿈나무 학생들이 붓을 잡는 것이 흥미와 설렘의 희망이라면, 실버들에게는 치유와 소일의 활력과 위안일 것이다.

2025-03-18

옛것을 보듬는 손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저만치 다가오는 봄을 맞이라도 하듯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겨울 내내 아니, 몇 년째 방치되다시피 한 자전거의 먼지를 털어내고 정말 모처럼만에 두 바퀴를 굴렸다. 강변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로 접어들자 약간 쌀쌀한 듯했지만 아침 공기는 신선했고, 오리떼들이 가볍게 날거나 물 위에 떠서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들이 활기차게 보였다. 간간이 물 흐르는 소리와 경쾌한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한 시간 여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새 양동마을을 지나 기계면 문성리에 위치한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 당도했다.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고 봄날이 가까워지니 이쪽저쪽에서 열리는 주말의 봉사활동 횟수도 늘어나고 있다. 환호공원과 포항운하 일대의 공공시설물을 돌보거나 가꾸고, 취약계층·복지시설의 낡은 방충망 교체와 수목 전정 조경관리 활동을 비롯, 자전거 무료 수리, 해안가 비치코밍, 수중 정화, 도배 장판 교체, 전기시설 수리 등의 다양한 재능봉사활동이 봄보다 빠른 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자원봉사활동은 포스코에서 십 수년 전부터 기획, 추진해온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재능봉사활동이다. 임직원들의 재능과 특기, 기술과 전문성을 발휘하여 지역사회의 취약·배려 계층과 공공에 작으나마 도움과 공익을 주는 맞춤형 밀착 봉사활동인 셈이다. 그러한 취지에서 열리게 되는 포스코 문화유산 돌봄봉사단의 당일 기계면 일대의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돌봄과 환경정화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애써 달려간 것이다. 봉사활동 참여를 구실로 자전거 타기 운동을 하며 문화재 답사와 반가운 사람들까지 만날 수 있었으니 나름 일거양득의 루틴(?)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환경운동에도 한몫 한 셈이니 그야말로 일석다조(一石多鳥)라 해야 할까? 어쨌든 버스를 타거나 개별 출발한 봉사단원들과 집결장소에 합류하여,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바로 옆의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과 팽나무 보호수 탐방을 시작으로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홍보영상 시청, 전시관 관람 등을 마치고는 작년 8월에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포항의 대표적인 정자 분옥정으로 향했다. ‘옥구슬을 뿜어낸다’는 의미의 분옥정(噴玉亭) 입구의 노후된 봉좌산 숲길 안내판을 봉사단원들과 함께 새것으로 교체하고, 정자 뒤편의 세이탄(洗耳灘) 개울 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문화재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했다. 그런 다음 파평윤씨 시조 사당 봉강재 일대를 둘러보면서 문화재 해설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도 했다. “세월의 더께 속엔/켜켜이 지층 같은//시간이 박제되고 사연이 스며들어//한줄기 바람결조차/소리되어 머무네//고색이 창연할수록/숨막히는 아련함//심원의 절규인가/메아리쳐 맴도는데//무연히 사그라 드는/천만 갈피 실마리” - 拙시조 ‘옛것에 대하여’전문 가까운 곳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을 비롯, 조선후기 전통가옥과 정자, 정원, 노거수, 사당 등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돌봄으로 잘 보전해야 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뜻있는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자연을 삶의 일부로 여기며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서 시문을 짓고 강학을 하며 풍류와 운치 속에 유유자적을 즐기던 선인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하루였다.

