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으레 길거리에서 들리는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정겹고 훈훈하게 여겨진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따뜻한 이웃사랑의 울림이 잔잔히 퍼져 나가고 있다. 매년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세계 100여 국에서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 종소리가 우리나라 명동에서도 100여 년째 울리면서 따뜻한 불우 이웃돕기와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에 기여하고 있다.
길거리에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이 연말에는 이러저러한 음악회나 발표회 등이 잇따라 열리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살고 사랑하며 수고한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과 안녕을 기원하는 음악회가 다채로운 선율을 타고 위로와 위무의 마음으로 흐르고 있다. 음악과 소리는 그만큼 상황과 느낌에 따라 마음을 이완시키며 위안과 치유로 더할 수 없는 감동과 감흥을 주기도 한다.
소리를 재료로 하는 복합적인 시간예술인 음악은 대부분 악기나 음향장비를 이용하여 리듬이나 멜로디, 하모니, 음색 등을 표현하고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게 된다. 다양한 음악의 장르 중 특히 우리 고유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국악은 한국의 전통음악을 일컫는 말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예술적 표현활동인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와 이를 재해석·재창작한 공연예술을 가르킨다. 그중 정악(正樂)·정가(正歌)는 한국 전통 성악곡의 정수이자 조선시대 선비 문화의 미적·정신적 가치를 보여주는 음악 장르로, 고려와 조선시대의 궁중과 상류층에서 연주·향유된 ‘바른 음악’을 의미한다. 정악(正樂) 가운데 대표적인 가곡·가사·시조창을 성악곡이라 하여 ‘정가’라고 통칭하고 있다. 즉 정악정가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 정신과 예술적 미학을 담고 있으며, 전통 성악곡의 미학과 선비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음악 장르로 오늘날까지 전승, 보존되며 그 예술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첨단 문명의 정보화로 전통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우리의 뿌리 깊은 소리를 배우고 익히며 전승하는 일은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가곡·가사·시조창에는 선조들의 얼과 풍류가 스며 있고 우리 고유의 정서가 배어 있기에, 정가를 현대적으로 계승, 보급,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참으로 바람직하며 적극 장려해야 되리라고 본다. 그러한 차제에 최근 정가의 맑은 울림으로 겨울의 인사를 나누듯 소리의 향연을 다소곳하게 펼쳐 보인 곳이 있어서 주목된다. 지난 주말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원에서 포항정가보존회의 정가 발표회가 담담하고 구성지게 열린 것이다.
옛날 선비들이 사랑방에서 거문고나 장구의 장단에 맞춰 가곡이나 시조창을 멋들어지게 불렀듯이, 좁은 실내지만 음향시설 없이 대금을 곁들여 가곡·가사·시조창에 민요까지 다양하고 이채롭게 펼쳐 보여 상당히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방 안에서 그야말로 정가 특유의 방중악(房中樂)으로 부르고 연주하며 춤까지 어우러진 시간 내내 품격과 감흥을 더하며 탄성과 추임새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통의 가치를 창(唱)과 소리로 담금질하며 소중한 정가의 맥을 이어가는 활동과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