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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힘내라, 포항 탈북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누구에게나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있다. 어릴 적 티없는 순박함에 젖어 잔뼈가 굵어지고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무한한 꿈을 키워오던 곳, 다름아닌 고향이다. 철이 들어 학업이나 부모님의 생계, 자신의 진로를 위해 고향을 떠나서 살게 돼도 늘 그립고 돌아가고픈 곳이 고향이 아닐까 싶다. 하긴 새장에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물 속의 물고기도 옛 못을 그리워하는데(羈鳥返舊林 池魚思故淵), 하물며 정과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의미는 오죽하랴. 그렇듯이 고향은 굳이 귀소본능이 아닐지라도 늘 어머님의 품처럼 따스하고 넉넉하게 다가오는 곳이다.그러나 늘 그립고 생각나는 고향이지만 애써 버린듯이 힘겹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있으니, 이른바 북한이탈주민 또는 탈북민이다. 한 때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새터민’라는 표현도 썼으나, ‘새터’라는 단어가 오히려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의 정체성을 부인하며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지양하고 2008년부터는 법률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을 줄여서 ‘탈북민’이라고 많이 쓰여지고 있다.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고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탈북현상은 지구상에 유일한 슬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어쩌면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따뜻한 남쪽’에 왔건만, 남한에서의 정착과 생계가 녹록찮은 것이 현실이다. 멀리 고향을 등지고 떠나왔기에 가족이나 친척이 없을 뿐더러, 더욱이 제2의 고향으로 삼아야 할 남한땅에서 새로운 연고나 일감을 찾아 사회에 순조롭게 진입하거나 안정적인 생활을 해나가기가 결코 만만찮을 것이다. 2023년말 기준 탈북민들은 전국적으로 3만4천여 명에 이르고 있으며,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까지 배출했지만 사회부적응과 사업실패·소송·채무 등에 시달리다가 월북·이민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으니, 한국사회의 정착과 포용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배려와 지원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계제에 포항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이 만남과 소통을 위한 화합의 공간을 마련하고 있어서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2023년 2월 공식 출범한 230여 명의 포항탈북민연합회가 작년 12월부터 약 2개월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31일 숙원사업이었던 ‘포항탈북민연합회 사무실’을 오픈한 것이다. 모든 것이 빈약하고 열악한 상태에서 개소식이 있기까지는 각계각층의 관심과 후원, 자원봉사, 물품기부 등의 손길이 시의적절하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감동과 찬탄으로 이어졌다. 특히, 포스코의 통큰 지원과 6개 재능봉사단의 9회에 걸친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이 두드러져 ‘탈북민의 싼타-포스코’라는 애칭이 붙어졌을 정도다.철천지 사선을 넘어온 포항 탈북민들에게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보금자리 마련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일까? 고향을 떠나온 애절한 마음을 서로 달래고 위로하며,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민들의 정보교환과 안정적인 정착생활을 돕는 훈훈한 사랑방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아울러 꿈에도 잊지 못할 북쪽을 향한 망운지정(望雲之情)이 삶의 새로운 희망과 용기로 피어나기를 축원해본다.

2024-01-30

방송대학, 그 청렬한 학창의 갈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배움에는 끝이 없다. 어쩌면 사람의 일생은 전 과정이 배움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나서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며, 학교엘 가서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며 예의범절을 알고 공중도덕을 지키게 된다.직장에서 일을 배우거나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배우면서 사랑을 쌓아 가기도 하고 세상살이의 풍파를 겪으며 지혜를 더해 가기도 한다. 이렇듯이 사람은 태어나서 일생을 마감하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기에 평생교육 또는 평생학습이라 하는가 하면, 배움에는 끝이 없고(學無止境) 배움의 바다는 가없다(學海無邊)고 하기도 한다.그러나 농사짓는 일에도 때가 있듯이 배움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배우고 익힘의 과정이 사람마다 다 같을 순 없겠지만, 가정·학교·사회로 이어지는 교육과 학습의 시기는 대부분 엇비슷하여 또래나 동년배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면서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敎學相長)하듯이, 사람은 주위의 자극이나 영향을 받아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일으켜 애써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하고 끝없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배움에 대한 즐거움과 깨우침에 대한 열망으로 자긍심을 고취하며 쉼 없이 자아실현을 추구하게 되는지도 모른다.하지만, 배움이란 누구나 쉽게 접할 수는 있어도 개개인이 유익한 성과를 거두기는 결코 쉽질 않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의 상황을 거치면서 교육과 학습환경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온라인 비대면 학습에 대한 줌(Zoom)교육시스템이 강화 정착되고, 유튜브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한 사이버 학습콘텐츠가 다양화되면서 교육과 학습방식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을 정도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리하게 청강과 학습에 임할 수 있으니, 불과 몇 십년 전만해도 상상하기조차 힘든 변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40~50년 전부터 다소 빈약하고 미비한 학습여건에서도 원격교육과 출석수업에 임하며 학문탐구에 매진해온 사람들이 있었다면?이러한 측면에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1972년 개교한 대한민국 최초의 원격대학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온라인 시대를 예견하며 미래형 대학교육의 실재를 구현, 선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한창 진행되던 70, 80년대부터 고등 원격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여 배움의 기회를 놓쳤거나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교육기반을 조성해서 사회 각계각층의 인재를 육성, 배출해왔다. 또한 대학 졸업 후에도 어학이나 관심학과에 편입학하여 전문지식 확충과 자기계발의 선순환을 제시하는 평생교육의 기틀을 다져서 ‘자기 발견의 감동’을 일상적으로 체득하도록 하고 있다.힘들게 배우고 어렵게 취득한 학업성과는 결코 쉽게 없어지질 않는다. 더욱이 주경야독으로 고단함 무릅쓰고 배움에 대한 의지와 희망으로 학업의 고락을 함께한 학우들은 친구나 학습동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동문들이 수십년 간 뜸해졌다가 최근 재회와 결속의 마음을 나누고 있어서 고무적이다.전국이 캠퍼스인 방송대학이라는 청렬한 학창의 갈피에서 동학(同學)의 웃음꽃이 봄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길 기대해본다.

2024-01-24

새해 시산제 산행을 하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해 들어 첫 산행을 했다. 몇 년 전부터 월 1회 산행계획을 세웠었지만 점차 바빠지는 일상 속에 번번이 못지켜져서 여간 아쉽지가 않았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정말 건강도 챙길 겸 산과의 교감을 통해 좀 더 새롭게 거듭나자는 나와의 약속을 다지며 첫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산은 늘 그 자리에서 언제나 반기고 품어주는데 무엇에 쫓기고 발목이 잡혀 가까운 산조차 즐겨 찾지 못했던 것일까? 핑계 같은 변명이지만 산행에 대한 나의 의지가 약해졌거나 계획실행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일 것이다.마침 오래 전부터 뜸하게 참여하던 모 산악회에서 시산제 산행을 가까운 경주 오봉산으로 한다기에 선뜻 신청하여 함께 떠나게 됐다. 경주시 건천읍에 소재한 오봉산(五峯山)은 다섯개의 봉우리가 올망졸망 서 있는 모양새를 따서 닭벼슬산으로 불리기도 하며, 선덕여왕의 3대 대표 유적지인 ‘여근곡’과 정상 부근의 거대한 바위벼랑 ‘마당바위’ 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산행에 동참한 일행은 건천읍 신평리의 주차장 한 켠에서 서남쪽으로 둘러쳐진 오봉산을 병풍삼아 시산제 제단을 마련하고 상차림과 제례를 준비했다.시산제(始山祭)는 산악인들이 새해에 산신령에게 올리는 일종의 제사의식으로, 한 해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고 먼저 간 산우들의 추모와 산행의 무사함을 빌면서 산악회의 전통과 정신을 담는 중요한 행사라 할 수 있다. 새해 첫 산행의 시산제를 통해 산신령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산악회의 철학과 신념을 나타내며 산악인의 단합과 발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러한 염원을 담아 정성스럽게 올린 시산제를 마치고는 간단한 음복과 음식 나눔으로 새해 덕담을 나누거나 근황을 얘기하며 이내 친숙한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한다.시산제의 의식을 치른 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면서 일행은 작은 마을과 저수지를 지나 천년 고찰 유학사 용왕당 앞의 소원돌을 돌려보기도 하고, 여근곡의 중심부에 있는 신비스러운 옥문지(玉門池)의 샘물을 받아 마시며 목을 축이기도 했다. 계단과 가파른 등로를 한참 오르니 능선으로 이어지는 탁 트인 시야에 건천읍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듯했다. 이윽고 오봉산 정상에서 등정의 예를 갖추고, 정상 바로 아래의 거대한 바위마당에 둘러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옛 신라 화랑들이 바위마당에서 길렀다는 호연지기를 상기하기도 했다. 또한 정상 부근의 주사암 암자에서 울리는 염불과 목탁소리를 들으며 대웅전과 요사채에 세로로 걸린 주련(柱聯)의 한문 문구를 훈독하기도 했다.하산길은 언제나 여유롭고 느긋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일행들과 못다 한 대화를 나눈다거나 올라갈 때 미처 못 본 정경을 눈에 담으며 안도하기도 한다. 산은 오르는 사람에게 늘 많은 것을 베풀고 들려주며 보듬어준다. 올해부터는 정말 작은 것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고 뭔가 변화되는 루틴을 확고하게 살려 바쁜 듯이 느긋하게 일상을 채워가리라 다짐해본다.