2025-03-11

남도의 봄 마중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을 재촉하는 비가 전국적으로 내리는가 싶더니, 강원·충청지방에서는 밤사이에 눈으로 둔갑해 소복이 쌓였다. 3월에 내리는 눈은 대부분 무거운 습설이라 농가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 피해나 설해목을 초래해 걱정이 앞선다. 한 달 전 입춘 무렵의 한파와 영하권의 날씨가 경칩까지 이어져 꽃과 나무들의 개화시기가 늦춰지는 바람에 지자체별로 고심하고 있다고들 한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매화축제가 매화는 없고 축제만 있는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대충 난감’이 따로 없을 정도다. 그만큼 기후변화는 이상기온과 예측불허로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더디 오는 봄을 마중이라도 하듯 남도로 향했다. 섬처럼 군데군데 야트막한 등성이가 솟아 있고 바닷물이 빠졌다가 다시 채워지는 갯벌에서 묻어나는 비릿함이 인상적인 ‘녹차수도 보성’의 득량만이다. 전남 벌교읍과 장흥군 사이의 연안에 서당항, 군농항, 율포항 등의 고만고만한 항ㆍ포구들이 이어져 있고, 멀리 고흥군과 보성군 사이의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득량도를 품은 곳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5년 후인 정유재란 때,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고 배설이 감춰둔 12척의 배가 있는 장흥 회진포로 가던 중 군량미를 얻었다 해서 붙여진 득량(得糧)이기도 하다. 보물(寶)같은 고장(城)답게 전남에서 평균고도가 가장 높은 보성군은 바다와 산, 섬이 어우러져 발길 닿는 곳마다 테마와 먹거리, 스토리가 많은 곳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천혜의 산자락 일대에는 차밭이 많아 전국 녹차 생산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산 아래 도강과 영천마을에는 서편제 판소리 명창이 많이 배출되었는가 하면, 동쪽 벌교의 꼬막과 서쪽 회천의 낙지 등의 먹거리가 풍부해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남도의 연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그곳 보성에서 ‘어디에도 없는 득량만’의 오묘함에 매료되어 시절인연처럼 일림산 기슭 삼의당에 5년째 칩거하며 글을 쓰고 살아가는 한 소설가가 있다. 세상의 풍찬노숙을 달관한 듯 해맑은 웃음이 여유롭고 ‘측간수인(厠間囚人)’을 자처하며 호탕하고 분방하게 글을 쓰고 시를 읊으며 지역의 문화적인 소통과 교류에도 한몫하고 있다. 밤낮없이 집필하고 고뇌하며 유유자적 행운유수로 수행하듯이 살아가며 때때로 세상을 향한 일갈도 서슴지 않는 그는, 어쩌면 요즘 보기 드문 기인(?) 같고 달인같은 모습이랄까? “커피 앞에서/바다를 마신다/고깃배 선창에 떠맡기고/집으로 돌아간 사람들/꼬막 낙지 주꾸미 갯 것 건진다고/칼바람 맞서며 짠물 삼켰다/사나운 시간이 잠들면/검은 머리 갈매기 날개를 접고/먹이를 찾느라 뻘짓 바쁘다//바다 앞에서/커피를 마신다/철게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숨어버리는/생을 찾는다” - 양승언‘커피 바다’전문 썰물과 밀물이 드나드는 율포항 언저리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커피 바다’ 시를 감상하는 기분은 어떨까? 그리움처럼 멀어져가는 썰물에 내 마음 뻘처럼 고스란히 드러나 속내를 보이지만, 두고두고 사무치는 마음 나지막이 밀물처럼 살며시 다가오면, 한결 넉넉하고 푸근하게 삶을 다독이며 세상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남도의 봄은 그렇게 잠방잠방 오고 있었다.

2025-03-04

靜中動의 봄 채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고요와 침잠으로 이어지는 겨울의 끝자락이다. 미련인지 아쉬움인지 함부로 물러서지 않는 동장군이 벽창호 같은 몸짓으로 막바지 추위의 기세를 드러내고 있지만, 매화의 등걸에서는 이미 망울이 맺히고 섣부른 가지에서는 벌써 한, 두송이 꽃이 피어나고 있다. 한설과 북풍의 회오리에 꿈적도 않을 것 같은 대지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동토의 장막을 밀어내고 있다. 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나 작용을 하게 되는 정중동(靜中動)의 몸짓이 일어나고 있다. 겨울은 어쩌면 정중동의 계절이다. 그토록 푸르청청하던 나무의 잎새가 떨어져 땅을 감싸며 뿌리의 활착과 번성을 조용히 돕고, 거세게 흐르던 폭포수도 온몸으로 얼어붙어 물보라의 비산을 막으며 나지막한 음조로 낙수의 흐름을 챙기고 있다. 움직이고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듯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가 더없이 평온하게 보이지만, 수면 아래서는 쉼없이 물갈퀴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요함 속에서도 움직임이 있고 움직이는 가운데도 고요함이 스며들어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자라나며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다는 것은/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일/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자신을 만들어준다./이 창조의 노력이 멎을 때 나무건 사람이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겉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표정을 잃은 채 덤덤히 서 있는 것 같지만,/안으로는 잠시도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땅의 은밀한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새봄의 싹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시절 인연이 오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대지 위에 활짝 펼쳐 보일 것이다.’ - 법정 스님 ‘산중 한담’중 혹한의 계절에 동면이나 동안거(冬安居)에 드는 것은 결코 움츠림이나 위축되는 것이 아니다. 숨가빴던 호흡을 가누고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나름의 생존법이나 수양을 일삼으며 더 단단하고 단호해지기 위해 내밀한 힘을 키우는 시간이다. 그것은 어쩌면 망중한(忙中閑)의 여유로운 안도일 수도 있고, 한중망(閑中忙)의 새로운 시도일 수도 있다. 아무리 바쁜 가운데도 잠깐 틈을 얻어내 여유를 부릴 수 있고, 한가함 속에서도 열심으로 움직이며 뭔가를 준비하고 추구하는 노력은 전적으로 자신의 안목과 의지, 처세술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바쁘고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일수록 정중동과 망중한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면 어떨까 싶다. 온갖 정보와 광고가 난무하고 디지털, 스마트사회를 넘어 AI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차분하고 침착하게 본연의 평정심으로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루틴을 세워 ‘바쁜 듯이 느긋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스스로에게만 바쁜 듯이 대하고, 주변이나 이웃들에게는 여유를 보이며 ‘느긋하게 바쁜 듯이’ 넉넉하게 대한다면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다. 우수와 경칩 사이, 아직은 바람이 여전히 차갑지만 남도 매화의 꽃 소식에 따스해지는 마음이다. 긴 겨울 깊은 적요에 들었던 만물이 정중동의 일깨움으로 차츰 봄 채비를 하듯이, 망중한의 여유로움으로 기지개를 켜며 조붓한 오솔길로 찾아오는 봄을 마중해야 하지 않을까? 봄은 출생이며 새로운 희망이다.

