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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에 즈음하여

등록일 2025-12-02 16:40 게재일 2025-12-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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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벌써 한 해의 끝자락으로 접어드는 12월이다. 뒤늦은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금세 스산함이 일고 기온이 떨어져 곧장 겨울로 치닫는 듯했다. 잎새들은 화들짝 놀라 단풍조차 들지 못한 채 푸르댕댕하게 나무에서 그대로 시들거나 청엽(靑葉)으로 떨어져 거리 곳곳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조락(凋落)의 푸르스름한 빛깔로 대지에 내려앉는 낙엽이, 어쩌면 아직은 일할 기력이 남아돌고 일터에서 좀 더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벌써 정년(停年)을 맞이해야만 하는 여느 퇴직자의 뒷모습으로 비침은 왜일까?

하지만 어쩌랴,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이거늘-. 모든 일에는 시와 때가 있듯이 분수와 시기가 정해져 있다. 때맞춰 오는 비가 만물을 생장시키듯이, 제 시간에 오는 기차를 타야만 인생항로의 여행을 즐길 수가 있을 것이다. 기차가 연착되거나 놓치게 되면 왠지 조바심이 타고 불안해지며 뒤에 이어질 여정(旅程)에 차질을 빚을 수가 있다. 이처럼 직장이나 사회 전반에는 촘촘한 ‘약속의 시간망’으로 세상이 굴러가며 계절의 변화와 순환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리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 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이형기 시 ‘낙화’ 중에서-

길고 오랜 시간 직장에 몸담았다가 역할과 임무를 다하고 정년의 문턱에 서게 되면 실로 만감이 교차하게 될 것이다. 설레던 신입사원의 패기에 찬 발걸음과 각오, 의욕에 찬 도전과 고난의 시행착오, 경험의 그루터기와 인내의 손길로 빚은 노력의 성취, 그리고 미련 없는 비우기와 내려놓음의 안도로 말년의 여유를 누리며 떠날 채비를 하는 파란만장한 여정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밤낮없이 드나들며 숱한 애환과 희비가 어린 일터를 떠난다는 것은 고향이나 둥지를 뒤로하는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세월은 오고 가며 사람은 만났다가 헤어지며 떠나고 보내기 마련이다. 뒤돌아보면 모두가 꿈결같고 한순간 같은데, 어느새 머리칼엔 서리가 내려앉고 주름진 이마엔 시간의 더께 같은 흔적이 역력하니 새삼 세월의 갈퀴질을 실감할 수 있다. 아스라한 삶에 여울에 직장도 어찌보면 잠시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기항지(寄港地)에 지나지 않을텐데, 오랜 시간 집보다 더한 애착으로 기여하고 헌신하며 열과 성을 다한 곳이라면 쉽사리 잊혀지거나 그냥 스치듯이 발걸음이 좀체 떼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숨결이 배고 자취가 올올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정년퇴임을 기리고 축하하며 위로하는 크고 작은 행사나 환송연이 도처에서 열리고 있다. 이왕 떠나고 떠나보내야 하는 자리라면 좀더 인정스럽게 떠나고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직장에서 얼기설기 좌충우돌로 부대끼고 얽매이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감정이 상하거나 회한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모든 것 잊고 추스르며 인정을 남겨두면 훗날에 다시 웃으면서 만날 수 있으리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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