2024-01-16

마음먹기와 마음챙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새해가 되면 으레 목표나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다짐이나 각오를 하게 된다.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선물 같은 나날이니, 새로운 날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신년설계와 희망을 꿈꾸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 싶다. 이러한 새해 소망과 목표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기준, 관점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건강과 행복, 합격이나 취업, 안전과 무사고, 장사나 사업, 복권이나 재물 등에 대한 행운이나 대박, 이득이나 성취를 간절히 바라며 기원하고 염원하기도 한다.이렇게 새해를 맞아 새롭게 마음먹으며 목표를 정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삶이 좀더 나아지고 좋아지려는 방향으로의 진전이나 성취, 달성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지만, 마음먹은대로 잘 되지 않은 것이 세상사이다. 누구나 마음먹기는 쉬워도 마음먹 은대로 이룩하고 얻어내기가 결코 만만찮은 것은 현실적인 여건이 녹록찮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사람들은 해마다 아니, 날마다 새로운 마음을 먹으며 도전하고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그렇게 숱하게 마음을 먹고 다지며 노력하고 인내하며 나아가도 목표가 요원하고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게 된다면, 어느 순간 실의와 허망감이 들어 급기야 어떤 일을 마음먹기조차 힘들어질 때가 있기도 할 것이다. 그로 인해 과도하고 복잡한 생각에 빠져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서적 불안감으로 일에 대한 의욕상실과 포기로 이어져 허탈감에서 오는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마음이 지치고 허약해져 매사가 귀찮아지고 마음먹기가 잘 안돼 괴리감에 빠진다면 ‘마음챙김’을 권하고 싶다.마음의 근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는 ‘마음챙김’이란 생각과 욕구를 멈추고 철저하게 ‘나’를 내려놓는 훈련이다. 예컨대 나의 감정, 생각 그리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동안 의도적으로 현재 이 순간을 인식하게 되는 일종의 자기명상 수련법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챙김은 아무것도 개입시키지 않고 오로지 순수하게 깨어서 경험되는 의식경험을 바라보는 것으로 내 마음과 오롯이 만나는 시간이다. 이러한 마음챙김의 순수관찰을 통해 자기와 세계에 대한 통찰로 현재 순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적인 태도로 자각할 수가 있으며, 어느 것에도 집착함 없이 조용하고 유연할 때 일어나는 심리적 자유의 상태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마음먹은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어려워질수록 내 마음을 잘 챙겨야 한다고 본다. 세상을 살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고난도 있기 마련이다. 마음이 힘들면 몸은 가눌 수조차 없게 되니 너무 현실에 급급하고 연연해하지 말고 성찰과 긍정의 자기암시를 통해 자신을 또렷하게 알아차리며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나가는 마음챙김을 꾸준히 해나가면 어떨까? 평온한 마음을 온전히 잘 챙기고 지켜야 모든 일의 마음먹기가 쉽고 원활해질 것이다.

2024-01-09

용이 날고 구름이 일어나듯이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용의 신령스러움 때문인지 2024년 갑진년의 첫 해돋이는 베일에 가려졌다. 부산이나 강릉 등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새해의 첫 아침해를 볼 수 있었지만, 영일만과 호미곶 인근 지역에서는 두터운 구름에 가려져 대부분 해맞이를 할 수 없었다. 일출명소에서는 해맞이객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모처럼 활기를 띠며 부산한 모습들이었으나, 끝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없게 되자 서둘러 발길을 돌리거나 아쉬워하는 눈빛이 역력해졌다. 매일같이 뜨는 해지만 새해 첫날에 뜨는 해를 맞이하는 건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산에서의 해맞이 상황도 비슷했다. 필자는 십수년째 새해 첫날 새벽에 포항의 관문격인 형산에 올라 해맞이를 하곤 했었는데, 올해처럼 해를 못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포항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거나 형산갓바위에 불공을 드리는 등으로 새해 새날의 설렘을 누리는 것 같았다. 약간의 아쉬움을 떨쳐버릴 순 없는 것 같았지만, 나름 뜻있고 진지하게 새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새벽에 일어나 쓴 신년휘호를 산정에서 펼치며 새해의 다짐을 되새겨 보기도 했었다.올해는 갑진년 용의 해에 어울리는 사자성어 ‘용상운기(龍翔雲起)’를 나름대로 선정해 연하장 겸 새해의 바람이나 목표로 삼아 몇가지 서체로 써서 지인 등의 분들에게 나눠줬다. 용이 날고 구름이 일어난다는 뜻의 용상운기는, 전쟁과 대립, 이변 등 격랑의 여울 같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용이 승천하며 빙빙 돌면서 날 때의 힘찬 기운으로 구름이 흩어졌다 모이며 일어나듯이, 매사에 힘차게 용솟음쳐서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청룡은 힘과 행운, 번영을 상징하기에 총선과 사회전반의 흐름, 북한의 위협적인 태도, 국제적인 정세 등에 용의 기상으로 지혜롭고 꿋꿋하게 헤쳐 나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기도 하다.용은 십이지 중 진(辰)은 유일하게 상상 속 동물인 비와 구름을 관장하는 영수(靈獸)로 다산과 농경사회의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왔으며, 황제와 지배층 등 왕실 예복에 용의 문양이 자주 새겨져 위엄과 존엄성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갑진년의 갑(甲)은 천간의 첫번째로 큰 나무(大林木)를 뜻하고 진(辰)은 지지의 다섯번째인 토(土)인데 열두 달 중에 음력 3월에 해당되므로 나뭇잎을 싹 틔우는 희망의 흙을 상징한다고 한다. 따라서 2024년은 ‘큰 나무에 새싹이 돋는 희망을 향한 변화와 변혁의 시기’로 ‘혼란을 극복하며 피어나는 희망의 꽃봉오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새해 첫날의 잔뜩 낀 구름이 어쩌면 분쟁과 갈등, 혼란과 딜레마를 예고하는 암울함 인듯하지만, 구름 사이로 비치고 나타나는 밝은 햇살이 화합과 재도약을 모색하는 긍정과 희망적인 빛살로 비춰지리라 믿는다. 그래서 국민의 안위가 평온해지고 국운이 번성해지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본다.

