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초록빛 세상이다. 눈길 닿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연두와 초록이 손 흔들며 반기고 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봄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대지는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과 연둣빛의 싱그러움으로 여울지고 있다. 겨우내 당당한 상록수의 잎새들이 군데군데 진초록으로 자리잡고, 그 언저리에 연초록의 잎사귀가 겹쳐서 피어나며 일제히 초록빛으로 출렁거리는 듯하다.
헐벗게 보이던 산과 들도 봄날이 깊어지면서 산뜻하고 생기 넘치는 초록의 새 옷으로 갈아입은 셈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새싹과 잎사귀는 왜 하필이면 초록빛일까? 도대체 초록색의 비밀은 무엇이길래 식물과 작물, 나무의 잎사귀가 투명한 초록으로 빛나고 생장하며, 사람들은 싱그러운 초록을 만끽하고 가까이하려는 것일까?
식물이나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인다는 것은 하얀빛에 포함된 수많은 빛의 색이 나뭇잎에 흡수 또는 방출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식물의 광합성작용 시 필요한 파란색과 빨간색 등의 파장이 빛을 흡수하고, 남은 초록빛은 다시 반사되어 우리가 보는 잎사귀의 초록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초록빛이 식물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적다는 의미이며, 다른 빛들 중 초록파장의 빛이 잎사귀에서 가장 많이 반사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라//사슴이 풀 뜯으며 뒤돌아본다는 건/두려워해서가 아니다/죽음에 대한 경계가 아니다/겨우내 벗은 채 서있던 산의 능선이/초록으로 물든 탓이다/훌쩍 커버린 능선이 등 뒤에서/출렁이고 있는 탓이다//파도처럼 뒤에서 슬픈 사랑이 덮쳐 온다/파도치게 하는 건/길들여지기 전의 일들이다/…./뒤돌아보는 사슴의 눈동자에/눈록(嫩綠)의 함성과 태양의 절기가 담겨있다’ -손창기 시 ‘뒤돌아본다는 것’중에서
생명의 나무는 어쩌면 영원한 초록빛이 아닐까 싶다. 새로 돋아나는 어린 잎의 빛깔과 같이 연한 녹색의 눈록이나 엷고 여리기만 한 연둣빛의 잎새가 앙증스럽게 손짓하는 나무는, 한 편의 서정시가 따로 없을 정도로 눈부신 생명의 아름다움을 구가하고 있다. 담록이나 황록, 연초록이나 진초록으로 생명의 잔치를 노래하며 신록으로 넘실대는 산과 들은 이미 도도한 기운생동의 흥겨운 춤사위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초록빛은 싱그럽고 설레며 다채롭고 아름다운 생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식물에서의 생명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초록빛은 건강과 환경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절약과 물품의 재활용, 일회용품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 차량운행 최소화, 자전거 타기, 식물기반의 식사 등 친환경 저탄소를 위한 일련의 노력들은 모두 초록빛을 꾸준히 챙겨 나가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는 자연처럼 쾌적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돋보이게 하는 초록빛은, 환경을 보호하고 건강에도 도움을 주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 탄소중립의 화두를 초록빛 챙김에서 찾아야 하는 다양한 의미이기도 하다.
밝은 초록빛 수풀이 투명한 푸른빛 바다처럼 일렁이는 4월의 들판에서, 사람도 나무처럼 영롱한 초록빛이 될 수 없을까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