2025-02-25

월포 龍山을 오르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봄맞이라도 하듯 야트막한 산엘 올랐다. 청하면 월포리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나즈막한 용산으로 비교적 가볍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산중턱과 정상 부근에 군데군데 너럭바위가 있고 특히 청동기시대의 문화유산인 고인돌(지석묘)이 동쪽 등산로 초입에 있으며, 큰 암반 위에 솥모양으로 움푹 팬 솥바위 2개가 있을 정도로 신기하고 유서가 깊어 예로부터 청하 고을에서 신성시된 산이기도 하다. 용의 머리 형국을 하고 있다는 용산(龍山)은 용산으로 불러지게 된 슬픈 전설이 있는 산이다. 즉, 아주 오래 전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월포리의 한 부부가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아들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예사롭지 않아 장차 장수가 될 아이이나 큰일을 저질러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며 집안 어른들의 우려와 결정에 따라 더 자라기 전에 죽는 순간 그 산에 살던 용이 아들의 한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버렸다고 해서 ‘용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믿기지 않은 주술적인 전설같지만 예나 지금이나 액운타파와 벽사진경(辟邪進慶)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숨고르기 하듯이 천천히 등산로로 진입하는데 용을 연상케 하는 큰 소나무 뿌리가 투박한 모습으로 길바닥에 드러나 꿈틀대는 듯하니, 불현듯 전설 속의 승천한 용의 화신이 현상계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탄한 솔숲 주변에 2기의 고인돌을 지나서 크고 작은 소나무가 빽빽한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오르니 이내 용의 머리를 닮았다는 용두암에 이르렀다. 활처럼 휘어진 월포리 해변과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작년말에 개통된 동해중부선 철도가 너른 들판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며 힘차게 뻗어 있다. 그 옆으로는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인데, 올해 말 개통되면 동해안을 잇는 교통망·관광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꿈에 부풀어 있는 듯하다. 북서쪽으로는 멀리 정상 부근에 잔설이 희끗한 내연산~천령산~삿갓봉의 연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들판 한가운데 자리잡은 청하읍내가 손에 잡힐 듯 정겹고 평온하게 다가온다. 또한 동쪽으로는 지척의 이가리 해안선 너머 호미곶 반도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용산 정상에서는 결코 조망할 수 없는 탁 트인 전경이 발 아래에 그림처럼 펼쳐지니, 과연 전설이 깃든 용산에서 용 한 마리를 타고 천하를 유람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해발 200여 미터의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곳곳에는 너럭바위 등이 자리잡아 승천을 준비하는 교룡(蛟龍)의 억센 근육처럼 여겨졌다. 순탄한 둘레길 언저리에는 멸종 위기 종인 망개나무 덤불이 빨간 열매로 산객을 반기고, 진달래는 멀지 않은 날의 개화를 준비하는 듯 작은 망울을 내밀며 부풀고 있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臥死步生)고 했던가. 몸을 움직여 걷고 뛰거나 함께 어울리다보면 저절로 생기가 나고 활력이 감돌 것이다. 천천히 여유롭게 산보하듯이 산길을 걸으면 이것저것 보이고 새롭게 느껴지는 바가 많아져서 산행 그 자체가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25-02-18