2024-01-02

아름다운 마무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숱한 희비와 애환의 사연으로 점철된 2023년이 서서히 세월의 바톤을 넘겨주려 하고 있다. 새해가 시작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끝자락에 와있으니, 새삼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여겨짐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반증일까?개인별로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가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어쩌면 빈말은 아닌 듯하다. 지나간 날들은 한순간처럼 짧게만 여겨지고 다가올 날들은 녹록하지 않으니, 지난 일 탓하지 말고 오는 일을 쫓는 것(往事不諫 來者可追)이 중요할 듯싶다.저물고 마무리되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서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피는 언덕이 아름답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즐겁게 퇴근하는 발걸음이 경쾌하다.또한 한 해를 성찰하고 정리하는 송년의 자리가 의미 있으며, 주어진 임기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모습에서 당당한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이렇듯 모든 일에는 마무리가 잘되고 아름다워야 시작의 의미와 가치가 살아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일의 끝맺음을 잘하여 좋은 결과를 거둔다는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강조하는 것일까?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게 되면 만감이 교차하여 달라지고 바뀌는 것들이 많아진다. 즉, 12월이 지나면 한 살 더 먹게 되어 한 학년이 올라가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고대하던 일들을 새롭게 시작하는 새날이 되기도 한다. 반면, 해를 거듭할수록 도전과 열정의 강건함이 수그러들고, 직장생활도 마무리되는 정년퇴임의 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듯이, 짧게는 한 해가 마무리되지만 길게는 오랜 일터의 삶을 마감해야만 하는 비장(悲壯)의 시간이기도 하다.‘또 한해가 가버린다고/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고마워하는 마음을/지니게 해주십시오//한 해 동안 받은/우정과 사랑의 선물들/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사랑하는 이들에게/띄우고 싶은 12월//…./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나를 키우는 모두가/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이해인 시 ‘송년의 시’ 중에서겨울과 12월은 만물이 완성되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과 사물과의 만남의 기회는 줄어들고 헤어짐의 순간은 잦아들기만 하니 세월따라 강퍅해지는 마음 탓일까? 아니, 어쩌면 더 비우고 가볍고 단순해지려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것들은 마디마디 꺾이고 세월의 여울은 흐느끼듯 웅성이는데, 멀어지고 잊혀지며 보내야 하는 것들이 아집에 사로잡히는 마음뿐이랴. 매사에 인정과 감사함을 남겨 놓으면 훗날에 다시 웃으면서 만날 수 있으리라.남겨진 삶 동안 어쩌면 다시 못 올 계묘년이지만, 유난히 파란만장하고 다사다난 했었기에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토끼의 숨가쁜 뜀박질이 용의 힘찬 비상을 기약하는 도움닫기가 되어, 새해 첫날의 설렘이 일년 내내 기쁨으로 열리길 믿어본다.

2023-12-26

포항탈북민들을 위한 온정의 불씨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매서운 기세로 동장군이 엄습한다. 주춤하던 추위가 동지(冬至)에 즈음해 본때를 보이기라도 하듯 바짝 수은주를 내리고 있다. 옷깃을 파고드는 강추위에 사람들의 옷차림은 온몸을 두텁게 감싸게 하고, 표연히 잎새를 떨군 겨울나무들은 간간이 바람피리 소리를 내며 파리해는 듯하다. 연말이 다가오고 날씨마저 추워지니 움츠러드는 건 나무들뿐만 아니다. 홀몸 어르신들이나 저소득 취약계층, 불우한 이웃 등이 맞이하는 세모의 한파는 해마다 을씨년스럽고 가슴저리기만 할 것이다.그러나 12월이 시작되면서 이웃사랑의 자선냄비가 길거리에 울려 퍼지고, 취약계층을 위한 ‘천사표’ 연탄 배달이나 사랑의 김장 나눔 등의 행사가 줄을 이으며 연말의 스산함을 따뜻한 온기로 녹여주고 있다. 또한 사랑의 쌀이나 생필품 전달, 후원금 기부 등의 연례적인 나눔행사가 지역별로 열려서 어려운 이웃들을 챙기고 베풀어 주는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부분적으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소외계층이 의외로 많고 지원의 손길이 절실하지만, 밀착형 지원책이나 골고루 도움과 혜택을 주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한 차제에 최근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체의 몇몇 봉사단이 힘겨움에 처한 한 단체를 자발적으로 돕고 숙원사업을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어서 참으로 가상한 일로 여겨진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사진봉사단·벽화봉사단 등 5개 재능봉사단이,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포항탈북민연합회 사무실 환경조성공사에 내 일처럼 발벗고나서 힘을 보태 영하의 추위를 녹이는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이들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주말과 휴일의 개인일정을 뒤로하고 공사가 진행 중인 포항탈북민연합회 사무실을 방문하여 실내 대청소와 잔재물 정리, 벽체 거미줄 제거 및 콘크리트 파손부를 보수하고, 천장·벽체·바닥·베란다 등의 개소에 전면적인 도색작업을 합동으로 실시한 것이다. 특히 이날 봉사활동에는 3명의 자녀와 함께 참여한 직원이 있어서 봉사의 의미를 더했으며, 포항탈북민연합회 임원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활동에 전념하는 봉사자들을 위해 북한식 강냉이죽과 감자만두 등을 새참으로 준비해 봉사단원들은 별미로 먹으며 잠시 추위를 잊기도 했다.순수 북한이탈주민들로 구성된 포항탈북민연합회는 도내 첫 자생적인 비영리민간단체로,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을 지원하고 회원간 유대강화와 화합을 다지기 위해 지난 2월초에 결성됐다.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일자리·교육정보 등 지역 탈북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고 도와주는 포항탈북민연합회가 여태껏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이 근근이 지내오다가, 최근 어렵사리 마련한 보금자리의 쾌적한 정주환경 조성에 포스코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니 연말 사랑의 온도를 높이는 적선(積善) 사례가 아닐 수 없다.이와 같이 지역사회를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가는 포스코의 지역상생활동이 꾸준하고 다양하게 이어져, 춥고 외로운 이웃들에게 따스한 온정과 희망의 불씨로 되살아나길 기대해본다. 손잡고 더불어 함께 가는 길은 언제나 아름답다.

2023-12-19

사진과 기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이런저런 송년모임도 많아지고 소소한 만남도 잦아들게 된다. 대설 지난 겨울날씨답잖게 며칠간 봄날같이 포근하다가 하룻밤새 비바람이 휘몰아치며 흔들어댄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분위기에 가뜩이나 뒤숭숭해지는 마음인데, 날씨마저 어설프고 변덕을 부리니 거리엔 귀가를 서두르는 발걸음이 다급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날씨를 핑계삼아(?) 일찌감치 식당이나 주점에 눌러앉아 차나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며 더 오래 송년 분위기에 젖어들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대부분의 직장인이나 사회인, 동창·동문 모임, 계모임, 친구 등과의 모임에는 으레 연말에 한 차례씩 송년회 또는 망년회의 명목으로 각종 만남을 가지게 된다. 지내온 한 해 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왔으니 뒤도 옆도 보면서 가쁜 숨을 고르고, 자주 연락이나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에 살아가는 얘기와 한 해를 돌아보며 애환을 나눌 수 있다면 한결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 해 동안 있었던 온갖 괴로움과 불행을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갖는 모임의 망년회(忘年會) 보다는, 세월의 저편으로 한 해를 보내야 하는 길목에서 아쉬움과 고마움을 나누기 위한 모임의 송년회(送年會)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그러한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모처럼 만나는 반가운 얼굴과 정겨움을 나누는 오붓한 분위기를 사진은 고스란히 담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아련한 예전의 모습과 현재의 실상을 비교하여 세월의 주름 같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사진이다. 시간의 지층 속에 촬영 당시의 단면을 확연히 보여주기에, 세월이 지날수록 흐릿하고 잊혀져 가는 기억과 생각을 다시 소환해주는 매개체로서의 사진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사진 한 장에 아련한 추억과 얽혀진 스토리가 배여 있기에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하는 걸까?사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기록이다. 기록은 역사의 원천이며 지식의 보고이다. 무엇이든지 쓰고 그리거나 기호로 나타냄으로써 보거나 알게 되고 소통하고 기억하게 된다. 사진이 영상이나 이미지로 추억을 소환한다면, 기록은 문자나 기호로 생각이나 기억을 일깨워준다.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 부분을 글자로 기록하고, 글로 기록하기 어려운 요소를 이미지로 드러낸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모바일 매체가 일반화된 현대는 빡빡한 양식의 문서보다는 글과 그림, 도표, 도형 등으로 간략 명쾌하고 단순하게 표출하는 이미지 메이킹을 필수적으로 여길 정도다.하루하루 쏜살같이 지나가는 일상을 추출하여 뉘엿뉘엿 세모의 나이테에 기록으로 남기고 사진으로 담아둔다면, 생생하고 풍부한 삶의 일면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기록을 통해 기억하고 사진 속에서 좋은 추억을 아로새길 수 있을 때 연륜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2023-12-12

