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태어난 곳이든 성장기 배경이 된 곳이든 누구나가 어느 한 곳이나 본가 또는 외가 등지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출생과 성장에 관한 당시의 기록이나 문헌자료가 불분명한 위대한 인물일수록, 현재에 이르기까지 배경지의 논쟁이 되고 지자체의 대립과 반목을 유발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출생지와 성장지에 둘러싸여진 포항과 영천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주장과 논점일 것이다.
포은 정몽주 선생은 고려말의 절의(節義)의 충신이며 동방이학(東方理學)의 비조(鼻祖)로 추숭되는 큰 인물이다. 고려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학문·외교·경제·군사·정치·인품 등 모든 면에서 특출난 고려 최후의 보루이자 문무를 겸비한 역사에 길이 남은 인물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포은은 영일현 문충리에서 탄생, 인근 오천 구정리에 옮겨 살다가 유년 시절인 9~10세 경에 영천 우항리 외가댁에 잠시 머물렀고 가족들이 그곳에 터를 잡은 후에는 영천으로 완전히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영천에서는 포은 선생에 대한 기록이나 사료, 자취 등을 근거로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서 출생했다고 하여 생가터와 임고서원을 대대적으로 성역화하는 등 영천이 ‘포은의 고향’임을 굳히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 포은선생의 고향이 어디인가는 후학들의 관점에서의 문제이며, 포은선생에게 있어서는 포항이던 영천이든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포은선생의 충절과 위업·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지역문화의 정체성으로 제고시키는 노력과 지역민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의미 있는 전승활동과 추모사업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측면에서 오천읍에서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2008년부터 매년 포은문화축제를 성대하게 개최해 왔고, 민간에서는 포은추모사업회를 발족하여 포은선생의 시문(詩文)과 예술을 고양시키는 사업 등이 이어지고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포은 정몽주 선생 탄생 688주년을 기념하여 최근 1주일 간(6월 16~22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포은국제서예교류전’은 한·미·중·일 등 20여 개 국가의 저명작가들이 출품한 200여 점의 필묵작품들이 포은선생의 학예와 덕행을 만방에 드러내서 주목받았다. 포은선생의 업적과 사상을 서예라는 예술을 통해 되새기는 국제 교류전은 각국의 귀한 작품들을 함께 전시·감상하는 특별한 시간이 단순한 문화교류를 넘어, 예술적 공감과 우정을 나누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포은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고 예술적인 삶을 재조명하여 충효사상과 외교활동을 널리 알리고 창조적인 계승과 발전을 도모하는 포은서예국제대회 공모전·포은선생추모백일장 등의 다양한 문화적인 프로그램도 가을에 예정돼 있어서 사뭇 기대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역사회에서의 문화예술의 향기와 진흥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시민의 정서적인 풍요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지방시대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문화도시 포항에 포은선생의 얼과 자취를 보듬어 고유한 정체성으로 확립, 발전시키고, 예술과 문화적인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굴, 진작시켜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시민 모두가 행복한 포항’으로 나아가도록 각계각층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