정월대보름의 소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최근 들어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설날을 전후해 눈이 살짝 내리는가 싶더니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다가오는데도 눈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해안을 비롯 전라·충청·강원권 등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눈은 수시로 내리면서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풍경을 백설 가루로 덧칠하는 듯하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국을 눈으로라도 덮어보려는 속내일까? 겨울의 끝자락에 혹한과 강설로 동장군의 기세가 살아나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춘이 지나고 정월대보름이나 우수가 가까워지면 눈이나 비가 잦아들게 된다. 산간 내륙이나 도서지방 등에서는 기압골의 차이로 눈도 내리게 되는데, 농경사회에서는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라 무엇보다 날씨를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정월대보름은 유일하게 대(大)자를 붙여 ‘새해 첫 번째 뜨는 만월’이라 해서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동제·풍어제를 지내거나 근신하면서 세시풍속을 즐기고 길흉화복을 예견하기도 했다. 즉 설날이 개인이나 가족 중심의 새해맞이 명절이라면, 정월대보름은 집단적이고 개방적인 마을공동체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예로부터 새해의 풍요와 안녕을 바라며 함께 모여서 즐기고 어울리는 놀이문화가 있었다. 윷놀이나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횃불싸움, 고싸움놀이, 놋다리밟기 등의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기며 단순한 오락을 넘어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결속을 다지기 위한 축제의 일부로 여겼다. 그러한 단체활동이나 힘겨루기 등으로 승패를 갈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며,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遠禍召福) 전통놀이를 통해 마을에 행복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또한 부럼 깨기와 오곡밥, 귀밝이술, 약밥, 진채(陳菜)를 먹으며 개인적인 건강과 농사의 풍년을 바라기도 했다. 정월대보름 이른 아침에 먹는 부럼 깨기는 한 해 동안의 각종 부스럼 예방과 건치의 염원을 담았고, 귀밝이술을 한잔하면서 남의 말과 어른 말씀을 잘 들으라는 교훈적인 의미를 일깨우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곡식을 섞어 풍요를 기원하며 짓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인 진채를 먹으며‘9’가 지닌 단수 최고, 충만의 의미와 풍족의 누림을 부여하기도 했었다. 빈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서 관솔을 넣고 불을 붙여 철사로 연결된 끈을 돌리면서 주위를 밝히는 쥐불놀이는 정월대보름 밤의 진풍경이었다. 휘영청 달빛 아래 논밭에서 삼삼오오로 저마다 불이 붙은 깡통을 빙빙 돌리면서 그려지는 크고 작은 원형의 불빛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불빛쇼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리다가 관솔이 거의 다 타게 되면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불이 붙은 깡통을 공중으로 일제히 던지게 되는데, 수직으로 솟구치는 불기둥에 불티가 눈처럼 날리면서 그려지는 불꽃 포물선은 쥐불놀이의 압권이었다. 어쩌다가 눈까지 내리는 달밤의 숨바꼭질이나 쥐불놀이가 끝나면 또래들과 큰 양푼을 들고 몇 집을 찾아가서 찰밥이나 식혜를 얻어와 살얼음이 뜬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꿈결 같은 정월대보름 밤이 켜켜이 동화처럼 각인되는 오늘이다.