매듭달의 길목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벌써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듭달이다.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이제 마지막 달력 한 장만 남긴 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숱한 사연과 애환의 편린이 아스라히 부침하며 또 한 세월의 매듭을 짓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연초에 계획하고 목표로 했던 일들의 성취 여부와 공과를 가늠하며 안도하거나 착잡함에 젖어 들게 된다. 또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을 준비와 새로운 희망, 기대 따위로 다소 설레여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연말은 이래저래 분주하면서도 차분한 나날들이다.한 해를 짐짓 돌아보면, 쇠털같이 많은 나날 속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숱한 일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밀물처럼 다가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지면서 일상이 굴러온 것 같다. 그러면서 잊힐 것은 잊히고 거를 것은 거르며 밀어낼 것은 밀어내 겹겹이 매듭을 지으면서 저마다의 삶의 내면을 채워왔을 것이다.사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物有本末), 일에는 처음과 끝맺음이 있듯이(事有終始) 무엇이든지 시작과 마무리가 있어야 하나의 매듭이 지어지게 된다. 즉, 작게는 대나무의 마디처럼 잘록하거나 도드라진 형상으로 매듭이 생기기도 하고, 하루나 한 달, 일년처럼 시간의 흐름을 마디처럼 구분해 매듭짓기도 한다. 그렇기에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을 매듭달이라고도 한다.매듭은 어쩌면 처음 시작이나 첫 만남보다도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일들을 시도하고 벌여 놓고는 마무리를 못한다거나 흐지부지 유야무야 돼버리고 만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기가 힘들어 질 것이다. 또한 인연에서 비롯되는 만남의 매듭을 소홀히 하거나 건성으로 대하게 된다면 관계의 지속이나 친분의 유지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일에 대한 결말과 만남의 끝매듭이 중요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끝맺음이 좋아진다는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강조하고 되새기는 것 아닐까.한 해의 좋은 매듭을 맺기 위해서는 초지일관의 마음으로 꾸준히 실천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사람들을 두루 만나 교류하며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다독이고 존중하여 원만한 관계를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격의없이 우호적인 사이로 지내다가도 사소한 의견대립이나 다툼으로 서로 얼굴을 붉히며 평생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돌아서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삶이란 예측 불가능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따스함을 찾게 되는 계절, 일에 대한 적절한 매듭과 만남의 끝맺음에 대한 적실성으로 믿음과 반가움의 온기를 나누는 연말이었으면 한다. 주변을 살피고 챙기며 상처 받고 소외되는 사람 사이의 섬을 만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12-05

구룡포人의 삶의 애환 뮤지컬로 재조명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계절의 끝자락에 감동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제법 쌀쌀해진 날씨 속에, 지난 주 포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열린 이색적인 뮤지컬 공연을 보고 극히 일부겠지만 가슴 훈훈한 예술적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구룡포지역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숨겨진 얘기가 대사와 노래, 율동과 몸동작 등으로 어우러져 파도의 여울로 굽이치고 고래의 울음으로 퍼지는 듯했다. 포구(浦口)의 아늑함과 일제의 잔재인 적산가옥이 있는 구룡포지역을 재조명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투영한 역작으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이러한 작품은 지역의 손꼽히는 극단 예맥의 제60회 정기공연으로, 지난 여름날부터 거의 매일 연습하고 준비해서 정성껏 무대에 올린 창작 뮤지컬 ‘구룡포 프리덤’이다. 극단 예맥은 지난 1981년에 창립, 포스코 직원들을 중심으로 매년 1~2회의 정기공연을 열면서 근로문화제 대통령상 수상 등 꾸준한 활동을 펼쳐 이번에 60회째를 맞게 됐다. 뮤지컬로는 ‘93년 ‘넌센스’ 작품 이후 30년만에 두번째로, 당시의 파릇한 주연배우가 이번에 다시 중년의 주연배우로 열연, 두드러진 역할을 소화함으로써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특히 ‘구룡포 프리덤’은 ‘고향 구룡포에서 자유를 만끽하다’라는 주제를 담으면서 전체 대사의 95% 이상이 포항말(방언)로 되어 있어서 이채롭고 정겹게 다가왔다. 사라져가는 사투리의 말맛으로 진짜배기 구룡포인의 애잔하고 애틋한 스토리가 엮어져 공연 내내 향수와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고나 할까? 또한 무분별한 포획과 불법 어획, 서식지 파괴 등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한국계 귀신고래가 서식지인 영일만 앞바다에 돌아오길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도 담고 있어서 한결 공감이 가기도 했다.구룡포를 주제로 한 뮤지컬 공연에 많은 시민과 동호인, 지역민들이 함께하여 아낌없는 갈채와 찬사를 보냈다. 특히 구룡포읍장을 비롯한 공무원, 해당지역 시의원,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등의 분들이 다수 객석을 채워 열렬히 환호했는가 하면, 연말에 구룡포에서의 앵콜공연까지 논의되는 등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냈다. 흘낏 지나치거나 무덤덤하게 여길 수 있는 일들을 뮤지컬이라는 예술적인 요소를 가미해 테마와 스토리를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풀어낸 걸작이 아닐 수 없다.이처럼 뮤지컬은 연극적인 바탕에 음악과 무용의 요소를 곁들여 주제의 표현과 관객의 공감을 극대화시키는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연극과 오페라의 중간쯤 영역에서 진지함과 차분함, 애절함과 흥겨움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호흡하며 독특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총체적인 연희(演戱)라고나 할까?이러한 측면에서 ‘구룡포 프리덤’ 뮤지컬은 시대에 투영된 삶의 변화와 굴곡이 극적인 요소와 잘 버물려 표현된 감칠맛 나는 ‘문화 밥상’으로 손색이 없었다. 구룡포인의 삶을 재조명한 극단 예맥의 줄기차고 의미있는 문화 밥상을 기대해본다.