2025-02-11

가족의 소통과 가훈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긴 설연휴 끝에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마냥 기다려지고 설레기만 하던 설날의 감흥이나 명절의 풍속도도 어언간에 많이 바뀌고 달라진 것 같다. 길게 이어지는 ‘황금 연휴’에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을 떠나는 것은 예사이고, 모바일 생활환경의 변화로 사이버 세배나 영상통화, 보드게임 등의 형태로 가족과 만나지 않고도 명절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 전통적인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며 전래놀이를 하는 풍습이 유지되는 곳도 많아서, 요즘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명절문화로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설이나 추석 같은 민족 대명절에도 가족이나 친지들의 만남이 뜸하거나 아예 없다보니 덕담이나 근황을 나누고 소통하는 마음도 서먹하고 성글어질 수밖에 없어지게 된다. 가족과의 소통과 만남은 단순히 말을 나누고 그냥 얼굴 보는 것을 넘어, 서로의 존재가치를 깨달으며 아껴주고 챙겨주며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가 아닐까 싶다. 소통이나 대화의 시간이 줄어들고 단절되면 그만큼 가족 구성원 간의 도타운 정을 느끼기도 어렵고 가족애도 갈수록 식어지게 될 것이다. 그 이면에는 희대의 총아같은 컴퓨터나 스마트폰도 적잖이 한몫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대사회에 있어서 가족의 의미와 가훈이 시사하는 바는 생각 이상으로 다소 희석되고 퇴색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가족의 친밀함과 따스한 정은 서로 부대끼며 스스럼없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배어나듯이, 가훈 역시 가족 구성원들의 한결 같은 마음과 따스한 인식으로 수긍하고 되새기면서 지켜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선 가족 간의 원만한 소통과 대화, 융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가훈(家訓)이란, 한 집안의 어른이 그 자손에게 대대로 전해주는 가르침으로서 지켜야 할 근본 도리를 짧게 또는 설명을 곁들인 문장으로 전하는 훈화라 할 수 있다. 즉, 가훈의 내용은 주로 훈계, 자녀교육, 마음가짐, 몸가짐, 건강관리, 대인관계, 재산관리, 관혼상제, 관직생활 등의 내용을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가훈은 우리들의 가정을 화목·단란하고 건실하게 하기 위한 전통적인 집안 교훈으로, 우리 선조들은 그 자손들의 장래, 행복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신중하고 정성스레 가훈을 지어 가르쳐 왔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핵가족 중심의 사회에서는 가훈이 뭔지도, 아예 없는 가정이 많아 자녀 훈육과 관련된 전통의 소중한 가치가 점차 사라지는 듯해 아쉽기만 하다. 그러한 차제에 애써 가훈을 보급이라도 하듯이 설날부터 가훈을 붓글씨로 써주며 두루 알리고 나눔을 실천한 곳이 있다. 지난 설날 낮부터 포항문화원 주관의 ‘2025 설맞이 포항전통문화한마당’ 행사장에서 포항서예가협회와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이 합동으로 포항의 명소 영일대 누각 주변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새해 소망과 가훈 써주기 재능기부활동을 펼친 것이다. 묵향 머금은 가훈을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받아들며 흡족해하는 가족이 가훈을 통해 가족애를 느끼고 자녀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어, 가정에 온화함과 희망의 가풍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2025-02-04

포스코 자원봉사의 웃음꽃

춥지 않은 소한(小寒)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大寒) 없다 했던가. 한 해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도 지구온난화에 밀려 북풍의 혀를 날름거리던 동장군이 여지없이 맥을 못 추고 있다지만, 동토의 비탈엔 아직 잔설이 꼿꼿하게 서려 있고 얼어붙은 강줄기는 수시로 얼음장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고 있다. 그다지 강추위가 아닌데도 시국은 온갖 기현상(?)으로 볼썽사납게 얼어붙고 민심의 파고는 난파선을 집어삼킬 듯 격하게 요동치고 있으니, 설 대목의 경기와 민생은 걷잡을 수 없이 팍팍해지며 힘겨움을 더하고 있다. 그래도 ‘얼음장 밑에서도/고기는 헤엄을 치고/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꽃망울을 튼다//절망 속에서도/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사막의 고통 속에서도/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문병란의 시 ‘희망가’중)고 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추위 속에서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쓰러지지 않도록 하고, 난전에서 쪼그리고 앉아 시금치 묶음을 다듬으며 누군가 사 갈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무덤덤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이지만, 누군가가 길거리의 휴지를 줍고 따스한 인정으로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험난한 세상이 조금씩 밝아지고 따스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삼삼오오 팀을 이뤄 해안가에 밀려나온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거나,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 정원수의 전정작업을 능숙하게 수행하고, 경로당 시설을 방문하여 창문 방충망을 교체해주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부품을 직접 조립하여 완성된 컴퓨터를 취약 가정의 학생들에게 기증하고, 새해를 맞아 연하장이나 붓글씨로 새해 소망을 적어 나누어 주는 등의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은 포스코 포항제철소 재능봉사단이 연초부터 펼치는 ‘맞춤형 봉사활동’의 일부이다. 이는 임직원들이 가진 다양한 재능과 특기, 기술을 활용하여 소외되거나 취약한 지역사회 에 도움을 주고 사랑을 나누는 공익적인 사회봉사 프로그램이다. 즉, 포스코 임직원들이 급여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금과 포스코1%나눔재단의 출연금을 경북공동모금회에 전액기부 후 포항시자원봉사센터에서 배정된 예산에 따라 45개 재능봉사단이 지역사회를 위해 저마다 특색 있고 다양하고 유익한 활동을 펼치는 선순환 봉사활동인 셈이다. ‘스스로/스스로의 생명을 키워/그 생명을 다하기 위하여/빛 있는 곳으로 가지를 늘여/잎을 펴고/빛을 모아 꽃을 피우듯이//추운 이 겨울날/나는 나의 빛을 찾아 모아/스스로의 생명을 덥히고/그 생명을 늘여/환한 내일을 열어 가리’ - 조병화 ‘난(蘭)’전문 어쩌면 추운 겨울에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자원봉사의 꽃을 피워가는 포스코 봉사단원들의 따스한 손길은, 한겨울에도 묵묵히 어려움을 견디며 빛과 희망을 찾아 향기 짙은 꽃을 피워가는 난을 닮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주말이나 휴일을 반납하며 스스로 한결같이 활동에 임하는 봉사자들의 얼굴에 보람의 꽃이 피어나듯이, 수혜자의 얼굴에는 만족과 기쁨의 웃음꽃이 청초한 난꽃 마냥 환하게 피어나리라.