2023-11-29

만추 서정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며칠 간 바싹 추워진 날씨 탓에 겨울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눈이 귀한 부산에선 11월에 첫눈이 내리고 전국 곳곳에 얼음이 얼면서 절기의 명분(?)을 찾기라도 하듯 세찬 강풍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있다. 단풍이 채 들지 못해 푸르뎅뎅한 잎새들은 화들짝 놀라며 돌풍에 시달리다가 떨어져 포도 위를 뒹굴고, 사람들은 두꺼운 옷차림에 종종걸음으로 흩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하나씩 정리하고 점검하며 겨울채비를 하는 미틈달의 오후 햇살이 갈수록 짧아지고만 있다.긴 목을 뽑아 바람에 서걱이는 억새는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인지 겨울을 맞이하는 환호인지 일제히 은빛 손을 흔드는 듯하다.산자락에서 파도의 외침으로 일렁이는 은빛 여울은 조락(凋落)의 스산함을 달래주고, 바람 결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풍엽(楓葉)의 군무는 한껏 만추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성장하여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익게 하고는 스스럼없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절, 늦가을은 늦지 않았고 그것이 또 무슨 거리낌이 있을까(晩秋不晩 又何妨). 처음과 시작을 위한 순환과 설렘의 만추가 아닐 듯싶다.높은 가지에 듬성듬성 매달려 대롱거리는 감들이 대낮에도 주홍빛 전등을 켜며 떠나가는 가을날을 배웅하는 듯하다. 떫고 신산했던 인고의 시간을 지나 속까지 정갈하게 채워가고 익어가면서 가을날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까치밥으로 남겨진 몇 개의 감들은 배려와 공생의 매개 마냥 환하고 넉넉하기만 하다.작은 것 하나라도 아끼고 나누면서 베풀고 챙겨줄 때 한결 온기가 스미고 아름다운 향기가 피어날 것이다. 온갖 자연에 나타나는 현상이나 세상살이의 천태만상이 별반 다르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수확을 끝낸 들판엔 텅빈 충만이 서리는 것 같다. 푸르름과 황금물결로 일렁이던 논배미엔 어느새 ‘볏짚 원형 곤포 사일러지’가 휑해진 들녘을 일명 ‘공룡알’이 심심찮게 지키고 있다. 들판 군데군데 움막처럼 봉긋하게 쌓았던 예전의 짚가리가 요즘엔 ‘마시멜로’같은 사일러지로 변모하여 뒹굴고 있으니, 이 또한 이색적인 가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은 이처럼 바뀌고 변하면서 세월의 바퀴가 굴러가는 것이리라.“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 나태주 시 ‘11월’전문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세상에 나눠줄 것이 많다는 듯이 헐벗은 몸이 되면서까지 나뭇잎을 하나씩 아래로 떨구어 낸다. 예쁘게 물든 단풍이 짐짓 낙엽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는 11월, 대지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낙엽의 이불’처럼 비우고 베풀며 내려놓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석지고 그늘진 곳의 따스한 이불이 될 수는 없을까? 더 많이 사랑하고 정을 나눠야 할 11월이다.

2023-11-21

탄소중립과 바다 지키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바다는 늘 출렁이며 깨어 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거칠게 철썪이고,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하면 고요한대로 바다는 뭍을 향해 조근조근 속삭이듯이 찰랑대고 있다. 때로는 거센 너울로 짙푸른 근육을 보이며 포효하듯 흰 포말로 부서지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한 호수마냥 흰돛단배가 평온하게 떠가는 여울로 살랑거리기도 한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는 지구표면의 70%를 차지하여 뭍에서 버려지는 온갖 쓰레기와 혼재물을 받아들이면서 삭힐 것은 삭히고 지울 것은 지우며 밀어낼 것은 밀어내고 있다. 자신을 낮추어 모든 강줄기와 하천을 받아들이기에 ‘바다’라고 하는지도 모른다.그러한 바다가 수십년 전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다에 넘쳐나는 쓰레기 때문이다. 해양쓰레기의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해양생물을 위협하고 있으며, 침적되거나 부유되는 해양쓰레기로 인해 해안경관 훼손,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전세계적으로 해양쓰레기 심각성은 커져서 한국 면적의 16배에 이르는 거대한 쓰레기섬이 북태평양 공해상에는 해류를 타고 몰려들고 있다 한다. 국내 해안도 최근 중국 등에서 떠내려온 쓰레기가 전국의 해변에 쌓이는가 하면, 제주 해안에서 플라스틱을 먹은 바다거북의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끊임없이 몰려드는 해양쓰레기도 심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 해양환경이 파괴되고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조차 위협 받아 지구환경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즉, 무분별하게 버려진 쓰레기로 인해 바다가 신음하고, 바다숲과 온갖 생물들의 생태환경이 파괴되고 균형이 무너짐으로써 해양생물의 순환구조에 이상현상이 나타나 결국 바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후에 영향을 줘서 이상기온과 기후변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이는 곧 육상생태계에서 식물이 광합성으로 흡수하는 그린카본(Green Carbon)이 중요하듯이, 고래나 산호초, 해중림처럼 해양생태계에 저장되는 블루카본(Blue Carbon)의 생성과도 연관성이 있어서 결국 쓰레기는 탄소중립에 직결되는 중요사안이라 할 수 있다.현대 인류는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위기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제사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 중의 탄소를 줄여야 한다고 합의하며 저탄소·탈탄소·탄소중립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즉,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는 최대한 줄이고, 배출된 탄소는 블루카본이나 그린카본이 흡수하거나 탄소 포집·이용·저장기술(CCUS)로 제거하여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탄소중립이라 한다. 그래서 각국에서는 탄소 배출 없는 제품유통과 탄소중립 모빌리티, 재생 에너지, 자원순환, 에너지 효율화 건물 등으로 지속가능한 자연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이러한 측면에서 해양환경을 지키며 탄소중립의 작은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포스코의 영일만해양지킴이봉사단의 활동은 나름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해양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비치코밍과 플로깅 등의 활동을 매월 펼치면서 캠페인과 의식함양 교육, 체험활동에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2023-11-15

詩가 있는 뱃나들마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들판엔 가을걷이가 한창이고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가 싶은데, 절기는 어느새 오늘부터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다. 가을의 본색이 만산홍엽으로 몸살을 채 앓기도 전에 겨울의 입김은 벌써부터 조락(凋落)을 채근이라도 하듯이 돌풍을 내두르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초입이 오버랩 되는 미틈달은 잠시 쉬어가도 좋을 여유와 안식의 시간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빠듯한 삶의 여정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잠시 옆도 뒤도 둘러보며 성찰과 되새김에 잠겨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망중한의 이끌림으로 찾아간 곳은 문경시 호계면의 ‘시(詩)가 있는 뱃나들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항아리나 나무, 기와 등에 지역출신 시인의 작품을 써서 전시해놓은 이색적인 곳이다. 간결하고 명징한 감성의 시에 홍조(紅潮)의 가슴으로 하나하나씩 시의 마을을 만들고 가꾸어놓은 손길에서 문향과 인향이 결 고운 단풍 잎새로 피어나는 듯하다. 문경의 젖줄 영강이 유유히 흐르는 강촌에 큰 느티나무와 죽림정 정자가 운치를 더하면서 아기자기한 시화작품들로 감칠맛이 더해지는 그곳에서 지난 주말, ‘커피시인’ 윤보영 시인의 전국 팬클럽 연합 독자모임이 소소하고 오붓하게 열렸다.전국적인 규모의 이번 행사는 지난 4월, 뱃나들마을(우로2리)을 ‘윤보영 시(詩)가 있는 마을’로 조성하면서 약속했었던 농촌에서의 문화축제 개최 후속편으로 ‘윤보영 시인과 함께 하는 제1회 전국 팬클럽 연합 독자모임’에 팬과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룬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 마을의 예비 사회적기업인 ‘영강나루터’에서 제공한 따끈한 국밥 점심을 맛있게 먹고, 마을 주민들이 직접 농사 지은 농산물은 동이 날 정도로 구입하여 호응이 컸다.이어 팬클럽 회원과 주민들은 인천 무형문화재인 부평 두레놀이패의 흥겨운 풍물을 시작으로 함께 공연을 즐기고 시 낭송과 장기자랑, 윤 시인의 감성시쓰기 특강 등으로 하루를 즐겼다. 그리고 한 켠에서는 ‘윤보영캘리랜드연구소’ 회원들과 지방의 서예가가 신청인의 희망에 따라 윤보영 시를 캘리그래피로 써주거나 가훈·명언 등을 붓글씨로 써서 나눠주며 시향과 묵향에 젖어드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한 시인의 팬들은 강과 정자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뱃나들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즉흥시를 지으며 담소하는 등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전국에 8만여 명의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윤보영 시인의 팬클럽은 이같이 상생으로 함께하는 도농의 문화행사를 통해 도시인들에게는 문화적 만족감을 주고 농촌주민에게는 팬클럽회원 등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농산물을 직거래해 농가소득에도 도움을 줘서 윈윈하는 계기로 여겨진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명시가 시인의 고향마을을 찾아가서 스토리가 있는 문화명소가 되고, 또한 시를 사랑하는 팬들이 명소를 찾아 음악과 시낭송 등의 테마로 작은 축제마당을 펼친다면,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번성해지는 새로운 지향점과 성장 가능성이 되리라고 본다.

2023-11-08

詩香으로 깊어 가는 가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소슬바람 결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오색영롱한 단풍이 물들어가듯이 10월엔 각종 축제나 문화행사, 기념식이나 체육대회가 도처에서 열리고 한 켠에선 풍년가를 부르거나 단풍놀이로 화색이 감도는 등 시월 한 달이 짧게만 여겨진다.등을 치며 떨어지는 낙엽 한 잎에서 새삼 삶의 의미를 깨우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엔 누구나 가슴 설레는 시인이고 시에 젖어 어디론가 떠나고픈 계절이기도 하다. 문화적인 테마와 이벤트로 풍성했던 시월을 뒤로 하고 깊어 가는 가을과 함께 시향(詩香)의 추임새로 11월이 열리고 있다.미틈달의 첫날은 우리나라 ‘시의 날’이다. 한국 최초의 신체시인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가 한국 최초의 월간지인 ‘소년’ 창간호에 발표된 1908년 11월 1일을 기념하여 1987년부터 시의 날을 제정, 기념사업을 열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만산홍엽으로 물들어가는 산야나 은빛 억새의 몸짓을 보면서 아름다운 시상을 떠올리고, 그렇게 쓰여진 시에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연상(聯想)작용이나 감성의 바다에 빠질 수 있다면, 시의 울림은 여전히 삶의 큰 위안과 감동을 줄 것이다. 그만큼 시적인 효능과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시는 감정의 순수한 발로이듯이, 자연의 변화나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섬세하면서도 유려하고 짧으면서도 유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한 편의 시가 문자로만 머물지 않고, 현대 들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출되고 변용되고 있음은 지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시의 구절에 음색을 입혀 말과 목소리로 표현하면 시낭송이 되고, 시의 행간에 곡조를 붙이면 시노래가 되며, 몸동작이나 대화를 곁들여 연기하듯이 시의 퍼포먼스를 펼치면 시극(詩劇)이 되듯이 시의 확장성은 실로 다양하고 무진하다 할 것이다.이러한 측면에서 최근에 시낭송과 시극 등이 다양하게 열리면서 ‘시의 날’을 마중한 것 같아 반갑고 넉넉하기만 하다. (사)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는 예천에서 열린 제8회 시낭송 올림피아드에서 회원들의 자작시 또는 경북문협 회원의 발표시로 시낭송의 격조와 향기를 더했고, 포항시낭송회는 10월 중순 울릉도 초청공연에 이어 지난 주말 구룡포읍 아라광장에서 열린 ‘경상북도 해녀 한마당 축제’에서 해녀스토리 시극을 성황리에 펼쳐 갈채를 받았다. 또한 포항문인협회는 시민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회원들의 작품을 시민들과 함께 낭독함으로써 문화도시 포항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포항 문학의 숲을 풍성하게 가꾸는 계기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시는 시인이 쓰지만 쓰고 나면 결국 독자의 것이며, 시낭송이나 시극은 개개인의 독특한 목소리나 몸짓이 말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언어적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시의 날을 맞아 시를 즐겨 읽고 감상하며 시처럼 살아가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3-10-31

울릉해녀문화제의 가치와 전망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울릉도의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천혜의 섬 울릉도 도동항에 간간이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는 도동여객선터미널 옥상 공원에서 시와 음악이 흐르고 해녀들의 삶과 애환이 물결처럼 여울지는 새로운 문화가 피어났다. 바다를 지키고 가꾸며 바다와 함께 적극적인 삶을 살아온 울릉도 독도 해녀해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나는 해녀랍니다’ 주제의 해녀 문화제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 프로그램 ‘한 점 섬에 살거나’의 공모사업으로 울릉도에 거주하는 해녀들과 지역 문화예술인·동호인·관계기관 등의 참여와 협조로 이뤄졌다.햇살 좋고 바람 선선한 휴일 늦은 오후, 울릉도 주민들과 관광객 등이 설렘과 기대로 삼삼오오 공원으로 모여들고 갈매기들도 궁금한지 공중을 선회하며 문화제를 반기는 듯했다. 한 켠에 마련된 시식코너에는 해녀들이 직접 잡거나 채취한 문어·전복·소라 등을 맛볼 수 있었고, (사)독도재단에서는 설문지에 따라 독도 배지 등의 기념품을 나눠주는 등 작은 축제마냥 약간 들뜨는 분위기였다.그런 가운데 울릉도 해녀들의 축하 공연을 시작으로 해녀의 삶을 생생하게 들려준 해녀 이야기, 경북문협 울릉지부장의 해녀에게 바치는 자작시 낭독과 포항시낭송회 3명의 회원이 해녀, 해남 차림으로 3편의 시를 시극(詩劇)으로 펼쳐서 의미를 더했다. 또한 제주도에서 활동 중인 현대무용팀 ‘팀오르다’의 해녀 물질을 주제로 한 무용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으며, ‘유네스코 해녀의 가치’ 강연에서는 울릉도 해녀의 삶과 활동, 역사와 의의를 이야기해 해녀들을 이해하고 가치를 간접적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축하공연으로 울릉군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단체인 팀포유색소폰, 울릉아리랑, 독도팝스오케스트라, 통기타를 사랑하는 모임 등이 출연하여 행사의 흥을 더하며 인기를 끌었다.경북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번 울릉도·독도 해녀 문화제를 통해 해녀의 삶이 재조명되고, 해녀를 주제로 한 다양한 스토리와 울릉도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울릉도에는 9명의 해녀가 살고 있는데 모두 제주 출신이다. 이들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제주해녀문화와 함께 독도주민, 독도의용수비대와 더불어 독도의 바다를 일구고 지켜온 산증인이다. 제주출향해녀들의 물질이 울릉도 독도를 이어주고 일궈왔지만, 고단하고 힘겨운 해녀들의 삶의 가치와 의미가 거론되거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지난 4월 ‘울릉도독도해녀해남보전회’가 결성되고 해양아카데미가 열리는 등 해녀에 대한 인식변화와 처우개선의 움직임이 보여 다행스럽다. 최근에 경북해녀협회가 창립된 것도 향후 해녀문화 조성과 네트워크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바다의 밥상을 차려주는 해녀들은 바다의 자원이다. 울릉해녀문화제가 제주도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제주해녀축제’와 연계해 세계 유일의 여성공동체 문화인 해녀어업문화의 전승과 보전을 위한 교류와 협력, 육성과 지원 등으로 해녀문화를 선도하고 경북 해녀활동의 활성화를 기대해 본다.