2025-01-21

겨울 삽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북풍한설에 개울과 무논은 하얗게 얼어붙고 한낮에도 처마 끝에 고드름이 자라며 솔숲에 이는 바람소리는 가슴 속까지 파고들며 오싹 시리게 했다. 물기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물기가 순간적으로 얼면서 쇠고리가 손에 쩍쩍 달라붙기도 하는 등 혹독한 추위가 있어야 겨울 맛이 나는 듯했다. 변변찮은 방한장구도 없이 구멍 난 양말에 벙어리장갑을 끼고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하루 종일 무논의 얼음판에서 노는 것이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웠던지, 지금 되새겨보면 동화 같은 겨울풍경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어렵고 빈한하던 시절, 겨울철의 강추위가 찾아오면 먹고 입는 것조차 모자라고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또래들과 곧잘 어울려 얼음을 지치거나 자치기, 팽이치기를 하다가 배고파지면 간식으로 먹는 것이 호주머니에 조금씩 넣어 온 땅콩이나 생고구마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넉넉지 않아 친구들에게 좀 얻어먹거나 즉석에서 닭싸움이나 구슬치기 내기판(?)을 벌여 어쩌다가 이기게 되면 쾌재를 부르며 맛있게 배를 채우곤 했었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언덕 위에 올라 매운 바람 속에 연날리기를 즐기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가오리연에 작은 꿈을 실어 보내기도 했었다. 맹추위에 놀이만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보일러가 없던 때라 동절기가 되면 땔감을 마련하는 것이 일상의 중요한 일이었다. 소달구지를 끌고 나무하러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나서거나, 또래들과 함께 지게를 지고 마을 주변의 산비탈로 나무하러 숱하게 다니곤 했었다. 키 높이 두배 이상의 검불을 지게에 수북하게 지고 오거나 베어낸 나무 밑동 장작을 한가득 바지게에 지고 오면, 어머니께선 애썼다며 으레 고방의 단지에서 살얼음이 낀 식혜를 한 대접 퍼주시곤 했었는데, 달금 시원하고 쌉싸래한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을 듯하다. 그렇게 산과 들에서 해온 나무로 쇠죽을 끓이거나 군불을 지핀 온돌방에 밤이면 둘러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윷놀이를 하면서 기나긴 겨울밤의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울리는 ‘전설 따라 삼천리’를 함께 듣거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귀신 이야기며, 어느 마을의 처녀총각 연애담을 시시덕거리며 듣다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깔깔거리며 짓궂은 장난질을 해대기도 했었다. 그렇게 설설 끓는 온돌방에서 정담과 재미로 한겨울을 보내며 차츰 성장했던 것 같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 조향미 ‘온돌방’ 중 추위에 떨며 손발을 동동거리면서도 겨울놀이를 즐기던 동네 꼬마들은 혹독한 추위에 맞서며 또래들과 어울려 끈기를 배우고 인내심을 키워왔던 것 같다. 그렇게 찬바람과 혹한 속에 내성(耐性)을 길러 풍파의 세상을 맵차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5-01-14