2023-10-24

연오랑 세오녀의 꿈과 멋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10월은 ‘문화의 달’ 답게 행사와 축제가 즐비하다. 전국각지에 다채로운 문화·체육행사가 늘어나고, 지역특색을 살린 테마축제들이 연이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하루하루 축제같고 선물같은 나날이다. 햇살 좋고 적당한 기온에 바람마저 부드러워 나들이나 야외활동하기에 안성맞춤인데, 눈길 닿고 발길 머무는 곳마다 볼거리, 즐길거리를 입맛대로 누릴 수 있으니 한결 가을날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축제에 참여하고 전시나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축제마당에 빠져들어 어깨춤이 덩실덩실 춰질지도 모른다.지난 주 목요일부터 4일간 포항 일원에서 열린 ‘제15회 일월문화제’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시민들에게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개막행사와 주제공연, 기획전시, 체험 및 연계 프로그램 등으로 포항문화예술회관, 해도도시숲,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등지에서 코로나19의 시름과 위축을 완전히 떨치며 4년만에 제대로 다채롭고 풍성하게 열린 것이다. 이러한 일월문화제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연오랑(해), 세오녀(달) 부부의 설화에서 비롯된 고유의 일월사상을 기리며 전통문화 유산을 보존, 계승시키는 종합문화예술축제로 격년마다 개최돼 왔다.특히 일월문화제의 개막을 알리며 전야행사로 열리는 연오랑·세오녀 부부 선발대회는, 포항시에 거주하는 선남선녀가 두루마기와 치마 저고리 등 우리 고유의 한복을 입고 맵시를 뽐내며 부부 금슬과 장기자랑, 발표력, 관객 응원 등을 심사해서 뽑게 된다. 올해는 30~70대까지 각 읍면동 대표로 16쌍이 출전해 저마다 멋스런 행진과 독특한 자랑, 재치있는 표현 등으로 관객들과 호흡하고 공감하며 눈길을 끌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이렇게 선발되는 연오랑 세오녀 부부는 지역 고유의 일월신제 헌관으로 봉행, 포항시 공식행사 참여 및 홍보대사·해외 문화사절 등의 역할로 포항을 빛내고 알리게 되며, 빛과 개척의 포항 정신을 대변하기 위해 1983년부터 이어져 올해 22회째를 맞았다.‘연연이 이어 온 해와 달의 드리움이/오늘날 일월문화의 꽃으로 피어나/낭랑한 동해의 파도로 노래하고 있구나//세세년년 사무치는 연오랑이여! 세오녀여!/오랜 세월 일월의 땅 가꾸고 지켜와/여명을 밝혀주는 꿈, 여기는 대대손손 빛나는 포항이어라!’-拙 즉흥 육행시 ‘연오랑 세오녀’ 전문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의 빼어난 외모와 맵시, 덕목을 갖춘 사람은 주목을 받아왔고 회자되고 있다. 특히 현대 들어 전국춘향선발대회나 지역의 특산물 홍보를 담당하는 영양고추아가씨 등의 미인대회가 있다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모범부부는 연오랑 세오녀 부부 선발대회가 전국적으로 유일하다. 단순히 전해 내려오는 설화 속 인물 재현의 선발이 아니라 포항의 정체성 발현과 고귀한 향토문화 유산의 현대적인 계승, 발전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효행과 봉사, 맵시와 덕행으로 포항시민들의 귀감이 되는 연오랑 세오녀의 꿈과 멋이 포항의 저력과 경쟁력이 되길 기대해본다.

2023-10-17

경북예술의 미래지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높아지는 하늘과 서늘한 바람 결에 산과 들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가고 있다. 푸르던 들판은 차츰 황금물결로 넘실대고, 산자락의 잎새는 가볍게 흔들리며 엷게 물들어가고 있다. 청록을 자랑하던 수풀은 기온의 변화에 하나씩 잎사귀를 떨구거나 변색으로 수런대며 서서히 산하를 물들일 채비다. 이른바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번째의 봄’이라는 가을은, 햇살과 바람과 구름과 이슬이 번갈아 초목을 쓰다듬고 어우르며 두번째의 봄을 부르고 있다.그렇게 가을이 오면 사람들의 가슴도 설렘과 그리움으로 물들기 마련이다. 화사한 단풍에 젖어 구르몽의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흩날리는 낙엽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가 하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파란 하늘과 오색영롱한 풍엽은 감성의 바다에 빠져들게 하기도 할 것이다. 눈으로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자연의 변주곡이 온갖 상념(想念)의 촉수를 자극하는 10월은, 다채로운 축제와 전시·공연이 많고 각종 행사가 줄을 잇는 문화의 달이기도 하다.대표적인 것이 10월 첫 주부터 열린 경북예술제가 아닐까 싶다. 경북예술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예술을 통해 도민의 정서순화에 이바지하며 새로운 문화 경북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제45회 경북예술제’ 개막식이 지난 6일 경산에서 열렸다.민족의 스승이신 원효대사, 설총선생, 일연선사를 기리는 삼성현(三聖賢)역사문화공원 야외공연장에서 경북도 행정부지사, 경산시장 등의 내빈과 경북예술인,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억의 노래가락과 신명난 타북 마당, 경북예술상 시상, 축하공연 등이 진행되는 동안 노을 마저 곱게 피어나 시종 흥겹고 아름다운 예술제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개막식을 시작으로 (사)한국예총 경상북도연합회 산하의 8개 단체에서는 경산시 및 기타 지역에서 부문별 특색있고 독창적인 전시, 공연 등 한마당 축제의 장이 성황리에 펼쳐졌다. 문인협회에서는 경북예술센터에서 ‘2023 경북문인 글과 그림전’을 다채롭게 선보이고, 미술협회에서는 아카이브 영상으로 온라인 작품전을 열었는가 하면, 사진과 음악을 비롯해 팝스 연주회, 연극, 국악한마당·무용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전문성을 살린 작품과 공연을 준비하여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도민들에게 풍부한 볼거리, 예술향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경북예술의 정체성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지속가능한 문화융성의 기틀을 다지는데 일조했다.경북예술인들의 땀과 열정으로 펼치는 경북예술제는 경상북도 최대의 문화축제이다. 장르별, 지역별 작가들의 예술적 가치와 문화적 창조력이 지속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창작활동을 지원하여, 지역 고유의 풍성한 문화유산과 잠재력을 발굴, 접목하여 미래지향적인 21세기 대한민국 예술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정치와 경제, 인구 등의 중앙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지만, 문화와 예술의 기반은 얼마든지 지역성을 살린 특성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문화로 소통하고 예술로 교감하는 일상이 윤택하고 아름답듯이,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이 곧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2023-10-11

시월 속으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석연휴에 임시휴무까지 더해져 장장 6일간의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니, 가을맞이가 한결 넉넉해진 것 같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고유한 민속명절인 추석과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개천절까지 연휴가 이어져서, 사람들의 이동과 활동이 많아지고 만남과 어울림의 모습들이 분방하게 보인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이나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에게는 황금연휴를 보장받지 못하는 ‘남 얘기’로 휴식권의 사각지대가 발생돼 아쉽고 마음 편치 못한 것도 사실이다.시월이 열리면서 정갈한 햇살 아래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고 초목의 빛 어림이 나날이 짙어가는 본격적인 가을날로 접어들고 있다. 억새는 긴 목을 뽑아 은빛 환호를 하고, 잎새는 바람결에 차츰 황록색을 띠거나 홍조의 빛깔로 손 흔들며 가을을 반기고 있다. 쾌청한 날씨에 기온마저 적당하니 어디를 가거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조요(照耀)하고 푸근하기만 하다. 긴 연휴에 한동안 뜸했던 곳을 찾아 적조했던 사람들과의 해후와 소통은 반가움을 넘어 인연의 소중함을 보듬는 각별함이 아닐까 싶다.‘꽃 피고 지는/아름다운 세상에서/살아있는 모든 날이/기쁘고 감사하지만//10월의 하루 하루는/더없이 행복한 시간,/차츰 단풍 물드는/나뭇잎들을 바라보며//내 작은 가슴도/고운빛으로 물들어 가고/높푸른 하늘 우러러/마음은 겸손이 평안하다.//거저 받은 목숨이니/아무런 자랑도 교만도 없이/인생길 소풍가듯/즐거이 걸어가다가//이 몸 또한/한 잎 낙엽 되면/그 뿐인 걸’ - 정연복 시 ‘10월의 노래’ 전문조금은 느긋해진 마음으로 바람따라 길을 나섰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쑥부쟁이가 흐드러진 들길을 지나 발길 닿는대로 찾아가서 반가운 분들을 두루 만났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사람 만나는 것 또한 좀체 물리지 않은 일이라 해도, 늘 무엇인가에 쫓기 듯 다급하고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주변의 친인척이나 친구, 지인 등과의 연락이나 안부를 제대로 못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다반사가 돼버린 듯하다. 하지만, 너무 뜸하거나 소원해지면 수풀 우거진 오솔길 마냥 교감의 길목이 막히거나 끊어질 수도 있기에 적당한 소통과 왕래가 있어야 마음의 다리가 줄곧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모처럼 만나고 대면하는 모든 분들은 정겨움과 오붓함이 한결 같았다. 추석인사를 겸해서 이런저런 근황과 정담을 나누고 담소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굴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서먹함을 털고 살가움을 누리기에는 충분했다. 더욱이 재회의 증표(?)마냥 근사한 팔찌를 선물로 주거나 향기로운 차에 다식(茶食)을 내주고 손수 농사 지은 고구마를 선뜻 건네주는 인정 어린 마음은 두고두고 미덥고 고맙기만 했다.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은 저절로 찾아오기 마련(近者說遠者來)이다. 가까울수록 신의를 지키고 배려와 아량으로 챙겨주게 되면, 교분은 더욱 두터워지고 정의(情誼)는 시월의 단풍마냥 색조 곱게 물들 것이다. 세상만사 자신이 하기에 달린 것이다.