파행의 소용돌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다사다난이 무색할 정도로 연말연시의 난국이 연일 소용돌이 치고 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연말에 예기치 못한 비행기 사고까지 겹쳐서 온 나라가 침통하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묵은 해를 정리하고 보내야 하는 차분함도,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와 설렘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극한대치와 긴장이 불안과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파행의 터널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정국과 민생이 여지없이 요동치고 있어서 안타깝고 암울하기만 하다. 갈수록 태산(去益泰山)이라더니, 정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고 점입가경이 따로 없을 정도다. 평지풍파도 유분수지,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파탄일로에 절체절명의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는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기후변화, 경기침체와 북한의 위협 등 모든 것이 녹록찮고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화와 타협으로 협치와 상생을 도모해도 모자랄 판국에 걷잡을 수 없는 내분과 내홍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참으로 개탄스럽고 알다가도 모를 불가해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토록 강조하던 공정과 상식은 무엇이며 법치와 평등은 어디로 갔는지, 헌정사상 유례가 없고 세계적으로도 극히 이례적인 일 앞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오죽했으면 외신에서조차 한국의 정세가 드라마보다 더한 이변과 초조감이고, 모종의 음모론(?) 같은 걸 연상시키는 기상천외한 현실이라고 꼬집었을까?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세상사 잠시 접어두고, 난마 같은 탄핵정국에 이골이 난 눈과 귀를 씻기 위해 산행에 나섰다. 산은 늘 그 자리에서 듬직한 모습으로 반기지만 자주 찾을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마침 그날은 포항의 모산악회 새해 첫 산행으로 시산제를 겸한 산행이고 안동의 숨은 보석 같은 산이라 선뜻 동행하게 됐다. 이육사의 고향인 원촌리와 이육사문학관이 손에 잡힐 듯하고 안동댐을 내려다보며 우뚝 솟아있는 왕모산(王母山)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왔을 때 왕의 어머니가 이 산에 머물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행 초입에 자리한 월란정사(月瀾精舍)는 퇴계선생이 제자들과 즐겨 찾아 강학하고 시문을 읊었던 곳으로 주변의 수려한 경관과 어우러져 안동시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음에도 퇴락한 곳이 많아 관리가 잘 안돼 보였다. 인생 아리랑 열두 고개마냥 야트막한 봉우리 12개를 넘어야만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왕모산은 삶의 축소판 같은 인내와 고난, 고비와 안도의 여유를 안겨주며 어머니의 품처럼 산객을 맞이하는 듯했다. 정상에서 펼쳐지는 일망무제 조망은, 마치 푸른 뱀같이 구불구불한 강줄기가 희끗희끗 얼어붙어 안동호로 이어지는 물굽이 그 위로는 올망졸망 능선들이 겹겹이 에워싸며 추운 겨울을 푸르게 지키는 듯하고, 맨 뒤로는 안동의 최고봉 학가산의 위용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어쩌면 산행내내 난세의 이 시국이 왕모산의 주변 형세와 낙동강의 물돌이와 비슷하게 여겨짐은 나만의 억측일까? 꽁꽁 얼어붙은 파행의 강바닥 민생이며 이육사의 ‘절정’ 시판이 설치된 칼선대의 일침, 너럭바위와 군데군데 고사목이 뼈저리게 무언의 항변을 하는 듯했다.