2023-10-04

세계서예잔치, 눈부신 筆墨의 비상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시시각각 움직이며 온갖 모양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은 청청한 산과 들의 언저리로 넓게 펼쳐진 가을하늘의 캔버스에 구름은 유유히 흘러가며 시나 소설을 쓰는 듯 알듯 말듯한 몸짓으로 세상을 내려다 보면서 사연을 전하고 있다.그러다가 전북 진안군에 이르러 마이산 주변을 지날 때는 말(馬)의 귀(耳)같은 암마이봉·숫마이봉을 흡사히 닮은 두 개의 구름 봉우리 형상으로 변신하기도 하니, 과연 빛과 바람으로 빚은 자연의 수묵화가 따로 없을 정도다.어쩌면 하늘에서 펼쳐지는 바람의 붓질 같은 구름의 천변만화는, 화선지 위에서 각양각색으로 피어나는 붓과 먹의 무진한 변화의 조화로움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추분 무렵 차츰 물들고 변해가는 초목과 열매는 정갈한 가을볕을 받아 저마다의 빛과 색을 더해 익어 가듯이, 날을 거듭할수록 붓놀림과 서예 궁구의 내공이 깊어지는 손길은 결 고운 단풍잎 마냥 심오하고 유장한 필묵의 원숙함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문자나 예술이 자연에서 나왔듯이, 붓글씨 역시 자연을 닮아감은 당연한 교효작용이며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그렇게 구름의 암시(?)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개막식이 열리는 전주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형 애드벌룬이 빨간 색상의 현수막을 드리우며 반기고, 분수 옆 국제관 입구에서부터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은 행사의 규모와 품격을 말해주는 듯 했다. 지난 1997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4회째 맞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서예를 매개로 전세계 서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류와 화합의 마당과 주제에 걸맞는 작품 전시·국제학술대회·부대행사·전북 14개 시군 ‘2023 서예, 전북의 산하를 날다’ 주제의 연계전시행사 등을 대대적으로 다채롭게 펼치는 세계서예잔치다.40여 개국 3천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생동’(Vividness)으로, 출품작가들의 개성과 독창성, 창의력, 미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작품세계에 빠지다보면 어느새 예술적 쾌감과 감동의 희열에 젖어 들게 될 것이다. 특히, 10미터 이상 높이의 사방 벽면을 가득 메운 강건한 필력의 다채로운 대형작품은 관람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고, 천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천 편의 시를 동일한 크기(10x10cm)의 전주한지에 써서 모자이크처럼 만든 ‘천인천시’ 10곡병풍은, 세밀함을 살리면서도 전체를 아우르는 조화로움 등으로 실로 서예작품의 표현방식과 영역, 장법(章法)과 구도가 무궁무진함을 일깨워준 역작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외국인 작가와 참여국가의 대사가 쓴 영어, 아랍어 등 각기 다른 언어로 쓰여진 작품은 다양성의 조화를 거침없이 드러냈다.서예와 예술은 이렇듯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소통하며 화합의 마당으로 모여들게 한다. 서예의 대중화와 실용성을 더 높이는 다양한 기획과 참여로 뉴노멀 시대에 서예문화의 선도적인 역할과 지속가능한 빌전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3-09-26

가을의 어귀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루가 다르게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백로(白露) 지난 한낮의 가을볕은 노염의 여세를 몰아 여전히 따갑게 내리쬐지만, 살랑살랑 실바람은 산과 들판을 쓰다듬으며 선들선들 가볍게 지나간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초가을, 무엇을 해도 좋을 시기라서 그런지 아침 저녁으로 산책로 등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많아졌다. 삼삼오오 다니면서 얘기꽃을 피우거나 애완견을 데리고 걸어가는 사람, 운동삼아 뛰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가는 사람 등을 둘레길이나 해변, 강변, 공원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마치 가을 마중이라도 하듯이 간편한 차림으로 집을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산보하는 모습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특히 휴일의 아침산책이나 산행 등은 느긋한 마음으로 자연을 접하며 일상에 절여진 심신을 이완할 수 있기에 필자도 간혹 즐기는 편이다. 쳇바퀴 돌 듯하는 빠듯한 일상의 쉼표같은 휴식이나 멍때리기, 걷기 등은 어쩌면 숨가쁘게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안 삼는 ‘자락(自樂)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지난 주에 이어 이번 휴일도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포도(鋪道)를 조금 걷다가 야트막한 산길의 입새부터는 신발을 벗어 두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즐겨한다는 맨발 걷기를 지척의 동네 뒷산에서도 할 수 있다니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다. 진흙과 백토, 풀잎, 낙엽 등으로 이어지는 숲길 초반의 촉감은 부드럽고 매끈하고 약간 간지럽게 다가왔다. 거침없이 내딛는 빠른 발길보다는 땅바닥을 살피며 보폭을 작게 하고 조심스럽게 걷는 느린 발걸음으로 차츰 숲에 접어들면, 숲과 나만의 은밀한(?) 대화와 교감이 시작된다.해뜨기 전 숲의 고요를 깨는 것은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이다. 간간이 새들의 지저귐도 들려오지만, 일정한 음률과 리듬으로 울리는 풀벌레들의 합창은 이른 아침부터 귀를 맑게 해준다. 조금 지나니 댓잎을 가볍게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려오고, 한여름의 햇살 받아 한껏 푸르던 잎새들이 녹음에 지쳐서 물들 채비를 하는 듯 황록색과 담록으로 어우러지니 눈 호강이 따로 없는 듯하다. 거기에 참나무가 즐비한 숲길 여기저기에 떨어진 도토리가 앙증스럽게 반기니 숲은 언제나 이처럼 같은 자리에서 다른 듯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데, 늘 무엇인가에 쫓겨 안절부절 허둥대는 자신은 언제쯤 숲의 여유와 안식을 배울 수 있을런지 발바닥을 따갑게 자극하는 돌부리가 채근하는 듯했다.그렇게 2시간여 산길을 맨발로 오가다 보니 서늘함 속에서도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다. 길을 나서면 이처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지듯이, 사람 사이에도 가끔씩 왕래와 소통이 있어야 잡풀 무성한 산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살이의 교분이나 정의(情誼)도 결국 자신이 하기에 달린 것이다.

202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