2025-01-07

플라스틱으로 신음하는 바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가 요동치고 있다. 길거리로 나온 민심의 파도마냥 만리 이랑을 달려온 파도가 뭍에 가까워지면서 방파제며 갯바위, 자갈, 모래톱에 사정없이 부닥치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육지의 안부가 궁금해 늘 가볍게 찰랑거리던 몸짓으로 다가오던 파도가 최근에는 격정을 못이긴 듯 거칠게 밀려와서 산산이 부서지는 듯하다. 파도와 물결은 바다의 숨결처럼 늘 살아있고 깨어 있는 가슴으로 출렁대다가, 때로는 무언의 신음 마냥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항변할 때가 있다. 어쩌면 플라스틱으로 몸살을 앓는 바다환경의 심각성을 고발하기 위한 일종의 항거일까? 주위를 조금만 관심있게 살피고 주의 깊게 바라보면 무엇인가 불합리하게 왜곡되고, 심각할 정도의 문제와 모순 같은 현상이 도처에 깔려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로, 특히 해양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는 과거 수십년 전부터 제기된 이슈로 전세계가 공감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실생활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편리함을 주는 플라스틱은, 미세플라스틱으로 장기간 분해되면서 물고기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인간의 건강마저 위협하게 되는 환경 저해물질이다. 남한 면적의 16배 크기의 대규모로 태평양에 떠돌아다닌다는 이른바 ‘플라스틱 섬’의 실체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상아로 된 당구공의 ‘친환경’ 대체물질로 150여 년 전에 개발된 플라스틱이 현재는 기후위기, 환경오염, 생물다양성 감소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밀접해지고 쓰임새가 많아진 플라스틱이 바다와 육상을 막론하고 오염문제와 환경문제를 유발하여 삶을 위협하고 있으니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지구환경을 되돌려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 이상 플라스틱으로부터 지구가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과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협약 체결 및 강력한 제재를 추진해야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생산 감축, 재사용, 포장재 줄이기, 리필재 사용 확대 등의 실천으로 플라스틱 줄이기에 적극 동참하여 오염 없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에 대한 의미 있는 접근으로, 지난 11월 23일 한국 그린피스 주관으로 세계 16개 환경단체들과 부산 벡스코 일대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 촉구 행진이 열렸다. 포항에서는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 등 30여 명이 동참하여 ‘플라스틱 이제 그만(No More Plastic)’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캠페인에 합류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생산에 5초, 분해에 50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듯이, 매년 4억t 이상의 플라스틱을 생산하는데 세계 정부와 기업이 나서 플라스틱 재질 개선과 생산량 감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국내 플라스틱 산업 역시 생산 감축을 기반으로 다회용기·재사용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다를 살리고 환경을 지키는 해법이 아닐까 싶다.

2024-12-17

비운의 용두사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유난히 뒤숭숭해지는 세모(歲暮)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져 스산함을 더해가는데, 국정은 희대의 비상계엄사태 여파로 난파선이 된 듯 꽁꽁 얼어붙어 진퇴양난의 대혼란과 위기에 빠져 있다. 자선냄비 종소리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져야 할 길거리가, 성난 민심의 성토와 여야의 극한 공방 대자보가 볼썽사납게 대치하고 있어 차분해져야 할 연말이 흉흉하고 괴괴하기만 하다.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靑天霹靂)같은 일이던가. 어쩌자고 이러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던가. 도무지 납득이 안 가고 이치와 순리에도 안 맞는 처사 앞에 대다수 국민들은 망연자실 한탄하고 격분과 단호함으로 전국 곳곳에 운집하여 탄핵과 처단을 외치고 있다. 그야말로 국정마비와 파탄, 민생불안으로 이어지는 일파만파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면서 온나라가 요동치고 총체적 난국에 휩싸여 걱정과 조바심으로 신음하는 형국이다. 12·3 계엄 논란 이후 1주일이 지났지만 정국 수습은커녕 정국 주도권을 쥔 야당의 정부와 여당을 향한 전방위 공세로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양상이다. 한국의 정치 불안으로 이미 국가신용도는 떨어졌고,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마비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외신들은 심각한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긴장,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경기둔화 하방 리스크와 외부 역풍이 커져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 갈수록 우려스럽기만 하다. 사태수습과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한데 당장 들이닥칠 영향과 피해는 추위 마냥 살갗을 파고드니 이 무슨 엄동의 돌변이란 말인가. 정말 아닌 밤 중의 홍두깨 같은 몸서리쳐지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오랜 전에 탐독했었던 명심보감 순명 편이 떠오른다. ‘때가 오면 바람이 왕발(王勃)을 등왕각으로 보내고, 운이 물러가니 벼락이 천복비를 내리친다(時來風送6ED5王閣 運退雷轟薦福碑)’는 구절로, 운이 좋아서 때를 잘 만나면 중국 당대의 문학가 왕발과 같이 이름을 드날릴 수도 있지만, 운이 다하면 가난한 서생과 같이 열심히 노력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상사 뜻과 같지 않고 운이 따라야 함을 가르치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기반이 취약하고 경험조차 전무한데, 순풍이 왕발을 등왕각으로 보내서 ‘등왕각 서’를 지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처럼 천운을 타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운수가 쇠퇴하면 하루 밤새 벼락이 떨어져 ‘등왕각 서’ 비석이 부서지듯이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 허사가 돼버린 12·3 내란사태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결연하고 단호한 뜻이라도 절대적으로 시운(時運)을 타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물을 타고, 새는 바람을 타며, 인간은 때를 탄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청룡의 기세로 힘차게 출발했던 갑진년이 끝자락에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 섣불리 자리를 내줘 용두사미(龍頭蛇尾)로 전락한 듯싶어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운이 따르면 바람이 불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벼락이 친다.

202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